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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08:19:00

땅거스러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amibie_carte.png

나미비아 동북쪽의 땅거스러미인 카프리비 회랑(Caprivi Strip).[1]



1. 개요2. 땅거스러미의 예
2.1. 대한민국
2.1.1. 행정구역
2.2. 그 외 국가
2.2.1. 영토2.2.2. 행정구역

1. 개요

panhandle

돌미지(突尾地)라고도 하며 조선 시대에는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2], 두입지(斗入地)[3]라고도 했다. 행정구역이나 국토의 일부가 긴꼬리 모양으로 좁거나 돌출된 형태로 다른 지역으로 파고 든 모습의 땅들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지 않은 육지의 반도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는 Finger, Panhandle, Bootheel, Salient이라고 하는데 땅의 모습이 마치 손가락, 프라이팬 손잡이, 혹은 부츠 힐을 연상시키는 데서, 그리고 군사적으로 영토의 돌출부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거스러미는 손톱 주변에서 거슬거슬 일어나는 살갗 또는 얇게 벗겨져서 일어난 나뭇살을 뜻하는데 보면 뜯어내 버리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며 그럼에도 함부로 뜯어냈을 시 후유증이 막심하다는 공통점[4]이 있다.

땅거스러미를 둘러싼 나라와 전쟁이 벌어지면 매우 골치아프게 된다. 그곳만큼은 툭 튀어나온 만큼 포위해서 집중공격을 하거나 종심돌파를 하면 전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5]

조선 시대에는 주로 (府)·(牧) 단위의 큰 고을들이 이런 형태의 행정구역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대동여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 속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속현은 독립하고 어떤 속현은 주현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땅거스러미가 생기기도 했으며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여건 속에서 부나 목의 살림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을 내륙지방에는 해안, 해안지방에는 내륙 땅거스러미를 부여해 자체적으로 충당하도록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광주부는 현 안산 동부지역의 북방면·성곶면·월곡면과 매송면 일부 지역의 송동면을 거느리고 있었다.[6] 이러한 견아상입지들은 대부분 1906년 대한제국월경지 정리령에 의해 대대적으로 정리되었다.

지적도 단위에서는 간척 등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간척 이전에는 제방이나 다리가 포함된 필지였는데 주변이 땅이 되면서 바늘 수준으로 튀어나온 형태의 필지가 생기는 것. 흔치는 않지만 기존에 교량이었던 부분과 새로 간척된 부분이 행정구역상으로 갈리는 경우도 있는 듯.

유사 단어로 회랑(回廊, Corridor), 돌출지(突出地, Salient)가 있다.

판도 분야에 관심이 많은 이들 사이에서는 촉수라고도 불리며 깔끔하지 않다는 이유로 월경지와 함께 호불호가 매우 갈린다.

