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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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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왕조
Domus Leonidas
457년 ~ 518년
성씨 레오
창건자 레오 1세 (379~395)
주요 황제 레오 1세
제노
아나스타시우스 1세
로마 제국의 왕조
테오도시우스 왕조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1. 개요2. 역사3. 역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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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의 세습왕조. 457년부터 518년까지 60년간 로마 제국의 동방 영토를 다스렸다. 전반적으로 몹시 혼란스러운 시대였는데, 특히 제노 황제 대에는 반란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나마 이 왕조의 마지막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내치와 외정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동로마 제국은 원기를 회복하였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팽창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2. 역사

2.1. 레오 1세(457~474)

트라키아 출신의 로마인 가정에서 출생한 황제로, 본명은 레오 마르켈루스다. 이렇다할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식견이 꽤 있고 건강한 체질을 갖췄다고 한다. 일찍이 군대에 입대하여 아스파르 휘하 부대장 및 집사로 복무했다. 그러다 457년 마르키아누스 황제 사망 후 부하를 황제로 내세워서 꼭두각시로 삼으려는 아스파르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그는 꼭두각시 노릇을 할 생각이 없었고, 이사우리아족을 기용해 아스파르의 기반인 고트족 군대와 경쟁하게 하였다. 특히 이사우리아 족장 제노와 자신의 딸 아일리아 아리아드네를 결혼시켜 아스파르의 맞상대가 되게 하였다.

468년 반달 왕국을 정벌하여 북아프리카를 회복할 계획을 수립, 대규모 함대를 조직했다. 함대 사령관은 황후 아일리아 베리나와 아스파르의 추천을 받은 바실리스쿠스가 선임되었다. 그러나 바실리스쿠스는 가이세리크의 책략에 휘말리는 바람에 본 곶 해전에서 함대 전체를 모조리 말아먹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도주했다. 이로 인해 레오의 입지는 급격히 약화되었고, 아스파르는 황제를 압박해 레오의 둘째 딸 레온티아와 자신의 아들 파트리키우스의 결혼을 성사시켰으며, 파트리키우스를 카이사르로 선포했다. 이에 레오는 위협을 느끼고, 471년 아스파르와 그의 아들들을 궁전으로 초대한 뒤 환관들이 칼을 들고 공격하게 하여 아스파르와 그의 아들들을 죽였다. 이후 레온티아는 안테미우스 황제의 아들이자 마르키아누스의 외손자인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와 결혼했다.

동고트의 테오도리크 스트라보는 아스파르 암살 사건으로 제국이 요동친 틈을 타 트라키아에 대한 아스파르의 권한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했다. 레오가 거절하자, 테오도리크는 트라키아를 유린했다.결국 레오 1세는 473년 테오도리크가 아스파르의 옛 지위를 받고 동로마 제국이 동고트 족에게 매년 금 2천 파운드를 공납금으로 바치는 조건으로 평화 협약을 체결했다. 이렇듯 외치에서는 실패와 혼란으로 점철되었지만, 내치는 그럭저럭 잘 이끌어가다가 474년 1월 18일 사망했다.

2.2. 제노(474~491)

소아시아 타우루스 산맥의 산악민족인 이사우리아 족장으로, 본명은 타라시코디사 루숨블라데오테스다. 레오 1세의 딸 아일리아 아리아드네와 결혼한 뒤 이름을 제노로 바꿨다. 473년 11월 아들 레오 2세와 함께 공동 황제로 지명되었고, 474년 1월 18일 레오 1세가 사망한 뒤 선임 군주가 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10일 레오 2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단독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에게 야만인으로 멸시받던 이사우리아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즉위 직후부터 숱한 반란에 시달려야 했다.

475년 1월 9일 전 황제의 황후 아일리아 베리나와 오빠 바실리스쿠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사우리아로 도피하였고, 바실리스쿠스가 일시적으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바실리스쿠스가 베리나의 애인을 죽이자, 베리나는 마음을 바꿔 제노와 손을 잡았다. 여기에 당초 제노를 잡으려 했던 일루스 장군이 바실리스쿠스가 동족인 이사우리아인들을 학살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제노와 연합한 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쳐들어갔다. 그 결과 제노는 476년에 바실리스쿠스를 축출하고 황위에 복귀했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와중에 오도아케르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하고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

