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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7:27:41

한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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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韓日戰) / 日韓戦 (닛칸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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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
일본
日本国
Japan

1. 개요2. 설명3. 왜 이렇게 열기를 뿜는가?4. 선수 간의 관계5. 여담6. 다른 국가대표 간의 더비 매치7. 역대 한일전 전적
7.1. 축구7.2. 야구7.3. 배구7.4. 동계 종목7.5. 하계/기타 종목
8. 한일전에 대한 어록9. 대중매체의 한일전
9.1. 대한민국 작품
9.1.1. 축구9.1.2. 탁구
9.2. 일본 작품
9.2.1. 축구9.2.2. 야구9.2.3. 권투9.2.4. 그 외
10. 예외11. 비유적 표현의 한일전1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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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일본의 스포츠 더비 매치. 스포츠계에서는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라이벌리로 손꼽힌다.

제아무리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더라도 한일전이라면 사람들의 관심이 대폭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종목을 막론하고 단두대 매치의 대표적인 예시로 거론된다.

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관심이 많아서 특히 축구나 야구와 같은 열기가 높은 스포츠 종목에서 한일전의 평균 시청률이 30%를 넘어간다.[1] 일본은 지상파 TV 채널 수가 한국보다 1개 더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치이며, 양국의 방송사 및 스폰서들은 한일전 매치가 잡히기를 항상 손꼽아 기다린다. 일본 언론은 숙명의 라이벌, 인연의 대결 등의 표현으로 홍보하고 있다.

다만 언론에서 표현하는 범위는 한일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메이저리그나 해외축구리그 소속인 한국국적의 선수와 일본국적의 선수가 해외리그팀을 대표하며 뛰는 경기에도 한국언론은 "한일전" 이라며 열기를 띄우지만 일본은 이에 상응하는 언론표현을 쓰지 않고 관심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또한 대표팀간의 대결에서도 해설수위의 경우 한국의 해설자들이 "이것은 야구가 아닙니다, 한일전입니다" "후지산이 무너집니다." 같은 거친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사실 한국이 워낙 일본에 악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다보니 당연한거지만...

경기가 열리면 네이버야후 재팬 양쪽에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떠오르고, 끝난 뒤에는 다음 날 양국 스포츠뉴스 1면을 장식한다. 당연히 어느 쪽이든 패하면 좋은 소리는 절대로 못 듣는다는 점은 각오해야 한다. 해당 경기에서 뛰는 선수와 코치, 감독들의 경우도 굉장한 부담감을 갖게 되는데 협회장부터 구단주, 스폰서, 시민들까지 모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이 경기의 승패가 자신들의 명성과 커리어에서 아주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일전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어떤 스포츠 종목이든지 강력한 동기부여를 가진다. 우스갯소리로,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10번 이긴 거나 마찬가지"라는 농담도 있다.

한일전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그동안 아무리 성적이 부진했던 선수라도 구국의 영웅 취급 같은 대스타로 떠오르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그 이름이 기억되지만, 실수하거나 패배하면 그야말로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2]이 되면서 인터넷상에서 이름 석 자가 쌍욕을 먹고 내부에서도 눈칫밥을 얻어먹기 십상이다. 특히, 축구나 야구같은 메이저 스포츠의 경우 한일전의 패배는 바로 감독의 경질 여론까지 나온다.

특히 축구는 한일전은 차치하더라도 양국의 성적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한일전에서는 졸전으로 패배하게 되면 대한축구협회 회장까지 직접 미디어에 출연해서 머리를 숙이고 공개사과한다.

하다 못해, 인터넷상 키배조차 한일전 양상이 되면 이목이 집중된다. 디시인사이드5ch1차, 2차 사이버 전쟁처럼, 한국의 경우 한일전에서 이기면 다른 나라와의 경기와는 다르게 '대첩'이라고 부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열기가 스페인의 유명한 더비 엘 클라시코가 연상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스페인의 유명한 더비 매치 엘 클라시코는 축구로 가장 유명하나 종목별로 다 있고 특히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바르셀로나 지역이 패배에 민감하게 군다. 그렇다고 마드리드 지역이 패배에 관대하다는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일전'이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닛칸센(일한전)'이라고 부른다. 2002 한일 월드컵도 한국에서 '한일 월드컵'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일한 월드컵'이라고 부르는데 나 먼저 원리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3]

한일전의 중요성을 만화 하나로 잘 나타낸 와탕카. #1 여기서 나오는 긴가메 공화국은 가상의 국가이다.

영국의 언론 가디언에서는 가장 치열한 10대 국가대표 축구 더비 중의 하나로 한일전을 선정했다. #

2. 설명

파일:attachment/KORvsJPN.jpg
조석의 축구툰 중 한 컷.[4]
"모든 팀에 다 이겨도 일본에 지면 전패고, 다른 나라에 다 져도 일본에 이기면 전승이다."
- 김응용. 야구 대표팀 감독 시절의 발언.기사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 된다잖아요."
- 김원중.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에 3:0으로 승리한 후 인터뷰에서.
"한일전은 경기 내용이 필요없어요. (무조건 승리하는 것이) 결과입니다."
- 백지훈,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들이 한일전에 임하는 자세가 어떤지 설명했을 때의 발언이다. 실제로, 백지훈은 A매치 첫 데뷔전이 한일전이었다.
"한일전 특성상 반드시 이겨야 된다는, 저 역시도 분명히 이겨야 하는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 박지성, 그 유명한 '산책 세레모니'가 있었을 때의 기자회견에서 했던 발언이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숙명적인 경쟁 구도의 한일전은 그 어떤 경기보다도 중요한 경기이다. 대한민국이나 일본이나, 본래의 실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몇몇 언론 보도도 이에 동조한다. 전승을 했다가도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 비난이 쏟아지며 패배의 원인이 된 선수는 역적, 매국노 취급을 받는다.[5][6] 감독이나 코치, 스태프라도 예외는 아닌데, 패배하면 청문회는 확정이며 수 틀리면 곧바로 짐 싸고 나가야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1997년 11월 1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최종예선 일본전에서 그 전경기까지 5승 1무로 승승장구[7]하여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0:2로 패하자 이날 KBS 뉴스 9에서 기자가 "한국 축구 치욕의 날이었습니다."하고 일갈했다. 또한 이날 MBC 뉴스데스크에서 권재홍 앵커는 "오늘 하루 종일 온 마음을 잠실벌에 묶어 두었던 온 국민들에게 큰 죄를 진 것입니다."라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꼬집었다.

가령,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세계 무대에서 우리가 목표로 한 월드컵 16강 이상이나 올림픽 메달 등을 확보했더라도 그 토너먼트 상대가 한일전이 된다면 관심이 급증한다. 그 대회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한일전에서 패배한다면 졌지만 잘싸웠다" 같은 말을 듣기 어렵다. 반면에, 다른 경기는 부진해도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그래도 일본은 이겼으니까 괜찮다." 같은 반응도 나온다.

사실 한일전은 당연히 1920~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경쟁심이 엄청났다. 특히 축구는 더더욱 그랬는데 한국인 선수들이 주축인 팀이 일본인이 주축인 팀이랑 맞붙으면 한국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에게 거친 플레이를 벌여 일본 선수들이 실려나갈 정도였다.[8]

남성잡지 맥심에서는 스포츠에서 가장 보기 싫은 이벤트로 한일전 패배를 꼽았다. 그래서 "대표팀은 무조건 일본을 이겨야 한다!" 라고 말은 하지만 실상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지금처럼의 승률을 보여주는 것도 얼마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1980년대 후반까지 축구, 농구, 양궁 정도 제외하면 한일전에서의 대한민국의 승률은 높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은 대한민국이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쇼트트랙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실력이 비등비등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반대 케이스로 1990년대까진 일본에게 앞서다가 2000년대에 들어설때쯤 부터 상대전적이 열세로 돌아선 여자배구, 여자농구 및 A매치급의 남자축구처럼[9] 열세로 뒤집어진 케이스도 존재한다.

실제로 1970~1980년대 초중반까지는 한일전보다는 남북전 매치가 국민정서상 관심이 많았고, 승패에 연연하며 피를 말리게 했던 경기였다. 물론 여기에는 1960~1980년대의 남북한의 라이벌 정서가 심했던 사회적, 시대적 측면이 많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일본도 일본이지만 반공 정서의식이 강한 시대였고 당시엔 경제력 면에서도 비교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일본의 압도적인 우위였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선 북한이 더 위협적이었다. 과거 1960년대 북한 축구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자 이에 열등의식을 느낀 당시 대한민국 정부가 정부 주도하에 북한만을 꺾기 위해 뛴다는 양지 축구팀을 정보부 산하에 만들 정도였다.

국가의 종합적인 스포츠 실력 수준이 어디까지 인가를 살펴보는 척도로 대표적인 우리가 잘 아는 올림픽을 꼽을 수 있다. 올림픽에서의 메달 순위와 금, 은, 동메달의 분포도 등을 따져보면 해당 국가의 전체적인 종합 스포츠 실력을 대충 가늠해 볼 수 있는데 과거 일본이 6.25 전쟁 이후[10] 1960년대(1964년도엔 개최국으로서 좋은 성적 물론 홈 어드벤티지 감안)와 특히 일본의 버블 경기가 올라가며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시기였던 1970~1980년대에는 일본의 메달순위는 거의 대부분 한국보다 앞서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 1990년대 들어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 및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인해 국력이 약화되면서 스포츠 수준도 그에 비례하여 추락해 올림픽 메달 종합 순위 역시 덩달아 낮아졌다. 실제로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당국가의 국력과 스포츠 실력은 비례하는 측면이 있는데 그것이 그대로 시기별로 반영된 사례이다.[11]

이러한 분위기를 선수들도 잘 알고 있는 지라, 다른 때 같으면 해외에서 경기를 치르고 귀국할 때 공항에서 평범한 모습으로 기자들을 맞이하지만, 유독 한일전에서 일본에게 지고 돌아오는 경우라면 고개를 푹 숙이고 어두운 얼굴로 기자들을 맞이한다. 양국 사람(네티즌)들 대부분은 한일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실력도 없고 상대도 안 되는 것들이니까 신경 따위 쓸 필요도 없다." 라며 서로 안중에도 없는 척 하지만, 막상 한일전이 시작되면 양국 모두 전국민적인 관심도가 집중된다.

역사상 최초의 한일전은 1945년 8.15 광복 이후, 1954년에 있었던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아시아 예선전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출정식을 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일본에게 패배하면 고국으로 돌아오지 말고 대한해협뛰어들어라." 라고 일갈했을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다. #[꼬꼬무 13회 요약]광복 이후 최초의 한일전

여하튼 저 대한해협 협박(?)이 대표팀에게 먹혔는지 예선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5:1로 압승을 거두게 되고, 이어서 일본에서 또 벌어진 2차전에서는 2:2로 무승부를 이끌어내서 대한민국 최초 월드컵 본선 진출(+아시아 독립국가 최초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뤄낸다.[12] 해방이 된 지 10년이 되었던 즈음이라 국민들은 승전보에 더욱 기뻐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일본에 35년간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경기에서 압승했으며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냈다는 것에 환호를 보냈다.

3. 왜 이렇게 열기를 뿜는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말대로 이웃나라와 사이가 좋은 나라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고, 한일관계 역시 이웃나라라서 서로 부딪칠 일이 많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 단발령, 강제 합병, 35년간 이어진 식민지배,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미적지근한 대응, 독도 문제 등 양국관계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갈등 사안이 다수 존재한다. 이렇게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게 있다보니 양국 사람이 괜히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싸우기도 딱 좋을 만큼 서로 그 점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이런 감정이 직간접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로 한일전이다.

