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조선 | |
장르 | 대체역사, 타임슬립 |
작가 | 인간9호 |
출판사 | 문피아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2. 05. 11. ~ 2023. 05. 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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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 등을 집필한 인간 9호.2. 줄거리
성종 초기 조선으로 트립한 21세기 한국의 동물농장.
농장 주인 김금수는 겁 먹은 동물들을 바라보면서 굳게 다짐했다.
"조선의 미래고 나발이고 불쌍한 내 새끼들부터 살려야지."
하지만 그의 행동과 귀여운 동물들은 조선의 미래를 바꿔나가는데...
농장 주인 김금수는 겁 먹은 동물들을 바라보면서 굳게 다짐했다.
"조선의 미래고 나발이고 불쌍한 내 새끼들부터 살려야지."
하지만 그의 행동과 귀여운 동물들은 조선의 미래를 바꿔나가는데...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2년 5월 11일부터 연재를 시작했으며 2022년 7월 20일자로 유료화 되었다.2023년 4월 14일에 본편이 284화로 완료되었고, 4월 17일부터 5월 9일까지 성종과 김금수의 후대 이야기 및 21세기를 다루는 번외편이 연재되면서 완결을 맞이했다.
4. 등장인물
4.1. 조선
4.1.1. 귀물원
- 김금수(金金秀)
본작의 주인공. 작품 시작 시점에 20대 후반 추정. 정3품 사복시 정에서 승진해서 종2품 사복시 제조를 거쳐 정2품 축문관[1] 대제학의 직위에 오르면서 잡직으로서는 조선 역사상 최고로 출세했다.[2] 이후 육조가 칠조로 개편되면서 축조판서에 오르고,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에는 우의정이 되었으며, 한명회 사후에는 영의정에 오른다.[3] 대외적으론 한양위라는 칭호로 불린다.
대단한 동물애호가 청년으로 하버드 대학까지 유학하며 동물들을 위한 공부를 해왔다. 귀국 후 부모님이 남긴 땅에 동생 김진수와 같이 동물농장을 차려서 평생 동물들과 어울려 살아가려 했으나, 오픈 얼마 전 터진 구제역 사태로 정신없는 와중에 갑자기 불어닥친 대형 모래폭풍에 농장 전체가 조선 시대 성종 치세(1474년) '인왕산'에 타임슬립하고 만다.
중세 한국어에 속한 조선어와는 제대로 대화가 어려웠으나, 중국의 판다 관련 연구와 기록을 읽겠다고 한자 공부에 매진한 시기가 있었기에 필담으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농장의 동물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중세국어도 익혀서 단 몇개월만에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익혔다. 서역인인 자신을 경계하는 조정에 자신과 동생이 서역의 한 나라에서 동물을 담당하는 관직을 지내던 사람들이라고 둘러대고, 동물들이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필사적으로 설득해 간신히 동물들을 지켜낸다.
초반에는 동물농장의 식구들을 살려내는 것이 목표였으나, 성종의 지지와 바뀌어 가는 조선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폭풍승진해 가는 걸 계산하고는 아예 장관격인 판서급까지 승진해서 경국대전에 동물보호법을 넣겠다는 야망을 가지게 된다.[4]
거각우를 필두로 서갈계와 양타 등을 길러내어 나라의 군사력과 내정 확충에 큰 공헌을 하면서 계속 승진해 트립 이후 단 2~3년만에 육조판서에 비견될 만한 권한을 갖게 되었다. 10년에 한번 중시에 출제되는 구축에[5] 관한 문제를 만들 권한을 갖게 되었고, 3년에 한번 구축을 잘 키워서 번식시킨 당하관 소수를 승작시키는 제도가 생겼는데 짐승을 나눠주는 건 거의 전적으로 김금수의 허가가 필요하다. 대사헌 박숭질이 사복시 제조가 너무 큰 권한을 갖게 된다고 우려할 정도. 이미 조선에서는 전국적인 유명인이자 위인인지 명에서 귀국길에 들린 인천의 수군 진지의 만호가 사복시 대감은 수년 내로 권신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나온다. 건주위 토벌에서도 크게 활약하면서 군부 쪽에도 영향력을 확고하게 챙겼다. 다만 동물애호가인 본인 성격 때문에 어유소가 우려를 표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선 여진족은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고 이번에 피해를 본 동물들은 자신이 직접 돌보면서 정이 들었기에 면식이 없었던 조선군 전사자들과 비교해서 먼저 떠올랐다고 말하면서 급한 오해는 풀었다.
동물 전문가라는 인식이 생긴 덕에 해외 동물 수입도 맡게 되었는데 명나라에 가서 캐시미어 산양과 낙타[6]를 들여오기도 했다. 이후 대월(오늘날의 베트남)에 가서 코끼리와 자바코뿔소, 쥐사슴, 빈투롱, 델라쿠르 랑구르, 베트남연못거북, 양쯔강대왕자라, 황제꿩을 들여오기도 했다.[7] 최신화 시점에서는 아예 호주까지 출장을 나간 상태며 캥거루와 에뮤를 들여오고[8] 뉴질랜드에 가서 모아와 하스트수리도 구해올 예정이다.
본인이 조선에 온 이유를 멸종동물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다짐하고, 조선의 국력을 성장시킬 것을 계획한다. 현숙공주와 혼인하면서 부마가 되나 축조판서에 어울리는 인물이 없어 그대로 관직에서 일하는 중. 일반적으로는 권신에 분류되나 어우동 사건으로 사림 인사들과도 친해졌으며[9] 김종직 사건으로 사림에서는 아니꼽지만 그래도 한명회를 비롯한 다른 권신에 비하면 나은 인물로 보고 있다. 그와는 별개로 성종에게 동물을 권하거나 외국과의 교역을 미는 탓에 사림파로부터 아니꼬운 시선을 많이 받고 있다. 원래 김종직의 제자가 되었던 김일손을 제자로 들였다.
베트남에 사신으로 찾아가, 종기 치료 고약을 전파하면서 교역을 허가받고, 코끼리와 토발서 등의 각자의 동물들을 교환하는 것에 성공한다. 그렇게 들여온 동물들을 왕가만의 전유물이 아닌 조선의 자랑으로 만들기 위해 민간에 공개한 동물원을 설립할 것을 성종에게 제안해 성공시킨다. 이 시점에서 한명회도 능가하는 조선 최고의 간신으로 대간에게는 최고 경계대상이 되었다.[10] 이는 소설상 대간들만 경계한 것이 아니었는데 동물들만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인간들에 대해선 너무나도 신경을 안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독자들 사이에서 일어나서 짐승코패스라는 멸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실제로 작품상에서도 동생인 진수도 형이 그렇게 동물들만 신경 쓰고 인간들은 무시하면 형 죽고 나서 수난을 겪는 건 동물들이 될 것이라는 쓴 소리를 내뱉을 정도다.[11] 본인도 그 말을 듣고 자신이 너무 심했음을 깨달았고 상분지 에피소드 이후에 종이 만드는 역에서 벗어난 승려와 농민들이 감사인사를 하러 오고 그 직후에 아들을 보게 되면서 인류애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밝혀 짐승코패스적 요소도 서서히 고쳐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아들 이름을 축생(...)이라 지으며 그 성격이 아직 어디 가지 않았음을 보였다. 독자들은 이 때는 아명을 천하게 지으면 오래 산다 생각하는 정서가 있으니 축생은 일단 아명으로만 쓰고 추후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주길 바라고 있다. 이후 축생은 실제로 아명이었음이 밝혀졌고 진명은 김진승으로 밝혀졌다. 이름의 의미 자체는 승리를 거머쥐다라는 좋은 의미지만 하필이면 짐승과 발음이 똑같아 독자들은 역시 금수답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일단 인류애에 각성하면서 자선사업에도 열심이라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성인 비슷하게 여겨진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거쳐서 마침내 호주까지의 항로를 찾는 데 성공하고, 성종의 전폭적인 지원과, 명나라에서 뇌물을 주고 산 보선의 양산까지 해내서 호주까지 원정을 떠난다. 총 인원만 천명이 넘는 대인원을 이끌고 움직여 원주민들과 협상해 가며 파푸아뉴기니 지역에서 극락조와 관비둘기를,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서는 캥거루, 에뮤, 쿼카, 오리너구리를, 뉴질랜드로 가선 모아와 하스트수리, 키위, 카카포를 생포하는 등 많은 동물들을 데려온다.[12][13] 삼봉도에 갔다온 후 애견이었던 덕구가 재회하자 마자 세상을 뜨자 오동나무로 관을 만들어 장사를 지낸다.[14] 이후 왕권 강화를 위해 기린조와 봉황취를 영수의 혼혈이라고 프로파간다를 한다. 명에서 이를 바치라고 하자 번국에서 영수의 혼혈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흠이 아니나 상국에서 어설픈 영수를 데리고 있는 건 흠이 될 거라고 말하여 돌려 거절한다.[15] 조선으로 돌아온 후 명나라에서 참새를 박멸한다는 얘기를 듣고 제사해 운동에 대해 떠올리며 이를 성종에게 보고해 명나라 망국에 대비하기로 한다. 일본과 관련돼서는 일본 제어를 위해 명나라가 물소뿔을 팔듯이 에뮤를 팔면서 제어하려 했으나 그 때문에 본의 아니게 관동평야에 에뮤가 풀리게 되는 원인이 된다.
조선의 발전과 희귀동물 수집을 위해 임사홍과 유자광 같은 능신이지만 동시에 간신인 인물들을 유럽과 아메리카로 보내면서 세계 각지의 희귀동물들과 자원지대를 선점하는 데 성공한다. 한편 60대에 들어 아들 김진승 부부가 아이를 갖게 되자, 그만 퇴직 후에 손주나 돌보며 노후를 보내려 하지만 성종이 자신을 이미 황희마냥 고희까지 부려먹을 계획이란 걸 눈치채게 된다.
명나라 사신에게는 자신이 동로마 제국 태생이며, 어린 나이에 오스만 제국에게 고향이 멸망한 후 나라를 잃고 동생과 같이 짐승들과 가문을 건사하며 살다가 인왕산에 떨어졌다고 둘러댔다. 의외로 정황이 대강 맞아서[16] 기록에는 동로마인으로 남을 듯하다.
유럽에서는 바스코 다 가마에게 쳤던 사기가 잘 먹혀든 데다사슴을 학대하는몽골의 침략에 시달리는 유럽을 도와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나선 행보 덕분에 살아있는 성자로 떠받들여지고 있다.
작중에서 소위 '짐승코패스' 스러운 면모 탓에 폭통의 조지원이나 이자원과 방향은 백팔십도 다르지만,[17] 극단성으로는 지지 않는 광기 캐릭터로 독자들에게 평가받는다.
환갑이 넘어 손녀를 보고 동물만큼 손녀를 아끼고 자신의 간신짓이 손녀에게 누가 되지않게 하려고 더 자선사업에 힘쓰며 성인다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평판이 높아질수록 추락의 역풍이 더 커진다는 이유로 더 열심히 성인군자행세를 하다 본인이 진짜 성인군자라고 믿게되는 참사가 일어난다. 심지어 노산군과 사육신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상소까지 올리며 분노한 성종에 의해 유배를 가게되기에 이르었지만[18]... 전부 위장. 끝까지 에코파시즘을 버리지 못했으며, 금수는 노년에 접어들면서 형제의 사후 조선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게 되는데 역사가 보여주듯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실적을 남겨도 시대가 변하고, 사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게 될 때 사람들이 다시 동물을 가족이 아닌 일개 재산으로만 여기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이에 조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지만, 최우선적으로 자신에 대한 평가를 고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자가 세뇌를 걸고 있었고[19] 후에 이를 알게 된 김진수가 경악할 정도다. 이후 100살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나면서 최후의 과제로 배양육 기술 개발을 내걸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짐승코패스다운 삶을 살다 갔다. 살아 생전에 쌓아 놓은 업적이 보통 많은 게 아닌지라 현대에는 김자(金子)라 불리며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성인이자 논란의 인물[20]로 여겨지고 있다.
- 김진수
김금수의 동생. 종4품 참의원 첨정→종3품 참의원 대부→종 1품 군기시 및 상의원 제조. 공대 대학원생이었지만 자퇴하고, 형과 같이 동물농장 운영을 하러 왔다가 타임슬립에 휘말렸다. 형처럼 한자 공부에 매진하지 않아서 필담도 불가능했고 조선어를 배우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다. 인공부화기, 교유기 등을 조선 시대 소재로 재현해 냈으며 이 공을 인정받아 참의원 벼슬을 받는다. 형과 마찬가지로 역사 지식은 없는 편이며, 수능을 위해 공부한 것도 공대 다니면서 다 까먹었다고 한다. 집에 있던 '만화로 보는 조선' 만화 정도의 지식이 한계. 앞에 나서는 건 형에게 맡기고 본인은 뒤에서 보좌하는 걸로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우동의 유혹에 홀리는 듯 했으나,[21] 오해였음이 밝혀졌고 그 딸 이번좌와 결혼해서 독립했다.
금수가 기술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진수에 의존하며 앞서 말한 인공부화기, 교유기 이외에도 총통이나 윈드캐쳐, 호멸총 등을 만들며 조선의 기술력을 가속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군기시와 상의원 제조직을 맡게 되어 형보다도 높은 품계에 오르게 되지만 실무처리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눈에 다크 써클이 내려앉아버렸다... 형보다 먼저 아이를 가졌기에, 본인은 형의 베트남 원정만 마무리된다면 본인은 일선에서 물러나 후계 교육에만 몰두하면서 딸을 돌보며 살 것이라고 한다.실패 플래그[22]
김진수 역시 동물애호가이기는 하지만, 형의 동물 애호 성향이 가끔 도를 넘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형이 농법을 혁신할 방법을 알면서도 사료 재배지 확보가 힘들까봐 숨겼다는 걸 알자 대놓고 비판한다. 사람이 행복해야 동물도 행복할 거라는 진수의 일침은 결국 금수가 애민정신에 눈 뜨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말년에 형이 갑자기 단종에 관해 상소를 올리며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자 당황해했다. 그리고 결국 형의 속내에 대해 알게 되자[23] 황당해 하면서도 그런 친형을 인정한다.
참고로 화나 독수리의 팬이다. 형과 조정 중신들이 석전 대신에 백성들이 좋아할 만한 경쟁 성격의 운동을 전국에 보급할 거라고 하자, 야구를 반드시 넣자면서 공을 직접 제작하기로 한다. 본인 왈, 응원팀의 우승을 못 보고 온 것만이 천추의 한이라고.[24] 어째저째 야구를 넣기는 했으나 석전에 비하면 많이 심심한 경기라 어유소에 의해 배틀볼 수준으로 마개조 되었다. 그 때문에 이게 어디가 야구냐며 충격을 먹었다.그리고 그조차도 대전 아니 한밭이 연고지인 팀은 조선에서도 개떡 같이 못한다, 결국 우승을 한 번 해보긴 하는데 그게 마지막 우승한 지 300년 뒤[25]
- 현숙공주
예종의 장녀. 임사홍이 조선의 반려동물 열풍을 드러내 놓고 못마땅하게 여겨서 성종의 눈 밖에 나면서 임광재와의 결혼이 무산되고 김금수의 부인이 되었다. 실제 역사대로 반려동물들도 상당히 좋아하며 특유의 호탕한 성격 덕에 현대 문물에도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하루는 진수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츄리닝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으며 금수에 의해 동물의 숲 게임도 즐기게 되는 등 이게 조선인인지 현대인인지 싶을 모습을 보이고 있다.[26] 금수가 외근 나간다고 하자 이를 말리는데, 이유가 게임을 하기 위해 번역이 필요한데 보통은 금수가 그 번역을 해주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한동안 아이 이야기가 없다가 김금수가 대월에 출장 가기 직전에 임신 소식을 알리더니 김금수가 귀국하고 얼마 되지 않아 외아들 김진승을 낳는다. 외전에서는 김금수가 백 살까지 살다가 1545년에 세상을 떠난 후, 6년 뒤에 87세를 맞으며 증손주를 본다.
