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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 Serbo-Bulgarian War Сръбско-българска война Српско-бугарски рат | |
기간 | |
1885년 11월 14일 ~ 28일 | |
장소 | |
세르비아, 불가리아 일대 | |
원인 | |
독립 이후 세르비아 왕국과 불가리아 공국의 갈등 | |
결과 | |
불가리아 공국의 승리 | |
영향 | |
부쿠레슈티 조약 체결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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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별 전장 변화 동영상 |
영어:Serbo-Bulgarian War
불가리아어:Сръбско-българска война
세르비아어:Српско-бугарски ра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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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85년 동유럽 발칸 반도에서 세르비아 왕국(Kingdom of Serbia)과 불가리아 공국(Principality of Bulgaria)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2. 배경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던 발칸 반도의 지역 국가들은 그리스를 시작으로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이 독립을 성취했다. 그러나 오스만에서 독립 후 이 국가들은 영토 문제, 국경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었고 더욱이 여러 열강의 이해관계 등이 얽히고 설키면서 발칸 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한편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도 러시아-튀르크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했으나 두 나라는 독립 이후 서로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비록 이 두 국가 모두 남슬라브족에 동방정교권 국가였지만 양국은 발칸 반도의 맹주 자리를 놓고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게다가 국경 지역의 브레자보라는 마을을 놓고 국경 분쟁까지 발생하면서 두 나라의 갈등은 더욱 더 심해져 1885년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3. 전개
전쟁 당시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의 전세 상황을 그린 지도. 빨간색 화살표는 불가리아군, 녹색 화살표는 세르비아군이다.
그러나 전쟁의 발단은 두 나라의 국경 분쟁이 아닌 그보다 더 멀리 떨어진 동루멜리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본래 동루멜리아는 불가리아가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자 불가리아에 편입되었으나 당시 발칸 반도의 정치적 혼란과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한 유럽 열강들의 반발로 1878년 베를린 회의가 열리게 되었고 이 회의에서 동루멜리아는 오스만 제국에게 다시 귀속되고 말았다.
그러던 1885년 9월 동루멜리아 지역 내 불가리아계 주민들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켜 동루멜리아를 장악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동루멜리아를 장악한 불가리아계 반란군들은 불가리아에 동루멜리아의 합병을 요청하였고 안 그래도 영토를 뜯긴 불가리아는 반란군들의 요청을 수용하여 동루멜리아에 군대를 진주시켜 합병하였다. 그러나 베를린 조약에서 정해진 영토 범위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세르비아가 불가리아의 동루멜리아 합병에 트집을 잡아 반대하고 불가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발칸 영토 절반을 내놓으라고 땡깡을 부리면서 안 그래도 국경 문제로 안 좋았던 두 나라 간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결국 1885년 11월 17일 60,000명에 달하는 세르비아군이 국경을 넘어 불가리아를 침공했다. 전쟁 초기 전세는 세르비아에게 유리하였으나 11월 19일 세르비아군이 국경 지역 슬리브니차(Slivnitsa)에서 불가리아군의 방어 공세에 대패하면서 전세는 불가리아군에게 유리해졌다. 세르비아군의 침공을 방어하는데 성공한 불가리아군은 세르비아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고 11월 26일에는 세르비아를 침공하면서 불가리아군이 세르비아 본토까지 진격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먼저 불가리아를 침공해 놓고도 전쟁에서 족족 깨지며 자국 영토에까지 불가리아군을 들이게 된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의 요청을 수용하여 불가리아에게 전투 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불가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정전 요청을 수용하여 불가리아군이 점령하고 있던 세르비아 영토에서 군 병력을 모두 철수시키면서 전쟁은 11월 28일 종료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86년 두 나라의 대표가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두 나라의 국경선 재조정과 브레자보와 동루멜리아의 불가리아 귀속을 골자로 하는 부큐레슈티 평화협정에 서명하면서 동루멜리아에 대한 불가리아의 귀속이 승인되어 동루멜리아는 재차 불가리아에 합병되었다.
겨우 보름 정도 지속됐지만 양측 다 합쳐 10만이 넘는 군대가 맞붙은 전쟁이었다. 사상자만 해도 양군(세르비아군 전사자 770명, 부상 4570명/불가리아군 전사자 550명, 부상자 4232명) 합쳐 1만 명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