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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088년 |
사망 | 1134년 8월 13일 (향년 46세) |
아버지 | 헝가리 국왕 라슬로 1세 |
어머니 | 슈바벤의 아델하이트 |
남편 | 요안니스 2세 |
자녀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마리아 콤니니, 안드로니코스 콤니노스, 안나 콤니니, 이사키오스 콤니노스, 테오도라 콤니니, 마누일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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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콤니노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요안니스 2세의 황후.2. 생애
1088년생이며 헝가리 왕국의 국왕 라슬로 1세와 슈바벤의 아델하이트의 딸이다. 초명은 피로슈커(Piroska)로, 이리니(Ειρήνη)는 동로마 제국에 시집간 뒤에 개명된 이름이다. 1095년 7월 29일 라슬로 1세가 사망한 뒤, 조카 칼만이 왕위를 이었다. 칼만은 1097년 크로아트 왕국을 병합하는 등 헝가리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동로마 제국의 알렉시오스 1세는 동쪽에서 쳐들어오는 셀주크 투르크에 전력을 투입하기 위해 헝가리 왕국과 동맹을 맺고 싶었고, 칼만 역시 헝가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동로마 제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피로슈커 공주는 1104년 알렉시오스 1세의 장남 요안니스 2세와 결혼했다. 그녀는 본래 가톨릭 신자였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한 뒤에는 정교회로 개종했다.1118년 알렉시오스 1세가 사망한 뒤, 요안니스 2세는 모후 이리니 두케나와 누나 안나 콤니니의 음모를 물리치고 제위에 올랐다. 이에 이리니는 황후가 되어 아우구스타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리니는 신앙심이 매우 깊고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자들을 매우 잘 대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판토크라토로스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아야 소피아 다음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가장 큰 종교 건물이 되었다. 이 성당에는 3개의 예배실과 5개의 병원이 있었으며, 모든 사회 계층에 개방되었다. 또한 요안니스와의 관계는 매우 화목하여 4남 3녀를 낳았다.
이리니는 1134년 8월 13일에 사망했고, 사후에 정교회에 의해 성녀로 시성되었다. 축일은 8월 13일이다.
[1] 헝가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