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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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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제101대 황제
조이
Ζωή Πορφυρογέννητη
파일:XTOZaBT.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조이 포르피로게니타
(Ζωή Πορφυρογέννητη)[1]
출생 978년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사망 1050년 (향년 72세)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재위 기간 로마 황제
1042년 4월 21일 ~ 1042년 6월 11일 (2개월)[2]
로마 황후
1028년 ~ 1041년, 1042년 ~ 1050년 (21년)[3]
로마 모후
1041년 ~ 1042년 (1년)[4]
전임자 미하일 5세
후임자 콘스탄티노스 9세
부모 아버지 : 콘스탄티노스 8세
어머니 : 엘레니 알리피아
배우자 로마노스 3세, 미하일 4세, 콘스탄티노스 9세
자녀 미하일 5세 (양자)
종교 기독교

1. 개요2. 생애3. 여담4. 창작물에서5.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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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의 101대 황제이자[5] 마케도니아 왕조의 14대 황제. 동명이인들과의 구별을 위해 'Zoë Porphyrogenita(조이 포르피로게니타)'로 칭해지기도 한다.

콘스탄티노스 8세엘레니 알리피아의 차녀. 당시 동로마 제국의 몇 안되는 포르피로옌니티였다.

2. 생애

세 자매 중 가장 아름다워 구혼자가 줄을 설 정도였지만, 조카딸이 결혼할 경우 조카사위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여긴 숙부 바실리오스 2세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아예 결혼을 안 시키려 했던건 아니고 23세 때 신성 로마 제국오토 3세와의 혼담이 성사되어 성대한 결혼식 행렬과 함께 이탈리아로 떠났는데 신랑이 식을 올리기는 커녕 얼굴도 보기 전에 세상을 뜨는 바람에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어영부영 지내다보니 50세가 되도록 결혼을 못했던 것이다.

1028년, 아들이 없던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8세의 임종이 가까워 오자 조이는 차기 황제로 세울 남편감을 찾게 된다.[6] 그녀의 첫번째 남편이 로마노스 3세[7]이다. 조이는 로마노스 3세와 결혼한 뒤 자식을 보길 바랐지만[8] 로마노스 3세는 안그래도 조강지처와 강제로 이혼당하고 조이와 결혼한 마당에다가 새 아내는 이미 50세가 넘었으니 조이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로마노스 3세는 조이와의 동침을 거절하고 각방을 썼으며, 조이의 지출을 제한한데다 나중엔 젊은 정부까지 들이게 된다.

그러던 중 조이는 환관장의 소개로 환관장의 동생인 젊은 미남 미하일을 총애하게 되었고, 시름시름 앓던 로마노스 3세가 목욕탕에서 의문사한 날 곧바로 미하일과 재혼하여 미하일 4세로 즉위시켰다. 미하일 4세는 명군이 될 자질을 보여주었으나 젊은 나이에 병들어 죽었다.

미하일 4세가 죽자 조이와 미하일 4세의 양자 미하일 5세[9]가 즉위했다. 그러나 양아들 미하일 5세는 황제로 즉위한 후 양어머니인 조이를 박해하고 추방하여[10] 반발을 사 몇달 후 시민군의 반란에 의해 폐위되었다.[11]

시민군에 의해 조이는 여동생 테오도라와 공동 여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테오도라를 싫어한 조이는 얼마 후 콘스탄티노스 9세와 재혼해 그를 새 황제로 삼고 자신은 테오도라와 같이 황제에서 물러나 다시 황후가 되었다. 세번째 남편 콘스탄티노스 9세는 정실부인이자 계승권자이며 포르피로옌니티인 조이를 멀리하고 젊은 애인인 마리아 스클레리나(Maria Sklrarina)를 가까이하다가 1044년 축일 행진 중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는 문제가 있었다. 조이는 1050년에 72세로 죽었다.

