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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사망 | 1440년 1월 1일 |
아버지 | 레스보스의 프란체스코 2세 |
어머니 | 발렌티나 도리아 |
남편 | 요안니스 7세 |
자녀 | 안드로니코스 5세 팔레올로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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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요안니스 7세의 황후.2. 생애
안드로니코스 3세의 외손자인 레스보스의 프란체스코 2세와 발렌티나 도리아의 딸이다. 초명은 에우지니아(Eugenia)이다. 프란체스코 2세는 오스만 베이국의 무라드 1세에 맞서 로도스 기사단, 제노바, 키프로스와 동맹을 맺었고, 콘스탄노폴리스가 오스만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물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동로마 제국은 그런 그와 우호관계를 돈독히 해야 했기에, 1397년 8월경 요안니스 7세 황제와 프란체스코 2세의 딸 에우제니나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에우제니아는 정교회로 개종하고 이리니로 개명했으며, 아우구스타 칭호를 수여받았다.1399년 바예지트 1세가 이끄는 오스만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자, 마누일 2세는 서유럽을 전전하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구원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동안 요안니스 7세가 섭정을 맡았다. 1402년 티무르가 오스만 술탄국을 침략하자 바예지트는 포위를 풀고 티무르와 일전을 벌였으나 앙카라 전투에서 참패하고 포로 신세가 되었다. 이리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안전이 확보되었고, 요안니스 7세는 마누일 2세가 돌아오기 전까지 통치권을 유지했다. 1403년 마누일 2세가 돌아오자 섭정에서 물러난 요안니스 7세와 함께 테살로니카로 이동해 그곳의 황제를 자처했다.
그녀는 요안니스 7세와의 사이에서 아들 안드로니코스 5세를 낳았다. 안드로니코스 5세는 1403년 마누일 2세, 요안니스 8세 부자와 함께 공동 황제로 선임되었으나 1407년 요절했다. 아들의 죽음에 극심한 슬픔을 토로하던 요안니스 7세가 1408년 9월 22일에 사망하자, 이리니는 황후 자리에서 물러나 수녀로서 여생을 보내다 1440년 1월 1일에 사망하여 판토크레토르 교회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