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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4:59:30

홍준표/정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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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계 입문3. 참여정부 시기4. 이명박 정부 시기5. 경상남도지사6. 19대 대선 자유한국당 후보7. 19대 대선 이후
7.1. 미국 체류7.2. 귀국 이후의 행보
8. 초대 자유한국당 대표
8.1. 2017년8.2. 2018년
9. 당대표 사퇴 이후
9.1. 2018년9.2. 2019년9.3. 2020년
10. 원내 복귀
10.1. 21대 총선 출마10.2. 21대 국회 활동
10.2.1. 복당 논쟁
10.3. 복당
11. 20대 대선 대선주자 시기
11.1. 8월11.2. 9월
11.2.1. 공약 발표 행사11.2.2. 압박 면접
11.3.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11.4. 10월11.5. 11월11.6. 총평
12. 경선 패배 이후의 행보
12.1. 2021년12.2. 2022년
13.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14. 대구광역시장15. 지지율
15.1. 리얼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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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준표의 정치 경력에 대해 서술된 문서.

2. 정계 입문

홍준표는 모래시계 검사로 명성을 떨치고, 권력형 비리 등으로 인해 기성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가지게 된 국민들에게 정의롭고 참신한 이미지로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정치인으로서의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 상태였다.

정계 입문 과정이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거듭된 좌천 인사 끝에 검찰에서 나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자, 광주지검 시절 잡아넣었던 조폭들이 출소하여 가족을 해치겠다고 위협하였다. 이 때문에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어 제도권의 보호를 받고자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김대중으로부터 새정치국민회의 입당을 제안받아 오찬 회동에 초청되었으나, "DJ랑 식사하면 그쪽으로 안 갈 수가 없다더라"는 말을 듣고 일단 참석하지 않았다. 밤 늦게 노무현을 비롯한 민주당[1] 사람들이 와서 입당 제안을 하기도 했으나, 몇 시간 후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찾아와 신한국당 입당을 권유했고[2], 결국 강삼재의 제안을 받아들여 신한국당으로 가게 되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YS에게서 직접 전화가 와[3], "문민정부에서 큰 사람이 왜 야당으로 가려 하는가"라는 말을 듣고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홍준표가 노무현의 제안을 끝내 거절하고 신한국당에 들어가게 되자 노무현은 "홍검, 그렇게 살면 안 돼요!"라고 화를 냈다고. 그 당시 홍준표는 검사 시절에 했던 수사 때문에 온갖 압박에 시달리던 상황인지라, 자신을 확실히 지켜줄 수 있는 당으로 갈 필요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세력이 미약한 야당의 제안은 거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일:신한국당홍준표.jpg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전화 통화로 권유하기까지 한 끝에 여당이자 보수정당에 속하는 신한국당에서 정치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홍준표도 이명박, 노무현[4], 이회창, 김무성, 이인제, 이재오, 김문수, 손학규, 박형준, 정의화, 김영춘, 김영선 등 여러 유력 정치인들과 함께 김영삼이 발굴해 낸 YS키즈 중 하나가 되었다. # 당시 뉴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송파 선거구로 출마해 현직 의원인 자유민주연합 조순환 후보를 이기고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초선 소장파에 불과했지만, 노동 최저 연령 상향을 발의해 통과시키는 등 초선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1999년 3월 8일,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 상실 위기에 몰리자 대법원 판결을 하루 앞두고 의원직을 자진사퇴한다. 선거운동 당시에 동협의회 총무에게 2,400여만 원의 선거운동비를 주고 사후 허위 지출보고서를 제출한 혐의였다. 이에 대해 당초 검찰은 불기소처분(1996년 10월)을 내렸으나, 야당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곧 이듬해 1997년 2월 21일 법원은 야당 측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였고 대법원 판결을 하루 앞 둔 1999년 3월 8일에 국회의원직을 자진사퇴했으며, 이튿날에 대법원은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해 홍준표는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하게 되었다. #

파일:hjp.jpg

2000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DJ와 영수회담을 갖고, 추경예산 편성과 남북 경협자금을 승인해주는 대신 이명박, 홍준표 등 선거법 위반 사범에 대한 사면에 합의했다. 그 해 광복절 특사 때 사면돼 피선거권을 회복한 그는 2001년 치러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 재선거[5]에 당선되어 국회로 복귀했다.

독기를 제대로 품은 그는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3남 김홍걸의 미국 은행 입출금 내역을 공개해 3달 동안 23만 달러, 1달 평균 8,700만 원이라는 비정상적인 금액이 인출된 사실을 폭로하였고 검찰이 이에 대해 수사에 들어가게 했다. 곧 검찰은 김홍걸이 최규선에게서 3억 원을 수수한 혐의를 적발했고, 김대중 정권을 뒤흔든 최규선 게이트가 터지면서 결국 김홍걸이 구속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민주당을 탈당했고,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하면서 레임덕에 빠지게 되었다.#

3. 참여정부 시기

2004년 총선 직전에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의 지원에 힘업어 전농답십리뉴타운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기사. 실제로 홍준표 의원은 2001년부터 시작한 동대문 을 재개발을 10여년 간의 기간을 걸쳐서 청량리 588 집창촌을 폐쇄하고 적극적인 재개발을 추진하였으며 그 자리에 주상복합 단지를 들어서게 만들었다. 기사 1, 기사 2. 분명 홍준표가 가장 적극적으로 청량리에 역을 유치하고자 하고, 동대문구의 재개발에 적극적으로 임했음에도 생각보다 업적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참조. 개발이 거의 완료되면서 청량리동 일대는 분당신도시처럼 보수정당 텃밭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파일:2004년 총선 서울지역.png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다른 후보들과 달리 노무현 탄핵 역풍을 뚫고 서울 동북권에서 유일하게 당선되었다. 본인은 이 때 패배를 예감했는데, 당시 탄핵 역풍으로 여론 조사에서 3배 가까이 차이날 정도로 불리했고, 거리에 나서면 욕도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거 유세 시작 후 일주일간 집에서 바둑만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1.28% 차이, 1,008표 앞서며 승리했다. 보수정당의 몇 안 되는 서울 다선 의원[6]이 되면서 그는 단숨에 거물급으로 부상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자식의 병역면탈에 앞장서는 사람들을 공직에 놔둘수는 없습니다!"
국적법 개정당시 브리핑 현장에서의 발언

2005년에 고위공직자, 사회지도층 및 원정출산자에 대한 병역기피를 막기 위해 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속지주의를 택한 국가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유지한 채 병역을 이행할 연령이 되면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로서, 병역을 마치기 전에는 국적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런 개정 국적법은 이른바 홍준표법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2002년 유승준 병역기피 사건 이후 국적 포기와 복수국적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하늘을 찌를 때라 이는 곧 국민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졌고, 당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큰 칭찬과 격려를 받기도 했다. 홍준표 의원의 '국적법'에 네티즌 초당적 열광 그리고 노무현 탄핵 사태 이후로 답보상태에 빠져있던 한나라당 지지율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홍준표 자신을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다만 홍준표법에도 구멍은 있다. 이 법은 이중국적 상태로 국내에 살다가 시기가 되면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규제할 뿐, 일찍히 외국에 나가 살며 만 25세 이전까지 10년 이상 거주 기간이 채워지면, 국외이주여행제도로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기에 외국에 나간 사람들에게는 아무 효과가 없다. 한국에 영구 거주하는 한국인 부모가 원정출산 후 복수국적자 자식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서 자식이 한국인으로 살아간 후 한국말이 서툴지 않은 중고등학생 때 외국으로 이민가도 실질적으로는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면 그 자식은 40세까지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수 없다.

원정출산 등으로 외국에서 출생한 자녀가 있는데 자녀가 18세 대한민국 국적포기 기한을 놓치거나 혹은 한국에 연고가 있다고 판단해 병역기피로 판단되어 자녀의 국적 포기가 불발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홍준표법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최근 있다. 하지만 병역의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한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한국계 외국인들 때문에 평판이 안 좋아진 교포들과 박탈감을 느끼는 한국인들은 오히려 더 강화된 국적법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즈음 민주노동당 소속 조승수 의원이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의 공식 선거운동 하루 전 지역구 주민집회에 참석하여 간단한 서명을 한 것이 빌미가 되어 억울하게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조승수 의원 살리기"를 위한 대법원 탄원서 서명에 동참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 가운데 총 11명이 이 서명에 뜻을 모았는데, 여기에는 의외로 극우보수의 아이콘인 김용갑 의원과 나중에 친이의 핵심이 되는 주호영 의원도 동참하여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던 상황이라 더더욱 신선한 충격을 줬으나, 안타깝게도 조승수 의원은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하고 만다.

2005년 7월에는 당시 들끓는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감안하여 1인당 주택 1채만을 보유할 수 있게끔 하는 법 제정을 구상하기도 했다. 헌법 제37조 2항을 들며 "사회적 해악인 부동산 투기를 막자는 것은 '공공복리'이므로 이를 이유로 주택 소유도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였고 당시 정부 여당에 입법을 공개 제안했으나, 실제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홍준표 "1인당 1채만... 주택소유 제한해야"



2005년 9월에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국정 감사에서 날카로운 질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위는 정동영과의 질의응답 영상이며, 예전부터 무척 날카로운 입담을 자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 맹형규 의원과 함께 당 내 경선에 나섰다. 그러나 막판에 오세훈에게 밀려서 석패,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7] 17대 국회 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직에 올랐다.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news1157696996_43576_1_m.jpg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 이명박의 권유로 출마하였으나 4위로 고배를 마시고, 친이계 답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8][9] 2007년 이명박의 BBK 사건이 터지자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으로 임명되어 BBK 가짜편지, 김경준 기획입국설 등을 터트리면서 이명박의 당선을 도왔다. 이 사건은 5년이 지나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에 가짜편지 자체가 가짜라고 판명되었다.

4. 이명박 정부 시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열린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4선 의원이 되었다.

제18대 국회가 개원하고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로 추대되었다.[10] 여당 원내대표가 관행적으로 겸임하는 국회운영위원장직을 맡으면서[11][12] 이명박 정부 초기에 이루어진 민생 경제 법안들의 입법을 주도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비용 문제를 두고 아방궁이라고 표현하면서 공격하기도 했고[13], 이후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자 앞장서서 공세하면서 노무현에 대한 구속 수사를 주장했다.[14]

2010년 4월에는 사회취약계층의 대학 등록금을 차등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얼마 후 한나라당 서민정책특별위원장을 맡아 사채업계의 대출 최고 이자율을 연 25~3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혀 제2금융권대부업체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2010년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출마했지만 안상수 후보에게 밀려 낙선한다. 이 때 홍준표가 안상수의 부정적인 과거를 전부 털어버려서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친이계라고는 해도 아싸기질이 워낙에 강했던지라 최고위원 당선에 그쳤다.[15] 그리고 동년 8월, 홍준표 의원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청량리역 민자역사를 준공시키는데 성공했다.#

다만 이 시기 분당선 청량리역 연장과 관련하여 홍준표 의원실에도 문의가 꽤 들어왔는데, 홍준표 의원 측에서는 반응이 영 신통찮았다. 오히려 후임 민병두 의원이 더 적극적이었고, 2018년 12월 31일에야 정식으로 개통되었다. [16][17]

2011년 4월,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강제적 셧다운제 법안”)에서는 반대표를 행사했다.

2011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나섰는데, 계파 없이[18] 당 대표에 선출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때 대의원 유효 투표 11만 4,372표 명 중 4만 1,666표를 받아, 3만 2157표를 얻어 2위를 한 친박계 유승민 후보를 9천여 표 차이로 이겼다.[19]

파일:external/dimg.donga.com/38547381.1.jpg
계파 없이 홀로 뛴 선거에서 저 홍준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대의원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채 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이 보여주셨다.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후, 민주당 손학규 대표에 맞서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세를 조금씩 회복해 나갔다. 그러나 하필 취임 한 달만에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무상급식 중단 주민투표를 한나라당과 협의도 없이 강행해버리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홍준표는 당대표였지만, 당권을 확실히 쥐고 있지는 않은 위치에서, 이명박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야권에게 다소 유리하게 흘러가는 정국을 어떻게든 지켜야 했었다. 그런데 당과 상의도 없이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무상급식 중단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어버리는 독단적인 행동을 해버린 것. 홍준표는 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으나, 오세훈은 주민투표의 결과에 승복하여 서울시장에서 사퇴하였고, 25.7%가 나왔으니 사실상 승리라는 홍준표의 쉴드는 조롱거리만 되고 말았다[20].

이 때문에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는 사실상 미니 대선급 대형 선거가 되어버렸으며, 무상급식 어젠다 때문에 야권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뺏겨버린 한나라당은 당시 중구 국회의원이던 나경원 최고위원을 내세워 서울시장직 탈환을 노렸지만, 안랩의 의장으로서 당시 엄청난 명성을 떨치던 안철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시민운동가 박원순을 지지하였고, 박원순은 다시 민주당 후보 박영선과 야권 단일화를 하여 야권 통합 후보가 되었으며, 결국 서울시장 자리를 9년만에 지방선거에서 간신히 승리한지 채 2년도 지나기 전에 야권에게 빼앗겨버리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21]

2011년 11월 22일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참고로 2017년 4월 28일에 있었던 제19대 대통령 선거 2차 TV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한미 FTA를 자신들이 체결했다고 주장했는데, 협상 자체의 체결은 참여정부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 맞지만 한미 FTA의 완결과 실질적 발효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나라당이 체결한 것이 맞다. 팩트체크. 당시 당대표였던 홍준표가 매국노, 을사늑약 소리를 들으며 표결 처리했고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불상사를 저질렀다. 홍준표 "한미 FTA 비준 더이상 늦추면 공멸" 참고로 민주당은 당시에는 FTA에 반대했지만, 요새는 입장을 바꾸어 FTA에 찬성하고 있다.



이 FTA 체결이 있기 3주 전인 11월 2일, tvN끝장토론에 출연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대학생들과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젊은이들에게 혼나러 나왔다"며 FTA를 포함한 여러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인사청문회의 한계, 한나라당이 친기업 정책을 펼친 것과 육아/출산 문제에 대한 실책은 순순히 인정했다.

2011년 12월에는 재창당 쇄신안을 발표하였다. "현역의원 전원의 불출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자기희생적이고 과감한 인재영입을 추진하겠다.", "현역의원과 당협위원장은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선수에 상관없이 의정활동과 조직활동으로 전원 재심사를 받도록 하겠다.", "재심사위원회는 전원 당외 인사로 구성해 공천심사위에 가기 전에 2단계로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발표한 것. 그러한 쇄신안이 당내 모든 계파로부터 거부당하자 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22] 물론 이것은 대세가 이미 기울어진 마당에 던진 수로, 실제로는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으로 일찌감치 당 지도력을 상실해 사퇴론이 불거진데다, 설상가상으로 재보궐선거때 터진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특검까지 실시되는 등 한나라당의 선거 부정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사퇴를 거부하면서 버티다가 뒤늦게야 발표한 것이었다.[23]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2011년 12월 9일 재임 5개월 만에 사퇴했고,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박근혜 비대위 체제에서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홍준표는 한나라당의 마지막 당대표가 되었다.

이 즈음에 뜬금없이 강용석의 SNS[24]에 언급당하였는데, "나약하고 무기력한 보수 세력과 내부분열 속에서 자기 희생만 강요하는 새누리당의 최근 행태를 보면서 답답하고 화가 났다"며 취중에 멘션을 날린 것이라 고백했다(...).[25] 이에 홍준표는 "무지랭이 부모덕에 내가 있다"며 답을 보냈다.

시간을 따져보면, 당대표가 된 후 불과 5개월여만에 쫓겨난 셈이었다. 친박계 유승민과 소장파 남경필, 원희룡 등 최고위원들이 주축이 되어서 저 사람은 도저히 안된다고 반기를 들었고[26], 외관상 박근혜가 이를 인정하는 형태였다. 홍준표는 당대표가 되기 전에 이명박의 실정에 대해 "할말을 하는 여당이 되겠다.", "거수기 역할만 하는 한나라당은 되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대표가 되자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홍준표에게 한미 FTA 통과를 요청했고, 홍준표는 강행 통과를 밀어붙이며 국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27]그의 자기 존재감 과시, 자존심 강조로 국회는 대번에 싸움터에 악담을 하는 장소로 변해버렸다. 이 시절 홍준표는 완전히 인망을 잃었으며[28], 비대위원으로 김종인이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김종인은 홍준표의 행태를 소영웅주의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29]

이 여파로 당대표에서 낙마한 뒤 4개월이 지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낙선했다. 처음에 불출마로 결론 짓고 문재인을 잡기 위해 부산 사상구 공천 설이 돌았으나, 결과적으로 원 지역구 출마로 결정되었다. 200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이후 4연속 동대문구 을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민병두 후보에게 밀려 패배한 것. 동대문구는 홍준표의 지역구였으나, 이번에는 동대문구민들도 중앙정치에 몰두하며 지역구 관리를 부실하게 한 홍준표에게 실망해서 외면했다.[30] 동대문구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홍준표는 자신의 낙선을 예감하고 이때 동대문구 을 지역주민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31] 이명박의 실정에 분노한 전반적인 서울의 민심 때문에 지지층이 결집하는 와중에도 여론조사에서 민병두에게 밀리는 양상을 보였고, 어찌 됐든 홍준표도 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이명박 정부 실정의 장본인 중 한 명이었다. 어쨌든 앵그리 버드를 패러디하는 동영상도 찍으며(...)[32] 나름대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때 홍준표를 지켜본 수많은 정치인들은 이것으로 홍준표의 중앙정치 생명은 완전히 끝났다고 평가했다.

훗날 밝히기로는 자신은 원래 19대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었고 공천 신청도 아예 하지 않았으나, 당에서 자신에게 "그래도 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 불출마는 안되지 않냐?"고 해서 마지못해 출마를 하였다고 한다.[33][34]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고, 홍준표는 "중앙 정치계에서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라고 선언하며 자신은 타 국회의원들처럼 구태의연한 말 바꾸기를 하지 않는다며 당당할 것임을 강조했으나, 불과 몇 달 뒤 대선과 함께 진행된 재보궐선거를 통해 경남도지사로 돌아왔다. 경남지사에 당선될 당시 홍준표는 TV 앞에서 조마조마해 하며 훌쩍이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사실 여의도를 떠나 지방으로 하방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5. 경상남도지사

파일:홍준표_5.png
힘있는 도지사, 당당한 경남시대!
2012년 경상남도지사 재보궐선거 당시 홍준표 캠프의 슬로건

제19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몇 달 동안 야인 생활을 하다가 김두관 경상남도지사가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여[35] 경상남도지사 자리가 공석이 되자,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36] 이후 새누리당 경선에서 승리하여 본선으로 진출했고, 야권의 권영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정치적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2014년 6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경선[37]을 거쳐서 본선에 나섰고, 새정치민주연합김경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19대 대선 자유한국당 후보가 되면서 사퇴하기 전까지 경상남도지사로 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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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지사로 있던 4년 4개월 동안 총 1조 4천억 원의 채무를 도의 자산 매각 없이 행정개혁과 재정개혁만으로 청산하였고[38], 경상남도는 전국 최초의 흑자 광역지자체가 되었다. 또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년 연속으로 가장 기업하기 좋은 지자체로 선정되었고, 사천[39]진주항공국가산업단지를, 밀양나노 산업단지를, 거제해양 플랜트 산업단지를 유치하여 이 3개의 국가산업단지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뿐만 아니라 2012년 15위, 2013년 14위 등 만년 최하위권에 머물던 도의 청렴도가 2014년에 3위로 수직 상승해 2015년 2위, 2016년에는 전국 1위를 차지하였다.# 무상급식 논란 당시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실시했던 ‘여민동락’ 카드를 통해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서민자녀 교육지원 4단계 사업은 큰 호평을 받았고, 서울로 상경한 대학생들을 위해 쾌적하고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기숙사인 남명학사 역시 지금도 많은 경남 출신의 학생들이 그 혜택을 받고 있다.(기사 1, 기사 2) 이 때문에 후술하듯 논란거리도 많았지만, 경상남도지사 시절 실적이 대선에서의 장점으로 거론될 만큼 행정가로서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도정을 운영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당시 여론조사 상 드러난 그의 직무 수행 평가는 크게 부진해서 광역자치단체장들 가운데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2015년 하반기부터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갤럽 2015년 상반기2015년 하반기2016년 상반기2016년 하반기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고 무상급식 지원금을 끊은 탓에 교육청과 시민단체가 홍준표 지사와 충돌하면서 "의료 혜택 안 주는 사람, 밥 안 주는 사람"이라는 논란이 발생하였으며, 여기에 성완종 리스트까지 터지면서 재판을 받는 바람에 도정에 전념할 수만은 없던 것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도정 과정에서 국회 국정 조사권까지 발동됐던 진주의료원 폐업,[40]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무상급식을 좌파 정치세력의 전유물인 양 규정하며 이념 논쟁을 촉발하였으며[41][42] 경상남도의회는 거꾸로 행정사무조사권까지 발동해 교육청을 압박했다는 비판, 교육감 소환 불법서명 도청 공무원 조직적 가담 ##, 꼼수 사퇴로 인해 잔여 임기인 2018년 6월 말까지 15개월 동안 공석을 초래하였는데, 이 때문에 보궐선거로 인한 도민의 혈세 수백억의 비용을 아꼈다는 평가와 그래도 꼼수 사퇴라는 두 가지 평가가 상반된다.

