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소피아 (영어: Sophia, 그리스어: Σοφία)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아버지 | 니키타스 |
남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자녀 | 마리아, 로마노스, 미하일 |
1. 개요
동로마 제국 마케도니아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의 황후.2. 행적
펠로폰네소스 반도 출신의 부유한 슬라브인 니키타스의 딸이다. 일찍이 로마노스 1세의 장남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와 결혼했고, 921년 5월 20일 남편이 시아버지 로마노스 1세에 의해 공동 황제로 선임된 뒤 922년 2월 20일 시어머니 테오도라가 사망하자 아우구스타로 승격되었다. 그녀는 흐리스토포로스와의 사이에서 딸 마리아를 낳았다.927년 10월, 그녀의 딸 마리아가 불가리아 제1제국의 차르 페터르 1세와 결혼했다.당시 동로마 제국과 불가리아 제국은 수십년 째 시메온 전쟁을 치렀는데, 이 결혼을 계기로 화해하고 40년간 평화를 누렸다. 이후 흐리스토포로스는 콘스탄티노스 7세를 제치고 2순위 황제가 되었다. 928년, 니키타스가 흐리스토포로스에게 로마노스 1세를 밀어내고 선임 황제가 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흐리스토포로스는 단호히 거부하고 아버지에게 이 일을 고발했고, 니키타스는 추방당했다.
931년 8월, 흐리스토포로스는 사망했다. 소피아는 남편이 사망한 후 수도원에 들어가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한편 페터르 1세에게 시집간 마리아는 이리니로 개명되었고, 보리스 2세와 로만을 낳았다. 두 아이는 훗날 차르에 각각 오르지만 전반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장남 로마노스는 연대기 작가 요안니스 조나라스에 따르면 로마노스 1세에 의해 아버지와 공동 황제로 옹립되는 것이 고려되었고, 대관식이 준비되었지만, 그 전에 요절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한다. 반면 미하일 프셀로스는 "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여겨졌다"라고 언급했을 뿐, 공동 황제로 옹립될 계획이 있었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차남 미하일은 흐리스토포르스가 사망했을 당시 유아였으며, 945년 레카피노스 왕조가 몰락한 뒤 성직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