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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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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준표김영삼에 의해 정치에 입문한 후 보수 진영에서 꾸준히 활동 중인 정치인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성향상 민주당계의 인사들과는 정치적으로는 정적인 관계가 많다. 다만 과거 흙수저 출신으로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는 만큼 민주당계 인사들과도 인간적으로는 가깝다.

범진보계 정치인인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과는 정치적으로는 반대되는 인물이나 인간적으로는 존경, 인정을 보내는 한편 박근혜, 김무성 등 범보수계의 정치인과는 동맹 관계를 가지더라도 인간적으로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김무성은 같은 범YS계인 데다 자유한국당 시절에는 친박을 견제하면서 협력했지만 박근혜친박과는 정적 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나중에 범보수계 인사들 대부분과는 정적으로서 마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진보계야 본인이 보수에 활동하는 이상 지지층이 다르니 정적으로 남는 게 당연하다.

어쨌든 당장의 이익을 따라서 흔들리는 철새 정치인들에 비해 꽤 굳은 신념으로 움직이며 군사 독재의 결점을 인정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확실하게 우대하는 등 극우 세력을 비판하기도 하기 때문에 범진보 진영 지지층과 인사들 중에서도 호감을 보이는 인물들이 꽤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함께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라는 평도 받는다.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을 때 '계파 없이 독고다이로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은 나밖에 없다'라고 자평하기도 했고, 홍준표를 독고다이로 지칭한 언론 기사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이 때문에 홍준표가 대선과 같은 중요 선거에서 가장 많이 지적되는 약점이 '자기편이 없다', 즉 "정치적인 포용력이 부족하다"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좌충우돌이 심한 인물이라며 럭비공이라는 비아냥도 진영을 불문하고 많이 나왔다.[1] 다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는 생각이 바뀐 모양인지 이전보다는 발언 수위가 많이 낮아지긴 했는데 대구시장으로 취임하면서 중앙과는 거리가 있고 계파도 사실상 없는 독고다이형 정치인이다보니 아무래도 자중하는 모양이다.[2]

이에 대해 홍준표 본인은 자신은 독고다이는 맞지만 독불장군은 아니라고 자평했다.#

2. 범민주/진보계 정치인

2.1. 김대중

홍준표는 원래 1995년 당시 정동영, 정세균, 추미애, 김한길, 천정배, 신기남, 박주선 등과 함께 DJ 키즈로 불리는 새정치국민회의 15대 총선의 주력 영입 인재 중 하나였다.

그리하여 DJ 고유의 영입 직전 점심 식사 회동에 초청되었으나, "DJ랑 같이 한번 식사하면 그쪽으로 안 갈 수가 없다더라"는 주변의 말을 듣고 일단 참석하지 않았다. 실제로 DJ가 점심 영업에 들어간 인사의 절대다수가 민주당계 정당 깃발을 들고 출마했다. 그때를 회상하길 검사 시절의 활동으로 온갖 압박을 받던 와중에 자신을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는 당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당시 세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민주당계는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3] 당시를 한마디로 표현하길 '살아남기 위해 정치인이 되었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후 시간이 더 지나서 김영삼의 전화를 받고 여당으로 갔다.[4]

그 후 신한국당에서 당선되어 국회에서 야당 의원 생활을 할 때에는 한나라당의 주요 정권 공세 선봉장의 자리에 서서 일명 'DJ 저격수'로 활약한다. 특히 대북 정책을 매우 강력히 비판하였고 이후에도 '김대중 - 노무현 10년 책임론'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김대중에게 직접적인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며, 오히려 선대 정치가로서의 조금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홍준표가 전직 대통령들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5]

유시민과 함께 출연한 백분토론에서도 삼김시대 이후로 DJ같은 큰 정치인이 사라졌다며 DJ처럼 상대방도 용서하고 품어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며 DJ를 고평가했다. 최근에는 총선 참패로 국민의힘이 내홍을 겪는 와중에도 DJ는 79석 가지고도 정권교체하고 정권 재창출까지 해냈다며 DJ의 포용력을 강조하기도 했다.[6]

2.2. 노무현

노무현 정부 시절 "여권 저격수"로 활약한 바 있다. 특히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와의 설전은 상당히 유명하다. 노무현 사후에도 노무현과 친노 진영을 건드리는 발언을 자주 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고, 19대 대선 때는 이게 정점을 찍어서 그 유명한 자살 검토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홍준표 역시 과거 반독재 시위에 참가한 경험이 있으며, 특히 참여정부 당시 보건복지부장관,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으며 여권의 중심을 지켰던 김근태와는 서로 격려를 주고받았다. 사실 홍준표는 김근태를 고문했던 이근안에 대한 검거 작전을 주도한 적도 있었다. 이렇듯 친노 계열 정치인들과도 친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노무현과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할 정도로 의외로 친근했다고 한다. 청년의꿈 청문홍답에서 홍준표는 이해찬을 '참 똑똑한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또 본인이 민자당 → 신한국당에 들어가기 전날에 노무현이 홍준표 집에 찾아와서 꼬마민주당 입당을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에 들어가려는 모습을 보고 노무현이 "홍검, 그렇게 살면 안 돼요!"라고 화냈었다고 한다. 당시 꼬마민주당에서는 홍준표이회창을 영입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7] 홍준표 이야기론 강남구 을 출마를 원했는데 당시 민주당 이기택 대표가 홍사덕[8]이 있기 때문에 곤란해하여 무산.

훗날 이명박 정부 때 이루어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한 노무현 수사에서는 검찰을 향해 "구속할 거면 빨리 구속하든가 모욕만 준다"고 검찰을 대놓고 디스했는데[9], 이 발언은 전직 검사 출신으로서, 검찰 조직과 검사들의 막장 행각[10]을 많이 봤고, 본인도 나름대로 검찰 개혁[11]을 주장하고 부패 수사 도중 윗선의 압력으로 쫒겨나듯이 검찰을 떠나야 했던 그의 과거를 생각한다면 검찰의 행동에 진짜로 열받아서 했던 소리로 보인다.[12]

살아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는 공격하며 저격수로 활동했지만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는 그리 평가가 나쁘지 않다. 본인의 유튜브 채널 홍카콜라TV에서는 "누구보다 솔직한 대통령", 청년의꿈에서도 "소탈한 분"이었다고 평가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적인(안 좋은) 감정은 없었다고 한다. 또한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글에서도 취재진에게 "정치적 입장이야 반대 입장에 있어 달랐지만, 그정도면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노 전 대통령을 평가했다. # 유시민의 알릴레오와의 합방토론 홍카레오에서도 한나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많이 괴롭혔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2.3. 문재인

문 : "뼛속까지 서민. 그건 저하고 같은데. 같은 흙수저 처지에, 왜 제가 주적입니까?"
홍 : "아..! 친북 좌파기 때문입니다 ㅎㅎ."[13]
문 : "하하하..." (웃음)
홍 : "내 나라 국민은 바른정당하고 그 뭐뭐뭐 자유한국당은 적폐니까 청산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주적이죠."
"전에 토론 때 나한테 거짓말한다고 책임지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반대로 여쭤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630만 달러를 안 받으셨으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630만 달러를 안 받았다고 하셨는데 (수사 결과가 이미 있기 때문에) 이거 거짓말입니다.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 327면에 보면 노무현 시절 민정수석 하실 때, 기무사령관청와대로 불러내서 국가보안법 폐지하자고 할 때 자기가 폐지 못해서 제일 후회스러웠다고 하는데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마지막쯤...) 아들 황제 취업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은퇴한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계시니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다 거짓말입니다. 지도자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을 하고 가셔야지... 이렇게 하면 지도자 자격 없습니다."
"내가 문재인을 토론 때 봤을 때 든 생각이 '사람이 참 진솔하더라'였어요. (빨갱이 소리 안 듣기 위해) 굳이 장점을 뽑아보자면 쇼는 기가 막히게 한다, 쇼는 기가 막히게 합니다. 모든 것이 지금 쇼로 비쳐요. 판문점에서 조용필 불러갖고 노래하고 (위장 평화) 쌩쇼하는 것 보세요. 그 자리가 쇼하는 자리입니까? 행사장에 가보면 (탁현민은) 그렇게 기가 막히게 쇼를 연출해요."
"문재인 정권 들어오면서 26개월째(2019년 10월 기준) 경제(경기)가 하강 국면입니다. 제가 만들어 낸 말이 아니라 통계청 발표입니다. 그만큼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어요.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지니깐 처음에는 전 정권 탓을 했어요. 박근혜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부터인가? 문재인이 세계 경제가 어렵다면서 세계 경제 탓을 하더라고.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대한민국에 김건모뿐이야."

정치적으로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 특히 홍준표가 정권 출범 이후부터 문모닝으로 일관하며 계속 비판하면서 더더욱 그렇다. 대선 후보 당시에도 서로 개인의 행적 관련된 비판적인 논평을 한 것은 물론, 얼마 차이 안 나는 나이를 둘러싼 유치한 신경전도 있었다. 사실 문재인이 1살 많은 것은 호적상으로 따졌을 때고, 실제로 문재인과 홍준표는 동갑이다. 나중에, 100분 토론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유시민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토론을 할 때 '버릇없다' 라고 하셨는데, 그 때 저는 홍준표 대표님이 나이가 더 위인줄 알았어요. 알고보니 홍준표 전 대표님이 연세가 1살 더 어린데,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무례한 것 아닙니까?" 라고 묻자, 홍준표는 진땀을 흘리고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농담조로 "1살... (1살 차이밖에 안 납니다.) 그리고 객지에서는 10살 맞먹는겁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무현 문제를 놓고도 자주 논쟁하였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 둘만큼 사이가 좋지 않은데, 각종 유치한 이유는 물론 음모론 가지고도 홍빠들과 문빠들이 싸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둘이 맞붙었다. 결과는 문재인의 압승. 이런 상대이니만큼 친해지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특히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이던 시절인 2018년 초에는 드루킹 게이트 문제 때문에 여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둘 사이도 극과 극을 달렸다.

파일:홍크나이트설.gif

다만, 상기의 짤에서도 보이듯이, 사람 문재인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젠틀맨이라고 하는 등, 정치적인 문제 빼고는 딱히 사람 자체에 대한 비난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19대 대선 TV 토론 중에 문재인이 "이보세요" 라고 발언한 부분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듯한데, 대선 토론 영상과 홍카콜라 영상에도 "그 태도는 정말로 불쾌했다" 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 발언이 자신이 들었던 문재인의 발언 중에서 가장 쎈 발언이여서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정치적으로 뜻이 다를 뿐이라서 비판하는 거지, 박근혜친박처럼 주적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예상외로 서로 이념이 다른 정치인들끼리 국회에서는 죽일 듯 싸워도 밖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뭐, 정치인들이 간단한 회식 자리에서마저 싸운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을 것이다. 참고로 민주당 우상호 의원에 따르면, 예전에는 고성과 막말은 기본에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개막장 국회였지만 일 끝나고 나오면 한나라당 선배들과도 같이 포차가서 소주한잔 하고 그랬는데 최근에는 양당의 스팩트럼 자체가 너무 벌어지다보니 소모적인 감정싸움이 많아져서 진짜 심하게 싸운 경우에는 생까고 그냥 지나가는 일도 잦아졌다고 한다. 다만, 이런 식으로 무시하는 관계는 상대당보다 오히려 같은 당 동료 의원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일이 더 많다고 한다.

그래도, 문재인의 생일에 홍준표는 축하한다고 난을 보냈고, 문재인의 청와대에서도 이에 화답해 홍준표의 생일에 축하 난을 보낸 적이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적대적인 반면 사적인 관계는 괜찮다. 즉, 정치인 문재인으로서는 이념/생각 등이 다르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고 인간 문재인은 크게 비판하지 않는다. 이는 밑에 유시민과 TBS 김어준과도 비슷한 걸로 보인다. 김어준 같은 경우는 본인이 직접 김어준과 친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정책에 관련해서는 부동산 정책, 대북 외교, 편 가르기 등에서 실패했다 라고 혹평한 적 있고 실제로도 청문홍답에서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분야를 이 3개로 간추려서 얘기한 바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관해서는 매우 혹평하고 있는데 21대 국회의원 시절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햇볕정책이 아니고 종북 정책이라고 매우 혹평했다. 또한 김대중 정부 &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라고 확고한 의사를 밝히는 점에서 봤을 때 홍준표 본인이 대북 유화 정책 자체를 잘못된 정책이라며 확고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DJ와 노무현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종북정책이라고는 표현하지 않는데 홍준표의 설명에 따르면 DJ나 노무현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은 두 대통령의 정치력에 더불어 적어도 굴종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았는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굽신거리다가 돌아와서 얻은건 하나도 없고 남북관계도 파탄내고 한미일 삼각공조도 파탄내버린 폭망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2.4. 이재명

정치적으로 나쁘게 보지만 사석에서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관계라고 볼수 있다. 우선 기본적인 사상, 철학, 마인드, 걸어온 인생 역정 등이 완전히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강경 보수에 강한 반공, 반북 성향인 데다가 검사 출신인 홍준표와 달리, 이재명은 비교적 강경 진보[14] 성향이기 때문이다.

홍준표가 "나는 희망을 품고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이재명 지사는 분노를 품고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다."라고 이재명을 디스하기도 했다. 경기도의 차베스, 경기도의 주단태, 이일원, 기분소득, 욕설대마왕 등의 부정적인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이번 대선이 범죄자 대선이 되어선 안 된다'라며 이재명과 윤석열을 동시에 저격하기도 했다. 특히 이재명의 안티들은 이재명을 "막산이"라고 부르는데 홍준표가 이재명을 두고 "인생을 막 산 사람"이라고 한 것이 그 계기다.

또 이재명은 성남시의료원을 설립하기 위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 운동을 벌이고 설립 조례를 발의했으나 시의회에서 47초만에 컷당하자 울분을 토하며 항의 농성을 하고 그것이 정계 입문의 계기가 된 반면, 홍준표는 있던 공공 의료원도 폐업시켰다는 점에서, 공공 의료에 대한 시각은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이, 두 사람의 성향이 완전히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비슷한 점이 생각보다 많다. 둘 다 영남 + 흙수저 + 법조인 출신인 데다 타 지역 출신의 아내를 둔 점[15], 아들만 둘이라는 점, 도지사 경력으로 근무했던 곳에서 높은 지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 당내 비주류를 자처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각 지지자들에게 '할 말 다 하는 모습이 시원시원해서 좋다', '추진력 있고 일 잘한다'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반대 세력에게는 막말 + 포퓰리스트로 욕먹는다는 것도 비슷하다.

게다가 둘 다 언론, 특히 조선일보와 사이가 좋지 않다. 종북 세력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지지자들과 청년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것도 비슷하다. 또한 둘 다 의원내각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16]

2022년 8월경 이재명이 TK 신공항 관련 법안을 발의하자 홍준표가 청년의꿈에 도와주니 고맙다는 의견을 남긴 바 있다.[17] 다만 인간적으로는 세상을 증오하는 사람이라며 여전히 안 좋게 보는 편이며 두 사람의 행보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해도 나는 그 사람이랑 다르다며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2023년 5월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이 만났다. # 분위기는 의외로 훈훈했는데 홍준표 시장이 대통령실 및 여당을 비판하고 이재명 대표가 오히려 자제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또한 홍준표 시장도 이재명을 제1야당 대표, 차기 대권 주자로서 어느 정도 면을 세워주는 모습을 보였고, 이재명 대표 또한 홍준표 시장을 야권의 거물로서 치켜세워 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재명 대표는 원내에 진입해 제1 야당 대표로서 중앙 정치 한가운데 서있고, 홍준표 시장은 광역단체장으로 중앙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있으며 대선도 한참 남아서 둘 다 직접적으로 부딪힐 만한 일이 없는 데다, 오히려 광주-대구공항 이전 문제로 서로 협력을 해야 할 위치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윤석열의 뻘짓이 너무나 커서 중도층은 물론이고 여당 지지자들마저 이탈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서로 싸울 건덕지보다 현 여당과 대통령을 까는 형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후 2024년 1월 이재명이 피습을 당해 응급헬기로 서울로 이송된것을 가지고 보수언론과 의료계에서 맹비난을하자 홍준표 대구시장은 “진영논리로 특혜 시비를 하는 것 자체가 유치하기 그지없다”고 매우 강한 어조로 의료계와 언론을 비판했다.

한술 더 떠서 “제1야당 대표는 국가의전서열상 총리급에 해당하는 일곱번째 서열에 있는 것으로 안다”며[18] ”그런 사람이 흉기 피습을 당했다면 본인과 가족의 의사를 존중해서 헬기로 서울 이송도 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며 이재명을 옹호했다.

또한 홍준표는 “부산의료를 멸시했다는 논리도 가당찮다”며 전국 각지에서 삼성 병원에 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모이는데 왜 이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냐며, 지방 의료 수준을 수도권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

또한 의료계의 반발에 대해 "민주당이 지방의대 설립법을 단독 통과시켜 의료계가 집단 반발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라며 비판했다. #

22대 총선이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인 2024년 6월 21일, 후술할 한동훈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이 시사되자, "이재명 못지않게 뻔뻔한 사람이 왜 출마하냐"라며 간접적으로 까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로 미뤄볼때 정치적로 극렬하게 대립할지라도,공항이전 문제와 같이 협력할거는 같이 협력하고 인간적인 선은 지키는 관계라고 볼수 있다.

2.5. 이낙연

서로 정치적 노선이 다르기에 정책적인 비판은 하지만 이낙연이라는 사람 개인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이며 인간적으로도, 능력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청년의꿈의 청문홍답에서 한 유저가 이낙연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을 때도 "대통령깜입니다" 이라고 평했으며, 이낙연은 온건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낙연 지지자들 중에서도 홍준표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2022년 9월경에도 한 유저가 이낙연에 대해서 물어보자 ''영국 신사''라고 답해준다. 보면 민주 진영 내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보는 인물인 듯하다.#

2.6. 유시민

파일:01.19804266.1.jpg
홍 : "우리 유 장관 많이 유해졌어요..ㅎㅎ"
유 : "아니 지금 민방위잖아요 민방위. 홍 대표님 만날 때는 현역, 전투병 때고."
홍 : "아니~ 많이 유해졌어요~ 그리고 이제는 10년 전보다 깐죽거림도 없어졌고."
유 : "아니 면전에 대고 깐죽거림 그러면 안 되지~"

17대 대선 때도, 각 캠프의 두뇌로 대립각을 세운 적이 있다.#

10년이 지나고, 홍준표와 유시민은 각 진영의 대표적인 논객 유튜버라는 공통점이 있다. 홍준표는 홍카콜라, 유시민은 알릴레오 채널을 운영하면서 각각 보수와 진보의 대표적인 유튜버로 떠올랐다.

그리고 두 사람은 2019년 6월 '홍카레오' 합방을 하면서 의외로 훈훈한 케미를 보여주기도 했다. # # 이후 두 사람은 2019년 10월에 MBC 100분 토론 20주년 특집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 사적으로도 좋은 사이라 알려져 있으며 둘이 잘 어울리는 걸 보면 애증의 관계다.[19][20]

본인도 연설에서 유시민과 친하다는 언급을 했으며 청년의꿈에서도 유시민을 자주 언급한다. 유쾌한 좌파라고 일컬은 적도 있으며 유시민과 토론할 때가 서로 존중하면서 날카로운 대립도 있어서 재밌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버 있다.

MBC 100분 토론 유튜브 영상에서 이경규김국진이라는 댓글이 있다.

2023년 4월 9일 MBC 100분 토론 1000회 특집에서 서로가 3년 6개월 만에 다시 출연하여 이야기를 가졌다.#

2.7. 정세균

반대 정당이라 기본적으로 정적이지만 국회에서 오랫동안 보던 사이이다 보니 인연이 꽤 있는 것으로 보인다.[21] 또한 두 사람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선후배이기도 하다.[22]

홍준표가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당시 국무총리였던 정세균과 대정부 질의 과정에서 다시 맞부딪히게 됐는데, 알아줄 만한 상대 정당의 차기 대권 주잣감으로 생각했는지 정세균에게 대선 경선 나오실 생각까지 하시니 바쁘지 않냐고 뼈 있는 농담을 건넸고 정세균은 홍준표에게 '본인 말씀이 아니신지' 하며 웃으면서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본선에서 한번 붙어보고 싶다는 언급도 같이 하기도 했다.# 이를 봤을 때 내심 서로 한번 진심으로 대선에서 붙어보고 싶은 경쟁자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게 나라냐 하고 국민들이 이럽니다'[23]하면서 정세균에게 대정부 질문 때 문재인 정부를 비꼬아서 공격하기도 했다.[24]

2.8. 추미애

홍준표가 제1야당의 대표이던 당시 추미애가 여당 대표였으니 정치적으로는 당연히 견원지간. 특히 드루킹 게이트의 여파로 인해 서로 살벌한 설전을 벌였다.

그러나 사실 이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이며(연령은 홍준표가 4살 연상) 동향(대구광역시)[25] 출신이다.사적으로는 그렇게까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행사장 등에서 찍힌 사진을 보면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2017년 7월 25일 KBS 2TV에서 방연했던 이경규냄비받침에 출연하여 밝히기를, 과거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말했던 데 대해 공식 사과 하며, 추미애 대표와 사법연수원 같은 반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미인이었다. 그런데 2년 동안 쑥쓰러워서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

청년의꿈에서도 추미애에 대해 딱한 사람, 괜찮은 사람인데 윤 총장 때문에 상처를 크게 입었다며 안타까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 두 사람도 반대 진영이라 그렇지 여러모로 공통점도 많고, 정치 생활에 있어 접점도 많다.