이 외에도 김두관 지사 시절부터 시민단체에게 지급되던 성 평등기금, 환경보존기금, 통일협력기금 등 각종 기금 지원을 끊어서 빚을 갚는 데 사용하였고, 이 때문에 시민단체에서는 홍준표가 경상남도지사에서 사임했을 때 도청에 소금을 뿌리며 악담하였다.[43]이 때문에 옹호자들도 많았지만 시민단체와 관련된 사람들 중에선 비판자들도 많았다.

게다가 채무 제로 정책에 유독 집착했다는 논란이 있었다.[44] 채무 제로를 유지하기 위해 도로 공사 등 신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또한 억제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경상남도의 저상버스 보조금을 거의 삭감해 버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쓸데없는 비용을 쓰지 않아서 경상남도의 재정자립도는 증가했지만, 경남도의 18개 시·군 재정 상황은 정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경남도가 부채를 줄여가는 동안 18곳 시·군의 재정자립도는 한때 낮아졌다고 평가했지만, 사실 실제 그래프를 보면 경남도와 각 시별 자립도가 특별히 낮아졌다거나 이전에 비해서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지방자치365의 우리 지자체 재정자립도 참고. 정확히 말하면 2013년 전후로 재정자립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달라져서 전국의 재정자립도가 약 5% 정도 하락했기에 경남의 재정자립도가 갑작스레 하락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뿐이지,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빚갚기 정책 때문에 자립도가 줄어든 게 아니다. 오히려 홍준표 전 경상남도지사의 실적을 비판하였던 김경수의 경상남도지사 당선 이후 기록을 살펴보면, 홍준표 시절보다 재정자립도가 하락했다.
빚을 갚는 위주의 긴축 정책을 한 탓에 2010년 이후 경남의 경제성장률은 전국 경제성장률보다 해마다 낮았고, 2015년과 2016년은 성장이 너무 없었다는 것에 대해 지적당했고 이에 2018년 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재출마한 김태호 전 경상남도지사가 채무 제로는 당면한 시급한 현안에 대해 투자를 감소했다는 뜻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어느 정도 시인하였다. 다만 주의할 것이 김태호로서도 이는 어느 정도 억울한 지적인 것이, 본인의 경상남도지사 재직 시절에는 경남의 경제 성장률이 높은 편이었다. 홍준표의 경상남도지사 재직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홍준표의 재직 시절의 논란에 대해 김태호가 홍준표와 같은 당이었기에 추궁당한 것이다.[45]

산청엑스포 취소도 논란거리 중 하나인데, 산청군의회 무상급식 조례 제정 이후 경상남도청 측의 '조례 무효' 주장 이후 경남도 산청엑스포 취소 발표 이후 산청군에 의한 국의회 무상급식 조례안 재의 부결로 이어졌기 때문. 실제로 조례안 가결 이틀 뒤인 29일 경남도는 '무분별한 국제행사는 개최하지 않겠다'며 '재정 건전화 정책의 일환으로 '2017 산청 세계전통의약엑스포'와 '2017 대장경 세계축전'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46]

경상남도지사로서 이룬 성과 덕분에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기도 하였으나[47],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 무상 급식 중단, 각종 막말 등 갖가지 논란들이 불거지면서 여론에서 대하는 시선은 싸늘해져 갔고, 성완종 리스트까지 터지면서 대권은 사실상 멀어졌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좌파 성향의 시민들을 중심으로 주민소환까지 이루어질 뻔하였으며, 실제로 ‘홍준표 경상남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서명을 받아 선관위에게 심의를 요청하기까지 했다.[48]

6. 19대 대선 자유한국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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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
대선 당시 홍준표 캠프의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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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숨지 맙시다! 부끄러워하지도 맙시다!
- 2017년 3월 31일, 19대 대선 자유한국당 후보로 선출되면서 #
경상남도지사 시절의 각종 논란 및 성완종 리스트 연루로 대권은 사실상 멀어진 것처럼 보였으나, 2017년 2월, 성완종 리스트 사건 2심에서 무죄를 받으면서[49] 그의 대선 출마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어 자유한국당의 지지도가 동반 폭락하고 바른정당과 분당 사태를 겪으면서 당 내 대권주자 라인업이 극도로 초라해지자, 난립하는 당 내 경선 군소 후보들[50]사이에서 홍준표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게 되었기 때문.

결국 2017년 3월 31일,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전당대회에서 총 득표율 54.2%를 기록하며 이인제, 김진태, 김관용 후보 간의 경선에서 승리,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51] 탄핵당한 당이지만 아무래도 대선 후보 전당대회 참가자들은 박근혜를 끝까지 뒤따르려는 김진태보다 박근혜와의 단절을 선언해[52] 민심을 얻으려는 홍준표을 선출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 판단했던 듯하다.

단일화에 대해서는 바른정당에게 다시 힘을 합치자고 권유했으며, 국민의당과의 단일화는 힘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준표가 후보가 되고 난 후 바른정당과의 범 보수 단일화는 되레 멀어졌다. 홍준표가 후보가 된 후 "친박은 없다"며 오히려 구 친박 인사들을 적극 등용했기 때문. 또한, 바른정당을 향해 아무 조건 없이 백기투항하라는 말을 하는가 하면, 대구경북 지역 사람들은 살인자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여 유승민바른정당을 오히려 더 자극했다. 유승민도 홍준표에 대해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며 무자격 후보라고 주장했고, 비박이지만 친박의 지원을 받아 후보가 된 홍준표와 단일화할 수 없다며 서로가 대립했다. 그래서 19대 대선에서 보수 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을 정도였다.

홍준표가 주장하는 노태우 모델이 실제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바른정당 후보인 유승민과 단일화했어야 하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유승민김무성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강성 친박계의 반발을 사 시너지 효과는 커녕 자유한국당 지지 기반이 날아가버린다는 딜레마에 휩싸였다. 실제로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김진태, 이우현, 이인제, 최경환바른정당과의 연대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친박계 의원들과 당원들이 많았다. 물론 바른정당 입장에서도 당시 새누리당 내에 만연한 친박 패권주의를 대차게 까면서 탈당했는데, 홍준표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면 바른정당을 창당했던 명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꼴이었다.

또한, 국민의당과의 연대에 대해서도 2017년 4월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자신에게 단일화 압박이 가해지자 국민의당은 민주당 2중대에 불과하다면서 단일화의 뜻이 전혀 없음을 공고히 하였다. 4월 6일에는 홍준표 "안철수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安 각본에 춤추는 인형"이라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결론적으로 홍준표는 외연 확대를 위해서는 친박을 버려야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기 집토끼를 잃게 되는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성 친박 정치인 중 하나인 조원진 의원이 탈당하여 친박단체가 창당한 새누리당에 합류,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집토끼인 강성 친박 지지세력을 지키기도 어렵게 되었다.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그 동안 친박단체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진태, 조원진, 박대출 의원 같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으며, 강성 친박 세력도 청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을 제지하면 집토끼인 강성 친박 지지세력이 이탈할 거라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53]

대선 공약으로 10차 개헌에 대해서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정부 형태로 제시했다. 행정수도를 세종특별자치시로 옮기는 내용도 내놓았다. #[54]

나라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겠다[55]는 표현을 두고 토론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설전 중 "내 세탁기는 삼성 세탁기" 드립을 치면서 빈축을 샀다.[56] 여기에 살균세탁 하셨나요 드립과 엮여서 이런 것도 나왔다. 거기에 하필, 삼성 세탁기가 미국 뉴저지 주에서 폭발사고가 난 적이 있어서 불량 세탁기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4월 15일 유세 도중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진실 여부는 우리가 이기면 바꿀 수 있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그의 부인도 친박집회에 참여한 점을 보아 친박 표를 얻어가려는 것으로 보였다. 헌법재판소가 인민재판을 했다느니 좌파 1중대(문재인)보다 2중대(안철수)가 더 무섭다느니 하는 발언을 보면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발언하는 것과 관련하여 선거자금 보전과 관련되어 있다는 해석이 제기되었다. 즉, 현행 선거법상 15% 이상을 득표해야 선거자금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고[57], 박근혜 탄핵에 반대했던 보수층은 15~20% 정도 되는데,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외연 확장을 못하는 발언을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발언해야지만 이들의 표를 획득하여 15% 득표율을 달성해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것. 다만 친박 강성 세력도 자유한국당 세력, 새누리당 조원진 세력, 남재준 세력으로 삼분된 상황이라 과연 15%를 온전히 득표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았다. 한때는 홍준표가 10%도 거두지 못할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는데, 만약에 진짜로 그랬으면 자유한국당도 경제적으로 파산하는 거지만, 홍준표의 정치 생명은 완전히 끝나버렸을 것이다.

다만 이후 조원진, 남재준과의 단일화를 추진했고, TV 토론 이후 거하게 삽질한 안철수의 지지율이 홍준표 쪽으로 옮겨간 데다가 TK 지역 지지율이 오름에 따라 15~20% 정도는 무난히 득표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 힘을 얻었다. 그에 따라 안철수와 2위 경쟁을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5월 2일자 마지막 공개 여론조사에서는 결국 안철수 후보를 제치고 실버 크로스를 달성했다. #기사 5월 7일, 대선을 이틀 앞두고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면서 美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서는 홍준표를 위시한 보수세력이 대결집하여 막판 대역전을 할 수도 있겠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기사.

4월 21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자신의 공약과 미래 비전을 밝혔다. #

5월 1일 게시한 홍보 애니메이션 '달려라 홍반장'이 쓸고퀄의 끝판왕을 보여주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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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9일 20시 정각에 지상파 3사에서 출구조사가 밝혀졌는데, 3~7%대 군소 후보에서 1달 사이에 23.3%까지 꽤 많은 득표율을 올리는 성과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의 압도적인 지지차를 좁히지 못하고 여론조사대로 출구조사 2위를 차지하였다.[58]

개표를 하면서 안철수를 제치고 부동의 2위에 랭크되었지만, 문재인과의 격차가 자꾸 벌어져, 개표 중반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거기서 "자유한국당을 되살려냈으니 그것만으로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최종 당선자는 문재인이 되면서 홍준표는 낙선하게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홍준표가 기록한 득표 수와 득표율은 역대 보수정당 계열 후보들인 노태우, 김영삼,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중에서 가장 낮은 785만 2849표이며 득표율 또한 가장 낮은 24.0%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역대 대선에서 최고 표차인 557만 951표로 대패했다.[59]

그래도 매우 힘든 여건 속에서도 19대 대선에서 선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여러가지 치명적인 개인 논란들이 존재하였기에 문재인, 안철수, 본인의 3자 대결 구도에서 가장 골치가 아픈 3위가 예상됐음에도 상승세를 잘 살려서 2위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기 때문. 당시의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그 어떠한 후보를 출전시켰다 해도 압도적인 표차로 패배하게 돼 있는 선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으며, 그나마 홍준표가 압도적인 표차를 어느 정도 줄이는 데 성공하여 선거 보조금이라도 전액 보전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단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군이 김진태, 이인제, 김관용인 것부터 확인해보자[60].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수표 결집을 위해 제대로 된 대안 하나 없이 "좌파네 우파네, 종북좌파"라는 이분법적인 시각, 냉전 시대 사고방식, 구시대적 이념 논리, 진영논리를 끊임없이 사용하여 색깔론으로 대선 구도를 끌고 갔고, 홍준표 본인의 이미지도 그렇게 굳어지면서 비호감도 상당히 많이 생겼고 이를 극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후 홍준표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과거의 발언들이 문정부의 실책에 실망한 2030 세대의 젊은층과 개혁보수&강경보수 성향 사람들에게 재평가를 받아 국민적 인기를 얻어 색깔론자라는 오명을 벗고 청년층을 팬덤으로 거느리게 되었다.

6.1.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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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9대 대선 이후

7.1. 미국 체류

홍준표는 자유한국당에서도 자신을 따르는 계파 의원이 정치 커리어 내내 단 1명도 없는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이고, 보수정당 역사상 대선에서 최악의 참패를 당한 후보이기 때문에[61] 여전히 의원 수와 조직세가 건재한 친박계가 다수인 자유한국당 내 당권 쟁탈 승리를 위해서 매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본인은 4월에 당권에 도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62].

대선 다음 날인 2017년 5월 10일, 홍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이 나를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릴 것"이며 또한 "남은 세월이 창창하다"고 사실상 와신상담을 선언했다. 기사. 그 첫 행보로 보수 대통합의 적자로서 당 내 개혁에 뜻을 비추었다. 먼저 문재인 정부의 내각이 갖추어질 1~2달 동안 미국에서 가족들과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전당대회에서 자유한국당 대표로 출마할 가능성이 유력하다.[63]

항간에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출마설이 제기되었지만, 고사한 듯 하다. 안철수의 사퇴로 공석이 된 노원구 병 선거구 국회의원 출마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 역시 고사한 듯 하다. 당시 재판 중이었던 국민의당 최명길 의원이 당선 무효로 판결되면 송파구 을 재보궐선거에 나갈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64], 더불어민주당이 우세였던 서울특별시에서는 어딜 나가든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노원구 병 지역구는 전라도 출신자가 많아서 현재 여권인 더불어민주당에 크게 유리한 것은 물론,[65][66] 다른 지역인 송파구 을은 새누리당계 정당이 몇 번 승리를 거둔 지역[67]이지만, 여기서도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68] 당장 2016 총선을 보아도 보수정당 불패일 줄 알았던 강남권마저 더불어민주당에 꽤 빼앗겼으며, 대선에서도 강남권은 더불어민주당에게 초토화됐다.

미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날 인터뷰에서는, 조국 민정수석을 향해 "조국인지 파국인지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일단 사퇴하는 것이 맞다."며 언급했다.[69] 이어서 "더불어민주당 마음대로 하게 놔 두지 않겠다.", "이미 10년 야당을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강력한 제1야당을 구축해서 이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국민을 위해서 철저히 견제하겠다.", "내가 싸움에는 천재다."라며 문재인 정부의 출범에 형식적으로나마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다른 야당들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과의 지속적인 충돌을 예고하며 사실상 정치적 선전포고를 했다.

또한 자유한국당친박 세력과 바른정당유승민 등을 겨냥하며 "바른정당 분들이 좀 더 돌아왔으면 좋겠다. '패션좌파'만 빼고.", "친박은 (탈당파들의 복당에 대해) 좀 빠져 줬으면 한다"라며 본격적으로 당 내 개혁에 뜻을 내비추었다.[70]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것이 친박자유한국당의 텃밭인 대경권박근혜에 대해 매우 동정적인 동네이며, 바른정당 의원들을 한 마디로 배신자 취급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준표가 대선 막판에 바른정당 탈당파를 복당시키는 조치를 취하자 친박 측이 거세게 반발했고, 홍준표의 무서운 지지율 상승세가 정체되는 동시에 유승민 후보와 바른정당의 지지율만 올려 놓는 효과만 낳았다. 지역 구도 측면에서 보자면 홍준표의 복당 허용 결정은 대경의 민심을 동요하게 만들어 이 지역의 전통적인 지지층이 결집하는데 방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금 막 대선에서 떨어졌는데 또 당권에 도전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동시에 반발하면서 홍준표와 친박 사이에 갈등을 낳았다.[71] 이에 다른 후보의 2배는 유세해서 선거 보조금은 유지해 줬더니, 트롤러가 남 탓하는 상황이라는 의견이 존재한다.

그 밖에 이미 홍준표가 친박바른정당 탈당자들을 용서하면서 직권으로 친박의 징계를 해제했음을 지적하며 옳고 그름을 떠나 일관되지 못한 행위일 뿐이며, 친박에서 이미 징계가 죄다 해제된 마당에 이제 와서 홍준표가 빠지라는 발언을 한 들 승복할 리 없기에 홍준표가 처음부터 잘못된 행보를 했음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즉, 친박에게 빠지라고 말할 것이었다면 친박에 대한 당 징계는 왜 풀어 줬냐는 의견.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서청원, 최경환, 이정현 등의 징계는 풀어 줄테니 탈당파들을 그만 용서하고 받아 주라는 모종의 거래로 받아들일 수 있다.

홍준표가 친박바른정당을 동시에 끌어안은 것은 1순위로 선거를 위한 보수세력 대 결집이 있으며, 2순위로 선거 이후에도 내부 파벌 항쟁을 그만두고 단결하여 여당에 대항하자는 뜻이기도 했다.[72]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경원 의원까지 자유한국당 대표직에 뜻을 내비추었다.[73]

2017년 5월 12일, 예정대로 LA로 건너갔다. 같은 날, 정우택 원내대표는 "당의 대승적 단합과 새 출발, 제1야당으로서의 책무에 충실하기 위한 것"이라 밝히면서 친박 징계 해제 및 탈당파들의 자유한국당 복당을 최종적으로 승인, 홍준표 본인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홍준표와 자유한국당 친박 세력과의 갈등은 일단 봉합되었고, 당론은 통일되는 듯 보였다. #, #

다만 홍준표가 탈당파와 친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했지만 당권까지 장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자유한국당은 누가 뭐래도 최근까지 박근혜를 결사옹위하고 있었던 친박정당에 친박이 조직력 면에서 완벽한 우세를 점하고 있는 당이기 때문이다.[74] 탈당파는 용서했을지라도 당권만큼은 친박계가 놓을 의사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 조직력 면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친박계와의 혈투가 불가피하다.[75] 또 본인도 대선 선거기간 동안 펼친 각종 구설수들과 성완종 리스트로 대법원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으로 인해 도덕성 면에서도 약점을 갖고 있으며 이미 당 대표를 한 번 할때 당을 말아먹은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 친박계에게 공격당할 소지가 많은 인물이다. 실제로 친박계의 조직력이 발동된 8.9 전당대회와 그동안의 원내대표 경선을 생각한다면 홍준표가 과연 당권을 차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며 만약에 이 힘싸움에서 진다면 홍준표는 앞으로 당대표는 커녕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조차 받기도 불투명한 상황이라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장날 수 있다.

미국으로 떠나서도 SNS 정치는 계속되었다. 5월 14일 "대한민국 보수의 나아갈 길, 신 보수주의", "귀국하면 신 보수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당을 새롭게 할 것"이라 하면서 동시에 당 대표 전당대회 출마를 천명했다. 여기서 신 보수주의는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개인과 기업의 창의성을 존중해 경제성장을 이루고, 반체제 집단의 발호를 제압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어서 바른정당에 대해 "'부모 잘 만나 금수저 물고 태어나 돈으로 세습으로 지역구 물려받고 정치권에 들어와 서민 코스프레 하는 '패션좌파', 밤엔 강남 룸살롱 전전하고 아침 회의에서는 술이 덜 깨 횡설수설, 낮에는 서민인 척 하는 모습, 역겨웠다"라고 맹비난했다.[76] 이에 바른정당의 이준석 등은 "스스로를 되돌아봐야될 것 같다", "홍 전 지사의 발언은 정서장애적 언행"이라 비판했는데, 전여옥 전 의원은 이에 대해 "홍준표도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본인도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와야 할 것 같다.[77]"며 홍준표를 비판하고 바른정당에 대해서도 "도둑이 제 발 저린다", "홍 전 지사의 말이 맞다, 금수저 세습 정치인 역겹다."며 양쪽을 모두 싸잡아 비판하며 현재 보여준 보수의 모습으로는 민심이 떠나갈 것이고 보수의 궤멸이 우려된다는 글을 남겼다.[78]

그러나 16일, 홍준표는 자유한국당의 친박세력을 두고 '구 보수주의의 잔당들'이라 칭하면서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있었고, 박근혜 감옥 간 뒤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자들"[79]이라며, # 본격적인 당권 투쟁에 열을 올렸다.[80] 이에 친박계 홍문종은 "제정신이냐?", "낮술 드셨나/"라고 거세게 비판했으며, 마찬가지로 친박계인 정우택 역시 "역사적으로 대선에 패배한 사람은 정계 은퇴를 했다."며 홍준표 책임론을 들고서 비판했다. 이에 비박계의 중심인물인 정진석"보수개혁에 도움 안 되는 것들은 육모방망이뒷통수를 빠개야 한다"며 친박계를 겨냥하는 듯한 강도높은 비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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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주차 갤럽 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대폭 상승하는 반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한자릿 수로 떨어지는 굴욕을 맛보았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의 6분의 1밖에 안되는 처참한 지지율로, 친박세력들이 여전히 당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 당권을 둔 진흙탕 싸움이 유권자들의 실망으로 이어진 결과로 보여진다.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이해찬 의원이 언급하였던 보수 궤멸은 시간 문제. 서둘러 전당대회를 통하여 새로운 대표를 뽑고, 집권여당에 대항하기 위한 신 체제를 갖추는 것이 시급한 상태.