2. 땅거스러미의 예

2.1. 대한민국

2.1.1. 행정구역

2.2. 그 외 국가

2.2.1. 영토

2.2.2. 행정구역



[1] 1890년 독일이 영국과 체결한 헬골란트-잔지바르 협약에 덤으로 딸려온 땅으로, 독일의 잠베지강 접근권을 보장받기 위해 저런 모양으로 국경선이 그려졌다. 그러나 잠베지강에서 60km 떨어진 곳에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어서 독일의 나미비아에서 인도양 진출은 결국 무산되었다.[2] 행정구역 경계가 마치 이빨처럼 지그재그 형태로 어긋나 있다는 의미.[3] 행정구역 영역이 국자의 손잡이(斗)처럼 길게 뻗어나왔다는 의미. 참고로 월경지는 비입지(飛入地) 또는 비지(飛地)라고도 불렀다.[4] 이것을 마구 뜯어내면 아프거나 염증이 생긴다. 땅거스러미도 특정 국가의 주권이나 특정 지자체의 관할권이 합법적으로 미치는 지역이므로 한쪽 맘대로 쉽게 떼어내거나 갖다붙이려고 했다간 당연히 외교적으로 마찰을 빚을 수 있다.[5] 독소전쟁쿠르스크 전투도 소련 측 돌출부를 독일이 집중 공격하면서 시작된 것이다.[6] 이 밖에도 대구도호부가 비슬산 너머 현재의 청도 서부까지 차지하고 있고, 양산군대저도를 거느리고 있고, 평양부가 해안을 끼고 있는 등 상당히 많은 예가 있다.[7] 부천시 역곡3동(행정동)이 관할하는 두 법정동인 괴안동과 옥길동 사이에 끼어 있으며 둘은 항동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즉 이들은 상호 월경지이며, 그 사이를 항동이 쏙 파고든 형상이다. 실제로도 부천(역곡) 생활권이며(하수처리도 서울시가 아닌 부천시 관할) 이곳에 개발되고 있는 항동지구도 부천의 범박지구, 옥길지구와 연담돼 개발되고 있다. 다만 부천시가 2019년 광역동 제도를 시행하면서 이 일대가 범안동이 되었고, 이후 2024년 구제가 부활한 뒤로는 행정동 옥길동이 신설되어 역곡3동은 더 이상 월경지가 아니게 되었다.[8]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창릉동)과 지축동(효자동) 사이에 끼어 있다.[9] 이 지역의 생활권은 덕양구의 중심지인 화정, 원당, 능곡 일대가 아닌 서울특별시 은평구(구파발, 연신내 일대)에 엮여 있다. 조선 시대에도 효자동 일대는 한성부 은평방에 속해 있었다.[10] 원래는 땅거스러미가 아니었으나 1995년 김포 서부의 검단이 인천광역시로 넘어가면서 돌출지가 되었다.[11] 남쪽을 제외하면 강원도 이천군 및 철원군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결국엔 부군면 통폐합 때 철원군 소속으로 바뀌었지만 지금은 군사분계선 북쪽이라서 알아보기 힘들다.[12] 화성 히어로즈 베이스볼 파크 일대. 비봉면앞 매립지도 비봉면에 편입시키지 않고 일괄 새솔동으로 법정동을 정했기 때문이다.[13] 2020년 7월 수원시와 화성시의 행정구역이 조정되었다.[14] 본래 이 일대는 바다였다가 매립되어서 이렇게 되었다.[15] 구 금성군→김화군 지역이다. 참고로 이 세 곳은 민통선 내에 있어 민간인이 거주하지 않는다.[16] 여기는 생활구역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판운리 수계가 그대로 주천면 소재지로 내려오며 주천면 소재지는 수주면소재지와 지척에 있기 때문. 둘은 같은 생활권으로 묶이며 오히려 주천, 수주면 전체가 영월생활권보단 제천생활권과 엮여서 문제.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 넓은 판운리의 인구수는 2015년 기준으로 400명이 위태롭다.[17] 신림터널 동쪽 지역이다.[18] 영동지방 지자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태백산맥 서쪽 너머에 있어 땅거스러미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당시 삼척군에 속했던 장성읍과 황지읍이 태백시로 승격되었고 나중에 하장면에 속했던 4개 리(원동리, 상사미리, 하사미리, 조탄리)도 태백시로 편입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도 이 지역은 가끔씩 태백시로의 편입 떡밥이 돌곤 한다. 사실 지금의 태백시가 상장면이었는데 이 둘을 세트로 하여 '장성'(長省)이라고 불렀다.[19] 군청이 땅거스러미 지역에 있다.[20] 본래 춘천군 관할이었다. 광복 후 삼팔선 이북으로 넘어가 소련군정 및 북한 치하에서 화천군이 관할했고, 수복 후 임시로 설치한 북포천군이 관할하다가 북포천군이 폐지된 1954년에 정식으로 화천군으로 이관되었다.[21] 근데 강림면은 지도상으로만 땅거스러미지 실제로는 치악산 동편인지라 가장 가까운 곳이 횡성읍이라는 걸 감안하자(...). 게다가 횡성군 전체적으로 볼 때 횡성읍이 한복판에 있어서 큰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횡성읍이 원주시 시내랑 너무 가까워서 빨대효과가 생기는게 문제. 