2.9. 김부겸

파일:20180108 함께 떡케익 써는 홍준표-김부겸.jpg

김부겸은 홍준표와 절친한 몇 안 되는 민주당계 정당 소속 정치인으로[26][27], 사석에서는 형 동생 할 정도로 친분이 깊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무소속으로 TK 출마를 선언한 홍준표가 "김부겸 의원과는 24년간 형님 동생 하는 사이로 비록 소속당은 다르지만 한 번도 김 의원을 비난한 적이 없다."라며 "김부겸 잡자고 수성구 갑에 출마하면 정치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

결국 홍준표는 바로 옆 지역구수성구 을 지역구를 택하고 그 곳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잘하면 수성구에서 홍준표와 김부겸이 같은 에서 국회의원이 될지도 몰랐지만, 당선은 홍준표만 되고 김부겸은 지역구를 수성구 갑으로 옮겨 출마한 주호영에 밀려 낙선하였다.[28]

2022년 김부겸의 정계 은퇴 시사에 홍준표는 “모든 사안에 합리적인 분도 진영 논리에 갇혀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하는 측은함도 있다” 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김부겸 역시 본인이 마실 돈이 없을 때, 외상 달아놓고 홍준표에게 그걸 갚아달라 부탁할 수 있을 정도의 사이라고 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 김부겸 총리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원한 스폰서.

2.10. 박지원

18대 국회 당시에 홍준표는 여당 지도부에, 박지원은 야당 지도부에 몸담으면서 대립했었다. 18대 국회 특유의 엄청난 난타전이 불어닥칠 때마다 뉴스에서 두 사람의 날선 인터뷰를 보는 게 일상이었을 정도. 다만 박지원이 민주당계 정당에 오랫동안 몸담아 왔음에도 성향 자체가 보수 우파에 가까운 사람인 데다 보수 계열 정치인들과도 꽤 친한 만큼 홍준표와도 나름대로 가까운 편이다.[29][30]

홍준표 역시 대북 송금 특검 등으로 박지원을 비판하면서도 박지원 특유의 달변가 기질, 탁월한 정치 감각 등은 인정하며 존경을 표한다. 19대 대선 당시 특유의 토론 실력으로 주목받자 현역 정치인 중에 나랑 토론으로 비빌 수 있는 사람은 박지원 선배밖에 없다며 그를 치켜세우기도 할 정도.[31]

다만 박지원의 정치 행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판하는 편인데 상술한 대북 송금 특검과 더불어 19대 대선 당시에는 박지원이 상왕 정치를 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32]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박지원이 국정원장으로 취임하자 북한에다가 돈 갖다 바친 인간한테 정보기관을 맡기는 게 말이 되냐며 저격한 적도 있고 최근에 국정원 X 파일 논란이 불거지자 서로 관종 정치를 한다며 물어뜯기도 했다. 그래도 기본적인 사이 자체는 여전히 괜찮은 듯하다.

2.11. 박원순

고향이 경남 창녕으로 같다. 사법 시험 기수는 홍준표가 2년 후배. 창녕 인구가 많지 않으면서도 창녕 출신의 대표적인 두 인물인 셈.[33] 박원순 자살 사건에는 "차기 대선이 창녕군수 선거가 될 수도 있었다"며 비보에 안타까워했다. #

비록 정치적으로는 오세훈의 서울시장직 사퇴와 더불어 박원순이 서울시장직을 뺏어오면서 꽤나 껄끄러운 사이였지만 인간적으로는 꽤나 가까웠던 모양이다.[34] 이 때문인지 박원순의 성범죄 행각이 드러난 이후에도 "성범죄는 분명히 잘못한 게 맞고 피해자가 있다면 명명백백히 밝혀내야겠지만 박원순이라는 사람이 걸어온 모든 삶의 행적이 부정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는 이미 자살로써 죗값을 치렀다."라며 씁쓸함을 표현하기도 했다.[35]

2.12. 강기정

홍준표가 원내대표와 당대표를 하던 18대 국회 시절 강기정은 민주당의 돌격대장으로 활약하며 국회 공성전과 필리버스터에서 자주 충돌하던 사이였다. 주로 강기정이 고함을 지르면 홍준표는 뒷짐지고 껄껄 웃다가 한나라당 의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퇴장하는 식. 이밖에도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로 활동하던 시절에 강기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하던 정무수석이었기에 충돌과 기싸움도 꽤 잦았다.

다만 공개석상에서 싸우면서 얼굴을 붉히던 것은 강기정이 초선, 재선 신분이던 2000년대 이야기이고 강기정의 체급이 올라 광주광역시장에 취임한 현재는 달빛동맹을 제창하며 서로 협력하는 사이이다.[36] 사실상 김부겸과 유시민을 제외하면 민주당 쪽 정치인중에서는 가장 우호적인 관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TK 신공항이 확정 분위기로 접어들자 홍준표는 강기정과 함께 출연한 백분토론에서 호남지역에도 무안공항이 있는데 주변 인프라를 구축하고 활주로를 연장해서 공항다운 공항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2.13. 심상정

심: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를 경쟁 후보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국민들의 자괴감과 국격을 생각할 때 홍준표 후보는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오늘 홍준표 후보와는 토론하지 않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19대 대선 3차 토론 중
홍: "노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노조의 부당한 행동을 부정하는 겁니다. 그거는 법에 따라서..."
심: "그 부당한 걸 왜 홍 후보가 판단합니까!""
홍: "아니, 토론 태도가 왜 그래요!"
19대 대선 5차 토론 중
심: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부정 축재한 재산들 전부 환수하고, 홍 후보님 국민 세금으로 특수 활동비 지급한 것을 가져다가 사모님 생활비로 드리고 그러는데 이런 돈을 알뜰하게 챙겨서 국가가 나서서 청년 일자리를 만들 것입니다."
홍: "대통령 될 일 없으니까 그런 꿈 안 꾸셔도 됩니다."
2분 9초

정치 성향과 추진 정책, 노선들이 홍준표와 완전 반대이기 때문에 홍준표와 빈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두 사람이 맞붙었던 19대 대선 토론회에서도 다른 후보들 보다 훨씬 더 격하게 대립하며 살벌한 설전을 벌였다.

홍준표는 심상정을 '배배 꼬인 사람' 이라며 좋아하지 않는다.[37][38] 실제로도 19대 대선 유세 때나 청년의꿈에서도 청문홍답에서 심상정을 심배배라 부르며 비아냥대는 듯한 말투로 말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심상정의 동료였던 노회찬과는 꽤 잘 어울렸다는 점과 유시민한테도 살갑게 지내는 점에서 심상정을 대하는 게 다른 거 보면 확실히 심상정의 성격이 짜증 나서 홍준표 본인이 심상정을 진심으로 꺼리는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심상정이 22대 총선에서 패하고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로는 두번 다시는 얼굴을 맞댈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3. 범보수계 정치인

3.1. 친홍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친홍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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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김영삼

파일:김영삼홍준표.jpg
검찰에서 쫓겨나다시피 하고 변호사를 개업해서 힘겹게 살아가던 홍준표를 정계로 부른 인물이다. 사실 가족의 안위를 위해 홍준표 본인도 갈팡질팡하고 있었는데 김영삼이 직접 전화해서 "문민정부에서 큰 사람이 왜 야당으로 가려 하느냐"라고 하며 신한국당 입당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고려대학교 선배였던 이명박[39], 학생 운동, 노동 운동의 거목이었던 이재오, 김문수 등과 인연을 맺게 된다.

원래는 민주당에 입당하려고 했으나 대통령의 전화에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공직(검사)에서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대통령의 전화에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전화 통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전화에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 자세로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반세기 전인 그 시절에 대통령의 권한과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 당시만 해도 참여정부[40] 이후의 한국 정치에서는 어느 정도 정립된 당정분리가 저 때는 되어 있지 않아서[41]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고 여당 내의 당직[42] 인선, 각종 선거 공천에 대놓고 직접 관여했다.[43]

입당 직전 노무현 변호사가 찾아와서 자신과 같이 민주당에 가자고 설득했지만 마음을 바꾸지 않자 실망했고 이때를 기점으로 이들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홍준표는 상도동계는 아니지만 노무현, 이명박과 마찬가지로 YS 키즈에 속한다.

홍준표는 정계에 입문한 이후로 특별히 누구의 계파라고 자임한 적은 없지만, 1997년 대선 이후 이회창 총재가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장악한 이후에는 상도동계, 민주계로 분류되어서 이회창 총재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44]

그리고 줄곧 정치를 하면서 김영삼에 대한 존경은 계속해서 표현했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에 당선된 뒤 상도동을 찾아 YS에게 인사를 할 때도, “저희들이 다 ‘YS 키즈’”라며 “제가 장인, 장모님도 안 계시고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셔서 밖에서 큰절하는 데는 각하밖에 없다”고 말했다. YS 또한 “장하다. 압도적으로 이겼다“며 “내가 역시 공천을 잘했다”고 말할 정도로 홍준표를 아끼기도 했다. #1 #2

자유한국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에는 중앙당사 및 전국 시도 당사에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더불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도록 하기도 했다. 홍준표는 보수 우파의 적통을 이어받은 본당으로서 건국 시대의 상징인 이승만 대통령, 조국 근대화의 상징인 박정희 대통령, 민주화 시대의 상징인 김영삼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물론 상도동계 직계인 정병국이승만에 대해 반대한 사람이 박정희이고, 박정희와 원수 관계인 사람이 김영삼인데 김영삼에 대해 제대로 안다면 김영삼박정희를 같이 배치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산업화 세력인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민주화 세력인 김영삼통일민주당이 연합한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보수 정당의 중시조로 평가받고 있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 민자당 내에서 YS의 민주계가 당권을 장악하고 자민련 분당 후에는 15대 총선을 앞두고 당명까지 신한국당으로 변경하고 홍준표를 비롯해 김영선, 황우여, 이재오, 정의화, 창원 안상수, 인천 안상수, 김문수, 심재철 등 정치 신인을 영입하고 이들이 중진으로 성장하며 보수 정당의 전성기를 연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에 현재 보수 정당에서 김영삼을 이승만, 박정희와 함께 기리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청년의꿈에서는 YS가 솔직해서 좋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상도동계 출신인 김무성, 정병국이나 김영삼의 아들인 김현철과는 껄끄러운 관계인데 김무성, 정병국과는 한나라당 대표를 할 때부터 이 둘이 홍준표를 여러 차례 비판하면서 사이가 벌어진 상태였고 김현철은 홍준표가 혁신위원장을 하던 시절에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으나 탈락했던 만큼 공천 관련해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45]

3.3. 박정희

박정희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홍준표는 10대~20대 초중반이었는데, 이 시절의 홍준표는 박정희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에 한번 나갔다 잡혀서 한번 끌려가서 구타당하고 풀려난 적은 있었지만 적극적 반대를 한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아니었고, 그 이후엔 박정희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가지 않고 절에 들어가 사법 시험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정희의 권력에 편승하는 인물도 아니었기 때문에 박정희와 직접적으로 악연이 있거나 하진 않다. 다만 차지철이나 유신헌법을 만든 김기춘 등의 몇몇 간신배들에 대해선 나쁘게 보고 있다.

그럼에도 홍준표는 박정희를 업적이 많은 분이라고 하면서 박정희에 대해서는 가장 존경하는 분 중 한 명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기 전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정권을 잡고 있을 때 고리채 정리 조치를 해준 것도 그 당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그나마 빚 부담을 줄일 수 있었기에 좋게 생각하고 있다.[46]

3.4. 전두환

홍준표와 전두환은 옆 동네 출신인지라 홍준표는 전두환을 옆 동네 어르신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창녕이나 합천이나 옆 동네인 데다 학교도 둘 다 대구에서 나온지라 홍준표가 전두환을 옆 동네 어르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지역 연고 자체는 강한 셈.

전두환이 대통령이던 시절 홍준표는 검찰에 막 임관을 했는데, 검찰 조직 내에서도 소신이 강한 비주류로 찍히기까지 해서 홍준표의 입지는 좋지 못했다.[47] 다만, 홍준표가 검찰에 임관하고 얼마 후 전두환의 동생인 전경환이 홍준표에게 찾아와서 청와대 파견 검사로 부임하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했는데 홍준표 본인이 거절했다.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후일 홍준표는 노태우가 대통령이던 시절 전두환의 측근이었던 5공 수사에 적극적으로 앞섰으며 전두환의 형인 전기환을 구속시키는 데 일조했다. 즉, 지역 연고는 강하지만 악연에 더 가까운 사이나 다름없었다.[48][49] 홍준표가 훗날 회상하면서 그때 전경환의 청와대 파견 검사 부임 제안을 거절했기에 이후 본인이 5공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전두환이 사망했을 때, 홍준표는 그래도 옆 동네 어르신인데 조문은 가야 하지 않겠냐고 청년의꿈에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청년의꿈에서 반대 의견이 매우 우세하자 홍준표는 전두환을 조문하지 않았다.

3.5. 노태우

악연에 가까웠던 전두환과는 달리 박정희처럼 관계가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다만 노태우 정부 때 5공 관련 수사를 하면서 노태우 정부에까지 불똥이 튀자 정부에서 홍준표한테까지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민정부 초기 노태우의 최측근으로 6공의 황태자로 불리던 영부인 김옥숙의 고종사촌 동생 박철언을 구속했던 적이 있고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지역 연고는 매우 강했으나 딱히 친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3.6. 김종필

19대 대선 당시 홍준표가 김종필의 자택에 찾아가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당시 김종필은 홍준표에게 '맑은 얼굴', '대통령이 되어야 할 사람'이라며 치켜세워 주기도 했고, 홍준표 역시 김종필에게 '총재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라며 김종필을 리스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50]

특히 이재오, 홍준표 앞에서 김종필이 문재인을 맹렬하게 대놓고 비난한 것은 현재에도 회자되고 있다.

재밌게도 두 사람의 이니셜은 JP로 같다. 홍준표 본인은 '나는 김종필 총재에 비하면 한참 작은 사람'이라며 본인의 이니셜을 소문자로 표기한다.

3.7. 나경원

파일:홍준표 나경원 회동 20210112.jpg
나경원 원내대표의 원정 출산 의혹을 밝히라는 기사

한때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 급식 투표에 시장직을 건 사태에 대해 나경원 당시 최고위원이 오세훈 옹호 및 무상 급식 반대를 당론으로까지 이어가자는 견해를 표명하자 유승민 최고위원을 비롯해 한나라당 내부에서 강하게 비판받을 때 비호를 해주었던 홍준표이지만[51], 2019년 이후 정계 역학 관계 때문인지 홍준표 본인이 내부적 비판을 자주 표명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국법무부장관의 여러 의혹에 대해 보수당도 같이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하여 나경원 원내대표를 상대로, 이중 국적 - 원정 출산 의혹의 아들에 대해 원정 출산 의혹을 해명하라고 강권하였다. 같은 날 나경원은 아니라고 답변했다.#

2021년 1월 12일 나경원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 하루 전 마포구의 한 음식점에서 회동을 가졌다. 나경원에게 열심히 해서 당선되란 덕담을 했다고 밝혀졌다. 이로 인해 지난 10년 깊어졌던 갈등의 골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52]

그러나 2023년 전당 대회를 앞둔 1월에 서로를 비판하며 다시 사이가 매우 멀어진 것으로 보였으나, 2024년 전당 대회를 앞두고 나경원이 당대표 출마를 결심하자 홍준표와 대구에서 만찬을 하였으며, 홍 시장은 나 의원에게 "당을 오래 지켜오고 당을 오랫동안 알아왔고 이제는 당에서 했던 그런 경험을 통해서 충분한 역량이 됐다"며 덕담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3.8. 이명박

이명박의 고려대학교 후배이며[53], 김영삼 대통령 밑에서 같이 성장한 YS 키즈라는 공통점이 있다. 1996년 이명박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그의 부탁을 받아 장외 변론을 맡아주는 것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이 일로 이명박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해 버리고 미국 워싱턴으로 연수를 떠났으며, 이후 1999년 홍준표 역시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받던 중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똑같이 정치 백수가 된 후 워싱턴으로 갔고, 미국에 체류하는 7개월 동안 서로 교류하며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한다.[54] 이명박 집에 불쑥 찾아가 이명박의 아내 김윤옥에게 "행수, 내 밥 좀 도" 라며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귀국 후에도 가깝게 지냈으나 2006년 서울시장 경선 때 이명박이 홍준표가 아닌 오세훈을 후보로 밀어주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하지만 이후 17대 대선을 앞두고 다시 만나서 BBK 등 이명박의 여러 의혹들을 막아주면서 활약했다.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국무총리법무부장관 한번 맡겨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돌아온 것은 뜬금없는 환경부장관이었다. 한직을 제의받은 홍준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홍준표 : 너 혹시 "타타타"라는 노래 들어봤나?
임태희 비서실장 : 아니오.
홍준표 : 그 노래가 이렇게 시작을 하더라.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낸들 너를 알겠느냐"

훗날 19대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유세 현장에서도 MB에 대한 서운함을 언급하여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듯했으나, 그 와중에도 MB의 사무실을 예방하는 등 교류는 여전히 하고 있으며 MB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정치보복특별위원회도 신설해서 형식적으로나마 대응하고 있다. 특히 지방 선거에서 패하고 당 대표를 사퇴한 후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구치소 접견을 하기 위해 변호사 개업까지 하는 등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청년의꿈에서 이명박 보고 "욕심 많은 형님"이라 평가하기도 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이명박 사면을 요청하였다.

3.9. 원희룡

원희룡의 경우 20대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만 아니라 옛날 17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맞붙은 바 있다.[55] 쉽게 말해서 오래전부터 두 정치인 모두 국민의힘의 대선 잠룡으로 꼽혔던 셈.[56]

홍준표와 원희룡은 16~18대 국회에서 같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18대 국회에서는 원희룡은 소장파 쪽에 더 가까웠단 차이는 있지만 두 정치인 모두 범친이계로 분류됐었다. 두 사람 모두 민선 6기 광역자치단체장이었던것도 비슷한 점.

다만 관계가 나빠질 뻔했던 일도 있었는데 홍준표가 한나라당 대표를 하던 시절에 최고위원이던 원희룡과 갈등을 빚었고 또한 남경필과 싸잡아서 "꼴 같지도 않은 게 대든다. 쥐어 패고 싶다."라는 극언을 한 적이 있다. 이후에도 박근혜 파면 여파로 인해 당시 범보수에 매우 불리했던 7대 지선에서 원희룡이 출마한 제주도에 자유한국당 후보를 내보내 원희룡까지 같이 팀킬할 뻔해 원희룡에게 피해를 줄 뻔한 일이 있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관계는 좋은 편에 속하는지 대선 후보 경선 때 서로한테 유쾌하게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57] 특히 원희룡은 홍준표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홍준표는 원희룡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지 않고 있다.

청년의꿈에서 원희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이 들어오자, 홍준표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분'이라고 원희룡을 평가하기도 했다. 이를 봤을 때 홍준표 본인도 원희룡의 역량에 대해서는 나름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2024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원희룡이 홍준표를 예방했을 때 출마해 줘서 고맙다고 반갑게 맞이했다.

3.10.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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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만 같았지 정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홍준표 본인이 박근혜의 선친 박정희를 5천 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지도자로 호평함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와 친박 간의 알력은 깊었다.

상도동계친박과 껄끄러운 사이라 해도 박근혜홍준표의 관계는 특히 나쁜 편이었다. 박근혜한나라당 대표였던 시절 혁신위원장이 홍준표였고 곧 불협화음을 빚기도 했으며 홍준표가 원내대표였을 땐 친박 복당파와 박근혜의 앞마당인 친박연대가 사사건건 반대만 날리거나 야당의 의견에 동조하는 모습을 가끔 보았기에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게다가 2011년 전당 대회에서 홍준표친박계의 지지를 받던 유승민을 꺾고[58] 당 대표가 되었기에 박근혜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다.[59] 당년 무상 급식 파동으로 홍준표가 대표최고위원을 사퇴하는 지도부 붕괴가 발생한다. 그의 체제가 반년 만에 무너진 뒤 비대위원장으로서 당권을 잡은 박근혜홍준표를 문전박대했고 끝내 그는 지역구를 빼앗겨야만 했던 악연도 있었다.