보수의 크나큰 난제는 결집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홍준표에 의한 보수의 결집이 결코 좋지만은 않다는 것. 비록 친박보다는 그나마 낫겠지만 홍준표의 득세는 사실상 보수에게 있어 차악일 뿐이다.[81] 게다가 홍준표는 대선 도중 탄핵에 불복하는 발언들과 일부 공약에서 무책임한 반응들을 해대서[82] 크게 흠 잡힐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은 상황이다.

그리고 홍준표가 당권을 장악하더라도 당을 살릴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의문이다. 먼저 홍준표 자체가 대선 과정에서의 여러 막말과 논란으로 인해 젊은 층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인물이다.[83] 또한 당 개혁이 중도보수 유권자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오기 위해서는 친박계에 대한 인적 청산은 필수적인데[84] 홍준표는 오히려 대선과정에서 친박계와 유착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친박계 핵심 3인방인 서청원, 윤상현, 최경환에 내려진 징계인 당원권 정지 3년 징계를 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런 행보를 보인 홍준표가 대선이 끝난 후에 친박계를 향해 각을 세우는 글을 페이스북에 잇달아 게시하자 당연히 유권자와 친박계에서는 홍준표가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85] 또한, 의원들 중 친박계가 대다수인 상황에서 친박계를 인적청산 하는 순간 당이 오히려 두동강 날 수 있으며, 당의 지지기반인 TK와 서부경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86] 그리고 홍준표 자체도 박근혜 지지자들의 표심을 노리고 대선을 뛴 전력[87]이 있는 인물이라 자유한국당을 혁신시켜 민심을 자유한국당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홍준표 입장에서는 당뿐만 아니라 본인의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세탁기에 직접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으며, 당의 나쁜 이미지를 상쇄시킬 수 있는 우파의 신선한 인물을 발굴해서 밀어줘야 할 때이다.[88] 하지만 자유한국당에 젊은 층의 지지가 전무한 상황에서 어떤 정책을 내민다 한들 그것을 밥먹듯이 어겼던 전력이 가득한 자유한국당을[89] 국민들이 신뢰해줄 가능성은 낮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가득했던 인재풀의 이점도 바른정당과 분당되면서 더불어민주당에게 넘어간 실정이라 홍준표가 당권을 장악하든 친박이 당권을 장악하든 자유한국당이 암울한 것은 변함이 없는 상황이다.

홍준표가 이미 대선 운동을 하면서 친박과 비박의 화합과 통합을 주장하며 친박계에 대해 징계 해제를 조치하는 등 이들을 포옹하는 조치를 취한 뒤인 것도 문제다. 친박들 입장에서 이제 다 끝났고 화합하자고 주장하던 사람이 또다시 자신들을 축출해야 한다고 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비록 친박이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친박의 반발들을 자초한 것은 홍준표이다. 대선에서 미봉책으로 자유한국당 보수의 화합과 통합을 주장했다가 대선 이후 입장이 180도 돌변한 것은 일관성이 없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애초부터 아무리 대선이 급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해도 친박에게 면죄부를 준건 홍준표의 치명적인 실수였던 것. 당장 친박계에 대한 징계조치는 홍준표의 대권주자의 직권으로 인해 전부 해제된 상태 홍준표, 바른정당 탈당파 복당·친박 징계해제 '단행'

썰전에서 전원책은 친박에게 일침을 가한 홍준표 본인도 과연 보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홍준표 본인도 어느정도 자숙의 기간을 거쳐야만 한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홍준표 본인은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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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경선없이 홍준표를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는 추대론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탈당파와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친홍준표' 세력이 형성되면서[90] 홍준표 추대론을 내세우고 있고 정우택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박' 세력은 불가론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친박 쪽에서는 사실 그나마 정우택을 제외하면 마땅히 당권에 도전할 후보가 없는 것이 현실. 게다가 그 정우택도 결국 7월 전당대회에 불출마 선언을 하는 동시에 원내대표의 직함을 앞세워 홍문종 같은 친박의 당권 개입을 원천 배제시키며 홍준표에게 당권 바톤을 넘겼다. 정우택에게 원내대표를 임기까지 유지한 채, 홍준표와 투 톱 체제로 간다는 조건으로 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홍준표의 당권 장악이 거의 유력한 상황. 그러나 정우택마저 홍준표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 속에서도 홍문종같은 친박 세력들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할 생각보다는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더 우려하는 동시에 홍준표 단일체제를 막기 위해 '집단 지도체제' 론을 내세우거나, 당 대표 후보로 참여정부 출신의 김병준을 거론하는 등 마지막까지 반항을 하고 있다. 이에 친홍 세력을 형성한 초선 의원들 중 20여명이 성명을 발표하는 등 친박의 정치 공세에 격렬히 대치하고 있는 상황. #

20일, 홍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윤석열 중앙지검장 임명 및 최순실 재수사 지시를 두고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대통령은 검찰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FBI(연방수사국) 국장을 부당 해임해 탄핵의 위기에 처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확대해석"이라고 받아쳤다.

전당 대회를 위하여 6월 4일에 귀국 예정에 있다고 전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4대강 재조사에 발맞추어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정부 당시 환경노동위원장이었던 홍준표는 TV 토론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녹조는 질소와 인 성분이 있는 생활하수, 축산폐수 등 오염물질이 하천에 스며들어 고온다습한 물과 만날때 발생한다. 4대강의 지류, 지천 등 비점오염원에 대한 수질개선 사업을 하지 않으면 녹조가 없어지지 않는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낙동강 변에서 자랐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5년을 있었기 때문에 이를 잘 알고 있다”며 “정치적 목적으로 접근 하다보니 시작부터 헛발질”이라며 가열찬 비판을 했다. 그리고 홍준표는 "4대강 사업은 치산치수의 전형으로 훌륭한 업적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에는 홍수와 한해(旱害, 가뭄 피해)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안희정 충남지사는 처음부터 4대강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2012년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지역 가뭄 해결을 위해 금강을 활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 #

7.2. 귀국 이후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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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 6월 4일에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대선에서 큰 격차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당시에 보여준 우파 결집력 때문인지, 예상외로 많은 우파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홍준표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홍준표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패장이 귀국하는데 많은 인파에 깜짝 놀랐다"며 소감을 전했다. 홍은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겠다"며 간접적으로 차기 당권 행보를 향한 포부를 밝혔다. 이를 지켜본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홍준표의 귀국일성은 간결했다“, ”반기문의 장황했던 귀국일성과 대조적이다. 내 눈에는 홍이 반보다 훨씬 고단수다. 흥행몰이의 방법을 안다“며 홍의 귀국을 반겼다. 참고로 정진석은 김무성 등과 함께 반기문 대망론을 주장하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의 평가대로 1달 만에 패배의 후유증을 손쉽게 잠재우고, 갈팡질팡하던 당의 분위기를 자기 쪽으로 가져온 것이다. 한편, 홍준표의 대항마로 친박 쪽의 당 대표 후보로 원유철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결국 비박에 홍준표, 친박에는 원유철이라는 양강 구도로 흐르게 될 전망이다.

귀국 이틀째가 되는 6월 6일, 현충일을 맞이한 홍은 "체제를 파괴하려 한 사람들이 민주열사로 추모되고, 나라를 위한 희생이 희화화되는 나라는 정상국가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6.10 항쟁 30주년을 맞이해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재판 때나 향후 모습을 그려 보니 개헌 때 헌법재판소는 폐지하고 대법원에 기능 통일하는 것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헌법재판소의 폐지 및 대법원으로의 흡수 통합을 주장했다. 홍은 지난 4월에, 개헌을 통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 정부형태를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세종시를 행정 수도로 헌법에 명시하고 국회 의원의 정수를 절반으로 축소, 상,하원 양원제로 개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6월 14일, 홍은 “기호지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원튼 원하지 않튼 간에 호랑이 등에서 내릴수 없는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곤혹스럽지만 받아 들일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라며 당 대표 출마를 공식화했다.# 예상대로 친박 측에서는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다', '권력중독자다'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8. 초대 자유한국당 대표

8.1. 2017년

2017년 7월 3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원유철 의원, 신상진 의원과 가진 당 대표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 선출 이후 6년만에 자유한국당의 임기 2년의 초대 당대표[91]로 선출되었다.[92]



그 동안 예측되던 행보와는 다르게 여권에 대한 관계 개선 및 갈등 관리 국면에 들어가려는 행보를 취하고 있다. 아무래도 대외투쟁보다 내부 혁신을 더 우위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정우택을 비롯한 친박계가 극도로 반발하고 있다. 앞으로 홍준표는 당 대표 권한이 대폭 강화된 단일성 지도체제 하에 혁신위 및 당직 인선 그리고 지방선거 공천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친박계를 밀어내고 자신의 계파를 늘리려고 할 것인데 이미 친박계를 대변하는 원내대표단과의 잡음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고 이는 혁신위 구성 및 지방선거 공천에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여 이 과정에서 친홍친박 간의 대립이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단, 이런 갈등 과정에서 홍준표가 친박 세력의 요구를 받아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본인부터 정치계에서 친박과의 갈등으로 여러 차례 손해[93]를 입었던 사람이며, 무엇보다 한국당을 이익 집단에서 이념적으로 무장된 정당으로 탈바꿈하자는 것은 곧 친박에 대한 인적 정리를 포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유한국당을 이념적으로 무장시키겠다며 혁신위원장으로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영입했다. 하지만 류석춘 교수의 영입을 두고 당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류석춘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이며 이승만과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태극기집회 옹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부당 발언, 박근혜 출당 불가 발언으로 인해 '당을 극우정당으로 만든다.', '대다수 국민들의 인식과 동떨어졌다.', '혁신위원장으로서 언행을 신중히 해야한다.'라는 말이 당내에서 나올 정도이다. 또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그리고 바른정당까지 가세하여 '혁신하기는 커녕 도로 친박당으로 만든다.'라는 평가를 들었다. 이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모습에 여론조사 전문가나 정치 평론가들도 '전통 보수층 결집에만 신경쓰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대패한다.'라는 말을 할 정도이다. 그 외의 홍준표의 정치행보는 자유한국당/2017년 문서를 참고하면 된다.[94]

2017년 9월 30일, 일단은 위 문단과 같은 우려와는 다르게 류석춘 연세대 교수를 위시한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 최경환 두 명의 친박 좌장에 대한 탈당 권유를 한 상태이며, 탈당 권유가 꼼수라는 타 정당과 친박계의 비난에 대해 홍준표 본인이 탈당 권유는 꼼수가 아닌 큰 수라는 말을 남기면서 실질적으로 박근혜 출당을 공식화했다. 혁신위와 당내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여의도연구원의 조사 및 연구 결과 박근혜 출당이 한국당을 살리는, 즉 지지를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혁신위에서 출당이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일단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나면 출당 조치를 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는 했으나, 검찰에서 구속 연장을 법원에 신청했기 때문에 1심 판결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종합하면 1심 선고가 나기 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당 당 대표 선출 후에는 당무 외에도 봉사활동이나 연세대학교에 예고 없이 방문하여 사회학과[95]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당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새로운 우파 정당으로 다시 거듭나겠다는 각오와 지지 호소를 하기도 했다. 영등포의 소방서에 방문하여 소방 장비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소방관 분들에게 애로사항을 접수하기도 했으며, 8월까지는 전국을 다니면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논란거리가 생기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9월 20일에는 각계 여성 인사들과 토론을 했는데 '젠더 폭력' 이라는 단어를 모른다고 페미들과 타 정당에게 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젠더 폭력이라는 단어를 모르는게 왜 무식한 것이냐는 옹호를 받기도 했다. 젠더폭력 모르면 무식? 홍준표 대표에 옹호 발언 쏟아진 이유[96]

최근에는 북한의 6차 핵실험로부터 이어지는 대북 제재 국면에서 미국과의 엇박자와 코리아 패싱, 시의적절하지 않은 대북 인도적 지원 결정과 전작권 환수 논란, 아프리카의 소국 감비아와 북핵을 논의하는 정부의 외교, 안보 분야 무능과 헛발질을 화두로 삼아 정부 여당에 대한 공세를 높이는데 당 대표로서 앞장서고 있다. 한미연합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미 육군 대장과 1:1 회동을 하기도 했다. #

한편, 2018년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6곳을 지키지 못할 경우 대표에서 사퇴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현직 부산광역시장 서병수와의 갈등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홍준표 대표 등판론이 있는 상태이다.[97] 일단 홍준표 대표 본인은 꼭 원내에 국회의원 자리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원외 상태로도 당대표 활동에는 문제없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국민의당 최명길이 2심까지 당선무효형을 받은 송파구 을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후보로 등판할 것이 거론되지만 본인은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당대표로 선출되고 며칠 후 조원진의 탈당으로 공석이 된 달서구 병의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에 관심있다는 뜻을 보였다. 조원진은 대한애국당 창당으로 이미 강을 건너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당협위원장에 본인이 직접 앉아 대구광역시에 기반을 닦을 수도 있고, 정치 신인을 앉혀 친홍 세력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10월 19일 美 CNN과 인터뷰하면서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했다. #

2017년 10월 20일 부로 자유한국당 윤리위원회에서 전 대통령인 박근혜에 대한 탈당 권유를 의결한 것을 신호탄으로 박근혜 및 친박에 대한 청산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이는 대선 후보이던 당시 '박근혜가 아프다고 하니 병원에 보내자' 등의 발언을 하고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등 3명에 대한 징계를 해제하던 본인의 행보를 반 년 만에 뒤집는 것이다. 다만 대선 당시에도 보수우파 내에서는 결국은 친박과 함께 갈 수 없는 홍준표의 친박을 끌어안는 듯한 행보는 15% 득표율을 넘겨 일단 당을 살리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이 우세했기 때문에 예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당대표 공약에 '전원 외부인사 영입을 통해 혁신위원회와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것은 결국 당 내에 남아있는 친박들을 척결하기 위한 수였던 것이다. 류석춘, "박근혜·서청원·최경환 탈당권유 변함없다"

윤리위원회에서 의결한 탈당 권유에 대해 10일 동안 본인이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당에서 제명된다. 사실상 2017년 10월 30일부터 박근혜는 자유한국당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청원과 최경환에 대해서도 제명 논의를 시작했다.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해서 서청원, 최경환, 김태흠, 김진태, 이장우 등 친박 의원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 ##, ###, ####

이와 같은 친박의 대대적인 반발에 대해 홍준표는 친박 핵심들이 보수 궤멸에 책임지지 않으면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며 친박 청산에 박차를 가할 뜻을 천명했다. 홍준표의 페이스북은 친박들과의 설전과 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 친박 청산의 당위성에 대한 역설로 가득찬 상태. 어쨌든 친박들을 몰아내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 이상 홍준표 본인으로서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파동, 성완종 리스트 관련 논란에 이어 또 하나의 큰 정치적 고비를 맞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단, 박근혜와 친박 청산에 제대로 성공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면 다시 국민에게 신뢰를 읍소할 수 있는 우파정당으로 재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7년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미국에 방문해서 전술핵 재배치 주장 등을 포함한 대미 외교에 나섰다. 홍준표가 미국에 가자마자 서청원의 성완종 리스트 녹취록 관련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와 친박 핵심 출당에 반발한 서청원이 성완종 사건 수사 당시 홍준표가 자신에게 협조 요청을 했다며 녹취록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했고, 홍준표는 자신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는 인물은 서청원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거짓 주장을 하지 않도록 자제시키라는 전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중 국민의당에 서청원이 주장한 녹취록이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논란이 확대됐고 이에 대해 장제원녹취록 있으면 까보라며 이용주 의원을 저격하면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정의당의 노회찬이 서청원이 홍준표 녹취록을 국민의당에 줬다는 얘기 들었다며 거드는 모양새. 정치공학적으로 타 정당의 의원들이 성완종 관련 녹취록에 대한 친박 좌장을 돕는 것은 결국 한국당에서 박근혜, 서청원, 최경환 출당에 실패하고 홍준표 체제를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 친박 프레임으로 한국당을 완전히 망하게 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한 결과라는 주장이 있다.

한국에서는 성완종 녹취록 관련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한편 홍준표 본인은 일체의 대응 없이 미국에서 외교 활동을 하고 있다. 홍준표가 대통령도 아니고 일개 야당 대표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계는 명확하다. 10월 23일 CIA의 코리아임무센터에 방문하여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전달했다. 외교활동에 앞서 한국전 참전 미군들을 추모하는 위령공원에서 조화를 했다. # 10월 24일, 폴 라이언[98] 美 하원의장과도 회담했다. 폴 라이언, 홍준표 만나 "한국당, 북핵 상황 답답해하는거 이해해" 코리 가드너[99] 상원 의원 및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과도 회담하여 중국이 북핵에 대한 제거 역할을 못한다면 전술핵 재배치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가드너로부터 얻었다. #

그러나 이것은 미국 측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최선이 아닌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석해야 타당하다. 실제로 일부 공화당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홍준표의 의견에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거기에 전술핵 재배치를 반대하는 전문가들과 설전을 벌이다 전술핵 재배치가 안 되면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100]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자체 핵무장에 관한 주장은 전술핵 재배치를 관철시키기 위한 공수표 남발로 보인다. 자체 핵무기 개발을 한다면 일단 최대 우방국인 미국부터 두고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무리수다.[101]

2017년 11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한국당에서 제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탄핵의 부당성과 현재 재판부의 불공정성을 언급하는 등 사실상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이 있다.[102]

바른 정당 탈당 의원 9명이 합류한 이후 눈에 띄게 김무성 의원을 견제하고 있다.

2017년 12월 14일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나 북핵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홍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일본 아베 정부가 북핵 문제에 대해 한국당과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아베 총리와 북한 문제에 대해 충분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자평했다. 또한 " "문재인 정부가 시 주석에게 알현하러 가는 날 우리는 한·미·일 자유주의 핵동맹을 맺어 북·중·러의 사회주의 핵동맹에 대항하자는 취지로 일본에 왔다" 라고 한미일 군사동맹에 대해 아베와 같은 의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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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2일, 홍준표의 정치 커리어 최대 위기였던 성완종 리스트 대법 선고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이로써 홍준표 체제는 더욱 굳건해졌다.

8.2. 2018년

2018년 1월 22일, 신년기자회견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벤치마킹했는지 형식상 기자들의 자유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지만 SBSKNN과 관련된 언론관 논란 등 불리한 질문들에 대해선 답변을 거부했고 이런 자신을 변호하려고 자신은 문재인 대통령처럼 앞에 프롬프터도 두지 않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103] 하지만 이 신년기자회견을 언론이 별로 다루지 않아서 묻혔다. 심지어 동아일보중앙일보는 아예 신문에 기사조차도 싣지도 않았다(...).

2018 2월 1일, 가짜뉴스와 전쟁을 선포했다. 홍준표 대표는 MBN의 기사를 문제삼았는데 요지는 류여해 전 최고위원이 자신이 홍준표 대표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한 것을 사실인양 보도해서 자신을 모욕했다는 것. # 앞으로 MBN 기자들에 대한 당사출입 금지령을 내리고 앞으로 어떠한 취재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조치에 반발해서 MBN의 정당출입부 기자들과 친홍 성향의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이 격하게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2018년 3월, 정부의 개헌안에 비판의 소리를 내었다. 2년전 개헌 안 한다고 할 때와 다른 모습으로 지지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Anything but Moon(문재인만 아니면 뭐든지)로 일관하고 있는데, 개헌 국회투표에 자유한국당의 당원들이 참여할 경우 제명조치도 취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인이 할 소리가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2018년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한 일본 방송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 '좌파만이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국내외에서 정상회담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으로 반응한 단체는 자유한국당뿐이었고 그마저도 당내에서도 반발 기류가 있다(...) 김태호 경남도지사 후보,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후보 등은 이런 홍준표의 남북정상회담 부정적 평가에 너무 나갔다고 반기를 들고 있다. #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는 당의 지방선거 공식 슬로건인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쓰지 않기로 선언하고, 홍준표의 후임 도지사 후보인 김태호는 무상급식 시행 등 홍준표의 입장과 반대되는 정책을 내놓고 있어 당내에서도 입장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후보들이 홍준표를 피하면서 유세를 할 정도로 당내 입지가 매우 나쁘다. 원래 당 대표의 유세지원이 오면 후보의 입지와 당의 홍보효과로 환영받는 게 정석인데 후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자유한국당 내의 홍준표 입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세를 다녀도 시민들이 듣기 싫다고 경적을 울리는 등 반응이 매우 나쁘다. 동영상 1, 동영상 2

끝내 홍준표는 2018년 6월 4일, 선거 유세 지원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 하지만 5일 만에 자기는 굴복해본 적이 없다며 지역 유세를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상당수 후보들이 홍준표의 유세 지원을 뿌리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9. 당대표 사퇴 이후

2018년 6월 13일, 홍준표 대표 체제 하에 치러진 자유한국당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역사에 기록될 대참패로 끝났다. 이튿날 홍준표는 이에 대한 총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사퇴했다. # 동시에 이날 자신이 맡고 있던 대구 북구 을 당협위원장직에서도 물러났다. #

사퇴하면서 마지막 막말을 하겠다며 페이스북에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분류하는 글을 남겼다. ##

9.1. 2018년

변호사 재개업을 신청했다. 다만 변호사로 활동할 목적이 아니라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오랜 시간 접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2018년 7월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9월 15일에 귀국했다. 2019년 2월에 있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나 2019년 4월에 있을 재보궐선거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104] 또한 유튜브에서 홍카콜라라는 이름의 채널을 개설하겠다고 하였다.

