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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사망 | 523년 또는 524년 |
동로마 제국 트라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 | |
배우자 | 유스티누스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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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유스티누스 1세의 황후.2. 생애
프로코피우스의 '비사(Ἀπόκρυφη Ἱστορία)'에 따르면, 그녀의 원래 이름은 루피키나(Lupicina)이며 야만인 여식으로, 본래 어느 집의 여노예이자 첩으로 살았는데, 트라키아의 농민 유스티누스가 사들여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을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상경한 그녀는 남편이 군대에서 승진을 거듭하는 동안 평범한 아낙네로 살았다. 그러던 518년 7월 8일 밤에서 7월 9일 새벽,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노환으로 사망했다. 환관장 아만티우스는 자신이 미는 후보를 황제로 추대하기 위해 당시 근위대장이었던 유스티누스에게 병사들을 매수하기에 충분한 금을 주었다. 그러나 유스티누스는 금을 혼자 차지하고 부하들에게는 무장을 갖추라고 명했다. 다음날 황궁 경비대가 성내 질서를 잡은 뒤 자신들이 섬기는 근위대장이 차기 황제라고 외쳤다. 유스티누스는 처음에 사양했지만 원로원 의원들이 마지못해 병사들과 함께 추대하자 수락했다. 이리하여 유스티누스는 황위에 올랐고, 에우페미아 역시 황후가 되어 아우구스타 칭호를 받았다.프로코피우스는 비사에서 에우페미아가 국정을 잘 몰라서 어떠한 정치적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에데사 연대기에 따르면, 유스티누스 시대의 교회 정책에 에우페미아 황후가 깊숙이 개입했으며 성 에우페미아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프로코피우스에 따르면, 유스티누스 황제는 조카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몸을 파는 무희였던 테오도라와 결혼하는 걸 강력히 반대했지만, 그의 아내 역시 출신성분이 천했기에 끝까지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에우페미아는 523년 또는 524년경에 사망했으며, 유스티누스는 527년 사망한 뒤 아내와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