사실, 이러한 근본적인 요인은 주변 국가 중에서 한국과 일본만큼 스포츠에서 라이벌 관계를 이룰 나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껏해야 중국, 몽골, 대만, 북한 정도인데, 국가 위상 면에서 한국일본과 직접적으로 경쟁이 가능하며 동시에 국민감정이 서로 안 좋은 나라는 중국 뿐이다. 그나마도 과거에는 중국의 스포츠 실력이 좋지 않았던 데다가 중국은 전통적으로 축구야구 같은 구기종목보다는 탁구체조, 역도 등의 개인 스포츠에서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임팩트가 그리 크지 않다. 과거 탁구가 한 때 한중전으로 주목받았지만 중국의 독주로 사라졌다. 대표적인 예로는 축구에서 중국이 한국을 만나면 매번 무승부 내지 패배를 기록하는 공한증을 들 수 있다. 만약 중국이 과거에 스포츠(특히 팀 스포츠)를 조금 더 잘했더라면 한중전, 중일전이 한일전만큼 성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농구바둑e스포츠 처럼 한중전이 더 재밌는 종목도 있고 배구의 경우 중일전이 더욱 치열하다.

아주 가까운 이웃 나라인 점과 역사적인 감정이 가장 큰 요소긴 하지만, 그 외에도 한일이 서로를 라이벌 관계로 만드는 요소에는 자유로운 왕래를 통한 물적/문화적 교류가 많은 점, 가까운 인종적 거리, 인기 스포츠 종목들이 거의 같다는 점, 차이점도 많지만 비슷한 문화도 상당히 공유한다는 점 등도 있다.

우선 대부분의 나라들은 거리가 꽤 멀어서 많은 교류를 하기 어렵다. 중국은 인기 스포츠가 다르고 몇몇 팀스포츠의 실력차가 크다.[13] 북한은 자유가 없는 독재국가에 교류가 극도로 적을 뿐더러 그 영향인지 잘하는 팀스포츠도 적기에 안보에서 주적이라는 위치와 별개로 스포츠적 라이벌로 바라보기에는 격이 떨어진다. 대만은 팀 스포츠는 야구를 제외하면 제대로 하는 것이 적다. 몽골의 경우는 중국, 북한, 대만보다도 더욱 지리적으로 먼데다가 차이점이 너무 많고 잘하는 스포츠가 많지는 않기에 설명할 필요도 없고 동남아 쪽으로 가게 되면 이번엔 완전히 지역도 달라진다. 그렇다고 모든 요소에서 다른 호주/뉴질랜드 같은 나라와 라이벌 삼을 수도 없고, 중동 국가들을 갖다댈 수도 없다.[14] 요컨대 위 여러가지 요소들로 인하여 한국과 일본은 싫어도 서로를 비교하게 되고, 역사적인 감정관계를 배제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서로 라이벌이 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2000년대 초중반 한류 열풍의 영향이 일본으로 넘어가고 특히 중반 중후반 들어 문화 경제적으로도 일본 내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커져가고 야구 등에서 일본이 메이저리거까지 총동원한 대표팀이 몇 번이나 한국에 무너지면서 특히 일본 쪽에서는 이미 한국을 야구→모든 스포츠 종목을 경쟁 상대로 한일전이 주목을 받는 요소가 된 지 오래이다.

특히, 2010년대부터는 일반 뉴스 등에서도 여전히 한일전은 국내 스포츠를 대표하는 최고의 관심사이며 말 그대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처럼 아주 치열하고 사생결단의 무대이다. 프리미어 12는 예선전에 일본은 전승을 거두고 대회 자체에 국민들 관심도 상당했다. 하지만 4강에서 한국에게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뒤 고쿠보 감독은 인신공격까지 당하면서 어마어마한 비난 속에 차기 대회를 지켜나가야 했다.

일본에서도 한일전의 실패가 주목받는 것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카디프 대첩에서 말 그대로 4위라는 멕시코 올림픽 이후 최고의 성적을 올렸고, 스페인까지 격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한국에게 패배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귀국 현장에 나와있던 기자는 겨우 4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요시다 마야는 "일본의 올림픽 도전 중에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다."라고 푸념할 정도였다.

요시다 마야의 저 발언은 틀린 말이 아닌데 일본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8강 이후로, 조별리그에서도 승리조차 없었다. 게다가 한국과 달리 와일드 카드를 쓰지도 않은 것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한일전 패배로 인해 축하를 받지 못했고 욕만 먹었다.

3.1. 축구

일반적으로 '한일전'이라고 하면 간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쉽게 떠올린다. 한일전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축구의 인기가 가장 많아서 그렇다. 당연히, 한일 양국은 한일전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며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 어느정도냐면, 일본의 위키백과에서는 J리그 창설 이후의 전적을 따로 집계한다.

역대 한일전 축구 전적은 한국이 일본보다 더 앞서는 편인데, 2024년 2월 기준으로 81전 42승 16패 23무로 한국이 우세하다. 승률은 52%, 패율은 20%, 무승부율은 23%이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일본은 한국에게 전혀 상대도 되지 못했다. 한국 축구 레전드의 슈퍼스타 차범근, 최순호가 활약하던 시기였던 1970~80년대에는 한국이 일본의 눈 앞에서 내려다보며 아시아권의 최종보스로 군림했던 시대라 항상 쪽도 못 쓰고 깨지기만 했다. 심지어 1954년, 1962년, 1970년, 1978년, 198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한국이 계속 일본의 발목을 잡고 가로막으면서 예선탈락을 시키기도 했다.[15] 그야말로 일본은 언제나 한국밥이었고, 승점자판기였다.[16] 물론, 더 윗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정민이나 이회택처럼 기라성같은 대형 공격수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한국을 1:0으로 승리했지만[17] 이라크전에서 경기 종료 30초 전에 통한의 동점골을 먹히는 바람에 월드컵 본선진출 티켓을 한국으로 넘겨주면서 극적으로 발목을 잡혔던 도하의 기적이 벌어졌을 때는 일본인들이 뒷목을 잡고 쓰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최근에는 일본이 1993년 J리그를 야심차게 창설하면서 AFC 아시안컵 우승 횟수에서도 한국을 앞서게 되었으며[18], 한국 역시 히딩크호 이후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를 거듭하면서 양국의 축구 전력은 비등비등할 정도로 치열해졌다.

한국 역시 축구에 대한 금전적인 투자가 활발하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축구와 관련된 예산을 2, 3배 정도는 더 많이 사용한다.[19] 더구나, 일본의 경우는 특히 1990년대 들어서 버블경제 붕괴의 여파로, 국가 경제력이 많이 후퇴하던 상황인지라 스포츠에 그리 많은 돈을 쓸 여력이 안되기도 했었지만 2010년대 이후 실력이 향상되기 시작했으며 2020년 이후로는 일본이 한국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면에서 근소하게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나 여전히 그 전력 차가 크지 않고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한국이 우세한 면도 있기에 라이벌리는 여전히 팽팽한 편이다.

양국의 축구 스타일 특성상 일본은 선수들 개개인의 피지컬에선 열세지만 스피드 위주의 섬세한 패스축구에 유리하고, 한국은 우세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하는 허슬 플레이와 롱볼 축구에 발달되었다.[20] 따라서 한국은 한일전에서 피지컬 싸움 및 롱볼 위주의 축구로 많은 재미를 본 편이다. 그나마 공중볼을 잘 막아줬던 일본 선수는 일본 축구의 레전드 야마구치 모토히로, 엔도 야스히토 정도밖에 없었다.

요즘에는 월드컵 최종예선과 아시안컵 토너먼트에서 지겹도록 마주한 이란과의 악연이 깊어지고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일전이 계속 무산된 덕분에 예전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졌으나 여전히 라이벌리는 치열하며 양국 모두 서로를 제1의 라이벌로 여긴다.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 초반은 국내파로만 출전하여 국내파끼리 맞붙는 친선전에 가까운 동아시안컵이나 연령별 대표팀 외에는 만난 적은 없다. 두 팀 모두 상위 시드를 배정받아 월드컵 예선이나 아시안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다른 조에 배치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 때 한국이 일본한테 3:0으로 연달아 패했다.

그리고, 1군들이 출전하는 A매치 경기는 양측 모두가 패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서로가 꺼린다. 그리고 과거보다 유럽, 남미의 강팀들과의 A매치 협상도 쉬워진 터라 굳이 한일전에 목맬 필요도 없어졌다.

이렇게 서로 여론 악화가 되어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는 문제 때문에 우선 서로 친선경기를 가급적 잡지 않고, 만약 잡혀도 1군을 총동원한 총력전을 하지는 않으며, 동아시안컵은 기본적으로 양팀 다 유럽파가 나오지 않으니, A대표들의 경기라고 해도 진정한 한일전 승부라고 할만한 경기가 10년 넘게 없었다. 양국이 마지막으로 1군 대결을 제대로 치른 경기는 10년이 넘은 삿포로 참사(2011년 8월, 조광래호 시절)이고 이것도 친선경기라고 제외하면 2011년 1월의 아시안컵 4강전(이 역시 조광래호 시절)이 마지막이다. 그 이외는 전부 유럽파가 없는 동아시안컵이거나 1군이 빠진 친선경기라 한일전이라는 이름값에 맞지 않는 승부들만 오랜기간 이어지고 있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나 아시안컵 정도는 되어야 양팀 모두 정식 A매치 데이에 1군을 동원한 진검승부를 하게 될텐데, 공교롭게도 월드컵 예선은 1998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 이후 같은 조에 편성된 적이 없고, 아시안컵에서는 2011년 대회4강전을 마지막으로 양국이 서로 만나지 못했다.

2010년대에는 대리 한일전이 이루어졌는데, 태국의 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일본인 니시노 아키라가 맡았고, 베트남은 한국인 박항서가 맡은 데다가, 이 국가들 또한 한일처럼 양국이 상당히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 동남아, 국제 축구 대회에서 이들이 맞붙게 되면 예선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베트남과 태국은 각각 한국과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도가 높다.

그리고, 2020년대인 현재를 기준으로 한일 양국 선수들간의 개인적 친분은 꽤 있는 편이다. 현재는 한일 선수들 모두 유럽 리그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어서 그곳에서 친구처럼 지내는 선수들이 많아졌고 일본 선수가 한국 선수를, 반대로 한국 선수가 일본 선수를 본받고 싶다는 인터뷰 사례도 늘어났다. 다른 종목에 비해서 한일축구 선수들끼리의 감정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2021년 11월 기준으로 현재 한국과 일본의 초신성이자 유망주로 손꼽히는 이강인쿠보 다케후사라리가에서 서로 같은 팀인 RCD 마요르카에서 2021-22 시즌 한 시즌을 함께 보낸 영향으로 사이도 좋은 편이다.

실제로, 한국 뿐 아니라 일본도 꾸준한 투자로 21세기 들어 축구 실력이 급속도로 상승하자, 한국 또한 경쟁 의식 때문인지 함께 실력 면에서 좋아진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제 경기에서도 괜찮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예전만 해도 양국에서 유럽리그 진출을 많이 하지 못한 반면에, 21세기 들어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우승팀에서 활약하기도 했는데, 일본은 양질의 해외파를 보유하고 있고[21] 한국은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배출했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 국민감정이 많이 좋아졌고, 아시아 최고의 라이벌로 성장하면서 서로의 발전을 위한 경쟁의 필요성과 강한 자극을 주는 존재로 변했다.

3.2. 야구

축구 다음으로 한일전의 열기가 뜨거운 스포츠가 바로 야구이다.

과거에는 한국이 조금 우세했고 현재 대등한 라이벌로 발전한 축구와 달리 야구는 언제나 한국이 도전자의 입장이었고 2010년대 중반까지 한일전에서 치열한 경기가 있었다.

2003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부터는 아시안 게임을 제외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 올림픽 야구에는 베스트 라인업이 출전한다. 다만 프리미어 12올림픽 야구에는 일본인 메이저리거는 출전하지 않는다. 이건 미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한국도 똑같다.