2018년 11월 20일 “최근 국민의 절반 이상이 대선이나 지방선거 때 홍준표의 말이 옳았다는 지적에 힘입어 다시 시작하겠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정계 복귀를 선언하였다. 홍준표의 정계 복귀를 두고 과연 성공적으로 복귀가 가능할지 의아하단 반응이 많다. 솔직히 왜 나오는지 모르겠단 반응도 있을 정도. 한편으론 홍준표의 정치 인생을 보면 혼자만의 셈법을 가지고 혼자서 헤쳐나온 것을 생각하면 혹시 나름의 생각과 계산, 큰 그림이 있는 거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홍준표의 복귀에 대해 정의당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홍준표의 복귀를 격하게 환영한다. 홍 전 대표가 꼭 자유한국당의 종신 대표직을 맡아 수구 보수의 소멸이라는 대업을 이뤄주길 바라고 있었다. 이제 그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라고 반어적으로 비꼬았다.

현재 홍준표의 유튜브 채널이 보수 정치인 채널 중 꽤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는 등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재보궐 선거때 정계에 입문한 배현진 자유한국당 송파구 을 당협위원장이 방송계에 있던 경력을 바탕으로 영상 기획 및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9.2. 2019년

2019년 2월 11일 당대표 후보로 거론되던 홍준표 전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했다. 홍준표, 2·27 전대 불출마 선언…"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유감"(종합)

2019년 7월, 공식적으로 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역구는 대구광역시부울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8월 들어서는 고향인 창녕군에 자주 모습을 보여 고향이 속한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에 출마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현직 의원인 엄용수 의원이 의원직 상실이 유력하기에 다음 총선에서는 출마할 수 없기도 하다.

2019년 9월 들어서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무능한 야당이라며 본인이 몸담았던 자유한국당(특히 나경원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검사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선배 검사로써 할 말을 다하고 있는 상황. 특히 나경원의 사퇴를 주장하며 민경욱과 충돌하기도 하고, 자신을 비주류 투쟁이라고 표현한 조선일보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등[105]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중. 추석 연휴 첫날에는 "전쟁 중에는 말을 바꿔타지 않는다."면서 나경원을 옹호하는 민경욱의 발언에 대해 "패전한 장수는 참수하기도 한다."고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2019년 10월 22일, 유시민과 함께 100분 토론 20주년 특집방송에 출연했다.

2019년 11월 창원시 성산구 출마설이 돌자 창원 성산의 현직 국회의원인 정의당 여영국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기사.

2019년 11월 22일에는 KBS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특집 10부작 시사프로그램 정치합시다 1회에 출연했다. 여기에서 21대 총선 출마에 대해서 한국당 비례대표가 아니라 지역구 후보 경선을 할지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2019년 12월 30일, 공수처 설치 법안이 통과된 직후 SNS를 통해서 "한국당은 1년동안 무엇을 했는가? 공수처 법안이 통과되었으니 의원직 총사퇴를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야당의 존재가치가 없어졌으니 오늘밤에라도 한강에 가라."라고 심경을 밝혔다. #

9.3. 2020년

1월 3일 TBS 라디오 <김지윤의 이브닝쇼> 에 출연해 "안철수유승민황교안자유한국당과 연대하는 상황을 기대하기 힘들다. 보수 대통합을 위해서는 유승민을 주저앉혀야 하겠다. 대구 동구 을 선거구나 밀양에는 한국당 국회의원이 없다."[106] 등의 발언을 하였다.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21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다고 한다. 본인은 험지에서만 출마해 왔으니 이번엔 고향에서 출마하고 싶다고 말했다.

본인이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송파구 갑은 13 ~ 15대 총선 전부 보수계 정당이 당선되어 왔던 보수정당의 텃밭이다. 하지만 16대부터 18대까지 내리 3선을 한 곳인 동대문구 을은 16대부터 18대라는 정치 기간 동안 보수정당의 손쉬운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곳이 된 것은 사실이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노무현 탄핵소추 역풍을 그대로 뒤집어썼음에도 불구하고 강북 지역에서 유일하게 당선되는 기염을 보여줬다. 그렇기에 이후 본인이 도지사를 7년 동안 지낸 경남 지역은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양지에서만 국회의원을 한 것도 아니며, 초선 의원과 재선 의원 당시 야당 저격수 역할을 도맡아 하는 등 궂은 일을 다 해왔으니 충분히 본인의 역량을 다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송파구 갑경상남도 지역은 보수정당 우세지이다. 다만, 동대문구 을 지역은 본인이 추진한 전농답십리뉴타운으로 유권자 구성이 바뀌어 더불어민주당 우세지로 바뀌었다는 비난도 있으나, 애당초 16대 총선 당시 동대문구 을 지역에서 민주당의 허인회 의원이 고작 11표차로 석패한 지역이며, 당선된 김영구 의원이 위장전입으로 낙마한 이후 악재 속에서 벌어진 선거에서 홍준표 의원이 출마하여 5퍼센트 차이가 넘게 이긴 것을 보아 홍준표가 아니었으면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실제로도 홍준표가 떠난 후 이 지역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냐 하면 신인급 정치인인 장경태서초구 갑에서 3선을 지낸 거물 정치인인 이혜훈을 큰 격차로 이기고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다.[107]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종로구 출마 선언 후 김형오 한국당 공관위원장으로부터 서울 험지인 구로구 을[108]에 출마해 달라는 연락이 왔지만, 너무 늦었다는 답과 함께 거절했다. 이대로라면 출마 선언한 지역구에서 컷오프가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으나, 2월 11일에 당에서 PK의 수비대장을 맡겨준다면 경상남도의 험지인 양산시 을[109]에서 김두관과 맞붙겠다며 공관위에 타협안을 제시했다. 같은 당의 PK 유력 인사인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고향 출마의 뜻을 접지 않고 있는데다, 김두관이라는 또 다른 거물이 PK에 차출된 만큼 PK 수비대장이라는 명분을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하지만 3월 5일 김태호 전 경남지사, 이주영 국회부의장 등과 함께 컷오프됐다. 링크. 면접 당시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 같이 무소속 출마 혹은, 정계 은퇴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에 소감을 올렸는데, 컷오프 사흘 전에 김형오 위원장으로부터 나동연 전 시장을 경선에 응하도록 설득하면 컷오프하지 않고 경선하겠다는 전화가 와서 그러겠다고 대답했는데, 컷오프가 되어서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3월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협잡에 의한 컷오프는 받아들일 수 없고, 승복할 수 없다' 라는 의견을 보이며 사실상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양산시 지역구에 무소속 출마할 경우 표가 분산되어 곧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후보를 도와주는 꼴이 될 수 있기에 양산시 지역구 출마는 포기하고, 대신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구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의사를 밝혔다. 미래통합당 현역 의원이 없는 곳에 출마할 예정이라 밝혀서, 정황상 수성구 을이 유력하다.[110] 일단 동구 갑/서구, 달성군 네 곳은 강력한 후보가 있는 곳들이고, 북구 갑/달서구 갑/은 보수 후보가 2명 이상 출마한 곳이었다. 그래서 선택지가 달서구 을 아니면 수성구 을 밖에 없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대구 내에서도 보수세가 강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민주당이 당선될 수 없다고 평가받는 지역인 수성구 을에 출마 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홍준표가 무소속으로 수성구 을 출마를 선언하자, 미래통합당은 해당 지역구에 이인선을 공천했다.[111]
기자회견문 전문
[ 전문 펼치기 · 접기 ]

<양산 시민들께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존경하는 양산시민 여러분
미래통합당 예비후보 홍준표입니다.
오늘로 저는 양산을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고
예비후보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2주전 제 고향인 밀양창녕을 떠나
양산을 지역구에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고향땅을 풍패지향(豊沛之鄕)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나,
당 공관위의 이른바 험지 출마 요청을 받고
전직 당대표로서 당의 요청을 수용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PK 지역의 험지인 양산을을 선택했고,
PK40석 수비대장을 자임했습니다.
양산대전에서 상대후보를 꺾고
이런 바람으로 부·울·경 지역의 압승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양산을 ‘플라잉 카 (flying car) 연구개발의 메카로 만들고
도심을 관통하여 많은 불편을 끼치고 있는
도심 고압선 지중화 계획
그리고 양산 동면 KTX양산역 신설 등을
공약으로 다듬었습니다.
양산 경전철과 트램도입, 회야천 친환경 정비 등
미래 발전과 주민편의 증진을 위한 양산 퀀텀점프 구상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양산을 향한 저의 노력은
결국 협잡공천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이번 양산을 공천은 ‘기망에 의한 막천’이고
상대를 이롭게 하는 ‘이적(利敵)’ 공천이라 생각합니다.
공관위는 추가공모를 통해
출마 의지도 없었던 후보를 끼워 넣어
여론조사 경선을 발표하고 대신 저를 제외해 버렸습니다.
가장 이길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경선에서 고의적으로 배제시키는 것은
우리 당 후보의 승리보다는 상대 당 후보의 당선을 보장하는 이적 공천에 불과합니다.
양산 시민 여러분,
저는 25년을 정치를 하면서
단 한번도 공천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당을 위해 헌신했기에 공천을
신경 쓸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번 협잡에 의한 공천배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결코 승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양산을 무소속 출마를 깊이 검토했으나
이 역시 상대 당 후보를 도와주는 꼴이 될 수 있기에
제가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로 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제 양산에서 제가 물러섰음에도
미래통합당 후보가 패배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당 지도부와 공관위원장의 책임입니다.
당과 역사는 그 책임을 엄중히 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양산시민 여러분
여러분들의 뜨거운 환대와 열정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양산을 떠나더라도 양산의 따뜻한 마음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제가 어디로 가든 어떤 길을 가든 성원해 주시고
늘 함께 해주시길 당부를 드립니다.
거듭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양산 시민 여러분들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2020. 3. 12.
홍준표 드림

10. 원내 복귀

10.1. 21대 총선 출마

결국 3월 25일 부로 미래통합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구 을 출마를 확정했다. 17일에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며, 탈당은 무소속 후보 등록에 맞춰 할 것이라고... # 슬로건은 '타도 문재인! 선택 홍준표!'로 문재인 정부를 매우 비판하고 있다.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북한으로부터도 주목 받았다.

3월 24일에는 본인의 선거 사무실에서 정책간담회를 열어 수성 을 5대 공약을 발표했다. 대구를 살릴 미래산업으로 플라잉카, 반도체 등의 첨단산업 유치 등을 내걸었으며, 대구 지역에 코로나19 뉴딜 20조원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후보 등록을 한 뒤, 기호 8번이 되었다.[112] 숫자로만 보면 뒷번호지만, 원내에 여러 정당들이 수성구 을에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투표용지에는 4번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매일 저녁 8시 수성못에서 정치 버스킹을 진행한다고 한다.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참신하다는 호평이 많다. 캠프 관계자에 따르면 지역주민들과의 직접적인 소통 방법을 고민하다 시도하게 된 것으로, 즉문즉답 형식으로 진행되기에 더욱 호응이 좋으며 매일 늦은 시간, 코로나19 정국 속에 진행됨에도 수백명의 주민이 모인다. 당연하지만 손 소독제는 비치되어 있으며, 마스크를 착용해야 참여할 수 있다.

4월 15일 투표 종료 후 발표된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에서 모두 미래통합당 이인선 후보에게 뒤지는 결과가 나왔으나, 대부분의 출구조사 결과와 달리,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1위를 달리는 기염을 토하며 판세를 뒤엎어 버렸다. 특히, 사전투표함이 열리고 더욱 격차를 벌렸는데, 젊은 층에서 지지세가 강한 민주당 후보들이 사전투표에서 더 많은 표를 가져간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여진다.[113]

그리고 마침내 # 대구 수성구 을에서 38.51%의 득표율로 3% 이내의 차이로 간신히 당선되었다. 당을 등에 업지 않고 보수의 성지인 대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를 꺾고 오직 홍준표 이름 석 자만으로 당선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현역의원인 정태옥[114] 3선 구청장인 곽대훈도 10 ~ 20%정도의 표를 받고 낙선했는데, 홍준표는 지역 기반도 없이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자신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맨땅에 헤딩해서 당선된 것이다.

파일:홍준표당선.jpg

당선 소감 및 인터뷰.

무소속으로서 보수정당만 뽑는 험지인 대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데다 황교안, 나경원, 오세훈 등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미래통합당의 주요 인물들이 모조리 낙선하고 대표직마저 공석이 되면서 차기 당대표와 대선주자에서 모두 유력한 후보로 급부상했다. 물론 당내 최다선(5선) 당선자에는 정진석, 주호영, 조경태, 서병수 네 명이 더 있는 만큼, 대표직을 차지하기가 생각보다는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도 존재하기는 한다.

만약 복당 후 다시 당대표가 된다면 벌써 3번째 당대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 번 모두 당의 이름은 다르다는 것이다.[115] 덤으로 홍준표 키즈의 대표주자인 배현진 후보가 송파구 을에서 거물급 현역 정치인인 최재성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친홍이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본인 역시 당선 직후 직접적으로 2022년을 언급하며 차기 대선 출마 의지까지 강력하게 내비쳤다.

당선 후 인터뷰에서 미래통합당의 참패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며 속히 당으로 돌아가 당을 강화하는 데 힘쓰겠다는 소감을 밝혔으며, 더불어 21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에서 사퇴한 황교안에 대해서는 손을 잡을 생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황교안이 본인을 공천에서 배제해버렸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반감을 가질 만한데 총선 결과도 참패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입장으로도 선을 그을 명분이 충분하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분명 21대 총선이 미래통합당의 참패이기는 하지만, 2년 전 그가 대표로 있었을 때 치러졌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비해 훨씬 선방한 거라는 것이다. 그때 빼앗겼던 몇몇 PK 지역도 다시 찾아왔고, TK 지역 전역을 탈환하면서[116] 부울경과 전체 영남권에서의 패권을 다시금 미래통합당이 확실히 차지하였고 강남 3구와 용산에서도 당선자를 내었으니, 선거 성적은 그가 대표를 역임했던 2년 전보다 오히려 더 올랐다고 봐야 한다.[117] 다만 2018년에는 전국적으로 불어닥쳤던 '풍'[118]에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으로 인한 평화 무드[119]로 인해 보수정당이 선거 자체를 치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2020년도 또한 코로나19 창궐로 모든 이슈를 잡아먹는 상황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코로나19 대처를 잘 했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여당에 유리한 국민 지원금이 이슈화 되면서 야당이 선거 치르기 힘든 상황이긴 했다.[120]

탈당파의 복당을 막겠다던 황교안 전 대표가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데다가, 100석을 겨우 넘는 총선 결과 때문에 의석 1석이 아쉬운 미래통합당의 사정상[121] 복당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17일에는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기자의 복당을 운운하는 질문 자체가 불쾌하고 무례하다며, 25년간 당을 지키고 공중분해 직전에서 구출해 낸 사람에게 잠시 당권을 차지한 뜨내기들이 본인의 복당을 운운하는 것 또한 어이없는 일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이제는 되려 황교안이 출당을 당하게 생겼다.

총선 승리 후 페이스북과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대권 도전을 확실히 하고 연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 진영의 중진들은 물론 차기 대선 주자급 인사들이 모두 낙선해 보수진영 자체가 궤멸한 상황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상황. 사실 이번 선거 전까지만 해도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황교안, 안철수 등에 비해 크게 밀렸는데 이제 상황이 완전 뒤바뀌었다.

홍준표 본인으로써는 이번 총선에서 최대 승부수를 던졌던 것인 셈. 문재인 정부의 남은 기간 동안 보수 진영에서 대선에 도전할만한 새로운 인물을 찾지 못한다면 지난 대선처럼 자신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연일 그의 행보가 주목받는 상황이다.[122]

당선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일부 보수 유튜버들을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유튜브가 거짓 낚시성 선정적 기사로 조회수나 채워 코인팔이로 전락하는 모습은 앞으로 정치 유튜브 시장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매우 강도 높은 비판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우호적인 유튜버들[123]과 부정적인 유튜버들[124]을 분류하였다.

이후 대권 도전을 천명하며 국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에게 도움이 되면 좌파 정책도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 하였다. 홍준표 “차기 대선 도전…우파도 국민 도움되면 좌파정책 펼쳐야”

4월 25일, 김종인이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언급되자 본인의 페이스북에 김종인이 과거 자신이 조사했던 뇌물사건인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인해 사법처리된 전력을 언급하며#, 이 사건의 부정과 비리에 얼룩진 김종인에게 무기한 무제한 권한을 주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기는 것을 반대했다. 다음 날 본인의 페이스북에 자신과 당시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당시 주임검사였던 함승희 검사가 # 김종인을 수사하고 자백 조사를 받아냈던 이야기를 한 뒤, 뇌물 전과자로 개혁 대상자인 분이 개혁팔이로 이당 저당 오가면서 비례대표 5선을 했으면 그만 만족하고 그만둬야한다고 했다. 이후 1995년 노태우의 수천억 비자금 사건에서 재계 인사들로부터 경제수석이란 직함을 이용하여 뇌물 브로커 행세를 한 혐의로 특가법상 뇌물죄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 받고 항소를 포기했던 일도 언급하면서 #, 국민 대부분은 김종인의 부패전력은 모른 채 그 자신이 마치 개혁의 전도사인양 자처하고 있는 것만 알고 있다고 한 뒤, 이제라도 실체가 다 드러났으니 이제부터라도 정계 언저리에 어슬렁거리지 말고 사라지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하는 길이며 우리 당 근처에도 오지 말라는 글을 올렸다. 근데 2021 재보궐선거에서 친정이 압승하면서 복당은 더더욱 물건너가게 되었다. 다만 박형준 후보와 의령군수 오태완 후보를 지원하여 합동유세를 펼쳤다. 영상.

5월 16일, 전날 통합당의 유의동, 오신환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진중권 전 교수가 "당의 지도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물음에 답하는 도중 "당의 대선 후보까지 지낸 분이 똥개도 아니고 집 앞에서 이렇게 싸우느냐"며 홍준표 본인을 비방한 것에 대해 반격하며 이번이 두번째 모욕이다"며 "(진중권이) 분수 모르고 자꾸 떠들면 ×개로 취급 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다. # 사실 이번 토론회 주최자중 한 명인 유의동은 홍준표의 복당을 반대하고 있으며, 진중권도 과거부터 홍준표를 부정적으로 봐 왔던 사람이였던 만큼 어찌보면 예상된 일. 물론 이러한 진중권의 발언에 대해 홍준표역시 '똥개 눈에는 똥개만 보인다'며 SNS를 통해 응수했다.

10.2. 21대 국회 활동

파일:한나라준표.jpg

21대 국회 희망 상임위로 국토교통위원회를 꼽았다. 하지만 상임위 배분 우선권이 원내교섭단체에 있기 때문에 인기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에 들어가기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관련 기사.

1호 법안으로 재건축부동산 규제 완화 법안을 내놓았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125] 재건축부담금 유예, 재건축시 국민주택 건설 의무비율 폐지, 재건축 안전진단 제도 개선[126]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재건축초과이익환수에 관한 법 개정안' 등 3법이다. #

6월 15일, "대구 통합 신공항 건설[127]과 남북 관계 경색에 대한 대비가 더 시급하다는 판단 아래 국방위로 상임위를 변경 하여 지원하기로 했다"며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비인기 상임위인 국방위원회로 희망 상임위를 변경했다. # 그리고 같은 날 오후, 민주당에서 국방위를 비롯해 6개 상임위의 원구성을 강행하면서 홍 의원도 자신의 희망대로 국방위에 배치되었다.

