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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0 16:45:22

후잔트

<colbgcolor=#006600><colcolor=#fff> 후잔트
Хуҷанд
면적 40㎢
인구 191,000명
인구밀도 4,775명/㎢
1. 개요2. 역사3. 자매도시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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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지키스탄 서북부 수그드 주에 위치해 있는 타지키스탄의 주요 도시. 대체로 과거 러시아어 표기의 영향을 받은 호젠트(Ходжент, Khodzhent 또는 Khodjent)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타지크어 기준으로는 후잔드에 더 가깝다.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이기도 하다.

2. 역사

파일:후잔트 문장.svg
후잔트 시 문장.

아케메네스 왕조키루스 대제의 이름을 딴 키루폴리스(Κυρούπολις / Kyroúpolis)라는 고대 도시가 기원이다. 즉 고대부터 실크로드를 통과하는 도시 중 하나였으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이곳에서 유명한 학자와 시인들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기의 마케도니아 제국이 점령한 이후에도 도시는 유지되었고 본격적으로 더욱 개척된 시기이기도 했다. 고대 동양에서는 서역의 국가 중 하나였던 대완국의 귀산성(貴山城)이 후잔드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추정도 있다.

이슬람 제국 시절에는 아랍에 의해 파괴되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실크로드를 구성하는 도시를 유지하면서 여러 외래 민족들과의 교류로 나름 경제가 발달하기도 했고 호라즘 제국의 거점지역으로도 번성했다. 하지만 몽골-호라즘 전쟁으로 몽골 제국이 침공하자 저항하다가 점령당했다.

티무르 제국 이후 코칸트 칸국이 지배를 하면서 이곳은 코칸트 칸국의 땅이 되었다.[1]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 일대를 침공하자 러시아 제국에 속하게 되었으며 소련 시기인 1936년 이전까지는 러시아어식 명칭인 호젠트로 불렸으나 1936년부터는 레니나바트(Ленинабад, 타지크어로는 레니노보드·Ленинобод)로 불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영토였으나 1936년 1월 10일,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1991년 소련 해체를 통하여 타지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내륙의 여러 나라들이 독립되자 다시 타지크어식에 가까운 후잔트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타지크인 다음으로 우즈베크인들이 많기도 했는데 이는 우즈베크와 타지크의 영토분쟁이 되기도 했었다.[2]

타지키스탄 내전이 끝난 이후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최근에는 우즈베키스탄과의 협력을 맺으면서 이러한 분쟁은 미약해졌다.

3. 자매도시

자매도시로서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아제르바이잔아그스타파,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부하라, 카자흐스탄의 쉼켄트, 이란의 타브리즈니샤푸르,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링컨 시가 있다.

4. 여담

1999년에 발매된 러시아 영화 루나 파파(Лунный папа)가 후잔트 주변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3]

타지키스탄의 성곽 유적지이자 후잔트를 상징하는 박물관이기도 한 수그드 역사 박물관이 있다. 또한 후잔트의 유명한 랜드마크인 셰이크 무슬리히딘 영묘가 있다.

후잔트의 위성 도시로 운지(Унҷӣ)가 있다.


[1] 페르가나 계곡을 경계로 서쪽은 우즈베키스탄의 코칸트이고, 동쪽이 타지키스탄의 후잔트이므로 가깝다.[2] 실제로 후잔트의 우즈베크인들은 타지크인들을 못마땅히 여겼고 이는 타지키스탄 내전 때에는 봉기 및 반란으로도 이어졌다. 반대로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크인들이 많은 도시들이다.[3] 감독은 타지키스탄 출신인 바흐티요르 후도이나자로프(Бахтиёр Худойназаров)이며 타지키스탄은 물론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일본, 투르크메니스탄도 제작에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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