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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370년 ~ 375년 사이 |
로마 제국 갈리아 속주 트리어 | |
사망 | 394년 |
아버지 | 발렌티니아누스 1세 |
어머니 | 유스티나 |
형제자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그라타, 유스타 |
남편 | 테오도시우스 1세 |
자녀 | 갈라 플라키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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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황후.2. 생애
370년에서 375년 사이 로마 제국 갈리아 속주 트리어에서 서방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와 유스티나 사이의 딸로 출생했다. 형제자매로 발렌티니아누스 2세, 그라타, 유스타가 있었다. 375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황위에 올랐다. 어머니는 가족을 밀라노로 데려가서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일리리쿰 일대에 섭정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제국 서방의 전반적인 통치는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장남 그라티아누스가 맡았다.그러던 383년, 그라타이누스가 리옹에서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보낸 암살자에게 살해되었다. 이후 막시무스는 이탈리아로 쳐들어가려 했으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발렌티니아누스의 권리를 인정해준다면 서방의 황제로 인정해주겠다."는 제안을 해오자 이를 수락하고 384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 테오도시우스와 평화 협정을 맺었다. 이로서 막시무스는 브리타니아, 갈리아, 히스파니아의 황제가 되었고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일리쿰의 황제 지위를 유지했다.
387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와 마그누스 막시무스 사이의 휴전이 끝났다. 막시무스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포 계곡으로 들어가 밀라노를 위협했다. 발렌티니아누스와 유스티나는 수도를 떠나 일리리쿰의 수도이자 테오도시우스의 거처였던 테살로니키로 갔다. 조시무스에 따르면, 유스티나는 딸 갈라에게 테오도시우스 1세 앞에서 그의 동정심에 호소하도록 하였다. 갈라는 아름답고 여린 용모의 소유자였고, 테오도시우스 1세는 그녀에게 홀딱 반했다. 유스티나는 이 점을 잘 활용하여 테오도시우스 1세가 막시무스를 타도하고 아들을 복위시켜달라고 부탁했다. 테오도시우스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387년 말 갈라와 결혼했고, 388년 갈라 플라키디아를 낳았다.
388년 7~8월, 테오도시우스 1세는 프랑크족 출신의 플라비우스 아르보가스트 장군이 지휘하는 로마군을 파견해 막시무스를 공격했다. 막시무스는 테오도시우스의 강력한 군대에게 패해하고 도망치다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이리하여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서방의 황제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 후 갈라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궁정에 머물렀으나, 390년 아르카디우스를 모시는 신하들에 의해 궁전에서 쫓겨났다. 사유는 확인되지 않으나, 그녀가 어머니 유스티나처럼 확고한 아리우스파 신자였기 때문에, 정통교회를 따르는 테오도시우스 궁정에서 도외시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392년 5월 15일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비엔나 별장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당시 발렌티니아누스 2세와 심각한 갈등을 벌였던 아르보가스트는 황제가 자살했다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당대 기록은 아르보가스트가 직접 황제를 죽였거나 근위대를 매수해 시해하게 했다고 추정한다. 조시무스는 갈라가 친동생(또는 오빠)가 죽은 것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기술했다.
392년 8월 22일, 아르보가스트는 테오도시우스 1세의 동의없이 에우게니우스를 서방의 황제로 추대했다. 393년 1월 23일 테오도시우스는 자신의 둘째 아들 호노리우스를 서방의 황제로 선포하였다. 이후 양측은 394년 9월 5일부터 6일까지 프리기두스 전투를 벌였고, 테오도시우스가 승리했다. 조시무스에 따르면, 갈라는 같은 해 두 번째 자식을 출산하던 도중 사망했다고 한다. 정확한 사망 날짜는 기재하지 않아서, 그녀가 프리기두스 전투 결과를 목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