6월 30일 홍준표 의원은 반인륜 범죄와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6개월 이내로 사형 집행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

2020년 7월 27일, 홍준표 의원은 강성 귀족 노조 방지 3법을 발의 하였다. 2017년 지난 대선 공약과도 맞닿아 있는 공약이며, 핵심 내용으로는 노동 조합의 구성원들은 반드시 해당 사업의 근로자만 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조합원만이 대의원 및 의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와 노동조합의 선거는 선관위에 위탁하고 반드시 화계 감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조항은 공무원의 노동조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통해 확인하도록 하자. # 이를 통해 노조의 회계 비리를 방지하고, 강성 노조의 힘을 약화시켜, 기업 활동을 활성화하여 궁극적으로는 20대의 취업 일자리를 늘리고자 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

현재까지도 복당을 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무래도 미래통합당이 총선 참패 이후 책임 공방으로 더욱 분열하면 복당하여 당권을 잡은 후 그대로 대권에 재도전 하려는 그림을 생각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본인이 강력히 비판하던 김종인이 비대위원장을 맡은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을 역전 하는 등 당 재건 정책이 순항하고 있었기에 홍준표를 굳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128]

그러나 2020년 9월에 들어서면서 김종인 대표의 극우 집회 3.1 운동 비유 관련 망언이 국민들의 비판이 크며, 공정거래법, 상법, 금융그룹감독법을 개정하는 이른바 '공정거래 3법' 입법과 경제민주화 정책을 강행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 경제적 자유주의, 친기업 성향 보수 유권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고, 곧이어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이 김종인의 국민에 대한 적절치 않은 발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면서 슬슬 장제원과 더불어 다시 김종인과 각을 세울 가능성도 있다. 9월 17일, 21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불복해 탈당했던 의원들 중 권성동 의원이 복당에 성공했으나 홍준표 의원은 아직도 복당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10월 30일에는 보수 대통합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안철수 뿐만 아니라 김문수, 정규재와 여러 태극기 세력들까지 똘똘 뭉쳐야 이길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것은 현재 국민의힘 대표인 김종인과 완벽하게 정면충돌하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기존 지지층인 태극기 세력을 비롯하여 기존 보수층의 지지를 탄탄하게 잡아놓고, 중도층을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1월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또다시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판했다. 야당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김종인 지도부 사퇴를 주장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서자라고 표현하면서 적통인 내가 서자를 데려와서 운영하는 당 지도부에게 복당 심사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금태섭이 야권의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도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여담으로 의외로 더불어민주당과 협업하는 분야가 있다. 국회 내 연구단체 중에서 '국회 문화콘텐츠포럼'이라는 곳에 몸담고 있다.[129]

12월 4일 국민의힘으로의 복당을 주호영 원내대표가 화이트칼라층의 홍준표를 향한 비호감 이미지가 너무 커서 당장은 힘들다며 거부의사를 표한 것에 대한 분노로 자신이 야당의 적장자라 주장하며 국민의힘 올드비 의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다시 한번 국민의힘의 분열의 핵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에 관해 장제원 같은 찬성입장들은 야권을 대통합을 빨리해야 내년 서울, 부산 재보궐 선거에 유리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홍준표는 이에 대해 "배은망덕하다"며 굉장히 화가 난듯한 반응을 보였다. #

2021년 1월 28일 김무성, 윤상현 등 다른 보수야권 거물들과 함께 안철수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국민의힘과 다른 길을 걸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사. 1월 초에 팬엔드마이크에서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자신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고, 중도층을 흡수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람과 연대를 하겠다고 말하였으며, 그 첫 대상으로 홍준표 의원은 안철수를 반드시 보수로 끌어들여서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2월 4일, 홍준표 의원이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한 대정부질문이 매우 화제가 되었다. 이제까지와의 평소 발언과는 다르게 말이 매우 정제되고 세련되었으면서도, 국정 현안의 문제를 전체적으로 홍준표 의원다운 위트함으로 매우 잘 짚어냈다는 것이다. 이해찬 총리와의 설전으로 유명했던 2005년 대정부 질문 # 이후 본인에게 있어서 16년만의 대정부질문이었다고 밝혔다.

2021년 3월, 하태경 의원이 인터뷰에서 안철수 대표와 가까운 행보를 보이며 국민의힘이 아닌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에 입당하여 함께할 시나리오까지 예상된다고 하였으나, 김무성 대표가 국민의힘 전직 중진 의원들이 주축인 마포 포럼에 초대하고, 점차 국민의힘 초선, 중진 의원들과의 접촉을 늘려가면서, 김종인과 친유계가 단일화 과정에서 내부 경선에서는 100% 무선으로 치렀으면서, 안철수와의 단일화에서는 유선 10%를 포함시키자고 하면서 유리한 대로 돌연 단일화 방법을 바꾸는 행태를 보였고, 홍준표는 김종인을 향해 소인배 정치라고 비판하였다. 마포 포럼의 김무성 전 의원의 말에 따르면 4월 이후 복당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리고 LH 사태 이후 그 누구보다도 공직자들은 청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회의원 전체의 전수 조사를 주장하였으며, 국민의 힘 의원들 전원이 부동산 전수 조사를 받은 데에 찬성한 것에 있어 일련의 과정에서 홍 의원의 의중에 따라 배현진 의원이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알려졌다. #

2021년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자 비록 노선은 달랐지만 어려운 당을 잘 이끈 김종인의 역량을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2021년 4월 20일 국방세를 신설하고 징병제를 폐지한 후 국군을 모병제 군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5월, 공매도 제도에 대해 "기관 투자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불리한 잘못된 주식 외상 거래제도"라며 "이 제도는 건전한 자본시장 육성책에 반하는 투기적 투자제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폐지되어야 작전세력이나 투기적 기관 투자자들을 막고 건전한 자본시장이 된다"라고 비판했다. #

2021년 6월에는 류호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타투업법 법안에 힘을 보탰는데, 본인이 눈썹문신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0.2.1. 복당 논쟁

'올 것이 왔다'…홍준표 복당, 국민의힘 뇌관으로

국민의힘 복당을 두고 이에 대해 국민의힘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일어나고 있다. 홍준표의 복당을 찬성하는 인사도 있지만 반대하는 인사도 있다. 김웅 의원은 찬성하지만, 홍준표에게 막말 교정 및 사과 등의 조건을 달고 있다. 이준석윤석열, 안철수도 되는데 홍준표를 막을 이유는 없다며 복당에 대해 찬성의 입장을 밝혔다. #

여론조사 결과에서 국민의힘 지지자 65%가 “홍준표 ‘복당’ 찬성”하는 등 대다수가 홍준표 복당을 지지하였다.

그렇지만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특히 국민의힘 당내 과반인 초·재선을 중심으로 한 복당 반대 기류가 심상치 않은 상황.

국민의힘 지도부 등 내부에서는 전당대회 이후에 결정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

홍준표는 SNS에 2~3건씩 글을 쓰며 복당을 재촉하고 있다. 국민의힘에게 복당 청문회 개최도 제안하였다. #

16일, 소위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다가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새로운보수당 등을 거쳐 국민의힘으로 돌아온 이른바 바른정당계 중심의 복당파가 자신의 복당에 대해 미적지근한 것에 대해 반발하여 이들을 뻐꾸기로 규정하면서 이들이 자신의 복당을 반대하는 상황을 비판했다. 이에 하태경이 반발하면서 충돌하였다.[130] #

17일 국민의힘 서울특별시당 위원회가 홍준표 무소속 의원의 복당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당원자격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중앙당에 송부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홍 의원의 복당 절차는 중앙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최종 결정만 남게 됐다. # 그러나 이전에 시도당을 거치지 않고도 복당한 사례들이 있는 등 복당은 결국 중앙당 지도부의 결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도당 의결은 홍준표 자신의 복당에 대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찬성하는 세력이 늘고 있다는 뜻이 될 뿐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6월 1일, MBN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 OX 의제로 홍준표 전 대표의 복당 문제가 나오자 출마한 5명의 후보가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그래서 전당대회 이후 당대표와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되고 나면 문제없이 복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대표로 당선된 이준석도 지속적으로 홍준표 복당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6월 24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에서 홍준표 복당 안건이 최종 결정된다.

10.3. 복당

2021년 6월 24일,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만장일치로 홍준표의 복당을 허가하며 1년 3개월만에 친정인 국민의힘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11. 20대 대선 대선주자 시기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이번 대선은 54년생인 그에게 마지막 정치적 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대선에서 보여준 여러 미흡한 화법과 막말 등으로 손상된 이미지를 어떻게 복구할지가 관건.

6월 29일, 야권 유력 대선 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같은 날에 뒤이어서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초선의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윤석열 X파일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윤총장이 알아서 잘 할거라고 본다, 윤총장한테 물어보라, 국민의힘에 입당해서 경선을 같이 치렀으면 좋겠다라며 윤석열을 견제하던 그간의 행보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경선을 앞두고 당내 인사들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듯 한데, 같은 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자신을 막말대장이라며 공격하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막말을 넘어 쌍욕을 하는 사람인데 쌍욕하는 사람이 막말한다고 하는 건 더 웃기다.'라며 강하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131] 간담회 중에도 "야당이 너무 투쟁을 안한다, 정권을 동냥해서는 절대 정권교체를 못한다"며 초선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적극적으로 투쟁할 것을 촉구하는 등 내부 결속과 당내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행보로 보여진다.

7월 12일 국군을 현대화하고 성별간의 젠더 갈등을 줄이기 위해 모병제나 지원병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8월 12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해 "윤석열 후보가 검사로서 문재인 정권의 선봉에 서서 적폐 수사로 우리 진영을 궤멸시킬때 나는 매일매일 차례로 직권남용이라는 정치적 죄명을 뒤집어 쓰고 억울하게 감옥 가는 것을 가슴 아프게 바라본 야당 대표였다. 적폐 수사는 900여명이 조사를 받고 200여명이 무더기로 구속되었으며, 5명이 자진(自盡)한 ‘희대의 정치보복극’이었다. 나의 최측근이던 경남도 정무부지사(조진래)도 검찰의 수사 압박에 못이겨 자진했다. 지금 우리당 초선이나 재선 이상 의원들도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잊어버렸을 것이지만 나는 잊을수가 없다. 그가 적폐수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 없이, 문 정권에 부역한 것에 대해 참회와 반성 없이 마치 점령군처럼 행세하는 것은 더이상 묵과할 수가 없다. 토론때 봅시다." 라고 별렀다.

8월 16일 공무원 수를 줄이고 통일부, 여성가족부, 중소벤처기업부를 하나로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8월 17일 공식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원래는 조금 더 늦게 할 예정이었지만, 당의 요청에 따라 예정보다 일찍 출마를 하였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홍준표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예전보다는 훨씬 더 정제되어 있는 듯 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선 출마와 동시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토론을 무서워하고, 토론을 피하면 나중에 국민들 앞에서 어떻게 말을 하겠느냐'라며 연일 윤석열 후보를 비판하고 있다.[132] 또한 8월 18일 원희룡 지사를 향해서도 '유치하다'라고 날선 비판을 가하면서 은근히 이준석 대표를 비호하는 중.[133] 또 김어준과의 인터뷰에서도 추석 민심이 중요할 거라 생각한다며 결국 자신이 남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11.1. 8월

8월 6일 최저임금제와 주52시간 근무제를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중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

8월 19일 국민의힘 세종시당을 방문했다. 여기에서 세종시의 행정수도 기능이 미비하다고 비판했다.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일에 대해 논의하기는 아직 이르고 2024년부터 국회를 양원제로 개편하고 나서 국회 이전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월 20일 광주광역시 5.18 민주묘지를 방문했다. 국민의힘이 민정당의 후예임을 인정했으나 김영삼 정부 때 5.18 특별법을 처음 만들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감옥에 넣는 등 탈바꿈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군대에 있을 때 전라도에서 복무했던 일이나 광주지검 검사 시절 일화도 소개했다. 광주시의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광주·전남지역 대선 공약으로 광주공항과 통합한 무안국제공항을 우리나라 4개 관문공항 중 하나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8월 23일 국민의힘 소속 의원 12명이 국민권익위 조사에서 위법 소지가 밝혀지자 대선후보들도 부동산 등 재산사항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8월 27일 충청남도 부여의 김종필 전 국무총리 묘소를 방문했다. 여기에서 '김종필 총리의 개는 주인을 그리워했기에 무덤도 총리의 무덤 아래에 따로 만들어주었는데 요즘 보면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공직자를 맡아본 이들이 주군을 배신하고 야당에 들어와 있다. 배신의 정치를 하는 이는 정치판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법이다. 나도 내가 경남도지사 시절 내 호의에 배신으로 답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데 그들은 지금 정치낭인이 되어 있다.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정치판에 남아있는 요즘 세상이 개탄스럽다.' 라고 발언했다.

11.2. 9월

9월 6일 2014년을 배경으로 대한민국 군대 내 가혹행위, 탈영병, 군탈체포조를 그린 드라마 D.P.를 보고 자신이 해안초소에서 방위로 복무할 때도 하루종일 사역하고 고참들에게 두들겨 맞고 군기교육대에 온 장병들과 목봉체조를 했다는 경험을 말하는 것과 동시에 군대 내 가혹행위 근절과 함께 징병제 폐지와 모병제와 지원병제 도입 검토를 공약했다. #

이후 대한의사협회에 방문했다. 수술실 CCTV 의무화를 폐지하는 대신 의료사고 발생 시 입증 책임을 환자에서 의사에게로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게 CCTV 의무화보다 더 센 공약이다. 민주당에서 CCTV 의무화에 힘을 쏟는 이유가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 입장에서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책임 입증을 쉽게 하기 위해서인데, 홍준표의 주장대로라면 입증을 의사가 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억울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진해서 CCTV를 달게 될 수준의 강한 공약이기 때문. #

9월 14일 "대통령이 되면 신용불량자를 사면하겠다."고 발표했다. 가계부채를 탕감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한다. #


9월 15일 서울대학교에서 토크콘서트를 하였다.

9월 20일 유튜브 홍카콜라 채널 라이브에서 “무슬림이라고 다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받아주는 것이 낫다.”라고 발언했다. #


9월 24일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토크콘서트를 하였다

개고기 식용에 반대한다고 밝혔다.#[134]

11.2.1. 공약 발표 행사

9월 7일 진행한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3대 정책공약 발표’ 행사에서 홍준표는 “대통령이 되면 개헌을 통해 국회를 상원 50명, 하원 150명으로 양원제로 만들고 비례대표는 폐지할 예정이다”,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은 폐지하고, 대통령은 4년 중임제로 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선진국 시대에 맞는 정치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민간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는 민간경제를 뒷받침하는 서비스 역할로 만족해야 한다”며 “개인과 기업 옭아매는 규제 줄이고 시장 자유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도심 고밀도 개발과 재개발 재건축 활성화로 공급을 늘려 집값을 안정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은 대폭 구조조정 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11.2.2. 압박 면접

9월 9일에 있던 압박 면접에서 나온 발언이 여러 언론사에 오르내렸다.

면접 과정에서 “면접관이 골수 좌파라 후보들이 골탕 먹겠다.”고 비꼰 것이 주요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 발언은 ‘민주노총을 대상으로 긴급명령재정권을 발동하겠다고 했는데, 이것이 발동 요건에 해당되느냐”는 진중권과의 설전에서 나온 발언이다. #

진주의료원 폐업 논란에 사과하라는 이야기가 있다.”는 지적에 "진주의료원은 의료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폐쇄한 것일 뿐"이라고 맞받아치기도 했으며, 경남지사 시절 596억 들여서 고가의 음압 병실과 300병 상이 갖춰진 마산의료원을 대규모로 지었기 때문에 코로나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에 있어 부족함이 없음을 집어 말했다.

“병상 1개당 인구수가 경남의 경우 전국 평균의 3배에 가깝다.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효과"라는 지적에 홍 후보는 "좌파적 주장이며, 이는 끝난 문제", "의료원 폐쇄가 잘못됐다는 사람은 절대 저를 안 찍는다. 억지 논리를 말하는 면접관의 생각이 참 답답하다"라며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는데 봉하마을 사저를 두고 아방궁 발언을 한 것은 사과했나"라는 질문에 홍 후보는 "아방궁에 대한 발언은 과거 해명을 한 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를 두고 한 얘기가 아니라 퇴임을 앞두고 국비, 지방비가 들어간 게 천억이 됐다고 해서 그리 말했다"며 "실제로 가보니 아니라 사과도 했고, 경남지사 시절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고 해명했다. #

‘비례대표 폐지 공약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이 나올 수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 진중권에게 "헌법을 바꾸는 판인데 무슨 헌법재판소가 필요한가. 지난 탄핵 때 헌법재판소에서 하는 것을 보니 헌법재판소를 폐지하는 것도 검토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헌법재판소 폐지를 주장했다. #

국민면접 스트리밍 영상을 통해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과거에 모병제를 반대했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5년 전에도 모병제를 주장했다.”고 밝혔다. 홍 후보는 2022년 대선 출마 이후 쭉 모병제 및 지원병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달리 5년전 2017년 기사를 찾아보면 홍준표 후보는 "모병제와 군복무 단축을 주장하는 후보들이 있다"는 질문에 “ 턱도 아닌 얘기입니다. 젊은 사람들한테 표 얻으려는 얄팍한 술책에 불과합니다.”하며 강하게 반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135]

반대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지적에 “나는 듣는다.”고 답했다. 이에 진중권 교수가 “아까는 반대하는 인간들이 골수좌파라 하지 않았냐”고 반문하자 “그것은 면접관의 문제 때문”이라고 반발했다.

11.3.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

9월 16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첫 경선 토론회에 참여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17 대선 당시에 비해 저돌적 태도를 죽이고 점잖아진 면을 보여주었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만 하태경이 지적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와 관련된 입장이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조국 수사 과했다"는 홍준표에 "조국수홍" 조롱성 패러디 확산
홍준표 "조국 수사 과했다"…하태경 "민주당 대변인인가"
“조국 수사 과해” 홍준표 향해 野 지지자들 ‘조국수홍’ 패러디
“조국 수사 과해” 홍준표 향한 ‘조국수홍’ 패러디 봇물

“조국의 잘못과 죄가 있는것은 맞지만, 검찰의 조국수사는 표적수사이자 과잉수사의 성격을 띄며 조국의 가족 전체까지 도륙난 점이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홍준표 “조국 수사는 과잉수사였다.” #

홍준표는 조국 사태가 윤석열과 조국 사이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한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
결국 페이스북에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생각하는게 옳다"며 "제 생각을 바꾸겠다"고 밝힌 바 있다. # 다음은 홍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정권을 안정시키는 것도 검찰총장의 책무라고 하면서 조국 수사는 문 정권 안정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 윤석열 후보가 자기 지인에게 고백했고 그게 책으로도 출간 된 것도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권 내 권력투쟁의 산물이지요. 그런 사건을 두고 우리측이 흥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저의 오래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전 가족 수사가 가혹하지 않았다고 국민들이 지금도 생각 한다면 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지요.

또 토론 때에 보자고 예고한대로 윤석열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는데 " 박근혜 대통령을 감옥에 넣은 공로로 중앙지검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검찰총장까지 했으니 입당 직후에 국민의힘 당원에게라도 공식 사과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 라고 직접 비판했다.

그리고 16일 오후에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괴한들에게 공격을 당했고 캠프 소속 수행원들 중 부상자가 생겼다. 洪캠프-尹지지자, 토론회 직후 충돌 홍준표 캠프-윤석열 지지자 충돌

11.4. 10월

10월 1일, 여성 및 인구 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여성가족부 타 부처와 통합, 여성 할당제 점진적 폐지, 흉악 상습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 강력 집행, 주취감형촉법소년 제도 정비 등이 포함되었다. 홍 의원은 페미니즘에서 휴머니즘, 패밀리즘으로 가겠다고 했으며, 성인지 감수성의 판결 적용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한편 여경 체력기준에 대해서는 "체력을 기준으로 남녀가 동등하게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며 "현장에서 몸을 사용하는 곳에 여경을 배치하는 건 좀 부적절하다"라고 주장했다. #

한국의 노조 조직률을 30%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

제주도에 카지노 프리 지역을 설정해 한국의 라스베이거스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

10월 18일 열린 국민의힘 토론에서 “수소를 뭘로 만드냐”는 원희룡의 질문에 “수소는 H2O인가 그거 아니냐”며 답했다. 원후보가 "H2O는 물"이라며 "물로 만들거냐"고 하자 홍후보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한채 발언시간이 끝났다. # [136]


SNL 코리아 인턴 기자 코너에 출연해 주현영과 인터뷰했다. 해당 방송은 10월 24일 쿠팡플레이에 공개되었다.

10월 25일에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 종합부동산세 폐지, 10년 이상 장기보유 1주택자 양도소득세 면제, 5년 이상 거주 1주택자 재건축 부담금 면제, 용적률 1500% 상향, 토지임대부 쿼터 아파트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전체적으로 세금은 낮추고 공급은 늘린다는 기조이다. #

국민의힘 당내 경선 토론에서 또다시 모병제 도입을 주장했다. 이에 유승민 후보가 저소득층 자녀만 군대에 가게 될텐데 그런 아이들로 강군을 만들 것인가"라고 묻자. "중국도 모병제를 한다. 거기는 경쟁률이 8대 1이다."라고 주장했다. #

11.5. 11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 최종 선출을 하루 앞두고 예정에 없던 홍대거리 일정을 급하게 잡아 젊은 지지자들과 홍대거리를 누볐다.
"내일 혹시 경선에 떨어져버리면 여러분들한테 여태 고마웠다는 그런 인사를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홍대거리에서 홍준표 #
2021년 11월 5일 치러진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2030 젊은 세대들의 압도적 지지라는 바람을 등에 업고 분전했지만 결국 국민의힘 당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년층과 TK 지역의 지지를 받지 못하며[137]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을 상대로 승리했음에도 최종 득표율 2위로 낙선했다. 이에 홍준표는 발표 후 얼마 안 되어 “민심과 거꾸로 간 당심이지만”, 홍준표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깨끗하게 승복하겠다고 하며 승복 선언을 했다. # # 다만 '백의종군'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면서 국민의힘 선대위 합류 등은 안 할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그리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밝혀 21대 선거에 재도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

이후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쉬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겠다는 말을 남겼다가, 비리의혹 대선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며[138] 사실상 윤석열 캠프 참여를 거부하고 청년의꿈 플랫폼을 만들어 자신을 지지한 2030에게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당을 분열시킨다는 비판에는 대선 조직에 들어가야만 원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며 일축했다.

