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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09:14:01

류석춘

前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류석춘
柳錫春|Ryu Seok-chun
파일:2017081500624_0.jpg
<colbgcolor=#002957><colcolor=#ffffff> 출생 1955년 5월 12일 ([age(1955-05-12)]세)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본관 전주 류씨[1]
가족 부친 류혁인, 동생 류석진[2][3]
학력 중앙고등학교 (졸업 / 65회)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 / 학사)
일리노이 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 석사)
일리노이 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 박사)
병역 육군 제8기동사단 병장 만기전역
소속 정당
[[자유통일당|
파일:자유통일당 로고타입.svg
]]
경력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교수
한국동남아학회 총무이사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학과장
아시아연구기금[4] 사무총장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장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장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
외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논란 및 비판
2.1. 일제강점기 옹호 및 독립운동가 폄하2.2. 자유한국당 혁신선언문 건국절 수용2.3. 자유한국당 내부의 탄핵 찬성자 비난과 살생부 논란2.4. 노인 비하 발언과 일베 독려 논란2.5. '위안부매춘부' 발언 파문 및 학생 성희롱 논란2.6.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 기고문 논란2.7. 위안부 관련 기자회견 논란2.8. 유튜브 개설 및 2차 가해 논란2.9. 일본 극우 잡지 기고문 논란2.10.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 옹호 성명2.11. 노덕술 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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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궁금하면 (구독, 좋아요) 한 번 해 볼래요?
류석춘의 틀딱TV[5]

대한민국의 사회학자.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사회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부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일리노이 대학교 대학원(UIUC)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87년도 1학기에 연세대학교에 부임하여 사회학과 교수, 사이버교육지원센터장, 사회학과 학과장 등을 역임했다.

이 외에도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자유선진당 정책위의장,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2020년 1학기를 마치고 정년퇴임하였는데, 이는 교수 정년인 만 65세를 넘겼기 때문이다. 다만 각종 논란 때문에 33년 5개월간 재직했음에도 명예교수가 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6]

류석춘이 사무총장으로 역임했던 재단법인 아시아연구기금은 A급 전범 사사카와 료이치 재단 자금으로 설립되었고 이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아버지는 박정희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내고, 노태우 정부에서 공보처장관을 역임한 류혁인이다. 최금락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이 그의 매제이다. 또한 고종사촌동생은 이인용 삼성전자 CR 담당 사장이다.

연세대학교에 함께 재직한 선배 학자 송복과 마찬가지로 뉴라이트 성향의 정치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류석춘 전 교수를 자유한국당에 영입하면서 "당의 혁신을 위한 투사"로 소개한 바 있다.

2024년 영화 건국전쟁을 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7] 2024년 4월 30일에는 <이승만 시간을 달린 지도자>라는 책을 출판했다.[8]

2. 논란 및 비판

2.1. 일제강점기 옹호 및 독립운동가 폄하

(일제)식민지 사회를 통해 (대한민국) 근대성의 확립이 진척됐다.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2003년 한·일 포럼 행사[9]에서
극우는 테러하는 안중근 같은 사람이지, 난 연필 하나 못 던진다.
류석춘. 2006년 ‘경향신문’이 주관한 ‘진보개혁의 위기’ 좌담회에서
2003년에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옹호 논리를 폈던 것으로 드러났다. # 게다가 글을 발표한 재단은 일본 A급 전범이 출연한 곳으로, 류석춘은 2004~2010년까지 이곳에서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그러니까 일본 A급 전범이자 극우 인사가 세운 재단이 후원한 행사에서 일본인들을 앞에 두고 일제 침략 미화 논리로도 해석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한 셈이다.