그 뒤 홍준표는 야인으로 지내다시피 했으며, 경상남도지사 보궐 선거에 출마 요청을 받고 나가 당선되었으나 사실 직접적인 중앙 정계에서는 밀려나게 된 것이었다.'[60]

이후에도 지방 선거에서 홍준표는 아무런 지원[61]도 받지 못했고, 성완종 리스트 사건 당시에는 리스트에 있던 친박[62]들은 다 빠져나가고 박근혜에게 찍힌 본인과 이완구만 기소되는 등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뒤 둘의 관계는 역전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된 홍준표는 처음에는 "탄핵당해도 싸다."라며 박근혜를 비판했으나 탄핵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며 문화대혁명에 비유하면서까지 계속해 탄핵이 정당하지 않았다거나[63], # 임기는 마치게 두자거나, 착하고 위법한 짓 할 분이 아니라며 최순실에게 이용당한 것뿐이라며 주장하였고, 친박과도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당 대표가 된 뒤엔 김무성, 친무 등 여타 비박계에게 복당을 요청하면서 당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친박을 견제하고 박근혜도 출당시켰다.[64]

홍준표가 당 대표 직권으로 박근혜를 제명한 것이 남용은 아니었고, 둘의 사이가 나빴다거나 당시 박근혜의 행적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유였다. 이에 이어 삼김 시대 이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집단은 친노뿐이고, 친박을 바퀴벌레나 이익 집단이라 부르는 등 철저히 멸시했다. 혁신을 시도해도 고비 때마다 무리 지어 저항하는 바람에 5개월 안으로 당을 변혁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

물론 완전히 쳐낸 것은 아니라 정태옥 등 많은 친박 인사들이 지도부 자리를 차지하였다. 당시엔 친박을 숙청하고 싶었던 홍준표 입장에서도 친박이 최대 계파였다보니 배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아 상황이 불안정했고, 본인이 임명한 정태옥이부망천 논란을 일으켜 7회 지선을 망치기도 했다. 친박을 숙청시키지 못해서 오히려 유승민, 정병국 등 당시 바른정당 인사들과 갈등이 발생했고, 자유한국당바른정당 합당이 늦어지기도 했다.[65]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패배한 후 고요히 지내다가 전당 대회 때 복귀를 선언했었는데, 황교안이 출마를 선언하고 계속해서 친박 행보를 보이자 오세훈과 함께 불출마를 권유했다. 황교안이 이를 거부하자 홍준표는 불출마를 선언했고, 결국 황교안친박 지지자들에 힘입어 당 대표로 당선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앞서, 황교안 지도부의 공천 결정에 불복해 자의로 탈당하였는데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구로구 을이 아니라면 불출마하라는 강요에 가까운 대답을 들어 충격을 받아 탈당했다고 한다. 사실상 황교안 및 그의 계파인 친황이 껄끄러운 인물을 험지로 보내서 정리하겠다는 의도를 홍준표가 파악한 것이다.# [66]

이는 당연한 것이, 본인은 스스로 동구 을이나 고향이 있는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새로운보수당과 합당한 후엔 김두관을 잡기 위해 양산시 을에 지원했는데 셋 다 홍준표가 이길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이다. 수도권에서의 연고지인 송파구 갑이나 동대문구 을도 아니고, 부울경 내 접전지인 양산시 을로 희망 지역구를 선택했는데 뜬금없이 구로구 을에 가서 죽고 정계에서 은퇴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니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친박 초재선 혹은 친황들이 텃밭에서 단수 공천을 받고[67], 중진들 중 텃밭 지역구에 출마한 사람들이 접전지와 험지에 출마한 당 정치인들을 지원도 거의 안 하고, 오히려 막말이나 부적절한 행동을 해서 피해를 입히니 이들을 곱게 볼 수 없었다. 결국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구 을에 출마해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 후보 모두까지 때려눕히고 화려하게 복귀했다. 황교안도 낙선하고 당도 참패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깝다고 했다.[68] #

결국 친박을 축출하겠다는 홍준표의 계획은 21대 총선을 기점으로 실현된다. 김선교, 유상범 등 새로운 친황 정치인이 유입되고, 이만희, 정점식 등이 의석을 유지했지만 친박, 친황의 수장인 황교안을 포함 친박들이 대거 낙선하였고, 또 2021년 재보궐선거, 이준석 지도부 체제 출범 이후 당 지도부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69]

결론적으로 탄핵 이후로 홍준표와의 관계는 박근혜친박이 서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해선 자유를 수호한 결정이었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등 마냥 반대만 일삼던 것은 아니었고, 탄핵을 지켜보며 줄곧 부당했다고 지속해서 주장해 왔다. 또한 석방 의견도 줄기차게 외쳐 왔다. # 이런 의미에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박사모가 홍준표 지지 선언을 하고 홍문종 친박신당 초대 대표가 jp희망캠프 고문직을 맡은 점 및 추후에 우리공화당의 조원진이 홍준표에게 손을 내민 점을 허투루 여기거나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실제로도 구 친박 상당수가 홍준표를 지지했다.[70]

그러나 친박박근혜를 팔아먹어서 정치한다며 강경하게 비판하고 있다. 텃밭에서 쉽게 의정 활동을 하다 보니 지역구 관리도 제대로 안 하고, 계속 사고나 치면서 가볍게 보는 모습을 보고 답답하다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종섭 보고는 장관직 마치고 박근혜 후광으로 국회의원 됐지만 국회의원은 알바 정도로만 생각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고 비판했다.[71] 아예 대놓고 깡통에다 박근혜 사진을 붙여놓고 구걸한다며 조롱할 정도이다.

2021년 12월에는 강성 친박 정치인인 김재원을 두곤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 하면서 박근혜를 망친 사람이 이젠 윤석열도 망치려고 장난질이네. 어이없다."라고 청년의꿈 질문에 답하였다. 실제로 김재원은 박근혜가 45년을 구형한 장본인인 윤석열을 지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발언했고, 홍준표는 이에 '새털처럼 가벼운 입'이라며 비판했으며, 더 이상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홍준표는 친박 중에서도 유독 김재원에 대해서는 매우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다만, 홍준표가 당내 세력을 만들려고 구 친박계를 상당수 끌어들였기 때문인지 친박 출신들이 홍준표의 jp희망캠프에 꽤 많았고,[72] 김재원[73] 같이 홍준표가 아예 싫어하는 경우 빼고는 정우택 등의 친박 출신 정치인까지 포섭 시도를 했다. 특히 청년의꿈에 친박 중진 정치인인 김태흠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는 유저가 있었는데 홍준표가 직접 '앗쌀한 분입니다'라고 대답한 것도 남아있다.

대구시장으로 취임한 현재는 박근혜에 대해 딱히 악평을 하거나 하진 않는다. 도리어 "딱하신 분, 죄는 최순실이 지었는데 억울하게 피해 보신 분" 정도로 평가하며[74] 박근혜와 만나겠냐는 청년의꿈 유저들의 질문에도 "박 전 대통령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그분에게 다시 한번 상처를 주는 일"이라며 "내가 박 대통령을 만나면 좋든 싫든 정치에 끌어들이게 되기 때문에 안 만나겠다."라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박근혜 본인은 경선 당시 그 어느 쪽에도 특별히 편을 들진 않고 조용히 있었으나 대신 그의 남동생인 박지만 회장이 홍준표를 지지했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 동상을 대구에 짓겠다는 계획에 박근혜 일가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 김장호 구미시장도 동상 건립에 찬성하였다. 2024년 8월 14일 박정희 광장 제막식에 박근혜 전 대통령도 올 예정이었으나 당일이 친모 육영수의 기일이었기에 옥천군육영수 생가를 방문해서 박정희 동상 제막일에 방문할 듯 하다.

3.11. 우리공화당, 조원진

홍준표 : "거리에서 돈통 놓고 박근혜 팔아 정치생명을 이어가려는 양아치 같은 사람들을 보면 대한민국 보수 우파들은 참으로 순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홍준표 페이스북 글
조원진 : 탄핵 주도 세력 중에 김무성, 유승민, 권성동, 김성태[75]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제명한 홍준표 이 다섯 사람만 정치를 떠나면 보수대통합 빨리 될 수 있다.
- 조원진, "보수 대통합 불발 시 애국당은 내년 총선에서 전 지역구에 후보자를 공천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언급한 말.# 조원진은 상기한 5인을 일명 '탄핵 오적'이라 하며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다.
조원진 : 홍준표한테 한마디 했습니다. 까불지 말란 말이야! 자신 있으면은 조원진이를 고발하란 말이야! 바로 영창에 집어넣어 버리겠어! 어딜 건방진 새끼가 말이야 자기가 했던 일들도 잊어버리고 감히 대한애국당을 이러쿵저러쿵 박근혜 대통령을 이러쿵저러쿵 가만히 두지 않겠습니다. ...(중략)... 그래도 자신 있으면은 한번 떠들어 보란 말이야! 다시 한번 더 홍준표한테 경고한다고, 까불지 마라, 그 입 다물라. 홍준표가 거론할 지금의 시대가 아니에요. 지금의 시대는 그렇게 경망스럽게 체제에 대한 이념도 가지지 않고 대한민국의 중심이 뭔지도 모르고 경망스럽게 떠드는 그런 사람들이 판을 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나라가 다 망했는데 무슨 놈에 앉아가지고 홍카콜라인가 지랄 같은 걸 하고 있냐고, 용서하지 맙시다.
- 조원진, 2019년 06월 08일 제127차 태극기집회에서 홍준표를 비난한 내용 (9분 30초부터 참고)

조원진대한애국당(現 우리공화당) 세력과 홍준표는 서로를 증오할 정도로 싫어하며[76], 우리공화당은 태극기 집회에서 보수 우파의 배신자 역적 세력이라면서 처단하자고 주장하고 있다.[77] 또한 홍준표의 경우 이전부터 친박들을 양박[78], 바퀴벌레라고 비판해 왔으며, 페이스북에서 "거리에서 돈통 놓고 박근혜 팔아 정치생명을 이어가려는 양아치 같은 사람들을 보면 대한민국 보수 우파들은 참으로 순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 탄핵당하고 구속당하고 아직도 핍박을 받는 것이다.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네티즌들과 극우 세력들의 추측으로 봤을 때 조원진을 저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또한 연세대학교 학생들에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계파를 비교하면서 "친박은 국회의원 한번 하려고 박근혜 치맛자락 붙잡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박근혜보다 박근혜의 이념이나 정책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 그저 아부하며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친박들을 더 싫어하는 듯하다.[79] 한마디로 깡통박근혜 사진 붙여놓고 구걸하기라고 비꼬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친박 성향의 유권자들도 미래통합당에게 몰표를 주어 우리공화당은 원외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기존의 거대 야당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층의 몰표를 받은 미래통합당도 개헌 저지선인 101석보다 겨우 2석 받은 103석에 그쳤다.[80][81] 이 때문에 홍준표는 이제 탄핵을 넘어서서 우리공화당 세력을 포함한 중도 우파[82]문재인 빅텐트를 구성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83]

그러나 조원진이 홍준표보다도 더 이를 가는 사람이 바로 윤석열인지라, 윤석열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홍준표로의 후보 교체론을 주장하고 있으며 친홍의 집결지 청년의꿈에 청꿈을 응원하는 게시물을 직접 올려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에 대한 홍준표의 반응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였지만 "조원진과 협력할 생각 있으신가요?"라는 청꿈러의 질문에 "하나가 돼야 합니다."라고 답하여 여지를 남겨두었다. 실제로 조원진은 청년의꿈에서 예전과는 다르게 홍준표에게 "홍 선배 다음에 약속 장소에서 뵙겠습니다" 이런 쪽지와 인증샷을 남겼고, 홍준표는 청문홍답에서 유저와의 질답에서 '조원진과 식사 약속이 다음 주에 잡혀있다'는 언급을 하였고,[84] 실제로도 만났다.[85]

또한 홍준표가 청문홍답에서 조원진을 만나셨다는데 조원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유저가 묻자 홍준표는 '집착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3.12. 한동훈

개인적인 접점은 없다. 다만 법무부장관 취임 이후부터 종종 견제하는 발언을 해왔는데 대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사면 불발 당시 한동훈을 비판했던 적이 있으며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황교안 시즌2, 이미지 정치만 한다며 악평을 해왔다. 결국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하자 "셀카만 찍다가 당을 말아먹었다", "깜냥도 안되는 애를 데려와서 30년 동안 몸담은 당을 무너뜨렸다"며 한동훈에게 연일 극딜을 날리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발언을 보면 정치인 한동훈에 대한 비판이고 김재원이나 황교안처럼 한동훈 개인의 사람됨에 대한 악평은 한적이 없다.[86] 도리어 이명박 대통령 사면 당시에는 잘한 결정이라며 옹호한 적도 있고 총선 직전에 2년도 안된 정권이 차기를 내세우는 전례는 없다고 말한걸 보면 정치 경력이라고는 법무부장관 경력이 전부인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으로 나온것 자체가 사리에 안맞다고 생각하는 듯.[87] 무엇보다 한동훈이 총선 결과에 대해 오롯이 본인 책임이고 무엇이 우리 당을 살려내는 일인지 고민하겠다고 사퇴 의견을 밝히자 홍준표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모두의 책임이라며 정리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최소한 황교안처럼 철천지 원수 취급은 안하는 듯 하다.

다만 연일 강한 발언을 날리고 한동훈의 측근인 김경율 비대위원과도 개 운운하는 설전을 주고받는 걸 보면 쌓인게 어지간히 많긴 한 모양이다. 특히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를 하던 시절에 한동훈은 윤석열 밑에서 적폐수사로 이름을 날리며 이명박을 구속하는데 일조했던 전력이 있어서 보수 궤멸시키는데 앞장섰다며 비난하는 발언을 한적이 있다.[88]

22대 총선 이후 한동훈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자, "총선 참패하고도 나오고 싶나?", "정치경력이 짧은데 어떻게 이 사람이 당대표직을 하나?"라는 식으로 한층 날선 발언을 퍼붓고 아예 어린애, 이상한 애라고 칭하면서 비난하는 것을 보면 이 둘의 관계는 좋게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동훈의 만남 요청을 두번 모두 거절하기도 했다.

3.13. 황교안

자유한국당 내에서 홍준표가 비박계의 대표 주자라면 황교안은 범친박계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사이가 좋을 리 없어 보이고, 또한 홍준표가 유튜브 방송 TV 홍카콜라를 통해 황교안 지도부에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다만 이는 황교안 본인에 대한 앙금보다는 본인이 대표 시절 소위 숙청하려고 했던 친박 세력들이 황교안 지도부를 중심으로 뭉치게 된 것에 대해 비판 의식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황교안 대표가 단식 농성에 돌입했을 당시 농성장을 찾아가 오랜 시간 교제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황교안 역시 홍준표가 제안한 위성 정당 창당안을 받아들이는 등 서로를 동지로 여기는 듯한 커넥션을 보여주었다. 물론 홍준표가 이후에도 황교안이 중진 험지 출마를 종용하는 것이나 공수처법, 선거법 통과를 막지 못한 것을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에 대한 비판이지 "인간 황교안"에 대한 비판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즉, 박근혜나 일부 친박 의원들처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사이까지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홍준표가 영남권 출마를 기획하는 것에 황교안사무총장 박완수 등이 딴지를 걸기 시작하면서 비난의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홍준표도 합당 이후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출마는 포기하고 대신 양산시 을 출마를 선언했지만, 친황 정치인과 황교안이 그것조차 못 하게 방해하고 구로구 을을 추천했다.

게다가 21대 총선에서 황교안이 홍준표를 공천 배제 하는 바람에 둘의 사이는 "인간 홍준표"와 "인간 황교안"으로서마저 크게 틀어졌으며, 이 때문에 홍준표는 미래통합당을 탈당한 후 애꿎은 이인선격파해야만 했다. 이 일로 인해 홍준표는 황교안 때문에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이인선과 관계가 잠시 나빠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역시 황교안과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다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아군을 깨고 당선된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정상적인 정치 생활은 아닌 것이다.

황교안의 노골적인 홍준표 배제가 드러난 것인데, 홍준표를 무리하게 구로구 을[89]로 밀어넣을 것을 강요하고, 홍준표가 이를 거부하자 공천 배제하는 바람에 미래통합당의 지역구 한 석을 잃은 것이다. 자신은 서울특별시에서만 4선[90]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험지 출마를 강요당하고, 황교안은 당선되면 대권 주자로까지 올라갈 수 있는 종로구에서 출마를 하니 열이 안 받을 수가 없다.[91] 게다가 홍준표 본인이 들어갔으면 당선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종로구가 황교안이 들어가는 바람에 이낙연에게 처참하게 밀리고 낙선되어 그 지역구를 더불어민주당에게 빼앗기게 만들었으니 홍준표는 본인의 입장에서 봐도, 당 차원에서 봐도 황교안이 괘씸할 뿐이다. 황교안의 입장에서 보면 진짜 홍준표를 떨구고 싶었더라면 동대문구 을에 다시 출마시켰어야 했다. 거기서 3선을 지낸 의원이라서 명분도 확실하니 홍준표를 넣으면 홍준표는 거절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92] 그러나 영등포 권역 중에서도 호남 출신들이 매우 많고 저소득층/자취생 비율이 높거나 산업 단지가 있어 민주당에 훨씬 유리한 지역인 금관구에 홍준표를 공천하려고 한 것은 황교안이랑 친황이 홍준표한테 공천 안 주겠다고 대놓고 통보하다 못해 악의적으로 공격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황교안이 실제로 이 당시 계획했던 공천은 친박 초재선들은 어느 정도 적당히 쓰되, 인재 풀상 문제가 적은 친이계들을 다시 어느 정도 불러오고, 친황 위주의 공천을 하면서 친박 중진과 홍준표를 싹 묶어서 날려버리려던 의도적인 점이 상당히 많이 보이는 데다가 결과도 아주 엉망이라 괜히 적대 당 정치인인 이낙연 좋은 일만 시켜준지라, 홍준표 입장에서는 황교안에게 나쁜 소리가 나오면 모를까 도저히 좋은 얘기가 나올 수 없다.[93] 하다못해 황교안이 이낙연을 이기고 종로를 차지하기만 했어도 이 지경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94] 거기다가 황교안이 이렇게 홍준표뿐만 아니라 자신의 당권을 위협할 만한 상대 정치인 몇 명한테도 추가로 이딴 식으로 공천을 해서 이 몇몇 정치인들은 지역 지지 기반이 매우 강한데도 공천을 아예 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홍준표같이 황교안의 공천에 피해당한 사례로 관할 지역에서 평판이 매우 좋았던 정병국이나 김태호[95]가 있다.

게다가 나동연양산시 을에서 결코 약한 후보는 아니었다지만 김두관이라는 거물을 상대하기로는 중량감이 부족했는데, 홍준표양산시 을에 출마 의사를 밝혔으나 이를 거부함으로써 양산시 석권이라는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96]

그리고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황교안이 이끌던 미래통합당이 대패를 한 데다 황교안 본인도 낙선한 반면 무소속으로 대구에 출마한 홍준표는 당선됨으로써 이 두 사람의 운명은 패자와 승자로 엇갈리게 되었다.

이렇게 엇갈린 가운데 홍준표는 복당하게 되었으며, 나중에 홍준표나 친홍이 당권을 잡게 되면 되려 공천 배제에 대한 보복으로 황교안을 국민의힘 국회의원 / 지방 선거 공천에서 배제할 확률이 높다.

총선 패배 이후 홍준표에게 몽상의 박형준과 함께 무능의 황교안으로 묶여서 취급당한다. 그나마 박형준은 같은 범친이 출신이라 화해도 했고 박형준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지원 유세도 해줬지만 황교안과는 화해하지 않고 있다. 이후, 황교안이 뜬금없이 총선 부정 선거를 주장하게 되면서, 아예 서로 다시 손 내밀 기회조차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거기다가 청년의꿈 청문홍답에서도 홍준표 본인이 황교안에 대해서 '평가 불가', '황은 논외' 이런 식으로 악담을 하는 것을 감안하면 홍준표가 황교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 2022년 황교안의 정치생명은 완전히 끝장나 버렸고, 홍준표는 대선 경선에서 지긴 했지만 8대 지선에서 대구시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 성공하여 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극과 극으로 갈리게 되었다.

3.14. 박형준

JTBC 썰전에 같이 출연할 때는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을 보였으나 박형준이 친황 인사들과 가까이하면서 사이가 안 좋아지게 되었다. 21대 총선에서 박형준은 황교안과 깊게 유착하며 실제로 21대 총선에서 황교안 체제 아래 미래통합당 선거를 지휘하는 지도부 중 한 명이 된다.[97]

당연히 총선 패배 이후 5월 1일 홍준표는 "미래통합당은 황교안 전대표의 무능과 박형준의 몽상이 만들어낸 잡탕 당" 이라고 하며 황교안과 함께 박형준을 함께 묶어서 일방적으로 까버렸다. #



2021년 재보궐선거 당시 홍준표박형준의 부산시장 선거 출마를 비판하는 모습까지 보였으나, 국민의힘 부산시장 선거 경선에서 박형준이 선출되자 그를 축하하였다. 그리고 무소속이라는 당적과 무관하게 김형오, 김태호와 같이 박형준 후보를 지원하기로 하였고#, 기장군 유세에서는 지원 유세까지 해줬다.

3.15. 전원책

박형준과 전원책은 홍준표가 JTBC 썰전에서 같이 출연한 적이 있는데 박형준과 사이가 안 좋은 것과는 달리 전원책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 홍준표와 전원책은 둘 다 신자유주의이고 성향도 비슷해서 토론을 할 때 마음이 잘 맞았으며 썰전에서는 두터운 친분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홍준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창당된 자유한국당의 당 대표와 19대 대선의 대선 후보를 하면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참패할 때까지 힘겹게 당을 이끌었는데 전원책은 자유한국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끊임없이 조언해 주었다.

또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무너진 보수를 다시 살릴 인물은 홍준표이며 보수는 홍준표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홍준표가 당 대표에서 사퇴하고 황교안이 당 대표로 선출된 후에는 황교안을 무능하고 리더십이 부족한 인물이라고 평가하였고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후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황교안을 꼽으면서 홍준표 지지자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다만, 전원책 본인은 홍준표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라고 TV조선 강적들에서 밝힌 바 있다.# 해당 방송에서 전원책은 홍준표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자기희생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치인이라고 힐난했다.

3.16. 김무성

국비로 세계 일주가 꿈인 사람.
홍준표[98]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이 다섯 명에게 있는데) 정치를 멀리한 이명박 대통령, 그걸 말릴 생각은 안 하고 부추긴 이상득, 이재오. 뒤에서 뒷짐만 진 박근혜, 이 와중에 대표이면서도 막말을 해댄 홍준표"
김무성[99]

김무성은 원래 신한민주당-통일민주당에서 김영삼을 보좌한 상도동계 직계 정치인인 반면 홍준표는 YS 키즈라는 차이가 있고, 정계 입문 시기도 홍준표가 약간 늦었지만,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김무성과 홍준표는 한솥밥을 먹던 사이었고, 이후 이들은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 시절까지 같은 행적을 보이면서 서로 상당히 친밀한 관계로까지 알려지기 시작했다.[100] 다만, 김무성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홍준표를 오적 운운하면서 비판하는 등 그리 좋다고만도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101]

시간이 흘러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새누리당의 당권은 대부분 친박에게로 넘어갔고, 이 와중에 옥새런 같은 사태까지 터지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발발 직후 김무성 등을 비롯한 비박계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새누리당에 잔류했던 사람들은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변경하기에 이른다.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 결과 친박이 숫자가 더 많았음에도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당선되었고, 홍준표는 김무성에게 복당을 요청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친무계가 김무성만 제외하고 바른정당 1차 탈당 사태를 일으키며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는데, 이로 봤을 때 이미 이 시기에 김무성과 홍준표가 물밑 협상으로 합의를 봤던 듯하다.

2017년 10월에 이르러서는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에 취임한 직후, 친홍계를 내세움과 동시에 복당한 친무계의 도움을 받아 자유한국당의 당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홍준표는 박근혜를 자유한국당에서 강제로 추방하면서 잔류해 있던 김무성과 바른정당,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한 비박계에게 다시 한번 자유한국당 합류를 요청했고, 김무성은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현재 홍준표는 김무성의 조력까지 받아 친박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서청원최경환을 탈당 권고 징계를 내린 다음, 자유한국당의 당권을 완전히 거머쥐었다.

김무성과 홍준표는 현재는 똘똘 뭉쳐 있지만, 추후에 갈등이 일어날지 계속 유지할지도 자유한국당의 미래에 대한 하나의 변수가 될 수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의 경우 TK, 노년층, 강성 보수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민심이 떠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대경권 조차도 불안정한 상태였다.