여담으로 주천강을 같이 끼고 있는 영월군 수주면이나 주천면도 파란만장한 행정구역 변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륙수운이 쇠퇴하면서 주천강 유역을 잇는 교통망이 한때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411번 지방도 고일재터널의 개통으로 횡성과 영월이 다시 직접 연결되었다.[22] 고원통로 북부 쪽. 이 때문에 한계리에서 46번 국도따라 용대리 쪽으로 갈때 원통리를 살짝 걸친 후 지나가게 된다.[23] 을지전망대가 있는 마을.[24] 본래 문경군 농암면에 속했다가 1963년 괴산군에 편입되었다.[25]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신안리와 전동면 심중리 사이의 돌출 부분으로, 1번 국도(세종로), 운주산로 및 경부선이 이 곳을 지나간다. 상봉리는 정중리로 통하는 병마산터널 한 곳을 제외하면 오송읍의 다른 리들과는 산으로 인해 단절되어 있고, 콜버스 이외의 청주시 시내버스 노선도 없이 세종특별자치시 시내버스 노선들만 경유한다.[26] 1963년 괴산군에서 중원군으로 이관되었다.[27] 이곳에 있는 복수면 일부 지역도 해당된다.[28] 추가로 동남구 쌍용동(쌍용동 대부분은 서북구 소속)이 있다.[29] 1987년 성송면에서 편입되었다.[30] 영산동, 삼영동, 송월동, 토계동 사이에 낀 영산강 일부와 둔치 지역 일부가 고동리에 속해 있는데 금천면은 물론이고 고동리의 다른 지역에서도 영산동을 거치지 않고는 진입할 수 없는 실질월경지기도 하다.[31] 정확히는 228번지(일부), 537번지(일부), 835번지, 868번지, 882번지 등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32] 꼬막 주요 산지다. 장도 등 도서지역으로 향할 수 있는 상진항이 이곳에 있다.[33] 법정동 야음동 일부. 舊 야음2동.[34] 대원동에 속하는 충혼탑 사이에 끼어 있는 동네다(...)[35] 창원공고는 팔용동에 속하지만 정작 도로변인 창원공고사거리는 명서동에 속한다.[36] 길고 좁은 땅거스러미 영토 하나가 니더작센 주와 인접해있다.[37] 벨기에와 독일과 인접한 남부와 북부 영토가 길게 늘어져있다.[38] 와칸 회랑으로 불리는 곳이다.[39] 타지키스탄 서중부 지역과 인접해있으며 타지키스탄 서부와 중부 영토를 파먹은 형태로 현재 바다흐샨 주에 속해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동북부 지역 영토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40] 크게 보면 인도 북동부 7개 주 전 지역이 땅거스러미 형태를 띄고 있는데, 특히 미조람과 트리푸라 주는 그 안에서 이중으로 땅거스러미 모양을 하고 있다.[41] 북한-중국-러시아 국경이 만나는 부근에 러시아 마을인 하산(러시아)이 있다.[42] 잠비아 영토 안으로 깊게 파고 들어간 모양새로, 이 때문에 잠비아와 콩고민주공화국 간의 국경/영토 분쟁이 있다.[43] 베네수엘라, 페루, 브라질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마존 밀림 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일부 이웃나라와의 국경지대 영토가 땅거스러미 형태로 튀어나와 있다.[44] 아주 절묘하게 아르메니아와 이란 사이의 국경을 막고 있다.[45] 연결되는 도로는 부르키나파소 방면으로밖에 연결되어 있지 않아 실질월경지이기도 하다.[46]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 남동부 지방 방면에 폴란드 영토 하나가 돌출되어 있는 형태로 나와 있다.[47] 나바리 독포도주 사건이 일어난 곳이고 일부가 산 너머까지 뻗어 있어 실질월경지이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마을 자체도 하나의 마을인데 북부는 나라현, 남부는 미에현으로 분단되어 있다.[48] 야마가타현과 니가타현 사이에 끼어있는 땅이 있다. 이는 메이지 시대에 원래 후쿠시마현 관할이었던 히가시칸바라군이 니가타현으로 넘어갈 때 히가시칸바라군과 야마가타현 경계 근처에 있는 이이데야마신사에 대한 권리를 후쿠시마현이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 이로 인해 후쿠시마현에서 이이데야마로 이어지는 등산길과 이이데야마신사가 후쿠시마현 땅으로 남았다.[49] 미국에서 팬핸들의 대명사로 불리는 지역이다.[50] 도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평양-회천 고속도로를 기점으로 동쪽으로 길게 뻗은 땅거스러미와 승호구역, 상원군, 중화군의 이관으로 남쪽으로도 땅거스러미의 모양새가 되었지만 이는 북한의 행정구역 기준이며 대한민국의 행정구역인 평양시 기준으로는 미림동 북부와 신동 지역만이 조그마한 땅거스러미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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