2006년에는 자기는 극우가 아니라면서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폄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2. 자유한국당 혁신선언문 건국절 수용

여러모로 논란 많았던 혁신선언문이 결국 발표됐지만 처음부터 헌법 내용을 부정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분명히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1948년 8월 15일대한민국이 건국[10] 되었다는, 소위 '올바른 역사관'을 수용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실 이 일은 류석춘이 혁신위원장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로, 이전에도 MBC가 당시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건국절을 부정한다며 헌법을 부정할 때 출연한 교수가 다름 아닌 류석춘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MBC/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의 건국절 논란 문단 참고.

2.3. 자유한국당 내부의 탄핵 찬성자 비난과 살생부 논란

2017년 7월 11일 류석춘은 혁신위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부당하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류석춘은 취임식에서 "박근혜 탄핵은 너무 과한 정치보복"이라고 발언하였다. 그 외에도 "구속돼 있는 박 대통령의 출당은 시체에 칼 꽂는 일", "태극기 집회에 꾸준히 참여하였다"라고 얘기하였다.# 이에 대해서 장제원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당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극우화되는 것 같아 심각한 우려를 하게 된다"고 비판하였으며, 류석춘의 취임식 때의 발언이 개인 의견인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말하라고 글을 올렸다. 이러한 장제원의 비판에 대해 홍준표는 댓글로 "극우란 개념을 찾아보시고 비판을 하시기를"라고 올렸고 장제원 역시 홍준표의 댓글에 답글을 올려 우려를 표하였다.# 또한 류석춘은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과거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사람들을 두고 "탄핵 앞장선 분들 잘잘못을 따지겠다"라고 말하였고 이외에도 "당이 너무 좌클릭 되었다"라고 발언하였다.

혁신위가 출범하는 동시에 이른바 살생부 논란에 휩싸였다. 류석춘은 혁신위가 출범하기 직전 살생부 명단을 만들었는데, 살생부에는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과거 새누리당 탈당파, 즉 바른정당 의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총 59명의 사람들이 살생부에 올랐는데, 그 중 26명이 현역 국회의원 출신들이었다. 명단에는 자유한국당 의원 19명[11], 바른정당 7명[12]이 올라 있었다. 그 외에도 서청원, 윤상현 등의 일부 친박 의원들과 김무성은 살생부 명단에서 철저히 제외되었다. #

2.4. 노인 비하 발언과 일베 독려 논란

기사

2017년 7월 28일 자유한국당 혁신위는 여의도 연구센터 청년혁신위와 공동으로 청년 30여 명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서 보수 단체인 대학생포럼 회원들과 이재영 자유한국당 청년 최고위원[13]도 참여하였다. 류석춘은 청년들에게 "일베를 많이 하라." 그리고 "내가 아는 뉴라이트만 해도 일베밖에 없다.", "여시 등 전부 저쪽 편" 등의 발언을 하였으며, 심지어 바른정당을 겨냥해서 "한국당은 틀딱들의 지지를 받는데 바른정당은 젊은 보수를 지지를 비교적 많이 받는 것 같다."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젊은 층을 끌어올 아이디어를 받으려 왔다."라고 덧붙였다.#

류석춘의 이 발언이 언론 곳곳에 알려졌고, 정치권의 귀까지 들어가면서 논란이 커졌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바른정당, 정의당은 이 발언을 겨냥하여 비판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의 백혜련 대변인은 "한국당 혁신 지향점이 일베냐"라고 비판하였고, 바른정당의 김익환 부대변인은 "일베의 홍보대사를 스스로 자임했다"라고 비판하였다. 정의당의 경우에는 "국민 상식과 동떨어지는 극우적 행태일 뿐이다" 라는 비판 논평을 내놓았다.

류석춘은 이에 대해서 '언론의 악의적 편집'이라고 주장했다. 자리에 참석한 청년들과 얘기하던 중 "다른 정치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일베충, 한국당 알바생, 박사모로 낙인 찍는 그 분위기가 괴롭다"는 한 청년의 고민에 류 위원장이 조언을 건네면서 "스스로의 이념에 확신을 갖고 당당해라. 그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 뒤 "일베 해도 된다. 여러분"이라는 식으로 가볍게 던진 농담이며 강연 내용의 중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농담이었다고 해도, 이념과 관계없이 수없이 문제가 많음이 증명된 사이트를 많이 이용하라고 독려한 건 잘못된 일이라는 비판이 이후 이어졌다.

