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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사망 | 583년 |
동로마 제국 트라키아 콘스탄티노폴리스 | |
남편 | 티베리우스 2세 |
자녀 | 콘스탄티나, 차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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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왕조의 아우구스타, 동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2세의 황후.2. 생애
아나스타시아의 초명은 이노(Ino)이다. 그녀는 흑해의 비티니아 해안가의 다프누디움 출신으로, 본래 동로마군 하급 행정관인 옵티오 요안네스와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일찍 죽자 티베리우스와 재혼했다. 에페소의 요한에 따르면, 이노와 티베리우스 사이에는 콘스탄티나, 차리토, 그리고 성명을 알 수 없는 아이가 있었는데, 셋째 아이는 일찍 사망하였다고 한다.574년 12월 7일 남편이 유스티누스 2세에 의해 카이사르로 지명된 뒤, 그녀는 황후 신분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아일리아 소피아 황후가 중간에서 막아섰다. 에페소의 요한에 따르면, 소피아는 이 시기에 티베리우스와 결혼하려 했다고 한다. 이는 아우구스타 자리를 최대한 이어가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내 이노와 두 딸이 있던 티베리우스는 거절했다. 이에 화가 난 소피아는 이노와 그의 두 딸이 황궁에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이노와 두 딸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황위에 오르기 전에 거주했던 집에 정착했다. 그러나 소피아의 박대가 갈수록 심해지자, 이노는 딸들을 데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떠나 다프누디움으로 돌아갔다. 578년 10월 5일 유스티누스 2세 황제가 사망하고 티베리우스 2세가 황위에 올랐다. 에페소의 요한에 따르면, 소피아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에우리티키우스를 티베리우스에게 보내 이노와 이혼하는 대신 자신이나 딸 아라비아와 결혼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는 거부하고 이노를 아나스타시아로 개명해 황후로 삼았다. 결국 소피아는 티베리우스를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지난날 자신이 살해했던 유스티니아누스 장군의 동생을 추대할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이 음모는 발각되었고, 티베리우스는 그녀의 궁정을 빼앗고 별궁에 유폐시켰다. 이리하여 아나스타시아는 황후로 인정받아 아우구스타의 칭호를 받았다.
에페소의 요한에 따르면, 아나스타시아는 삼위일체론을 이해하지 못했고 정통교회에 적대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한은 그녀가 단성론을 지지했는 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582년 8월 14일 티베리우스 2세가 사망하자, 콘스탄티나 황후와 결혼한 마우리키우스 장군이 새 황제로 등극했다. 이때 그녀는 마우리키우스의 양모가 되었다. 593년에 숨을 거뒀으며, 남편이 묻힌 성 사도 교회 묘지에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