결국 홍준표가 당 대표직에서 사직하고, 김무성도 당협위원장직 사퇴와 21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동반으로 정치 은퇴를 할 가능성이 생겼으나 홍준표는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로 다시 입성하게 된다. 그것도 TK 지역구 유일의 무소속 당선자로서 말이다.

박근혜 정부 중/후반기부터 행보를 오랫동안 같이한 관계이고 친밀한 것으로 알려지기까지 했지만 정작 페이스북에 남긴 마지막 막말 중에서는 김무성을 "국비로 세계 일주가 꿈인 사람"이라며 악평을 남긴 바 있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김무성이 탄핵 정국 당시에 바른정당에서 오락가락했던 모습, 박근혜를 비판해 왔으면서도 정작 당 대표 시절에는 청와대에 끌려다니던 모습 등으로 인해 소신 없는 사람, 권력욕과 명예욕만 가득한 사람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102] 다만 근래 청년의꿈에서 홍준표는 김무성에 대해 '판단 보류' 혹은 '덩치 큰 사람' 이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3.17. 유승민

"아니 유 후보, 지금 주적은 문재인 후봅니다. 문재인 후보한테다가 공격을 하셔야지 저한테 하면 안 됩니다.'''
홍 : "시중에서는 (유승민이) 강남 좌파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 : "좌파는 아니고요. 저는 새로운 보수가 나가야 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홍 : "내참... 꼭 이정희 보는 것 같아서, 주적은 저기입니다."
2017년 4월 19일 KBS TV 대선 토론에서 유승민을 향해서 한 말
홍준표 시장의 탄핵에 대한 말들을 다 보십시오. 춘향인줄 알았더니 향단이라 그러고, 탄핵당해도 싸다 그랬다고... 그게 홍 시장입니다. 그런 분이 지금 대구시장 하면서 걸핏하면 남 비난하는 페북글이나 쓰고.... 여러분 대구시장이 그렇게 할 일 없는 뎁니까?
유승민, 대구mbc 기자회견 중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나란히 1위, 2위를 했었고, 경선 과정과 경선 이후 지도부에서도 대립하는 일이 잦았다.[103] 결국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패배 및 중앙선관위 및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디도스 공격 사태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 해체를 주장하면서 대립하게 된다.

이때 유승민이 기습적으로 최고위원 총사퇴를 가장 먼저 결의했고, 원희룡, 남경필 등 나머지 최고위원들이 가세하여 홍준표는 타의에 의해서 대표직을 잃은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홍준표의 19대 총선 낙선과 야인 생활의 가장 큰 공헌을 한 셈이다. 그리고 19대 대선에서 후보로 나오면서 서로를 "무자격 후보", "배신자"라고 비난하면서 맞섰고 김무성을 필두로 한 친무계 의원들이 바른정당을 떠나 자유한국당에 복당하면서 또 한 번 날 선 각을 세우기도 했다. 바른정당국민의당과 합당한 이후에도 저 당은 위장 야당이라며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다.

19대 대선에서 홍준표가 본인의 자서전에 돼지 흥분제를 이용한 강간 모의에 말리지 않았음을 본인 스스로 인정한 것에 대해 유승민은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사실상 끝장났다. 게다가 유승민은 딸을 둔 부모이기에 이런 추잡한 논란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강한 거부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방 선거 참패로 인해 이번엔 두 사람 다 대표직을 헌납하게 되었다. 이후 유승민이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지도부와 각을 세우고 결국 바른미래당을 떠나게 되면서 자유한국당이 유승민 세력을 껴안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홍준표 역시 TV 홍카콜라를 통해서 바른미래당 내 보수 세력 역시 보수 통합의 대상이라며 여러 번 강조하기도 했다.

2020년 초에는 21대 총선에서 자신의 고향이 있는 경남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 또는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 을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보수 통합을 위해 유승민을 주저앉혀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승민은 통합하는 대신 불출마 선언을 했으며, 또한 홍준표는 미래통합당에서 컷오프돼서 수성구 을 무소속 출마 선언을 함에 따라 두 사람의 대결은 불발되었다.

여기서도 유승민의 불출마 이후 유승민의 지역구인 동구 을이나 인근 지역구인 동구 갑에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불출마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준표는 이 지역구들을 피했다. 일단 동구 을에서 유승민을 대신해 출마한 인물은 강대식이었고, 동구 갑에는 유승민의 친구인 류성걸이 출마하게 된다. 이들과 경쟁하게 되면, 결국 사실상 유승민하고 대결하는 것이라 홍준표에게는 부담이 되는 선택지였다.

결국 홍준표는 현역 국회의원이 없는 수성구 을[104]에서 무소속으로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05] 주요 경쟁자 중 유승민은 선거에 불출마하였고, 기존의 실권자인 황교안은 낙선 및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므로, 홍준표미래통합당에 복당할 경우 원내 인사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당내의 개인적 영향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유승민의 지역구는 친유강대식이 차지하게 돼서 지역 기반에서는 큰 타격도 없는 데다[106] 유승민이 불출마한 대신 강대식, 김희국, 류성걸, 신원식, 유경준, 유의동 등 생각보다 많은 친유 정치인이 21대 총선에서 살아남았고, 당내 주요 기관인 여의도연구원의 경우 지상욱이 임명될 만큼 만약 친홍 vs 친유의 계파 대결로 확장시킬 경우 인원수가 비교적 많은 (범)친유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홍준표를 위시한 (범)친홍계의 차기 당권 장악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21대 총선 이후 미래통합당은 주호영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개혁 보수로의 탈바꿈/극우 세력과의 결별/중도·청년층 외연 확장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상황이다. 이러한 통합당의 변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혁·합리적·젊은 보수의 가치관을 강조해 왔던 유승민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반면, 기존의 강경 보수 이미지가 짙은 홍준표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107]

김종인 비대위 시절에는 홍준표가 복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김종인이 복당을 반대하였고, 당시 권영세, 오신환, 유의동, 정병국이 홍준표의 복당에 대해 반대했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서 배현진, 송언석, 윤재옥, 하영제와 같은 친홍계 정치인들이 당선되었지만 이 사람들 외 나머지는 영향력이 적다. 홍준표의 복당 전에는 유승민홍준표가 복당 문제를 가지고 어느 정도 신경전이 있었다. 유승민은 복당을 찬성했으나 권영세, 강대식, 김웅, 김재섭, 류성걸, 유의동, 정병국, 하태경이 복당에 대해 우려하면서 어느 정도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준석 지도부 출범 이후에는 이들조차도 부분적으로 찬성했다. 결국 홍준표6월 24일 복당을 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유승민과 같은 당에 속하게 되었고 이들은 당내 대선 경선에서 경쟁하는 관계가 된다. 그 후 7월 29일 국민의힘 대선 주자 간담회에 참석해서 같은 국민의힘 소속으로는 처음 만났는데, 서로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웃으며 대화를 주고받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대구 일정에서 같이 만나기도 했다.

윤석열의 입당 이후, 윤석열 측에서 김재원과 같이 이준석 대표와 갈등을 벌이자 홍준표, 유승민이준석 대표를 지지하면서 어느 정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 측의 역선택 방지에 대해서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손을 잡게 된다.

같은 정당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사이가 예전보다 좋아진 것으로 추정되며 둘 다 경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중심으로 비판하면서 서로에 대한 공격은 적어지고 있다.[108] 윤석열 후보에 대한 유승민 후보의 "역술인 논란" 질의에 '내부 총질' 논란이 돌자 홍준표 후보가 유승민 후보를 옹호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멀지만 둘 다 2030 청년층에서 많은 지지를 받으며 지지층이 의외로 겹친다. 물론 같은 비박이지만 유승민자유보수주의, 공화주의중도 우파홍준표사회보수주의적 강경 우파 인사인지라 정치 성향은 차이가 있다.

한편, 2022년 8회 지선을 거치면서 유승민김은혜와 경선 과정에서 갈등을 일으키며 홍준표와 같이 반윤의 양대 수장이 됐다. 다만, 반윤 내부에서도 홍준표는 당의 리더십을 우선시하기에 그나마 온건파에 해당하지만, 유승민은 보수가 더욱 바뀌어야 한다는 개혁 보수를 기치로 삼기 때문에 강경파 포지션에 해당한다. 이에 홍준표는 "또다시 개혁적 보수 내세우며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도대체 적군인가 아군인가"라고 쏘아붙이며 "보수면 보수지 무슨 개혁적 보수가 있고 반개혁적 보수가 있나? 개혁적 보수 내세워 박근혜 정권 탄핵하고 문재인 정권 세운 게 개혁적 보수였나? 그래 가지고 5년 동안 이 나라가 어떻게 되었나?"라고 친유계 의원들의 이념적 색체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유승민을 저격했다. 이는 후술할 친유 인사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발언이다. 사실상 과거 자유한국당 시기에 밝혔던 입장으로 은근슬쩍 보수라는 이름 앞에 수식어만 가져와 붙여놓고 좌파적 이념을 보수라고 포장한다대통령 탄핵시키고 당을 버리고 뛰쳐나가서는 당을 공격하는 사람들이라는 기조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지자들끼리는 여전히 사이가 매우 나쁘다. 홍준표 지지자들은 유승민을 배신자, 간신배, 패션 보수, 좌파라 부르며, 국회의원 5선(그중 4선은 서울에서 했고, 대구 수성구 을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미래통합당 이인선을 꺾고 당선되었다.), 경상남도지사, 대구광역시장까지 지내며 본인의 능력을 보여준 홍준표와 달리 비례 대표로 국회에 입성하여[109] 보수 정당 텃밭인 대구에서만 4선한 유승민이 대체 뭘 보여줬냐며, 대통령감이 아니라며 비난한다. 유승민 지지자들도 선민의식과 똥고집만 가득찬 ㅂㅅ들이라며 디스하는 건 덤. 유승민 지지자들도 홍준표를 홍산가리, 홍발정 등의 멸칭으로 부르며 공약도 부실하면서 대통령감이 맞긴 하냐며 맹비난한다. 다만, 밑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둘의 사적인 사이는 좋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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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2024년 시점에서는 다시 서로를 내부 총질하는 사람, 페북글로 남 비난하기 바쁜 사람이라고 칭하며 사이가 틀어진 모양이다. 특히 유승민 쪽에서 쌓인게 많은 모양인지 "나를 배신자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을 가지고 탄핵당해도 싸다 하고 당에서 제명까지 시킨 사람은 누구냐"라며 울분을 토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3.18. 정병국

정병국1987년 당시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비서관으로 입직하면서 상도동계 직계로서 자리를 내린 인물이고,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문체부장관을 지낸 친이계 정치인이고, 홍준표는 검사 생활 이후 김영삼이 영입한 인사로 'YS 키즈'라는 별칭을 가졌고, 이명박과 가까운 관계를 가진 인사였다. 그러나 이들의 사이는 험악하다.

정병국이 발간한 자서전에서는 홍준표공직선거법 관련 재판을 받은 후 바른정당 합류를 고려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정병국'친박을 몰아낼 테니 이후 당을 합치자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지는 않았다.', '친박을 몰아내기는커녕 친박과 그 지지층에 기대 대선에 출마하고 20%대 지지율을 받은 것에 만족하는 모양새'라며 비판했고, 홍준표바른정당유승민 사당이니 가짜 보수니 하는 모습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한편 홍준표 측에서는 정병국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고, 주호영 원내대표의 권유에 대해 내가 거절했으며, 정병국이 언급한 측근의 탈당 만류는 내가 했다고 주장하면서 정병국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였다.# 소송에서는 정병국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정병국에게 5억 원 중 1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고, 정병국은 이에 항의하며 항소했다.# 그런데 홍준표 측에서 범보수 통합 및 화합을 명목으로 정병국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관해서 정병국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막말 문제, 정태옥이부망천, 친박 청산의 실패나 당내 극우화 등으로 실패했다고 주장했다.[110] 그러면서 홍준표더불어민주당에 지방 권력을 바쳤다고 비판했다. 물론 바른미래당의 이합집산의 논란도 같이 거론했다.#

정병국홍준표자유한국당 당사에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의 초상화를 같이 전시한 것에 대해 항의한 적도 있다. 정병국"3당 합당 당시 김영삼이 잡으려는 호랑이는 박정희였다. 당신이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제대로 알긴 아느냐?"면서 홍준표를 비판했다. 그리고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 등을 거론하면서 박정희김영삼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111]# 그러나 상술했듯 이에 대한 반론으로 산업화 세력인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민주화 세력인 김영삼통일민주당이 연합한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보수 정당의 중시조로 평가받고 있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 민자당 내에서 YS의 민주계가 당권을 장악하고 자민련 분당 후에는 15대 총선을 앞두고 당명까지 신한국당으로 변경하고 홍준표를 비롯해 김영선, 황우여, 이재오, 정의화, 창원 안상수, 인천 안상수, 김문수, 심재철 등 정치 신인을 영입하고 이들이 중진으로 성장하며 보수 정당의 전성기를 연 것은 엄연한 사실이기에 현재 보수 정당에서 김영삼을 이승만, 박정희와 함께 기리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두 명 모두 황교안의 대권에 방해가 된다는 명목으로 컷오프를 당했다. 정병국 의원은 유승민과 가까운 중진이라는 이유로, 혹은 상도동계, 친이, 친유 핵심 인사라는 명목으로 컷오프를 당하고 그 자리에는 친박, 친황김선교가 공천을 받았고, 홍준표 전 대표 또한 험지 출마를 요구받았다가 양산시 을 선거구 출마마저도 거부당하고 무소속으로 수성구 을에 출마하였다.[112]
홍준표의 복당과 관련된 정병국 의원의 인터뷰

불출마를 선언한 정병국미래통합당에 남아 타 후보들을 지원하고, 홍준표는 무소속으로 수성구 을에 출마한 후 당선되었다. 그런데 정병국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보수계 무소속 국회의원의 복당을 반대한다고 밝혔고, 그 대상이 홍준표가 아니냐는 추측이 존재했다.[113]

그러나 전당대회 이후에는 복당에 대해 사실상 찬성하게 되면서 이들 간의 갈등 역시 사그라지고 있다. 애초에 김영삼이 영입했고 같은 당에서 있었기 때문에 유승민 - 홍준표 간의 갈등과 비슷하게 화해할 여지가 많다.

3.19. 이인제

상당히 사이가 좋은 편. 대선 경선 패배 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걸로 유명했던[114] 이인제가 19대 대선 경선이 끝난 이후로는 홍준표를 적극적으로 도왔고[115], 이후 홍준표와 가까워지는 행보를 보이며[116] 20대 대선 경선에서도 처음부터 홍준표를 지지하며 jp희망캠프에 합류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마침 둘 다 YS 키즈 출신이기도 하다.

홍준표 본인도 청문홍답에서 이인제를 평하면서 '당적 변경이 잦긴 했지만 실력은 걸출하신 분'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3.20. 안철수

자서전에서 성폭력 모의도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외신에 이미 많이 보도돼서[117][118] 국격이 심각하게 실추됐습니다.
19대 대선 3차 토론. @

19대 대선 토론 때 같이 출마했으나 사실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보수 표를 두고 경쟁해야 할 상대이기도 하여 안철수에 대해 그다지 좋은 발언을 하지 않는다. "민주당 2중대"라든지 "이 당에서 나오고 저 당에서 나오고"라며 비판했다.

안철수도 개인적으로는 홍준표와 사이가 전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홍준표의 돼지 흥분제 자서전 사건으로 인해 안철수 개인적으로도 홍준표를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안철수는 결국 유승민, 심상정과 함께 홍준표를 대선 토론에서 공식 보이콧 했다.[119]

이후 '공공의 적'인 문재인 정부를 두고 드루킹 게이트를 계기로 어느 정도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21년에는 사찰에서 깜짝 만남이 성사되는가 하면[120], 2021년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에게 야권 빅 3[121]가 모두 나서 서울시장 바람몰이를 해야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다며 출마를 권하였고, 만약 서울시장이 되고 나서 바로 대선에 출마해도 유감을 표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이후 금태섭 - 안철수 간의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제3지대 단일화를 위한 토론회를 본 후 '안초딩'이라 불렀던 것을 사과하기에 이른다. # 기존에 토론에 약했던 모습과 달리 금태섭과의 토론이 수준 높고 재미도 있었다는 평. 또한 김종인이 계속해서 안철수를 공격하니 이에 대한 재반박도 했다. #

청년의꿈에서도 안철수보고 굿 프렌드, 20대 대선 후보 중 유일한 정상인이라 하기도 했고, 안철수 본인도 청년의꿈에 찾아와 인증글을 남기기도 했다.

대선을 앞두고 많은 홍준표 지지자들이 안철수 지지 선언을 하기도 했고[122], 최근 SNL 코리아 주기자가 간다에서 안철수 본인도 홍준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확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안철수가 분당 갑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면서 국회의 중앙정치권 활동으로 지내는 동안 대구에서 시정을 지내는 동안엔 별다른 교류가 없다가 22대 총선 정국이 다가오자 "천당아래 분당이라더니 분당에 몰려드는 사람들 면면을 보니 총선 이기기는 힘들게 생겼다"라고 운을 때면서 거론한 첫마디가 "전셋집을 자기집이라 착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언론들은 해당 발언이 안철수 의원을 겨냥한 부분이 아니냐는 해석들을 내놓았다.[123]

3.21. 이준석

개인적인 인연이 있진 않다. 애초에 이준석이 19대 총선 국면에서 박근혜에게 영입되어 비대위원으로 활동한 게 정치 데뷔였고 이 당시 홍준표는 대표직을 날려먹고 중앙 권력에서 밀려나던 시점이었으니 접점이 있진 않다. 이후에도 이준석은 유승민을 따라 바른정당 - 바른미래당 - 새로운보수당에서 활동했고 홍준표와는 대선과 지방 선거 국면을 거치며 서로 대립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홍준표가 21대 총선을 기점으로 2030 청년 세대의 지지를 받으며 유력 대선 주자로 시작하자 이 둘의 관계도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 이준석이 홍준표의 복당을 지지하며 밀어붙이기도 했으며 홍준표 역시 윤핵관으로부터 공격받는 이준석을 옹호하며 당 대표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게 정상이냐며 간신배들이 윤석열을 망치려 드는 것도 모자라 애꿎은 당 대표까지 흔들어놓는다고 말하기도 했다.[124] 현재 홍준표가 대구시장으로 가면서 자신의 몇 되지 않는 계파를 이끌고 국민의힘 내에서 비윤 - 반윤의 구심점 노릇을 하고 있는데[125] 이준석과 안철수, 최재형과 손을 잡고 연대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내부적으로 맹목적인 인연이 있진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쓴소리는 거리낌 없이 하는 편인데 이준석이 배현진과 충돌했을 때는 애들 장난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냐며 일갈한 적도 있고 윤 대통령을 잡견한 이후 올린 글에 따르면 억울하겠지만 윤리위 결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돌아오라며 강권하기도 했다. 물론 박근혜나 황교안에게 한 악담 수준의 공격은 아니고 홍준표 본인이 정치를 해오면서 당내외의 기득권에 많이 시달렸다 보니 젊은 당 대표가 특정 계파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하는 충고의 성격이 크다.[126]

이후에도 기자들이 이준석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그냥 내버려두세요,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라며 이준석을 감싸고 이준석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으니 사법 절차에 집중하라고 조언해 줬다며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이준석과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도 이준석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127] 홍준표 본인에 따르면 이준석과 종종 연락하면서 조언을 해주는 모양이다. 인터뷰에서도 이준석이는 나랑 친하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할 정도이니 사실상 외부적으로 어느 정도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지만 이준석의 인위적인 당 대표 궐위 의결 과정에서의 당을 상대로 한 법리 공방 사건에서는 본인이 소속된 정당을 바라보는 시각은 확고한 편이기에 이 부분에 적대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혹은 합당 후 부쩍 가까워진 안철수와의 관계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2022년 하반기 들어서는 이준석에 대해 확실히 부정적이다. 페이스북에서 "이 전 대표가 극언을 퍼부으며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자신에게 씌워진 사법 절차를 돌파하는 방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되지도 않은 응석과 칭얼거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청년의꿈의 홍문청답 게시판에 이준석을 향해 억울함을 참는 것도 정치인의 숙명이다, 나도 당 대표 할 때 나와 하등 관계없는 일로 대표직을 잃어봤지만 참고 견뎠다며 이준석에게 당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함을 가지시라며 충고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준석이 당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등 정치적인 강경책을 계속 던지는 것을 답답하게 보는 모양이다.[128]

그러나 이후로도 이준석이 당과 강하게 대립하자 SNS를 통해 이준석을 강하게 저격하고 있다. 이준석과 유승민을 향해 "출처 불명의 개혁 보수 타령 그만하라" 면서 "나보고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정치를 왜 하냐'고 다섯 번 외치고 출근하라고까지 조롱했다."라는 이준석이 2018년 자신에게 막말을 가했던 건까지 다시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그간 이준석에게 쌓인 것들을 정권 교체를 위해 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년 전 SNS에서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고심하시는 이준석 당 대표님에게 존경을 보낸다"라고 하던 것에서 정반대로 바뀐 것.

2023년 시점에서는 서로 거의 돌아선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홍준표는 당의 단결을 중요시하는 성향이 강하기에 이준석이 당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로 계속 내분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전당 대회 시점에서는 소위 '엄석대 논쟁'으로 대놓고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김재원의 구설수들을 따끔하게 지적하면서 은근히 이준석차악으로 비교하는 발언도 한다. 즉, 이준석보다도 더 싫은 게 김재원이란 뜻이다.

이후 자신이 상임고문에서 해촉되자 이번엔 반대로 이준석이 감싸주는 발언을 했다.

이후, 8월 30일에 치맥 축제에서 서로 16개월 만에 회동하면서 다시 우호적인 관계를 다졌다.

또한 2023년 10월 16일에 이준석의 국회 소통관 기자 회견에 대한 반응으로 시의적절하다 평하였다.#

이준석이 화성시 을 지역구에 출마하기 전에는 홍준표는 이준석이 당선될 수 있는 지역구는 한반도 어디에도 없다면서 깠지만, 이준석이 4번의 도전 끝에 초선 의원이 되자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 죄도 없는 이준석을 말같지도 않은 성상납을 갔다붙여서 쫓아냈다며 당과 지도부를 비판하기도 했을 정도로 관계가 회복되었다.

