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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790년경 |
사망 | 미상 |
아버지 | 콘스탄티노스 6세 |
어머니 | 암니아의 마리아 |
남편 | 미하일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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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아모리아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미하일 2세의 황후.2. 생애
790년경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스 6세 황제와 암니아의 마리아 황후 사이의 장녀로 출생했다. 여동생으로 이리니가 있었다. 두 부부는 788년 이리니 태후로부터 짝지어진 관계였으나, 콘스탄티노스는 마리아를 싫어했다. 결국 795년 1월, 콘스탄티노스 6세는 이혼을 공식 선언하고 마리아와 두 딸을 프랑키포 섬으로 보내 성 에우로시네 수도원에서 수녀가 되게 하였고, 그해 9월에 이리니 태후의 시녀였던 테오도테와 재혼했다. 이에 교회 측에서 황제의 이혼과 재혼을 반대했지만, 콘스탄티노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마리아는 일방적으로 이혼당하고 수도원으로 보내졌지만, 수녀 생활에 만족했다. 그녀는 두 딸이 수녀로서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러던 823년, 미하일 2세는 테클라 황후가 사망하자 에우프로시나를 수도원에서 데려와서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일은 많은 논란을 야기하였고, 마리아도 신앙 생활을 잘하고 있는 딸을 왜 억지로 속세로 끌고 가느냐고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미하일 2세는 결혼을 강행하였고, 에우프로시나는 수녀 생활을 청산하고 황후로 발탁되어 아우구스타 칭호를 수여받았다.
829년 10월 2일 미하일 2세가 사망하였고, 의붓아들 테오필로스가 뒤를 이었다. 830년, 에우프로시나는 18세의 황제를 위해 신부 경연대회를 열었다. 그 결과, 대단한 미녀였다고 전해지는 테오도라가 황후로 선출되었다. 그 후 그녀는 정계를 은퇴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838년, 테오필로스는 아나톨리아로 쳐들어온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무타심을 상대로 디지몬 전투를 벌였다. 동로마군은 이 전투에서 패배했고, 테오필로스는 행적이 묘연해졌다. 이때문에 테오필로스가 전사했다는 소문이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퍼졌고, 원로원 의원과 고위 관료들은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지도 않고 새 황제 후보를 물색했다. 그러자 수도원에 있던 에우프로시나는 전령을 보내 "로마인들이 돌아와서 당신이 죽었다고 보고했다. 다들 새 황제를 추대하려 하니, 빨리 와라"라고 알렸고, 테오필로스는 수도로 돌아와 사망설을 무마시켰다.
에우프로시나가 언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