- 김진승
금수와 현숙공주의 외아들. 금수가 인류애에 눈 뜨는 계기를 만들었다. 탄생 이후 비중은 없었지만, 성인이 되기 전에 금수가 일부러 독립시켜서 생활시켰다고 한다. 현대 문물이 적잖이 남아있지만 형제가 죽고 나면 보수도 못해 사라져갈 현대식 양옥 때문에 아들이 조선 생활양식에 적응 못할까 봐 였다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약간의 간사함을 빼면 인품과 능력이 모두 뛰어나며, 어유소의 외증손녀와 결혼해 20대 후반에 딸을 갖는다. 조선시대 치고는 역시 결혼을 늦게 했다.
외전에서 축조판서가 되었으며 개척단을 이끌고 중남미를 탐험 중인데 여러 가지 행보가 겹친 탓에 아즈텍 신화의 여섯 주신(主神)에게 은총을 받은 에버초즌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는 중.[27] 세월이 흘러 1551년에는 영의정이 되었고, 두 아들 김맹수와 김맹금은 각자 자신 있는 분야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 이번좌
어우동의 딸. 진수가 만든 열기구를 보고서 진수를 짝사랑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김진수의 부인이 되었다. 애당초 어우동이 진수에게 접근한 이유부터가 딸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진수는 이번좌와 결혼하면서 독립해서 집에서 나가게 된다. 그 후 딸 은서를 출산했다고 언급된다.
- 김일손
원 역사 무오사화의 원인 제공자. 17살이 된 성인으로 원 역사에서는 치우친 사고방식으로 사초를 적어서 사화를 일으켰지만 여기서는 귀물원의 개혁을 통한 변화를 보고 축산학을 배우기를 원하고 있었다. 당연히 김종직의 제자로 들어가길 원하던 아버지 김맹에 의해 성균관에서도 끌려나왔지만 김금수와 만나면서 성균관에서 수학한다는 걸 핑계로 축산학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참고로 가문의 반대는 동년배 친구들을 죄다 꼬드겨서 합심하는 방법으로 동네에서 남의 아들까지 잡학에 끌고 간다는 욕을 먹게 하는 방법으로 물리쳤다. 이후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남곤의 집에서 키우는 회색앵무가 말하는 것을 보고 뒷감당 생각 안 하고 지체 없이 고변하여 무오사화의 원인을 제공한 그 성격이 어디 가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28]
그 후 공신 책봉과 같이 축조좌랑 벼슬을 받는다. 농사에 도움이 되는 긴꼬리투구새우를 뿌리러 고향에 갔지만 김종직 고발 건으로 무시당하자 앵무를 통해 아이들을 꼬드겨서 백성들을 자기들 쪽으로 끌고 간 끝에 고향 김해에 성공적으로 실학소를 차려 자리잡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 후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김금수 곁에서 수학 겸 업무중이다. 여전히 성깔은 안 죽어서 어유소와 일부 훈구, 사림파가 따로 합심해 신관학파를 결성할 때 스승인 금수의 이름이 좀 그렇다고 대놓고 말한다.
이후 임사홍과 같이 바스코 다 가마의 배에 올라타 유럽에 사절단으로 가게 된다. 가는 도중 남중국 해안에서 마주친 쇼니 마사스케의 해적단을 공격할 때 준비한 장수말벌 폭탄을 투척해 격파한다.[29] 그리고 대만에 상륙해 대만 운범과 여러 동물들을 수집한다. 유럽에 도착한 후에도 아일랜드까지 가서 보더콜리와 유럽 소들을 모은다. 조선으로 귀국하고 정덕제가 즉위했을 때에는 축조판서에 임명되었고, 이후에도 김금수의 첫 제자로서 대표적인 활약을 보인다. 또한 스승인 김금수를 성인군자라 믿어 의심치않고 있다.[30]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승격하고 세월이 흘러 김금수가 벼슬을 내려놓은 뒤에는 우의정으로 승진했다. 외전의 시간대인 1530년에는 영의정이 되었다.
4.1.2. 조선 왕실
- 성종
조선의 9대 임금. 대단한 동물 애호가로 후원에서 수십마리의 동물들을 기르며, 신하들에게 매를 맡겨 키우거나, 낙타를 가지고 싶어 하는 동물 덕후다. 다만 후원에서 매와 오리떼를 같이 키우고, 사냥개들도 풀어놓는 등 애니멀 호더 기질도 적지 않다. 김금수 형제와 동물농장이 나타나자 금방 호기심을 가지고 계기만 생기면 사간들을 물리고 찾아오려고 한다. 다만 애호가 기질과는 다르게 왕으로선 아주 성실한 인물이라서 쓰임새가 마땅히 없는 동물을 두고는 은근히 김금수에게 경고를 주기도 한다. 김금수만 해도 이러다가 동물농장에 도축장 차리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정도라 새로운 동물을 도입할 때마다 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부터 궁리해 나가는 중.
거기다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신하들을 티 안나게 물 먹이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음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31] 한편 중전 윤씨의 성격 이상으로 부부 사이가 냉각되어, 원 역사처럼 비극이 일어날 뻔했으나 김금수의 개입으로 다시 화목한 사이가 되어 2남 2녀를 둘 정도로 부부관계가 호전되기도 했다.
원 역사에서 남만주 진출을 진지하게 주장했고, 수만 명 단위의 여진족 토벌군까지 조직한 인물이라서, 귀물원 동물들의 번식을 통해 증대하는 국력을 활용해서 점차 북진을 계획한다는 복선이 있다. 하필 금수가 바친 지구본까지 본 지라 더더욱. 그리고 성화제의 여진 정벌에 발 맞춰 어유소와 김금수에게 2만 군사와 거각궁 기병 부대, 낙타 기병을 파병해 요동지역 일부를 영토로 병합하는 것에 성공한다. 이후 감자와 밀을 심어서 수확에 성공하면서 제대로 된 경제권을 수립해[32] 조선의 땅으로 굳히는 것에 성공한다.
참고로 성종의 아들이자 다음 왕인 연산군은 후원에서 동물들에게 활을 쏘며 놀아댄 희대의 동물 학대범이라서 금수진수 형제는 어떻게 해야 연산군의 존재를 없애버릴 지 고민했는데, 성종이 젊은 나이(만 38세)에 사망했다는 걸 떠올린다. 다만 형제 모두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는 것만 알지, 병명 자체는 몰랐던 지라 보덕걸리(보더콜리)를 선물해서 매일 1시간 이상 산책에 어울리느라 운동을 하게 만든다. 성종의 사인은 결핵과 천식, 배에 난 종기가 악화되는 합병증이었는데 여기서는 김금수 형제가 거각우 종기 치료를 위해 미래에서 가져온 고약을 조선시대에 재현하는데 성공한 데다 무환자나무로 씻는 게 종기 치료에 좋다는 게 증명되어 씻는 문화가 전파되기 시작해 위협이 안되는 상황.[33]
조의제문 건으로 빡친 나머지 사화를 일으킬 뻔했으나 성질대로 하면 훈구 공신들의 힘이 너무 강해지는 데다가 금수가 언급한 세조 시기의 일[34] 때문에 김종직 한 명만 곤장 80대를 때린 후 귀양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김종직이 훈구파의 모략으로 형 집행 도중에 죽자 골치를 썩던 중 유자광이 건의한 앵간원으로 사림 세력을 제어하기로 한다.
호랑이들을 키우기 위해 과천에 땅을 마련했는데, 베트남에서 들여온 100여 마리의 동물들까지 그 곳에 보내서 천물원을 만들기로 한다. 당연히 대간의 반대가 막강했지만, 금수와 신관학파의 지지로 결국 돌파하면서 동물원을 만들고 민간에도 공개한다.
작품 중반까지는 대간의 반대에 가로막히면 어쩔 수 없이 물러나거나 함정을 파는 식으로 대처했으나, 귀물원 덕에 재정과 군사력, 민심까지 강화하고 장악해 태종조차 능가하는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자 점차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억지로 기르는 동물을 늘리고 있다. 이러한 동물덕후 기질은 스텔러바다소를 보러 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대리청정을 진지하게 검토할 정도로 커져버린 상태. 하지만 연산군이 군자해우의 소문을 듣고 자기가 어릴 적 아버지만 못하다는 사실에 무리해서라도 공부를 하려고 노력하자 자식을 대견해 하면서 무리하지 말하고 하며 대리청정 계획을 포기한다. 금수를 여든까지 부려먹기 위해 보양식과 한약을 정기적으로 내린다.
이후일하기 싫었던주후조에게 양위를 받아 황제가 되었다. 연호는 광덕이며, 김진승이 남매 원정을 마치고 귀국한 1534년 9월에는 76세의 노황제가 되었다.[35] 1541년에 84세의 나이에 65세인 황태자 이융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경복궁과 과거 명나라 황제가 쓰던 용인의 별궁, 만물원, 귀물원을 오가며 온갖 귀여운 동물들과 즐거운 노년을 만끽하고 있다고 한다. 94세까지도 생존해있었다.[36]
- 정희왕후
수십 년의 궁중 생활과 다년간의 수렴청정으로 단련된 정치의 달인. 한명회만 해도 왕실에서 제아무리 정치질을 해봤자 정희왕후에게 걸린다고 평가할 정도. 손자며느리 윤씨의 패악질에 학을 떼면서 화를 냈으나, 윤씨가 잡귀가 떨어져 나갔다면서 사과하러 오자 그녀를 용서해 준다.
- 인수대비
성종의 모친. 성종에게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세다. 한명회 같은 원상들은 물론 유자광도 인수대비 덕에 목숨을 건진 적 있을 정도. 그나마 실패한 것은 불교 관련 문제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금수가 유럽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자유가 필요했기에 다시 인수대비를 설득하자, 말 그대로 식음을 전폐한 시위로 성종에게 종교 문제에서 양보를 받아낸다. 김금수가 60대 중반에 접어들고, 김금수의 며느리가 임신했을 때를 기준으로 재작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 폐비 윤씨(제헌왕후)[37]
성종의 두 번째 중전. 성품 좋고 용모도 뛰어나서[38] 성종과의 사이는 화목했고, 아들(연산군)을 낳으며 탄탄대로였으나 자식을 낳은 이후 성격이 이상해져서 온갖 패악질을 부린다.[39] 그대로라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겠으나, 김금수가 금모견(골든 리트리버) 새끼를 바치면서 시도한 애니멀 테라피 덕에 증세가 호전되었다. 수 년 후에는 아들 연산까지 포함해 2남 2녀를 낳았다고 언급된다. 세월이 흘러 인수대비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내·외명부의 최고 어른이 되었다.
- 세자 이융
금수·진수 형제가 가장 경계하던 인물. 그 이유는 실록에도 나왔던 그의 잔혹한 동물 학대 경력 때문인데,[40] 이를 막기 위해 금수·진수 형제는 성종에게 보더콜리 산책을 맡겨 운동을 시키는 등 성종의 건강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41] 그러나 이 세계선에서는 최소한 폐비 윤씨도 살아있고 그녀가 동물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할 것인지라 동물 학대는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어머니를 구해준 금모견과 꽤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을 봐선 동물 학대 우려는 없어보인다.
원 역사보다 훨씬 화목한 환경에서 성장한 덕분인지 자애로운 성품을 갖췄다고 하며 잘생긴 외모로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고 다니는 중.[42] 원 역사의 연산군과의 공통점은 유학에 관심 없었다는 점이였으나 스텔러바다소의 소문을 듣고 유학 공부에도 매진하게 되어 원 역사 수준의 폭군이 될 가능성은 희박해진 상태이다.
세월이 흘러 1541년에 아버지에게 제위를 물려받고[43] 순화라는 연호를 쓰면서 현 시점인 1551년까지 그에 걸맞은 어진 정치로 백성을 다스렸다. 하지만 동물애호가 아버지와 젋은 시절 남편과의 불화를 해결해 준 금모견을 끔찍이 아끼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탓에 김금수가 기틀을 닦은 동물보호법을 강화하고, 국법을 어기고 함부로 동물을 해친 범죄자에겐 원 역사의 연산군처럼 난폭함을 드러내는 결점이 있다.[44] 동물들을 끔찍히 아꼈기에 사후 묘호는 축종(畜宗)이 되었다.
4.1.3. 역대 영의정
- 신숙주
계유정난의 공신. 나이가 여든이 다 되어가서 일선에선 은퇴했다. 다방면에 뛰어난 지식을 가진 천재로 농서를 집필중이었기에 김금수의 동물과 식물에 흥미를 가지고 동행한다. 조선에 유용한 많은 지식과 한달여만에 조선어를 배워낸 김금수의 재능을 높이 사며 유학을 배워서 관직에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김금수가 친절에 의아해하자 자신은 젊을 적에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아놓고는, 말년에 목숨이 아까워서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면서 죽을 날이 얼마 안 남게 되자 사후가 두려워졌다고 토로한다.
그 후 1년이 지난 1476년에 귀물원이 자리잡는 시기에 이제는 죽었다고 언급된다.
- 정인지
계유정난의 공신이자 태종 때부터 활동한 조정의 원로. '당대 최고의 대학자' 중 한 명이나,[45] 고리대금으로 양민의 고혈을 빨며 한명회보다도 돈을 밝히는 짠돌이로 악명 높은데 그 한명회조차도 노랭이라고 혀를 찰 정도. 그래도 자기 건강과 돈벌이에는 관심이 많아서, 물소와 거각우 번식 등에는 신경 쓴다.[46]
물소 농장과 타조 도박장 등 돈벌이가 될 법한 동물 일에만 열을 올리던 중 타조 도박장에서 역배팅에 성공해 막대한 돈을 따자 심정지에 걸려 쓰러지고 만다. 김금수가 심장 마사지를 해서 살리긴 했지만 나이 여든에 갈비뼈가 여러 대나 나가서[47] 회복하면서 기력을 크게 상했고, 자식들에게 유언을[48] 남기고 사망한다. 그런데 정작 믿던 삼남 정숭조가역배팅 성공 탓인지[49] 타조 도박 중독 상태여서 가문을 말아먹을 뻔했으나 제때 걸린 덕에 김금수가 제안한 염소 간지럼 고문법으로 참교육을 시키는 데 성공해서 우려는 덜고 갈 수 있었다.[50] 다행히 아들 정숭조는 종2품 축문관 제학으로 토종소 보존을 주창하며 귀물원의 중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 정창손
양천의식이 극단적인 영의정. 당연히 원상들과는 천적. 축문관에 강제로 끌려들어가고부터 김금수가 나라의 체면을 해친다며 그의 정책안을 극렬히 반대하나 한명회와 정인지가 편을 들어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후로도 김금수에게 지속적으로 딴지를 걸다 한명회와 성종에게 쿠사리 먹는 패턴이 반복되다 김진수 부마 건에서 부마를 관직에 올리는 것은 암군이나 하는 것이라는 초특급 망언을 하게 되며,[51] 이에 명분을 제대로 잡은 성종에 의해 삭탈관직된 후 의주로 유배된다.
- 한명회
계유정난을 설계한 권신. 아직 어린 성종을 뒷배 삼아 조정의 실권을 쥐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 이시애의 난에서 세조에게 오해를 사서 죽을 뻔한 사건 이후로 조심성이 커지고 눈치를 보게 되었다.
금수·진수 형제가 나타나 서역의 동물들을 데려오자 거각우나 다른 짐승들을 키우는 것을 지지한다. 형제가 데려온 젖소들을 키우기 위해 공신전을 기부해달라는 제안에 대노하지만 유제품의 대량생산과 약자들에게 은혜를 입혀서 결정적인 순간에 승리한 침팬지 대장 이야기를 듣고서 장성해가는 국왕과, 원상들에 대한 극악한 대외적 평판을 조금이나마 고칠 요량으로 동의한다.