정리하자면 조이는 1028년~1042년 동안 황후 또는 모후로서 첫번째 남편(로마노스 3세), 두번째 남편(미하일 4세), 양아들(미하일 5세)을 차례대로 황제로 삼았고, 1042년에 두달 간 여동생(테오도라)과 공동 여황제였다가, 다시 황후가 되어 세번째 남편(콘스탄티노스 9세)을 황제로 삼았다.

3. 여담

50세가 되는 해에 첫 결혼을 했기에 결혼을 3번이나 했지만 자식이 없었다. 본인은 평생 결혼을 꿈꾸며 간절히 자식을 원했지만 그와 반대되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

아야 소피아콘스탄티노스 9세와 조이의 모자이크가 있는데, 사실 이 모자이크는 그녀가 재혼을 할 때마다 남편의 얼굴과 이름을 새 남편에 맞추어 바꾼 거라고 한다.
파일:ofeVGwl.jpg

4. 창작물에서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동로마 황녀가 내 아이를 임신하셨다에서는 실제 역사와 다르게, 근위대장인 주인공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고 덜컥 임신을 하여 젊은 나이에 주인공과 결혼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5. 같이보기



[1] Ζωή는 그리스어로 '생명'이라는 뜻이다. 신약 성경이 쓰여지던 시절의 그리스어로 하면 발음이 '조에'가 맞다. 하지만 그 시절과 이 사람이 살던 시절과는 거의 1000년의 갭이 있으며, 그리스어는 2세기~4세기 이후 모음 단순화 현상이 벌어져 η의 발음이 i로 변동되었다. 때문에 '조이'로 읽는게 옳다.[2] 테오도라와 공동 황제[3] 1028년 11월~1034년 4월: 로마노스 3세의 황후
1034년 4월~1041년 12월: 미하일 4세의 황후
1042년 6월~1050년: 콘스탄티노스 9세의 황후
[4] 1041년 12월~1042년 4월: 미하일 5세의 모후[5] 테오도라 여제와 공동 즉위했기 때문에 테오도라도 101대 황제이다.[6] 콘스탄티노스 8세에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사후 조이의 남편이 황제가 되고 조이는 황후가 된다. 이렇게 황녀가 정통성을 갖고서 군주로서의 남편을 택군(擇君)하는 제위계승 메카니즘은 전대 테오도시우스 왕조아일리아 풀케리아레오 왕조아일리아 아리아드네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하지만 여제까지 오른 것은 조이 뿐인데, 이는 마케도니아 왕조의 통치기간이 테오도시우스 왕조나 레오 왕조와는 달리 당시 기준으로 150년이 넘었을 정도로 오래되어서 정통성 내지는 통치 정당성을 더욱 높게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7] 로마노스 1세 레카피노스의 딸의 아들의 아들이 콘스탄티노스 8세였고, 또다른 딸이 아르이로스 가로 시집가서 낳은 아들의 아들이 로마노스 3세라 6촌간이다. 즉 조이와 테오도라 자매에게는 7촌 아저씨. 원래 결혼 예정에 있었지만 친척이라 로마노스 3세가 고사했으나, 부황 콘스탄티노스가 죽음 목전에 그를 결혼하라고 강제 지명했다.[8] 임신을 위해 온갖 약물과 부적, 주술까지 동원했다고 하지만 40대 임신이 꽤 많이 늘어난 요즘도 50대가 임신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인데 당시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9] 미하일 4세의 누나의 아들이었다.[10] Anthony Kaldellis의 Byzantine Republic 92쪽에는 'had her tonsured', 즉 남자 성직자처럼 대머리 일부가 보이게끔 삭발시켰다고 한다.[11] 당시 바랑기안 가드로 복무 중이던 노르웨이의 하랄 3세는 이때 자기가 직접 미하일 5세의 눈을 뽑아 죽였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물론 과장이 섞인 영웅담이겠지만 하랄 3세가 미하일 5세 폐위 반란에 참가한 건 사실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