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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준표의 이모저모를 정리하였다. 그 내용이 워낙 방대해 홍준표/여담 문서로 분리하였다.2. 정치적 타이틀
- 헌정 사상 최초의 민선 복수 광역자치단체장(경상남도지사, 대구광역시장)[1]
- 최초로 집권여당 시기와 야당 시기에 각각 2번 당대표를 역임한 정치인[2]
- 최초로 한 정당에서 각기 다른 지도체제로 대표직을 역임한 정치인[3]
- 역대 최고 득표율, 최다 득표수 대구광역시장
- 역대 최다 득표수 경상남도지사[4]
- 역대 최초 국회의원 경력자 출신의 민선 경상남도지사
- 해당 비수도권 지역(경상남도)의 국회의원 경력 없이 수도권 국회의원(서울특별시 4선)만 하고 바로 비수도권 광역단체장(경상남도지사)으로 내려와 당선된 최초의 비수도권 광역단체장[5]
3. 개인적 면모
- 이경규랑 닮은 것으로 보도 되기도 하였다.[7] @자세히 보면 김창완도 조금 닮았다. 실제로 가장 닮은 사람은 박상원으로 그래서 모래시계에서 홍준표의 포지션이라고 하는 해당 인물의 배역을 박상원이 담당했다. 재밌게도 이경규, 김창완, 박상원 세 사람 모두 우파 성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승목과도 닮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랑도 닮았다.
- 사법연수원 같은 반이었던 동기가 추미애였는데, 그 시절 홍준표를 평하기를 "마초적인 사람이었고, 웃기는 재주가 타고났으며, 쉬는 시간만 되면 동기들끼리 흡연하러 자주 나갔다고" 한다. 본인이 대선후보 및 당 대표 연설할 때 아웃사이더임을 많이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실제로는 주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고 한다.
- 의외의 사실인데, MBC 개그맨 공채 오디션에 응시한 경력이 있다. 돈 때문이라고는 하나 본인은 꽤 아쉬워하는 듯 하다. 72년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응시 원서를 냈는데, 그 해 유신 사태로 실기 시험을 보지 못했다.[8] 참고로 그 스카우트 제의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경태. 정말 만에 하나라도 홍준표가 개그맨에 합격했다면, 이용식이나 김병조 내지는 문영미, 배연정과 동기였으며 이홍렬, 이경규, 주병진의 선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이경규 뿐만이 아니라 박명수와도 상당히 닮은 꼴이다. 막말, 험한 인상, 흙수저 출신, MBC 개그맨 공채 지원 경력[9], 의외의 패밀리가이, 업계 최다 별명 보유자[10]라는 점까지. 여담으로 박명수와 홍준표는 KBS의 경제 비타민이라는 방송프로그램 촬영을 통해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훗날 박명수 본인이 홍준표와의 인연을 박명수의 라디오쇼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 정치인 중에서는 말레이시아 전 총리인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랑 닮았다는 얘기가 많으며, 김종필과 닮았다는 의견도 있다. 참고로 홍준표는 긍정적으로 여기는 외국 정치인 중 한명으로 마하티르를 꼽기도 했다.
- 누나가 둘이 있었는데, 큰 누나는 결혼했지만 남편이 알콜중독자였다고 한다. 결국 홍준표의 자형은 길에서 사망하여 큰누나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과부로 살았다. 작은 누나는 홍준표보다 더 똑똑해 아이큐가 158까지 나왔을 정도라고.[11] 실제로 이렇게 딸들이 국내외적으로 희생된 케이스는 그 당시에 매우 흔했다.
- 슬하에는 아들만 둘을 두고 있다. 특히 장남에게 기대가 많았는지 꽤 엄격하게 길렀다고 한다.[12] 이 때문에 장남은 동생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단다. 아들 둘은 본인의 부친이 홍준표라는 사실을 사회에서 알리려고 하지 않으며 텔레비전 출연도 기피한다고 한다. 장남 홍정석은 고시 공부를 하다가 그만두고 현재는 국내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차남 홍정현은 고등학교 재학 때 담임교사가 "너거 아버지가 (정치인) 홍준표냐?"고 물으면 동명이인이라고 답할 정도로 독립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방학이 되면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매사에 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해병대 자원 입대할 당시 에피소드가 많았다. 수송 병과로 가기 위해 1종 대형 운전면허증을 취득했지만, '아버지가 홍준표'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 곳으로 가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다. 차남은 이후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과장 승진 직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파일럿을 꿈꾸며 미국의 비행 학교에 가서 대형항공기 면허를 땄는데, 저비용 항공사 면접에서도 항상 '아버지가 홍준표'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2년 동안 번번이 물먹었다고 한다. # 야당 인사의 아들을 채용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고...[13] 정치인으로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는 가정교육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음을 자녀들의 면모를 보면 알 수 있다. 현재는 둘 다 기혼자이며, 아들만 둘인 영향인지 며느리들을 딸로 여긴다는 증언도 종종 들린다. 여담이지만, 전임자 권영진과 더불어서 딸이 없고 아들만 둘을 둔 민선 대구광역시장이다.[14]
- 삼국지덕후다. 삼국지덕후란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지금 이 땅의 국민들과 널리 함께 읽고 싶은 책이 무엇인가?”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팀이 2017년 대선 후보 5인에게 던진 질문에서 홍준표는 삼국지연의를 추천하면서“내가 살아가며 실천해 온 모든 처세술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다름 아닌 내 ‘인생의 책’이라 꼽을 만하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평소 정치적 발언을 할 때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를 인용할 때가 많다.
- 홍준표 대구시장도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결말에 분노하는 시청자 대열에 합류했다. 자신의 SNS를 통해 "신나게 바이킹을 타다가 정상에서 추락한 기분이다"며 영 기분이 개운하지 않다고 '재벌집 막내아들'을 비판했다.