거각우와 서갈계의 보급의 국책화에 금수진수 형제와 성종에게 힘을 실어주며 본인의 이득도 살뜰히 챙긴다. 그 일환으로 벼슬에 올라놓고도 게으른 장남 한보에게 거각우를 키우게 해서 그 공으로 승진시키려 했다. 철저하게 경고해 잘 되어가나 싶었으나 자신이 명국 사신으로 집을 비운 사이 한보가 거각우의 등에 종기가 나게 방치하는 건 물론, 첩실인 조씨에게 욕을 하는 게 걸리는 바람에 불효죄로 벼슬에서 쫓겨나버린다. 귀국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고 뒷목을 잡는다.[52]
명나라 고관들과도 인맥이 넓은 덕에 명 사신 접대나 유사시 직접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역할도 맡으며 그 덕에 김금수와도 같이 명나라 출장을 가기도 한다. 김금수의 능력과 3년만에 세운 공훈, 왕의 총애를 봐서 차기 권신이 된다고 확신하고, 가문 차원에서 연줄을 맺어놓으려 한다. 그러나 김금수는 현숙공주와 맺어지면서 당장 뜻을 이루진 못한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정창손이 망언을 하자 즉시 탄핵하여 유배형에 처하게 만들고 다시금 영의정 자리에 오르게 된다.
70살이 다 되어서 동남아에서 들여온 코뿔소의 뿔을 약으로 쓰기 위해서 자기가 사재를 써서라도 돌보겠다고 자청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금수가 한명회에게 무언가를 청탁할 때마다 돈과 권력이라면 부족할 게 없기에, 유제품을 시작으로 떡볶이나 피자 같은 음식을 대접하고는 했는데 이게 유행으로 퍼져서 소수만 생산하던 조선산 밀로는 더는 수요를 보충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 탓에 한명회는 성종에게 중국산 밀 수입을 요청했다가, 금수의 제안으로 평안 일대에 대규모 밀 재배를 시행하게 된다.
몇 년 동안 유제품과 고기 요리, 분식을 거의 매일 먹어온 탓에 성인병을 앓으면서 건강이 나빠졌는데,[53] 이를 양기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판단하고 더 많은 음식을 먹어댄 탓에 점점 악화되어 결국 사망 직전에 아들 한보에게 사림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금수 형제의 충복이 되어야 한다면서 막대한 재산을 유산 명목으로 금수에게 넘겨준 후 실제 역사보다 2년 일찍 사망한다.여담으로 13화 댓글중에 한명회는 옆동네 근육조선으로 보내야 한다는 댓글이 있다.
4.1.4. 훈구파
한명회, 신숙주, 정인지 등의 세조 공신들이 주축이 되어 조정을 장악한 신하들. 그러나 실 역사에서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 유능한 공신들이 사망한 후 권신들에 의해 사화를 일삼는 등 지저분한 정치전을 일삼다가 중종~명종 시기에 지방에서 막강한 기반과 학력을 바탕으로 점차 치고 올라오는 사림파에게 주도권을 내줄 것이 예정된 신세였다. 그러나 김금수 형제가 등장하고, 기존 훈구공신들이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관계가 되면서 능력이 부족하거나, 행실 문제로 관직에 오르지 못한 후손들이 대거 축조 관련 관직에 진출하거나, 어유소를 필두로 '신관학파'가 창설되어 젊은 사림파까지 상당수 끌어모은 신진학파로 변모하면서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다.- 한보
한명회의 장남. 무예에 조예가 있으며 가문의 빽으로 한성판관의 관직에 올랐다. 그러나 야심도 의욕도 어중간하고, 학문에도 열정이 없어서 한명회가 답답해하다가 거각우를 키우게 해서라도 승진하라고 금수에게 부탁해 소를 얻어온다. 그러나 정작 한명회가 명국사신으로 출장가자 소를 방치하다가 종기가 나고, 이로 인해 아버지의 첩인 조씨와 싸우다가 불효죄로 탄핵당해 버린다. 그나마 금수가 종기약을 만들면서 성종과 사간의 시선이 그 쪽을 향한 덕에 파직으로 그쳤다.
10여년 후 한명회가 죽은 후라면 가문에 살아남을 힘이 없음을 듣고 아버지의 조언대로 재산까지 바치고,[54] 원정항해까지 따라갈 것을 약속하면서 금수의 충복이 되었다. 문제는 호위무장으로 따라갔는데 영 못미더운 모습을 보여서[55] 김금수가 유자광에게 훈련시킬 것을 지시하여 열심히 굴려질 처지에 놓였고 실제로 하스트수리 유인책을 맡아 모아 탈을 쓰고 죽어라고 뛰어 다녀야 했다(...). 그래도 그 고생을 한 덕분에 공로를 인정받아 금위영의 별장으로 임명되었다.
어유소의 대 홀룬국 전쟁에도 참전하며 자이언트 모아 기병대를 이끌고 전장을 휘젓다가, 하스트수리 추격대를 출진시켜 홀룬국왕을 요격한다. 큰 공을 세운 이후에는 무사히 가문의 안위를 건사받는 데 성공한 모양. 성종이 정덕제에게 선양을 받을 때에는 벼슬은 정2품 도총관이고, 나이는 환갑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 홍윤성
계유정난의 공신. 다른 권신들에 비해 젊으나 건강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데다, 워낙에 술고래에 자식도 없다. 세조 시절 '살인마 정승'이라는 악명이 퍼질 정도로 악행이 워낙 지나쳐서 가문에서도 거의 의절한 상태. 이서장과 사간들이 한명회와 성종에게 개작살나는 걸 보고 좋아라 했다.
그러다가 귀물원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던 비숑 강아지를 보고 넋을 잃어 김금수를 설득하고 성종에게 광망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여 한 마리를 받을 수 있었다. 복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손주처럼 예뻐하며 키우던 와중 지병으로 쓰러지며 얼마 못 산다는 말을 듣는다. 친척들과도 옛적에 갈라섰으며, 애첩과 노비들이 손주 같은 복실이를 챙겨줄 것 같지가 않던 탓에 김금수를 불러서 재산의 8할을 남겨줄 테니까 복실이가 천수가 다할 때까지 잘 길러주라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얼마 후에 사망한다.
사후, 단종을 핍박하고 죽인 죄를 모두 혼자 뒤집어썼는데, 다른 훈구파 대신들의 경우는 자식들과 후손들이 있는 것과 달리 홍윤성은 자식이 없던 탓에 김금수와 성종이 단종을 복위시킬 때 부담없이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56]
- 유자광
금모견을 분양받는 대기 순서에 올라왔다고 언급된다. 정인지는 유자광은 탐욕스럽고 옹졸하다면서 새치기하려다가 실패한다. 그 후 탄핵당해서 유배가 있다가 성종이 강화도 도박장 건축에 유자광의 지식을 적용하면 좋겠다고 여겨서 강화도로 가게 된다. 분양받은 금모견 '진순이'를 늘그막의 늦둥이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지만, 유배지인 동래에서 진순이를 보신탕용으로 훔치려는 개도둑들이 들끓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양의 본가에 맡겨놓았다고 한다. 금수가 금모견은 주인에 대한 정이 커서 아무리 호사를 누려도 슬퍼하고 있을 거라고 하자 눈물을 훔친다.
이후 강화도 도박장의 성공으로 복직하여 김금수랑 적당히 어울리던 중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읊었다 걸린 건으로 그간의 원한을 풀려 했으나 김금수에 의해 막힌다. 김금수가 사림하고도 친한 만큼 머리로는 이해하나 속으로는 열불이 나던 찰나 한명회와 짜고 김종직의 형을 집행하는 나장을 매수해 김종직을 죽게 만든다. 이후 공을 세우고 사림 대간들을 제어하기 위해 성종에게 앵간원 설립을 건의한다.
김금수의 호주 원정에 호위무장으로 동행하였는데 김금수의 지시로 한보를 자신의 직속 부하로 받게 되었는데 이는 한보를 합법적으로 굴릴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는 뜻인지라 한명회에게 받은 굴욕을 갚아줄 기회를 얻어 즐거워하였다. 삼봉 대륙에 세워진 개척 정착지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아 삼봉도에는 처음부터 가진 않았으며 모아와 하스트수리를 길들이는 작업이 끝난 뒤 삼봉도로 갔다가 거대한 자이언트 모아를 보고 겁을 먹어 한보의 놀림감이 되었다. 이후 호주 원정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축조판서로 승진하였다.
강화도 도박장에 수시로 드나들고 있는 모양인지, 판서나 되어선 성종에게 대월에 가서 전투용 코끼리를 사오라는 명령을 받자 도박장에 갈 군자금이 없었는데 마침 잘 됐다고 반긴다. 금수는 유럽에 개를 수입하러 보낸 임사홍처럼 유자광 역시 도보로 알래스카를 거쳐서 미대륙까지 보내서 동물들을 수입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마침 명나라 사람으로 변장하고 도박장에 드나들다 대간들에게 딱 걸리고 만다. 이후 잡혀 국문을 받게 되나 김금수의 부탁을 들은 인수대비의 탄원으로 목숨은 건지게 되지만 60대에 접어든 나이로 시베리아 탐험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1차로 탐험에 성공하나 2차로 알래스카까지 가게 되었다. 자신의 죄로 고생함에도 큰 꾸지람 없이 뒷바라지 해주는 내자와 자신을 위해 면산양(캐시미어) 방한복을 준비해 주는 자식, 그리고 자신을 위해 탐험용 물자 일체를 준비해 준 금수에게 감사하며 2차 탐험에 오른다. 이 때 우금령을 어기고 소를 잡은 박규, 밀회를 나누던 청년을 호랑이로 착각하여 총을 쏴서 고자로 만들어버린 착호갑사 이철규, 배 위에서 방위를 알아내는 일을 하다가 항해 도중에 선장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친 황보균, 과거 시험장에서 옆 사람 답안지를 곁눈질로 훔쳐보다가 시험관에게 적발되어 귀양 갔었던 김 진사, 성종이 아끼는 백사슴을 훔치려다가 들킨 사복시 소속 사육사인 원녹수 등 유자광처럼 죄를 저지른 이들이 원정대에 포함되어 나름대로 도움이 된다.
5년 뒤에 임무를 마치고 조선으로 복귀하는데 그 동안 유럽의 인재들에 의해 한층 더 발전된 조선의 생활상에 놀라워한다. 임사홍이 우의정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질투심을 삭히고, 김금수가 종1품 문관직인 의정부 우찬성에 천거하겠다는 말에 감사를 표한다. 그 후 장남 유진과 반려견을 데리고 한양 시내를 거닐면서 눈부시게 발전한 조선의 문물을 익혀나가던 중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가축이나 돛·노 없이 움직이는 수레와 배가 세상에 나올 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다음해, 프로토타입이지만 증기선을 타게 된다. 우의정 승차를 위해 동일본 삐라 작전의 지휘부로 나서게 되었다.
그 공로로 우의정으로 승진하지만 몽골군이 유럽과의 전쟁에서 승산을 높이기 위해 말코손바닥사슴의 고막을 찢은 일로 성종과 김금수의 주도하에 조선 조정이 몽골 원정을 개시하자 70세가 넘은 나이에 도원수로 임명된다. 설상가상으로 정덕제가 부캐 주수로서 참전하자 골치를 썩히면서도 나름대로 활용하여 자금성을 공격한다.
정벌군을 이끌고 몽골 초원의 여러 유목민 부족과 하북에 남은 몽골군 잔당을 성공적으로 소탕하고 귀국길에 오르지만 풍토병에 걸려 앓아눕다가 압록강을 눈 앞에 두고 어유소의 서자 어효성에게 내 후손들은 결코 강화도에 발을 들이지 말고, 늘 도박을 경계하도록 가문의 제사상에는 기린조를 연상케 하는 새고기와 새알을 올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타고난 건강 체질과 김금수 & 김진수 형제가 도입한 위생 관념, 유럽과의 학문 교류를 통해 더욱 발전한 의술 덕분에 건강을 잘 유지하여 원 역사보다 약 8개월을 더 살았다.
생전에 모신 세 임금과 김금수에게 변함 없는 충성을 바쳤고, 측근인 유자광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낀 김금수의 요청으로 충무공의 시호를 받고 예장이 거행된다. 강화도 도박장을 관리했을 때 타조 경주와 기린조 경주 운영을 잘했고 재미난 행사를 더 자주 열었기에 명나라 출신 귀화자와 동남아시아인, 아랍인 같은 수많은 외국인이 조문객으로 찾아왔다. 심지어 수천 명의 백성들도 유자광의 상여를 전송하는데, 천한 얼자로 태어났지만 천신만고 끝에 고관대작이 되었고 부와 권세를 모두 얻은 후에 노비 신분인 모친을 도성으로 모셔서 극진히 봉양하였기에 제법 오래 전부터 '자식을 낳으려거든 유자광 같은 자식을 낳아라'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라고 한다.[57]
- 정숭조
정인지의 삼남. 위로 형이 둘 있지만, 장남은 학문에 재능이 없고, 차남은 불교에 귀의해 염주를 들고 불경을 외우는 지경이라, 정숭조가 가문을 책임지는 사실상의 가주다. 아버지 정인지가 유학은 물론 외국어와 천문이나, 산학 등에도 소양이 있기에 정숭조 역시 상당히 뛰어난 학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 같이 강화도의 타조 도박장에 들렀다가 역배팅에 성공해 대박을 친 이후 타조 도박에 푹 빠져버렸다.
부친 정인지가 유언을 남기는 와중에, 정인지가 명나라 상인으로 변장하고 도박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명국식 의복을 사고, 명나라말 공부를 한다는 걸 깨달은 정인지의 부탁으로 김금수에게 붙잡혀서 염소가 발을 핥는 고문까지 당하는 걸 몇 번이나 반복하고서야 도박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고 한다. 도박 중독 초기단계 수준이였기에 비교적 손 쉽게 도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이후 정인지의 유언대로 축조에 제학(종2품)으로 근무하면서 소 품종 보전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코끼리 축사 건축에 사재를 털어서 보탰다고 하는데 상분지 제지업에 한 발 걸쳐서 사업체를 차리려는 모양.
- 어유소
세조 시기에 이시애의 난과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무신. 평화로운 시기에 점차 약체화한 조선군의 문제점을 이해하고 있었으나, 명나라의 갑작스런 동원령에 군을 끌고 북진했다가 준비가 안된 점을 이유로 독단적으로 회군하면서 그 죄를 뒤집어써 유배를 갈 인물이다.[58] 여기서는 반년 이상 사전에 정보를 접하면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역사에선 반년 이상 빠른 준비와 2배인 2만명의 대군을 지휘해 북진한다. 건주위 여진추장 이보을가대가 지휘하는 여진 기병 500명을 마찬가지로 500명 정도의 기병으로 압살하고[59] 여진의 근거지 중 하나인 오미부를 점령한다. 500명 이상을 토벌하고 30명의 명나라 사람들을 구출했지만, 이번 기회에 이보을가대를 위시한 주변 건주여진을 완전히 누르고 오미부를 합병하자는 김금수의 제안대로 군견까지 풀어 잔당 토벌과 추적, 몰이사냥에 나섰으며 아이신기오로 톨로를 제외한 건주위 주요 인물들 대부분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으면서 미래의 청나라를 삭제해버리는 데 성공한다.
금수의 능력을 높게 사면서도, 너무 대놓고 동물을 먼저 아끼는 걸 꺼림칙하게 여겨서 술을 먹이고 본심을 물어보기도 한다. 정벌의 공로로 무신으로서 우의정에 올랐다. 이후 조정에서 금수와 같이 훈구나 사림과도 다른 제3세력으로서 나름의 입지를 떨치며 마침내 훈구도 사림도 아닌 신관학파를 자칭하며 파벌을 형성한다.