2.5. '위안부매춘부' 발언 파문 및 학생 성희롱 논란

2019년 9월 19일 오후 4시부터 연세대 사회과학대(연희관)에서 열린 '발전사회학' 시간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가 옳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강의하던 도중 학생들을 상대로 "현재 성산업 종사자 여성들이 살기 어려워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성매매에 나선다. 과거(일제 강점기)에도 그랬다"고 주장하면서 일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매춘부"라고 비유했다. #1 #2 그리고 이에 수업을 듣던 한 대학생이 항의하자 "궁금하면 한 번 (학생이 매춘을[14], 학생이 조사를[15]) 해볼래요?"라며 성희롱 소지가 있는 발언을 했다.

류석춘은 수업 시간에 토론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면서,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기사로 내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16] 표창원 의원과 정의당 등에서 이미 조속한 조치를 촉구하고 있으며, 이에 연세대 측에서 엄중히 사안을 보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총학 또한 가능한 한 모든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23일 중앙위원회에 해당 안건을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21일에는 민주당, 정의당, 민주평화당은 물론, 바른미래당자유한국당까지 류석춘의 발언을 비판했다. 다만 자유한국당은 혁신위원장으로 류석춘을 영입한 바 있기에 공식 논평이 아니라 구두 논평으로 냈다.

이 발언에서 류석춘은 "정대협[17]은 북한을 추종하는 단체이며, 이들이 조용히 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데려다가 교육시켜서 국가적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정대협 핵심 간부들이 통진당 간부들이며, 대한민국을 망가뜨리려는 단체가 정대협이다."라고 주장했는데[18] 이에 정대협 측에서는 류석춘의 즉각적인 해임을 촉구했다.

한국근현대사연구회[19]는 '류석춘 교수의 위안부 발언은 역사적 진실 설파한 것'이며 '수업권을 보장하라'는 성명을 냈다. 민중의소리 기사, 미디어워치 기사. 링크의 공지사항 상단에 '성명서' 부분에서 읽을 수 있다.

결국 23일에는 해당 교과목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강의인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은 류석춘의 뜻에 따라 중단하지 않아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류석춘은 자신이 학생에게 매춘을 권유하던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면서, 스타일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며 반성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자신이 "학생도 해보겠느냐"라고 말한 건 매춘을 해보겠느냐고 물은 게 아니라 '자료조사를 해보겠느냐'라고 물은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25일 류석춘은 연세대학교의 학보인 연세춘추와의 인터뷰에서 "잘못한 게 있어야 사과하는데, 나는 잘못한 일이 없다.", "하지도 않은 일에 사과하면 정말 억울하다."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발언이 곡해되었다면서, 내 뜻과 다르게 해석하고 모욕당했고 느꼈다면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위안부 여성들은 분명히 자발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면서, 학생들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해 언론사에게 녹취록을 흘리는 비열한 방법을 썼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30일 해당 사건으로 교원인사위원회 출석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같은 날 연세대학교 출신 국회의원들 14명이 모여 류석춘의 교수직 박탈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표했는데 그 자리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없었다.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 저자인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이우연 연구위원이 페이스북에서 류석춘을 옹호하였다. 이우연은 일본군 위안부는 성매매 종사자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매춘부라고 표현한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으며 류석춘의 해고를 요구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네티즌들로부터 비판이 줄을 잇자 24일 다시 글을 올려서 "위안부가 살아있는 신이냐.", "위안부 대부분은 10대가 아니라 20~30대였다.", "위안부가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근거는 무엇이냐.", "위안부는 하루에 6명 내외의 군인을 상대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하였다.[20] 류석춘의 "위안부는 곧 매춘부"라는 발언에 대한 논박은 문제의 발단인 반일 종족주의와 그 저자 이영훈 문서를 참고.[21]