- 새누리당 때 당색이 빨간색으로 바뀌기 전에도 빨간색 넥타이를 애용해 왔다. 이는 2010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학생회가 주최한 호법제 강연회에서 "고대이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고대의 상징색이 빨간색이다.[15] 한나라당 원내대표시절 출연했던 경인방송 명불허전에서 밝히기로는 붉은 색이 정의(justice)와 열정(passion)을 상징하는데 이의 앞글자가 JP이고 또 본인의 이름 준표의 앞글자가 마찬가지로 JP여서 붉은 색 넥타이를 정치입문때부터 착용했다고 말했다.https://youtu.be/q683G2jX_js 대구광역시장 취임 후 광주광역시장 강기정과 함께 달빛철도특별법 통과 축하 행사를 가질 때 강기정 시장도 첫 인사말에서 홍준표의 빨간색 사랑을 인정하는 여담을 꺼내며 "우리 홍준표 시장님께서 빨간색을 참 좋아하신다. 제가 국회에 12년 있으면서 홍준표 시장님하고 같이 의정활동을 했는데 국회 목욕탕에 목욕하러 가면 빨간색을 참 좋아하셔서 내의도 빨간 걸 많이 입고 다니셨다." 고 회고하며 자기도 홍준표가 선호하는 빨간색 넥타이에다가 자기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을 놓칠 수 없어서 파란색도 약간 섞여있는 넥타이를 메고 행사에 참여했다고 첫 인사말을 남겼다.
-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실제로 대선 때는 유세현장에서 그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고 또 가창력도 상당한 수준이다.[16] 본인 말로는 부친이 판소리를 한 것이 자기한테 이어져 왔다고 하며, 지금은 목소리가 갔지만 젊었을 때는 훨씬 잘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약사가수 주현미에 대항마인 검사가수 홍준표로 데뷔할 뻔한 전력이 있었으나 아내의 강한 반대에 무산되었다고 한다. 애창곡은 남상규의 ‘추풍령’이라고 한다.#
- 의외로 가정적인 듯 하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세 가지 중 첫 번째로 '현재 각시(배우자 이순삼 씨)를 만난 것'을 뽑기도 했고 관련 행사에 함께 참여한 모습을 보면 시종일관 편안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 부부 관계도 좋은 편으로 보인다.[17]또한 미국에 가 있는 첫째 아들과 매일 아침마다 영상 통화를 한다고 토크 콘서트에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홍준표 본인은 여성비하 관련 논란을 굉장히 많이 만든 사람이라는 것을 본다면 아이러니하다.[18]
- 좋아하는 연예인은 씨스타의 효린이라고 밝혔다. 불후의 명곡에서 옛날 노래를 풍부한 성량과 탁월한 가창력으로 리메이크하는 걸 보고 반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남지사로 재임할 당시였던 2016년, 광복 경축 음악회에 씨스타를 초청했지만, 단가가 너무 비싸서 안 될 걸 사정사정해서 깎은 뒤 겨우 불렀다고 한다.[K스타] 홍준표는 언제부터 효린의 팬이었나?
??:이거 완전 효린수홍이네요 효린수홍
- 휴가철마다 이순삼 여사와 두 아들과 함께 덕유산 등산 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거의 매년 휴가 때마다 덕유산 향적봉과 무주군 구천동 일대 사진을 페이스북에 업로드 하곤 한다. 2022년 휴가 때 덕유산을 찾았을 때 향적봉에 안개가 짙게 낀 모습을 보고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의 보수우파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재 모습 같다는 비판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 자신을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 캐릭터가 드라마 모래시계의 강우석(박상원)이다. 아버지가 장물취득 누명을 써서 검사가 되기로 마음 먹은 것, 은행원 아내를 만난 것, 슬롯머신 수사 등 강우석은 명백히 홍준표가 모델이며 제작진도 이를 공인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후에 송지나 작가가 19대 대선을 앞두고 돌연 이를 부인한 적이 있었다.
- 감독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는 없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선 영화 내부자들의 장필우(이경영)의 모델로도 추정된다. 장필우는 빠찡코 깡패들과 결탁한 자기 상관을 구속했다가 검찰에서 옷 벗고 정계에 입문한 사람이라는 게 그 이유. 다만 장필우는 검사 시절 강직함을 버린 비리 정치인으로 등장한다. 여담으로, 홍준표는 이 영화를 관람한 후 "재벌혐오에 정치혐오, 검찰혐오, 언론혐오까지 보태어 한국사회 리더 그룹들을 모두 파렴치한으로 만들었다"며 혹평을 했다. 정황상 자기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인데, 대놓고 뇌물과 성접대를 좋아하는 인간 쓰레기로 묘사했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 기본적으로 단어 선정도 굉장히 과격하며 막말로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소신있는 행보도 많이 보이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17대 국회 당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19] 자식의 병역면탈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다시는 우리나라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한다고 연설해서 여야 의원 모두의 호응을 이끌어낸 일이나,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 무죄 탄원서에 서명한 일, 한나라당 대표 재임 당시 을사늑약, 매국노 소리를 들어먹으며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 처리한 일 등이 있다. 최소한 우파로서의 신념은 명확한 듯하다.
- 보수성향 정치인들 중에서도 홍준표는 좌파를 혐오하는 발언을 특히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나 홍준표는 현재 들어서 우파 정치인 중 비교적 개념차게 재밌는 점이다. 특히 '좌파'
쟈파발음을 재미있게 하는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 어렸을 때 밥을 많이 못 먹어서 체격이 왜소한 것이 컴플렉스였다고 한다. 그래서 살집이 있는 통통한 여성을 선호하며, 아내 이순삼 여사도 그런 스타일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홍준표는 169cm에 48kg[20], 이순삼은 154cm에 56kg이었다고 한다.[21]
- 팬들도 많지만 안티도 많은 연예인 같은 정치인 중 하나이며, 호불호가 매우 강한 정치인이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정치인이다. 기본적으로 불호하는 측에선 막말을 많이 한다고 싫어하고, 지지하는 측에선 막말이 아니라 맞는 말을 한다며 막말보단 거짓말을 해선 안된다는 홍준표의 어록을 인용해서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 소속과 관련해서도 범비박계로 볼 수는 있지만 그래도 바른정당계(김무성, 유승민, 주호영 등등) 정치인들처럼 탈당한 전력이 없었다가[22]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래통합당 공천 과정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 커리어 처음으로 자의에 의한 탈당을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보수정당 출신 중에서는 20년 이상 선거이력을 가지고 있는 대표주자임에 틀림없는데 앞서서도 여러 번 나와있듯 직설적인 언어가 많고 표현이 거친 편으로 그런 점에서 불호가 많은 편이다. 이와 대조하여 문재인과의 19대 대선토론에서의 활약 및 최근 행보를 가지고 "역시 홍카콜라"하면서 해야하는 말은 꼭 하는 정치인으로 지지를 열렬히 하는 지지자들도 많은 편이다. 20대 대선을 거치며 불호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고 반대파인 민주당계 지지자들에게도 보수 정치인 중에는 드물게 호평받는 편이다.