이후 야구를 체전에 넣을 때 야구 그대로 넣으면 석전에 익숙한 이들이 좋지 않게 볼 거라 생각하여 야구 규칙을 배틀볼급으로 마개조하여 체전에 넣는다.[60] 등주 해안도시에서 벌어진 몽골군과의 시가전에서 승리해 홍치제 구출에 성공했으며,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5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홀룬국과의 전면전을 지휘, 짐승부대의 힘으로 압도적 대승을 거두면서 승장이 된다.
유자광과 한보가 동일본에서 삐라 작전을 벌일 쯤에는 노환으로 퇴직을 청했고, 건강이 안 좋아 말을 타기는 커녕 지팡이가 없으면 외출조차 못할 정도라고 한다. 김금수와의 관계는 변함이 없어서 외증손녀가 김진승과 결혼했다고 한다.
4.1.5. 사림파
기본적으로 김금수가 가져온 축산 열풍에 비판적인 이들이 많으나 출사한 인물들 중에는 김금수가 가져온 발전에 호의를 보이는 사람도 있으며 특히 어우동 사건으로 인해 일부 사림 인사들이 김금수 파벌이 되면서 신관학파라는 새로은 파벌을 형성하기도 한다. 일단 김종직 사건으로 인해 한명회나 다른 권신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으나 사림파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금수가 가져온 축산열풍과 대외교역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 그러나 금수와 성종이 초특급 짐승코패스(...)인 관계로 독자들도 사림파가 불쌍해 보이고 저 둘은 통촉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림파를 응원하고 있다...[61] 공과에는 나름 민감한 지라 금수가 삼봉도(호주)에 갔다온 직후 금수의 애견이 죽어 장사를 지내자 아니꼽게 보지만 삼봉도를 발견한 공이 있는 데다가 장례를 요란하게 한 게 아닌 지라 따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다.- 정괄
대사간 → 병조참지 → 우의정. 앞뒤 못 가리고 들이박는 이서장에 비해서 훨씬 더 이성적인 인물이다. 귀물원 동물들에 대해서도 간을 보며 사헌부와 마찰하다가 인공부화기 건을 두고는 사간원은 기다리게 했고, 자신을 닦달하다가 사헌부만 데리고 나선 이서장이 품계가 떨어지고 외직으로 쫓겨나는 걸 보게 된다. 이후 축조참의로 임명되어 긴꼬리투구새우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개그씬을 보이기도 했으며 앵간원이 되어 활동 중이다. 항목은 사림이지만 최신화 기준으론 신관학파 소속이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환갑을 훨씬 넘었고 눈이 나날이 안 좋아져서 퇴직을 청했지만 성종이 정괄의 학식과 재주를 높게 평가하여 당장은 퇴직이 어렵다고 한다.
- 박숭질
사간원에서 대사헌으로 승진한 인물. 바로 얼마 전에 사간원과 싸우고, 그 후에 혼자서 움직이다 성종과 한명회에게 털려서 작살 난 사헌부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세조가 육축을 잘 기른 종친의 직급을 올려준 일을 더 확대해서 귀물원 가축들의 번식을 지원하자고 상소를 올린다.
아무리 그래도 가축만 잘 기른다고 승진시켜 줄 수는 없다고 성종이 각하했지만, 3년에 한 번, 당하관 이하로만 한정, 시험 문제 포함 등의 조건부로 통과한다. 결과적으로 사복시의 권한이 다른 육조에 위협이 될 정도로 커버린 지라 박숭질은 당황했지만 반대하지 못했다. 타조 도박장도 반대하려고 했으나 실패.[62]
- 이서장
대사헌. 불문거근의 권한을 방패삼아 무지막지하게 성종을 공격하는 핵심인물. 성종은 사간을 키우는 건 공신 견제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으니, 피곤하게 여기면서도 납득하고 있었으나, 김금수·진수 형제의 등장 이후 동물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딴지를 걸었다가 한명회와 성종에게 동시에 공격받아서[63] 2단계나 품이 낙하하는 처벌을 받고 한양 밖으로 나간다.
- 김맹
김일손의 아버지. 막내 아들이 김종직 밑에 들어가는 걸 거부하는걸 보던 와중에 김금수가 찾아온다. 이후 김금수가 직접적으로 김일손을 건드리진 않아 안도하다가 아들이 알아서 김금수 밑에 들어간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뒷목을 잡는다.
아들이 김해 일대 사대부 자제들을 대거 축산학에 입문시키는 바람에 아들을 귀물원에 수학하라고 보내줄 수밖에 없었는데, 한양에 간 아들이 김종직을 고발하면서 고향 사림들 사이에서 패륜 가문으로 소문이 나 버리는 바람에 고향을 떠나서 한양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 김종직
원 역사에서 사림의 거두로 불린 이. 축산학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즉시 한양으로 올라와 막으려 하지만 이미 바뀔 대로 바뀐 한양은 그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고 이에 한탄하며 조의제문을 혼잣말로 읊었는데 이를 남곤의 집에서 기르는 회색앵무가 듣고 그대로 따라하며 이를 들은 김일손이 관에 고발하여 역적의 낙인을 쓸 처지에 놓인다.
분노한 성종은 김종직을 역적으로 처형하려 했지만, 이미 사림파도 덮어 놓고 적대하기에는 너무 영향력이 커졌던 김금수가[64] 세조가 술자리에서 훈구파 대신들의 무례를 봐주었던 걸 명분삼아 구명하면서 목숨은 건진다. 그러나 사림의 기세를 확실히 눌러놓고 싶었던 한명회가 유자광을 꾀어서 태형 집행인에게 접촉해 고의적으로 급소를 때려 사망시킨다.[65]
- 남곤
남치신의 자식으로 김일손과 함께 축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의 회색앵무인 덕자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김종직이 다녀간 후 덕자가 불측한 말을 내뱉자[66] 역도의 귀신이 붙었다며 자신을 찾아온 김일손에게 하소연하다가 그 말을 내뱉은 게 김종직임을 알게 된다. 이후 성종 앞에 덕자를 데려가고 증인으로서 나서게 된다. 김종직 사후 김일손과 함께 공신으로 봉해지고 김금수의 제자로 들어간다.
- 남치신
남곤의 부친으로 전 곡산군수. 김종직과 친분이 있다. 회색앵무 덕자를 키우고 있다. 고신을 당한 김종직의 모습에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나 조의제문의 증조가 덕자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덕자와 함께 출두한다.
- 조광조
원 역사에서처럼 김굉필의 제자로 유학 공부를 하고 있었으나, 김진수가 제작한 열기구가 하늘을 나는 걸 보고 실학에 매료되어 스승인 김굉필과 함께 김진수의 제자로 들어갔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고집하는 성격 탓에 기술의 발전방향을 놓고 김진수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 중. 그러나 원역사의 사림 같은 성향도 어디 가질 않아서, 단종을 복위시키는데 앞장서는 김금수의 모습에 군자 중의 군자라며 감격해하며 고지식한 사림 친구들을 끌어들인다.[67][68]
4.1.6. 기타
- 김처선
환관 출신의 공신. 의학에 조예가 깊어 대비를 치료하면서 자헌대부까지 오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술을 매우 좋아하고, 말을 막 하는 성격이라서 세조 대에도 곤장에 파직까지 거치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고, 실제 역사대로라면 연산군 대에 "내가 모신 왕들 중 가장 막장이다"라는 말을 했다가 다리와 혀를 잘리고 죽은 후 연좌제까지 적용되어 친족들도 피를 본다.
성종의 측근으로 김금수 형제와 안면을 트게 되었고, 의학 지식으로 고약 연구에 합류하면서 원 역사보다 더 빠르게 출세한다. 다만 성종이 김금수를 만나 짐승애호가적 성격이 너무 강화되어 체통을 잃는 일이 잦아지면서 마음고생도 덩달아 심해지고 있다...
- 어우동
김진수를 유혹하면서 등장.[69] 어유소와 이씨 왕실 방계까지 한양에서 내로라 하는 양반댁 여럿을 홀린 조선 역사상 최대의 스캔들의 주인공. 사실 조선 왕실 방계의 본처였으나 남편의 바람으로 온갖 악명을 뒤집어쓰고 쫓겨난 억울한 인물로, 김금수의 조사로 진실이 밝혀져서 처형당할 뻔했으나 강화도로 가서 뛰어난 서예 솜씨로 타조 관광사업을 돕는 것으로 목숨을 건진다.
- 방산수 이난
어우동을 진심으로 사랑하던 남성으로 함께 도망가려 했다.[70] 김진수가 대책을 마련해 준 덕분에 어우동은 신분을 숨기고 강화도로 가고, 이난은 강화도에 방문할 때 어우동을 찾아가겠다고 말한다.
- 임사홍
연산군 대의 대표적인 간신. 중국 방언조차 전부 알아들을 정도로 뛰어난 능신이지만, 인성부터가 막되먹은 간신인데다 반려동물 열풍을 드러내 놓고 못마땅하게 여겨서 능력자를 아끼는 성종조차 내심 꺼릴 정도. 그래서 대월 사신단에 통역관으로 꼈을 때도 대놓고 툴툴대다가 김금수에게 제대로 군기를 잡히게 되고 이후 자신의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는 중.
참고로 유자광과 같은 라인을 탔다가 자기는 탄핵당한 후 제대로 찍혀서 무시당하는데 유자광은 타조 도박장 건수로 복귀한 후에 승승장구중이라고 서러워했다. 물론 금수는 대놓고 친구 욕을 털어놓는 이기적인 성품에 당황하지만, 타조와 비슷한 에뮤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직 성공의 기회가 있다고 꼬셨다.
여담으로 보선을 구매하기 위해 계효와 뒷거래를 하는 김금수의 행보와 조언(?)으로 부패관료로서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 백성들을 쥐어짜는 방식으로는 금세 들통 나 오래 못 가지만 나라의 재산을 팔아치우는 건 이득도 크고 훨씬 오래 해먹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71] 물론 김금수는 이 깨달음을 준 직후 바로 나라의 재산을 관리하는 절차와 법을 개정할 것을 성종에게 건의한다고 하면서 사다리를 걷어찼다.
외국어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덕에 금수의 해외 출장에는 반드시 따라가는데 따라가는 지역의 언어를 순식간에 회화 가능 수준으로 마스터한다.[72] 이쯤 되면 걸어다니는 통역기라 봐도 무방한 수준.[73] 금수는 임사홍의 능력과 실적을 높이 평가해 성종에게 다시 외교관 관직을 받도록 추천해 준다.
삼봉대륙(호주), 대월(베트남), 천축국(인도), 조와국(마자파힛) 등의 교역을 맺은 외국에 더해 해서위 홀룬국을 격파하고, 연해주 야인 여진과 통교하고 귀순을 받고, 몽골 제국과 화친을 맺는 등 외교업무가 폭증하면서, 금수의 제안으로 성종이 명과 일본·유구·여진 등의 기존 외교를 담당하던 예조와 승문원만으론 벅찰 거라고 판단해 외교를 담당하는 외조가 세워지면서 추천을 받아 외조 판서로 임명된다. 능력은 7개 국어가 가능하고, 삼봉도·대월까지 직접 갔다왔으니 자타가 인정하지만, 역시 무례하고 옹졸한 인성이 의심받아 성종도 마땅찮아하고 사림도 반대했지만, 금수의 문명인은 예의 없는 말을 해도 머리가 쪼개지지 않기 때문에 야만인보다 더 무례하다는 걸 임사홍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에 성종이 납득하고 외조 판서로 승진하게 된다.
그렇게 출세한 마당에 금수에게 바스코 다 가마 선단과 같이 유럽대륙의 포르투갈행을 명받게 된다. 이에 자신도 지천명(50세)이 넘었고, 축산학이나 외국어 지식은 지금까지의 원정으로 충분하다고 거절하려고 하나 금수에게 환갑이 넘은 우의정 정괄이 건강을 문제로 사직을 청할 것이며 일단은 성종이 반려했으나 수년 내로 정승 자리가 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삼정승 자리에 욕심을 내고 태세를 바꿔서 금수에게 자신의 충성심과 실적을 기억해 달라고 아부하나, 군사 실적도 상당한 유자광에게[74] 한 수 밀린다는 걸 알고서 결국 유럽행을 승낙한다. 유럽에서 알렉산데르 6세와 체사레 보르자를 상대할 때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조선으로 귀국할 때에는 머리가 하얗게 새었다고 한다. 그 대신 유럽에서 온 인재들이 조선의 발전에 도움을 주고, 그것이 공적으로 인정받아 유자광이 복귀하기 1년 전에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동일본 삐라 작전 이후에 어유소가 사직을 하고 나서 좌의정으로 승진했다.
이후 주후조가 성종에게 선양을 하자 중국어에 능통한 자신이 화북을 복구해야 하는 책임자로 보내질 것을 예상한다. 말년을 편하게 보내기 위해 김금수를 사문난적으로 몰려고 하는 통수를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이조정랑으로 임명된 유근과 함께 화북으로 보내진다. 짐승을 잔인하게 죽이다 못해 식인까지 발견되자 기겁해서 그나마 이성적인 백련교를 번국으로 세워 빠지기로 한다.
북경에서 공사다망한 나날을 보내다 뒤늦게 유자광의 부고를 접한다. 여러 탐험에 합류하면서 유자광과의 사이가 친형제만큼 가까워져서 유자광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고, 슬퍼하다가 자신이 죽는다면 후세에 김금수의 그늘에서 호가호위한 시정잡배로 여겨질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던 중 성종과 김금수에 의해 대한제국의 번왕인 정덕왕으로 봉해진다. 처음에는 김금수보다 높은 작위에 봉해졌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초췌한 몰골을 보고 미친 듯이 웃는다. 김금수에게 품고 있던 열등감에 판단력이 흐려져 김금수가 자신을 조롱한다고 착각하여 생전에 하북 복구의 위업을 달성해서 후세에 위명을 떨치고, 후손들이 기억하는 대한제국 최고의 명재상은 김금수가 아니라 자신이 될 거라고 외친다.
1530년이 배경인 외전에서는 근래에야 하북이 간신히 안정되었고 임사홍은 최근에 사망했다고 언급된다. 원 역사보다 24년 더 산 셈이다.
4.2. 명나라
4.2.1. 황실
- 성화제
명나라 황제.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지만 원 역사처럼 만귀비를 너무나 사랑해 그녀에 한해서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상태. 역시나 만귀비가 조선에서 들여온 파사 고양이와 토발서에도 푹 빠진 모습을 보이며 만귀비의 설득으로 조선 사절단에 낙타를 하사한다. 뿐만 아니라 토발서의 먹이를 운송한다는 명목으로 해금령을 풀고 조공을 대폭 늘리는 병크까지 저지른다. 덕분에 명나라의 대신들은 두 배로 비용이 늘어난 하사품에 김금수에게 "외교 더럽게 하네"라면서 이를 갈고 있다.
원 역사대로 건주여진 정벌을 계획하나, 정동에 의해 반년 이상 조선에 준비할 시간을 주게 되면서 성과는 더욱 크게 거둘 가능성이 크다. 원 역사의 성종 치하 조선은 성화제의 원병 요구를 들어줄 이유는 만주 진출의 기회라는 것 외에는 딱히 없어서 열정적이지 않았지만, 본작에서는 성화제가 퍼준 어마어마한 정치, 경제적 이득을 도저히 잃을 수 없으므로 모양새만 갖추는 게 아니라 전력을 다해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만귀비의 응석에 따라 타조 경기를 보기 위해 조선의 강화도를 방문하면서 타 국가 원수의 최초의 국빈 방문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성화제의 여진 정벌은 조선군의 신무기와 신식 전술로 대성공을 거두어 일대 세력으로서의 건주여진을 거진 초토화시킨다. 비록 휘하의 환관인 왕직이 주도했다고는 하지만 역사에는 성화제의 업적으로 남을 것이니 손해는 아니다. 원 역사대로 만귀비 사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성화제를 시작으로 명나라가 조선에 해준 은혜가 매우 컸기 때문에 성종은 성화제를 위해서 굳이 이후에도 계속 명나라 황실의 편의를 봐준다. 당대 신하들 입장에서는 조선에 호구잡힌 걸로 보였지만 다음 세대에서 보니 최소한의 지출로 동북 국경을 안정화시키고 사이좋은 번국의 존중을 받은 가성비 좋은 투자였던 것.