홍 의원은 "두 분(이 후보와 윤 후보) 중 지면 한 사람은 감옥 가야 하는 처절한 대선"이라며 "이전투구 대선에서 부디 살아남는 대선이 되도록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 이후 경선 캠프 해단식에서는 “1997년 이회창과 김대중 대선 당시 7월 말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53%였고 김대중 후보가 15%였다. 한 달 만에 10%대로 폭락한다. 대선판이 그렇다. 더 다이나믹해질 것”이라며 윤 후보의 현 지지율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이후 선대위에 불참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며 "제가 이 나이에 누구[139]처럼 몸값 흥정하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간보기가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하게 하였다. #

본인의 플랫폼인 '청년의꿈'의 '청문홍답' 코너에서 차기 대권을 시사하는 언급을 하였다. 이후 11월 17일에 '마지막 대권 도전이라는 말을 번복한 것을 어떻게 해명할 것이냐'라는 질문에는 "내가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 당선) 될 것 같아서 한 말"이라고 해명하였다. #

11.6. 총평

12. 경선 패배 이후의 행보

12.1. 2021년

청년의꿈 예고편

11월 14일 청년 정치 플랫폼인 청년의꿈을 개설하였다. 청년의꿈을 개설한 뒤로 청문홍답과 홍문청답에서 젊은 지지자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고 이런 모습이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11월 19일 홍준표는 "자신의 백의종군을 비난해서도 안 되고, 선대위 참여를 강요하는 것 자체도 부당한 횡포"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대선판을 떠나 새로운 청년정치를 시작한다"며, "그게 차기 대선판에 기웃거리지 않고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

11월 30일, 윤석열 후보가 이수정 교수를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여 이준석 당대표가 반발하며 칩거에 들어가자 "당대표를 겉돌게 하면 대선 망쳐요."라고 답했다. # 이후 12월 3일 윤석열 후보를 만나 회동을 갖고 이준석 대표를 직접 만나러 가라고 조언하였다. # 이후 윤석열 후보는 이준석 대표를 찾았고 울산 회동에 성공했다.

12월 16일, 살리는 선대위 대구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직으로 이름을 올렸다. 홍 의원은 "백의종군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역할이 없는 대구 선대위에 고문으로 이름 올리기로 했다.", "방관자라고 또 시비 걸 테니 불가피한 조치"라며 지지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에 덧붙여 "이것으로 논란이 종식되고 잊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

12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후보에게 네거티브의 중단을 촉구하며 "네거티브를 돌파하는 유일한 길은 정책대선으로 전환입니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회피하지 말고 토론에 즉각 응하십시오. 그게 네거티브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 입니다."라고 말했다. #

12.2. 2022년

1월 4일 위키트리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홍준표에게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제안했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관련 소식이 퍼졌다. # 홍준표는 이에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마라고 일갈했다. #

1월 7일, 동아일보 단독 기사에 의하면 내주 윤석열 후보와 회동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1월 13일, 대구광역시장 출마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홍 의원도 부인하지 않으며 출마설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1월 19일, 윤석열과 회동을 가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이 사실상 선대위에 합류 안 하겠다고 우회적으로 의사를 표시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처갓집 논란에 대해선 윤 후보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할 문제라고는 하지만 윤 후보 본인이 그럴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선이 형성된 지 오래이며, 공천 문제에 대해서도 윤핵관 등을 비롯한 주위의 측근들이 우선 순위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이 회동의 제안을 들은 윤석열이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만 원팀 기조를 만들기 위해 윤석열이 홍준표가 제시한 조건들을 수락하여 합류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후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 등이 홍준표를 공격하면서 갈등의 불씨가 남는등 파장이 이어졌다.# 홍준표는 윤석열을 겨냥해 “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검다”라고까지 하는 등 갈등이 격화되었다.#

이후 김용남이 홍준표가 무속을 안 믿는다라고 반박한 것에 대해 "빨간 넥타이뿐만 아니라 빨간색 속옷까지 입고 다녔다더라" 고 주장하며 유승민은 몰라도 홍준표는 이미지가 겹친다고 주장하였다.[159] #

그러나 위의 모든 갈등을 접어둔 채, 1월 29일 선거대책본부 상임고문직을 수락하기로 했다.

2월 21일, 대구시장 출마를 시사했다.#

2022년 3월 재보궐선거 중구·남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언주 전 의원과 함께 도건우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도건우 후보는 임병헌 당선인에 밀려 꼴찌로 낙선하였다.

투표에 임박해서는 '두 후보가 다 비호감이지만 아무튼 정권교체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했고, 본투표 전날의 마지막 유세에서는 건강검진을 이유로 불참하면서 "지금껏 유세 기간 윤 후보 측 요청을 모두 들어줬다"라고 했으며, 개표 당일 개표상황실을 찾지 않았다.

13.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

Change Daegu
다시 대구의 영광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슬로건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3월 10일, "중앙 정치는 윤석열 당선인에게 맡기고 저는 편안하게 하방하고자 합니다"라고 하면서 대구광역시장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선 기간이었던 1월에 발표된 대구광역시장 여론조사에서 34.3%를 얻어 19.4%를 얻은 권영진 현 시장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그런데 3월 21일, 국민의힘 지도부가 공천 룰을 발표하면서 '현역의원 10%·(국민의힘 계열 정당 탈당 후)5년 이내 무소속 출마전력 15%' 감점 지침을 정했는데 이대로라면 홍준표 의원은 무려 25%를 감점당한 상태로 경선을 치러야하는 상황이 되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홍 의원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뜻을 밝힌 김재원 최고위원을 겨냥해 "이번 공천 규정 신설을 주도한 최고위원은 아침에 본인의 출마를 선언하고 그 직후 최고위에 참석해 자신에게 유리한 규정을 요구하여 관철했다"고 주장했다.#

3월 31일 오전 11시, 수성못 이상화 시비 앞에서 대구광역시장 출마선언과 기자회견을 가진다.

4월 23일 오전 10시, 54.95%, 10% 감산하여 49.46%의 득표율을 올림으로써 26.43%의 김재원 전 최고위원과 18.62%의 유영하 변호사를 꺾고 홍준표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광역시장 후보가 되었다. 홍준표에 맞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서재헌 후보인데, 서 후보가 2014년과 2018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민주당계 정당 후보로서 대구광역시장 선거에서 졌잘싸급 득표율을 올렸던 김부겸임대윤에 비해서 인지도와 중량감이 매우 취약해 단순한 일개 광역단체장 후보가 아니라 보수진영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이자 매우 강력한 코어 지지층을 지닌 홍 후보를 상대로 선거비 전액 보전 하한선인 15% 이상 득표할 수 있을 지가 관심사다.[160][161]

4월 26일 오전, 대구광역시장 후보 출마를 위해 수성구 을 지역구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4월 29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사퇴서를 직권 수리하면서 공식 사퇴했다.#

출구 조사에서 79.4% 득표를 하며 압승을 거뒀다. 출구조사와 근접하게 개표결과가 나온다면,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 중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는 것이다.

14. 대구광역시장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됨으로써 헌정사상 최초의 민선 복수 광역자치단체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지방자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개표 초반부터 마감까지 출구조사에서 나온 거의 그대로 78.75%라는 매우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역대 대구광역시장 중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동시에, 국민의힘이 승리한 총 12곳 광역단체 중 제일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162]

취임한 후 기존 동인동 본청을 동인청사로, 산격동 별관을 산격청사로 개칭했다. 동시에 시장 집무실을 동인청사에서 산격청사로 옮겼다.

대구광역시장 당선 직후 고강도의 시정 개혁을 예고했다. 취임 즉시 대구광역시의회의 승인을 받아 대구광역시 행정조직 개편에 착수하고, 기능이 중복되거나 자리 보전용으로 인식되는 산하 기관은 통폐합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기관은 운영 주체가 변경됐다. 경상남도지사 재임 때처럼 지방채 발행은 전면 금지시켰다.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이 추진해 온 사업들도 검토를 거쳐서 계속 또는 폐지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163] 대표적으로 트램으로 결정된 대구 도시철도 순환선 사업에 대해 차량 관련해서 전면 재검토를 예고했다.[164]

군위군 대구 편입, 대구경북통합신공항에 대해서는 대구시민 여론과 반대로 찬성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실제로 성과를 이뤄냈다.

권영진 대구광역시장대구광역시장 관사를 부활시켰는데, 홍준표 당선인은 대구광역시장 관사를 유지한다. 다만 관사의 위치가 바뀌었는데, 권영진 대구광역시장이 관사로 사용했던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동1가 아파트를 팔고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2동 아파트를 홍준표 당선인의 관사로 매입했다. #

대구광역시장 당선 이후 경제부시장, 신공항추진단장, 군사시설이전추진단장은 각각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군인 출신 인사를 기용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2022년 6월 20일 첫 인사에서 기획재정부 출신의 이종화 기획재정부 대외협력국장을 경제부시장으로 내정하였다. #

기존에 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던 송하진 전라북도지사가 3선 공천을 못 받고 퇴임하면서 회장직이 공석이 된 시도지사협의회의 임시 회장이 되었다. 그가 임시회장이 된 구체적인 사유는 미상이나 홍준표 본인의 언급에 따르면 17개 시도지사들 중 가장 연장자라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165]

한편 홍준표는 경남지사 재임 때 폐쇄시킨 진주의료원에 이어 이번에도 공공병원에 적대적인 입장으로, 제2대구의료원에 대한 논의가 그의 시정에서 중단될 상황에 놓였다. #

2022년 8월 처음으로 실시된 민선8기 광역단체장 직무수행 평가에서 긍정률 54%를 기록하여 전체 광역단체장 중 7위에 올랐다. 비록 선거 때 얻은 득표율에 비하면 많이 낮아진 수치이긴 하지만 대구광역시 전체 인구 대비 득표율과 전임자인 권영진 시장이 코로나 사태 이후 지지율이 바닥을 쳤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볼 수 있다. 시장 취임 이후 착수한 고강도의 시정 개혁이 주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고 청년의꿈을 활용한 여러 소통행보 등이 호감을 산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166]

한편, 2022년 10월 14일쯤 개인 SNS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의 차기 감독으로 김태형두산 베어스 감독 선임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박진만 감독대행이 그대로 감독으로 내부승격되었다.

2022년 10월 17일, 대구시장직과는 별도로 국민의힘 상임고문으로 위촉되었다. #[167] 대구광역시장 취임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당에 지속적으로 힘을 실어준 점과 연관지어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부분.[168]

2022년 12월 1일, 헌법재판소에 직접 종부세 부과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2022년 12월 12일, 대구광역시한화자산운용 간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대구지역 주요 산업단지에 태양광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3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는 사업이며, 태양광 발전 설비를 대구국가산업단지, 대구제3산업단지, 대구염색산업단지, 서대구산업단지 등 대구 대표 산단에 설치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2023년 4월 13일, 김기현 지도부 출범 이후 전광훈 목사와 관련하여 당 지도부와 연일 설전을 벌이다가 당 상임고문직에서 해촉되었다.

2023년 4월 17일에 전라북도 남원시 지리산휴게소에서 영호남의 오랜 숙원 사업이자 화합의 시작, 남부권 거대 경제권 조성의 기틀이 될 수 있는 달빛고속철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특별법 공동 추진 업무 협약을 광주광역시와 맺었다.

2023년 6월, 지역 언론을 맹비난하며 "빌붙을 생각만 하니 대구 경제가 꼴찌다."라는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1인당 GRDP 기준으로 대구광역시가 꼴찌라는 것으로 지역 기득권 세력을 공격한 것이다. #

2023년 9월 20일,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수자원공사는 취수원 이전을 무조건 하겠다고 말했고, 환경부와는 2023년 말쯤 합의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169]

2024년 1월 25일, 영호남의 오랜 숙원 사업인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며, 이에 2월 7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을 비롯해 이병노 담양군수, 최영일 순창군수, 최경식 남원시장, 최훈식 장수군수, 진병영 함양군수, 김윤철 합천군수, 이남철 고령군수, 이병철 거창 부군수 등 달빛철도 경유지 기초단체장과 영호남 시도민 1200여명과 함께 달빛고속철도 특별법 국회 통과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SjlAbLf8KI

2024년 3월 28일, 대구 달성군 구지면에 준공된 프랑스의 자동차 부품 대기업 '발레오'의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였다.

국민의힘 총선 참패 이후 4월 12일 SNS에서 패인을 한동훈에게 돌리면서 원색적인 어조로 비판했다. 홍준표는 "문재인 믿고 사냥개가 돼 우리를 그렇게 짓밟던 애 데리고 와서 배알도 없이 그 밑에서 박수치는 게 그렇게도 좋더냐"라며 "그런 노예근성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나"라고 비꼬았다. 또 "천신만고 끝에 탄핵의 강을 건너 살아난 이 당을 깜도 안 되는 황교안이 들어와 대표 놀이 하다가 말아먹었고, 더 깜도 안되는 한동훈이 들어와 대권 놀이 하면서 정치 아이돌로 착각하고 셀카만 찍다가 말아먹었다"라고 비판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보수 세력의 대권주자로서 활동을 재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170] 이에 대해 잠재적 경쟁자를 견제하려는 발언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으나, 홍준표 본인은 그런 해석이 기자들의 어처구니없는 망발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홍준표의 맹 비난에 김경율 전 비대위원은 SBS '김태현 라디오 쇼'에 출연하여 '홍준표 시장의 이러한 일련의 증상에 자신이 대답할 필요를 못 느낀다'며 '강형욱 씨가 답변하는게 맞는 것 같다고' 일격했다.# 6월 26일에도 "당내 선거에서도 이상한 애가 당선이 돼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정부 여당이 같이 몰락하는 겁니다."라면서 재차 한동훈을 비판했다.#

채널A 단독보도에 의하면 총선 직후인 4월 16일 윤석열 대통령 초청으로 4시간 정도 만찬을 함께 하면서 국무총리직을 제안받았으나 고사했다고 한다. 또한 친윤 성향인 김한길과 장제원을 각각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제의했다고 한다.#

5월에는 정부의 검찰 고위급 인사를 두고 야권에서 ‘김건희 여사 수사 방탄용’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느냐”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다. 안철수는 “그건 민간인의 이야기다. 국민들을 위한 의무가 있는 공직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했다. 이어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본인이 공직을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이에 진행자가 “그럼 홍준표 시장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라고 하자 안 의원은 “글쎄요. 하도 왔다 갔다 하는 말을 많이 해 해석하기가 굉장히 곤혹스럽다”고 했다.#

2024년 4월 기준으로 최근 지지율이 많이 빠지고 있는 모양새다. 박정희 동상 건립부터 시작해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의 갈등,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물의를 빚은 발언,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과의 설전 등 숱한 논란이 작용한 결과로 보여진다. 가뜩이나 최근 대구 경제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 빨리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7월 23일, 그동안 원색적으로 비난해온 한동훈이 압승하여 당대표로 선출되자 홍준표는 이해할 수 없다며 당분간 중앙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171]

10월 23일 대구시가 주최하는 미래혁신기술박람회 초청차 대구로 내려온 주한 일본대사와 이스라엘 대사를 연이어 예방했다.#

10월 29일, 김건희 문제로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고있는 한동훈에게 또다시 비판의 날을 세웠다. 홍준표는 한 대표를 겨냥해 "되지도 않는 혼자만의 대권 놀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여당 지도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는 당내 의견을 수렴해 비공개로 대통령실과 조율하고 국민 앞에 발표한다"며 "지금 지도부처럼 대통령 권위를 짓밟고 굴복을 강요하는 형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건 무모한 관종 정치"라고 했다.#

홍준표 시장은 한동훈 당원게시판 논란에 대해 "대통령 부부를 욕하는 게시물이 당대표 가족 이름으로 수백개가 게시됐는데 당은 즉시 수사의뢰해 진상 규명할 생각은 않고 쉬쉬하며 넘어가려 하는 것 같다"며 "증거인멸할 생각 말고 당무감사가 아닌 수사를 의뢰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이어 "(이름을) 모용(· 이름이나 자격을 허위로 기재)했다면 모용자를 색출해 처벌하고 사실(한 대표 가족이 게시판에 글)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사무총장은 도대체 뭐하고 있냐"고 서범수 총장을 불러 세웠다. # ##

15. 지지율

15.1. 리얼미터

8회 지선 이후 처음 실시된 2022년 7월 여론조사에선 7위로 54.9%의 지지율을 기록하였다.링크

2022년 8월 여론조사에선 한 단계 오른 순위인 6위, 1.1%p 하락한 53.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링크

2022년 9월 여론조사에선 순위가 한 단계 올라 5위, 지지율은 0.7%p 올라 54.5%를 기록했다.링크

2022년 10월 여론조사에선 순위는 동결, 지지율은 2.3%p 올라 56.8%를 기록했다.링크

2022년 11월 여론조사에선 순위가 한 단계 올라 4위, 지지율은 1%p 올라 57.8%를 기록했다.링크

2023년 1월 여론조사에선 순위가 두 단계 하락한 6위, 지지율은 0.6%p 하락하여 56.1%를 기록했다.링크

2023년 2월 여론조사에선 순위가 두 단계 상승해 4위, 지지율은 1.6%p 상승하여 57.7%를 기록했다.링크

2023년 3월 여론조사에선 순위는 동결, 지지율은 0.9%p 하락하여 56.8%를 기록했다.

2023년 4월 여론조사에선 순위가 여섯 단계 하락해 10위, 지지율은 7%p 하락하여 49.8%를 기록했다.