2003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부터 2023년까지 한일전에서 전력차가 난 상황에서 맞붙은 경기는 도하 참사 당시 일본의 사회인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 국대에게 10대 7로 패배한 경기가 유일하다.

일본이 프로급 선수들로 꾸려서 본격적으로 맞붙은 2003년부터 2024년까지 23전 7승 16패로 한국이 명백히 뒤지지만 그 차이가 압도적으로 벌어지는 편은 아니다. 특히 프로야구의 역사가 일본의 절반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룬 상대전적이기에 꽤나 높게 평가받을 여지가 있다. 일례로 세 번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쓴맛을 봤지만, 올림픽에선 1차례 목메달을 안겨준 전적이 있다.

다만 리그 평균을 따지면 그 격차는 현저하다. 한국에서 리그를 씹어먹은 선수들이 일본 리그 진출을 꿈꿀 정도로 일본 리그의 수준은 KBO보다 휠씬 높은 편이다. 특히 팀의 부동의 1번타자이자 리그를 씹어먹던 선수가 일본에 진출 후 극도의 부진을 겪었으나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리그를 씹어먹은 것만 보아도 KBO와 NPB의 격차를 알 수 있다.

프로급끼리 붙은 야구 한일전에서는 일본에서의 원정 경기나 타 국가에서의 중립 경기뿐이고 아직 한국 홈에서의 한일전은 성사되지 않았다. 다만 2012년 부산에서 열렸던 아시아 시리즈에서 KBO 구단과 NPB 구단이 맞붙어서 리그팀 한일전을 치른 적은 있다.

오히려 2000년대 말미에 일본과 국제대회에서 대등하게 겨룬 것이 플루크고 2020년대 현재의 한국과 일본의 격차가 정상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물론, 당장의 전력 차이는 크지만 한일관계의 특수성과 야구를 하는 나라의 제한된 수, 과거 치열했던 한일전 야구가 존재하기에 일단 라이벌로는 분류되지만 냉정히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라이벌에 가깝지 스포츠적으로 팽팽한 라이벌리로 보기는 어렵다. 일본은 단순히 한국보다 야구를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세계 레벨에서 비교를 해도 미국과 더불어 ‘야구 양강’으로 불릴 만한 초강국이며[22] WBC 2023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그 역량을 증명했다. 반면 한국 야구는 WBC 3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초라한 결과를 맞이하여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야구의 역사와 인프라, 관심도 등에서도 양국의 차이는 현격한 편이다. 심지어 진출한 메이저리거의 양과 질 모두 일본에 비해 압도적 열세인 형국이다. 류현진이 KBO로 컴백한 이후 투수 쪽은 전멸이고 타자 또한 김하성과 이정후만이 남아있을 뿐 그마저도 부상으로 2024시즌에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3.3. e스포츠

e스포츠의 경우, 일본과 한국이 주로 하는 게임이 달라서 그런지 많이 갈리는 편인데, 한국은 PC 게임 위주인 데 비해 일본은 콘솔 게임 위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일 양국에서 흥행하는 게임이 다르다.

물론 최근엔 PC 게임으로도 일본 게이머들이 많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 일 양국에서 흥행하는 게임은 다르다. 예를 들자면 Apex 레전드가 있는데, 일본은 꽤 흥행하는 수준을 넘어서 거의 국민 게임급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안 그래도 적은 유저풀에 핵 문제까지 겹치며 한섭이 폐쇄되고, PC방 순위에서 보기 힘들다.

슈팅게임을 포함한 오락실 게임의 경우 한국이 무난하게 진다. 이걸 대표하는 말이 "일본 동네 기록이 전한기록". 대전격투 게임의 경우 e스포츠 씬이 기능하지 않는 고전게임의 경우 그쪽에서 인기있는 게임과 이쪽에서 인기있는 게임에 따라 우세가 천차만별로 갈리는지라, 비교는 거의 의미가 없는 편이고 활발하게 현역으로 대회가 돌아가는 게임은 세계적으로 인기 많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포함해 전부 일본이 압도적이고 한국이 꽤 오랫동안 최강으로 군림했던 철권 시리즈 정도가 비등한 편이다.[23]

예외적으로 버추어 파이터가 3시절 한국인 플레이어 두 명이 초청받아 세계 대회를 치른 적이 있다. 이 때 일본인 3명이 출전했는데 1명은 내전으로 나가떨어졌고, 그렇게 남은 "챤네" 코타카 토모코와 "야나가 사라" 야나가 타쿠 모두 한국 예선 2위였던 "이게라우" 조학동에게 패배했다.[24] 덕분에 당연히 일본 선수가 우승하리라 생각했던 주관사 세가는 체면을 구겼고 한국 선수들의 인터뷰를 공식 비디오에서 통편집 및 분량 대부분을 일본 선수들의 선발전으로 채우는 등 등한시했고 계속적인 초청을 해준다는 약속과는 달리 다시는 세계대회를 열지 않았다. 이 여파로 버파는 한국에서 무관심 속에 잊혀졌다.

리듬게임의 경우 한국이 꽤 따라잡아서 KAC 2012 사운드 볼텍스 부스 부문[25], KAC 2013 유비트[26], 리플렉 비트[27] 부문에서 한국인이 김사자 선생의 도움으로 챔피언 자리를 가져갔다. 게다가 The 4th KAC에서는 유비트 본선진출한 8명 중 5명이 한국인[28]이고 DDR[29]에다가 리플렉비트[30]까지 우승에 성공. 참가하는 족족 최소 1종목은 우승자를 배출하는 중이다. 모바일 리듬 게임 중에서도 가끔 1등이 나오고 있는데,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스타라이트 스테이지의 경우 한국인 '무서운닭'이 피어라 Jewel 이벤트에서 1위를 기록한 적이 있고,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 시어터 데이즈의 경우 FairyTale로 남을 수는 없어 이벤트에서 한국인 '워프P'가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PC 리듬게임으로 가면 한국인의 최상위권 등록 확률이 더 높아진다.[31]

PC 게임의 경우는 일본에서는 최근엔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인기가 별로인 데 비해 한국에서는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아서 PC게임 한일전은 서로 만나기조차 쉽지가 않아서 승부가 애초에 성사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홍구의 사례처럼 진짜 발컨으로도 외국을 압도한다고 불리며 블리자드 공인 '이 무시무시한 전쟁터에 함부로 발을 들이지 말라'는 말을 한국서버명에 붙여놓을 정도로 세계 정상급에 군림하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2,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갈 것도 없이, 도타 2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이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은 종목들도 나름대로 강력한 데 비해 일본에서 카스는 그나마 SCARZ Absolute라는 팀이 있지만 한국의 MVP PKGOSU 두 팀에게 상대전적도 밀리고 있다. 도타 2에서는 프로게임단조차 없다. 심지어는 콘솔버전이 있는 오버워치도 마찬가지라 2018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e스포츠 최초로 국제대회에서 한일전이 성사되긴 했지만 올 셧아웃이라는 일방적인 결과로 끝났다.[32]

그러나 최근 들어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에서 일본 팀의 실력이 늘어나더니 2018년에는 롤드컵에서 최초로 플레이-인 스테이지 2라운드 진출, 2019년에는 롤드컵에서 4대 메이저 리그[33] 소속 팀에게 첫 승을 거두는 등 점점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34] 2021년, 리그 오브 레전드의 국제대회인 2021 Mid-Season Invitational에서 LoL e스포츠 역사상 첫번째 클럽팀 간의 한일전이 성사되었다. 한국 대표팀은 당시 세계 최강이라 불렸던 DK, 일본 대표팀은 DFM이었는데 결과는 한국 대표인 DK의 아슬아슬한 역전승. 최근 오버워치도 마찬가지로 2023년 이후부터 동아시아 컨텐더스에서 경험을 쌓아올렸는지 2023년 오버워치 월드컵 예선전에서는 한국 대표팀을 제외한 모든 팀을 2-0으로 완파하는 등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당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아시아의 강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국제대회인 2021 롤드컵에서는 플레이-인 스테이지에서 1위 결정전의 혈투 끝에 LCS 소속 팀 Cloud9을 꺾고 조 1위로 그룹 스테이지에 직행, LJL 최초 그룹 스테이지에 진출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온 DFM이 한국의 명문 팀 T1과 그룹 스테이지에서 같은 조가 되면서[35] 두 번의 맞대결이 확정되었다.[36]

1라운드에서의 결과는 한국 팀인 T1의 압도적인 승리. 또 2라운드에서도 다시 한 번 맞붙었는데 T1이 DFM의 미드인 아리아가 페이커를 솔킬 따는 등 초반에 DFM이 유리해지면서 조금 힘들었으나 결국 압도적인 운영 격차 등으로 초반에 힘들었던 것을 다 복구하면서 T1이 또 다시 승리를 챙겨간다. 또 이번 그룹스테이지에서 한국팀인 T1은 6전 5승 1패의 성적을 거두며 1위로 8강에 진출했지만 일본팀 DFM은 세계의 벽은 높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하며 6전 전패로 마감했다.

다만 여전히 일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인구가 너무 적어 일본 리그의 전체적인 수준은 여전히 한국 리그에 비해 매우 낮고, 그 동안의 일본이 국제 대회에서 거둔 성과는 일본 대표로 18년부터 출전했던 DFM의 고군분투라고도 볼 수도 있다.

그 예로 20년 롤드컵에서는 DFM이 자국 리그 서머시즌에서 우승을 못해 롤드컵에 나오지 못했고 대신 V3 Esports라는 다른 일본 팀이 대표로 나갔는데, 그 팀은 18년 이전의 일본 팀들과 다름없는 한심한 플레이를 연달아 보여주며 플레이-인 스테이지 1라운드에서 광탈했다.[37]

게다가 그 DFM마저도 한국인 용병에 크게 의존을 하고 있기에[38] 한국인 용병의 군 입대나 본국 리그인 LCK 이적[39] 등 DFM을 이탈하는 일이 생긴다면 결국 일본 리그는 또다시 정체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 게임은 대부분 일본 성적이 더 좋다. FIFA 시리즈에서는 만난 적이 없다지만 그래도 일본에선 꾸준히 세계대회 본선 진출자가 나오는데 한국은 씨가 완전히 말라버렸고[40], 위닝일레븐도 최근 하였던 아시안 게임 지역 예선에서 한국을 무난히 이기고 본선에 진출하였다.

배틀로얄의 경우 PUBG는 핵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중국팀을 발라버리기도 하니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한국이 이기지만, 배틀그라운드로 인해 한국시장을 잡는 데 실패한 포트나이트는 FNCS 지역예선에 한국인이 안 보일정도로 일본이 압살한다. APEX 레전드는 미묘한데, 한국 서버가 아예 사라진 악조건에서도 2020년에 T1이 RAGE ASIA를 우승한 적이 있다. 현재도 순수 한국인으로 구성된 팀[41]들이 프로리그에서 나름 성적을 내고 있지만, 일본 선수들과 비교해 눈에 띄는 격차를 내진 못한다.[42][43][44]

발로란트의 경우, 한국이 일본보다 전력상 우위로 평가받으나 한국 팀-일본 팀 대결에서 일본이 이기는 경우도 종종 있을 만큼 실력 격차가 엄청나게 큰 것은 아니다. 최고 성적은 한국의 경우 DRX2022 챔피언스락인에서 3위를, 일본의 경우 ZETA2022 마스터스 레이캬비크에서 3위를 기록한 바 있다. 다만 2023 VCT 퍼시픽에서 한국팀 DRX가 개막 7연승을 포함해 8승 1패를 기록한 반면 일본팀 DFM이 전패를 기록하는 등 ZETA 외의 팀이 부진한데다 ZETA 또한 득실관리가 썩 좋지만은 않았고, 위에 서술한 레이캬비크 대회를 제외하면 일본 팀이 국제전 조별리그를 뚫어본 적이 없다 보니 최상위권은 한국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다고 보는 견해가 주류다. 한편 실력과 반대로 인기는 제타의 선전 이후 일본 쪽이 압도한다.[45]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일본이 리그 파이 확대/유망한 선수 유입으로 한국과의 격차를 좁힐지, 혹은 국제전 성과를 다시 내지 못하며 한국과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인기도 식어버릴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3.4. 모터스포츠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는 일본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한국의 모터스포츠 저변은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그렇다.