이후에는 이준석이 홍준표를 좋게 보는 모양인지 지속적으로 홍준표 총리론을 거론하고 있다. 인터뷰에서도 홍준표 시장이 뒤끝이 없고 시원시원한데다 행정경험도 많아서 총리로 적합하다며 윤석열이 홍준표를 기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29]

3.22. 오세훈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다. 2006년 4회 지선 당시 홍준표는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당내에서 맹형규와 경쟁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경선 직전 오세훈이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했고, 이 둘을 꺾고 본선에 진출하며 경선 3위로 쓴맛을 다셔야 했던 적이 있었다. 100분 토론에 출연해서 치열하게 토론하다가 경선 탈락 후에도 홍준표는 오세훈에 대해 이미지 정치만 한다며 비판한 바 있다.[130]

이후 오세훈이 재선 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무상 급식 찬반 투표율 여부로 시장직을 거는 등 무리한 행보를 이어가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홍준표가 공사 구분 없이 다독여 주고 신경을 써주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무상 급식 찬반 투표율이 과반이 안 나오자 당 지도부가 한사코 말렸음에도 진짜로 사퇴를 해버렸고 이에 대해 홍준표는 극도로 분개하고 길길이 날뛰며 크게 실망, 오세훈을 대놓고 비판할 정도였다.

홍준표 입장에서 오세훈은 재선 서울시장이기도 하고, 차후 당의 지도부, 유력한 대권 주자로 판단하였는데 자꾸 정치 인생을 건 도박을 자의적으로 하니까 아쉬웠던 것이다.[131] 실제로 이후 오세훈은 이때의 행동이 본인이 의도한 긍정적 효과[132]는커녕 서울 시민들에게 나쁜 인상을 깊이 각인시킨 탓인지, 대선 잠룡이라는 호칭을 계속 쓰는 게 무색할 정도로 나오는 선거마다 대패하면서 사실상 당내에서 입장이 애매한 정치 낭인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홍준표의 판단이 전적으로 맞았다.

오죽하면 오세훈홍준표 자택을 찾아가도 문전박대하면서 전화기도 꺼놓고 연락을 씹을 정도였다. 이 사건 자체가 보수당의 향후 운명을 뒤틀었던지라 오세훈에 대해 강하게 비판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세훈에 대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018년 전국 동시 지방 선거 때 야인으로 있던 오세훈이 자유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 것을 원했었다.[133] 그러나 오세훈은 결국 불출마 선언을 하여 또 한 번 홍준표를 실망시켰다. 한때 서로 의절한 것으로 보였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만나는 자리에서는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을 다시 보이고 있다.

이후 서울시장 재보궐에 빅 3[134]가 모두 출마해야 한다며 오세훈에게 안철수가 서울시장 출마를 했으니 출마 명분을 찾아 출마할 것을 권하였다.# 이후 오세훈이 야권 재보궐 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단일화에 성공하자 덕담을 건네는 등 예전의 밀월 관계를 거의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세훈이 서울특별시장 자리에 재취임한 후 다주택 소유 논란이 있던 김현아를 SH 사장 후보자로 내정했다가 뭇매를 얻어맞자 이에 대해 당장 지명을 철회하라며 오 시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홍준표 대표의 험난한 서울시장 후보 찾기(feat. 오세훈)/비디오머그" 영상

현재 홍준표, 오세훈 둘 다 여당 내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만큼 특별한 사건 사고가 없다면 두사람 모두 21대 대선 경선에서 높은 확률로 한동훈과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3.23. 류여해

자유한국당 대표 취임 이후 발굴해서 키워주고 밀어주던 인물로 알려졌으나, 사실 대표 취임 이전부터 경계를 했고 류여해의 각종 막말과 친박 행보로 인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홍준표의 막말이 반대 진영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게 들리고 호불호가 갈리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과격한 언행을 통해 지지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본인의 지지율 결집 및 인지도 확보를 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정치인 화법이라기보다는 직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부정적으로 보면 막말이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5.18 가산점에 동의하면서 왜 군 가산점은 반대하냐"며 문재인을 공격하고 이후 5.18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는 극우 유권자에겐 "부마항쟁이든 광주 항쟁이든 어떤 것이 더 위대하다고 우위를 가릴 수는 없다"며 그 유권자를 질타하는 행보를 보였다.[135]

반면에 류여해의 언행은 계산되었다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지지층조차 등 돌리게 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홍준표가 적당히 하라, 그게 통하겠냐며 막말을 제지했는데 카메라가 돌아간 틈에 왜 말 끊냐며 적반하장식으로 화를 냈다고 한다. 이후 홍준표가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했다고 고소했다.[136]

3.24. 안상수(창원)


보온병 포탄과 행방불명으로 유명한 그 안상수가 맞다. 같은 검사 출신임에도 사이가 안 좋은데, 2010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당시 서로를 개로 비유하며 치열하게 싸웠고, 안상수가 옆집의 개 소리가 시끄럽다고 옆집 주인에게 소송 걸어버린 것도 까발렸다. 안상수가 행불상수라는 멸칭이 붙여진 이유도 전당 대회 때 홍준표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가 여기서 안상수의 병역 기피 사유 등을 다 얘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홍준표는 조중동은 물론 연예 잡지 칼럼까지 조목조목 거론하며 안상수를 공격했다.[137][138]

결국 당 대표에는 안상수가 선출되면서 최고위원이었던 홍준표가 살짝 아래 위치에 서게 되었다.

2014년에는 현역 도지사인 홍준표에게 안상수가 도전장을 내면서 다시 한번 맞붙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안상수가 또 다른 경쟁자인 박완수 전 창원시장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자[139] "보온병 연대다, 창원시민들은 포탄 껍질과 보온병의 차이를 알고 있다"며 조롱조로 저격하기도 했다. 이후 상하 관계가 역전되어 경남지사와 창원시장으로 만났는데, 여기서도 계속 싸웠으며, 안상수 창원시장이 광역시로 승격하여 경상남도에서 독립하려 하자 홍준표 지사가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경남지사 시절, NC 다이노스의 홈구장 신축에 대해서 도비를 주지 않고 버틴 적도 있었는데, 그 이유인즉슨, 창원시장안상수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각종 정책적 연대, 협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결국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안상수가 홍준표의 측근인 조진래[140]에 밀려 창원시장 경선에서 떨어지자 무소속 출마를 감행하면서 둘 사이가 극단으로 치달았다. 결국 안상수에 의해 보수 표가 갈라지며 창원시장 자리가 민주당으로 넘어가 버렸다. 둘 다 망해버린 셈.

이렇게까지 사이가 안 좋은 이유에는 두 사람의 검사 시절 경력이 한몫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홍준표가 특수부, 강력부 검사로서 정권 실세들까지 구속하며 성역 없는 수사를 벌이다가 외톨이가 되어 검찰에서 쫓겨난 데 비해 안상수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 관여하거나[141] 여러 공안 사건 수사에 관여하는 등 나름 검찰 조직 내 주류로서 활동했기에 검찰 주류 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왔던 홍준표 입장에서는 감정이 좋을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반대로 인천광역시장 재선을 했고, 3선 의원을 지낸 동명이인 안상수와는 사이가 좋다. 그 안상수jp희망캠프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다.

3.25. 김태호

경남 출신에 경남지사 경력이 있는 만큼 홍준표와 가까운 사이에 있는 정치인이다. 7회 지방선거에서 당 대표였던 홍준표의 공천을 받아 경남지사에 다시금 출마했으나 김경수에 밀려 낙선하였다. 물론 그때는 더불어민주당에게 유리했고, 김태호에게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21대 총선에서 홍준표와 함께 서울 출마를 제시받았으나 고향 출마를 고수하다가 컷오프되었고 이에 불복하여 탈당하고 고향인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다. 21대 총선 결과 미래통합당은 패배하고 홍준표와 김태호는 둘 다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복당 신청을 하게 되었고 당을 살리겠다는 각오로 뭉치게 되면서 홍준표와 유대감이 강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김태호친윤으로 전향하면서 거리가 멀어졌다.[142]

3.26.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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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 당시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컷오프로 매우 관계가 좋지 못하다. 2004년 17대 총선 때 김형오 위원장이 부산 영도구에서 컷오프되었을 때 홍준표가 공심위원을 하면서 경선을 강력히 주장해 살려준 일이 있었다.[143] 이후 18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장과 여당 원내대표로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러나 21대 총선에서 자신에게 구로구 을[144][145]를 요구하였다. 홍준표는 통합 이전에는 동구 을에 출마하겠다고 하다가 통합 후에 철회하고, 고향인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에서 출마를 원했으나 김형오 공관위가 이를 거절하자 홍준표는 경남 험지인[146] 양산시 을 출마를 절충안으로 제시했고 공관위는 수락하며 홍준표는 양산에서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돌연 김형오양산시 을에 홍준표가 아닌 나동연양산시장을 공찬하며 홍준표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147] 이에 맞서 홍준표는 김형오 사퇴를 요구하며[148] 탈당 후 수성구 을에 출마한다.

결국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참패하고 홍준표는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김형오이준석을 비판한 것에 대해 홍준표청년의꿈에서 이제 그만 나서길 바란다면서 비판했다.

3.27. 이인선

홍준표가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혔다. 21대 총선에서 황교안이 홍준표를 공천에서 배제하자 홍준표는 탈당 후 대구 쪽으로 기반을 옮겼다.

사실 황교안홍준표 컷오프는 실수가 아니라 고의였다. 서울시 4선 국회의원, 재선 경남지사, 원내대표에다가 당 대표 2번을 거쳐 19대 대선 후보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갖고 있는 동시에 친박문재인보다도 더 싫어하는 홍준표[149]가, 친박의 좌장이자 신임 당 대표치고는 당권이 약했던 황교안에게는 매우 껄끄러운 상대였다.

그래서 양산시 을에서 김두관과 붙겠다고 했는데 황교안홍준표를 고립시키기 위해 미래통합당 기준 험지이자 홍준표에게는 연고가 하나도 없는 구로구 을 출마를 강요했다. 쉽게 말하자면 연고도 없는 험지에서 출마하고 낙선해서 더 이상 정계에 나서지 말고 은퇴하라는 의미이다.[150][151]

처음에 고려했던 동구 갑, 동구 을유승민과 가까운 류성걸, 강대식이 공천되어 그쪽으로 간다면 유승민과 간접적으로 대결하게 되는 부담이 생긴다. 그리고 달서구 을홍준표가 기반을 잡기 유리한 곳[152]이었지만 측근인 윤재옥이 있었다. 그리고 이미 공천이 확정된 곳을 제외한 현역 의원이 없는 곳을 찾다 보니 수성구 을을 고른 것이었다.[153]

이인선은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았는데도 홍준표가 나타나서 맞붙어 버리는 바람에 당을 등에 업어봤자 넘사벽인 체급 차이로 인해 2.74%p차로 홍준표에게 패배했다. 이인선은 19대 대선 당시 홍준표 대선 후보를 위해 열심히 뛰었는데 정작 총선 때는 자리를 뺏으러 온 것을 보고 연고도 없는 지역에 출마한 자신이 만만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냐며 비판했다.[154]

결국 본인 역시 정치 도의상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당선된 후 이인선 후보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대선 경선 나가면 사퇴할 것이니 그 때 수성구 을에서 당선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즉 본인도 이인선을 격파할 생각은 없었지만 황교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인선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하자 친홍계 당원들이 이인선의 수성구 을 당협위원장직 사퇴를 촉구하여 당협위원회 내에서 긴장감이 흐르더니 결국 당협위원회에서 이인선 해임안이 가결되고 홍준표가 당협위원장직을 돌려받게 되었다. 여기에 이인선이 불복 선언[155]을 함으로써 둘의 관계는 꽤 나빠졌다.

이후 홍준표가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뛰어들면서 공석이 된 수성구 을 자리에 들어간 이인선은 3수 끝에 당선되었다. 또한 홍준표의 대구광역시장 선거 유세에 동반 참여[156]해 원팀을 선언하면서 홍준표를 돕는 등 묵은 갈등이 어느 정도 풀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홍준표가 떠난 덕분에 이인선이 수성구 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57]

3.28. 윤석열

홍준표는 조국 사태 당시 윤석열에게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검사라며 찬사를 보냈고 심지어 잘 모실 테니 총장직 내던지고 정치판으로 오라는 격려까지 했었다. #

하지만 2020년 윤석열이 야권 대선 주자로 급부상하고 2021년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하여 위협이 되자 그의 실언 및 여러 가지 논란을 강하게 비판하여 사이가 매우 안 좋은 편이다. 또한 그는 "단일 사건 수사로 5명이나 자살했다. 내 정무부지사도 수사 압박으로 자살했다. 내가 그 포악한 짓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라면서 "윤 전 총장은 이 수사에 대해 해명하고 반성해야 한다. 국민 앞에서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

홍준표는 본인과 한때 갈등했던 유승민, 정병국, 권영세, 오세훈보다도 윤석열을 더 나쁘게 본다. 윤석열 보고 '검찰총장 시대와 다르다. 정치에서 황제놀이하지 마라.', '돌고래 쇼', '철없는 우리 당 정치인들을 이용해 먹는다’, ‘가관이다’, ‘자중하라’ 등의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

이준석윤석열 + 김재원 간 갈등에서도 적극적으로 이준석 편을 들며 '당 대표가 어리다고 무시하는데 당 대표는 당원과 국민들이 선출했다.', '지지율 1위라고 너무 하는 것 아니냐', '유력 후보 밑에서 레밍 놀이를 한다.', '박근혜 탄핵시키고 이명박 구속하는 것도 모자라서 적폐 수사 하면서 보수를 궤멸시키는 데 앞장서면서 이제 와서 보수라고 자처하고 있다.'등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한때 갈등했던 유승민과 같이 윤석열을 협공하였다.

경선 분위기가 점점 과열되자 범죄자, 똥통, 줄 세우기 인사 등, 윤석열과 그 캠프까지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표현들을 사용해 가며 양측의 관계를 더욱 극단으로 끌고 가는 중이다.

경선 결과에서 윤석열이 승리한 뒤 깨끗하게 승복하겠다고 했다. # #

경선에서 윤석열이 이긴 뒤에는, '비리 대선에 참여하지 않겠다', '이번 대선은 지는 쪽이 무조건 쇠고랑 찬다'라고 하며 완전히 선을 그었다. 일단 현재까지는 윤석열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158] 아마 이명박 대통령 시절 박근혜가 여당 내 야당 포지션을 자처했던 것처럼 홍준표도 비슷하게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다면 비슷한 스탠스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2022년 대선에서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라가 망할 것이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라 양쪽을 모두 비난하기도 했다.

당원들이 홍준표 전 대표보고 왜 선대위를 도와주지 않냐고 물었을 때 "선대위 대구 지역 고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월 29일 원팀 선언을 하며 선대본부 상임고문직을 맡게 되었다. #. 그러나 자신은 역할과는 별개로 성격적 스타일이 맞지 않았는지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본인 라인의 사람 몇몇의 전략 공천도 성공하자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윤석열이 당선된 후 홍준표가 취임식 초청 명단에서 아예 제외됐는데.# 지방 선거 준비로 인해 어차피 초청돼도 가기 힘든 것은 사실이고 패배 상처를 자극해 유승민과 이재명을 초대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언급을 볼 때 윤석열 쪽에서 배려해 초청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윤석열과 홍준표의 사이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홍준표가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해 쓴소리를 할 때도 정치 물 덜 든 대통령 도울 생각은 안 하고 싸움만 한다며 윤핵관들을 비판하지 윤석열에 대해서는 오히려 당내외에서 지원을 받아야 한다, 적극 돕겠다며 호평을 하는 편이다. 홍준표의 이준석에 대한 비판 또한 윤핵관들에 대한 비판과 비슷한 궤를 들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윤석열을 옹호하는 것을 보면 홍준표는 자신의 생각을 꽤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구시장 당선 이후로 홍준표는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깎듯하게 대하고 있다. # # 2022년 8월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복절 특사에서 제외되자 상황이 어렵다고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저버렸다며 윤석열과 한동훈을 전격적으로 비판했다.[159]

2023년에도 기조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대놓고 척지는 발언은 하지 않으면서도 여당 지도부를 비판하면서 윤석열의 실책들을 우회적으로 같이 까는 듯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재밌는 건, 현직 광역자치단체장 중 정치적 발언을 가장 세게 하는 시장인 그가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가장 많이 하지만 동시에 옹호성 발언(윤석열의 반국가 집단 발언)도 가장 많이 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서로가 정적 관계라 한들, 지방자치단체장의 입장에서 중앙 정치에 대해 비판하는 데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을 수밖에 없고, 차기 대권도 보고 있는 홍준표의 입장에서는 현직 대통령과 척져서 좋을 일이 전혀 없다는 현실적인 계신이 깔린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나는 정치적 선배로서 할 말은 하되, 동시에 대통령으로서 윤석열을 존중하고 인정할 것은 하겠다" 라는 입장을 어필하며 차기 대선 때 윤석열의 지지자를 경쟁자들에 비해 미리 흡수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2024년 4월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총리직을 제안했으나, 홍준표가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홍준표가 대통령실에 들어가 대통령을 만났고 만남 이후 이재명에게 전화를 걸어 영수회담을 제안한 것을 보면 윤석열 역시 홍준표를 선배로 예우하고 조언을 진중하게 듣는 것으로 보인다.[160]

3.28.1. 친윤

윤석열에게 어느 정도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윤핵관[161]에 대해서는 안 좋게 본다. 심지어 당 대표 시절에 여러 차례 부딪혔던 태극기 집회 세력[162]이나 황교안보다도 더 나쁘게 보는 편. 홍준표는 윤핵관에 대해 "대통령을 모실 생각은 안 하고 저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윤석열 팔아먹으며 당까지 말아먹으려 드는 인간들"이라며 여러 차례 악평을 한 바 있다. 특히 저들의 익명 인터뷰에 대해 비겁하다며 안 좋게 보는 편이다.

특히 친윤계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장제원, 윤한홍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악평을 하는 편[163]인데 특히 장제원과 윤한홍은 홍준표가 당 대표를 하던 시절에 호위 무사, 복심을 자처했던 인물들이라 페이스북 등에서 여러 차례 비난한 바 있다.[164] 이외에도 친윤/윤핵관의 좌장 격인 정진석에 대해서도 당 대표 흔들 생각 하지 말고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라며 힐난하기도 했다. 이들 못지않은 윤핵관으로 꼽히는 권영세와도 21대 국회의원 시절 서로 비난을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165] 후술하겠지만 윤핵관은 아니긴 한데 친박 중진 출신 친윤으로 분류되는 김재원에게도 여러 차례 악평을 쏟아내는 등 과거 진박 감별사 노릇 했던 일부 친박들보다도 더 안 좋게 보는 편이다.[166] 어쩌면 당연한 게 진박들은 박근혜가 탄핵당하자 책임을 지겠다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인물들[167]도 상당히 많고 정우택이나 20대 대선 경선 당시의 조원진, 홍문종처럼 홍준표에게 협력했던 인물들도 있는 데 반해[168] 윤핵관으로 꼽혀왔던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오락가락했던 철새들인 데다 익명 인터뷰라는 비겁한 방식으로 자신들이 맘에 들지 않는 인물들을 공격하는 소신 따위는 개나 줘버린 행보를 보이고 있어 인간적으로 매우 혐오하는 것으로 보인다.[169]

3.29. 김문수

보수 정당 소속 정치인이자 범YS계의 일원으로서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YS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해 15대 총선에서 함께 정계에 데뷔했다. 2006년에 홍준표김문수에게 '영혼이 맑은 남자'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2018년 김문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할 때 지원했으나, 김문수가 당을 나가고 전광훈 목사나 친박들과 어울리는 철새 행보를 보이자 "안타깝다"고 표현했다. 그래도 관계가 있는지 2021년 재보궐선거 당시에는 안철수 후보를 지원했다. 그리고 이재오 등과 함께 비상 시국 연대를 하는 등 활동을 같이했었다.#

그러나 2022년, 김문수가 강성 친윤 행보를 보이며 홍준표를 건드리자 홍준표김문수틀튜브가 되었다, 영혼이 맑은 남자라는 말 철회한다, 자꾸 그러면 영혼이 타락한 남자가 된다며 페이스북으로 반격했다.#

3.30. 이재오

이재오는 지금까지도 친이계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인물이고, 홍준표 역시 범친이계의 일원인 데다 15대 국회 시절부터 18대 국회 시절까지 한솥밥을 먹어온 사이로서 이재오 역시 홍준표와 가까운 사이다. 이후 20대 국회의원 후보 새누리당 공천 파동 및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새누리당 분당 사태가 일어나며 이재오가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했는데, 이후 홍준표는 친이계 및 이재오와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바른정당을 만든 데 일조했던 친이계를 대부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시켰고, 얼마 후엔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한 친이계 및 이재오를 복당시키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후 홍준표는 친이계 중진이자 늘푸른한국당 공동 대표를 맡았던 이재오와 최병국을 당 상임고문으로 임명했다.

이후 이재오 역시 20대 대선 경선 당시 홍준표를 지지했었고, 이후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이후 홍준표와 더불어 MB의 사면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170]

3.31. 김종인

아직도 별이나 보고 점이나 치는 점성술사[171]
청년의꿈에서 김종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유저의 질문에 대한 답변
건국 이래 뇌물 먹고 구속된 경제수석이 또 있었나[172]
사이가 굉장히 나쁜 편이다. 두 사람의 악연은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사였던 홍준표는 노태우 정권에서 경제수석을 했던 김종인의 뇌물 자백을 받았다.[173] # 홍준표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함승희 검사가 "홍준표가 파견 나와 있는데 조폭 수사로 유명한 사람이라 나보다 훨씬 무서울 거다"라고 협박을 했고 자신이 뒤이어 들어와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가 지금까지 밝혀진 액수만으로도 부끄러울 짓인데 더 밝혀져서 쪽팔리기 싫으면 이쯤에서 덮자"라고 회유하여 자백을 받아냈다고 한다.[174]

홍준표는 21대 총선 컷오프에 반발하여 미래통합당을 탈당하고 수성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고도 총선 직후 김종인이 비대위원장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김종인 퇴임 후 이준석 대표 체제가 될 때까지 1년 넘게 집 밖에 있었다. 김종인이 홍준표 복당에 강경했기도 하고, 홍준표도 김종인을 껄끄러워해서 복당이 바로 되지 못했었다.