479년, 이번엔 레오 1세의 사위이자 마르키아누스의 외손자인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제노는 이때 거의 축출될 뻔했지만, 일루스가 반격을 가해 반란군을 섬멸하면서 황위를 간신히 지킬 수 있었다. 이후 아일리아 베리나일루스간의 알력다툼이 심해졌고, 급기야 베리나가 보낸 자객의 습격으로 귀가 잘린 일루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정작 일루스는 당시 유배중이던 베리나를 풀어준 뒤 자기가 황제로 추대한 레온티우스를 지지하게 하였다. 일루스가 자기를 여러번 죽이려 했던 베리나를 풀어준 까닭이 무엇인지는 불확실하나, 황실의 일원인 그녀를 이용해 레온티오스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술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거듭된 반란에 지친 백성들은 호응하지 않았고, 테오도리크가 이끄는 동고트군이 제노의 부탁을 받아들여 반란군을 격파했다. 반란군은 이사우리아의 파피리우스 요새에서 4년간 항전했으나 끝내 함락되었고, 일루스는 처단되었다.

484년, 제노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아카키오스삼위일체론단성론의 대립이 극렬한 상황에서 양자의 화해를 이끌어내기 위해 <헤노티콘>을 발표했다. 그러나 로마 교황 펠릭스 3세가 반발하여 아카키오스를 파문했고, 아카키오스 역시 교황의 이름을 딥티코스(diptyque)에서 삭제했다. 이리하여 발생한 아카키오스 분열은 장장 50년간 지속되다 유스티누스 1세 시기인 519년에서야 종결되었다.

488년, 제노는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뒤 이탈리아 반도에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오도아케르를 축출하기 위해 동고트 지도자 테오도리크에게 오도아케르를 몰아내고 이탈리아에 정착하라고 제안했다. 테오도리크는 이를 받아들여 이탈리아로 진격하였고, 493년 오도아케르를 주살하고 이탈리아 왕국의 군주가 되었다.

2.3. 아나스타시우스 1세(491~518)

491년 4월 9일 제노가 사망한 뒤, 아사우리아인들에게 신물이 난 시민들은 황후 아일리아 아리아드네에게 로마인 황제를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아리아드네는 에피루스 노바 속주의 재무관을 지내며 탁월한 재정 관리 능력을 보여줬던 환갑의 노인 아나스타시우스를 4월 11일 황제로 택하고 그의 황후가 되었다. 아나스타시우스는 독실한 단성론 신자였기에 정통 교회의 반발을 샀지만, 아나스타시우스가 황제로서는 칼케돈 공의회를 따르겠다고 약속하자 교회도 받아들였다. 492년 제노의 동생 플라비우스 롱기누스가 이사우리아인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지만, 수년간의 전쟁 끝에 497년 진압되었다.

아나스타시우스는 탁월한 재정 관리 능력을 황제가 되어서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497년부터 납세의 기준을 현물이 아닌 화폐로 통일하여 재정을 개선하였고, 기존의 불안정한 구리 합금 경화를 순수한 동전인 폴리스로 교체했다. 화폐 사용 확대와 부패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중간 관리들의 착복이 줄어들었고, 백성의 살림이 나아지는 동시에 국가의 세수도 증가했다. 황제는 이렇게 개선된 재정을 토대로 군대를 육성한 뒤 전쟁을 단행해, 사산 왕조를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했다. 또한 디라키움과 다라에 대규모 요새를 건설하여 서쪽의 게르만족과 사산 왕조의 위협에 대비했다. 그리고 507년부터 512년까지 트라키아 반도에 56km에 달하는 아나스타시우스 성벽을 건설하였다.

내치와 외정 모두 큰 성과를 거두자, 512년 단성론을 교회의 교리로 삼으려 시도했다. 그러자 513년 트라키아의 마기스테르 밀리툼 플라비우스 비탈리아누스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황제는 단성론 도입을 포기한다고 선언하였고, 반란은 515년 말에 토벌되었다. 518년 7월 9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근위대장 유스티누스가 근위대의 추대와 원로원의 동의로 새 황제로 등극하면서 유스티니아누스 왕조가 역사에 등장했다.

3. 역대 황제

대수 이름 재위 기간
1대 레오 1세 471년 2월 7일 ~ 474년 1월 18일
2대 레오 2세 474년 1월 18일 ~ 474년 11월 17일
2대 제노 474년 1월 18일 ~ 475년 1월 9일
3대 바실리스쿠스 475년 1월 9일 ~ 476년 8월
4대 제노(복위) 476년 8월 ~ 475년 4월 9일
5대 아나스타시우스 1세 475년 4월 11일 ~ 518년 7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