1964년 혼다의 F1 참가로 일본 모터스포츠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3L V12 엔진으로 처음 참가한 혼다는 벨기에 GP에서는 실격했지만 참가 1년 후 열린 벨기에 GP에서는 처음으로 6위를 하여 점수를 획득하였고, 1965년에는 당시 혼다의 RA272 드라이버였던 미국 국적 드라이버 리치 긴서가 멕시코 GP에서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일본 국적으로 사상 첫 우승을 하였다. 다음해 66년에 열린 멕시코 GP에서도 개선된 RA273으로 4등을 하였으며 67년에는 더 업그레이드 된 RA300으로 영국 국적의 존 서티스가 참가하였는데, 이탈리아 GP에 참가하여 또 우승을 해냈다. 서티스는 이후 68년 프랑스 GP에서 2등을 하였고 이탈리아 GP에서는 사상 첫 폴 포지션까지 달성했으나 레이스에서 8랩째에 사고로 리타이어하였다. 같은 해에 개최된 남아프리카 GP에서는 3위로 포디엄에 올랐고, 이후 혼다는 자체 팀을 포기하고 커스터머 팀들에게 엔진 제조사로 윌리엄스, 로터스, 맥라렌 등의 팀에 엔진을 공급하여 각 23번, 2번, 44번의 그랑프리 우승, 19번, 1번, 53번의 폴 포지션을 획득시켰다. 물론 당시 엄청난 기술력으로 엔진을 개발했던 혼다 또한 8,90년대에 걸친 혼다의 황금기 이후 자신들도 다시 자체적인 팀을 결성하여 1999 시즌부터 F1 프로젝트를 준비, 2005년 중반에 BAR 팀 지분 과반을 인수하며 2006년부터 혼다 레이싱 F1 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다시 참가하였다. 2006 시즌에 RA106으로 차량을 개발하였으며 재참가 당시 개막전 바레인 GP에서부터 영국의 젠슨 버튼이 4위로 점수를 따냈고 3라운드 호주 GP에서는 폴 포지션을 획득하였다. 하지만 레이스에서 1랩을 남겨두고 엔진 이슈로 9위로 마감했으나, 헝가리 GP에서의 빗길 컨디션에서 기적적인 우승을 해냈다.

이랬던 혼다 만큼 토요타 역시 F1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 적이 있었는데, 토요타도 2001년 F1 참가를 공식화 하여 개발을 시작, 2002년부터 참가하기 시작했다. 2002시즌 개막전 호주 GP에서는 레이스에서 6위로 통과하여 첫 점수를 획득하였으나 으레 F1을 처음 참가하는 팀들이 다 그렇듯 성적은 시즌 전체적으로 대부분 노포인트, 리타이어의 연속이었고 강팀 대비 매우 나빴다. 하지만 점차 차를 개선해 나가면서 2005 시즌엔 2,3라운드 말레이시아, 바레인 GP에서 이탈리아의 야르노 트룰리가 연속 2위로 포디엄에, 4,5라운드 산 마리노(이탈리아 이몰라), 스페인 GP에서 5위, 3위를 하였고, 미국 GP가 열린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폴 포지션을 획득[46], 이후 같은 시즌에 독일의 랄프 슈마허가 헝가리 GP에서 3위로 포디엄 피니쉬를 하였으며, 대망의 홈그라운드 경기 일본 그랑프리에서는 폴 포지션을 달성하였다. 레이스에서는 8위로 마감. 2007 시즌은 포디엄 없이 부진하게 흘러갔고 이후 드라이버 라인업이 바뀐 2008 시즌엔 프랑스 GP 레이스에서 트룰리가 다시 3위를 하여 포디엄에, 독일의 티모 글록이 헝가리 GP에서 2위를 덜성하였고, 이듬해 2009년에는 개막전 호주 GP 레이스에서 트룰리가 3위, 글록이 4위, 말레이시아에선 엄청난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경기가 중단되는 바람에 글록이 3위, 트룰리가 4위로 정해졌다. 4라운드 바레인 GP에서는 트룰리가 폴 포지션에 올랐고, 레이스에서 패스티스트 랩(가장 빠른 랩)까지 기록을 세웠고 3위로 포디엄에 올랐으며 중반부는 무난하게 흘러가다가 후반부 싱가포르 GP에서 글록과, 일본 GP에서 트룰리가 2위를 하였다.

이렇듯 좋은 성과를 내며 흘러갈 법했으나, 2009년에는 F1 팀들 중에서 세계 경제의 상황 악화로 자동차 제조사들 일부가 철수 하였으며 여기에 혼다와 토요타도 포함되어 있었다. 혼다는 2015년부터 맥라렌과의 단독 엔진 공급사로 F1에 다시 참가했지만 출력이 너무 떨어져 2017년까지 과거만큼의 기대는 하지도 못할 정도로 당시 전체 F1 엔진 제조사들(혼다 외 메르세데스-벤츠, 페라리, 르노) 중에서 성능이 최악이었으나 2018년부터 맥라렌에서 토로 로쏘로 팀을 옮긴 뒤 상황이 조금 나아졌고 2019년 부터는 레드불에도 공급하기 시작하였으며 오스트리아 GP에서는 네덜란드의 막스 베르스타펜이 오랜만의 우승을 하였고 헝가리 GP에서는 폴 포지션에 올랐다. 이후 2021년에는 메르세데스-AMG보다 출력, 내구성 면에서 우위를 보이며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우승하게끔 레드불에게 파워유닛(엔진)을 공급하며 엔진 공급사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여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었고 2022년에는 드러이버, 컨스트럭터 2부문에서 종합 우승을 하며 다시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 외 F1 타이어 공급사로 브리지스톤이 1976, 77 시즌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일본 그랑프리에 일본 국적의 호시노 카즈요시와 타카하라 노리타케의 차량에 자사의 타이어를 공급하였으며 1997년부터 정식으로 타이어 제조사로 참가, 1998년부터는 맥라렌 F1 팀에게 공급하여 페라리굿이어를 이기고 드라이버 챔피언과 컨스트럭터 챔피언 두 부문 다 획득하는데 기여하였다. 1999년부터 2000 시즌까지는 모든 팀이 브리지스톤을 사용하여 참가하였고 2001시즌부터는 미쉐린과 경쟁하는 양사 체제로 바뀌어 공급하게 되었다. 2005년 미국 GP에서 벌어진 인디게이트의 여파로 브리지스톤이 미쉐린보다 더 나은 면모를 보여주어 최고의 타이어 제조사로 각인이 되었으며 미쉐린은 당초 2007년까지 예정된 공급 계약을 중단하여 2006년까지 참가 후 철수하였다. 그리하여 브리지스톤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시즌간 독점적인 공급을 하였다.[47]

제조사가 아닌 드라이버로 본다면 일본인 드라이버들은 2022년 기준으로 도합 20명이 넘는 인원들이 F1에 참가한 바 있고, 츠노다 유키는 현재 2023 시즌 스쿠데리아 알파타우리 소속으로 참가 중이다. 많게는 한 시즌에 4,5명이 참가한 적이 있을 정도였고 이 중에서 스즈키 아구리, 사토 타쿠마, 고바야시 카무이는 아시아 출신 드라이버로서 가장 높은 포디엄 3위, 퀄리파잉(예선전)에선 2위[48]까지 해낸 적이 있다. 특히 카무이는 자국 일본에서 열리는 홈그라운드 일본 그랑프리가 열린 스즈카 서킷에서 이뤄낸 것이라 더 뜻 깊은 경기로 달성하였고 WEC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였다. 일본인 F1 드라이버들 중에서 인디카로 전직한 사토 타쿠마혼다 엔진을 쓰는 팀으로 2017년, 그리고 2020년에 무려 인디 500을 두번이나 우승하였다! 다만 엔진 공급사 및 드라이버 측면으로는 성공했지만 개인이 자체적으로 구축한 일본 국적 팀들(슈퍼 아구리, 코지마, 마키 등)으로서는 썩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내었다.

월드 인듀어런스 챔피언십(WEC)으로 보면 일본 토요타의 TS050이 WEC 매뉴팩처러(제조사) 챔피언십에서 도합 4관왕을, 24시간동안 경주하는 유명한 내구레이스인 르망 24시에서는 5연승을 차지하였고, 마쓰다787B재규어, 메르세데스-벤츠, 최종보스인 포르쉐마저 넘어선 적이 있다. WRC에서는 드라이버 챔피언십 8관왕, 매뉴팩처러 챔피언십 5관왕을 달성하였다.

다카르 랠리에서는 1984년에 미쓰비시파제로 에볼루션[49]이 3위로 포디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85년 다카르 랠리 우승 및 2위 달성[50], 1986년 포디엄 3위로 마감[51], 1987년에는 일본인 드라이버인 시노즈카 켄지로가 3위로 포디엄을 달성하였으며 1988년에는 2위를 하였다. 1989년에는 전 F1 드라이버패트릭 톰베이가 3위로 포디엄에 올랐다.

1991년, 미쓰비시 소속 프랑스 국적 드라이버인 피에르 라티그와 장피에르 퐁타니가 2,3위를 달성하였으며 1992년, 독일의 어윈 웨버(Erwin Weber)가 우승, 일본의 시노즈카 켄지로가 2위, 프랑스의 부르노 사비가 다카르 랠리에서 1,2,3위 포디엄을 모두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특히 요즘 들어 문어발 격으로 대부분의 레이스 카테고리에 참가하고 있는 토요타는 국제적으로 WEC, WRC, 다카르 랠리, NASCAR에 참가하고 있으며 2021년, 22년에는 나스카를 제외한 이 셋 카테고리에서 챔피언십 우승을 하였고, 과거처럼 영광을 누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런 일본에 비해[52] 매우 약세를 보이는 실정이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인 드라이버는 찾아 보지도 못하며 1명이라도 있는게 기적인 수준으로, F1에서 한국"계" 영국인 한 명이 참가하긴 했으나 이 드라이버는 원래 풀 시즌 드라이버의 공백으로 인해 대타로 1번만 임시 참가한 것이 전부.[53][54] 내구레이스에서는 재일 한국인 쿠니모토 케이스케(이경우)[55], 독일 포뮬러 3(ATS Formel 3)에 참가했던 한국계 네덜란드인 최명길 등이 있다.

한국계 외국인이 아닌 순수 한국인을 찾아 본다면 가장 상위 클래스 순으로 2018년 르망 24시에 LMP2 클래스의 포르투갈 국적인 알가르브 프로 레이싱 소속으로 참가한 김택성[56]이나 A1 GP에 한국 팀으로 참가한 황진우 또는 최해민 등이 있다. 이들 중 F1에 도전한 드라이버들도 있으나 실력은 있지만 스폰서가 없어서, 또는 스폰서도 없는데 실력도 안 뛰어나서 상위 클래스인 GP2, GP3로 진출하지 못한 사례로 남았다.