- 만귀비
원 역사에서 성화제의 후궁이자 명나라 희대의 악녀. 황실 내 실권을 쥔 덕에 금수와 한명회가 낙타 수입에 이용하고자 했으며 실제로 금수가 데리고 온 동물들에 푹 빠져 낙타 수입에 도움을 준다. 다만 악녀답게 좋은 의도만 가지고 있진 않았는데, 사람 말을 똑같이 따라하는 회색앵무에 주목해서 이를 이용해 훗날 명나라 최후의 명군인 홍치제가 되는 주우탱을 실각시키려 한 것. 비록 요승 계효의 개입으로 마냥 의도대로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계효를 통해 태후를 조종하는데 만족한다. 이후 조선의 타조 경주에 대한 소식을 듣고 성화제를 꼬드겨 타 국가 원수 최초의 국빈 방문이라는 진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베트남에 가기 위해 김금수가 방문하자 상분지의 상업적 가치를 눈치 채고 처음에는 김금수의 대월행에 탐탁치 않아 하던 성화제를 설득해 주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금수가 영의정에 오른 후 다시 사신으로 갔을 때는 병에 걸려 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로 나온다. 이에 금수에게 자신의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파사 고양이 '정아'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이후 1487년경에 사망하며 그 죽음에 충격을 받은 성화제도 머지 않아 사망하게 된다.
- 주우탱
미래의 홍치제. 황태자이지만 만귀비의 음모에 따라 회색앵무를 보게 되고 글공부와 연을 끊게 된다. 이후 만귀비와 성화제가 나란히 세상을 떠나며 제위에 오르지만 원 역사와 다르게 성숙한 인격을 지니지 못해 조선 사신단 앞에서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계효를 신뢰하는 철 없고 심약한 모습을 보인다. 공부를 게을리했기에 통치자로서 필요한 지식도 많이 부족한 상태. 그나마 성품만은 원 역사와 동일하게 온화한 편이라 신하들을 경계하진 않아서 어찌어찌 나라가 굴러가고 있는 상태이다.
이후 삼봉도 건으로 금수가 왔다간 후 황권의 강화를 위해 황도 인근을 돌며 위무를 하려 했으나 곡식을 쪼아먹는 참새 때문에 울고 있는 농민을 보며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는 특대급 사고를 쳐 버린다. 그로 인해 황충이 발생해 경제와 민심이 파탄나던 중에 몽골이 침공하자 계효의 의견에 따라 몽진을 가고, 등주위 명나라군과 조선군의 도움을 받아 정통제·천순제의 전철을 밟지는 않았으며 안전을 위해 조선으로 파천한다.
여전히 계효에게만 의지하며 요서를 기점으로 다시 몽골에게 반격하라는 성종의 제안을 거부하면서[75] 조선이 요서를 차지할 명분을 제공한다. 그 후엔 과천 인근 천물원에서 소일하면서 명 조정이 마비 상태로 보이며, 심지어 남중국에 동정호 상인 세력과 강소 군벌이 연합해 월나라를 건국하는 바람에 남명을 세울 기반을 선점당한 상태다.
이후 군자 해우를 보러 갔다가 겨울 바다에 빠지게 되고 그로 인해 몸살을 앓다가 나라를 망치고 풍류를 즐기다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이라며 아들에게 너는 잘못이 없으니 기린조처럼 자유롭게 살다가라는 유언을 남기고 결국 사망한다.[76] 사망 당시 나이는 38세로, 원 역사보다 4년을 더 살았다. 묘호는 인종.
- 주후조
원 역사에선 명나라의 기인 황제라 불렸던 인물.[77] 여기서는 아버지가 암군화가 되어 버린 지라 더욱 더 심연에 빠진 돌아이가 되어 버렸고 아버지의 관에 앵무새 인형을 순장시켜 조선 사람들에게 점수가 깎였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본인이 직접 기린조 경기 기수가 되려고 한다.
결국 '주수'라는 가상의 무관을 만들고 본인이 그 행세를 하면서 명나라 중신들의 복장을 뒤집어 놓았다. 성종은 성화제와 홍치제의 은혜가 크다면서 말리거나 무시하기는 커녕 모아와 교관, 강화도의 첫 시합까지 편의를 전부 봐주면서 브레이크가 없이 폭주하는 상태. 거기다 조선을 드나드는 유럽인들을 위한 성당에 들렀다가 신부의 말이 그럴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례를 받고 베드로라는 세례명까지 받았다.
원 역사에서 기인임에도 능력 자체는 출중했다는 의견이 대세인 만큼 조선인 모아 기수가 대충 가르쳤는데도 능숙하게 모아를 몰고 시합에 나가서 제대로 된 시합을 할 만큼 무재가 있다. 또한 문재 역시 사서와 시구에 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전체적으로 평균 이상은 치는 인물이기에 다얀 칸이 주력 기병을 이끌고 서역 원정을 나갔고, 성종이 아직도 무용한 명 황실을 과거의 은혜라고 존중하고 있어 지금이 북경 수복의 적기라는 걸 알던 명나라 신하들은 절망 중이다.
조선이 동물 학대를 벌인 몽골을 원정하기 위해 준비를 갖추자 주수로서 참전한다. 이후 전쟁에서 자기 멋대로 돌진하다가 낙마하여 다리를 삐었지만 오히려 몽골군이 유자광이 준비한 함정에 빠지게 만드는 나비 효과를 일으켰다. 심지어 앵무새를 이용해서 몽골 만호장의 목소리를 흉내내게 만드는 계책을 제시하고, 몽골군 병사들을 속여 자금성의 성문을 열게 만든다.
조선군의 도움으로 자금성을 탈환하지만 민심이 명 황실과 조정을 떠났음을 감지하고 황궁을 비롯한 북경 전체가 초토화된 상황에 현실도피를 택해 조선의 용인 황궁으로 돌아간다.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이 방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성종(이혈)처럼 근면하게 살 의지도 없지만 아버지를 닮아 마음은 착했기에 명나라 백성들을 걱정하다가 자신이 선정을 베풀 수 없으면 성군에게 나라를 맡기면 된다고 외치면서 이혈에게 황위를 선양하고 이왕삼각의 혜택을 누리면서 살자는 생각을 한다.[78] 이후 태감 유근의 꾀를 통해 선양이 성공하고, 정왕으로 봉해져 해마다 은 5만냥의 연금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79][80] 사실상 본인의 소원대로 원하는 대로 놀고 먹으며 살 수 있는 삶이 된 것이다.
4.2.2. 환관
- 정동
조선인 출신 환관. 조선에 자주 사신으로 오며 호화로운 조선 관광과 청탁용 선물을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인물. 그러나 자기 고향에 애정도 있어서, 받은 만큼 확실히 명나라에서 친조선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라서 일종의 '필요악' 취급이다. 물론 그거야 한양의 조정 생각이고 왔다갔다 할 때마다 세금에 등골이 휘어지는 평안·황해도 주민들에게는 욕심 많은 간신에 불과할 뿐. 여기서는 금수와 종수 형제가 기른 동물들이 정치적·외교적으로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신에 뇌물은 포기한다.
만귀비와 왕직에게 뇌물로 바친 동물들 덕에 입지가 올랐지만, 해금령이 풀리면서 앞으로 호화로운 조선 관광이나 뇌물은 받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타조 시합에 열광하며 조선 조정에 건주 여진 정벌이 계획되고 있으니 빨리 준비하라고 정보를 전해준다. 대가로 앞으로 돈이 걸리는 타조 시합을 대비해 타조들의 신상정보를 받게 되자 단골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수 년 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권세를 지닌 환관으로 금수를 맞아준다. 원 역사에서는 뇌물 좀 더 받겠다고 하도 사행길에 오르다가 과로로 단명한 인물이나, 여기선 해금령이 풀려서 전처럼 육로로 몇 달씩이나 오갈 일도 없던 지라 나이가 70살이 다 되어서도 건강하다고.
- 왕직
명 황실에서 태감을 담당하는 환관. 정동보다 어리지만 만귀비의 총애를 기반으로 환관들 사이의 실권을 꽉 쥐고 있어 정동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회색앵무에 주목해 주우탱의 입지를 좁히려 하나 요승 계효 때문에 계획이 살짝 틀어진다.
성화제의 여진 정벌의 실질 책임자로 2만 명의 병력과 보급용 우마 1만 5천 마리라는 엄청난 물자를 동원해 장기전을 각오한 토벌에 나선다. 조선이 원 역사와는 달리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행보를 보여주며 호응한 덕에 건주위를 크게 물리치며 대승한다. 그러나 200명도 잡거나 사살하지 못한 명군에 비해 조선이 천 명에 달하는 여진기병을 무찌르고 추장 이보을가대와 아이신기오로 일족 중진 둘(누르하치의 직계다!)을 포함해 수백 명을 포로로 잡고, 요충지인 우라산성과 오미부까지 영토로 합병하는 등 비교도 안되는 큰 공을 세우자, 조선만큼의 수급은 확보해야 한다면서 해서로 도망친 아이신기오로 톨로를 추격하며 병력을 동원해서 건주위 영토를 재차 샅샅이 뒤지며 확인사살에 들어간다.
수 년 후 결국 비리가 적발되어 파직된 후 변경으로 추방당했다고 한다.
- 유근
정덕제가 즉위하고 태감 자리에 있는 이로 황제 옆에서 부귀나 누리고 싶어하는 지라 정덕제의 양위 소동에서 정덕제를 지원하기로 한다. 성종과 김금수가 양위를 결사 반대하자 금수를 찬성파로 돌리기 위해 훠자오뤼를 할 것처럼 보여준 후 짐승을 괴롭히며 먹는 요리가 중원에 많음을 알린다.[81] 선양이 끝나고 보름 뒤에 김금수가 찾아와 정5품 이조정랑에 천거되고, 하북 복구 책임자인 임사홍과 함께 일하게 된다.[82]
4.2.3. 기타
- 계효
명나라 시기에 활동했던 요승. 성화제를 알현하다 카멜레온과 회색앵무를 보고 이를 자신의 입지를 향상시킬 요소로 간주, 사육을 자처해 주우탱과 태후가 도술에 푹 빠지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만귀비와 주우탱의 신뢰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라 금수의 인맥으로 남아 보선을 적당한 가격에 팔아주어 금수의 호주 원정 항해에 보탬이 된다. 성화제 사후에는 처형당한 원 역사와는 달리 사실상 한 때 왕직과 같은 권력자의 포지션에 올랐다고 하며, 덕분에 명의 부정부패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다얀 칸의 남진에도 비상식적인 판단만을 강요하면서 명나라의 망국에 큰 기여를 했다.
성종은 계효가 홍치제의 이성을 흐뜨려서 조선의 국익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이런 돌팔이 파계승을 상국, 우호국의 실세로 두는 것이 매우 혐오스러워 하기에 매번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83]
이후 홍치제가 사망했을 때 곁에 없었던 것으로 보아 홍치제보다 먼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 척경통
북중국에서 몽골의 공세를 간신히 버티던 등주지휘첨사. 그 유명한 척계광의 부친이다. 다얀 칸의 몽골군을 상대로 치열하게 맞서싸우며 조선 수군이 지원 올 때까지 홍치제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얀-금수 조약 이후에 다시 공격한 몽골군에게 패배하고 본인도 조선으로 피난한다. 정덕제가 조선에게 선양을 하자 절망을 금치 못해 가족들을 이끌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중국은 대한제국의 지원을 받은 백련교의 세상이 되어버렸고, 생태주의적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동포들에게 실망해서 대한제국으로 귀화했다. 4년 전에 첩에게서 아들 척계광을 얻었던 원 역사와는 달리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4.3. 건주위
- 이보을가대
건주위의 세력가 여진 추장. 그 유명한 이만주의 막내아들로 성종 시기 조선과 명의 국경을 괴롭힌 인물. 조선의 공세 계획을 눈치채고 선공으로 기병을 평안도에 침공시켜 라마 두 마리를 부상입히고, 군수물자를 약탈하는 등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반려동물인 라마들이 화살에 맞아 다치고 한 마리는 죽었다는 소식에 눈이 뒤집힌 금수가존 윅화되어서낙타의 등에 화차를 얹고, 20마리의 군견을 훈련시켜서 2만 명의 조선군과 같이 출격하면서 라마 잘못 건드린 죄로 부족이 망해버릴 처지에 놓인다. 건주위 정예 기병 500기를 이끌고 정찰 겸 선공을 가하려 했으나 조선 낙타기병에 크게 당해 대부분 괴멸당하고 도망친다. 금수는 어유소를 설득해 단순 토벌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근거지인 오미부와 우라산성을 완전 병합할 생각으로 나오면서 위기에 몰리고, 간신히 아이신기오로 톨로의 패잔병과 합류해 우라산성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도망치던 와중에 아이신기오로 추장이 나눠 준 감자를 먹는 바람에 채 하루도 못 가서 솔라닌 중독으로 백여 명의 부족 전사들과 같이 중간에 쓰러져서 조선군의 추격에 잡히고 만다. 이 일화가 퍼져나갔는지 여진족은 감자를 독이 들었다고 기피하게 되어 새로이 획득한 북방영토에서도 감자를 재배하게 된 건 덤.[84]
- 아이신기오로 톨로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의 종고조부. 건주위의 가장 큰 세력가 추장으로 동생 아이신기오로 시버오치피양구와 같이 건주여진을 이끌고 있다. 왕직의 명나라 토벌군을 상대하기 위해 병력을 움직였지만, 2만 명의 병력과 1만 두 이상의 소를 동원한 명나라의 물량전에 크게 패한다. 요충지인 오미부를 지키던 여진족 기병대도 패하고 어유소의 조선군에 점령당하자, 이보을가대와 합류해 우라산성으로 퇴각한다. 한편 퇴각하는 과정에서 소수의 조선군이 운반하던 싹이 난 녹색의 삶은 감자를 한 수레 노획해서 배를 채운다.[85]
솔라닌 중독으로 낙오된 이보을가대 추장과 백 명의 전사들을 버리고, 분통을 터뜨리며 간신히 우라산성으로 도망쳤으나, 금수가 데리고 온 포병 부대의 집중공격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보게 된다. 결국 조선군이 우라산성에 진입해 오자 동생 시버오치피양구와 같이 해서로 도주했으나 조선군의 추격으로 동생과 조카를 잃고 수십 명만 데리고 겨우 도망쳐야 했다. 동생이 후일 후금의 직계 시조인 인물이니 사실상 청나라는 사라진 셈이며 본인도 복수심에 불타고 있지만 조선군은 건주위의 영토인 오미부~우라산성까지 이어지는 지역을 조선 영토로 편입해 버렸고, 명군의 추적은 계속 이어지고 있기에 사실상 미래는 없다시피 하다.[86]
2년여가 지난 시점에 건주위에 이주한 조선인들이 감자와 밀 농사를 성공적으로 지어 수확하면서 그 일대의 경제권이 성립해 조선에 편입되는 와중에도 별 움직임이 없었다. 그 후 대 홀룬국 전쟁에서 밝혀진 바 해서위로 망명한 후 현지 여인과 결혼해서 기오창가를 낳고 그를 키우다가 죽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기오창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있었다고 하니 원 역사보다 10년 이상은 더 산 셈이다. 복수를 위해 기오창가를 단련시켰지만 그 단련이 무색하게 애니멀 펑크로 무장한 조선군에 해서위군이 박살나고 조선에서 아이신기오로 일족을 살아서는 요동 땅을 밟을 수 없게 만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아이신기오로의 재흥은 불가능해졌다.