2024년 4월 여론조사에선 3월에 비해 지지율이 8.1%p 하락하여 47.8%를 기록했다.
[1] 일명 통합민주당 또는 꼬마민주당. 1995년 김대중동교동계가 신당인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나간 이후 잔류했던 비DJ계 인원들이 재창당한 정당으로, 현재 더불어민주당 등 민주당계 정당과는 다른 노선의 정당이다. 그렇다고 당시 존재했던 보수정당인 신한국당이나 자유민주연합과도 다른 노선을 걷는 등 사실상 제3지대 역할을 하다가,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으로 재출범했으며, 만약 홍준표가 이 때 민주당에 입당했다고 해도 몇 년 뒤 합당 과정을 거쳐 보수정당 소속이 됐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홍준표를 민주당으로 영입하려고 시도했던 노무현은 훗날 신한국당과의 합당에 반대하고 탈당한 뒤 새정치국민회의로 향한다.[2] 정작 강삼재는 이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했다. 사실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희대 법학과 선후배로 이전부터 친분이 두터웠던지라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게다가 이 시절에는 문재인은 정치인이 아니었으며, 그가 따르던 김영삼이 건재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보수정당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3] 물론 지금이야 당정분리가 이뤄졌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참여정부 이전까지는 대통령이 직접 여당 총재를 맡고 인재영입이나 공천에도 관여하던 시절이었다.[4] 3당 합당에 반발하여 DJ 쪽으로 옮겨갔다.[5] 전임자인 김영구 의원과 2위를 한 허인회 후보 두 사람 다 위장전입을 한 게 밝혀져서 선거 자체가 무효가 되었다. 김영구 의원은 이론상 재출마가 가능했지만, 결국 불출마로 결론지었고, 변호사 생활을 하던 홍준표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6] 총 48명의 서울 선거구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다선 의원은 겨우 8명(김덕룡, 이재오, 홍준표, 맹형규, 박성범, 박진, 원희룡, 권영세)으로, 훗날 중립과 친박 사이에 걸친 권영세를 제외한 대부분이 친이로 편입되었다.[7] 여담이지만 이 때 오세훈에게 밀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되지 못하자 오세훈을 향해 "이미지 정치만 한다" 라며 대놓고 비판했다.[8] 둘 다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잃고 미국 워싱턴으로 도피하다시피 건너가면서 워싱턴 오리알 3인방 소리를 들었다.[9] 여러 정황상 대선 경선은 이명박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10] 같이 추대되었던 정책위의장은 친이의 핵심 중 하나로 고용노동부장관대통령비서실장을 맡게 되는 임태희였다.[11] 이 때 원내수석부대표(국회운영위원회 간사 겸임)는 주호영(재선)이었다. 또한 원내부대표단은 김정권(공보담당), 윤상현, 김선동, 정양석, 이범래, 박준선, 이종혁, 이은재였다. 또한 수석정책조정위원장은 최경환이었다.[12] 이 때의 인연 때문에 홍준표가 21대 총선 당시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하면서 일부러 주호영과 겹치는 지역구(수성구 갑)를 피했으며, 당대표를 하던 시절에 친박계였던 윤상현은 친박이었음에도 지금까지 홍준표와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2023년에 홍준표가 당내에서 징계를 받자 너무 과하다며 감싸기도 했었을 정도. 김선동은 홍준표가 당대표를 하던 시절에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았다.[13] 다만 이 비판이 무색하게도 이명박 대통령 말기에 내곡동 사저 논란이 터지면서 결국 이 발안은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14] 이 때 한 발언이 600만 달러의 사나이가 되었다는 조롱이었다.[15] 1위 안상수, 2위 홍준표, 3위 나경원, 4위 정두언, 5위 서병수가 당선되었다. 이 때 친박계는 이성헌, 이혜훈, 한선교 등으로 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지도부 한 자리 밖에 얻지 못 했다.[16] 다만 지금의 경원선의 선로용량이나 당시 청량리역의 배선구조를 생각해보면 비판만 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왕십리역까지 올라온 분당선은 인상선이 끊겨있기 때문에 선로를 타 넘고 중앙선으로 들어오며, 다시 1번홈까지 들어간다. 인상선을 청량리역까지 잇기에는 주변 건축물들을 철거하거나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데다가 쭉 잇는다고 해도 청량리기관차사무소가 있어 그 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런 이유에서 이런 상태로 유지되고 있으며 당연히 많은 열차를 운행하기에는 어렵다. 게다가 중앙선 전철은 물론 ITX-청춘, 강릉선 KTX까지 들어온 지금에서는 운행횟수가 하루에 열 번도 채 되지 않는다.[17] 하지만 당시에는 ITX-청춘강릉선 KTX가 없었으니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18] 하지만 이 당시 한나라당 주류였던 친이계가 박근혜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나온 친박계 유승민을 막기 위해 전략적으로 홍준표를 지원했었다. 반면, 친박계는 친이계 대표 주자로 여겨지던 원희룡, 남경필 등을 밀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홍준표를 지원했었다. 당시 1인 2표제에서 2위 표를 양측에서 고루 쓸어담았던 것.[19] 여담으로 이 당시 유승민은 이미 박근혜와 소원해져있는 상태였으나 유정복, 최경환, 이한구 등과 함께 여전히 친박 핵심으로 분류되는 정치인이였다. 재선 의원에 불과했던 유승민이 전당대회에서 청와대의 지원을 받던 원희룡과 남경필을 여유있게 따돌리고 2위를 한 것도 박근혜와 친박의 지원을 받은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으며 전당대회 이후 최고위원이 되면서는 철저하게 박근혜와 친박의 의중에 따라 행동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당 차원의 지원 철회 주장이나 디도스 사태 당시 지도부 총사퇴 역시 유승민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나 실제로는 자신의 대권가도에 방해가 되는 오세훈과 홍준표를 쳐내고자 하는 박근혜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였다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며 홍준표 지도부 와해 이후 유승민은 보란듯이 자신의 원지역구인 대구 동구 을에 공천을 받아 3선 의원이 됨은 물론이고 국회 국방위원장, 160석 규모의 거대 여당의 원내대표로까지 체급을 높였다. 유승민이 비박으로 전향한 것은 적어도 가치관 차이를 드러낸 새누리당 원내대표 취임 이후라고 보는게 맞다.[20] 전형적인 정신승리의 사례로, 이 때 홍준표의 '사실상' 드립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조롱거리로 쓰였다.[21] 이 때 당 지도부와 상의없이 독단적인 행보를 펼친 오세훈에게 크게 실망해서 오세훈이 자신의 잠실 자택을 찾아오자 내쫓아버리고, 한동안 의절에 가까운 사이였다.[22] 처음에는 이명박 대통령에 용감히 항거하는 이미지로 당내 지지를 얻었는데, 정작 대표가 된 후에는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면서 친박과 친이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23] 홍준표 입장에서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보기엔 어려우니 억울하겠지만 이미 당 분위기가 박살이 났으니 당 쇄신을 위해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24] 파일:external/img.etoday.co.kr/20120205102114_177505_624_807.jpg[25] 이 일이 있은 후 강용석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 제기와 관련하여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였고, 하마터면 사퇴할 뻔 했지만, 앞에서 서술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범인이 당시 대한민국 국회의장이던 박희태로 밝혀지면서 국회의장직이 공석이 되어 결국 사퇴서가 수리되지 않았다. 참고로 2010년 9월에 여자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때문에 출당된 관계로 당적은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19대 총선에서 강용석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했다.[26] 홍준표 대표는 이 들 갈등을 빚다가 이대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들을 두고 "꼴 갖잖은게 대든다. 패주고 싶다." 같은 발언을 하여 갈등의 끝을 보여주고 만다.[27] 결과적으로 야권도 크게 개편되는 결과로 이어졌는데 한미 FTA가 통과되면서 이를 막지 못 한 손학규 체제에 대한 비토가 이어졌기 때문. 이후 친노 및 시민사회세력과 한국노총 등이 합류하면서 민주통합당이 출범했으며,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통합파 + 국민참여당이 하나로 합쳐져 통합진보당으로 출범한다.[28] 게다가 홍준표의 화법을 보면 알겠지만, 거친 표현도 서슴치 않으면서 활용하는데 문제는 당시 여당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홍준표의 이런 거친 표현들은 전부 기사화 되었고, 막말과 폭언을 일삼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는데 한 몫을 했다.[29] 그리고 홍준표는 김종인을 자신이 취조해서 사실을 자백했다고 되려 김종인을 디스했다.[30] 이 때 승리한 민주통합당 민병두는 홍준표를 6,800표 차이로 이겼다. 8.34%의 제법 큰 차이였다.[31] 무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갑구의 허용범 후보와 을구의 홍준표 전 대표를 지원했으나 둘 다 낙선했다. 갑구는 장광근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정치적 생명이 위태로운 그런 상황이었고 을구는 홍준표 전 대표가 소홀했다는 점이 있다.[32] 스트레스로 눈썹이 빠지자 눈썹 문신을 하면서 진해진 눈썹 때문에 '홍그리버드'(...)라는 별명도 생긴 적이 있었다.[33] 더군다나 홍준표가 11년간 지역구 국회의원을 했기 때문에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한 예비후보들의 체급도 상당히 낮았다. 그래서 자신의 거취를 당에게 위임한 홍준표를 원래 지역구에 전략공천시킨 것.[34] 당시 장광근 전 의원의 측근이던 모 서울시의원은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지역구를 반납하고 호남지역에 출마하라고 비판했을 정도였다.[35] 이후 20대 대선에서 이낙연 의원이 대선 경선 출마를 이유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바람에 야당 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그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똑같이 반복되었다.[36] 19대 총선 낙선 후 JTBC의 요청으로 정치 토크쇼 '홍준표 라이브 쇼'를 진행하기로 하고 예고편까지 찍었으나, 고심 끝에 방송 런칭을 포기하고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고 한다.[37] 이 때 경선 맞상대 중 1명이 박완수다. 박완수는 2012년 경상남도지사 보궐선거 경선에서도 홍준표와 맞대결했으나 패했는데, 2014년 경선에서도 또 다시 홍준표를 만나서 패하고 말았다. 박완수는 삼수 끝에 2022년에 경상남도지사로 당선됐다.[38] 이 때 복지 등 도민들에게 돌아갈 경제적 혜택은 하나도 줄이지 않았다고 한다.[39] 사천은 KAI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등, 원래부터 항공우주산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사천과 진주 일대에 뭐가 있는지를 생각하면, 어색한 것도 아니다.[40] 그러나 진주의료원은 비효율 때문에 폐쇄하기 전까지 계속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폐업 수순을 밟은 후, 진주의료원 건물은 현재 경상남도청 서부청사로 이용 중이다.[41] 이 발언의 배경은 무상급식을 했더니 품질이 너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 반대 여론이 줄지 않았던 것이었다. 감사까지 해본 결과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손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42] 또한 당시 박종훈 경남교육감과의 갈등 또한 심각했는데, 경상남도교육청경상남도의 무상급식 감사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경상남도에서는 도비가 들어가는 사업이니 감사를 받으라는 의견을, 경상남도교육청에서는 경상남도와 교육청은 상하관계가 아니므로 경상남도의 감사를 받을 의무가 없으며 필요하면 국정감사를 받겠다는 의견을 내세워 팽팽하게 대립했는데, 경상남도 측에서 감사를 받지 않는 사업에 도민의 세금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이유로 도비 지원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감사 결과 수많은 비리가 적발되었다.[43] 그래서 홍준표는 2017년 4월 29일 김해 유세 중에 이들을 언급하며 "퇴임하는 날 소금을 뿌리지 않나...에라이! 이 도둑놈의 새끼들이 말이야!"라는 발언을 하여 또 다시 막말을 했다고 까였다. 비슷한 시기에 문재인이 한 "이젠 국민들도 속지 않는다! 이 놈들아!" 발언도 같이 논란이 되었다.[44] 대구광역시장이 된 현재도 지방채 발행 금지 기조를 그대로 직결하고 있다.[45] 물론 STX가 망하고 조선업 경기가 나빠진 것이 홍준표 때문은 아니지만, 경제 성장률이 낮아진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46] "두 행사를 했던 당시에는 어떻게 평가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결과를 갖고 효과를 분석했더니 많이 부족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나왔다는 경남도청 관계자의 언급과 경남도가 '흑자 엑스포'라며 크게 자랑했던 국제 행사를 2년 만에 '무분별한 국제행사'로 폄하하고 폐지했다는 반발로 나눠졌다.[47] 이를 두고 홍준표 지지자들은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성공한 도지사가 실패한 비서실장에게 패배한 선거'라고 평하기도 한다.[48] 주민소환은 경남 총 유권자의 10%인 27만명을 넘으면 홍준표의 소명을 받아 실시가 되는데 신청 서명한 사람이 35만 명에 달해 주민소환이 유력하다는 말도 나왔다. 선관위에 의해 투표 공고가 나오면 투표일까지 직위는 중단된다. 이후 투표가 진행되면 총 유권자의 1/3이 투표한 가운데 과반수를 차지하면 직무가 해제된다. 만약 해제가 되면 2016년 4월 재보궐로 새로운 도지사를 뽑게 된다. # 다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기에 실제 주민소환이 이뤄지기 위해선 중복서명 검사 등의 필요한 절차들부터 밟아야 했고, 총선이 끝난 뒤에 명단 검토 및 주민소환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였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49] 이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로 확정되었다.[50] 당 원내대표, 대표, 상임위원장, 재선 도지사, 4선 국회의원을 지낸 홍준표를 빼면 체급이 다들 약한 편이었다. 그나마 6선 의원과 경기지사를 지내고 대선에 2번 출마한 이인제가 홍준표에게 비벼볼만한 수준인데 이 사람은 15대 대선 당시의 신한국당 경선 불복, 18대 총선 당시의 통합민주당 공천 불복 등으로 인해 계속된 탈당으로 인해 좌-우 가리지 않고 이미지가 크게 부정적이었고 3선 시장과 3선 도지사를 지낸 김관용은 TK 지역을 대표하는 행정관료였지만 중앙정치 경험이 없었던 철저한 지방 인물에 불과했다. 김진태는 차장검사를 지낸 재선 국회의원 출신이었으니 전국적인 인지도는 낮은데다가 그 인지도 마저 김진태 본인의 실언으로 올린 쪽에 가까운지라 체급이 가장 약했다.[51] 반대로 얘기하면 홍준표가 아니었으면 이인제, 김진태, 김관용 중 한명이 대선에 나갔다는 얘기가 된다.[52] 실제로 홍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사건에 대해 "안타깝지만 박근혜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53] 하지만 조원진자유한국당을 탈당하면서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후보는 탄핵을 찬성하는 보수 세력은 물론이거니와 반대하는 보수 세력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고사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였다. 따라서 홍준표 후보는 당시 어느 쪽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54] 개헌에 대해서는 문, 홍, 안의 공통 사안이기도 했으며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이기도 하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취임하면서 밝혔던 공약 사안이기도 하다.[55] 일본메이지 유신을 이루어낸 사카모토 료마는 생전에 '일본을 한 번 세탁할까 한다'는 편지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56] 구체적인 상황은 이렇다. 홍준표의 공약 토론 중 유승민이 성완종 리스트를 두고 "본인도 세탁기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하자 홍준표가 "나는 이미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왔다"(=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괜찮다)고 반박했다. 그 후 심상정이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건 맞는데 그 세탁기가 고장난 거 아니냐?"는 투로 받아치자 저 드립이 나온 것.[57] 10% 이상의 경우 50% 보전을 받는다.[58] 정작 선거 유세 기간 초반만 해도 문재인과 지지율 경쟁을 벌이던 안철수는 전국 250여개의 시군구 지역들 중 단 한 곳에서도 1위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홍준표는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전 지역과 경상남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승리했고, 부산광역시, 강원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경기도, 인천광역시 일부 지역에서도 승리하면서 선전했다.[59] 다만 득표율 차이는 17.1%p로 지난 17대 대선의 22.6%p를 넘지 못했다.[60] 그나마 후보들을 쳐내서 최종 선발된 후보들이 강성 친박, 철새, 인지도가 떨어지는 경북 출신 광역자치단체장이었다.[61] 민주당 계열 정당에는 정동영이 있지만, 홍준표의 경우 그 상황 속에서는 상당히 선방한 편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새누리당 지지율이 4%였던 때가 있으니...[62] 2017.5.10에 뜬 인터넷 뉴스에서 언급되길 당권에 도전할 생각은 (적어도 지금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뒤집어서 보면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난데없이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 예를 들어 유력한 대선 주자가 갑자기 언론에 '나는 대통령에는 뜻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라며 공공연히 떠들다가 갑자기 '국민의 부름을 받아서'라는 이유로 대선에 출마를 하는 모습도 있다.[63] 썰전에서 나경원 의원과의 통화에서도 홍준표 전 후보에 대해 당 대표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64] 마침 홍준표의 주민등록상 주소와 현재 거주지가 바로 송파구다. 실제로 대선 선거운동 기간 초반에 홍준표가 송파구민이니 찍어 달라는 현수막이 송파구 내 곳곳에 걸려있었고, 사실 홍준표 역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송파구 갑에서 국회의원에 최초로 당선된 적이 있다.[65] 다른 지역구인 노원구 갑 지역구의 경우 연고가 있는 사람이 당선되었기 때문에 보수정당의 아성이고, 노원구 을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하기는 하지만, 늘상 보수정당과 접전을 한 지역구다. 하지만 노원구 병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제외하면 민주당계나 진보정당이 매번 이겼다.[66]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노원 병은 열린우리당임채정 후보가 당선되며 4선을 기록하여 민주당 지지세가 상당히 높아졌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홍정욱 후보가 당선되어 여당 지지가 잠시 강력해졌지만,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권심판론이 작용해 진보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이겼고, 이후 재보궐선거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기반 영향으로 안철수 전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다.[67] 15대 맹형규, 17대 박계동, 18대와 19대 유일호.[68] 사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이 지역의 새누리당 후보는 친박 성향의 유영하가 단수 공천되었지만, 과거 의혹으로 인해 무공천 지역이 되었고, 친여 무소속 후보인 김영순 후보가 나왔지만, 더불어민주당 최명길 후보에게 패했다.[69] 단순한 비아냥이 아니라, 민정수석직을 받아들이기 전에 서울대학교 교수를 먼저 사퇴해야 한다는 것.[70]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친박 퇴출과 동시에 바른정당 끌어안기가 현 상황에서는 최선이다. 홍준표 전 후보는 3월 경선 때부터 바른정당의 복당을 계속 외쳐 온 중심 인물이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바른정당을 띄우면서 자유한국당을 고립시키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훗날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서는 친박 청산과 보수 세력의 재결집이 꼭 필요하다.[71] 실제로도 정우택 원내대표는 친박계와 텃밭 지역인 TK의 정서를 잘 알고 있어서 대선 기간 때 바른정당 탈당파의 복당을 줄곧 반대해 왔다.[72] 그러나 기껏 친박의 정치 생명을 살려 줬더니 책임론을 들고 나오면서 홍준표를 방해하자, 이 후 인터뷰에서는 '친박은 빠졌으면 한다'에서 굉장히 불쾌해하는 표정을 짓는다.[73] 그러나 조국 모친의 재단 탈세 문제 공세를 통해 드러난 나경원 본인의 재단 탈세가 큰 핸디캡으로 작용하고 있다.[74] 홍준표와 경선에서 경쟁했던 후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인제와 김진태는 사실상 친박으로 부류되는 인물들이다.[75] 말이 혈투이지 사실상 김영삼이 3당합당 이후 민정계를 몰아낸 투쟁을 자신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자신의 편을 갖고 있던 김영삼과는 다르게 이 분은 독고다이 스타일이라 자신의 편조차도 얼마 없다.[76] 실제로 바른정당 의원들이나 지자체장을 보면 아버지가 고위 관료이거나 부자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유승민, 김세연, 김무성, 남경필 등이 있다.[77] 보수 대통합을 외치면서 정작 같은 보수를 물어뜯고 있는 당사자의 작태, 그리고 박근혜를 싫어하는 정치인이면서 겉으로는 박근혜 지지자들한테 듣기 좋은 '박근혜 사면(유세에서는 정확히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아프면)병원에 보내자'고 했지만 일반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박근혜 사면이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친북좌파 집권막자'같은 입발린 소리만 골라서 하는 모습, 또 선거 후에는 '친박은 빠져라'라고 속내를 드러내는 솔직하고 당당하지 못한 모습 등을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박근혜 탄핵 이후 대다수의 민심은 문재인 및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돌아섰고 보수는 결집력을 잃고 방황했다. 심지어 지난 선거에 이명박과 박근혜를 투표한 사람들 중에서도 민주당으로 돌아선 사람이 나올 정도. 이대로 간다면 자유한국당은 궤멸될 것이 뻔했기에 선거에 이기려는 목적보다는 당장에 방황하는 보수표를 끌어모으는 목적이 더 강했을 것이다. 홍준표가 선거 기간 동안 했던 '막말'들은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지극히 계산적인 말이었다. 게다가 좋든 싫든 보수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구심점이자 상징이 '박근혜'였으니 자체 계파가 없는 홍준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친박세력과 곧바로 의절하는 이중적인 모습은 멀리 내다보지 못한 경솔한 처사였다.[78] 실제로 전여옥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닌 게 바른정당은 탄핵 찬성 보수층인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TK와 서경남 민심은 이들을 배신자로 취급하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TK와 서경남이라는 든든한 지지기반이 있지만, 이 지역들이 모두 친박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라 친박 청산을 하는 순간 TK와 서경남이라는 지지기반 자체가 날아가버린다. 그렇다고 친박청산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탄핵 찬성 보수층인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얻기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결국 자유한국당은 지선, 총선, 대선까지 모든 선거들에서 TK와 서경남 빼놓고는 거의 외면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라 사실상 딜레마에 빠져 있다. 결국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이라는 두 보수정당들은 앞으로 정권 잡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둘째치고 아예 소멸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79] 박근혜도 2011년 경 공식적으로 계파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더 이상 명분은 없다. 그저 홍준표 말대로 선거철 때나 박근혜 얼굴, 이름 팔아서 경북에서 당선되어 정치생명을 이어가는 바퀴벌레같은 자들임은 틀림없다.[80] 비록 세력은 홍준표가 불리하나, 이미 대다수의 국민들은 골수 박근혜 지지자들을 제외하곤 친박으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에 명분은 오로지 홍준표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쇄신하는 길은 친박정당이라는 프레임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태어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 정론.[81] 19대 대선에서 안철수에게 표가 잠식당한 것이 이를 잘 보여주는데, 자유한국당의 집토끼인 보수 지지층들조차도 홍준표에 대해 돼지 흥분제 자서전 기입 논란 등으로 대통령이 되기에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고 보았기에 안철수를 찍어줬을 정도이다.[82] 여기서 화룡점정을 찍은 게 바로 일자리 110만개 공약은 실무진이 했기에 자신은 왜 그렇게 숫자가 나온지 모른다 발언이었다. 자신의 대통령 당선 공약 수치를 자신도 왜 그렇게 됐는지 몰랐다는 것. 결국 안철수에게 크게 털렸다.[83] 박근혜조차도 대선에서는 젊은 층의 지지를 30프로 이상은 받았지만, 박근혜에 대한 젊은층의 지지는 10프로 미만 정도에 불과하다. 중장년 보수층은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만, 젊은 보수층은 바른정당을 지지하는 쪽이 더 많은 실정이다. 사실 박근혜의 경우에는 여성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워 여성 유권자들의 표를 많이 받은 영향도 없잖아 있다. 