그나마 차량 제조사로 월드 랠리 챔피언십에서 현대 모터스포트가 2019, 2020년도 당시에 매뉴팩처러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타 팀들, 특히 토요타에 어느 정도 성능적으로 비비기라도 하나 싶었는데, 21년부터는 이전과 달리 차량 신뢰도 문제로 토요타 가주 레이싱에 압도적으로 초라하게 밀리며 드라이버, 메뉴팩쳐러 챔피언십에서 무엇 하나 특출나게 제대로 건진게 없다.[57]

당장 2023년 기준으로, 7년 전에 단종된 현대 제네시스 쿠페가 아직도(...) 주력 레이스 카로 뛰고 있으며, 대체재라곤 토요타의 GR 야리스에 대항하는 현대 벨로스터 N이나 혼다 시빅 타입 R에 맞먹는 현대 아반떼 N 정도로 보이지 않는데, 차량의 노후화에 따른 국내 팬들의 무관심이나 저조한 흥행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인지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모습을 고치지 않고 있다.

3.5. 반응들

스포츠는 아니지만 기업의 경우에도, 특정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경쟁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과거 인조이재팬 등의 사이트는, 한일전의 승자에 따라 사이트의 주인이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쪽이 득세하였다. 주요 떡밥은 독도인데, 승자가 바뀌어도 주제는 안 바뀐다.

시키면 한다! 약간 위험한 방송에서는 한일전 때 일장기를 가지고 한국에서 일본을 응원하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했다. 일본인 설정이 상당히 잘 어울리는 비주얼의 대신맨이 한국인이라는 의심을 전혀 받지 않으며 활약했다. 험악한 분위기가 일어날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마음씨 좋은 아저씨들에게 제지 정도만 당하면서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결론과 함께 상황해결.

4. 선수 간의 관계

물론 이건 국가대표전과 별개의 이야기이다. 비록 한일전에서 목숨걸고 싸웠어도, 해외의 같은 소속팀에서 한국 선수와 일본 선수가 뛰는 경우에는 서로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유럽, 북미 리그에 가서는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동질감 때문에 깊은 우정을 쌓는 경우도 많다.

구자철이 임대갈 때, 하세베 마코토호소가이 하지메에게 전화해서 잘 챙겨달라고 부탁했다거나##, 볼튼 원더러스로 임대간 미야이치 료이청용을 가장 친한 친구로 뽑기도 했고#, 박지성J리그에서 뛸 때 동료들과 친하게 지냈다. 박주호구자철의 팀메이트인 오카자키 신지(레스터 시티로 이적)도 그 둘과 매우 친하게 지낸다. 또한 박주호는 같은 팀 동료인 카가와 신지에게 생일 케이크를 선물로 받았을 정도로 친하다.#

이외에도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희찬미나미노 타쿠미가 투톱으로 팀에서 미친 활약을 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둘 다 1살 차이의 절친이라는 점 덕분인지 매우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백승호미요시 코지는 청소년 대표팀에서 서로 맞대결을 하던 시절부터 이미 절친한 사이였고[58] 백승호가 버밍엄 시티로 이적을 했을 때 같은 팀에 있는 미요시 코지가 적응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이외에도 EPL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서 뛰었던 기성용무토 요시노리도 절친한 사이다. 그리고 J리그에서 활동했던 홍명보, 안정환과 같은 등 한국의 레전드급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고 오랜 우정을 쌓았다. 특히 홍명보나 미우라 같은 레전드 선수들은 깊은 친분이 있고, 그래서인지 정기적으로 자선경기를 열 때마다 한일의 레전드 선수들이 특히 많이 초대된다.

야구의 경우에도 박찬호노모 히데오도 좋은 관계를 맺었고 추신수는 같은 텍사스 레인저스 동료인 다르빗슈 유를 가리켜 팀의 월드 시리즈 진출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유도 -100kg 결승에서는 조구함 선수가 일본의 아론 울프에게 석패했음에도,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의 손을 높이 들어서 승리를 축하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일 양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그 외에 펜싱 대표선수들끼리도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실 국가간의 경쟁 의식을 굳이 개개인의 영역까지 가져올 이유도 전혀 없고, 가깝고 자주 부딪치는 만큼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서로를 잘 알고 정이 드는 경우도 있다.

어쩌니저쩌니 해도, 유럽이나 미국같은 외지에서는 어쨌거나 같은 문화권인 동아시아인끼리 서로 의지도 되고 친해지기도 쉽다. 게다가 야구나 축구 등의 스포츠의 경우 아무래도 동양인들은 메이저리그나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 무대로 높은 레벨의 리그에 진출하여 도전하는 입장에 가까운 만큼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상대에 대한 동질감 내지는 전우애와 가까운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박찬호마이너리그 시절 때 스즈키라는 마이너리거 동료가 있었는데 신라면이나 김치를 즐겨먹고 한국 노래를 즐겨듣으며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오죽하면 박찬호는 "너 혹시 한국계 아니냐?" 이렇게 질문했을 정도인데 물론 그는 "아니야~" 라고 즉시 답했다고 한다. 스즈키는 아쉽게도 메이저리거로 성공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박찬호가 매우 아쉬워했고, 일본에 편지까지 보내자 고맙다면서 답장을 한 적도 있다.

물론, 프로 구단에서 서로 적대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긴 하다. 이건 보통 성격 차이 때문이다. 김선우같은 경우 메이저리거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활동하던 시절 일본인 팀 동료 오카 토모카즈와 멱살잡고 서로 욕하다가 결국 싸움을 크게 벌인 바 있다. 당시 둘 다 2군 소속이었지만 김선우는 당시 7승 2패로 1군 선발을 앞뒀던 반면에 오카는 6승 5패로 부진하여 이런 점으로 열폭한 듯. 연습경기 도중 사소한 다툼이 벌어지더니만 이후로 충돌을 벌였고 결국 호텔 로비에서 둘다 말다툼이 있었고 김선우가 먼저 선빵을 날렸다고 한다. 그리고 김선우 압승... 김선우 스스로도 주먹이 앞선다고 하더니만 오카는 입가가 찢어지고 눈탱이가 멍이 들면서 제법 다쳤지만 김선우는 얼굴에 약간 멍이 들었을 뿐이다. 결국, 오카는 이후로 몬트리올로 방출되었다. 한데 나중에 몬트리올에서 다시 동료로 만났는데 거기선 둘 다 사이좋게 지냈고 김선우가 사과하자 "다 지난 일이다" 라면서 오카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김선우의 당시 회상

물론, 이런 경우는 꽤 적다. 같은 팀으로서 우선 친하게 지내는 게 먼저이고, 서로 이랬다간 팀워크가 깨지게 되니 당연히 감독에게 둘 다 찍히기 일쑤이다.

정리하자면, 경기가 지니는 의미로 인해 한일전에서는 치열하게 싸우지만 한일전을 벗어나 한 팀이나 같은 리그에서 뛴다면 동업자 정신 아래 얼마든지 친분을 쌓을 수 있다.[59]

다만, 한국과 일본 선수들과 다르게 중국 선수들과의 관계는 미묘한 편이다. 사실, 서로 잘 지낼수도 있겠지만 일단 유럽 프로축구 리그에 진출한 중국 축구선수들이 별로 없는 탓이 크다.

5. 여담

6. 다른 국가대표 간의 더비 매치


그 밖에도 여러 국가의 대진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더비 매치, 먼 나라/안 좋은 사이,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에서 확인해 보자.

7. 역대 한일전 전적

7.1.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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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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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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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동계 종목

7.4.1. 컬링

단순히 돌 굴리기 정도로만 알던 비인기 종목을 전 국민의 관심을 갖게 한것도 한일전의 효과가 크다. 스포츠 자체가 한일전의 효과를 아주 톡톡히 누렸다고 볼 수 있다.

7.5. 하계/기타 종목

7.5.1. 2020 도쿄 올림픽[78]

2020 도쿄 올림픽 한일전 / 日韓戦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VS 파일:일본 국기.svg
대한민국
8승 11패
일본
11승 8패
2020 도쿄 올림픽 경기 목록[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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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종목 경기 한국 일본 스코어 승패 비고
7월 24일 펜싱 여자 에페 개인 16강 강영미 사토 노조미 14-15 일본 승
7월 24일 태권도 여자 -49kg 8강 심재영 야마다 미유 7-16 일본 승
7월 25일 펜싱 여자 플뢰레 개인 16강 전희숙 아즈마 리오 11-10 한국 승
7월 25일 펜싱 남자 에페 개인 16강 박상영 미노베 카즈야스 15-6 한국 승
7월 26일 양궁 남자 양궁 단체 준결승 대한민국 일본 5-4[80] 한국 승 [81]
7월 28일 럭비 남자 럭비 11~12위 결정전 대한민국 일본 19-31 일본 승
7월 28일 양궁 여자 개인 32강 장민희 나카무라 미키 2-6 일본 승 [82]
7월 28일 탁구 여자 단식 8강 전지희 이토 미마 0-4 일본 승
7월 28일 배드민턴 남자 단식 A조 2차전 허광희 모모타 켄토 2-0 한국 승 [83]
7월 29일 배드민턴 여자 단식 16강 김가은 야마구치 아카네 0-2 일본 승
7월 29일 핸드볼 여자 A조 예선 3차전 대한민국 일본 27-24 한국 승
7월 29일 배드민턴 여자 복식 8강 김소영-공희용 마츠모토 마유
나가하라 와카나
2-1 한국 승 [84]
7월 29일 유도 남자 -100kg 결승전 조구함 아론 울프 0-10 일본 승 [85]
7월 30일 양궁 여자 개인 16강 안산 하야카와 렌 6-4 한국 승 [86]
7월 30일 유도 남자 개인 16강 김민종 하라사와 히사요시 0-1 일본 승
7월 30일 펜싱 남자 에페 단체 준결승 대한민국 일본 38-45 일본 승
7월 31일 배구 여자 A조 예선 4차전 대한민국 일본 3-2 한국 승 [87]
8월 4일 야구 준결승 1경기 대한민국 일본 2-5 일본 승
8월 6일 탁구 남자 단체 동메달 결정전 대한민국 일본 1-3 일본 승
}}}}}}}}} ||

8. 한일전에 대한 어록

파일:attachment/KORvsJPN.jpg
친선과 대혈투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이 오묘함
조석의 축구툰 중 한 컷.[88]
"모든 팀에 다 이겨도 일본에 지면 전패고, 다른 나라에 다 져도 일본에 이기면 전승이다."
- 김응용. 야구 대표팀 감독 시절의 발언.기사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져선 안 된다잖아요."
- 김원중.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에 3:0으로 승리한 후 인터뷰에서.
"일장기가 우리 태극기 위에 올라가는 건 눈 뜨고는 볼 수 없다."
- 김학범 감독이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대표팀 선수들에게 했던 말. 기사
나 선수 때도 그랬어! 이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피가 끓어!
제갈성렬 SBS 스피드 스케이팅 해설위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3회[89]

9. 대중매체의 한일전

한일전이 현실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들이는 라이벌전인 만큼 만화, TV 애니메이션, 영화 등 에서도 한일전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가대표 차원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스포츠 만화나 TV 애니메이션인 경우에는 거의 필수요소이다.

물론 스토리를 다루는 작가가 한국인이냐 아님 일본인인가에 따라서 당연히 내용과 결과가 보통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축구가 주제인 일본측의 만화나 애니의 경우 축구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한국에 열세를 보여서 그런지 결과만큼은 무승부로 마무리 짓는 모습도 꽤 자주 볼 수 있다. 단, 바둑이 주 소재인 히카루의 바둑에서는 한국이 최종보스며 한국이 이긴다.

그리고 원작에서 한국이 이기는 내용은 애니화 때 높은 확률로 삭제당한다.

네이버 웹툰 극야에서는 작중 인물인 한국팀 대원 승권과 일본팀 대원 사토시와 한일전을 한다고 같이 탁구를 쳤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선 남한으로 넘어간 리정혁을 무사히 데려오기 위해 북한군 5중대 대원들이 남한으로 갔다가 치킨을 먹는데, 다른 손님들이 축구를 보느라 난리법석이었다. 대원들은 처음엔 유흥의 끝이라며 탐탁치 않아 하지만, 경기가 한일전이란 말을 듣고 돌변해서 다같이 축구에 빠진다.

