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113-2대 황제 요안니스 콤니노스 Ἰωάννης Κομνηνός | |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 요안니스 콤니노스 Ἰωάννης Κομνηνός |
출생 | 1159년 |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 |
사망 | 1185년 9월 12일 (향년 25~26세) |
동로마 제국 트라키아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1183년 9월 ~ 1185년 9월 12일 (2년) | |
전임자 | 알렉시오스 2세 |
후임자 | 이사키오스 2세 |
부모 | 아버지 : 안드로니코스 1세 어머니 : 성명 미상의 여인 |
형제 | 마누일 콤니노스 |
종교 | 기독교(정교회) |
1. 개요
동로마 제국 황제 안드로니코스 1세의 공치제.2. 생애
안드로니코스 1세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인 사이의 차남이다. 형으로 마누일 콤니노스가 있었다. 그는 1159년에 태어났는데, 안드로니코스 1세가 마누일 1세를 상대로 반역을 꾀했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감옥에 갇힌 동안 출생한 것으로 보인다. 요안니스는 1166년 안드로니코스가 킬리키아 총독으로 선임되었을 때 동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안드로니코스와 함께 근동의 여러 공국으로 망명했고, 그의 형 마누일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남았다. 1178년 또는 1179년, 안드로니코스는 마누일 1세의 허락을 받고 아들 요안니스와 정부 테오도라 콤니니와 함께 동로마 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부 사료에서는 마누일 1세가 요안니스에게 세바스토크라토르 칭호를 수여했다고 하지만, 진위는 불분병하다.1180년 마누일 1세가 사망한 후, 마누일 1세의 어린 아들 알렉시오스 2세가 제위에 올랐고, 어머니 안티오키아의 마리아가 마누일 1세의 조카 알렉시오스 콤니노스를 필두로 한 섭정단과 함께 아들을 보필했다. 이에 요안니스와 형 마누일은 마누일 1세와 줄츠바흐의 베르타의 딸인 마리아 콤니니와 몬페라토의 레니에르와 손잡고 마리아 황후와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섭정단에 대적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지만, 아버지 안드로니코스가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 1182년 4월 섭정단을 전복하고 정권을 잡으면서 풀려났다.
안드로니코스가 권력을 잡은 뒤, 요안니스는 형 마누일과 함께 고위 관직을 연이어 맡았다. 1183년 9월, 안드로니코스 1세는 스스로 제위에 오르고 알렉시오스 2세를 암살한 뒤, 요안니스를 공동 황제로 지명했다. 안드로니코스 1세가 장남 마누일을 제외한 건 마누일이 아버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나, 일각에서는 안드로니코스가 당시 유행하던 예언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 예언에 따르면, 콤니노스 왕조의 역대 황제들은 알렉시오스 1세 - 요안니스 2세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식으로 이어졌는데, 황제 이름의 첫 글자씩 따면 'AIMA'가 되며, 이제 'A'자가 첫 글자인 안드로니코스 1세가 왕위에 올랐으므로, 'ㅣ'자가 첫글자인 요안니스가 다음 제위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안니스는 형 마누일과는 달리 아버지의 정책을 전반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안드로니코스 1세의 정적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자 아버지와 거리를 두었다. 테살로니키의 에우스타티우스에 따르면, 안드로니코스 1세는 정적을 마구잡이로 숙청하는 자신을 말리는 두 아들을 "여자"라고 부르며, 제위를 찬탈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앞에서 통치할 능력이 없다고 꾸짖었다고 한다. 니키타스 호니아티스에 따르면, 안드로니코스 1세의 수석 대신 중 한 명이었던 콘스탄티노스 트리사이코스는 정적인 스타피노 하기오크리스토포리테스로부터 요안니스 콤니노스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는 요안니스를 도의 선술집에서 유명한 저속한 사람인 진치피체스와 비교했다. 콘스탄티노스 트리사이코스는 이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었다.
1185년,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 굴리에모 2세가 동로마 제국을 침략했다. 그 해 6월 디라히온이 함락된 후, 시칠리아군은 제국의 2번째 도시인 테살로니키를 포위했다. 이 도시가 함락되면, 콘스탄티노포릴스로 향하는 길이 열릴 것이었다. 안드로니코스 1세는 시칠리아군을 격퇴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으나, 한 장수에게 군대를 몰아줬다간 반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지휘권을 그의 아들 요안니스를 포한한 여러 장군에게 분산했다. 요안니스는 테살로니키 농성군과 시민들에게 식량과 물자를 지원하는 임무를 맡아 필리포폴리스에 있는분견대를 이끌었다. 테살로니키의 에우스타티우스에 따르면,그는 자기가 맡은 임무가 위험하다고 여겨 사냥에 치중했다고 한다. 결국 테살로니키는 8월 말에 함락되었고, 시민들은 학살당했다.
1185년 9월 12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정변이 일어나 이사키오스 2세가 제위에 올랐고, 안드로니코스 1세는 체포된 뒤 잔혹하게 처형되었다. 수도에 있던 형 마누일도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요안니스 콤니노스도 트라키아에서 병사들에게 체포된 뒤 실명형에 처해진 직후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