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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로마제국 이탈리아 로마 | |
사망 | 미상 |
로마제국 이탈리아 로마 | |
배우자 | 루키우스 아엘리우스 라미아 플라우티우스 아엘리아누스 (71년 이혼) |
도미티아누스 (71년 결혼 / 96년 사망) | |
아버지 |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 |
어머니 | 카시아 롱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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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플라비우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황후.2. 생애
50~55년 로마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친은 로마 제국 초기 탁월한 명장으로 손꼽히는 코르불로이고, 어머니 카시아 롱기나는 아우구스투스의 피를 물려받은 귀족 가문 출신이다. 고모는 칼리굴라 황제의 황후이자 율리아 드루실라의 어머니인 밀로니아 카이소니아이다. 그녀의 언니 도미티아는 원로원 의원 안니우스 비니키아누스와 결혼했고, 그녀는 역시 원로원 의원인 루키우스 아엘리우스 라미아 플라우티우스 아엘리아누스와 결혼했다.67년 코르불로가 반역 누명을 뒤집어쓰고 네로에게 자살을 강요받았지만, 그의 위명은 사후에도 엄청났다. 새로 집권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둘째 아들 도미티아누스는 이러한 코르불로의 명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71년 아엘리우스에게 아내와 이혼하도록 종용한 뒤, 도미티아를 아내로 삼았다. 80년경 도미티아누스와 도미티아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지만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며, 83년에 요절했다. 81년 9월 14일 남편이 형 티투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을 때, 그녀 역시 황후가 되었다.
그런데 도미티아는 83년 알 수 없는 이유로 황궁에서 추방되었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도미티아는 유명한 배우 파리스와 불륜을 맺었고, 이를 알게 된 도미티아누스가 파리스를 살해하고 아내를 내쫓았다고 한다. 수에토니우스는 도미티아누스가 조카딸 율리아 플라비아를 정부로 두었는데, 율리아는 나중에 낙태를 하다 죽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현대 역사가들은 도미티아누스에게 무척 적대적이었던 원로원 인사들이 악의적으로 꾸며낸 소문일 것으로 간주한다. 그녀가 후계자를 낳지 못해서 쫓겨났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다만 불화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아서, 도미티아는 84년경에 황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93년 어느 시인이 도미티아누스가 아내와 헤어진 걸 풍자한 시를 지었다가 처형되기도 했다.
96년 9월 18일, 도미티아누스는 궁정 음모에 의해 황궁 안에서 암살되었다.(도미티아누스 암살 사건) 암살 과정이 상당히 치밀했고, 궁정에서 일하는 이들이 대거 가담했기에, 도미티아가 암살 음모에 직접 관여했거나 방조했다는 설이 당대부터 제기되었다. 이 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도미티아누스를 아기 때부터 키웠던 유모가 도미티아누스의 유골을 화장한 뒤 조카딸 율리아의 무덤에 매장한 사실에 주목하여, 도미티아누스가 율리아와 근친상간을 저질렀으며 도미티아는 이를 알게 되어 암살에 가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미티아가 이후 재혼하지 않고 "나는 도미티아누스의 아내"라고 말하며 수절한 점을 들어 암살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반박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고고학자이자 역사가 앤서니 비렐리(Anthony Birley)는 2013년 논문 <하드리아누스: 안절부절 못하는 황제>에서 도미티아 롱기나가 원로원 의원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루카누스와 재혼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재반박했다.
도미티아가 언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나, 126년에서 140년 사이에 가비이(Gabii)에 그녀를 기리는 신전이 세워진 걸 볼 때 그 즈음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