9.1. 대한민국 작품

당연히 대한민국의 승률이 높다. 단, 첫 판은 지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9.1.1. 축구

9.1.2. 탁구

9.2. 일본 작품

당연히 일본의 승률이 더 높다.

9.2.1. 축구

9.2.2. 야구

9.2.3. 권투

9.2.4. 그 외

10. 예외

의외로 한일전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는 경우가 있는데, 한 종목에서 실력이나 기량 차이가 너무 나서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승리를 차지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핸드볼의 경우 대한민국의 남녀 핸드볼은 세계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반해 일본을 비롯한 나머지 아시아 팀들은 약체이다. 럭비는 반대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는 반면, 한국 등 나머지 아시아 팀들은 샌드백 수준이다. 그리고 쇼트트랙도 한국과 중국이 동계올림픽 금메달 1, 2위인 반면에 일본은 아예 메달권에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그나마 헝가리의 리우 샤오린, 리우 샤오앙이 2018년부터 활약해서 메달권이지만 일본은 아니다. 양궁의 경우도 대한민국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앞서기 때문에 2012년 올림픽 남자 개인전 결승전이 한일전이 되긴 했지만 이전 준결승에서 중국 선수와 맞붙었을 때보다 승부가 싱겁게 나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또한 농구에서도 남녀 모두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수준에 넘사벽으로 밀렸을 시기에는 한중전이 더 재미었다는 평이 있다. 실제로도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한국과 중국은 자주 만나는 편이다. 하지만 2012년 들어 슬슬 이런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2013년 중국은 남녀농구 모두 몰락하는 대신 대만 남자농구가 고개를 든 상태에다, 그 동안 여자농구에서 한 수 아래라 생각해 왔던 일본은 센터 도카시키 라무와 파워포워드 마미야 유카라는 신예들의 등장으로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부터 기존의 아시아 강국들을 밀어내고 있다. 2013년 아시아 여자농구권대회에서도 일본이 20점차 이상으로 승리하고 한국을 두 번 이기며 우승하는 등 대파란을 일으키며 대한민국 여자농구에 경계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2014 FIBA 세계 여자 선수권 대회 튀르키예에선 정작 일본은 13위 한국보다 못한 실력을 보여주며 순위도 바로 밑인 14위였고 되려 중국이 6위까지 진출하며 가장 좋은 성적을 냈기에 중국 여자농구가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게다가 한국조차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위하여 2진급을 보내 비록 일본과 같은 3전 전패지만 선전했던 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에서 여자 한국농구팀이 남자팀과 같이 동반 금메달을 수상했다. 하지만 엄청난 인구에 시장성과 투자를 하는 중국 농구는 부활 가능성이 컸고 2015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에게 역전패를 당하며 한국은 6위로 탈락, 2016 올림픽 진출 플레이오프조차 나가지 못했던 반면, 중국이 우승하며 올림픽 본선 진출, 필리핀이 2위, 이란이 3위, 일본은 4위를 차지하며 셋이 플레이오프로 나가 대조를 이뤘다.

일본 바둑 역시 인기가 많고 실력도 좋은 편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과 한국의 등쌀에 밀렸다.[111]

그 이외에도 E-스포츠도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스타크래프트 같은 AOS나 RTS 게임에서는 그야말로 한국 vs 전 세계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112] 일본 같은 경우에는 애시당초 E스포츠 리그가 활성화되지 않아 그야말로 천지 차이. 2018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한일전이 성사되며 어느 정도 관심을 받았으나 예상대로 한국의 압도적인 기량으로 일본은 단 1점도 따내지 못한 채 완패했다. 특히 리그 오브 레전드 2021 월드 챔피언십에서 나올 때마다 두들겨 맞기만 하던 LJL에서 DetonatioN FocusMe가 미라클 런을 보여주며 그룹 스테이지 진출에 성공했을 때는 한국인 용병만 3명이기도 하다 보니 경쟁의식은커녕 LCK 5번 시드라며 DFM을 응원하는 반응이 다수였다. 아케이드 대회라도 DanceDanceRevolution은 일본이 약세. 오히려 e스포츠쪽은 한국과 중국의 한중전이 다른 종목의 한일전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여자축구는 비인기 종목인데다가 상기 예시들과는 반대로 일본이 너무 강해서 한일전이 재미가 없는 케이스. 최근 들어서 일본의 기량이 급상승하면서 2011 FIFA 여자 월드컵 독일에서는 한국이 예선광탈, 일본이 우승, 2015 FIFA 여자 월드컵 캐나다에서는 한국이 첫 2라운드[113] 진출, 일본이 결승진출 등 한일간의 실력차가 넘사벽급으로 벌어지면서 주목받지 않는 한일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나마 한국 입장에서 조금 위로가 될 만한게 2015년 여자 동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여자 국가대표팀이 일본 여자 국가대표팀을 2:1로 누르는 이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변이라 하기도 좀 그런게 일본여자대표팀은 바로 직전의 월드컵 우승에 취해서 이 대회는 주전 다 빼버리고 나온 대회라 일본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일본 내에서는 물론 2011년 우승을 통해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져있었던 터라[114] 한국 남자 축구의 오만 쇼크 이상급의 굴욕 분위기일 듯 했는데 생각보단 조용했다. 어차피 이미 일본은 직전 월드컵 우승에 바로 전 대회서 준우승으로 2회 연속 결승에 올라가 잘했기 때문에 일본 축구협회에서는 한중일 이벤트성에 지나지 않는 동아시아대회는 고생한 1진급 핵심 선수들 좀 쉬게 해주고 이번엔 그냥 2진급들에게 기회주자며 월드컵 핵심 주전 멤버들을 대거 제외한 2진 3진급으로 꾸렸다. 따라서 일본 내에서도 어느정도는 성적은 체념한지라 별 반응 없었고(실제로 일본은 2015년 동아시아 대회 여자부에선 꼴찌 차지) 대한민국에서는 그냥 "한일전 이겼네, 아싸" 정도의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여자축구가 얼마나 비인기종목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모터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인기와 입지가 처참할 정도로 낮아서 한국 연고팀과 일본 연고팀이 맞붙어도 별 주목도 없는데다 객관적인 실력도 밀려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조차 변방 취급이다. 일본, 호주가 꾸준한 편이고, 중국도 무시못할 실력의 드라이버를 내며, 그 뒤로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도 취급이 나쁘지 않다. 한국은 이 국가들보다도 한참 뒤쳐져 있다.

배구 역시 한국이 아시아에서도 상위권임에도 중국과 일본의 실력이 더 좋기 때문에, 중일전이 더욱 치열하다. 거기에 2000년대 후반부터 여자배구 한정으로 태국까지 끼어든 상태라 중태전 혹은 일태전이 더 재밌다는 얘기도 있다.[115]

한편 상술했듯 야구 역시 현재 일본의 일방적인 우세로 굳어졌기에 민족 감정을 배제하면 스포츠적 라이벌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11. 비유적 표현의 한일전

일본인이 참가하지 않는 매치임에도 일본과 연관이 있으면 관련 댓글에 한일전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KBO 리그에서는 재일교포 출신인 김성근이 감독이었던 시절 한정으로 한화 이글스, 친일파 박승직이 설립한 두산그룹이 모기업인 두산 베어스,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신격호가 세우고 한일혼혈신동빈이 경영하고 있는 롯데그룹이 모기업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 한일전에서 승리했다는 조롱섞인 댓글이 보였다. 현재는 포털사이트들의 스포츠 기사 댓글 폐지로 보이지 않는 상태.

정치권에서는 일부 민주당계 정당 지지자들이 보수정당에 친일파 이미지를 씌워서 양당간 선거를 한일전이라고도 부른다.기사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한일 해저터널 이슈를 꺼낸 김종인을 언급하며 정청래가 보궐선거는 한일전이 될 것이다 언급했으며, 그 반대로 일부 보수 지지자들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던 박영선 남편의 도쿄 부동산 보유를 비꼬아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는 한일전이라고 불렀다. 반대로 보수 지지자들은 민주당계 정당에 친중, 친북 이미지를 씌워서 양당간 선거를 한중전 내지는 친북 세력과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한반도에서 중국과 일본이 싸우니 청일전쟁이 따로 없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힘을 두고 이번 총선은 한일전이라고 다시 한번 언급했다.