2021년 1월, 홍준표는 김종인을 김종필에 비유하며 말년의 몽니에 사로잡혔다고 겨냥했다. #[175]

2021년 3월에 김문수, 이재오, 김무성이 서울시장 야권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며 김종인의 사퇴를 요구하자 김종인은 이런 사람들이 당을 이 꼴로 만들었다며 김문수, 이재오, 김무성과 더불어 홍준표를 비난하는 발언을 한 적 있다.#[176]

20대 대선이 끝나고서도 김종인 측에서 '다음 별의 순간을 잡을 사람은 오세훈, 안철수, 한동훈'이라 하며 노골적으로 홍준표는 언급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김종인이 죽기 전까지는 둘 사이의 앙금이 풀어질 일은 없을 듯싶다.

사적인 악연은 차치하고서라도 두사람의 성향 자체가 완전히 상극이기도 한데, 자유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성향이 짙은 데다 페미니즘, PC 등에 반대하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철저한 보수 우파인 홍준표와 달리, 김종인은 기독교 민주주의+친페미, 친PC 성향인 데다 경제민주화, 기본소득 등으로 대표되는 좌파적 경제관을 지닌 인물이다. 거기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지향하는 홍준표와 달리 상술했다시피 김종인은 대표적인 내각제주의자다. 출신 환경도 완전히 정반대인데, 홍준표는 자수성가한 흙수저 출신인 반면 김종인은 할아버지가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에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명문가 출신이다.

3.32. 함승희

검사 출신임에도 검찰과 검찰 출신들을 증오하다시피 하는 홍준표가 유일하게 존경을 표시하는 검찰 출신 정치인이다.[177] 실제로 이전부터 기회가 날 때마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특수부 검사였으며 대한민국 법조 역사에서 전설적인 분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만큼 홍준표의 검사 생활에 있어서 롤모델이라고 봐도 무방한 인물이다.

다만 사적으로는 그닥 편하지만은 않은 사이인 것으로 보이는데 20대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 직전에 했던 인터뷰에서는 함승희가 김종인에게 2시간 동안이나 자백을 못 받던 걸 내가 들어가서 20분 만에 자백을 받았다며 함승희를 조롱하기도 했으며[178] 다른 인터뷰에서는 검사 시절 윗선과 의견이 안 맞아 허구한 날 치고받고 싸웠는데 그 윗선이 함승희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인, 공인으로서는 협력해도 사적으로는 악평하는 김무성이나 애증의 관계인 이명박, 오세훈과 비슷한 관계인 듯 보인다.

사실 두 사람의 정치 행보만 보아도 사이가 좋은 게 더 이상할 지경인데 홍준표는 YS에게 영입되어 오랫동안 자유보수주의자로서 살아온 반면 함승희는 DJ에게 영입되어 민주당에 몸담았고 16대 대선 정국에서 노무현을 보좌하다가 노무현 탄핵 정국 당시에 갑자기 노선을 틀어 친박에 붙어버린 인간이니 홍준표 입장에서 좋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20대 대선 정국에서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와 홍준표, 그리고 두 사람 모두와 친분이 있는 법조인 A가 회동을 했으며 이 자리에서 홍준표와 윤석열이 앙금을 풀고 윤석열과 이준석의 회동까지 성사되었다는 기사가 떴는데 이 법조인 A가 바로 함승희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명박이나 오세훈처럼 마냥 좋게 보진 않아도 그럭저럭 잘 지내는 사이인 듯하다.##

3.33. 하태경

벌구가 함부로 내뱉는 말 신경 쓸 거 없어요
하태경이 거짓말을 내뱉는다는 청꿈 유저의 질문에 남긴 답변
하태경과의 관계 역시 굉장히 좋지 않다. 하태경은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이던 당시 논란을 일으킬 때마다 홍준표를 적폐, 신주사파 수장#, 종북 피해 망상증 환자#, 홍갱이# 등 갖가지 별명을 지어 내며 맹공을 했었으며, 홍준표의 복당에 대해서도 맹렬하게 반대했다. 이후 같이 국민의힘 20대 대선 경선에 출마해서 맞붙을 때도 하태경은 홍준표를 저격해서 '조국수홍' 같은 단어를 유행하게 만들었고[179] 홍준표가 그때쯤 국민의힘 부산시당에 방문해서 당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속이 뒤집히는 게 (하태경이) 저X이 그때 우리 당 쪼개고 나가서 우리 당 해체하라고 지랄하던 X인데"'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하태경은 홍준표의 막 나가는 성격이 어디 가지 않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와는 별개로 홍준표가 그 자리에서 국민의힘 당원들한테도 '저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님 잘하십니다 하던 사람' '하태경이는 떨아(떨어뜨려) 주세요' '속이 터져서 저걸..' 이런 얘기까지 했을 정도면 과거 하태경의 공격과 경선 과정에서의 저격 등으로 인해 하태경에서 대해선 울분이 쌓인 것 같다. 청꿈에서도 하태경이 싫다는 청꿈 유저의 하소연에 "So do I"라며 댓글을 달 정도.

하태경은 홍준표에게 윤핵관, 친윤 강경파 뺨치는 정도로 비협조적이다. 2023년 5월 10일 홍준표가 이재명과 만남을 가지자 16일 하태경이 라디오에서 홍준표를 두고 "만난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만, 만나서 왜 자기 집(국민의힘) 험담을 늘어놓나, 팔푼이처럼."이라고 비난했다. #

이 때문에 청년의꿈 같은 친홍 네티즌들에게는 윤석열, 황교안, 김종인, 김재원과 더불어 가히 5대 주적으로 꼽힐 수 있을 정도로 반응이 매우 나쁘다.

하태경이 22대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인 해운대를 떠나 서울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자, 홍준표는 "선당후사라기보다는 제 살길을 찾는 것"이라고 평가했고, 이에 하태경은 "당사아생(黨死我生)의 길을 선택한 사람은 누구였나. 서울 오라고 하니 거부하고 탈당해 무소속으로 가면 2석 만들 수 있는 걸 1석 한 것 아니냐"면서 반박했다. 이후 하태경이 종로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하자, 홍준표는 주사파 출신이 갈 곳은 아니라며 비난했다.

3.34. 김재원

김재원 : 대구의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면서도 대통령과도 좀 잘 지내고 그다음에 선거에서도 좀 도와주고 더 나아가서 당내에서도 지지를 좀 많이 얻고 이런 분이 후보가 되는게 맞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홍 : 당선자 팔고 당선자 사진 붙여놓고 마치 모든 것을 협조할 것처럼 하는 게 그게 무슨 선거입니까? 본인이 자신 없으면 물러나는 게 맞죠.
홍 : 토론을 그렇게 하시는 것은 참 좋지 않은 태도입니다. 남을 비난하고, 대구시민들이 보고 있는데 깐죽거리고 남 비난하는 그런 토론은 옳지 않습니다.
김재원 : 제가 깐죽거린 게 아니고 제가 뭐 비난하고 그런 게 아니고 대구시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나름대로 설명한 것인데요. 어쨌든 저도 대구시장 후보자로서 나온 후보자인데 그렇게 모욕적으로 말씀하시는지 저는 그게 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홍 : 더 이상 질문 안 하겠습니다.
김재원 : 고맙습니다.
홍 : 고마운 게 아니고 그런 식으로 시민들이 전부 보고 있는 데서 답변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대구광역시장 후보자 경선 토론 中
그거는 언급하기도 싫어요...
SNL 코리아 주기자가 간다
박근혜 망할 때 말기 정무수석
청년의꿈에서 김재원에 대해 묻는 유저에게 한 답변
사실 이 둘의 관계는 2017년 재보궐 선거 및 19대 대선 국면에서 홍준표가 대선 후보였을 때 김재원이 재보궐 선거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되었고[180] 관계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20대 대선을 전후로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발단은 김재원이 국민의힘 전당 대회에서 수석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이후부터 시작되는데 김재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준표의 복당에 번번히 딴지를 걸고 경선 당시에도 정봉주 등의 타 정치인에게 홍준표가 국민의힘 대선 주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등 심기를 번번이 건드리자[181] 홍준표는 '새털 같은 입' '박근혜를 망친 간신이 윤석열까지 망치려 한다' 하면서 김재원을 대차게 비난했고, 국민의힘에 김재원 징계를 요구한 적이 있다. 이 외에도 홍준표는 이준석 대표를 옹호하며 당 대표는 당의 어른인데 아무리 어리더라도 당 대표를 무시하는 게 도를 넘었다, 구렁이 같은 인간이라며 비난한 바 있다.[182]

또한 언론 인터뷰와 SNL 주기자가 간다에서도 경선 룰이 홍준표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짜여진 데 대해서 "김재원이 농간을 부렸다, 경선 룰 문제도 김재원이 주도했다"며 비판했고 주현영이 김재원에게 영상 편지를 요청하자 정색하면서 "그거는 언급하기도 싫다, 다른 얘기 하자"라고 김재원에게 악담을 퍼부었으며 대구광역시장 경선 토론회에서도 "같잖아서 질문 안 한다, 질문하기 싫다[183][184], 대구시민들과 당원 동지들이 보고 있다, 깐죽거리지 마라"며 홍준표답지 않게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185] 김재원 역시 홍준표가 상대 후보룰 존중하지 않는다, 같은 후보끼리 무슨 예의 타령이냐며 정색하며 싸우기도 하는 등 인간적으로도 서로 혐오하는 듯 보인다.

특히 김재원에 대해서는 같은 진영에서도 친박/비박 등의 계파를 떠나 홍준표가 개인적으로도 매우 싫어해서 상종하기 싫다는 얘기까지 토론 면전에서까지 대놓고 하는 몇 안 되는 경우다.[186] 또한 청년의꿈에서도 김재원에 대해서는 '대선 앞두고 한자리해 먹을 생각이나 하는 정신 나간 사람' '박근혜 망할 때 말기 정무수석' 이런 식으로 맹비난 일색이지 긍정적인 면을 말한 경우가 아예 없다.

3.35. 김정권

경남지사 시절 제가 베풀었던 온갖 호의를 모두 저버리고 지방 선거 공천을 받기 위해 저를 배신하고 가버렸던 사람은 그 지방 선거에서 경남 기초단체장 중 유일하게 낙선하고 낭인이 되어 지금도 경남 일원을 떠돌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187]

홍준표가 원내대표를 하던 시절에 원내부대표를 했고 홍준표가 한나라당 대표를 하던 시절에 재선임에도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선임될 정도의 인물이었다. #

그러나 2014년 제6대 지방 선거에서 김해시장 공천을 받는 과정에서 홍준표를 비판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3.36. 김기현

홍준표는 창녕, 김기현은 울산 출신으로 영남-경상남도 출신이며 법조인 출신이라는 배경도 같다. 김기현 또한 정치에 입문한 2004년부터 여당 당 대표가 된 2023년까지 자의에 의해 탈당한 적이 없어 홍준표가 자랑스러워하는 보수 정당의 적자 논리가 적용되는 인물이다. 김기현이 법조인에서 정치인으로 탈바꿈한 제17대 총선 당시 홍준표는 재선 의원으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이었다. 이후 김기현과 홍준표는 국회 원내에 할당된 당직을 맡았으며 홍준표는 18대 국회에서 더 굵직굵직한 당직을 맡았고 , 김기현은 특정한 계파를 가지지 않고도 선거마다 계속 공천되었던 만큼 서로 돈독하고 문제가 없었다.

2016년 여름, 동남권 신공항 건설 부지가 밀양이었다가 김해신공항으로 변경되자 당시 경남지사였던 홍준표와 울산시장이었던 김기현이 합심하여 김해신공항을 지지하여 민심을 잡은 적이 있다. 부산일보 기사

2017년 홍준표는 대선 후보가 되었지만 낙선했는데 울산 득표율에서도 약 11% 차이로 문재인 후보에게 졌고 김기현은 2018년 지방 선거에서 울산시장 재선에 실패하여 야인이 되었으니 동병상련을 겪은 셈이다. 2020년 홍준표가 공천 불복으로 인해 미래통합당을 탈당한 이후 김기현은 홍준표의 제1 보수 정당 복당에 우호적인 인사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2023년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기현이 당 대표에 출마하고 범친윤계의 대표 주자로 부상하자 홍준표 측에서 연일 쓴소리를 했고 , 김기현의 당선 이후에도 전광훈을 위시한 아스팔트 보수 세력에 대한 태도 문제로 대립하면서 사이가 매우 멀어졌다.