- 젊은 시절엔 꽤 잘생겼었다.사진 실제로 과거 사진을 보면 날카로운 턱선과 높은 콧대의 소유자였다. 식스팩도 있었다. 식스팩은 오히려 못 먹어서 생겼다고. 키도 1950년대생임을 감안하면 제법 큰 편이다. 정치 활동을 오래 한 탓인지 현재 인상은 험악하다는 말이 많지만[23] 웃는 모습이 좋은 정치인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웃을 때와 인상 쓸 때의 표정이 극과 극을 달린다는 평가가 많다.
- 박원순과는 바로 이웃동네에 살던 또래다. 이 때문에 20대 대선에 박원순이 나온다면 전국 버전 창녕군수 선거라는 농담도 쳤다. 하지만 박원순 성추행 사건으로 박원순 본인이 자살하면서 그런 빅매치를 볼 일이 없게 되었지만[24] 박원순이 아름다운가게를 운영할 때 후원을 했다고 한다. 둘이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나쁘지도 않고 괜찮은 편이라고 YTN 대선 안드로메다에 출연하여 말했다. 박원순 자살로 치러진 2021년 재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왔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장관도 같은 창녕군 남지읍 출신이다.
- 본인은 방위병으로 병역을 마쳤지만 차남[25]이 해병대 출신#인 해병대 가족이라서 그런지 그 후로는 해병대를 마치 자기 모군처럼 아끼며 해병대에 대한 꾸준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다시 병역을 한다면 방위병이 아닌 해병대에서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다. 육군특수전사령부, 해군특수전전단, 공군 공정통제사, 제6탐색구조비행전대 등 국군의 모든 특수부대와 해병대를 통합하여 육해공군과 동급의 제4군인 해병특수군을 신설하고 그 수장을 대장인 해병특수군참모총장으로 보임하며 이를 줄여서 해병대참모총장이라고 칭한다는 등 사실상의 해병대 독립 및 승격을 내용으로 하는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 적도 있다. 이 개정안은 비현실성 때문에[26] 국회에서 최종 통과되진 못하고 폐기됐지만, 19대 대선 때부터 일관되게 대선 공약으로도 주장하고 있다.
- 단식투쟁을 상당히 싫어한다. 그 이유가 어렸을 때 가난해서 굶어본 적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27]
- 원래는 흡연자였으나 2012년 이후로 금연을 한 것이 19대 대선 기간 중에 밝혀졌다.# 금연을 한 대신에 금연보조제를 먹고 있는데,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던 당시 법정에서 껌을 씹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 어느 자리에서든 술을 두 잔 이상 절대로 안 마신다고 한다. 소주든, 맥주든, 막걸리든, 양주든. 왜냐하면 부친이 상당한 주당이었는데 술이 원인이 되어 홍준표가 대학교 2학년 때 일찍 작고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후 자기는 절대로 주당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절주를 할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28] 특히 경상남도지사에 당선되어 정치인을 하면서 광역단체장이 처음 되고 난 후 같이 일하는 자기보다 아래 공무원들과 음주를 하고 놀러 다니자고 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29]
- 어렸을 때의 꿈은 역사학자였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포기하고 의사를 지망하게 되었으나, 이마저도 의과대학 학비를 감당할 형편이 안됐기에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군인이 되려 했다가, 아버지가 장물 비료를 샀다는 누명을 쓰는 일을 겪고 법과대학에 진학하여 결국 검사가 되었다.
- 2021년 기준 3살인 암컷 시바견 '순금이'를 키우고있다.
- 탕수육은 부먹이라고 한다.
- 취미는 바둑. 무려 아마 3단이다. 17대 총선 때도 패배를 예상하고 집에서 바둑이나 두다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결국 이겨버린건 유명한 일화.[30] 홍준표가 통찰력과 혜안이 남들에 비해 유난히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것도 바둑으로 단련된 수싸움 능력 덕분으로 추정된다. 홍준표 본인은 온라인 바둑도 즐긴다고 밝혔으며 기사 중에서는 최정이 가장 좋다고 평했다.
- 가장 좋아하는 책은 이병주 작가의 지리산이다.
-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이다.
- 자가용은 기아 카니발이다. 첫 차는 기아 프라이드 1세대였고, 이후에도 현대-기아차를 애용했다. 2018년에 QM6를 구매했고 차가 좋다고 호평했으나, 르노삼성자동차의 노조 파업이 장기화되자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1년 만에 중고로 팔아버렸다. 다시 국회의원으로 복귀한 이후 2021년 언저리까지는 현대 에쿠스를 탔었다.
- 정계 입문 전 변호사 시절에는 강남구 개포동에서 살았다. 홍준표가 신한국당에 입당하기 전에 노무현, 제정구 등 꼬마민주당 사람들이 그를 설득하러 개포동 자택으로 갔다고 한다. # 이후 송파구 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개포동 아파트를 팔고, 당시 지역구였던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한 채를 매입해 현재까지 보유 및 거주 중이다. #, #
- 태어난 곳은 경남 창녕이고 초등학교는 경남 합천에서 졸업했으며 중고등학교는 대구에서 졸업하여 TK와 PK에 모두 연고가 있다. 또한 경남지사와 대구시장을 모두 역임하기도 했다. 다만 본인의 언급으로는 관련된 연고지 중 대구에 가장 애착이 강한듯 하다. 또한 창녕과 합천이 대구 생활권에 속하기도 해서 주로 TK 계열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과 친분이 있다고 김태형이 밝혔다.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서울 제기동에서 하숙을 했는데, 당시 하숙집 주인의 아들이 김태형이었다고 한다. 홍준표가 쉬는 날 어린 김태형을 데리고 나가 제기시장에서 순대를 사준 적도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2022년 야인이 된 김태형 감독이 대구시청을 방문하자 독대했고, 홍준표와 반갑게 회포를 풀었다.