12. 관련 문서


[1] 그래서 2013년, 2017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한국이 광탈하자 일본 쪽에서 내심 아쉬워했다. TV로 생방송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한일전의 광고단가도 타 국가대항전보다 높기 때문이다. 경기 흥행까지도 거론될 정도로 걱정이 많았다.[2] 일본에서는 전범(戦犯)이라 부르며 깐다.[3] 다만 FIFA 기준의 공식 명칭은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 즉 한국-일본 월드컵이 맞고, 이는 일본 내에서 일본어로 표기할 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2002 한일 월드컵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결승전을 일본이 갖는 대신 명칭에서는 한국이 앞에 오는 것으로 공식 합의했기 때문에, 2002년 월드컵은 일본에서도 무조건 한국을 앞에 표기하여야 한다. 다만 FIFA가 순서를 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암암리에 ‘일한 월드컵’으로 표기한다.[4] 왼쪽은 박지성, 오른쪽은 혼다 케이스케. 혼다 케이스케가 한국에 우호적이고 박지성도 일본에 우호적이나, 그림에도 나와 있듯이 '친선'과 '대혈투'가 공존하는 게 한일전이라 어깨동무를 하면서도 서로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패는 장면으로 묘사했다.[5] 대표적 사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임창용2020 도쿄 올림픽 야구고우석.[6] 다만, 반대로 승리의 주역이 된 선수는 그전까지 부진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해도 한동안 까방권이 주어지고 평가가 반전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2012년 카디프 대첩에서 원더골을 넣은 박주영은 그전까지 와일드카드 값을 못한다고 대차게 까이다 순식간에 여론이 반전되었고, 2019년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넣은 황인범은 그 전까지 FC 코리아의 타켓이 되어 신명나게 까이다 이 골 하나로 여론이 좋게 바뀌었다.[7] 그 5승 1무에는 이민성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축구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 도쿄 대첩이 포함되었다.[8] 다른 식민지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했다. 인도만 해도 크리켓에서 영국이랑 사생결단 경기를 벌여서 이긴 실화가 인도에서도 영화로 나온 바가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네덜란드와 스포츠 경기를 하면 역시 사생결단으로 경기에 임한다.[9]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같은 연령제한이 있는 대회는 A매치로 취급하지 않는다.[10] 1940년대 초반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었고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에는 추축국이었다는 이유로 일본과 동서독의 스포츠 행사 참여가 제한되었다.[11] 물론, 올림픽이라는 여러 종목을 통틀어 종합적인 스포츠 실력이 세부적으로 개별 종목 단위에서 따져본다면 국력에 비례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력 = 스포츠성적 이렇게 연계성이 있다는 것이고 무조건 100% 예외가 없다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축구에서는 한국보다 경제력이 약한 아프리카권 국가에서도 상대적으로 부유한 아시아권 국가보다 실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마라톤에서는 아시아권 국가들보다 아프리카권 국가들이 대체로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12] 왜 홈 & 어웨이가 아닌 두 경기 모두 어웨이인 일본에서 치렀냐면 역시 이승만이 "일본 놈들을 대한민국 땅에다 발을 들이도록 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 때문이라기보단 솔직히 조금 쫄렸는데 일본이 안방에서 승리할 경우, 패배에 대한 성토와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마저도 일본한테 질까봐 출전 자체를 포기하려고 했는데 당시 대한체육회장 이기붕이 이길 수 있다고 간곡히 설득했고 감독 이유형이 먼저 진다면 안 돌아오고 차라리 현해탄에 빠져 죽겠다고 간청하여 겨우 출전할 수 있었다. 6.25 전쟁 이후 북한과 맞상대는 극력 피하려 했던 모습과 비슷하다.[13] 농구는 넘사벽으로 잘하지만 축구 실력은 떨어지며 야구 인기는 거의 없다.[14] 다만 하도 축구에서 마주치다 보니 축구 한정으로 대한민국-이란, 일본-호주는 어느 정도 라이벌 관계가 생겼다.[15]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본선진출 티켓 1장을 두고 홈 앤드 어웨이에서 한국이 모두 승리하기도 했다.[16] 이 시절의 일본이 어느 정도였냐면, 1981년까지 그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래도 1980년대 이후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2000년대 이후로는 중일전 무패를 기록하고 있지만 과거에 다수 패배한 기록 때문에 상대전적은 17:15로 근소 우위이다.[17] 참고로,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조별리그 한일전은 일본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무려 40년 만에 처음으로 승리한 경기였다.[18] J리그 명문 구단에서 활약하는 한국 축구선수들도 과거부터 많았다.[19] 물론,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고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준 종목은 그동안 야구가 압도적이었던 터라 축구는 만년 2인자 신세였다. 한국 내에선 그 어떤 스포츠도 감히 비교할수 없는 인기를 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는 달리 일본은 국대 축구조차 야구를 누르지 못할 정도로 야구의 인기는 어마어마하다.[20] 사실 현재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피지컬은 세계적으로 비교해봐도 평균 이상이다. 또한, 한국 국대의 평균 신장도 180cm 중반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과 비교를 해도 최상위권에 속했다. 평균 신장 순위가 월드컵 본선 참가 32개국 중 5위였다.[21] 4대리그 주전들로 가득 차있고, 이걸 바탕으로 2022년 월드컵에서는 최악의 죽음의 조를 1위로 통과하는 저력을 보였다.[22]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오랜 야구 역사를 자랑하며 NPB는 세계 2위의 프로야구 리그이다. 또한 WBC 출범 이래 5차례 열린 대회에서 일본은 3차례나 우승을 거머쥐었다. 선수 개인으로 보아도 일본 야구의 전설 스즈키 이치로는 명전 첫턴 입성이 유력한 MLB의 레전드 중 하나이고 현 일본의 국민 스타인 오타니 쇼헤이는 세계 야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게다가 고교야구 대회인 고시엔은 100년이 넘는 역사와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듯 야구 전통이 매우 탄탄하다.[23] 철권의 경우 아케이드 위주일 당시에는 한국이 압도적인 원탑이었지만 이후 철권7부터 가정용의 발매로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일본을 포함한 타국 유저들의 실력이 가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그래도 전반적인 대회성적은 한국이 더 높았지만 2019년 Tekken World Tour 파이널 우승을 일본에게 넘겨주고 2020년 EVO JAPAN 에서는 8강에 일본인이 6명이거나 2019년 초와 2020년 초에 열린 대규모 한일전에서 두 번 다 일본에게 완패하는 등 날이 갈수록 빈말로라도 앞선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24] 1위는 반대편에 있던 "아키라 꼬마" 신의욱. 대회에서 한일전을 겪진 못 했지만 워낙 강력한 포스를 보여주고 대회에서 우승했는지라 "지나치게 강해서 이길 엄두가 안 난다"고 관객들이 말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대회가 끝나고 치바, 시부야 등 일본의 대도시 게임센터를 돌면서 일본의 버파러들을 상대했는데, 조학동까지는 어찌어찌 꺾었어도 신의욱한테는 여지없이 무너졌다고 한다. 당시 신의욱과 조학동 두 사람은 무려 50연승을 넘게 했는데, 시부야에서는 상대방의 주캐랑 똑같은 캐릭터로 플레이하는 미러전만으로 50연승을 이루어내는 미친 짓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 버파 선수들은 한국 현지에서 복수 겸 배워가겠다는 의미로 한국 오락실로 신의욱과 조학동을 찾아왔으나, 정작 두 사람은 만나지도 못하고 오락실에 있는 지나가던 고등학생들한테 박살이 났다고 한다.[25] 레밀리아 우승[26] FEFEMZ* 우승[27] NICHAN.T 우승[28] CORBY.QS, G.G.D.QS, SHION-Y, FEFEMZ*, 그리고 우승자인 A.K.R-Y[29] FEFEMZ* 우승[30] NICHAN.T가 2연패를 달성했다.[31] 오락실 게임에서 과거에 열세였던 이유는 일단 유저수 자체나 지명도가 너무 낮고 정발이 안된 기기가 많았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면서 정발된 지 꽤 지난 기체 종목에서 많은 실력자가 양산되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생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투덱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The 9th KAC 투덱부문에서 유승을 차지한 KKM*.[32] 참고로 일본의 오버워치의 인기는 e스포츠 선수권 오사카 예선에서 한 팀밖에 참가를 안해서 그대로 그 팀이 우승하는 웃픈 상황이 연출될 정도로 참담하다. 심지어 현재 컨텐더스에서 뛰고 있는 일본 프로게이머팀이 VARREL 단 한 팀밖에 없었을 정도. 게임 자체보다는 2차 창작에서의 인기가 훨씬 더 많을 정도로 흥행이 낮았지만 오버워치 2의 흥행과 2023년 동아시아 리그의 개방으로 인해 일본에서 신생 오버워치 프로게이밍 팀들이 생기는 중이다.[33] LCK(한국), LPL(중국), LCS(북미), LEC(유럽)[34] 이 경기에서 일본 팀의 상대는 유럽 리그 소속 Splyce(현 MAD Lions)라는 팀이었다.[35] T1은 LCK 3시드(선발전 우승) 자격으로 지명식 3번 풀로, DFM은 서머 우승으로 플레이-인에 출전, B조서 1위 타이브레이커 매치 승으로 지명식 4번 풀에 들며 그룹 스테이지에 합류했다.[36] 총 2개 라운드에서 각각 한 번씩 대결을 한다.[37] 여기서 왜 DFM이 롤드컵을 못 나갔냐면 일본이 플레이-인 지역이라 무조건 서머 시즌 우승을 해야만 롤드컵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국제 대회인 Mid-Season Invitational(약칭 MSI)에서는 메이저 지역도 자국 리그 스프링 시즌 우승(LCS는 2021년의 개편으로 스프링 시즌, 서머 시즌이 폐지, 단일 시즌화되었고 그 대신 msi 출전 자격을 가리는 Mid-Season Showdown이라는 컵대회를 우승해야 한다.)을 해야 올 수 있다.[38] 2021년 로스터 기준 스틸[116], 아리아, 선수가 용병으로 뛰고 있다.[39] 이번 롤드컵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인해 아리아 선수는 LCK에서 미드가 아쉽다는 평을 듣는 팀 팬들이나 관계자들이 영입목표로 삼고 있다.[40] 피온3로 지역예선을 하고 최종예선에 오르는 방식이 추가되었음에도 최종예선에서 탈락하였다.[41] 현재는 한국 스폰서가 붙은 프로팀이 모두 해체되었으나 팀원들이 모두 한국 선수로 구성된 팀들이 있다.[42] 에이펙스 레전드 프로리그인 ALGS는 매시즌마다 하부리그 팀들과 1부 리그 하위팀이 1부리그 출전권을 놓고 수많은 경기를 한 후, 1부리그 출전권을 얻은 팀들과 기존 1부리그 상위팀을 합해 단 20팀만이 경기를 진행한다.(스폰서를 찾지 못했지만 실력있는 팀들도 참여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탈락하는 팀이 수백팀이다.) 한국인으로 구성된 팀은 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1부리그에 자주 얼굴을 비춘다.[43] 여담으로 한국 선수들의 유명세는 꽤 있는 편이라 이젠 프로리그에서 뛰지 않는 선수들도 인터넷 방송 등에서 활동하며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44] 에이펙스 레전드가 국민게임인만큼, 일본팀도 1부리그 단골이다.[45] 2023 퍼시픽 리그 뷰어십 상위권 경기가 모조리 제타의 경기이고, 트위치 채널의 시청자 수 또한 한국 채널보다 일본 채널이 몇 만 명이나 높다.[46] 당시 레이스에서는 인디게이트로 불참하였다.[47] 브리지스톤은 2011년부터 F1의 타이어 공급 제조사가 피렐리로 바뀐 이후 피렐리의 타이어가 특정 경기(ex:영국 그랑프리 등)에서 이슈를 보이거나 논란이 되면서 브리지스톤 때가 더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48] 2012 벨기에 GP에서 달성[49] 당시 드라이버는 영국 국적의 앤드류 코완.[50] 당시 드라이버는 프랑스 국적의 패트릭 자니롤리와 영국 국적의 앤드류 코완.[51] 당시 드라이버는 프랑스 국적의 파스칼 리갈.[52] 일본과 비교하기 이전에 인도, 태국,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는 커녕 당장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실력이 매우 부족하며 관련 인프라도 전무하다.[53] 에이킨은 데뷔했던 사키르 GP에서 방호벽을 들이받아 리타이어하면서 평가는 그저 그랬다. 이후로도 연습주행을 하긴 했지만 아예 F1 레이스 카를 타 볼 기회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54] 그래도 에이킨은 유럽 르망 시리즈(ELMS)에서 LMP2(오레카 07) 차량으로 챔피언십 2위를 하였다.[55] 2009년 르망 24시 LMP2 클래스에 Navi Team Goh 소속으로 포르쉐 RS 스파이더 RS를 주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경기 예선전에서 LMP2 클래스 가운데 같은 RS 스파이더 에보로 참가한 팀 에섹스보다는 느렸지만 전체에서 2위를 할 만큼 빨랐으나 경기에서는 종료 직전에 고장나 리타이어하였다.