자유한국당은 26일에서야 류석춘을 당 윤리위에서 징계를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류석춘은 자진 탈당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발언 이틀 전에도 교양 수업에서 위안부의 대부분이 취업사기였다며 '대개 모든 매춘이 그렇게 시작하듯 위안부도 마찬가지'라고 발언하였다.#[22]

10월 1일, 정의기억연대는 명예훼손 혐의로 그를 고소하였고, 1억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였다.#

연세대학교의 학생들과 동문들은 '교육권 침해'를 주장하며 류석춘의 파면을 요구했다. 연세대 윤리인권위원회에서는 1차 회의에서 징계 처분을 결정했으나 류 교수의 재심을 신청하여 다시 논의를 진행했다. 한편 류석춘은 2020년 1학기 강의를 끝으로 정년 퇴직을 하기에 만약 징계가 이루어지면 정년 퇴직이 불가능하게 된다.#

류석춘의 2020년 1월 수업 계획표에 따르면 경제사회학 수업 교재 중 하나가 일제강점기 미화 논란을 일으킨 동시에 본인의 2019년 2학기의 발전사회학 강의에 교재로 쓰인 <반일 종족주의>인 것이 드러났다. # 그 외에도 다른 수업 교재 중에 윤서인이 저자로 참여한 이승만 관련 서적인 '시간을 달리는 남자'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이우연은 2020년 1월 22일부터 류석춘 교수 파면 1인 반대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얘기했다. 참고로 이우연은 2019년 12월부터 소녀상 및 강제징용자상 철거 주장과 수요 집회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여 논란이 된 바 있다.

2020년 2월 14일, 학생대책위에 따르면 류석춘의 강의가 1학기 예정 교과목록에서 지워졌다고 한다. 학생대책위는 또한 류석춘이 해당 수업을 다시 맡을 가능성은 낮으며 공란 처리된 자리는 다른 교원이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였다.# 동시에 경찰서는 류석춘의 발언이 정의연과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가 모두 인정된다고 보고 기소의견 송치 방침을 내렸으며#, 결국 4월 1일부로 검찰에 넘겨졌다.#

2020년 5월 7일, 연세대는 류석춘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렸는데, 이에 류석춘은 불복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사건으로 2020년 7월 2일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등 11명은 이영훈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의 집필진들과 류석춘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하였다.# 마찬가지로 연세대는 류석춘에 대해 이달 중 징계위를 다시 열기로 결정하고, 이런 사실을 류석춘에게 통보했다. 이는 '징계 사유는 있으나, 류 교수가 기피 신청한 위원이 참여한 처분은 절차상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연세대 관계자는 "결정문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받은 만큼 보완해 다시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2020년 7월 30일, 연세대는 류석춘에게 정직 1개월의 재징계를 내렸다.# 류석춘은 불복하면서 교육부에 소청심사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집필진과 류석춘은 책에 써있거나 발언한 적 없는 허위 사실로 명예 훼손을 했다면서 기자회견을 연 송영길 의원과 회견문을 작성한 담당 변호사인 양태정을 맞고소하였다. 2020년 7월 8일, 류석춘은 이 날 기자회견에서 "국민 정서에 반하니까 법정에 세우자는 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후진국도 이런 후진국도 없다, 여기가 북한인가"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류석춘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1990년대 펴낸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과 2016년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펴낸 책 '25년간의 수요일'을 비교해보면,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가 되는 과정에서 너무 어이가 없는 차이가 나 있다"라고 주장했다.#

2.5.1. 1심 서울서부지방법원


2021년 1월 15일 재판이 열렸다. 류석춘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었다면서 무죄를 주장했지만, 검찰 측에선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류석춘은 '대학 교수가 학생들과 토론한 일로 법정에 선다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이다'고 주장하면서도 위안부 피해 사실을 두고 매춘의 일종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은 있었지만 단순 의견 표명이었고, 그 내용은 허위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허위라고 하더라도 허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불법으로 녹음되었음을 주장하였다.#

2023년 12월 15일 1심 판결을 앞두고 검찰은 재판부에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하였다.