- 아이신기오로 기오창가
원 역사의 누르하치의 할아버지와는 동명이인으로 위에 나온 톨로의 아들이다. 원 역사에선 톨로가 아들이 없었지만 여기선 해서위에서 결혼해서 늦둥이로나마 낳았다는 설정이며 아버지에게 각종 무술과 조선에 대한 증오심을 배웠으며 그 결과 스물이 되기 전에 기병대 장교를 맡을 정도로 성장한다. 이후 다얀 칸의 요청으로 해서위가 조선을 치면서 복수의 기회라 여겨 참전하지만 상대는 애니멀펑크(...)가 완료된 조선이었고 코끼리 포병+자이언트 모아 기병+열기구 부대+하스트수리 추적대라는 환상의 조합에 해서위·몽골 연합이 털리며 홀룬국왕 수허터까지 포로로 잡히면서 보복은 실패한다.
이후 수허터의 항복으로 홀룬 왕세자의 시종으로 한양에서 머물게 된다. 조선 조정에 성씨가 알려지자 금수의 방책대로 조선 여인과 혼인하고 조선의 사치품을 누리는 대우를 받으면서 영원히 요동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87]
4.4. 해서위
- 수허터
과거 중원을 정복한 금나라 완안부의 후손이자 해서여진 최고 세력가. 건주위가 조선과 명에 의해 몰락하자 그 난민들을 세력에 받아들여서 세력을 대거 확장, 야인여진들까지 흡수하면서 홀룬국을 세운다. 조선과 명도 강력한 경계대상 적국으로 인식하면서 사실상 미래의 후금, 청나라 포지션을 대체했다. 자체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기병만 4만, 보병 역시 수만 명을 넘으며 정예함도 지지 않을 정도.
북경을 함락해 북중국을 정복중인 몽골의 제안과 지원을 받는 대신에 전부터 목적대로 건주위를 수복하기 위해 대군을 몰고 진격한다. 나름 포병에 대한 전술까지 세우고, 오만에 달하는 기병들을 이용한 고속 공세까지 철저한 계획하에 진격했으나, 역시 오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반격에 나선 조선군(보병 4만에 기병+포병 1만 이상)의 짐승부대에게 크게 당해 대패하며 본인도 하스트수리에게 찍혀 낙마해서 포로로 잡힌다.[88]
포로들을 돌려보내 주는 대가로 송화강 이남 영토를 포기하고, 홀룬의 왕세자를 포함해 많은 유력 부족장의 아들들이 볼모로 조선에 머물게 된다. 귀국해도 패전으로 말미암아 반기를 드러낸 많은 산하 여진부족을 다시 제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후일 언급을 보면 어떻게든 가문과 나라는 존속했지만, 끝내 내치 정리에 실패해 조선 원정대가 홀룬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야인여진들을 포섭할 수 있었다.
4.5. 몽골
- 다얀 칸
원 역사에서 경술의 변을 일으킨 알탄 칸의 조부. 몽골 제국을 일으켜 세운 명군으로 오이라트를 정벌한 후 10만에 달하는 전군을 동원해 명나라를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실 역사에선 명군 홍치제 치세여서 손자 대까지 큰 일을 벌이진 못했지만, 여기서는 홍치제가 암군이 되면서 벌어진 명나라의 수백억 황충 재해로 명나라 군사력이 붕괴하자, 이를 노리고 남진.[89] 계효에게 속은 홍치제가 오판하면서 단숨에 북경을 함락했다. 홍치제를 쫓아 등주까지 진격했으나, 어유소가 끌고 온 조선 수군의 반격으로 시가전에서 패배하고 홍치제 포획은 실패한다.
이후 조선을 견제하기 위해 홀룬국과 접촉해 그들이 수만 대군을 몰고 남하하도록 유도하지만 이마저도 철저히 박살나버리며 본인들의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김금수가 서양과의 육로로의 통교를 생각하고 있어 휴전을 할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 다행. 그 후 심양성에서 금수와 만나서 종전 조약을 맺는다. 이미 조선이 가진 요동에 더해 요서 일대를 조선에게 넘겨주는 것에 화를 내지만, 조선의 제한 없는 무역 제안과, 화북과 북경 통치에 대한 인정이 꼭 필요했기에 조약을 승인한다.[90]
한편 요서를 조선에게 내주는 대신 그 후에 군대를 정비해 아직 명나라 군이 간신히 저항중이던 래주부를 완전히 점령하고 명군을 몰살시켰다.[91] 사실상 북중국을 차지했고, 이에 김금수는 조약은 조선군이 몽골보다 약하지 않을 때만 유효할 것이라 직감하고, 요동 일대의 군사력과 조선의 군사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게 된다.
그렇게 십여년이 지나 북원을 반석에 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돈줄인 대조선 무역에선 조선과 서역의 해로 무역이 열리며 수익이 줄어들었고 그로 인해 기득권층의 불만이 매우 커졌다. 남중국을 중심으로 한 한족 12개국도 내란에 흉년으로 가난해서 공격해 봐야 본전도 못 칠 것이라 계속 고민하다가 유럽을 향한 서진을 결심한다.[92] 이후 조선에서 들어온 정보를 토대로 몽골 내에 자생하는 말코손바닥사슴들을 잡아 이를 기반으로 말코손바닥사슴 중기병대를 창설하고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는 등 준비를 철저히 해서 사파비 제국을 무너트리고 모스크바 대공국까지 압박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유럽 연합군의 조총 사격음에 말코손바닥사슴들이 놀라 힘을 못쓰자 사슴의 고막을 터뜨려 폭음을 막는 식으로 대응하였는데, 문제는 이게 김금수와 성종의 역린을 건드리는 바람에 조선군이 전쟁에 참여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결국 서역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화북이 번국화해서 죄다 조선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 관중(사천) 일대는 유지중으로 추측된다.
4.6. 일본
- 오우치 마사히로
성종 시기 오우치 가문의 당주이자 오닌의 난 당시 서군의 중심축이며 뒤에 오우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끄는 오우치 요시오키의 아버지. 수백년 전부터 꾸준히 자신들을 백제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조선에 우호적으로 나온 덕에 김금수에 의해 조총을 팔 대상으로 선정되었다.[93] 거진 오우치 가문의 영지에 사신으로 온 정괄이 보여준 조총의 위력에 값은 부르는 데로 치를 테니 다른 다이묘들에게 이를 팔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94]
이후 조선에서 대서분지가 발명되고 이를 이용한 종이접기가 유행하자 조선에 하사하는 대서 수를 10마리로 늘려달라 요청하는데 조선의 대서 수도 적어서 10마리까진 아니지만 3마리를 하사 받고 대서분지 무역 독점권까지 얻게 되면서 창출된 이윤으로 원 역사보다 세력이 강대해지고 있다. 거기다 조선에서 갓 들어온 식용 가축이자 깃털로 갑옷을 만들 수 있는 녹란조까지 도입했으며 이를 우에스기 가문에게도 전해주지만 우에스기가 크는 걸 보고 싶지 않던 호조 가문과 타케다 가문의 훼방으로 녹란조 200마리가 간토 평원에 풀렸으며 또한 조선에서 거묘를 데리고 왔기에[95] 그와 관련된 나비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운 좋게도 그 이전에 아들 요시오키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퇴했는지 험한 꼴은 겪지 않았다.
- 오우치 요시오키
오우치 마사히로의 아들로 원 역사 오우치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던 인물. 부친 마사히로가 녹란조(에뮤)의 비싼 값에 수입을 고민하자 멀리 있는 동맹인 우에스기 가문에 더 비싸게 팔자는 중개 무역을 제안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가문에 녹란조와 대서 등의 조선산 짐승 무역 확대를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덕분에 원 역사에서 오우치 가문의 서일본 패권을 위협하거나 찬탈에 성공한 아마노 가와 모리 가는 거의 언급도 되지 않는다.[96]
그렇게 서일본 최강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1490년대에는 마사히로의 뒤를 이어 가주가 된다. 그러나 1490년대에 넘어간 거묘들이 5~6년이 지난 1490년대 후반에는 혼슈의 농촌들을 아주 박살내는 바람에 황급히 조선에 도움을 청한다. 금수는 거묘를 수출한 적도 없었고, 설령 유출된다 한들 호주와는 달리 인구밀도가 조선 이상으로 높고, 적긴 해도 일본늑대와 곰 같은 맹수도 있는 일본의 오우치 가문이 왜 감당을 못하는지 의아해했는데 이웃한 다이묘들과의 전투 탓에 거묘 사냥에 제대로 인력을 못 쏟아붓는 중이었음이 밝혀진다. 이에 조선에 사냥꾼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지만 성종은 거절하고 이와미 은광을 받아가고, 스라소니와 족제비 등의 대륙 맹수들, 그리고 무이자로 방벽을 설치할 재정과 토목공사에 쓸 거중기 등 을 일본에 넘겨준다. 그나마 규슈 지방을 거점으로 삼고 있기에 혼슈 지방이 에뮤 떼로 인해 초토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뮤 떼에게는 시달리지 않는다는 게 유일한 위안인 상황이다.[97] 다만 혼슈의 에뮤떼가 이대로 창궐하게 두면 혼슈쪽에 있는 영토인 스오국(지금의 쇼난)이 위험하기에 방벽을 설치할 필요가 생겼고 이에 조선에서 이와미 은광 경영권을 넘겨주고 자금과 물자를 대출받아 방벽을 세웠으며,[98] 호조 가문에 의해 혼슈 지방에 호랑이까지 창궐하자 착호갑사를 운용하며 영지를 지켜내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에서 유자광까지 보내서 삐라 작전을 종용하자 처음에는 질색하다가도 조선이 분노할 것 같자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삐라 작전에 적극 동참한다.[99] 이에 분노한 동일본 영주들이 연합해 8만에 달하는 대군으로 공격해 오자 위기에 처했으나, 김금수의 에뮤·토끼 군단의 보급로 습격 유도 작전이 성공해 동일본 연합군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해체되면서 사실상 규슈를 다스리면서 일본 최대 세력을 확고히 하게 된다.
- 호조 소운
원 역사 전국시대 3효웅 중 하나. 오우치 가문이 우에스기 가문에 새로운 가축인 녹란조와 신형 무기인 조총을 나눠준다는 소식에 이를 훼방 놓고자 타케다 가문에 소식을 알려 수송대를 공격하게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녹란조 200마리가 간토 평야에 풀리면서 일본에 에뮤 전쟁이 벌어지게 될 단초를 제공하고 만다. 그렇기에 만일 수송대 습격의 배후가 알려진다면 미래의 사람들에게 패권 욕심에 일본에 가장 큰 독을 풀어버린 장본인이라며 두고두고 욕 먹을 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100]
그리고 수년 사이 우에스기를 밀어내고 간토 평야를 손에 넣었으나, 정작 이미 엄청나게 번식한 에뮤 떼로 인해 곤혹을 치르고 있다고 오우치 마사히로가 언급하며 지난 과업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800의 기병대 중 300명이나 동원했으나 에뮤떼를 얕보고 있는 지라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에뮤를 상대로 단번에 대군으로 몰아쳐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주변 영지가 죄다 적대 세력인 데다가 중요한 간토 평야가 에뮤 제국에 털리는 중이라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 오우치가 조선에서 맹수를 들여와 거묘를 다스렸다는 얘기를 듣고 조선에서 호랑이를 들여오기로 결심한다.[101] 조선 조정에 호랑이를 달라고 요청하나 호조 소운이 중이었단 사실과 호환을 가벼이 보고 있다는 사실에 요청을 거절 당한다. 이에 조선이 호조가 망하길 바라고 있다 생각하고 대마도의 소 무라모리를 통해서 어미호랑이 한 마리와 새끼 호랑이 다섯 마리를 밀수한다. 그리고 에뮤 숫자가 많은 관계로 주기적으로 대마도를 통해 호랑이를 밀수하기로 한다. 그러나 이렇게 들어온 호랑이의 수가 10년간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호조의 영지를 비롯한 혼슈는 호환 탓에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심지어 잡아먹으라는 에뮤는 생각보다 줄지 않아서[102] 더욱 개판이 되어 버렸고 결국 호환·에뮤·민란의 3연타를 맞아서 간토 평야에서 쫓겨나 이즈 반도로 몰려 손을 떼게 된다. 이후 조선의 삐라 작전으로 동일본 영민들이 오우치나 조선으로 빠져나가자 빡쳐서 동일본 영주들을 죄다 모아 오우치를 공격하기로 한다. 이에 산세가 험하고 호랑이가 많은 미노 국(현 기후 지방)에 동일본 연합의 군량을 쌓아두고 기다리나 금수의 책략으로 자이언트 플랑드르 토끼와 에뮤가 유도되면서 죄다 털리고 만다. 이후 인생무상을 느끼고는 다시 승려로 돌아가 방랑을 떠나면서 호조 가문은 해체된다.
- 쇼니 마사스케
무로마치 시대에 규슈 북부를 근거지로 번영한 쇼니씨 다이묘. 본래는 1497년까지 오우치씨와 동맹의 포섭과 배신을 둔 치열한 경쟁 끝에 규슈 북부의 패권을 빼앗길 운명이었다. 그러나 대조선 무역과 지원을 받은 오우치씨가 강력한 군사를 앞세워서 공세에 접어들면서 오우치 마사히로 대에 이미 열세에 처했다가 1493년에는 규슈에서 아예 쫓겨나 대만까지 도망쳤다.
1499년까지 남중국 해적들과 연합해서 60척이 넘는 해적선을 거느린 해적단 수장이 되었고, 조선과 오우치씨에 복수할 날을 꿈꾸다 조선의 유럽행 사절단을 보고 복수의 기회라며 공격하지만 조선 사절단의 컬버린+장수말벌 항아리의 콜라보 공격으로 탈탈 털리고 본인은 눈과 팔다리를 벌침에 제대로 쏘인 채 바다로 떨어져 과민성 쇼크로 사망하고 만다.
- 고카시와바라 덴노
원 역사에서도 오닌의 난으로 불우한 덴노였지만 여기서는 더 심해져서 에뮤 제국과 가뭄으로 인해 다이묘들이 그나마 생색이라도 내던 쌀을 한 톨도 보내지 않아서 결국 자신을 따르는 가신들과 백성들 3000명[103]을 데리고 조선으로 망명을 시도한다. 삼종신기까지 바쳐가며 망명을 받아달라고 사정하나 군주답지 못해 망명을 반려하려던 찰나[104] 도모히토 태자가 자기들 부자가 기르는 애완견인 쿠로라도 살려달라고 빌자 금수가 풍족한 데도 곤경에 처한 이를 외면하는 건 군자의 도리가 아니고 짐승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은 모두 형제자매라 외치고 이에 공감한 성종이 사람을 아끼고도 측은지심이 넘쳐 짐승을 아낄 줄 알아야 군자라 말하며 도와주기로 한다. 가평의 귀왜촌에서 지내며 조선말을 익히고 성종에게 고씨 성과 승인(勝仁)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으며 가평을 본적으로 삼게 된다.
- 다케다 노부츠나
다케다 신겐의 조부. 다케다의 영지가 산에 둘러싸인 덕에 에뮤 제국에 의한 피해가 제일 적었다. 이로 인해 동일본 연합군의 맹주가 되었다.