[56] 그러나 당시 예선전에서 같은 클래스 중에서 최하위였고 레이스에서도 차량 변속기 고장으로 중반에 리타이어되었다.[57] 2022년 일본 랠리에서 현대가 원투 피니쉬를 해내며 나름 승리 아닌 승리를 할 수는 있었다.[58] 쿠보와 미요시 코지는 같은 팀의 유스 출신이라 서로 친한 사이이며, 쿠보와 백승호도 어릴 때부터 친한 사이라 두루두루 잘 지낸다고 한다.#[59] 한일전뿐만이 아니라 프로 의식을 지닌 선수라면 누구든 친분보다는 자신에게 돈을 지불한 구단과 그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 싸운다. 국가대표전은 물론 개인의 출세를 위한 바탕이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라에 대한 책임이니 사명이니 하는 것들이 들어간다. 사실 한국과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튀르키예와 그리스도 사이가 나쁘지만 유럽 여러 리그에서 같은 팀에서 각자 잘 뛴다든지 종종 아랍 선수들이나 이스라엘 유대인 선수들이 한팀에서 뛸때도 우선은 같은 동료임을 먼저 생각하며 뛰기도 한다. 전쟁도 여러 번 벌이며 원수지간인 인도와 파키스탄도 크리켓 리그에서 같이 사이좋게 같은 팀 동료로 경기에 임한다. 이런 곳에서 서로 싸워봐야 그 팀에서 둘 다 비난과 같이 징계대상일 뿐이다.[60] 부상자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일본 또한 살인 태클을 밥먹듯이 한다. 1997 월드컵 예선, 2017 동아시안컵, 2023 아시안 게임에서도 언제나 한방에 레드카드를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백태클을 헤댄다.내로남불[61]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이 대결이 어쩌면 열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브라질의 4강전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면서 이러한 소동이 발생하진 않았다. 그 뒤 결승에 진출한 아르헨티나의 국민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자 브라질 국민들은 결승전에서 독일을 응원했다. 숙적인 나라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 트로피를 드는것이 어지간히도 싫었던 모양. 그리고 브라질 국민들의 바람대로 독일은 혈투 끝에 마리오 괴체의 연장전 결승골로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브라질이 미네이랑의 비극을 잊은 건 아닌지라 카잔의 기적 당시 독일에게 장례식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엄청 좋아했다.[62] 페루 지역에서 일어난 잉카 제국에게 정복된 뒤에도 피지배 원주민들이 잉카의 지배에서 독립하려고 여러차례 반란을 일으켰다.[63] 실제로 콜롬비아와 에콰도르는 스페인 식민지배에서 독립 이후에 대콜롬비아 공화국으로 과거에 단일국가를 이룬 적이 있었다.[64] 이프니, 타르파야 등 일부 남부 지역과 리프산맥 일대 등 북부 지역 한정.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들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65] 이란은 아랍이 아닌 아리안계 민족이다.[66] 인도네시아네덜란드의 식민지였고, 말레이시아영국의 식민지였다.[67] 서북부 지역 한정. 수도 부쿠레슈티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오스만 제국 시기 튀르키예 지배하에 있었다.[68] 시마다의 어머니가 아사다 마오의 열렬팬이어서 이름을 마오로 지었다고 한다.[69] 그나마 2001년 아시안컵에서 1:1로 비기면서 연패를 끊음.[70] 특별귀화 선수다.[71] 이전에 동계 패럴림픽 휠체어 컬링에 참가한 적은 있다.[72] 이는 컬링 믹스 더블에서 중국전과 오버랩 된다. 우리나라의 연장전 마지막 해머를 던질 차례인데 중국이 1번을 먹고 있던 상황이었다. 라인도 충분히 있는 상황이기에 1번만 우리나라 해머가 차지하면 그대로 게임이 끝나는 상화이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경기를 중국에 내줬다.[73] 1972 뮌헨 오승립, 1984 로스앤젤레스 김재엽, 황정오, 1996 애틀랜타 곽대성, 2000 시드니 정부경, 조인철, 2020 도쿄 조구함[74] 1990년 아시안 게임 동메달 획득[75] 중국과는 1점 차로 승리했다.[76] 단, 드라이버들 중에선 한국인이 없고, 일본인도 카츠타 타카모토 1명뿐이라 한일전 같지는 않다.[77] 그 대회에서 일본은 사상 첫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한다. 정반대로 한국은 아예 참여하지도 않았다.[78] 공식 자료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번외로 집계한 것임에 유의.[79] 상대로서 직접 경기한 경우만 포함. 개인 기록 경기에서 만난 경우는 포함하지 않음. 예) 축구 8강전에서 만난 경우는 포함. 수영 결선에서 만난 경우는 미포함.[80] (SO 28-28)[81] 세트 스코어 4대4 동점 이후 간 슛오프에서까지 28:28 동점이었던 초접전. 슛오프에서 김제덕이 쏜 10점이 과녁 정중앙에서 0.33cm 차이, 일본 후루카와 타카하루가 쏜 10점이 0.577cm 차이로, 점수가 같으면 과녁 정중앙에서 가장 가까운 화살을 쏜 팀이 이긴다는 룰에 따라 간신히 승리했다. 이 게임 이후 한국팀은 결승에서 승리하며 금메달, 일본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하며 동메달을 획득했다.[82] 장민희는 아시안컵 우승자이자 랭킹 라운드 순위 2위, 나카무라 미키는 랭킹 라운드 순위 31위로 일본 선수 중에도 최하위였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많이 부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장민희가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최종 순위 17위를 기록한 장민희는 2개월 후 본인의 첫 번째 세계 선수권 대회인 양크턴 대회에서 개인전, 단체전 우승을 기록하며 당해년도 양궁 대표팀의 유일한 개인전 다관왕이 된다.[83] 이번 대회 한일전에서 일어난 가장 큰 이변 중 하나. 일본 선수 모모타 켄토는 세계랭킹 1위로 이번 대회 1번 시드를 부여받은 최강자였다. 이번 대회 단식 예선은 3명씩 14개조로 구성되는데, 1번 시드 조와 2번 시드 조는 조 1위시 8강에 직행하고, 나머지 조 1위 12명은 16강을 거친 뒤 승리한 6명이 8강에 진출하여 기다리고 있는 두 명과 함께 8강전을 벌이는 구조였다. 따라서 모모타 켄토는 무난하게 조 1위를 차지하고 8강에 안착하여 16강을 거치고 올라온 선수를 상대하는 편한 대진이었는데, 허광희가 모모타 켄토를 잡고 조 1위를 하는 대이변을 일으키면서 오히려 허광희가 대진의 덕을 봐서 8강에 직행하게 되었다. 모모타 켄토를 위해 차려놓은 밥상을 허광희가 뺏어 먹은 셈. 불의의 일격을 당한 모모타 켄토는 조별예선의 치명적 1패로 인해 토너먼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84] 남자 양궁 4강전에 맞먹는 최고의 명승부. 세트 스코어 1-1로 진입한 3세트에서 김소영-공희용 조는 16-19까지 밀리며 패색이 짙었으나 끈질기게 추격하여 듀스를 만들고, 긴장감 넘치는 듀스 대결 끝에 28-26으로 승리를 따냈다.[85] 이번 대회 최초의 결승 한일전. 9분이 넘는 혈투 끝에 아론 울프가 한판승을 차지했다. 경기 종료 후 패자인 조구함이 승자 아론 울프와 포옹하고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패배를 깨끗이 승복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86] 일본의 하야카와 렌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선수로서 한국 이름은 염혜련이다. 한국 선수와 한국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일본 선수간 대결이라는 흔히 보기 힘든 희귀한 대결에서 마지막 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안산이 6-4로 승리를 거뒀다. 하야카와 렌이 일본으로 귀화하긴 했지만,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갖기도 하고 한국 선수들과 친분도 있기 때문에, 경기 후 승리한 안산을 응원하면서 훈훈하게 끝났다.[87] 이 여파로 일본은 다음 조별경기였던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최종경기에서 패해 토너먼트 진출이 좌절되었다.[88] 왼쪽은 박지성, 오른쪽은 혼다 케이스케. 혼다 케이스케가 한국에 우호적이고 박지성도 일본에 우호적이나, 그림에도 나와 있듯이 '친선'과 '대혈투'가 공존하는 게 한일전이라 어깨동무를 하면서도 서로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패는 장면으로 묘사했다.[89] 상단에 게시된 영상처럼 이 회차 꼬꼬무의 소재가 역사상 최초의 한일전이었다. 참고로 제갈성렬이 선수 시절이었던 1990년대 초중반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이라 반일 감정 또한 21세기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90] 전반 16분에 마사요시에게 동점을 허용한 뒤 전반 21분에 키무라 요시히로에게 역전골을 내주고, 전반 30분에 나동태의 53미터 프리킥 슛을 골키퍼 키쿠치 카와모리가 간신히 막아낸 걸 전도현이 동점골을 넣었다.[91] 한국은 세 번째 키커인 강찬과 네 번째 키커인 이한얼이, 일본은 두 번째 키커인 히사이시와 세 번째 키커인 가토가 실축.[92] 사실 북한이 그들의 최고 선수인 박영철만 남한팀에 보낸 정도니 단일팀이라 하기에도 뭐하다.[93] 동태가 청소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 끝난 뒤 아버지와의 특훈을 통해 완성한 슛으로 그라운드에 낮게 깔리면서 초고속으로 날아가는 슛이다.[94] 이때 마사요시는 자신의 슛이 골로 연결되지 않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머리를 박고 그라운드에 쓰러진다. 물론 만회골을 넣기 전에 표백제의 바이시클 킥을 육탄 방어하다가 이마가 깨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95] 여담으로 이 만화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갓 시작할 쯤에 완결이 되었는데(다만 마지막 권 발매는 월드컵 이후였다.), 실제로 한국이 간발의 차이로 월드컵 결승 진출을 놓치며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고 만화에서처럼 한국이 진짜로 이탈리아를 골든골로 이겼다는 점을 보면 꽤 흥미롭다.[96] 이게 왜 중요하냐면 훗날 김호천이 네덜란드로 귀화하는데 그가 유일하게 한국 국가대표로 뛴 이 매치가 A매치로 인정되지 않은 덕에 그가 내덜란드 대표로 뛰는데 지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97] 일본 골키퍼의 코이즈미의 할아버지는 아예 대놓고 혐한이였고 코이즈미도 경기 후 반성을 하긴 하지만 그전까지는 조센징이라고 욕도 하며 한국을 도발하는 등 대놓고 어그로를 끌었다.[98] 이때 코이즈미는 호야의 드리블에 이은 골을 보고 "이런 초 그레이트한 드리블은 처음이다...!"라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이후 서로의 파인 플레이에 썸즈 업을 하는 건 덤이다.[99] 참고로 가모 감독은 수비수, 미카미 감독은 골키퍼, 카타기리는 공격수였다.[100] 떡밥을 뿌렸던 독일과는 결국 만나지도 못해 떡밥을 써먹지도 못한 걸 생각하면 그나마 이탈리아, 한국은 양반이다(...) 역시 떡밥을 뿌려왔지만 4강에서 만나고도 뉴스기사 한장으로 때워져버린 네덜란드는 더더욱 굴욕.[101] 주인공 츠바사는 브라질 팀, 나머지 일본의 유럽파는 유스 소속.[102] 이전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쓰였던 방식이다. 작가가 새로운 최종예선 방식이 발표되기 전에 이 만화를 그린 듯하다.[103] 일본 유학의 경험이 있었고 도쿄선발팀에 카쿠 에이시의 사촌.[104] 한국명 곽영사.[105] 작가가 이에 대해서 일본 내 혐한초딩 독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는지 애니메이션에서의 전개는 이와 반대로 서울팀이 4-3으로 앞서가다 도쿄팀이 종료 직전 극적인 골로 4-4 무승부를 거두는 식으로 바뀐다.[106] 하지만 일본 캐릭터들만 미형으로 그리고, 이윤경을 제외한 서울선발팀의 캐릭터들을 너무 험상궂게 그렸다고 혹평하는 이들도 있다.[107] 설정상 박주영을 베이스로 한 선수 같다.[108] 한국명 이추준.[109] 신타쿠 코지가 쓴 아동 학습도서. 말 그대로 동물들이 스포츠 경기에 나선다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하고 상상해서 쓴 책이다.[110] 여담이지만 해당 도서에서는 북한의 동물인 백두산호랑이아무르표범이 한국 팀으로 나오고 풍산개가 한국을 응원하는 걸 보면, 북한의 동물들은 한국을 지지하기로 한 모양이다.동물이어서 자유롭게 탈북했나??[111] 그나마 2013년 이야마 유타라는 신성이 나와서 6관왕을 휩쓸면서 체면치레는 하고 있다.[112] 그나마 리그 오브 레전드는 중국이 비빌 만하다.[113] 2015년부터는 16강[114] 국대팀 전체가 일본의 국민훈장에 해당하는 국민영예상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115] 다만 한국이 두 나라를 이길 전력은 있다. 실제로 2010년대 들어 남자배구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을 3:0 셧아웃으로 발라버리는 경기가 많으며, 여자배구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22연패를 했으나 2012년 들어 일본 여자배구도 세대교체를 겪고 있는 중이라 판도가 바뀔 수 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와서 남자배구 및 농구에서 이란이 아시아 최강급으로 발전해버려 한중일이 이란에게 고전 중이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남자 농구는 극적으로 이란을 제치고 우승했지만 남자배구는 4강전에서 일본에게 패했다. 그리고 그 일본은 이란에게 패하며 이란의 첫 아시안 게임 남자 배구 금메달을 넘겨줘야 했으니. 더불어 한국남자배구는 2000년대와서 이란만 만나면 연패를 기록 중이다. 그나마 2015년 이란을 이기며 설욕했다. 하지만 2016년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에서 여자배구 한일전을 김연경의 캐리로 이겼다. 자세한 건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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