결국 벌금 200만원 형이 선고되었다. '매춘' 부분은 무죄가 되었다. 항소하겠다고 한다.#, #

2.6.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 기고문 논란

관련기사

월간조선 10월호에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는 기고문을 게재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박정희 정권이 농촌 유휴인력을 마이카 가진 중산층으로 키웠다는[23] 제목을 내세웠으며, 전태일의 월급이 6년간 15배나 올랐다면서 노동자 착취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전태일재단은 류석춘이 임금만 얘기하고 실질적 구매력은 무시했으며, 하루 15시간 일하던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처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올랐다는 전태일의 월급은 현재 가치로도 4만 원에 불과하며 또한 당시 평화시장의 노동자 평균 노동시간은 최소 주당 105시간이나 되었다는 것. 휴일도 없이 일주일 내내 일 15시간 이상 노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다의 일당은 커피 한 잔 값인 50원, 재단사는 커피 10잔에 불과한 5백 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류석춘이 간과한 점이 하나 있는데, 전태일은 자신의 월급이 적다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전태일이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당시 평화시장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직접 목격한 것이며, 어느 정도 중간직종으로 볼 수 있는 재단사였던 전태일과는 달리 여공들은 그보다 낮은 시다(재단보조)로 일하면서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재단사가 된 것도 자신이 재단사가 되면 현장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봉합사에서 재단사로 옮겼던 것이며 재단사가 된 후에는 뜻이 있는 재단사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었던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두고 류석춘은 전태일의 월급만 가지고 당시 노동 환경이 나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고, 그마저도 틀렸다.

2022년 11월 23일,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받았다. 류석춘은 최후 진술에서 역사적 진실은 여론재판이란 다수 의견으로 결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하여 도 냈는데, 전태일이 위인으로 대접 받는 게 사회주의 진영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2.7. 위안부 관련 기자회견 논란

2020년 5월 26일 이승만학당과 반일동상공동대책위원회((약칭 공대위))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인 '정대협의 위안부 운동, 그 실체를 밝힌다'에서 류 교수가 발언한 내용이 다시 한 번 물의를 빚었다. 이영훈도 이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그는 이 자리에서 '위안부제의 전 역사를 알지 못한 문제 제기', '(위안부가) 돌발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고 조선에서도 나름의 긴 역사가 있다' 등의 주장을 하였다.##

이에 대해 류석춘은 "식민지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공창제는 국가, 남성, 가부장, 매춘업자들이 암묵적으로 협력해 최하층의 가난한 여성을 성적으로 약취한 부도덕한 일이었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 많은 공창제 희생자 중 유독 일본군 위안부에게만 관심을 보이고 지원하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2.8. 유튜브 개설 및 2차 가해 논란

류석춘은 2020년 6월 1일, '류석춘의 틀딱TV'를 개설하였다.# 6월 25일 구독자는 2800명 정도. 티저 영상을 시작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배경, 연세대학교 발전사회학 강의 도중 일어난 성희롱 논란에 대한 영상을 업로드하였고, 시사나 근현대사를 다루는 영상도 업로드한다.

채널 배경화면에 "궁금하면 (구독, 좋아요) 한번 해볼래요?"로 문구를 달았는데 이는 작년 성희롱 논란에 대한 자신의 해명을 변형한 것이다.