2023년 4월 13일에는 아예 홍준표를 상임고문직에서 해촉시키는 결정을 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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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치경력이 비슷한 김무성과는 평가가 완전히 상반된다. 김무성은 포용력이 좋고 사고방식이 열려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반대로 확고한 소신이 없이 오락가락한다는 평을 받는다.[2] 홍준표의 인터뷰들을 보면 탄핵정국을 거치며 보수가 갈갈히 찢어진 상황에서 당 대표를 했던 경험때문인지 당이 이전처럼 다시 쪼개지는 것을 경계하는 모양이다. 자당 소속 정치인들을 비판하더라도 그만 싸우고 대통령좀 도와주자. 이런 식.[3] 보수당과 민주당의 균형은 노무현 당선 시점에 와서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홍준표가 영입될 당시만 해도 민주당은 단 한 번도 정권을 잡지 못했었고, 김대중이인제 독자 출마에 김종필과 손을 잡고도 접전을 펼치며 간신히 당선되었다.[4] 이 당시 청와대에서 직접 전화가 와, 문민정부에서 큰 사람이 야당에 갈 수 있으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5] 홍준표가 전대 대통령들을 평가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공과 과를 확실히 구분하며 공에는 극찬을 보내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민주진영 대통령인 김대중, 노무현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6] 실제로 국민의 정부 내내 야당인 한나라당은 과반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17대 총선 직전까지 가지고 있었고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00석 안팎을 왔다갔다하는 수준이였지망 보수정당인 자유민주연합과의 연대를 구축하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영수회담을 통해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IMF 극복, 남북경협 등 자신만의 정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갔다.[7] 공교롭게도 이후의 일이 좀 웃기게 되었는데 노무현은 이후 김대중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반면 홍준표와 이회창 둘 다 대통령 선거에서 경선 탈락을 포함하여 3번 이상(홍준표: 17/19/20대 대선, 이회창: 15/16/17대 대선) 낙선했다.[8] 정작 홍사덕은 1995년 탈당 후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한다.[9] 이 당시 홍준표는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다.[10] 당시 수사하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수사 기밀 사항을 지키지 않고 혐의도 입증되지 않은 내용을 언론에 뿌려서 노무현은 물론 노무현 주변 사람들까지 곤란하게 했으며, 이전에는 노무현이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탈세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먼지까지 조사했으나 뭐가 안 나오자 노무현이 단골로 다니던 국밥집을 세무 조사 하는 등 일반인이 보기에도 상식 이하의 행동들을 많이 했다.[11] 단 의견 차는 있어서 공수처 출범과 경찰 권한 강화, 검찰 축소를 주장한 노무현과 달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등 검찰 조직 내부의 개편을 통한 검찰 개혁을 주장하였다. 여담으로 이 두사람이 주장했던 대검 중수부 폐지와 공수처 출범은 각각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에 현실화되었다.[12] 이 당시에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 역시 이딴 수사는 처음 본다며 검찰을 향해 맹폭격을 퍼부었다. 당시에 박연차 게이트의 여파가 민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에까지 불똥이 튀기면서 한나라당 역시 마냥 반기기만 하던 입장은 아니기도 했고 박희태와 홍준표 두 사람이 노무현이나 야당인사들과 그럭저럭 괜찮은 사이였던 것도 이들이 분노한 이유 중에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13] 친북이라고 했는데 조선일보 유튜브 영상 자막에는 종북이라고 나왔다.[14] 물론 어디까지나 민주당계 내부에서 강경 진보라는 것이지, 진보 정당 계열 정치인들이 보기에는 보수적이다. 20대 대선 당시 심상정이 이재명에게 그의 공약을 보고 성장만 중시한다며 MB 아바타라고 한 것이 그 예. 물론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이 반윤 보수층을 끌어모으기 위해 대대적으로 우클릭한 것도 한몫했다.[15] 홍준표의 아내 이순삼은 전라도 부안 출신, 이재명의 아내 김혜경은 충청도 충주 출신이다.[16] 홍준표, 이재명과 대립하는 당내 세력들은 양쪽 다 내각제 개헌을 노린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돌고 있다. 홍준표의 경우 소위 말하는 윤핵관, 새보계가 내각제 개헌을 노린다는 의혹을 강하게 받고 있으며 이재명과 대립하던 이낙연 역시 과거에 내각제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고 역시 반이재명 성향이 강한 김진표는 아예 대놓고 내각제 개헌을 밀어붙이려 했다.[17] 청꿈 이용자들 사이에서 이재명이 홍준표의 업적을 도둑질하려 한다는 식의 여론이 있었다. 주호영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는데 굳이 이 법안에 찬성하는 게 아니라 새로 발의하는 의도가 불순하다며 질문을 했는데 이렇게 답한 것. 물론 홍준표 역시 주호영 의원이 발의한 원안대로 가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18] 정확히는 8위로, 7위인 여당 대표와 함께 부총리급의 예우를 받는다.[19] 이를 잘 알 수 있는 게 유시민은 홍준표를 '홍 대표님'이라 부르고, 홍준표는 유시민을 '유 장관'이라 부른다.(대부분 사람들은 '유 작가' 또는 '유 이사장'으로 부른다. 유시민이 보건복지부장관을 한 것이 10년도 더 된 일이다.) 이미 오래전에 지난 일이지만 서로서로 이런 호칭을 쓰는 것부터 매우 친하고 또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20] 청년의꿈에서도 가장 친한 좌파 인사가 누구냐는 질문에 유시민과 김어준을 꼽기도 했다.[21] 실제로 15~18대 모두 국회에 같이 있었으며,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홍준표, 정세균 모두 각각 한나라당/민주당 내 사령탑을 맡은 적이 있다.[22] 그래서인지 홍준표가 연장자인 정세균을 향해 정세균 선배라고 호칭한다. 다만 철저하게 법조인의 길을 걷다가 국회로 들어간 홍준표와 달리 정세균은 의외로 쌍용그룹에 입사하여 상무까지 지낸 기업가 출신이다.[23] 또한 홍준표가 이 과정에서 '국민들이 이러는데 어떻습니까' 이렇게 질문하자 정세균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면서 답변하기도 했다.[24]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문재인이 인용하던 문장 중 하나였는데 홍준표는 이것을 다시 인용해 대문재인 정부 질문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데 그대로 써먹었다.[25] 추미애는 대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온 대구 토박이고, 홍준표는 대구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학창 시절은 대구에서 유학했다.[26] 실제로 김부겸은 2003년까지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이었다. 두 사람은 15~16대 국회까지 한솥밥을 먹었다.[27] 실제 홍준표는 자유한국당 시절 문재인 정부와 그 아래 인사들을 숱하게 비판하거나 견제하면서도 당시 행정안전부장관을 맡던 김부겸에 대해서만큼은 비판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김부겸이 국무총리로 재임할 당시 '막가는 총리'라 비판한 적 있다.#[28] 정작 김부겸은 주호영과도 사석에서 형 동생 사이 할 정도로 친분이 매우 돈독한 편이다. 당시 수성구 갑으로 지역구를 옮긴 뒤 김부겸을 꺾고 당선된 주호영 역시 이러한 현실에 대해 안타깝다는 의견을 보였다.[29]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외로 박지원은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여 정계 입문을 시도한적이 있다. 다만 해외 교포라는 결격 사유로 탈당하였다.[30] 이 때문인지 박지원은 대북정책이나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사안을 제외하면 꽤나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31] 박지원 역시 홍준표의 정치 감각이 뛰어나다며 예전부터 홍준표에 대해 쭉 고평가를 내려왔다.[32] 토론회에서 문재인에게는 "이해찬 의원이 상왕이죠?"라고, 안철수에게는 "박지원 의원이 상왕이죠?"라며 저격하기도 했다. 이에 박지원은 "안철수 후보 찍으면 국민이 상왕 됩니다"라며 응수했다.[33] 이 두 사람 외에 창녕군 출신 정치인으로는 박영선, 설훈 등이 있다.[34] 사실 홍준표는 70년대에 운동권을 자처했었던 경력이 있어서 노회찬이나 유시민과도 꽤나 막역한 사이였고 박원순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참고로 박원순은 같은 이유로 이명박, 이재오와도 친분이 있었다고.[35] 물론 홍준표가 박원순의 범죄 행각을 옹호한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2021년 재보궐선거 당시에는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의 유세를 도우며 "앞에서는 성평등을 외치면서 뒤로는 온갖 추악한 짓을 저지르는 저들의 민낯이 이번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라며 박원순과 오거돈을 비판하기도 했다. 오거돈의 경우에는 홍준표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홍준표가 국회의원 재임 중 참여정부에서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냈어서 국회와 정부를 오며가며 약간의 안면은 있었다.[36] 사실 양당의 스팩트럼 차이가 현저하게 벌어진 지금이야 뜸해졌다고는 해도 이명박 정부 시절만 해도 같은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안 가리고 꽤나 돈독해서 한나라당 중진들이 민주당 초선의원들을 데리고 국회의사당 앞 포차에서 소주를 마시는게 일상이었고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이 민주당 중진들에게 밥 얻어먹는 게 꽤나 흔한 광경이였다고 한다.[37] 홍준표가 심상정을 좋아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 자신은 돼지 발정제 사건을 말리지 못해 후회된다고 밝혔는데 그것을 성범죄 가담으로 규정하고 맹공을 펼쳤으며 정책 토론 중 "그렇게 살지 말라"는 인신공격도 했다. 20대 대선을 앞둔 국힘 경선 중에도 심상정을 제외한 범야권 모두와 동맹 가능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38] 반면 예전 정의당의 중진 정치인이었던 노회찬하고는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국회의원 시절 홍준표, 유시민, 노회찬 이 셋이서 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노회찬과는 잘 어울렸던 걸 보면 확실히 심상정을 대하는 태도와는 대조적이다.[39] 단, 학과는 다르다. 이명박은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 홍준표는 법과대학 행정학과(현재는 정경대학 소속.) 출신.[40] 노무현 대통령의 당청분리는 본인 대에는 처음 해보는 실험적인 것이라서 그런지 열린우리당과 정권(청와대)이 공조가 잘 안되어 고생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도 제왕적 총재였던 이회창이 대선 2연패로 물러났겠다, 또한 권위적인 당의 이미지를 지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열린우리당을 따라서 총재 명칭을 없애고 대표로 바꾸었고, 정권 교체 이후 보수 정부 시절에도 그 당청분리의 기조는 그대로 이어져 2010년대에는 여야를 불문하고 정계의 상식이 되었다.[41] 2021년 기준 국민의힘이 야당임에도 불구하고 당 재산이 민주당(천억 원대)에 비해 서너 배, 수천억 원 단위나 되는 이유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래 근 40여 년 동안 보수 정권이 장기 집권 했는데, 잘 알다시피 그 후신이 현 국민의힘이다. 당.정.청 분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을 시절이라, 정부의 자산, 즉 세금과 예산을 자연스럽게 스리슬쩍 여당의 당 자산으로 유용할 수 있었다. 2016년 말 탄핵 정국에 김무성 전 대표가 말했던, '지금 새누리당 자산은 전두환 독재 시절에 재벌들 등쳐서 쌓아놓은 것이 그 기반이라, 불법 / 탈법적인 것이라서, 국고에 지금이라도 헌납해야 한다'라는 주장과도 논지가 통한다.[42]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 그래서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임기 1년) 임기 몇 달 만에 반강제로 쫓아냈던 것이 시대에 맞지 않게 비상식적이고 구태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다.[43] 오늘날의 정치 풍경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정치 지망생들에게 전화해서 '우리 여당으로 오라' 이렇게 할 수 있는 풍경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그러면 정치 중립을 위반하는 것이라 큰일 난다.[44] 정작 홍준표와 이회창은 꽤나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1999년에 홍준표가 선거법을 위반해서 의원직을 상실해서 홍준표의 지역구였던 송파구 갑 보궐 선거에 이회창이 대신 출마해서 당선된 일이 있는데 이회창은 홍준표에게 지역구를 빼앗아서 미안하다며 피선거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협상에 나섰고 홍준표가 2001년 재보궐 선거에서 동대문구 을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공천장까지 직접 챙겨줄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그리고 홍준표는 지속적으로 이회창에 대한 존경심을 표해왔다.[45] 사실 김현철은 모두까기 성향으로 유명해서 사이가 좋다 나쁘다를 따지긴 힘들다. 그나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여러가지 국정 자문역을 맡으면서 윤석열에게 우호적인 발언들을 종종 하는 편.[46] 이때 홍준표의 어머니가 최고회의 방침대로 고리채를 신고했다가 채권자들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시장 길바닥에 끌려다녔다고 한다.[47] 반면 황교안 같은 경우 이 당시 공안검사로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48] 그래서 그런지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종필과 연고가 매우 강했던 정치인들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신한국당-한나라당 시절에도 홍준표가 전두환을 예방해서 인사를 나눈 적은 전혀 없다.[49] 반면 또 다른 대권 주자로 분류되어 온 원희룡의 경우 17대 대선 경선을 앞두고 전두환을 찾아가 세배 인사를 드린게 알려져 구설수에 올랐던 바 있다.[50] 홍준표를 치켜세우는 동시에 김종필은 문재인에 대해선 절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사람이라며 강하게 디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참고로 김종필이 민주당 대선 후보 중에서 저렇게까지 살벌하게 디스한 사람은 문재인이 유일한데, 15대 대선 당시에는 아예 대놓고 김대중손을 잡았을 정도였고(물론 내각제 개헌 때문이긴 했지만) 노무현에 대해서도 칭찬할 만한 건 확실하게 칭찬했었다. 반면 문재인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를 단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51] 다만 진심이었다기보다는 대표로서 최고위원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었는가 하는 해석도 있다.[52] 다만 2017년 대선 당시 나경원이 광주에서 홍준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고 2019년 나경원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 논란을 옹호하며 국가원수모독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공격하기도 했다.[53] 이명박은 상과대학 경영학과, 홍준표는 법과대학 행정학과.[54] 이 시기 1998년 2회 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손학규도 함께했다고 한다. 이름하여 워싱턴 오리알 3인방.[55] 그 당시에는 원희룡/홍준표가 각각 3위/4위로 탈락했고, 20대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는 4위/2위로 탈락했다.[56] 당시에는 이명박, 원희룡, 홍준표 외에는 대권 잠룡으로 박근혜와 손학규가 있었다. 손학규는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압도적으로 밀리자 민주당계로 이전하는 걸 선택했으나, 보수 정당의 확실한 대권 잠룡으로 남아있는 홍준표, 원희룡과 달리 손학규에게는 결국 대권에 다시 나갈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20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결국 완주를 포기하고 사실상 정계 은퇴.[57] 특히 원희룡이 홍준표한테 공약 거창한 거로는 허경영만 한 사람이 또 없다고 얘기를 어쩌다가 꺼내자 홍준표는 원희룡에게 '허경영이는 공약이 너무 허황됐지 않습니까' 이러면서 웃으면서 맞받아친 것 또한 유튜브에도 유명한 동영상으로 남아있다. 거기다가 허경영이 홍준표에게 자기가 나이도 많은데 '허경영이'라는 반말을 했다고 반발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홍준표뿐만 아니라 원희룡도 허경영이라고 그냥 부르면서 존칭을 전혀 안 썼고 홍준표는 거기서 '허경영이가'라고 부르면서 한술 더 떴을 뿐이다.[58] 당시 유승민은 박근혜의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이력을 바탕으로 지지를 얻는 명백한 친박이었다.[59] 정작 유승민의 원내대표 당선 이후 국회법 개정 논란 당시 행적을 보면 아이러니한 부분.[60] 이때 정계 은퇴를 고려했지만 당 지도부가 당 대표까지 한 사람이나마 출마해야 한다는 계획으로 결국 19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동대문구 을에 전략 공천되지만, 정권 심판론이 불던 시기에 한나라당 원내대표, 당 대표를 역임하며 이명박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던 홍준표가 당선될 확률은 희박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활약으로 아슬아슬하게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긴 했으나 서울만큼은 정권 심판론이 박근혜 바람보다 더 크게 작용했다.[61] 홍준표를 도와주면 공천을 주지 않겠다며 청와대에서 압박이 들어왔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당을 나갈 것을 권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동인데,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다 해도 자신의 직위를 이렇게 남용하는 것은 엄연한 월권 행위이다.[62] 허태열, 홍문종, 유정복, 김기춘, 이병기, 그리고 부산시장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메모상의 부산시장이 서병수인지 허남식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정황상 부울경 친박의 좌장이었던 서병수로 의심하고 있다.[63] 단순히 친박 표를 거두려는 마케팅이라고 비난하는 견해도 있으나, 홍준표는 법률적 탄핵이 부당했다는 의견을 지금까지 피력해 오기도 했다.[64] 탄핵은 반대하면서 출당시키는 것은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에 홍준표는 대통령이 선거 직전에 탈당하는 것은 관례이고, 민주당이 지방 선거를 탄핵 적폐 심판 프레임으로 몰고 갈 것이기에 거기에서 자유롭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 '큰 수'라고 반박했다. 이는 당시 홍준표가 당내에서 조언을 들었는데 박근혜를 자유한국당에서 추방해야 예전처럼 되살아날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옥중에 있는 박근혜에게 자진 탈당 권고를 전했으나 박근혜가 대답하지 않자 강제 출당 시킨 것이다.[65] 결국 2020년에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으로 합당했다.[66] 다만 황교안은 알려진 바와 다르게 실제로는 친박 중진들은 거진 잘라내면서 친박 초재선만 어느 정도 남기고 친이계 출신들이나 바른미래당 출신을 공천 주고 친황에게 우선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했다. 실제로 친박 중진들한테는 정우택(이마저도 정우택은 친황윤갑근에 밀려 지역구를 강제로 옮겨야 했고, 낙선했다.), 김태흠 정도를 빼고는 공천을 아예 주지 않았는데, 이를 봤을 때 친박 초재선들은 일부 남기고 친황 위주로 공천하되, 황교안의 진짜 의도는 친박 중진과 홍준표를 묶어서 날려버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알다시피 홍준표는 수성 을에서 무소속으로 생환했고 정우택도 2년 후 청주상당 재선거에서 생환하여 둘을 날리는 데에 완전히 실패했다.[67] 실제로는 바른미래당 출신이나 친이계들도 꽤 공천을 받았다. 황교안의 진짜 문제는 친박도 애매하게 쳐내면서 친황한테 우선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한 점이다.[68] 그럼에도 복당하지 못했던 이유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시절 피의자로 심문했던 악연 때문으로, 임기가 끝날 때까지 복당 신청서를 넣지 않고 기다렸다 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 말에 의하면, 원래는 3~4개월 후 복당하는 것이 관례였음에도 1년 4개월 동안이나 무소속으로 있었다고 한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종료 이후, 만났고 관계를 풀었다고 증언했다. 무소속 의원으로 지내는 와중엔, 박근혜를 극복하지 못해 탄핵 당시에 누구는 찬성했고 누구는 반대했던 것을 따지고 당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강력하게 비판했다.#[69] 여기서 본인이 직접 등용한 친박 인사인 정태옥도 낙선했다.[70]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인척들 중 대부분이 20대 국민의힘 대선 경선 당시 홍준표 공개 지지 선언을 하기도 했다.[71] 실제로 김무성 대표 시절 조원진을 포함한 친박 정치인들 중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중엔 유승민, 정병국, 오신환같이 탄핵에 찬성한 비박 정치인들에게 배신자라고 비난해 놓곤 정작 거의 대부분이 박근혜에게 45년을 구형하고 이를 술자리에서 무용담 늘어놓듯 자랑했던 윤석열 아니면 진박을 '양아치 친박'이라 비난하면서 박근혜를 추방했던 홍준표에게 빌붙었다. 진짜 초지일관으로 문제 제기를 해오고, 그나마 홍준표랑 같이 하거나 절대 윤석열에 빌붙지 않아 완강히 반윤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구 친박 출신으로서 친홍으로 편입된 김용판과, 강성 친박김진태, 서병수 정도밖에 없다.[72] 대표적으로 친박 좌장 최경환의 최측근이던 강석진 같은 경우도 홍준표 공개 지지 선언을 하고 jp희망캠프에 붙었다.[73] 사실 홍문종, 조원진 같은 진박 일부가 윤석열이 부적절하다면서 홍준표를 밀어주는 쪽을 선택했고 윤상현 등의 친박 최측근도 홍준표랑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으며, 홍준표가 정우택, 김태흠에게도 손을 내미는 점을 감안하면 홍준표가 친박 전체를 싫어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친박 중에서도 김재원을 유독 싫어한다고 볼 수있다.[74] 이는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 법리적 문제가 있다는 기존 의견에 기초한다.[75] 이상 4인은 새누리당을 나가 당적을 바른정당으로 옮기는 데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각 개인으로 살펴보면 권성동은 법사위원장으로서 탄핵을 주도했고, 김성태는 탄핵 정국 당시 최순실국정농단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김무성유승민은 비박계의 탄핵 찬성을 이끌어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덤으로 권성동박근혜를 탄핵시키고 징역 45년형을 구형한 윤석열의 절친이다.[76] 조원진과 우리공화당이 가장 증오하는 보수 우파 정치인인 김무성유승민급으로 홍준표에 대한 적개심이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77] 김무성, 유승민 등 비박 세력의 경우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져서 조원진이 배신자로 규정한 것이고, 홍준표의 경우 바른정당계 정치인들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시키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자유한국당에서 출당시켰기 때문에 배신자 역적으로 규정한 것이다.[78] 양아치 친박[79] 정권 수사로 검찰 고위층에 찍혀 좌천되고 결국 검사 옷을 벗은 홍준표이기에 이런 친박들을 경멸하는 거 같다. 실제로 홍준표는 친박 진영이라도 자신만의 지향점이 있고 능력도 출중한 윤상현이나 김태흠은 도리어 매우 좋게 평가한다.[80] 무소속 당선 4인방 홍준표, 김태호, 윤상현, 권성동국민의당 3석을 합쳐도 110석에 불과하다.[81] 거기에 민주당과 사이가 험악해진 정의당 6석까지 합쳐도 116석에 불과하다.[82] 중도 우파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닌 중도 세력 중도 우파 우파 세력을 모두 포함한다는 뜻이다.[83] 미국의 공화당이 모델인 듯하다.[84] 청문홍답에서 어떤 유저가 조원진 같은 극우를 만나지 않는 것을 권장했으나, 홍준표는 조원진이 못 만날 사람이 아니라고 반박했다.[85] 또한 실제로 홍준표와 조원진은 과거 신한국당 때부터 같은 정당이었던 적이 있었고 18대 국회에선 당시 범친이 대 친박이긴 했지만 같은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거기다가 홍준표는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 중 일각이었기 때문에 예전부터 서로 알고 있었던 사이인 게 당연한 것. "정치는 생물", "정치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라는 말처럼 홍준표와 조원진의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 것이다. 이 "정치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라는 말은 비단 홍준표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고 모든 정치인이 마찬가지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가 홍준표의 정적인 박근혜김종인. 박근혜와 김종인은 성격 자체가 피아 식별이 매우 확고한 사람이라 한번 적이 된 사람은 영원히 아군이 되지 않고 적으로 간주하는 성향이 있어 '영원한 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86] 사실 황교안이나 김재원은 홍준표에게 거의 대놓고 빅엿을 날렸던 인물들이라 사이가 험악해진 것이고 한동훈은 홍준표에게 정치적으로 타격을 가하거나 피해를 준 일이 없다. 홍준표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관계인 장제원이나 이준석과도 종종 덕담을 나누는 걸 감안하면 아직까지는 한동훈과 척을 졌다고는 보기 힘들다.[87] 실제로 한동훈은 달변가 기질로 2030 남성이나 강성 보수층에게 인기를 끌긴 했지만 윤석열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만드는데는 실패했다.야당 지지층에게는 너무 깐죽거린다는 이미지도 박혀있다.[88] 문재인 정권 초기에 홍준표 역시 표적수사를 당한 일이 있고 홍준표가 경남도지사를 하던 시절에 함께했던 측근들이 자살을 하는 일도 있어서 치를 떠는 모양이다.[89]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구로구 을은 호남 출신들이 많은 영등포 권역 중에서도 호남 출신들이 좀 더 많은 동네에 속하는 데다 산업 단지가 있어 박영선이 3선을 해온 수도권 내에서 민주당 세가 가장 강한 지역구 중 하나다. 지역 기반이 하나도 없는 홍준표에게 이런 곳에 출마하라고 강요한 것은 사실상 죽으라는 뜻이다. 다른 정치인으로 따지자면 박근혜에게 광주광역시에서 출마하라고 하거나 송영길, 이낙연에게 대구경북에서 출마하라는 소리와 같다.[90] 그 중 3선이 동대문구 을이다.[91] 지역구 내 정치 성향을 보더라도 당 지도부가 추천한 구로구 을의 경우 민주당 압도 우위지만 종로구는 부촌이나 중산층 거주 지역이 있어 국민의힘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곳이다.[92] 동대문구 을이 아니었다면 모교인 고려대학교가 위치한 성북구 갑이나 같은 고려대 권역인 동대문구 갑, 아니면 차라리 PK에서 험지인 김해시 을로 내보냈다면 얼마든지 명분도 갖추고 험지로 내보낼 수 있었다.[93] 구실거리가 있다면 자유한국당 1대 대표 당시 지방 선거 대패한 점 정도를 구실 삼아 홍준표를 날려버리려고 했을 것이다.