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black> 라벤나 함락 | ||
시기 | 서기 476년 9월 2일 ~ 4일 | |
장소 | 서로마 제국 라벤나 | |
원인 | 파비아 전투 이후, 오도아케르와 서로마 정부의 관계 악화 | |
교전세력 | 서로마 제국 | 오도아케르 |
지휘관 | 파울루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 오도아케르 |
병력 | 불명 | 약 3천 |
피해 | 전멸 | 피해 규모 불명 |
결과 | 로마군 궤멸, 라벤나 함락. | |
영향 | 서로마 제국의 멸망, 오도아케르의 이탈리아 통치 시작, 로마의 서방 통치 상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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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벤나 함락은 서로마 제국의 수도 라벤나가 오도아케르의 반란군의 손에 함락된 사건으로,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오도아케르에게 제위를 양위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상징한다.2. 경과
오도아케르는 스키리 족의 왕이었으나 그의 군대가 동고트 족에게 몰살당한 후 서로마 제국의 군대에 들어가 제국의 방위를 책임졌다. 당시 서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통치 능력이 부족한 어린아이였고 갈리아, 히스파니아 등지에서 각 부족들이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상황에 오레스테스는 로마제국의 장군으로 오도아케르를 임명하여 역량이 떨어진 제국군의 방위를 책임졌다.오도아케르는 그 대가로 서로마 정부에 대해 상당한 양의 땅을 할양하라 요구했다. 하지만 오레스테스는 이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오도아케르는 반발했다.
사실 아무 이유 없이 땅을 내놓으라고 한 건 아니고, 아우구스툴루스의 아버지인 오레스테스가 서로마 제국을 어떻게든 존속 시킬려고 노력하던 전대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오도아케르 등 서로마 제국에 복무중인 이민족 군대에게 이탈리아의 땅을 약속했다가 로마인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커서 실행을 머뭇거린 쪽에 가깝다.
오레스테스는 몸을 피해 파비아로 도망쳤지만 뒤따라온 오도아케르의 군대에 잡혀 목이 잘리게 되었다.
476년 9월, 오레스테스가 죽고 오도아케르는 수도인 라벤나로 진격했고, 오레스테스의 형이자 어린 황제의 백부였던 파울루스가 남은 군대를 데리고 맞서 싸우러 갔지만, 파울루스의 군대가 라벤나 근교에서 패배한 후 라벤나에서 농성전을 펼쳤지만 이틀 뒤 성문이 돌파당하면서 그는 병사들과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
당시 16살이던 황제는 오도아케르에게 제위를 양위하도록 강요받았고, 이리하여 기원전 753년부터 시작된 로마 제국의 서방 통치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