- 오다 노부사다
오다 노부나가의 조부이자 오다 가문의 방계의 당주, 주군인 시바 가에서 오우치 공격에 동의하자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됐지만 본심은 오우치와 조선에 사절을 보내 맹수 대책을 세우고 싶어한다. 오우치를 공격한다 해도 사나운 동물들을 어찌 하지 못하면 결국 멸망뿐인 걸 알고 있기에 날랜 닌자들을 통해 오우치에 동일본 연합군이 오우치를 치려는 사실을 알렸다.[105]
결국 동일본 연합군이 해체되었을 때 오다 가문은 이를 예상한 데다가, 고립된 지형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짐승들을 막아냈고 조선과 오우치에 원군을 청한다.
- 오다 노부나가
외전에서 첫 등장하며 아버지의 장례식에 상주로 나서지만 호랑이를 대동하고 들어와 동생과 가로들이 저지하려 하자 원 역사에서 그랬듯 아버지의 유해에 냅다 불을 질러버리는 기행을 저지른다. 이를 듣고 유학적 질서를 어겼다고 분노한 순화제 이융에게 소환되지만 타고난 말빨로 황제를 설득했으며 최근 아프리카에서 서양 밀렵꾼이 날뛴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들의 토벌을 자처해 아프리카로 가게 된다. 원 역사에서 제육천마왕을 자처했던 것과는 달리 관음보살 중 하나인 마두관음보살을 자처했으며 말머리 모양 투구를 쓰고 다녔다. 그리고 유럽인들을 몰아내면서 아프리카인들을 규합하여 일본 열도 3배 크기의 신(新) 오와리 국을 건국, 아프리카 중부와 남부를 국립공원화 시켰다고 한다.
4.7. 대월
- 여사성
묘호는 조선 현 국왕과 똑같은 성종이며 원 역사에서 대월의 전성기를 이끈 성군. 조선에서 시작되어 명나라까지 퍼진 반려동물 문화에 영향을 받아 양 옆에 페르시안 고양이와 쥐사슴을 낀 채로 조선 사절단을 맞이한다. 이 때 자신들이 먼저 조선에 사절단을 보내려했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토발서를 그린 그림을 본 막내공주가 토발서를 가지고 싶다고 떼를 써서 명나라에서 구해보고자 했으나 명나라 황제의 반대로 무산되고 막내공주는 앓아 눕는 처지가 되는 바람에 토발서의 산지인 조선과의 직접적인 교역을 통해 토발서를 구하려 했던 것.[106] 그러나 조선과 마찬가지로 성리학을 배운 대월의 관료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고약을 내세운 김금수 덕에 고약을 들인다는 명분 하에 조선과의 교역을 확정지으며 동물 문제는 교역 달성 기념을 통한 서로의 선물 방식으로 주고 받자는 김금수의 제안에 만족하고 미소를 짓는다.
미리 김금수와 짠 대로 신료들 앞에서 선물이랍시고 조선 사신단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동물과[107] 선물을 준비해 주고는, 코끼리 변으로 만드는 종이에 대해서도 처음 듣는 것처럼 연기하면서 자연스레 막대한 선물을 나를 보선과 선원들을 지원해 주면서 항로를 기록하면서 반발 없이 조선과 교역을 튼다. 참고로 매번 상대국을 상국 혹은 조공국으로 깎아내리던 동아시아 사대외교가 아닌 대등한 우호국으로 공식적으로 맺은 첫 외교다. 덕분에 조선에선 귀하게 여겨지는 각종 향신료가 대량 공급되어 사대부들의 반응도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그 후에도 조선과 홀룬의 전쟁이 준비될 시기에 전투코끼리를 여러마리 판매해 조선의 승전에 도움을 준다.
여담으로 여사성 역시 50대에 종기의 일환이라는 풍종에 걸려 죽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조선과의 교역으로 종기를 치료하는 고약을 도입해서 미리 종기를 제거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원 역사보다 더 장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4.8. 삼봉도
- 카카티
오늘날의 오클랜드 지역에 살던 마오리족 부족 중 하나인 타우니족의 추장. 조선 탐사대 덕에 아들을 살리게 된 타우니족 사람이 소개해 줘서 조선 탐사대를 만났으며 김금수에게 강철로 만든 환도와 녹란조 및 그 고기를 선물로 받고 만족해서 그에게 "홍이"라는 전통 인사[108]를 건네는데 이게 조선인들에게는 남사스러운 행위라 한보가 남색가로 착각해 한 펄펄 뛰고 임사홍은 이게 인사라며 말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이후 조선인들이 데려온 말에도 관심을 보이는 등[109] 조선 문물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임사홍의 마오리어 실력 증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실제로 자이언트 모아를 길들이는 데 성공하고 길들인 모아 무리에게 마오리 하카를 익히게 하면서[110] 다른 부족들에게 타우니족은 신이 선택한 부족이라는 명성을 얻어 빠르면 3~4년 안에 뉴질랜드 통일이 가능할 경지에 이른다. 그 후 아들과 20명의 청년을 조선에 유학 보내면서 조선과의 교류를 확고히 하기로 한다.
그 후로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약 2~3년) 조선이 몽골·해서 연합을 격파했을 때는 이미 인근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태우국을 세웠다.
4.9. 유럽
- 바스쿠 다 가마
원 역사대로 캘리컷에서 무역을 타진하다 실패한 상태로 첫 등장. 자모린이 간곡히 요청해 조선에서 들여온 자이언트 모아를 보고 감동하여 모아가 온 나라인 조선에 대해 알게 되고 조선에서 비단과 도자기가 생산되고 모아 이 외에도 신기한 동물이 많다는 소식에 즉각 조선에 대해 아는 항해사를 고용해 조선에 도착하며 조선과 유럽 교류의 포문을 열게 된다.
- 알렉산데르 6세
조선이 유럽에 사절단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만나게 될 214대 교황. 권모술수에 탁월한 인물이였기에 김금수는 사절단 단장이 된 임사홍에게 교황의 역린을 건들지 않도록 신신당부 하였다.[111] 이후 230화 쯤 첫 등장 하는데 조선 사절단에 대해 정보들을 모으고 있었고 이를 토대로 이들이 진짜 순수한 기독교 신자가 아님을 간파해서 그 사절단의 대표인 임사홍이 델라 로베레 가문과 프랑스와 붙어먹은 것 아니냐고 의심해서 고문을 가하려 하지만 임사홍이 자신들의 진짜 목적을 이야기하자 거짓말하는 거 같지도 않고 흥미도 동해서 일단 풀어준 뒤 임사홍이 데려온 동물들을 보는데[112] 이 중에서 쿼카에 가장 큰 흥미를 보이며 쿼카가 다리 끌어안기라는 필살 애교를 시전하자 이에 기적적인 귀여움이라고 찬사를 보내며 홀린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노회한 인물인 지라 내심 마음에 들어하면서도 겉으로는 냉랭한 척하고, 보르지아 왕가가 통치하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을 건설한다는 가문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임사홍과 협상을 한다. 이후 개다래 열매 덕에 원 역사의 사인이던 말라리아를 피하고 이탈리아 통일을 사실상 성공하게 된다.
- 마누엘 1세
포르투갈의 국왕. 원 역사에서 바스쿠 다 가마의 항해를 후원하고 그가 얻어온 향신료와 물자로 60배란 대박을 친 인물. 바스쿠 다 가마가 조선에 상륙하면서 지구 반대편의 기독교인 권력자와 그들이 주는 막대한 양의 후추와 도자기 등의 보물로 배를 채워서 돌아오자 원 역사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득을 보게 되어 환호성을 지른다. 이후 조선 사절단이 데려온 동물들을 보고 놀라기도 하며 곧바로 조선과 무역 조약을 체결한 뒤 사절단이 다시 돌아오면 코발트를 넉넉히 준비하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언급을 보면 유럽에서 유일하게 기린조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 줄리아노 데 로베레
원 역사에서 216대 교황인 율리오 2세가 되는 인물로 이 시기에는 알렉산데르의 암살 위협을 피해 프랑스로 도주한 상태다. 조선 사절단이 바티칸으로 향한다는 말에 그들이 머물던 사르데냐로 가서 교황과 그 가문인 보르자 가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으며 교황령으로 가지 말고 프랑스로 가자고 설득하지만 임사홍이 거절하자 더 이상 강요하진 않으며 그래도 세례성사는 그에게 받지 말라고 충고했다.
- 체사레 보르자
원 역사에서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이자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군주라고 호평한 인물. 아버지를 닮아 음험의 대명사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임사홍이 진실을 말함에도 이를 끊임 없이 의심한다. 이후 임사홍이 데려온 동물들을 보는데 거기서 오리너구리에게 독침이 있다는 말에 즉각 부하의 손을 이동 수조에 넣어 독침에 쏘이게 하고 부하가 고통스러워 하는 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독의 효능을 아버지에게 보고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이는 건 덤. 이후 조선의 조총 시연을 보고 사절단의 조총 보유고를 알고 조선이 군사 강국인 것을 깨닫고 친밀해져야 한다고 판단, 임사홍에게 유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후 개다래 열매 덕에 말라리아를 피했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베네치아와 피렌체를 제외한 이탈리아 전역을 제패하고 곧 교황령도 아버지에게 물려 받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왕이 될 예정이었으나 타이밍 나쁘게 몽골이 쳐들어오자 짜증을 내면서 지원군을 이끌고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말코손바닥사슴 기병대를 보고 경악하게 된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조선사절단이 귀국할 때 데리고 온 유명인사 중 한 명. 김금수 형제의 작품인 한양의 상하수도 시스템을 보고 감탄하였으며, 김금수 형제의 하느님의 계시를 빙자한 미래 지식을 응용한 현미경 등에 매료되어 생물학 등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조선에 온 뒤 기린조를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다빈치의 언급을 봐선 작품명이 모아리자가 될 모양.[113] 이후 모아리자와는 별개로 모나리자도 그렸다고 언급되었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조선사절단이 귀국할 때 데리고 온 유명인사 중 한 명. 한양에 성당이 있는 것을 보고 감격하였으며, 봉황취를 다루는 응사를 조각하였다. 대리석과 달리 단단한 화강암을 조각하면서 투덜거린 것은 덤.
- 니콜로 마키아벨리
원 역사에서 군주론을 집필한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 겸 학자. 조선사절단의 귀국길에 동행하여 조선을 방문하였고, 조선의 강대한 국력의 비결을 파헤치다 김금수와의 대화를 통해 동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비결이라는 결론을 내었다.[114] 그 결과 군주론 대신 금수론이라는 책을 집필하였는데, 체사레 보르자의 언급을 보면 금수론은 사상서라기보단 동물백과사전 비슷한 내용인 듯하다.
4.10. 남미
- 말린체
원 역사에서 에르난 코르테스의 통역사이자 정부(情婦)였던 여자. 여기서는 유럽이 몽골·오스만 연합군의 침공을 막아내느라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진출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탓에 외전에서 김진승 일행과 만날 때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노예로서 살고 있었다. 김진승 일행의 통역사가 되면서 현지인들의 민심을 얻을 방법들을 조언해 주었고, 일이 마무리될 쯤 그녀에게 반한 척경통이 구혼을 하고 대한제국에는 귀엽고 살가운 짐승이 많다는 말을 받아들여 척경통의 첩이 되었다. 물론 척경통이 본처와 사별한 뒤로 옛 조국 땅을 떠도느라 후처를 들일 겨를이 없어서 사실상 본처가 된 셈이다.
- 몬테수마 2세
다섯 주신에게 은총을 받았다는 김진승에게 대항하기 위해 우이칠로포츠틀리에게 바치는 대규모 인신공양을 시도하였으나, 말린체의 조언을 들은 김진승이 봉황취로 역청을 담은 비격진천뢰를 투하해 제단을 박살내면서 전의를 상실, 김진승에게 항복하였다. 항복한 후 김진승이 대접한 이베리코 돼지의 맛에 반해 인신공양의 폐지를 납득하였으며 뜨거운 돼지고기를 편하게 먹기 위해 칠리 소스를 뿌린 토르티야로 감싼 음식을 만들어냈다.
5. 개변된 역사
5.1. 조선 → 대한제국
- 사림의 영향력 축소
김금수 형제와 함께 트립해 온 동물들이 조선의 국력 신장에 많은 도움을 주면서 기존의 사농공상에 축산업이 포함된 사축농공상의 개념이 도입되어 축산업을 중시하게 되었고, 축산업과 연관된 실학의 중요성 역시 강조되어 그 반대급부로 사림의 영향력이 축소되었다.[115] 결정적으로 원 역사에서 사림의 거두가 될 인물들이 일찍 죽거나 성향이 뒤바뀌면서[116] 원 역사 같은 사림 세력의 발흥으로 인한 폐해가 일어날 여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다.
거기다 가축을 잘 키우기만 하면 벼슬을 승급시켜 주는 제도가 도입되어 음서로 벼슬에 오른 훈구파의 자제들이 현장직 한정이지만 보다 높은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로 인해 훈구파와 사림파의 세력이 비등해지면서 사림이 독주하는 일은 사실상 없어져버렸다.
- 육조 체제의 변화
원 역사의 육조에서 축산업을 관장하는 축조와 외교를 관장하는 외조가 새로 설립되었다.
축조는 귀물원을 통해 동물들의 유용함이 증명되면서 축산업의 중요성이 대두되어 호조에서 축산분야만 떼어내 설립되었고, 삼봉도 탐험 이후 조선과 교류하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외교업무가 폭증하자 예조에서 외교분야만 떼어내서 외조가 설립된 것이다. 초대 축조판서와 외조판서는 김금수와 임사홍이다.
- 조총 도입
원 역사에서는 임진왜란 직전에 조선에 존재가 알려지고 임진왜란이 벌어지면서 군대에 도입되는 조총이 원 역사보다 100년 빠른 성종 시기에 호멸총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된다.[117] 처음에는 식인 호랑이 토벌에 쓰이다가 이후 군대에도 도입된다. 이후 일본의 오우치 가문에게 판매하며 일본에도 전래되며 유럽 사절단이 교황령에 조총을 팔 것을 약조하며 유럽에도 퍼질 것으로 보인다.
- 건주위 정복
원 역사에서는 짧은 준비시간으로 득도 못 보고 철수한 원정이었으나 여기서는 명나라에서 빨리 정보를 입수하여 준비 시간을 벌었고 금수 형제의 개입으로 감자 같은 새로운 식용 작물과 호멸총, 거각궁, 낙타 화차와 같은 신무기의 도입으로 발전한 조선군이 건주여진을 대파하고 요동에 알을 박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요동 지역은 조선 경제에 큰 보탬이 되는 건 덤. 그 후 요서 지역까지 병탄하면서 국경에서도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영토로 병합된다.
- 해외교역의 활성화
원 역사와 달리 김금수와 성종의 동물덕질(...)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선다. 명나라의 해금령은 토발서의 먹이를 운송한다는 명목으로 풀고 그 이후로도 대월을 시작으로 해외 교역을 넓혀갔다. 그 결과 안남미와 향신료 등의 각종 물자가 유입되어 조선의 경제가 매우 풍족해졌다. 여기다 몽골과 화친을 맺으면서 서양과의 교역로도 확보되었기에 조선의 해외교역량은 더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히 강화도 도박장은 중국인들을 필두로 대월, 일본, 조와국과 태우국까지 수많은 외국인들이 드나들면서 타조무스메에 돈을 뿌리고 있다. 거기다 바스쿠 다 가마의 원정대가 조선을 방문하면서 유럽인들까지도 오게 될 전망.