[94] 홍준표의 성격상 황교안이 당선되기라도 했더라면 되레 칭찬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홍준표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제1보수당이 망할 위기에 몰렸을 때 문재인이 100% 당선될 거 알면서도 출마해 문재인과 맞붙었으며 2위로 낙선하자 낙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을 살려냈다면서 기뻐한 사람이다.[95] 다만 김태호는 평판이 예전에 비해서는 안 좋았는데 19대 국회에선 친이 출신 신친박으로 분류되었다. 그래도 지역 지지 기반은 상당히 강했다.[96] 이후 2024년 총선에서는 당 지도부가 작정하고 양산을에 경남지사 출신인 김태호를 내려보내 김두관과 대결하게 햤는데 접전이긴 했어도 과반득표를 해내며 김두관을 꺾어버린 것을 감안하면 황교안의 결정이 한참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97] 그러나 박형준에게 억울한 점은 황교안이 전권을 잡고 공천을 했다는 점과 홍준표, 김태호, 정병국 등을 컷오프한 사람은 황교안이었다는 점이다. 박형준도 나름대로 황교안 독주를 방지하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98] 자유한국당 대표 사퇴 전 페이스북에 올린 마지막 글 中[99] 2011년 12월 6일, 한나라당 당원 연수회에서 한 발언.[100] 또한 이 둘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전방에서 대여 공격수 역할을 맡았고,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친이계들과 더불어 4대강 사업에 찬동한 바 있다.[101] 참고로 홍준표는 YS 키즈 출신이긴 하지만 같은 상도동계나 YS 키즈들과는 유독 껄끄러운 사이이기도 하다. 실제로 상도동계 핵심이였던 김무성, 정병국, 김현철, 서청원은 홍준표와 모두 껄끄러운 사이이다.[102] 사실 홍준표가 개인의 소신과 능력을 중시하는 스타일인 데 비해 김무성은 조직과 포용력을 중시하는 타입이라 둘이 묘하게 안 맞는 느낌도 있다. 그 외에도 후술할 김종인처럼 여러모로 홍준표와 상극인 사람이 김무성인데, 대통령 중심제를 지향하는 홍준표와 달리 김무성은 김종인처럼 내각제 개헌을 노리는 대표적인 인물이며, 흙수저 출신인 데다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징용 피해자였던 홍준표와 달리 김무성은 금수저 출신에 아버지가 친일파였던 사람이다. 더불어 홍준표는 법조인 출신이나 김무성은 기업인 출신이기도 하며, 조선일보 같은 언론과 사이가 상당히 나쁜 홍준표와 달리 김무성은 조중동 등 거대 언론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103] 유승민은 당시 박근혜와 소원해진 상태였지만 친박의 대대적인 지원에 힘입어 재선임에도 불구하고 당대표 선거에 나간 상황이였다. 사실 아무리 소원해졌다고는 해도 박근혜 입장에서도 정책통인 유승민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내치긴 힘들었기에 계속 밀어줬었다. 이에 반해 홍준표는 이명박과도 소원해지고 박근혜와는 견원지간인 상황에서 친이와 친박의 2등표를 모으고 소장파 당원들에게 소신파로 자신을 어필해서 당대표가 될 수 있었다.[104] 당시 주호영 의원은 수성구 을에서 출마하기를 희망했으나 미래통합당 지도부에서 김부겸을 잡는 자객 공천으로 주호영수성구 갑으로 배치시켰다. 그래서 수성구 을은 사실상 비게 되었다.[105] 당시 중구·남구, 서구, 달성군은 현역 의원이 출마해서 선택하지 않았다. 동구 갑, 동구 을유승민의 지역 기반으로 인하여 피했다. 달서구 갑은 측근이었던 곽대훈이, 달서구 을에는 친홍 인사인 윤재옥이 출마했고, 북구 갑 역시 친박 정치인이지만 홍준표와 가까운 정태옥이 출마했다. 수성구 갑도 있지만 친분이 있는 주호영이 전략 공천 되고 김부겸도 출마하여 선택하지 않았다. 대구 내 남은 선택지가 북구 을, 달서구 병, 수성구 을이 있었지만 북구 을의 경우 셀프 당협 논란 때문에 제외되고, 달서구 병에 있는 조원진을 낙선시키기 위해 달서구 병 역시 제외되었다. 결국 수성구 을 외에는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106] 큰 타격이 없는 수준을 넘어 유승민에게 도전하겠다는 김규환, 김영희, 김재수, 도태우와 같은 당내 친박들은 경선에서 패배하였거나 컷오프되었고, 당 외 친박 세력인 송영선, 윤창중은 4% 수준의 득표율로 패배했다. 그 강대식동구 을 선거구민들이 다 아는 친유 핵심 인사인 데다, 지역 기반이 강해서 경선에서도 본선에서도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총선 이후에도 동구 을 선거구민들이 유승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현수막을 동구 을 전역에 달았다.[107]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구 조사 결과이다. 40대 이상 중·노년층 세대는 예상대로 홍준표유승민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은 반면, 2030 청·장년층으로 내려갈수록 유승민홍준표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108] 19대 대선 때와 달리 현재의 홍준표유승민은 둘이서 토론할 때에는 네거티브를 자제하고 정책 문제 중심으로 공방을 펼치는 편이지만 윤석열과 토론을 할 때는 토론 주제가 윤석열의 논란거리로 바뀌어 둘이서 함께 비판을 가한다.[109] 홍준표는 비례 대표는 당에 의한 임명직이라 한 바 있다.[110] 실제로 전희경, 류석춘, 주옥순 등 극우 인사들에게 힘을 실어 준 인물이 홍준표이다.[111] 정병국박정희, 전두환을 비판한 이유도 그가 상도동계 직계이기 때문이고, 그는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관으로서 관료직을 시작했고, 비서관 이후 정계에 입문한 인물이다. 이명박박근혜 경선 당시 이명박을 지지했고, 박근혜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강요 사태에서도 유승민을 지지했다.[112] 일단 정병국은 수도권 5선인 데다 충분히 대표까지 넘볼 수 있는 위치였고, 유승민, 오세훈과 가까워서 정병국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황교안의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었다.[113] 일단 정병국이 야당은 야당이 받은 결과대로 견제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복당에 대해 부정적인 평을 내렸지만 여기서 권성동, 김태호, 윤상현보다는 홍준표를 겨냥했다는 관측이 있다. 실제로 정병국권영세, 김재섭, 오신환, 유의동과 같이 홍준표의 복당 문제에 대해 반대했던 인물이기도 하다.[114] 당장 15대 대선, 16대 대선 경선만 봐도 각각 이회창에게 패한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하여 따로 대선에 나갔고, 노무현에게 패한 후 노무현을 돕지 않고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자민련으로 들어갔다.[115] 물론 15~16대 대선 당시 이인제는 대권 주자로 꼽히는 거물이었던 반면, 19대 대선 경선 당시 이인제는 사실상 퇴물이 된 지 오래였던 데다 20대 총선에서 패하며 사실상 정치 인생이 끝난 상황이었다는 차이점이 있긴 했다.[116] 홍준표의 위장 평화 쇼 발언 때도 한국당 내 상당수 인물들이 이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인제는 홍준표의 발언에 동의했던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117] 사실이다. 뉴욕 타임즈에서 홍준표의 여러 말들과 함께 돼지 흥분제를 통한 강간 시도로 보이는 것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118] 원문 보도. ...Mr. Hong also recently said that “washing dishes is women’s work.” And in a passage from his 2005 memoir that recently came to light, he describes participating in what appears to be an attempted date rape while in college.[119] 문재인 후보가 여기서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 왜 홍준표 후보의 논란에 대해 침묵하냐고 일침했다.[120] 관련 기사 #[121] 나경원, 안철수, 오세훈[122] 하지만 안철수가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기습 단일화를 했기 때문에 홍준표 지지자들 사이에서의 안철수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123] 다만 안철수보다는 이웃 지역구의 김은혜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있다.[124] 특히 장제원윤한홍을 향해 간신배라며 맹폭격하기도 했는데 이 둘은 홍준표가 당 대표를 하던 시절에 홍준표를 보좌하던 호위 무사, 복심 격인 인물들이라 개인적인 배신감도 한몫했던 모양이다. 특히 윤한홍은 홍준표 본인이 경남도지사 시절 행안부에서 데려와 행정부지사를 시켜줬고 그 경력으로 국회의원까지 됐는데도 불구하고 윤석열에 붙어버리는 바람에 홍준표가 인간적으로 매우 악평을 하는 인물 중에 하나이다.[125] 이명박 정부 시절의 박근혜 포지션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박근혜는 국회에서 활동했고 이명박과 적절히 타협해 가며 국정을 운영해 온 반면 홍준표는 지방에서 활동한다는 차이점이 있다.[126] 이와 비슷하게 이준석과 호흡을 맞춰온 권성동 원내대표도 이 대표가 징계를 수용하고 물러나더라도 새 당 대표를 뽑진 않겠다며 이준석이 징계를 받아들이되 추후에라도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127] 이준석이 전국을 돌며 2030을 비롯한 당원과 지지자들을 만나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나 단체장들이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김진태 강원지사나 박완수 경남지사처럼 이준석과 직접 대면해서 만나진 않았다. 김진태 지사의 경우 지난 지선에서 윤심을 업은 황상무 앵커에게 공천에서 밀려 의사당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할 때 이준석이 직접 현장에 찾아와 주고 황상무 단수 공천안을 부결시켜 재경선을 치르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정치적 생명의 은인이다. 즉 다른 지자체장들과 달리 윤석열에게 빚진 게 없으니 이준석을 공개적으로 만나도 전혀 껄끄러울 것이 없다. 선거 당시에는 공보물에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를 강조하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친윤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흡수하기 위해서이지 김진태 본인은 비윤으로서 사적으로는 윤석열과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128] 오세훈이 서울시장직을 사퇴할 때 비슷한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여담으로 그 오세훈도 민선 5기 서울시장 시절을 거론하며 이준석에게 제발 견디라며 훈수를 두기도 했다.[129] 용산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본 모양인지 윤석열 대통령이 홍준표와 부부동반 만찬을 가지며 총리직을 제안했으나 홍준표가 거절했다고 한다. 사실 야권이 국회에서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들과도 가까운 만큼 나쁜 카드는 아니다.[130] 그도 그럴 것이 홍준표와 맹형규는 당시 기준으로 서울 지역구 3선 국회의원이었는데 오세훈은 이 둘에 비해 정계 입문도 늦은 데다 의원 선수도 초선이었고, 서울시장 경선 당시에는 정계와 거리를 두고 변호사 활동을 하며 야인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 오세훈에게 밀려 본선 진출이 좌절됐으니 홍준표 입장에선 껄끄러울 상황이었다.[131] 이때도 최고위원 자격으로 오세훈의 정치 도박에 대해 비판한 유승민을 말린 사람은 당시 당 대표였던 홍준표였다.[132] 포퓰리즘 정책에 끝까지 저항하고, 강제성 없는 사퇴 약속까지 지키는 정치인이란 인상을 줘서 포퓰리즘에 맞서는 보수의 구심점이 되고 싶었던 의도이다.[133] 다만 이 시점에서 오세훈은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따로 당적을 갖지 않은 무소속 신분이었다. 지방 선거 종료 후 몇 개월 뒤 전당 대회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복당.[134] 안철수, 나경원, 오세훈[135] 홍준표가 지금 강경 우파로 우경화된다고 해도 애초에 김영삼의 눈에 띄어서 영입된 YS 키즈인 데다, 범친이계라서 광주 항쟁에 대해 의외로 긍정적인 평을 보인다.[136] 이에 홍준표는 류여해를 "성희롱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조롱했고 결국 손해 보상 500만 원 판결을 받았다.[137] 대표적으로 문화일보 윤창중 논설위원의 칼럼을 인용하여 "어떻게 이런 분이 검사가 되고 우리 당 공천을 받아 4선 의원이 되셨는가?"라며 비난했고 스포츠 칸 신문 칼럼을 인용하여 "요즘 세상에 연예인, 운동선수만 병역 기피 하냐. 유명 정치인은 더 심하다."라며 안상수를 "병역 비리 종합 백화점"이라고까지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안상수의 답변을 잘라먹으며 비난을 퍼부은 건 덤. 결국 참다못한 안상수가 울분을 토하며 언성을 높이는 장면은 백미.[138] 참고로 홍준표는 17대 국회에서 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할 정도로 병역 기피자 처벌에 적극적인 편이다. 그리고 이 당시에 MC몽 병역비리 사건이 터져 유명인사들의 병역 기피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었는데 그 자체로 헌법 기관이나 다름없는 현역 국회의원이자 여당 내 유력 당권 주자라는 사람이 병역 기피로 지명 수배까지 된 사실이 공개되었으니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139] 안상수가 도지사 출마를 포기하고 박완수를 지지하는 대신 박완수의 원래 자리인 창원시장에 출마하는 것. 당시 홍준표는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해 당 대표 출신이 전임 기초자치단체장 밑으로 기어들어 가서 창원시장이라도 해먹어야겠다는 식의 마인드라며 맹비난했다. 고향인 함안군을 놔두고 경남의 3분의 1이 넘는 창원시장 자리를 노린다며 대놓고 저격하기도 했고, 경남도당 당원들은 물론 같은 당 출신 선배 정치인들에게도 모양 사납다며 비판을 받았던지라 결국 박완수 전 시장이 경선에서 떨어지면서 경남도지사 자리는 홍준표에게 넘어간다.[140] 18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정계에서 묻혀있는 신세였으나, 홍준표 밑에서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내며 홍준표에 의해 창원시장 후보로 공천되었다.[141] 사건 당시 수사를 지휘한 최환 부장검사의 휘하에 평검사로 있었다. 이후 안상수가 사건 당시를 다룬 회고록 "이제야 마침표를 찍는다 : 박종철 사건 수사 검사의 일기"를 펴내면서 인지도를 얻고 신한국당에 스카웃되었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수사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훼방을 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논란이 되었다. 그럼에도 선거 때마다 이 사건을 들먹거리며 민주 검사 드립을 쳐댔는데, 진짜 민주 검사인 홍준표 입장에서는 이게 아니꼽지 않을 수가 없었다.[142] 그나마 다음 대선 경선에서 홍준표의 아군으로 전향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 김태호이긴 하다. 경선 때도 막바지에 윤석열에게 붙었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이후로도 딱히 윤석열을 실드 치거나 비호하는 모습은 보여주고 있지 않다. 윤석열 미국 순방 중 욕설 논란 때도 침묵을 지켰다.[143] 이후 김형오는 18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되어 국회의장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 방향에 부합하게 미디어법을 비롯한 다수 법률을 직권상정으로 처리한다.[144] 구로구 을박영선 전 장관의 정치적 기반인 데다 국민의힘의 험지이다. 그래서 홍준표의 입장에서 보면 송파구 갑이나 동대문구 을처럼 연고가 있는 지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정도 할 만한 경합지도 아닌 곳인 구로구 을에 가라는 것은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145] 쉽게 말해서 보궐 선거도 아니고 총선에서 나가라고 한 것은 큰 표 차로 낙선해서 정계 은퇴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았다.[146] 양산이 무슨 험지냐는 비판도 있지만 외지인이 많고 동부 경남치고 진보 세가 강해서 텃밭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실제로 김포에서 지역구를 옮긴 김두관이 출마한 곳이 양산시 을이었고, 문재인의 거주지이기도 하다.[147] 그때 황교안홍준표, 김태호, 정병국과 같이 본인에게 방해되는 중진들을 컷오프하고, 김선교, 민경욱, 김석기친박 출신 정치인들을 공천하도록 지시한 것이고 김형오가 그의 지시를 이행한 것이다.[148] 얼마 뒤 김형오는 강남구 병 김미균 공천 논란으로 사퇴한다.[149]정태옥친박 정치인이지만 홍준표하고도 가깝다.[150] 홍준표 입장에서도 차라리 접전지나 어느 정도 연고가 있는 양산시 을, 동대문구 을 정도면 납득이 되는데 너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특히 동대문구 을의 경우 홍준표가 거기서 3선 의원까지 지냈기 때문에 거기로 넣는 게 가장 말이 되는 배치였다.[151] 비슷한 사례로는 김태호 전 지사의 컷오프나 정병국 의원의 컷오프 및 김선교 단수 공천이 있다. 즉 정병국유승민, 오세훈과 가깝고 차기 당 대표, 경기도지사 자리까지 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 데다 상도동계, 친이, 친유 핵심이었다. 결국 그 자리본인 계파 소속인 김선교를 꽂은 것이다. 김태호 역시 전직 경상남도지사로 차기 대권 도전까지 시사했고, 비록 예비 경선에서 사퇴했으나 대신 같은 해 6월에 열리는 8회 지선에서 경남지사 3선 하마평에 다시 오르고 있을 정도다. 즉 본인에게 거슬리는 중진들을 견제하고 추가로 본인 계파를 챙기려다가 우를 범한 것이다.[152] 영남고등학교 졸업, 해당 지역구 내 창녕군 출신이 많다는 점이 있다.[153] 주호영 후보는 원래 수성구 을에서 내리 4선을 해왔기 때문에 5선도 수성구 을에서 하고 싶어 했으나 당시 수성구 갑의 현역이었던 김부겸을 잡으라고 당에서 수성구 갑으로 자객 공천을 했다. 이 빈자리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홍준표. 주호영이 선거 직전 라디오 전화 인터뷰에서 밝히기로는, 비록 원래 하던 수성구 을에서 계속하고 싶긴 했지만 어쨌든 바로 옆 동네고, 수성구 갑 의원이라고 반드시 갑 지역 일만 신경 쓰는 것도 아니라 갑 지역에 대해 신경 쓰다 보면 을 지역과 협력할 때도 있다. 그런데 홍준표가 갑자기 탈당하고 자신의 바로 옆 동네 선거판에 뛰어든다고 해서 이 부분이 심히 당혹스러웠다고 했다.[154] 당시 중구·남구, 서구, 달성군 현역 의원이 출마해서 선택하지 않았다. 동구 갑, 동구 을유승민의 지역기반으로 인하여 피했다. 달서구 갑은 측근이었던 곽대훈이, 달서구 을에는 친홍 인사인 윤재옥이 출마했고, 북구 갑 역시 친박 정치인이지만 홍준표와 가까운 정태옥이 출마했다. 수성구 갑도 있지만 주호영이 전환 배치 되고 김부겸이 출마하는 이유로 선택하지 않았다. 대구 내 남은 선택지가 북구 을, 달서구 병, 수성구 을이 있었지만 북구 을의 경우 셀프 당협 논란 때문에 제외되고, 달서구 병에 있는 조원진을 낙선시키기 위해 달서구 병 역시 제외되었다. 결국 수성구 을 외에는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155] 이인선의 불복 논리는 "현역 의원이 돌아와서 직을 돌려줘야 한다? 그렇게 따지면 (윤상현이 복당하고도 동미추홀을 당협위원장직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안상수도 위원장직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이다. 본인이 윤석열 지지한 것 때문에 밉보여서 잘린 거라고 생각하는 이인선 입장에서는, 윤석열을 지지하는 윤상현의 위원장직 복귀를 막고 본인을 지지하는 안상수가 계속 자리를 지키도록 홍준표가 당에 압력을 행사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156] 홍준표가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되어야 그 지역구를 떠나기 때문. 홍준표가 낙선하면 다음 선거에 이 지역구에 또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157] 사실 홍준표가 떠난 수성구 을에 대구시장 경선에서 패배한 김재원유영하가 예비 후보로 등록하여 원내 진입을 노렸는데 홍준표가 이들에게 수성구민을 모욕하지 말라고 비판한 일이 있었다. 홍준표의 이 발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준석 대표와 정진석 공관위원장이 다른 예비 후보들을 모두 주저앉히고 이인선을 단수 추천 하면서 홍준표가 이인선을 암묵적으로 도와줬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주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닌 것이, 김재원은 공천 룰 변경까지 관여하면서 자신을 쳐내려 한 정적이고 유영하는 자신의 정적인 박근혜의 심복을 오랫동안 자처해 왔던 인물이라 아주 껄끄러운 사이였다. 특히 김재원의 경우 수성 을에서 당선이 되면 4선 중진이 되어 원내에서 윤석열의 최측근을 자처하면서 요직에 등용될 수가 있었으므로 몹시 성가신 존재가 되었을 게 100%였다. 반면 이인선은 당선되어도 갓 초선이라 자신에게 훼방을 놓을 위인도 못 되고, 오히려 홍준표 본인이 5선 중진 출신의 대구광역시장으로서 수성을 지역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쉬웠기 때문에 홍준표 입장에서 본다면 김재원, 유영하보다는 이인선이 되는 게 훨씬 나은 것이다. 4선 의원의 지역구와 초선 의원의 지역구 중 어디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쉬운지는 누구나 알 것이다.[158] 현재 국힘 노인 당원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노년층은 윤석열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이에 대해 비판하면 바로 대깨문, 찢빠로 몰아가고 있다. 이를 의식해서 의도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는 듯하다.[159] 물론 이와 더불어 이준석에게도 살풀이 작작 하라며 경고했다.[160] 홍준표 역시 이재명을 범죄자, 기분소득이라고 말하며 안좋게 보는 편이지만 유시민과의 토론 자리에서 저사람은 재판받는 피의자니 상종 안하겠다는 건 검사 논리지 정치인의 자세는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는 등 야당과의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었고 최근에도 야당과 대화해야한다, DJ는 여소야대에서도 정권 재창출했다며 야당과의 협치를 강조하는 발언을 많이 해왔다. 영수회담 역시 긍정적으로 안급하기도 했다.[161] 권성동, 장제원, 윤한홍, 이철규[162] 대한애국당(특히, 조원진)[163] 홍준표문재인 전 대통령하고는 정치적으로는 정반대여도 사적으로는 친하지만 장제원, 윤한홍하고는 정치적으로는 물론이고 사적으로도 험악하다.[164] 특히 윤한홍은 경남도지사 시절에 행정부지사로 홍준표를 모셨던 인물이고 홍준표의 후광으로 국회의원까지 되고 경남도지사 후보군으로까지 언급이 될 정도로 호의를 베풀었는데 윤석열에 붙어 배신했다며 여러 차례 악평했다. 반면 장제원에게는 TK, 신공항 법안에 니도 사인해라며 도와달라고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관계는 그럭저럭 유지하는 모양이다.[165] 홍준표는 범친이계에 속했던 인물인 반면 권영세는 범친박계, 범친유계에 속했던 인물이고, 둘 다 검사 출신이라 이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알다시피 홍준표는 검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검찰과는 사이가 매우 나쁘다). 여담이지만 홍준표가 페이스북에 남겼던 마지막 막말 중에서 수차례의 친박 행세로 고관대작 다 지내놓고 중립 행세 하는 뻔뻔한 사람이라며 이주영을 향해 악평을 한 적이 있는데 권영세 역시 묘하게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166] 특히 김재원은 친박/비박을 떠나 같은 진영에서도 홍준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손꼽힐 정도.[167] 이정현 전 대표, 서청원 전 의원,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등이 탄핵에 책임을 지고 탈당했었다. 홍준표도 이들에 대해 박근혜 팔아 정치했다는 식의 비판 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정갑윤 부의장이나 이정현 전 대표에게는 다시 돌아오라고 러브콜까지 보냈었다. 심지어 최강성 친박으로 홍준표와 여러 차례 충돌했던 서청원 의원이 탈당했을 때도 인간적인 비난은 삼갔다.[168] 이외에 친박 중진인 윤상현이나 김태흠, 그리고 소장파 김은혜는 친윤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홍준표에게도 협조적인 편이지 윤핵관 혹은 친윤 강경파처럼 홍준표랑 아예 적대적이진 않다.[169] 홍준표 역시 경선 기간에 이들로부터 여러 차례 공격을 당했고 현재에도 이준석을 공격해 당을 흔들어놓는 주범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170] 참고로 홍준표, 이재오 이외에는 나머지 친이 출신 윤핵관인 권성동이랑 장제원이 윤석열에게 이명박 사면을 적극 요청하긴 했다. 다만 나머지 친이계들은 정진석 등 몇몇을 빼면 윤석열에게 MB 사면을 적극적으로 요청하진 않았다. 오히려 한동훈이 이명박 사면을 반대해서 몇몇 친이계나 윤핵관인 권성동 등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사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71] 김종인을 러시아의 괴승 라스푸틴에 빗대어 비난한 적이 있다.[172] 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수석이었던 안종범이 뇌물죄로 구속되긴 했었다. 홍준표가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낮고 김종인을 까기 위해 일부러 한 말인 것으로 보인다.[173] 당시 주임검사였던 함승희의 요청으로 김종인을 조사했다고 한다.[174] 근데 이게 말이 회유지 김종인 입장에서는 가족을 건드리며 협박한 것에 가깝다. 물론 본인이 뇌물 받은 것은 사실이니 할 말은 없다만.[175] 김종필은 생전에 내각제 개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정치인이었고, 김종인 역시 마찬가지다.[176] 김문수, 이재오, 김무성, 홍준표 넷 다 사회 운동가 출신에 YS 키즈이며, 홍준표도 학창 시절에 학생 운동을 했다가 유신 정부에 잡혀간 적이 있었다. 김종인은 이와 대비되는 민정계 출신이라 시작부터 정적이었다.[177] 실제로 홍준표와 사이가 유독 좋지 않은 한동훈, 안상수(창원), 권영세, 김재원, 황교안, 김웅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178] 참고로 이 인터뷰, 얼핏 들으면 함승희와 친분이 있다 정도로 들리겠지만 실상은 김종인과 함승희를 돌려 까는 내용이다. 당장 홍준표가 자백을 받았다는 주장도 함승희와 당시 수사 관계자들은 절대 부정하고 있다.#[179] 그 전까지만 해도 홍준표의 지지율은 급상승하고 있었으나 하태경의 조국수홍 프레임 하나로 인해 홍준표의 지지세는 꺾이고 말았고, 결국 노인층이 윤석열로 초결집하며 홍준표가 경선에서 패하는 원인이 되고 만다. 홍준표와 홍준표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하태경만큼 증오스러운 인물도 없는 셈.[180] 다만 이 당시에는 친홍-친무 연합 체제에서 홍준표가 당권을 완전히 잡은 경우가 아니고 친박인 정우택이 당 대표 권한 대행을 하고 있었으며 홍준표는 그냥 대선 후보였던 상태인지라 홍준표가 김재원 공천을 도와줬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도 김재원의 유세에 17대 총선 공천위원 하면서 제가 발탁해서 이 지역구에 공천했었다, 김재원 수석의 능력과 추진력은 이미 잘 알고 있다며 발언하기도 한 걸 보면 과거에는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181] 주로 홍준표의 막말 프레임을 건드렸는데 정봉주에게 홍준표가 과거 자기 장인에게 영감탱이라고 했던 것을 들먹이며 이런 분이 대선 후보가 되면 선거가 제대로 되겠냐는 말을 했으며 복당 이전부터도 홍준표의 아픈 곳을 건드리면서 복당을 반대했다.[182] 여담으로 홍준표의 이 발언으로 보수 성향 커뮤니티인 국내야구 갤러리 등에서는 김재원을 뱀, 뱀재원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183] 사회자가 토론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김재원 후보에게도 질문해 달라고 하자 나온 발언이다.[184] 여담으로 이 발언 직후에 김재원이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니냐며 도발허자 표정이 험악해지면서 깐죽거리지 말라는 발언이 나왔다. 정작 김재원은 낙천했다.[185] 막말 프레임 때문에 그렇지 홍준표는 진보 진영 정치인인 노회찬이나 유시민과 토론하면서도 사람 자체에 대한 비난은 자제하는 편이며 오히려 성향이 정반대였던 노회찬, 유시민하곤 성격이 통하는 데가 있었는지 술자리에서 웃으면서 농담도 건네기도 하며 심지어 황교안이나 안상수, 하태경, 심상정처럼 인간적으로 사이가 안 좋은 경우에도 그 사람의 일화를 꺼내 와서 비난하지 김재원처럼 깐죽거리지 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선 때 유독 사이가 안 좋았으면서 심상정에게도 배배 꼬였다고 말한 게 가장 수위가 높은 발언이었던 걸 감안하면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 물론이고 어지간히 열받았던 듯.[186] 홍준표는 어지간히 싫어하는 유형의 정치인이 아니면 안상수/황교안/하태경/심상정 등 싫어하는 정치인한테도 공격하면서도 격식은 갖추면서 공격하는데 김재원한테는 격식도 안 갖추고 공격하는 걸 보면 악평할 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매우 싫어하는 모양이다.[187] 상기한 윤한홍을 저격하기 위해 한 말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