반면 홍준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84] 당장 바른정당이 탄생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친박계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바른정당은 자유한국당과 연대하거나 당대당 통합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박근혜에 대한 출당조치, 친박계 인적청산을 그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85] 이런 상황은 홍문종이 홍준표를 향해 "낮술하셨나?"라는 말을 통해 잘 드러나 있다.[86] 비슷한 사례로 YS가 3당 합당민주자유당의 당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민자당의 최대 주주인 민정계를 몰아내는 투쟁을 벌이다가 TK에서 반 YS정서가 일어 1992년 14대 대선에서 TK에서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으며(2017년 이전까지 보수정당 대선 후보가 TK에서 받은 득표율 중 가장 낮았다.), 민정당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자민련이 대구지역 의석 13석 중 8석을 휩쓴 전력이 있다.[87] TV 토론회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은 것을 시작으로 지방 유세에서도 '박근혜가 옥중에서 병고를 치르고 있는데 병원에 보내야 한다', '박근혜가 공정하게 재판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중장년층의 박근혜 지지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이용한 것까지는 그런대로 효과를 봤으나, 이에 욕심을 너무 부린 탓에 일관되게 박근혜와 선을 긋기는 커녕 간접적으로 기대는 모습을 보여 당장에 선거에는 표를 좀 더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에 가깝다. 독에 든 성배를 마신 셈이나 다를 바 없다.[88]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당시 소장파였던 젊은 대권주자들이 대거 바른정당으로 넘어가 버린 상황이라 자유한국당에는 인재들이 많이 없어진 상황이다. 그나마 김진태와 나경원이 있지만, 워낙 구설수나 행보들이 좋지 않은 인물들이라 적합하지 않다. 그나마 문재인과의 알력 다툼으로 인해 민주당을 탈당한 또 다른 독고다이 파 조경태가 남아 있기는 하다. 부산광역시에서 꾸준히 텃밭을 갈고 닦아 부산 사하구 을에서만 4선을 한 인물. 허나 지난 경선 과정에서 친박에게 밀려 1차 컷오프를 당할 정도로 아직도 당 내 지명도는 극히 낮다.[89] 대표적으로 박근혜가 김종인을 등용하여 경제 민주화 공약을 내걸어서 대통령이 되었다가 정작 대통령이 된 후에는 그것을 내팽개친 전력이 있다.[90] 정확히는 김무성계(친무)와 친홍의 연합전선이다.[91] 2016년 12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사퇴 이후 자유한국당은 근 6개월 반 동안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의 대표 권한대행 체제로 돌아갔다.[92] 지금까지 여야를 통틀어서 임기를 다 채운 당대표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실제로 홍준표도 결국 임기는 다 채우지 못했다. 보수계열에서는 그나마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황우여 새누리당 초대 대표가 2년을 채웠으나, 민주당계에선 거의 없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인기에 힘입어 대선과 지선을 모두 압승한 추미애가 간만에 2년 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퇴임하는 대표가 되었다.[93] 2006년 한나라당 혁신위원장을 맡아 당이 부흥하는데 기여했으나 2008 총선에서 공천 탈락한 친박들이 당을 뛰쳐나가 미래희망연대에 가담, 2011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당 개혁안이 거부당하고 친박 브레인 유승민이 최고위원들의 동시 사퇴를 주도하면서 당 대표에서 반강제로 사퇴, 2012년 경남도지사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는 과정에서 경선부터 친박의 집중 견제를 받고 후보로 선출되어 선거 운동을 할 때도 박근혜와 친박의 눈치가 보였던 당원들이 제대로 도와주지 않음.[94]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복지라는 대세를 바탕으로 적절히 녹아들고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를 잘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 자유한국당은 반문과 종북, 그리고 반공으로 공격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비전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단적으로 공무원 증원에 반대하고서는 정작 국회의원 세비와 보좌관 증원에는 찬성을 한다. 여기에는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까지 한몸으로 찬성했다. 유일하게 반대한 세력은 바른정당인데 홍보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여론도 타지 못했다.[95]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이뤄진 듯 하다.[96] 좀 더 자세히 본다면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남녀차별과 폭력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류석춘이 여성에게 벌어지는 폭력은 구시대적 발상이고 홍준표는 집안일은 자신도 한다는 발언을 했다. 즉 젠더 폭력이라는 단어 보다는 여성이 당하고 있는 폭력에 무지하다는 의미다.[97] 2018년 지방선거가 아닌 이유는 대선 출마 전까지 이미 경남도지사였다는 점도 있지만, 지자체장은 정치적인 입장을 직접적으로 표명하는 게 금지되기 때문에 당대표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점이 더 크다.[98] 공화당 소속.[99] 공화당 소속.[100]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적 핵무장은 아예 다른 개념이며, 후자가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101]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적극 지지하는 것은 애초에 미국이 한국의 핵개발을 막아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리고 우리나라 핵무장은 곧 일본의 핵 무장, 대만의 핵무장을 불러오지 않는다고 장담 못한다. 그건 중국이 제일 싫어하는 시나리오다.[102] 박근혜를 출당시킴으로써 명분을 살리고 동시에 이의 대한 비판적 논조를 이어가 박근혜 지지세력을 흡수할 요량이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다.[103] SNS나 자유한국당의 일부 의원들이 신년기자회견 때 문재인 대통령 앞에 있던 프롬프터를 가지고 보좌관들이 작성한 답변을 문재인 대통령이 그대로 따라 읽었을 뿐이라는 폄하 공작을 하고 있는데 앞에 놓여있던 프롬프터의 스크린에는 기자들의 성명과 소속 언론사 질문 내용이 있었을 뿐이었다.[104] 실제로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지역구로 두고 있는 엄용수 의원이 재판을 받고 있어 만약 의원직 상실형이 선고된다면 창녕군이 고향인 홍준표 대표가 이 지역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아니면 창원시 성산구통영시·고성군에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105] 홍준표가 문제시한 기사는 바로 이 기사이다.[106] 대구 동구 을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데, 유승민 의원은 지역구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김규환 후보에게 크게 밀리고 있는 형국이며,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에서 당선엄용수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019년 11월 의원직을 상실하여 2020년 4월까지 의석이 비어 있다.[107] 다만 동대문구는 2020년 총선이후 민주당소속 구청장이 뇌물혐의를 받고 문재인정부의 실책, 부동산이슈 등이 떠올라 현재는 다시 보수화되었다.[108] 홍준표의 입장에서 보면 연고도 전혀 없는 지역인데다, 해당 지역구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박영선이 내리 3선을 해왔고 15대 총선에서 야권 분열로 신한국당 이신행 후보가 당선된 걸 제외하면 총선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된 사례가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수도권 내에서 진보세가 가장 강한 지역구 중 하나다. 이런 곳에 출마하라는 건 홍준표 입장에서는 사실상 19대 총선 강남구 을 정동영마냥 나가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109]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경상남도에서 김해시와 더불어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110] 기존 수성구 을 지역구 국회의원인 주호영이 지역구를 수성구 갑으로 옮겨 출마하기 때문에 수성구 을에는 미래통합당 의원이 사실상 비게 되었다.[111] 당시 통합당이 양산시 을에서 홍준표를 컷오프하고 대신 내보낸 나동연김두관에게 패배했지만 2년 후 양산시장 복귀에 성공했고, 홍준표 역시 대구 수성구 을에서 국회의원을 지내다 사퇴한 뒤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되면서 4년 후 22대 총선에서는 출마할 만한 인물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21대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김태호가 공천되었는데, 문재인의 양산 사저가 있는 곳인데도 김태호가 현역 김두관을 꺾고 당선되었다. 즉 이 지역구는 김태호나 홍준표 정도의 체급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충분히 당선시킬 수 있는 곳이었는데 컷오프된 김태호와 홍준표 둘 다 무소속으로 당선되고 괜히 김두관에게만 좋은 일이 되어버렸으니 이 컷오프는 황교안의 실책이 명백함이 4년 후에 증명되어버렸다.[112] 이를 이용해 '8번을 찍으면 팔(8)자를 고칩니다.'라고 홍보하기도 한다.[113]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여지듯이 50대와 60대 이상만 빼면, 홍준표 후보의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했다. 심지어 10~20대에서도 홍 후보의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강했다.[114] 다만 정태옥은 과거 이부망천 발언으로 당 지지율을 깎아 먹어 자업자득에 더 가깝다.[115] 한나라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116] 무소속 당선자 1명이 보수성향인 홍준표다.[117] 실제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양당 득표를 기준으로 의석수를 따지면 더불어민주당이 개헌선을 훨씬 뛰어넘는 230석을 얻는 결과가 나온다.[118] 출구 조사와 함께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실제로 80%를 찍었던 시절이다.[119] 얼마나 심했냐 하면, 도널드 트럼프가 지지자들의 노벨상 챈트에 웃으며 반응하기도 했고 문재인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을 정도였다. 당시 홍준표는 이런 현상을 경계하고 위장평화쇼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했지만, 오히려 '평화 방해꾼', '전쟁광' 프레임이 씌워지는 역풍을 맞았고, 결국 보수 철옹성이라고 불리던 강남3구옹진군, 강원도 최전방 지역까지 더불어민주당에 패했다. 그러나 지방선거 대패 이후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녕변원자력연구소를 철거한 뒤에도 여러 개의 핵무기 개발 시설이 가동 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뒤로 북한의 도발이 다시 시작되면서, 홍준표의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120] 다만 미래통합당 자체도 탄핵 당한 구태 보수 정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차명진 막말 등의 실책이 이어진 것도 큰 영향을 끼친것은 사실이다.[121] 복당 신청을 한 홍준표, 김태호, 권성동, 윤상현이 다 복당해도 107석이 된다. 다만 재보궐선거 전까지는 이게 통합당의 최대 확보 가능 의석 수이다. 다른 보수정당들이 모두 원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122]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종인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복당계를 내고 나서도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123] “이번 압박과 설움의 총선을 거치면서 외롭게 광야에서 나홀로 총선을 치르던 저를 도와주신 정규재TV, 황장수TV, 김거희TV, 홍카TV, 이큐 채널, 강우나라TV, 떳다!송만기TV, 장준호TV, 상도TV, 에타몽TV, 채널300 등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124] “선거기간 내내 홍준표 비방 방송을 일삼던 내친구 K TV, 대구까지 내려와 상대 후보 지지 방송을 하던 신의한수, 박철언 장관 보좌관 출신이 운영하는 유투브, 내가 보기에는 FALSE에 불과한데 FACT라고 우기는 TV에는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돌려서 비판했다.[125]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부작용이 많은 제도로 지적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김현미/비판 및 논란 참조.[126] 지나치게 안전진단 통과 요건이 까다로워서 위험성이 큰 건물만 재건축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를 완화해서 재건축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127] 이 문제는 대구의 오랜 떡밥이다. 이 문제를 잘 해결하면 TK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다.[128] 다만 김종인이 재건 과정에서 기본소득제 등의 급진적인 정책을 받아들이고, 보수색 빼기를 주장하는 등 당이 좌클릭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어 이에 불만을 가지는 보수층을 흡수할 가능성도 존재한다.[129] 조승래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고, 정청래 의원이 고문을 맡고 있는 등 민주당 의원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박성중, 이영, 권성동 의원 같은 보수 정치인도 속해있다. 2021년 8월 현재에는 권성동이랑 단 둘 뿐이다.[130] 하태경 의원 역시 복당 찬성파인데, 김웅과 비슷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친유 내에서도 유승민, 이준석, 조해진, 권영세, 김은혜 등은 찬성하지만, 정병국, 오신환, 김재섭 등은 반대하고 있고, 유의동은 중립으로 선회했다.[131] 홍준표와 이재명은 거대 여야 각각에서 둘 다 막말 정치인의 대명사로 꼽힌다.[132] 대선 출마 선언, MBN 인터뷰,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가서 3번 모두 같은 발언을 하였다.[133] 이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첫번째로 자신이 비록 지금은 2위지만 윤 후보의 연이은 실책 및 측근관리 실패로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내려가는 상황에서 당원들에게 자신이야말로 준비된 보수후보임을 어필해 그 지지율을 가져올 수 있고, 또 젊은 당대표를 비호함으로써 자신은 그렇게 꽉 막힌 중진이 아니며 당 내 내분을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어필함으로써 이준석을 지지하는 2030세대의 비호감도를 낮출 수 있다.[134] 이후 10월 1일 진행된 TV토론에서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관련 질문에 “식용을 반대하는 건 맞다”면서도 “그런데 법률로 과연 금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답했다. #[135] 이 밖에 2021년 8월 공개된 드라마 D.P 열풍에 편승하여 모병제를 주장하고 있다며 비판하는 후보들이 있었으나. 홍 후보는 최소 2021년 4월부터 모병제를 주장해온 바 있다.[136] 물(H2O)을 전기 분해하면 수소와 산소로 분리되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물전기분해방식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실제 산업에서는 다른 방식을 사용한다.[137] 이전 대선 때는 2030에게 철저히 외면받고 노년층과 TK 지역의 지지에 의존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하다.[138] 현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의혹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장모 관련 의혹과 고발사주 의혹에 휩싸이고 있단 점을 지적하며 여야 후보 모두 떳떳하지 못한 의혹에 휘말리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139] 김종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140] 맞는말[141] 이와 관련해 일부 2030은 '홍준표'를 정치인이 아닌 ''으로 소비했다는 주장이 있다.[142] 홍준표는 이준석 대표를 당 대표로서 충분히 예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대표에게 힘을 실은 적이 있다.[143] 지금껏 홍준표 의원이 청년을 위해 특별한 공약을 내놨던 건 아니었다.[144] 홍준표 의원 사례를 통해 청년층이 중시하는 건, 경청과 반응성으로 대표되는 태도와 화법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145] 홍준표는 '페미니즘' 대신 '휴머니즘·패밀리즘'을 지향하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146] 수능 100% 실시, 사법시험 부활 등[147] 19대 대선 낙마 후 쿨까당에 출연했을 당시 21대 대선 출마 의사 질문엔 답변 자체를 거부했었고, 이외에도 22대 총선이나 지방선거 경기지사 및 경남지사 출마 요청에는 생각이 없다거나, 졸업을 했다며 못을 박았던 것을 생각하면 꽤나 여지를 남긴 셈이다.[148] 중간에 개헌을 해도 개헌 당시에 재임 중인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기 때문에 차기 대통령은 무조건 5년 단임으로 끝난다.[149] 공식적으로는 1954년생이지만 본인이 실제 생년은 1953년 11월이라고 밝혔다.[150] 73세에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151] 72세에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3위로 낙선.[152] 하지만 이회창은 마지막에는 정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했다.[153] 69세에 198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 73세에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재선.[154] 78세에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155] 70세에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 74세에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2위로 낙선.[156]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한 번 노리고 있으며, 당선될 경우 조 바이든과 동일하게 78세에 당선된 대통령이 된다.[157] 검찰총장 임명 당시 그 누구도 윤석열이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될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21대 대선에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를 수 있다.[158] 이준석 대표는 당일 오후 4시에 선대위 사퇴를 표명했다.[159] 그러나 홍준표가 빨간색을 선호하는 건 무속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건 무속이 아니라 빨간색이 가진 이미지와 상징성 때문이다. 빨간색 항목의 상징성 참조.[160] 대구광역시장 선거 역사상 최고 득표율은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김범일 후보가 기록한 72.9%로 당시 민주당 이승천 후보가 16.8%의 득표율로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로서 선거비 전액 보전을 받은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161] 이번에 당선될 경우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처음으로 각각 다른 2개 광역자치단체(경남, 대구)의 민선 단체장을 하는 정치인이 된다.[162]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잊히지 못하고 역사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 김범일 전 시장과 퇴임을 앞둔 권영진 현 대구광역시장도 해내지 못한 것을 홍준표가 해냈다. 추가로 이의근-김관용-이철우 경북지사 이상으로 보여준 결과는 물론,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에서 그 역대 최다 득표율인 80.14%랑 맞먹는 수준급으로 보여 줬다.[163] 홍준표무소속이던 시절부터 권영진 시정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다.[164] 권트램의 주도로 예타 통과까지 끝난 걸 엎을 정도로 트램에 적극적이였던 대전광역시국민의힘 소속인 이장우대전광역시장으로 당선되면서 트램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트램 자체가 도심 인구밀도가 높은 대한민국의 사정과는 맞지 않아 도입 초창기부터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장우는 입장을 바꿔 트램 찬성으로 선회하였다.[165] 8대 지선은 이례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을 처음 맡는 사람들이 11명이나 당선되어 광역자치단체장 경력자는 오세훈 서울특별시장(4선), 박형준 부산광역시장,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김영록 전라남도지사, 이철우 경상북도지사(이상 재선), 재선 경상남도지사를 지냈던 홍준표 대구광역시장밖에 없다. 이들 중 유정복은 민선 6기 재임 시절 이미 회장을 했었고 오세훈은 회장직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전해져 현재 차기 시도지사협의회장 후보군으로는 홍준표, 박형준, 김영록, 이철우가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4선의 오세훈을 제외하면 이번 지선에 3선 당선자는 재선 경남지사 + 초선 대구시장으로 도합 3선을 한 홍준표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재선이므로 시도지사협의회장을 하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는 인물이다. 부산 지역 언론에서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시도지사협의회 부회장을 맡아 좋은 성과를 냈음을 근거로 박형준이 유력하다고 주장, 경북 지역 언론에서는 재보궐선거로 당선되어 임기도 1년 밖에 안 되고 국회의원 선수도 초선인 박형준과 달리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7대 지선에서 당선되고 의원 선수도 3선이라는 점을 근거로 박형준을 평가절하하고 이철우가 유력하다고 주장했으며 충남 지역 언론에서는 김태흠 충청남도지사가 비록 광역단체장은 초선이지만 3선 의원으로서 충남의 맹주 역할을 하고 윤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김태흠을 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지역색이 강한 지역 언론의 추측 및 희망사항일 뿐 현재 시도지사협의회장으로 특별히 유력한 인물은 추측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재선의 이철우 경북지사가 시도지사협회장을 맡게 되었다.[166] 청년의꿈 행사와 대구시 행사를 연계하여 대구시 청년층, 청소년층이 참여하여 직접 대구시 현안과 정치 현안에 대해 질의응답 할 수 있는 행사로 확대하였는데 본인의 시정을 홍보함과 더불어 여러 정치 현안에 대해 현직 정치인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라서 시민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고 한다. 수성구 을 국회의원 시절부터 벌여온 수성못 정치버스킹을 대구시 차원에서 도입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167] 상임고문은 보통 은퇴 혹은 은퇴 직전의 정치인에게 주는 자리지만, 당이 처한 어려움을 생각해서 수락했다고 한다. 현재 보수당 전직 당대표들 중 현역 정치인은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자유한국당 대표와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둘밖에 없다.[168] 그러나 홍준표가 윤석열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어디까지나 여당 대통령이라는 공인의 신분에 따라 공적으로 대우하기 위해서이지 사적으로 그와 교류를 하는 것은 전혀 없다. 27년 간 몸 담아왔던 당에 애착이 커 당을 중시하는 그의 신념 때문이지 윤석열과 인간적으로 친한 건 아니다. 윤석열 본인을 향한 직접적인 비난은 삼가면서도 필요한 쓴소리는 내고 있으며 진박 세력이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다가 탄핵 사태가 난 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소위 '윤핵관' 세력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단편적인 부분만 가지고 홍준표가 친윤으로 전향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169] 현재 대구에서 취수 중인 매곡정수장의 수질 오염이 계속됨에 따라 취수장을 옮기려는 과정에서 구미시와 갈등을 빚고 있는데, 최근 방향을 안동댐으로 바꾼 뒤에 이 곳에서 취수를 하겠다고 대구광역시에서 밝힌 상황이었다.[170] 현재 여야를 통틀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이재명을 견제할 만한 스펙의 대권주자가 홍준표밖에 없다. 이재명 외에 남아있는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김동연, 추미애, 이광재)는 모두 친명이거나 이재명과 한 배를 타고 있고, 외연 확장에 비교적 유리하다고 평가받은 이낙연박용진은 당에서도 지지자에게서도 완전히 버려진 판이라 그보다도 무게감이 적은 다른 인물들(김두관, 최문순, 양승조)은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의힘 후보군에서 한동훈, 원희룡을 비롯한 친윤은 총선에서 죄다 쓸려나갔고, 살아남은 비윤계 의원이나 시도지사 가운데 오세훈, 김태호는 이재명에 비해 무게감이 한참 부족하며, 안철수나경원은 체급은 대등한 수준이나 대외적 비호감도가 높고 안철수의 경우 당내 입지도 현저하게 낮다. 그래서 체급은 이재명을 뛰어넘으면서 당내외 지지도도 이재명에 뒤지지 않는 인물은 현재로서는 홍준표밖에 안 남은 상황이다. 그러나 홍준표의 이러한 비판을 두고 친윤, 친한 성향의 보수 유권자들이 계속 내부총질이나 한다는 식으로 홍준표를 심하게 힐난하고 있다. 총선 완패 이후 홍준표가 한동훈을 더 크게 비판하면서 친윤 및 친한, 친홍 양 계파의 지지자들끼리 갈등이 더욱 심화된 터라 홍준표 역시 친윤, 친한 세력의 지지를 끌어모으지 못하면 대권주자로 올라서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반대로 한동훈 역시 대권주자의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비윤계 당원들의 지지를 끌어모아야 하므로 어느 대권주자들이건 상대 지지층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21대 대권주자는 누가 상대 후보들의 지지층을 가장 잘 포용하는가에 승패가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171] 특히 당원들에게 실망했다와 같은 발언은 흔히 빈번하게 사용되던 일반적인 정치적 수사와도 동떨어져 있는데 보통 선거에서 패하거나 법원판결에서 패소할 경우 양측이 극단에서 정쟁하던 와중에도 결과에 승복한다거나 판결 또는 상대측 의견에 존중한다 와 같은 문구가 주로 쓰였었는데 선거나 판결 결과에 불복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바로 직전사례가 21대 총선 당시의 황교안 정도였을 정도로 헌정사 내에서 보더라도 흔한 모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