채널이 개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희롱 논란 이후 생겨난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 사건 학생대책위원회'라는 페이스북의 페이지에서 "성폭력 발언을 부정하고 2차 가해를 일삼는다"는 주장으로 해당 채널의 동영상에 신고 총공을 요청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유튜브 채널 신고 총공이 일어난 후 류석춘은 "진실을 찾는 노력도 하지 못하게 하는 인권 유린을 저지르고 있다", "진실보다는 무조건 저를 끌어내리고 싶은 모양"이라며 당당하게 유튜브 하며 진실에 더더욱 굴하지 않겠다고 반응했다.#

2.9. 일본 극우 잡지 기고문 논란

류석춘은 일본 극우 및 혐한 성향을 가진 월간 하나다[24]에서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국 교수가 목숨을 걸고 호소, 날조된 위안부 사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이 기고문에서 그는 자신의 수업 내용을 소개하며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관한 한국 사회의 주된 평가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한국이 일본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농지, 쌀, 노동자, 여자에 관한 설명을 예로 들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쌀을 일본이 수탈한 게 아닌 돈을 주고 사갔다고 주장하며, 마찬가지로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나서게 된 것도 공권력이 강제 연행·납치한 결과가 아니라, 민간 매춘업자들에게 취업사기 피해를 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뿐만 아니라 징용 간 사람들 대부분 역시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돈 벌러 자원해 간 것임도 설명했다며 일본 우익 세력과 닮은 주장을 내놓았다.

또한 당시 학생들이 항의하자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라고 성희롱 소지가 있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매춘을 하라는 게 아닌 연구나 조사를 해보라는 말이었다고 주장을 되풀이했으며, 이를 '위안부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토론에 재갈을 물려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만들어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단순한 언어 성희롱 사건같이 포장됐다'고 주장했다.

2.10.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 옹호 성명

"우리는 이번 램지어 교수의 논문 논란과 관련 하버드대 한국계 학생들을 중심으로 램지어 교수의 사과와 학술지 측에 느닷없이 논문철회부터 요구하고 나선 반학문적 망동에 특히 경악하며, 마치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행태에 대해서만큼은 굳이 지목해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다...(중략)...‘논문철회(retraction)’는 논문에서 혹시 심각한 부정행위가 발견되었을 때나 학술지가 자체 조사 후 최종적으로 취하는 제재 조치다. 아직 논문 내용과 관련 학문적 공동체에서 어떤 본격적인 논의도 이뤄지기 전에 단순히 의견, 관점이 다를 뿐인 문제를 두고 학생들이 학문의 자유라는 상아탑 지고의 가치를 짓밟으려 하는 모습을 국제 학계와 선학들이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후략)"
하버드대 교수의 위안부 논문,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본격적 토론의 계기로 삼아야!

존 마크 램지어 위안부 논문 게재 논란이 일어나자 문제의 논문을 쓴 램지어 교수를 옹호하는 공동 성명을 이영훈(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정규재, 정안기(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이우연, 김병헌(국사교과서연구소장), 최덕효(한국인권뉴스 대표), 황의원(미디어워치 대표)과 함께 발표했다.