- 2023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어워즈(6월 5일) 날에, 뮤지컬 배우 신영숙과 짝을 이루어 대학부 배우 시상 및 마지막 순서로 작품 시상을 진행했다(대상: Nine to Five). 이어 홀로 행사 폐막을 선언했다.
- 이준석 못지않게 우파 유튜버들에 대해 적대적이다. "틀튜브"라는 멸칭 자체도 홍준표가 처음 사용했고, 우파 유튜버들이 자극적인 가짜뉴스로 노년층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시민의 알릴레오가 곧 망할 것이라고 비웃은 것 외에는 좌파 유튜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을 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영남고 21회 동기생이었던 박용복 전 경북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가 술회하길 "(홍준표는) 참 민망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내가 참 미안했어요. 옆자리 짝이었는데 점심 도시락을 싸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같이 먹자고 몇 번 말해봤는데 절대 안 먹습니다. 한 번은 ‘내가 네 도시락을 먹으면 네가 배고프지 않겠냐’면서 나가서 수돗물만 그렇게 마시더라고요.” 그러면서도 홍준표가 결코 기죽지는 않았다고 박 교수는 기억했다. 자기 주장이 강했고, 세상사에 밝았다고. 박 교수는 “체육은 잘 못했지만 그 밖의 재주는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아주 잘 논다”고 했다. 고교 동기 김용석씨는 “친구들 앞에서 노래도 잘 부르곤 했다”고 전했다.
4. 일화
4.1. 정계 입문 이전
- 홍준표의 부친은 힘이 장사였지만, 본인은 어려서 가난 때문인지 7살까지 엄마 젖을 먹을 정도로 유약했다. 적은 몸무게 때문에 방위병으로 입대할 정도로 몸이 약했다. 그래서 영남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태권도를 열심히 배웠고, 4년 동안 대구시의 무덕관[31]을 다녔다. 실력은 초단 수준이라고. 이러한 태권도와의 인연 덕분에 제24~25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의외로 홍준표 외에 정치인 출신 태권도협회장들은 단증도 없는 사람들이 왔었다고 한다. 홍준표가 최초의 유단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흑역사도 있는데 2009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선거 당시 끼어들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총재에 외국인이 필요하다고 하셨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발언하며 외국인 후보를 지지했다가 이젠 대통령이 멋대로 선거에 끼어드네? 이명박의 스피커냐? 욕만 실컷 먹고 조정원 후보가 총재가 되어버리며 체면만 구긴 적이 있다.
- 그가 대학을 다녔던 1970년대는 먹을 게 무엇이든 다 부족했었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2021년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 때 부인 이순삼과 함께 와카남 방송에 출연해서 "옛날에 우리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배 나오는 게 자랑일 정도였다" 고 밝히기도 했다.
- MBC 개그맨 공채를 응시했었다. 당시 MBC에서 근무하고 있던 김경태 PD가 개그맨을 하면 돈을 많이 준다며 권유해서 응시 원서까지 냈는데, 10월 유신으로 '지방 학생들은 고향으로 내려가라'는 지시가 내려지는 바람에 11월에 예정되어 있던 시험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유머 감각이 타고났다. 심지어 엄숙한(?) 19대 대선 토론장에서도 유머를 자주 선보였다. 대선 이후 출연한 냄비받침에서 밝히길 그때 MBC 개그맨 공채에서 합격했다면 김병조, 이용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개그맨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차라리 개그맨 시험을 다시 봐서, 개그맨이 되는게 어땠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할 정도다.
- 1982년에 마지막으로 사법시험을 응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한라자원이라는 회사에 취직을 했었다. 파푸아뉴기니의 원목채취장으로 가서 1.5배의 월급을 받는 조건이었다. 그해 9월 3일이 첫 출근일이었는데 하루 전인 9월 2일에 사법시험 합격 발표가 나면서 결국 파푸아뉴기니에 안 가게 되었다.#[32]
- 저서 '나 돌아가고 싶다'에 따르면 대학교 4학년 때 신검에서 48kg의 저체중과 근시 병력으로 인해 14개월 방위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병역 때문에 연인 이순삼과 헤어지는 것이 싫었고 고시 공부를 중단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출퇴근이 가능한 14개월 방위병 근무를 반겼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홍준표의 두 아들은 아버지가 법무관으로 제대한줄 알고 있었다가 실은 방위병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했고, 홍준표가 방위병으로 근무한것은 적법한 것이었지만 공직 생활을 하면서 왠지 병역 의무를 부실하게 이행한거 같아 미안하고 창피했다고 토로했다. 이후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해병대에 지원해서라도 떳떳하게 병역을 마치고 싶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 이름의 의미는 세인의 표상(세상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대상)으로, 두 차례 개명을 거쳐 갖게 된 이름이다. 출생 당시 이름은 홍이표였는데, 다섯 살에 홍역에 걸려 죽을 뻔했을 때 어머니가 불전에 가서 빌고 빌어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부처에게 팔았다는 뜻으로 홍판표(洪判杓)로 고쳤다고 한다(돌싱포맨에서 증언). 그렇게 홍판표로 살다가 다시 개명을 권유한 이는 홍준표가 청주지방검찰청 초임검사 시절 친하게 지내던 윤영오 당시 청주지방법원장이라고 한다. 어느 날 윤영오 법원장이 식사 도중 "판사도 아닌데 이름 중간자가 '판(判)'자로 되어 있는 것은 맞지 않다"며 개명을 권유하였고, 청주에 있는 검찰청 소년선도위원인 성명철학자 류화수로부터 가운데 글자를 '판(判)'자와 뜻이 같은 '준(準)'자로 바꾼 홍준표(洪準杓)라는 이름을 받아왔다. 