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율리아 플라비아 (Julia Flavia) | |
출생 | 63년 로마 | |
사망 | 91년 로마 | |
아버지 | 티투스 | |
어머니 | 아레키나 테르툴라 또는 마르키아 푸르닐라 | |
배우자 |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
1. 개요
로마 제국 플라비우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티투스의 딸.2. 생애
63년 로마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티투스이며, 어머니는 명확하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티투스의 첫번째 아내이며 결혼 후 몇 달 만에 사망한 아레키나 테르툴라라고 추정하며, 또다른 학자들은 티투스의 두 번째 아내인 마르키아 푸르닐라라고 추정한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티투스와 마르키아 푸르닐라 부부는 또 다른 딸을 낳았지만 유년기에 죽었다고 한다. 65년, 피소 음모에 푸르닐리우스 가문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자, 티투스의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는 네로에게 찍히는 걸 원하지 않아 티투스에게 마르키아 푸르닐라와 이혼하게 했다. 티투스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랐지만, 딸을 계속 양육했다.70년,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손녀 율리아 플라비아를 자신의 둘째 아들이자 율리아 플라비아의 숙부인 도미티아누스와 결혼시키려 했지만, 도미티아누스는 도미티아 롱기나와의 결혼을 택했다. 율리아는 그 대신에 아버지의 사촌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와 결혼했으며, 사부누스의 형제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도 베스파시아누스의 조카딸인 플라비아 도미틸라와 결혼했다. 이후 아버지 티투스가 황제가 된 뒤 아우구스타에 선임되었다.
82년, 남편 사비누스가 도미티아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전령관이 그의 집정관 취임을 선포하면서, 그를 집정관이 아닌 임페라토르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사비누스를 처형했다. 그 후 율리아는 도미티아누스와 함께 궁전에 살았다. 이후 세간에서는 도미티아누스와 율리아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83년, 도미티아누스는 아내 도미티아 롱기나를 추방했다가 1년 만에 대중의 압력에 못 이겨 그녀를 불러들였다. 도미티아누스와 율리아는 이후에도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추문이 돌았다.
그러던 91년, 율리아가 사망했다. 수에토니우스가 전하는 세간의 소문에 따르면, 율리아는 여러 번 임신했지만 도미티아누스의 요청에 따라 매번 낙태했고, 91년에 또다시 임신했을 때 다시 낙태했다가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녀가 죽은 직후, 도미티아누스는 그녀를 신격화했고, 시인 마르티알리스는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는 글을 남겼다.
96년 도미티아누스 암살 사건이 벌어진 뒤, 도미티아누스의 유모가 그의 유골을 화장한 뒤 율리아의 무덤에 매장했다. 이에 일부 학자들은 도미티아누스가 율리아와 근친상간을 저지른 게 사실이었으며, 아내 도미티아 롱기나는 이를 알게 되어 암살에 가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현대 학자들은 율리아가 도미티아누스와 불륜했다는 이야기는 도미티아누스를 비방하기 위해 정적들이 꾸며낸 얘기이며, 율리아는 자연사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유모가 도미티아누스의 잿가루를 율리아의 무덤에 매장한 건 그를 살해한 자들이 도미티아누스의 잿가루마저 없애버리는 걸 방지하려는 조치였을 뿐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