2.11. 노덕술 미화

노덕술을 '대공수사 전문가'로 미화하였다.#(자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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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헌공파-안동수곡파 24세손 석○(錫○) 항렬.(족보)[2] 2022년 11월 11일 작고 #[3]서강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경제학 전공. 하지만 정치적 성향은 형과 매우 달랐다.[4] A급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가 세운 일본재단(이전 이름은 '일본선박진흥회'였다)의 돈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이다.[5] 위안부 폄훼 및 학생 성희롱 논란 당시 자신이 했던 발언을 패러디한 것이다.[6] 대개 15년 이상 한 대학에 재직하면 명예교수로 임명한다. 사회학과 홈페이지의 퇴임교수란을 보면 김용학 전 총장 및 다른 퇴임교수들은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되어있지만 류석춘은 그냥 교수로만 나온다.[7] 류석춘은 건국전쟁에 인터뷰를 하는 모습으로 출연한 바가 있다.[8] 정작 이승만 전 대통령은 "공산당보다 일본이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 극도의 혐일이었다.[9] 일제 A급 전범과 연관된 아시아연구기금에서 개최되었다.[10] 박근혜정부의 국정교과서 사태 당시에도 절대다수의 검정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이것은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에 주권을 행사하는 제1공화국 이승만 정부가 출범했고 그 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다는 뜻이다.[11] 경대수, 김성태, 김태흠, 나경원, 박덕흠, 박맹우, 서청원, 신상진, 안상수, 염동열, 이군현, 이명수, 이완영, 이우현, 이종배, 정우택, 한선교, 홍문표, 김종태[12] 김세연, 박인숙, 오신환, 유승민, 이학재, 황영철, 홍철호[13] 20대 총선, 21대 총선에서 강동구 을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14] 대학생 측 주장[15] 류석춘 주장 #[16] 하지만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 사실 이 과목의 설계부터 상당히 편향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원래 사회학과 커리큘럼에 따르면 발전 사회학은 '제3세계 국가들의 발전과 저발전의 문제를 다룬 이론을 습득하고 한국사회의 발전 문제를 분석'하는 과목인데, 류 교수는 앞의 내용은 아예 다루지 않고 한국사회의 발전과 성공을 인정하냐는 것만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한 학기 내내 뉴라이트와 식민지 근대화론과 같은 극우쪽 스탠스의 강의만 진행하며 이를 넘어서 이러한 저서들의 서평을 요구한 뒤,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냐는 것으로 에세이를 제출하는 것으로 평가를 마무리하고 있다. (2019년도 2학기 발전사회학 수업계획서) 자신은 학생들의 반론에 대해 수용해주고 있으며 학점도 받아갈 수 있다며 마치 열린 자세로 임하는 것처럼 주장했다. 하지만 교수의 논리에 찬성할 경우 교수가 제시해준 수많은 논거를 정리만 하면 되는데 비해, 이에 대해 반하는 입장을 주장하려면 스스로 모든 자료를 찾고 이를 정리해 논거를 만들어내는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매우 불공정한 규칙을 강요 받는다. 학문의 자유를 내세우지만, 교수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사상을 수강생들에게 사실상 강요하는 불공정한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17]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舊 정의기억연대.[18] 참고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던 지만원은 그것 때문에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었다.[19] 역사학자 단체는 아니고 비영리시민단체이다. 해당 단체의 블로그[20] 일본군 위안부 문서에서도 설명하지만 미군의 보고서, 실제로 고문이나 군도를 이용한 협박 등을 받았다는 증언이 혼재하여 류석춘처럼 생명의 위협이 없었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다.[21] 아이러니하게도 이영훈 측의 반론에 따르면 '위안부=매춘부'를 공식화하는 류석춘의 주장이야말로 또 다른 왜곡이 된다. 이영훈의 주장의 허점을 떠나서 단순 매춘부라고만 말하지는 않았는데 류석춘은 아예 멋대로 해석해버린 것. 그리고 정작 이영훈은 자신이 운영하는 이승만TV에서 류석춘을 옹호하고, 오히려 해당 녹취록을 남긴 학생에 대해 '인생의 패배자로 전락'이라고 비난하여 논란이 되었다.[22] 실제로 위안부 대부분은 취업사기 및 인신매매로 위안부가 된 경우가 절대다수이다. 일본군 위안부 참조.[23]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자가용이 널리 보급되었던 시기는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경제개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였다. 전태일은 그보다 한참 전인 1970년에 사망했다.[24] 이 잡지는 변희재와 그가 운영하는 미디어워치, 그리고 마찬가지로 해당 잡지에 그와 비슷한 주장의 기고문을 올린 적 있는 이우연 같은 한국 극우 세력과 함께 연대를 맺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