당시에는 개명을 하려면 현재에 비해 상당히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했으나, 개명 절차는 비송사건절차법에 따라 법원장의 소관이기 때문에 윤영오 법원장이 그날 바로 서류재판으로 결정을 해줘서 수월하게 개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편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당시 청주지방법원 판사)의 권유로 개명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홍준표 본인은 이에 긍정한 적이 없다. 다만 홍준표의 여동생 홍영순 씨에 의하면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의 권유로 바꾼 것이 맞다고 말하고 있으며,# 2021년 10월 경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은 1985년에 홍준표에게 직접 개명을 권유했다고 다시 주장하였다. #
4.2. 정계 입문 이후
- '답십리'라는 동네와 인연이 상당한데 그 이유는 홍준표가 동대문 을 지역구에 4번 나와 3번 당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선을 도운 데는 답십리에서의 우위가 한몫했다. 실제로 홍준표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예 답십리는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고 대놓고 얘기하고 다녔으며 선거 포스터에서부터 동대문이 키운 인물이라고 아예 대놓고 써있다. 그러나 19대 대선 때는 답십리1동과 2동 모두 안철수에게도 밀리는 20%대 초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 이것도 옛날 이야기일 듯. 서울에서 4선이나 한 수도권 정치인 출신이지만 이후 경남지사, 대구 수성구 을 국회의원, 대구시장 등을 지내며 주로 경상도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해졌다.[33]
- 19대 대선 전까지 홍준표 하면 가장 유명했던 식사준표는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친이계의 자리인 클린정치위원장 자격으로, 당시 이명박 후보의 큰 이슈였던 BBK 주가조작 사건 관련 박근혜 후보 및 야당의 공세를 막아내는 역할을 하면서 붙었다. 클린정치위원회는 김경준과 이명박 후보가 주고받은 편지와 자필 메모를 공개하며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은 (BBK 설립 이후인) 2000년에 만났다."는 주장을 했는데[34], 이에 대해 기자들의 (해당 증거는 설립 이후에 만난 적이 있다는 증거일 뿐, 이전에 만나지 않았다는 증거로는 부적합하다는) 반박 질문이 이어지자, 말을 돌리려고 뜬금없이 "식사하셨어요?"라는 대답으로 일관하면서 식사준표라는 가장 유명한 별명을 얻었다. 그에 이어 경상남도 무상급식 강제중단 파문으로 또다시 식사준표가 나오게 되었다.
-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도 친분이 있다. 일단은 서로 동향 사람이고 딴지일보의 2002년 대선주자 인터뷰를 통해서 서로 친분이 생긴 듯하다.[35] '나는 꼼수다' 때문에 한참 한나라당이 고생하던 시절 당대표 자격으로 출연하여 김어준과 토크를 했을 정도. 정작 그 나꼼수의 효과였던 오세훈의 무상급식 스캔들 때문에 당 대표 자리를 날리다시피 했으니 이가 갈렸을 듯.[36] 그럼에도 아직 김어준과 서로 정치 노선이 다름에도 친하게 지내는 듯. 당장 오세훈 사퇴 이후 9개월 남짓 지나서 홍그리버드 영상을 찍었는데 "나꼼수의 으준아 니도 한 번 해봐라."라는 말을 남기기도. 과거 나는 꼼수다에서의 언급과 김어준의 얘기들을 듣다 보면, 홍준표는 김어준을 '김어준이', '김 총수' 등으로 편하게 부르고, 김어준도 홍준표에게 '형님', '홍반장'이라 부를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파 진영으로부터는 대체로 좋지 못한 인식을 받고 있는 손석희 JTBC 사장과는 비록 때로는 티격태격한 적도 있지만, 손석희 사장에게 호감을 표하기도 했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는 한나라당 당 대표로서 서울시장 후보로 손석희 영입을 직접 제안하기도 했고, 2017년 제19대 대선 JTBC TV토론회에서는 JTBC토론이 가장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고 생방에서 말한 적이 있으며, 2019년 손석희의 폭행 논란이 벌어졌을 때는 그를 위로하는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오거돈이 양산시의 부산 편입을 언급하자 "부산의 상수원을 틀어막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37]
- 정통 시사 토크쇼를 표방하였던 "박중훈 쇼 대한민국 일요일 밤" 2009년 1월 11일자 방영분에 여당 원내대표로서 출연하였다. 박중훈 쇼의 해당 회차는 당시 여야 3당 원내대표를 동시에 초청하여 서로 지갑 내용물을 공개하는 등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야심찬 기획이었으나 시청률 6.6%로 신통치 않은 결과만 가져왔다.
- 2011년 한나라당 대표시절의 어느 인터뷰에서, 대학 시절 소개팅 경험담을 얘기해서 여성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하필 비슷한 시기에 남경필, 원희룡 최고위원을 두고 한 대 패주고 싶다고 비난한 것과 엮였고 곤욕을 제대로 치러야 했다.
- 2017년 3월 경선 토론 당시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있어서 "위안부는 나치의 제노사이드, 유대인 학살과 비견되는 반인륜 범죄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합의해서도 안되고 합의 대상도 아니고 우리가 가슴 깊숙이 간직해야 할 역사의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돈 10억을 주고 했다는거, 그것은 외교가 아니라 뒷거래였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고 강한 소신을 보여줬다.#
- 19대 대선 구호로 "홍준표 찍어야 자유대한민국 지킵니다"를 내걸었는데, 공간 제약상 네 줄로 나눠서 쓰다보니 각 줄의 앞 글자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졸지에 19금 세로드립이 되고 말았다(...). 당 차원에서도 뒤늦게 이를 알아차렸는지 마지막 "지킵니다"를 옆으로 밀어서 홍찍자로 무마하려 했지만, 가뜩이나 돼지발정제 논란이 돌고있었기에 인터넷이 한바탕 뒤집어지면서 홍준표의 별명이 "홍찍자지"가 된 것은 물론이고, SNL 미우프는 물론 SBS 인터넷 뉴스에서까지도 패러디당했다.
