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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2 14:27:37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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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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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제62대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ROMVLVS AVGVSTVS
파일:Gold_Solidus_of_Romulus_Augustulus.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명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Romulus Augustulus
출생 465년
서로마 제국 판노니아
사망 511년 이후
카스텔룸 루카라눔
재위 기간 로마 황제
475년 10월 31일 ~ 476년 9월 4일 (309일)
전임자 율리우스 네포스
부모 아버지 : 오레스테스
어머니 : 바바리아
종교 기독교
1. 개요2. 생애
2.1. 즉위2.2. 폐위2.3. 이후 생애
3. 이름 관련 징크스4. 창작물에서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서로마 제국)의 62대 황제. 당시 서로마 제국 내의 실력자였던 오레스테스의 아들이다. 원래 이름은 로물루스였으며, 황제가 되면서 아우구스툴루스(작은, 어린 아우구스투스)가 덧붙었다. 서로마 제국이 오도아케르의 침공으로 멸망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남게 되었다.

2. 생애

2.1. 즉위

동로마에서 임명하여 글리케리우스 황제를 쫓아낸 율리우스 네포스가 황제로 있었지만, 이 당시 양 로마 제국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 리키메르 사후 그의 지지세력이 동로마 제국과 척을 지게 되면서 그 지도자인 오레스테스[1]는 동로마 제국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추대한다.[2] 아이러니하게도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다.

2.2. 폐위

파일:external/www.akg-images.de/AKG200585.jpg

서로마 제국에 용병으로 고용되어 있던 야만족 출신의 장교들이 봉급으로 땅을 요구했는데 오레스테스가 무슨 배짱에서인지[3]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들이 오도아케르를 리더로 하여 로마에 쳐들어와서 전투에서 이기고[4] 오레스테스를 죽인 다음 라벤나로 들어가 황제를 폐위시켰다.

물론 여전히 율리우스 네포스는 자신을 제국 서방 황제로 자칭했으며 동로마 제국 측에서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황제 취급하지 않았지만, 율리우스 네포스는 이탈리아 반도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죽은 데다, 이후 이탈리아를 손에 넣은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황제위를 정식으로 동로마 황제에게 반납하는 제스처[5]를 취하면서 이때를 계기로 서로마 제국 황제위는 동로마에게 흡수되어 사실상 사라졌다.

2.3. 이후 생애

오도아케르의 관용 덕택인지 퇴위 후에는 나폴리 근교의 자택에서 넉넉한 연금을 받으면서 조용히 살 수 있었으나, 그 뒤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그 난리통 속에서도 기원후 500년 이후까지도 살아 있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3. 이름 관련 징크스

로마 제국창건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황제의 치세에 멸망한다는 예언이 있었는데, 로마의 초대 국왕로물루스와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모두 가진 황제의 치세에 서로마가 멸망하여 예언이 실현되었다. 율리우스 네포스를 마지막 황제로 간주하면 첫번째 '카이사르'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율리우스'라는 이름이 겹친다. 심지어 동로마 제국기독교를 공인한 최초의 황제이자 제국의 행정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긴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똑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콘스탄티노스 11세[6]의 치세에 멸망하였다. 이것을 어거지로나마 연장해서 로마의 후계를 자칭한 나라에 적용해도 의외로 잘 들어맞는데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하지만 로마의 후계를 자칭한 나라 중 하나인 러시아 제국은 창건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황제의 치세에 멸망하지 않았다. 억지로 갖다 붙인다면 로마노프 왕조의 창건자 미하일 1세와 이름이 같은, 니콜라이 2세의 동생 미하일 대공이 러시아 혁명의 와중에서 하루 남짓 황제를 칭한 적은 있으나,[13] 이것까지 인정한다는 건 너무 억지스러운 일이다.

4. 창작물에서

파일:external/img2.wikia.nocookie.net/Romulus_Augustulus.png

배우는 토머스 브로디생스터.