- 19대 대선 선거운동 도중에 양화대교 아치 꼭대기에서 사법고시 폐지에 반대하면서 농성을 벌이던 사법 고시생을 설득해서 구조될 수 있게 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고시생은 구조된 뒤에 신촌에서 열린 홍준표 후보의 유세에 참가했고, 훗날 좌파를 주된 표적으로 삼는 프로고발러가 되었다.
- 2017년 4월 11일 대선 선거 유세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보수대통합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는 중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부패한 보수를 이라고 해서 웃음을 주었다.
-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패했다. 그래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망하기 직전의 당을 이끌고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를 이기는 기염을 토했으며 이를 통해 진짜 보수가 누구인지 부각시켰기에 낙선한 후보로서는 이례적으로 엄청나게 기뻐했다. 기뻐한 이유라는 게 "그래도 우리 당은 살려내서 다행이다."라 말했다. 박근혜가 죽인 보수를 홍준표가 살려냈고 홍준표는 이걸 기뻐하는 것이다. 사실 썰전에서의 나경원 의원을 통해서도 밝혀진 사실이지만 19대 장미대선에서 자유한국당 측에서는 전략적인 허세가 담긴 발언들과는 별개로 승리할 것이란 장담을 전혀 하지 않았다. 16% 이하의 지지율임에도 불구하고 궤멸 직전의 보수를 목소리는 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으니 자화자찬이 아니라 실제로도 꽤나 선전한 셈이다.[38]
- 위와 마찬가지로 홍준표 본인도 강적들 216화(2018년 1월 3일 방송)에서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어차피 내가 떨어질 줄 알고 나갔다고 밝혔다. 보수 우파 궤멸을 방지하기 위해서 출마했다고 밝혔다. 탄핵당하고 망한 정당에서 후보를 내지 않으면 소멸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출마했다고 밝혔다. #
- 미우프에서 본인의 포지션을 맡은 레드준표 정이랑과 직접 만났다. 본인의 분장을 한 레드준표와 나란히 서서 선거 유세를 보러온 시민들에게 재차 "내가 진짜 이 사람하고 닮았어요?"라고 물어보고, 정이랑과 악수를 나눴다.[39] 정이랑은 대선이 끝나고 몇 달 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홍준표에게 돼지흥분제 논란 등 악재가 터질 때마다 죽을 맛이었다고 밝혔다.
- 2017년 8월과 9월에 육군 11사단과 연평도를 방문했는데 자유한국당 당비로 회식비를 전달했다.[40]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에 대해 "위장평화쇼"라며 이전의 6.15 남북공동선언 등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후퇴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당시에는 평화 분위기로 보였던 때라 이 발언으로 정계에서뿐만 아니라 범국민적으로 엄청나게 욕을 먹었고 당내에서조차 비판 목소리가 나왔으나,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의 핵 포기 의지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며 결국 맞는 이야기가 되었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이 터지자 2년 전의 해당 발언이 다시 언급되기도 한다.[41]
- 19대 대선 시절 로고송이 정지차니 등의 스트리머 영상도네 변화구로 쓰이더니 급기야 역대급 중독 선거 로고송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후에 홍준표 유세 차량 운전 영상으로 큰 인기를 끌자 홍준표가 2030세대에 큰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로 언급되었으며 대선 관련 프로그램인 '올데이 라방'에서 정지찬을 아는지 질문을 받기도 했다. 본인은 모른다고.
- 현재 야권 대권주자 1위인 이재명하고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으면서도[44], 은근히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흙수저 + 영남 + 법조인 출신에, 개신교인이면서도 독실한 신자라기보다는 냉담자에 가깝다. 당 내에서 아웃사이더를 자처해 왔으며, 도지사 경력이 있고, 쎈캐 이미지라는 것도 공통점. 또한 둘 다 지지층 사이에서는 추진력있고 일 잘한다는 이미지가 강하고, 비토층 사이에서는 막말 + 포퓰리즘 등으로 인해 까인다는 것도 비슷하다.
- 4선 국회의원일 때, 한 방송에 나와서 썰을 하나 풀었다. 진행자가 "홍 의원님, 4선이 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렇게 물었는데, 홍준표는 "체감상 6선입니다."라는 답변을 했다. 그러면서 홍준표는 해당 방송에서 "지역구를 서울로 기반으로 두고 있는 의원들은 원칙상 1선이 올라가지만, 의원들끼리는 1.5선이 올라갔다고 이야기하고, 지자치단체장을 할 때는 2선으로 취급해줍니다."는 말을 했다. "TK를 지역구로 하는 의원들은 1선으로 쳐주긴 하는데 의원들끼리는 그냥 당에 의한 임명직 공무원이라고 이야기합니다."라는 말까지 했지만, 사실 홍준표는 수성구 을에 당적 없이 오로지 자기 이름 석 자만 달고 입성했기 때문에 당에 의한 임명직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선출직이다. 장관도 보통은 2선으로 합산해준다고 한다. 텃밭을 연고로 하는 정치인과 험지를 연고로 하는 정치인의 취급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발언. 이 공식을 적용하면 홍준표는 13선이 된다.[45][46]
- 2022년에 치러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야권 단일 대선후보로 나올 유력한 인물 중 한 명이지만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존재로 인해 복당을 하지 못하느라 복당이 늦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김종인이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당시 함승희 주임검사에게 조사를 받을 때 함승희와 친분이 있던 홍준표가 20분 만에 자백을 받아내도록 도와준 과거 때문으로, 이 악연 때문에 김종인은 아직까지도 홍준표를 고깝게 여긴다.[47] 김종인이 비대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복당 문이 열리나 싶었지만 이번엔 당내 소장파들이 꼰대정당 이미지를 우려해 복당을 반대한 적이 있었다. 다만 2021년 6월 11일 이준석 신임 당대표가 홍준표의 복당을 찬성하여 반대하는 당원들을 설득해보겠다고 해서 결국 복당에 성공했다.
- 연합뉴스가 <홍준표 대구시장, 구내식당 ‘별궁’ 등 과잉 의전 구설수>라는 기사를 통해 “구내식당에 간부 전용석이 생기고, 출근길 청사 앞 1인 시위를 막는 등 과도한 의전이 집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비판하자, 연합뉴스 구독료 납부 취소하겠다"며 “통신사로써 기능 하면 재구독 고려"하겠다고 말했다.세계일보
- 두산 베어스의 전 감독인 김태형과 의외의 인연이 있다. 2022년 10월 14일 홍준표가 본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글에 의하면, 얼마 전 갑자기 홍준표를 만나기 위해 누군가 대구시청으로 찾아와 인사를 했는데, 그 사람이 김태형 감독이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언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홍준표가 대학 시절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하숙을 하던 시절 하숙집 주인의 아들이 바로 김 감독이었다고 한다. 홍준표의 말에 의하면 제기시장에서 초2 시절의 김태형에게 순대를 사 줄 정도로 잘 챙겨줬는데, 홍준표 본인은 잊고 있었지만 김태형은 그 옛날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김 감독에게 그 일화를 전해들은 홍준표는 감회가 아주 새롭다면서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도 괜찮겠다면서 삼성으로 올 것을 권했다.[48]
- 군위군이 편입된 대구광역시의 초대 시장이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신설 이래 가장 규모가 큰 행정구역 개편인데 이를 이루어낸 사람이 바로 홍준표인 셈이다. 물론 권영진 때부터 군위군 통합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빈번이 실패했으므로 확실하게 통합 결정으로 이끌어낸 것은 홍준표의 공이 크다.
- 위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 스포츠 관련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클린스만호의 카타르 아시안컵 부진에도 불구하고 별 대책이나 사과 없이 미국으로 도망치듯 출국하자 분노해서 돌아오지 말라고 페이스북에 일갈하였다.[49][50] 또한 클린스만 사임 이후 한국 축구가 국제대회에사 온갖 흑역사를 쓰자 대구FC 구단주로서 한마디 하겠다며 정몽규를 향해 국민 혈세로 태업이나 일삼는 감독 데려와놓고 망하니까 자기는 모르쇠하는게 참 뻔뻔스럽다, 나가더라도 사재출연해서 낭비한 혈세 다 갚고 나가라고 일갈했다.
- 서천특화시장 화재피해 복구지원으로 1억을 기부하였다고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밝혔다.
[1] 만약 다음 지방선거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한다면 경상남도지사를 35, 36대를 지낸것처럼 대구광역시장도 35, 36대를 지내는 진귀한 기록이 탄생한다.[2] 2011년 한나라당(여당) 대표, 2017년 자유한국당(야당) 대표. 다른 인물의 사례로는 이해찬(2012년 민주통합당(야당) 대표, 2018년 더불어민주당(여당) 대표)의 사례가 있다.[3] 한나라당 때는 집단지도체제 하 대표최고위원, 자유한국당 때는 단일지도체제 하 당대표[4] 2012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얻은 득표수가 역대 경상남도지사 선거 최다 득표수다. 최고 득표율은 아니다.[5] 홍준표 이전의 비수도권 광역단체장들은 모두 그 지역의 국회의원을 먼저 지내고 광역단체장이 되거나, 아예 국회의원을 지낸 적 없이 바로 당선됐으면 됐지 수도권 국회의원을 지내다가 비수도권 광역단체장으로 내려와 바로 당선된 사례는 단 1명도 없었다. 홍준표 이전의 세 경남지사(김혁규, 김태호, 김두관)도 모두 국회의원 경력 없이 경남지사부터 먼저 하고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홍준표 이후의 두 경남지사(김경수, 박완수)도 모두 경상남도 국회의원을 먼저 하고 경남지사가 되었다. 이 기록을 이은 게 서울특별시 국회의원만 지내고 바로 민선 6기 대구시장, 제주지사로 내려온 권영진, 원희룡, 그리고 경기도 국회의원만 지내고 민선 7기 경기지사는 낙선했다가 민선 8기 충북지사로 내려온 김영환이다. 반대로 수도권 지역 국회의원 경력 없이 비수도권 국회의원만 지내고 바로 수도권 광역단체장으로 올라와 당선된 수도권 광역단체장은 홍준표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것도 전라북도 국회의원만 지내고 민선 2기 서울시장으로 올라온 고건이 유일하다. 그리고 경남지사와 달리 대구시장은 대구광역시 국회의원(수성구 을)을 먼저 하고 당선되었다.[6] 19대 대선 때부터 다수의 네티즌들이 ESTJ일 것으로 예상했었다.[7] 재밌게도 2024년 아시안컵에서의 참사 이후 거침없는 발언을 한 것으로 화제가 된 두 사람이 이경규와 홍준표이다.[8] 그 당시 유신 사태로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본가로 귀가 조치를 시킨데다가 방송국도 사태로 여러모로 일이 꼬였기 때문에 시험을 보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9] 박명수는 합격했지만 홍준표는 원서만 내고 유신사태로 인해 실기 시험을 보러 가지 못했다.[10] 홍준표 본인도 이제는 별명이 안 생기는 게 희망사항이라 말할 정도.[11] 그래서 작은 누나는 늘 홍준표에게 "네가 남자라서 우리 집 대표선수로 공부하는 것이다"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12] 이는 비단 이 집안 뿐만 아니라 지금도 아들이 있는 집안들은 유독 장남한테 거는 기대가 상당해서 장남은 동생들에 비해 교육도 엄격하게 받는 경향이 있다.[13] 설령 박근혜 정부 시기였다 한들 당 내 비주류라 채용에 이득이 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19대 총선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에 중앙당과 청와대에서 홍준표를 도와줬다가는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안주겠다며 압박을 넣었었다. 이 때문에 박근혜가 당권을 장악한 2012년부터 탄핵 직전까지는 그 흔한 지원유세 한번 못받아봤다고...[14] 문희갑은 딸만 셋이며, 조해녕과 김범일은 아들과 딸을 하나씩 뒀다.[15] 게다가 본인의 성인 洪씨의 한국어 음독이 붉을 홍(紅)과 같은 점도 묘하게 작용하는 듯.[16] 다만 대선 후에 밝힌 바로는 자기가 원해서 노래를 부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미 판 자체가 너무 불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말은 한 마디도 들어 주지 않았고, 그래서 유세 분위기를 띄우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전략을 썼다고 한다.