<마지막 군단>이라는 영화에서는 이 황제가 나중에 탈출해서 영국으로 가서 아서 왕의 조상이 된다는 내용을 그리기도 하였는데 고증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다. 동로마 제국이 황제를 보호하겠다고 했다거나 뒤늦게 오도아케르를 승인했다거나,[14] 아니면 410년에 이미 황제를 자칭한 인물에게 선동되어 극히 일부를 빼면 일찌감치 갈리아로 떠난 브리타니아군단서로마 멸망 시점에도 건재하다든가[15] 하는 게 대표적.

희극인 '로물루스 대제'라는 연극이 있다. 이 작품에선 국정에는 아무런 관심없이 닭이나 키우는 무능한 암군으로 나오는데,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가 폐위되어 능력을 입증할 기회조차 없었던 인물이었던 반면 여기에 나오는 로물루스는 결혼할 나이가 된 딸까지 있는 늙고 무능한 황제라서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멀고, 실제로 국정에 관심 없고 닭이나 키우던 인물은 서로마 초대 황제 호노리우스였다. 작가는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로, 국내에선 야인시대로 유명한 배우 권성덕옹이 암투병 이후 복귀작으로 나왔던 작품이라 그쪽 매니아들에게 조금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Why? 시리즈 유럽의 성립과 발전에선 길가의 풀숲에서 주인공(미르)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16] 이때 오도아케르의 수하들이 나타나자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상당히 서글프면서도 씁슬한 것이, 나는 오늘 황제 자리를 내놔야해.

5. 둘러보기

서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최후의 순간 이탈리아 상실
62대 율리우스 네포스 63대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 오도아케르
율리우스 네포스

[1] 참고로 아틸라에게 부역매국노이긴 하지만 엄연한 로마인이었다.[2] 오레스테스 본인이 로마인이라서 법적으로는 황제가 되는데 하자가 없었지만, 아틸라에게 부역했던 경력 때문에 이미지가 안 좋아서 어린 아들을 황제로 추대했다.[3] 당시 서로마 정규군은 극도로 약화되어 있었던 데다 그나마도 각 지역에 사실상 정착하다시피 한 게르만족에 맞서 분산되어 방어전을 벌이느라 라벤나를 구원할 여력이 없었다. 이들은 서로마 멸망 이후에도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각개격파당하여 대부분 전멸한다.[4] 두 번 모두 이겼고 두 번째 전투에서 오레스테스를 참살했다.[5] 서로마 황제의 관을 보냈다. 물론 동로마 황제는 당연히 이걸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이후 오도아케르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보낸 테오도리크에게 죽는 원인이 된다.[6] 콘스탄티누스와 콘스탄티노스는 같은 이름을 각각 라틴어그리스어로 표기한 것이다.[7] 카롤루스와 카를은 같은 이름을 각각 라틴어독일어로 표기한 것이다.[8] 멸망하기 직전에 자신의 어린 아들 나폴레옹 2세에게 양위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즉위한 건 아니라서 큰 의미는 없다.[9] 나폴레옹 1세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의 부인이자 조제핀의 딸인 오르탕스사생아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학술적으로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가십에 불과하다. 다만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나무위키의 다른 문서들에서는 정말로 사생아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10] 세계 최초의 차르이기도 하다.[11] 앞으로 슬라브권에 차르가 복고되지 않는다면 세계 최후의 차르이기도 하다.[12] 다만 세르비아를 재통일한 라자르 흐레벨랴노비치가 후대의 민담에서는 '차르 라자르(라자르 황제)'로 불리는 경우도 많은데, 실제로 사용한 칭호는 크냐즈였다.[13] 찬탈은 아니고, 형이 동생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양위하려 했던 시도였다.[14] 로물루스 황제는 애시당초 동로마 제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옹립되었으며 그렇다고 오도아케르를 승인하지도 않았다. 테오도리크가 왜 오도아케르를 죽일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자.[15] 오히려 건재했던 군단은 갈리아 지역에 배치되어 게르만족에 맞서 싸우고 있던 군단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프랑크족과 마지막까지 싸웠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전멸한다.[16] 이때 주인공에게 충고한 것이 미르가 퀘스트 해결에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