#[17] 이순삼 씨 덕분에 꾸깃꾸깃하던 자신의 인생이 폈다고 말한다거나, 지금도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등 사랑을 종종 표현한다.[18] 다만 특이한 것은 아닌게 지금까지 전통적 성 역할을 중시하는 발언을 자주 한 것을 보면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19] 유승준의 국내 입국을 차단한 법률이었다.[20] 물론 현재는 63kg까지 늘어서 정상 체중이다.[21] 사실 1950년대생 남성들의 평균 신장이 170cm가 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많이 마르기는 했지만 또래 남성에 비해 결코 단신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22] 다만 이 중 김무성과 주호영은 바른정당 탈당 사태 당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23] 정치인은 아무래도 인상 쓰고 싸울 일이 많기 때문인지 대다수가 인상이 날카롭고 험악한 편이다. 일례로 닮았다고 평가받는 김정숙 여사와 박영선을 보면 박영선의 인상이 훨씬 날카로운 걸 볼 수 있다. 그 박영선도 정치인 중엔 비교적 웃는 얼굴상이라는 것.[24] 박원순이 사망하고 페이스북에 그를 추모하는 글을 올렸으며, 추모에 대해 딴지를 거는 네티즌이나 정치인에게 일갈하기도 하였다.[25] 원래 교통사고로 인해 무릎관절에 철심이 박혀 있어 병역면제 대상이었지만 자원입대해서 병역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26] 해병대는 그 규모상 사단내지 소규모 군단 수준이라 대장 지휘관 보임 필요성이 떨어진다.[27] 얼마나 가난에 시달렸던지 개그맨 시험에 응시한 이유도 과외나 아르바이트하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줘서 응시한 거라고 한다.[28]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친형이 알코올 중독에 빠져 이른 나이에 사망한 일을 계기로 술을 안마신다고 한다.[29] 이와 비슷한 사례로 도널드 트럼프가 있으며, 트럼프 역시 친형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가 알코올 의존증 때문에 사망해서 술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그 이후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30] 열린우리당이 서울 동북부 지역을 모조리 쓸어가는 와중에도 동북에서 유일하게 홍준표의 동대문구 을만 가져오지 못했다. 이때의 충격으로 당시 상대 후보였던 허인회는 결국 17대 총선 이후로 정계에서 은퇴했다.[31] 현 대구광역시청 본관 자리에 있었다.[32] 파푸아뉴기니는 1985년까지 식인 풍습이 남아있던 나라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33] 참고로 답십리는 자살하면서 홍준표를 물귀신으로 끌고 가려 했던 성완종의 경남기업(...) 본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34] 이 때 경선장에서 편지를 흔드는 홍준표의 모습도 나름 유명세를 얻었다.[35] 당시 김어준의 대선주자 인터뷰가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형식적인 중립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인간 홍준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이는 인터뷰였다. 그 당시 김어준에 대한 호칭은 김 사장![36] 물론 이것은 오세훈 자체에 대한 실망이 더 컸다고 봐야 한다. 상술한 오세훈과의 관계 참조[37] 근소한 차이로 서병수가 당선되어서 이 일은 일단락되기는 했다.[38] 한 가지 변론을 하자면 압도적인 표차이로 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심해까지 추락한 2017년 초 한국당의 지지율 상태에서는 어떤 후보를 내놓아도 그 점은 변함이 없었다. 당시 국민들은 좌우 가리지 않고 친박이라면 이를 갈고 있었다. 그렇기에 경력이 대선후보급이면서도 박근혜 정부 내내(김두관의 사퇴로 생긴 재보선이 18대 대선과 같은 날에 동시 실시했다.) 경남지사로 있어 중앙정치와 거리가 있었던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소속임에도 24%라는 지지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39] 이날 미우프에서 모두 각자 해당후보를 직접 만났다.[40] 11사단에서는 일반병들에게 피자 150판이 제공되었으나 홍준표가 이것을 듣고 쩨쩨하다며 3천만원을, 연평도의 해병대 부대에 500만원을 쾌척했다.[41] 홍준표의 특징인 정제되지 않고 직설적인 발언이라 더 욕을 먹은 것도 있다. 게다가 당시에는 평화 무드가 조성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고. 사실 지금 보면 홍준표 혼자 맞는 말을 한 것이 되는데도 당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본인으로서는 굉장히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42] 그림은 지지자가 그린 것이라고 한다.[43] 이 건으로 인해 토론회에서 이인선에게 저작권 무시라고 공격당했다.[44] 가장 대치되는 부분이 바로 공공의료에 대한 관점이다. 이재명은 공공의료원 설립 운동이 정계 입문의 계기가 된 반면, 홍준표는 있던 공공의료원도 폐쇄시켰다.[45] 송파구 갑 초선(1.5)+동대문구 을 3선(4.5)+경상남도지사 재선(4)+수성구 을 초선(1. 당적 없이 무소속으로 당선되었으므로 0선이 아니다.) + 대구광역시장 초선(2).[46] 다만 송파구 갑은 서울이긴 해도 보수정당에 상당히 웃어주는 곳이라서 사실상 영남권과 비슷한 수준의 텃밭에 가깝다. 실제로 송파구 갑은 홍준표가 당선된 15대 총선 이후로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보수 정당에 몰표를 던진 곳이다. 다만 저 당시에는 지금처럼 강남3구의 부동산 표심이 막강하진 않았었다.[47] 김종인이야 당연히 홍준표의 복당을 허가해줄 생각이 1도 없었고, 홍준표 역시 김종인 있는 동안은 복당할 생각이 1도 없어 복당 신청서도 김종인이 퇴임하고 나서야 제출했다.[48] 김태형 감독은 두산 감독직을 내려놓은 상태였고, 삼성 역시 아직 차기 감독을 선임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박진만 감독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김태형이 삼성 감독으로 오는 일은 없게 됐다.김태형은 그리고 1년후 롯데로 부임한다.[49]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평가가 매우 나빴기에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이 발언에 대해서는 옹호하는 여론이 대부분이다.[50] 또 홍준표는 대구 FC의 구단주로서 엄연한 축구인이기에 더욱 시원하다는 반응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