- 짐승군단을 활용한 군사력 강화
화포를 얹고 쏴대는 코끼리라던가 화차를 짊어지고 돌격하는 낙타, 공중에서 비격진천뢰를 떨구는 하스트수리, 등에 기수를 태우고 돌격하는 자이언트 모아 등 원 역사의 조선은 물론이고 같은 시기의 타국에서도 이루지 못한 동물을 이용한 군사력 강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그나마 비교할 만한 게 코끼리 기병 정도지만 단순히 코끼리 위에 타고 싸운 타국과 달리 조선의 코끼리 기병은 경번갑에 에뮤 깃털을 합친 일종의 복합장갑과 비슷한 갑주를 입히기에 적의 입장에선 화약병기 없으면 답이 안나오는 수준. 조선의 짐승군단과 정면으로 맞부딪친 여진·몽골 연합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패퇴하였으며 조선은 괴수를 부리는 나라라며 맞붙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이후 각종 짐승들을 다루는 조선군을 알게 된 유럽도 프랑스와 스페인이 힘을 합쳐도 조선군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라며 협력을 하려 할 정도다. 직접적인 공격 외에도 에뮤와 토끼들을 이용한 보급 약탈 전술도 실전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의 성립이 가능해진다.
- 반려동물 문화의 정착
귀물원을 통해 동물들의 유용함이 알려졌고 동물들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한양 시내에서 보이는 사람 절반 정도가 반려동물을 데리고 다닐 정도. 전통적인 반려동물인 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앵무새, 프레리도그, 쿼카 등 반려동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사대부는 물론이고 일반 백성들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가능할 정도로 조선의 국력이 강해져 먹고 살기 좋아졌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실제 조선을 방문한 포르투갈 인들도 반려동물들을 보고 조선에는 귀족들이 많다고 생각할 정도.
- 생물학의 발달과 위생관념의 정착
유럽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의 협업으로 현미경을 개발하여[118] 김금수의 유도로 세포의 관측에 성공하였고, 여기에 김금수가 멘델의 법칙을 끼워 넣어 유전의 개념이 포함된 생물학이 조선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나중에는 격세유전에 대한 개념까지 정립될 정도로 발달한 모양. 여기에 각종 미생물의 존재도 밝혀내면서 병의 근원을 깨닫게 되어 길거리의 분뇨를 적극적으로 치우고 주정으로 손 소독을 하는 등 위생관념이 단단히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 대한제국의 건립
몽골을 징치하기 위한 전쟁에 참여했던 주후조가 화북지방의 백성들이 비참하게 살며 명 황실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 자신은 능력이 안 되는 건 둘째 치고 유유자적하며 놀고먹고 싶었기에 성군에게 양위하면 된다는 기적의 논리로 성종에게 황제 직위를 선양하였다. 이후 김금수의 제안으로 국명을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화북지방을 접수해 번국화하면서 한반도+만주+화북지방을 아우르는 제국이 되었다. 여기에 아메리카 대륙 개척도 착수하여 대한제국의 강역을 넓히고 있는 중.
- 프로야구의 도입
조선의 전통놀이(?)인 석전을 어떻게든 안전한 놀이로 교체하려고 김금수 형제가 고심하다 김진수의 제안으로 초기 형태의 야구를 선보였는데, 성종과 조정의 신료들은 야구를 보고 석전보다 안전하긴 한데 석전보다 많이 심심해 보인다라는 평을 남겼다. 하지만 평가와는 별도로 야구 자체는 받아들여져서 16세기 초부터 현대 시점까지 무려 5백여년 동안 이어진 조선의 전통 스포츠가 되었다. 여담으로 김진수가 창단에 관여한 화나 봉황취는 창단 초에도 죽을 쑤었고 21세기에 이르러 우승한 게 3백년만의 우승이라는 걸 봐선 원 역사보다 훨씬 더 못한 모양이다.
- 노산군과 사육신 명예회복
말년의 김금수가 후일 동물권 사상이 주축인 자신과 일부 권신들의 이름 탓에 공격받아 무너질 것을 우려해[119] 지독할 정도의 자기세뇌와 각오 끝에 노산군의 복권을 성종에게 상소로 올리게 된다. 이로서 신관학파의 오점이자 사림의 공격 포인트였던 단종 복위 문제는 위력이 크게 죽어서 금수의 사상의 약점을 거의 지워주게 된다.
5.2. 국외
- 명 몰락의 빠른 시작
원 역사에서는 명의 마지막 명군인 홍치제 이후 명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였으나, 여기서는 김금수 형제가 벌인 일의 나비 효과로[120] 홍치제가 성격만 좋은 무능한 새 덕후 황제가 되어 간신인 계효를 중용한 까닭에 훨씬 일찍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였다. 거기다 홍치제가 곡식을 훔쳐먹는 참새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시전한 갓 핑거 때문에 메뚜기 떼로 인한 재앙을 겪었고 어수선한 틈에 몽골의 침략까지 더해져 명 조정이 조선으로 피난 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후 몽골의 다얀 칸은 금수와 밀약을 맺으면서 요서를 조선에게 내주는 대신 북중국의 통치권을 인정받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치 않기로 약속한다.
10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났으나, 남경 중심의 남중국에는 후명이 세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강소 군벌이 월나라를 세우면서 명나라는 사실상 멸망한 상태다. 다얀 칸의 북원은 제대로 재건된 듯하지만, 대조선 무역의 수익이 줄어서 점차 불만이 쌓이고 있으며, 중국 변경과 남중국은 총 12개에 달하는 한족 나라가 세워진 상태라고 한다. 그래도 무역 수익이 떨어진 것은 저 난립해 있는 한족 국가들을 털어서 벌충하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라 할 수 있지만 이 나라들도 아직 명 시기에 벌어진 메뚜기 떼 습격의 피해를 극복하지 못해서 현재는 털어먹을 것조차 없는 거지굴 상태라 쓸 수 없는 방법이었고 결국 몽골의 지도자 다얀 칸은 선조들 때처럼 서진을 결심하고 그 쪽으로 군대를 돌리게 된다.[121]
그러나 이 사이 몽골의 동물 학대와 서역 공격에 분노한 조선 정부의 총공격으로 화북의 몽골군은 대패해 다시 초원으로 쫓겨나게 된다. 조선이 대한제국이 된 후, 이곳에 번국을 세우고 재건에 착수한 상황.
- 후금 및 청의 삭제·홀룬국 건국
건주여진이 조선의 요동·만주 서부 지역 진출과 더불어 아이신기오로 가문의 몰락으로 후금 및 청의 건국이 불가능해졌다. 대신 본 역사에선 건주위에 흡수된 해서 여진의 완안부 후손들이 건주위의 잔당을 흡수해 홀룬국을 건국, 5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 가능한 강국으로 부상한다. 사실상 홀룬국이 후금의 자리를 대체한 셈. 홀룬국은 몽골과 동맹을 맺고 요동을 공격했으나 조선군 5만과의 야전에서 짐승 부대에 패배하여 송화강 이북까지 쫓겨난다.[122] 조선에선 홀룬의 국체 자체는 유지해 신뢰할 수 없는 경계대상 여진들을 통솔하게 한다.
수년이 지난 후에는 유자광이 알래스카로 향할 때도 육로로 가면서 적국 여진족의 약탈을 걱정하지 않는데, 비록 설원 지역이라고는 하나 홀룬국의 영향력이 상당히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몽골이 조선의 공세에서 홀룬은 이제 우리를 도울 수 없다고 평가했을 정도.
- 일본의 생태계 파괴
원 역사와 작중 조선의 생태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던 거묘와, 원 역사에서도 인류의 공격을 막아낸 에뮤가 그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일본 열도에 풀려서 야생화 된다. 두 종 모두 조기 진압하지 않아 야생성을 되찾고 개체수가 늘면 무자비한 피해를 유발할 짐승이라서 주인공들의 의도와는 별개로[123] 열도의 큰 재해가 되는 것이 사실상 확정. 그나마 거묘는 일본에도 사는 곰·여우·늑대 등의 토종 육식동물의 먹잇감이 되어 개체수가 줄어들 여지라도 있지만 사람만한 덩치의 대형 조류인 데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에뮤는 여우나 늑대로선 사냥할 엄두조차 못 내는 상대다. 더구나 풀려난 에뮤떼가 6년간 산지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간토 평야만이 아닌 혼슈 전체가 잠재적으로 위기 상황이다. 그것도 모자라 호조가 에뮤를 막기 위해 호랑이를 밀수하면서 확정적으로 일본 혼슈의 생태계가 붕괴되는 지옥도가 강림했다.[124][125] 결국 최소 십만 마리에 달하는 에뮤와 역시 셀 수 없이 불어난 호랑이에 의해 혼슈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오우치 가의 영지처럼 장벽을 세워 막은 지역 외에는 인간이 살 수 없는 야생지대가 되어가고 있는 셈. 이런 상황이라 김금수는 혼슈 지방을 국립공원화하여 시베리아 호랑이의 서식지로 남겨두기로 했다.[126]
- 일본 열도 영주 세력 구도 변화
본래도 내부 분란 이전까지 규슈에서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오우치 가문이 조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대조선 무역으로 번성하면서 더욱 세력이 커졌다. 오우치의 세력이 커지면서 왜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에 조선에서도 오우치를 밀어주고 있는 상황.[127] 이러한 배경으로 외부에도 적극적으로 힘을 투사하기 시작했으나, 마찬가지로 여러 가문에서 오우치 가문을 견제하면서 부작용이 일고 있다. 거기다 조선에서의 외래종 도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인해 오다 가문, 마츠다이라 가문[128], 타케다 가문, 우에스기 가문, 후호조 가문, 다테 가문과 같은 혼슈 지방에서 활약하던 센고쿠 시대 대표 다이묘들이 원 역사만큼의 위세를 떨치지 못할 것이고 그래도 혼슈와 떨어져 있어 외래 동물들의 피해를 덜 입을 가능성이 큰 오우치 같은 규슈 지역 다이묘들의 세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129][130] 수년 후 간토를 장악할 운명의 호조 가문은 10만 에뮤와 수천 마리 호랑이들의 영역권 강탈과 들고 일어난 농민 반란에 쫓겨나 이즈 반도로 후퇴했으며, 일왕(텐노)마저 혼슈에서 도망쳐 조선으로 망명한다. 이것도 모자라 전 일왕에게서 일본의 현실을 들은 조선 조정에서 혼슈에 사는 일본 영민들을 빼돌리기 위해 삐라를 뿌린다. 결국 혼슈의 영주는 거의 몰락했고, 주민들 대부분은 규슈와 조선으로 이민하게 된다. 오다 가문만이 지형적 이점을 얻어서 영지를 지킨 대신에 앞으로는 국립공원을 관리하게 된다. 규슈 지역은 오우치가 통일에 성공했으며 시코쿠는 쵸소카베 가문이 세습 지방관 자리를 보장받으며 이들의 차지가 된다.
- 대월과 조선의 국교 수립
명나라를 통해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대월과 조선이 토발서 무역을 기점으로 국교를 맺는다. 서로를 위아래로 구분하지 않은 대등한 형제로 대우하며, 조선에서는 토발서와 금모견 등을, 대월에서도 코끼리 같은 지역의 귀한 동물들을 선물한다. 이런 선물교환이 끝나고도 대월의 안남미와 향신료·코끼리·조선의 고약을 비롯한 약재와 가축들 등 갖가지 무역품이 늘면서 교류가 깊어진다.
- 서양과 동북아시아의 빨라진 교류
원 역사에서는 1542년부터 시작된 동북아와 서양의 교류가 금수의 동물 사랑의 나비 효과로 원 역사보다 반백년 정도 빨리 시작된다. 서양 입장에선 거리가 멀긴 하지만 아직 이슬람 상인의 영향력이 약한 데다 향신료와 비단, 도자기 같은 귀중물에 유럽과 인도, 심지어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동물들의 산지이기에 이만한 황금땅이 없기에 수많은 상선들이 조선으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조선도 사절단을 보내 포르투갈 왕국, 교황령과 정식 국교를 체결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서양의 수많은 위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오게 된다.[131]
- 통일 이탈리아의 건국
본 역사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병사했기에 교황령을 중핵으로 한 통일세력 건국에 실패한 알렉산데르 6세의 보르지아 가문이 임사홍이 전해준 개다래나무 덕에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고 수년 이상 더 생존하면서 이탈리아를 통일한다. 덕분에 조총과 강력한 군사력을 겸비하게 된 이탈리아군이 중심이 되어 다얀 칸의 몽골군을 상대로 끈질긴 항전을 이어가고 있다.
- 유럽의 해외 식민지 개척 지연
본편 후반부 시점엔 원 역사에서라면 유럽에 대항해시대가 열려 아메리카 대륙에도 진출하기 시작했을 시기이나, 역사가 뒤바뀐 나비 효과로 몽골이 오스만과 연합하여 유럽을 침공중이기에 이를 막아내느라 급급한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등으로의 해외 진출과 식민지 건설도 교역을 제외하고 지지부진하던 중 어찌어찌 아프리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고 언급되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밀렵꾼들이 판을 쳐서 대한이 오다 노부나가를 보내 밀렵꾼 토벌을 시작하며 이 진출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전쟁에 몰빵하느라 종교 개혁 등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도 안 일어나서 유럽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 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6. 설정
6.1. 귀물원
김금수 형제의 동물농장이 조선시대에 트립해서 얻은 이름. 병조 산하에서 말과 마구, 목축 등을 관할하던 관청인 사복시 소관으로 금수가 사복시 정(정3품) 직급을 받으면서 계속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사복시 자체도 장관인 제조는 종 2품 이상이 관리하던 관청이지만, 갈수록 귀물원의 체격이 커져서 지금은 귀물원이 사복시를 움직이는 핵심기관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현재는 군사분야만이 아니라 과거시험과 농법 연구 등 여러가지 분야에 발을 뻗친 상태.
명나라 사신에게는 대진국(동로마 제국)에서 가축을 담당하는 부서의 일부였다가, 수십년 전 노미국(오스만 제국)에게 나라가 멸망하면서 많은 기술과 인명, 기록을 잃고 귀물원과 형제만 남아서 조선에 떨어졌다고 변명했다. 당시 정세에 걸맞은 설명이라 동로마 제국의 유산이 조선에 떨어진 것으로 여겨질 듯하다.
6.2. 동물
- 낙마(라마)
초반부 성종에게 침을 뱉으려 하며 대형사고를 칠 뻔했으나 김금수가 대신 침을 맞아주고 김진수가 라마의 어그로를 끌어 유인하였기에 벌을 받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135] 딱히 특이할 만한 장점이 없어서 잊혀지나 싶었으나,[136] 덩치가 유독 작은 수컷 단봉 낙타가 명국에서 들어오면서 라마와 낙타의 장점이 혼합된 카마의 탄생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 외에도 북방 지역에서 짐을 나르는 데 활용되었는데, 이 때 건주위 부족이 약탈하러 와서 이 녀석들에게 활을 쏘는 초대형 실수(...)를 저질러 금수의 존 윅화를 이뤄버렸다.[137] 이것 때문에 독자들은 건주위가 원 역사보다 더 철저하게 털릴 것이라며 애도를 표하고 있다. 실제로 여진족을 공격할 때 김금수가 "이것은 라마의 몫이다"라며 가져갔던 화포 중에 가장 강력한 걸 날릴 정도.
- 거각우(큰뿔소)
각궁 제작에 필요한 물소뿔 공급을 대체할 수 있는 동물이라서 가장 먼저 받아들여졌다. 큰뿔소의 뿔은 물소뿔보다 훨씬 더 커서 기존 각궁보다 생산비와 제작기간이 크게 줄어들면서도 품질은 크게 향상시킬수 있는 데다,[138] 조선 기후에도 물소보다 잘 적응하며 교접을 해도 생식능력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조선에 온 지 3년도 안 되었는데 얼마나 열심히 씨를 뿌리고 다니는지 경기권에서는 번듯한 양반가라면 당연히 거각우 한 마리 정도는 기르고 있으며[139] 삼남 지방에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조선 군사력 강화에 핵심적인 소재를 제공해 주기에 귀물원 동물들 중에서도 가장 우대받으며 키워지고 있는 중. 한편 금수 형제가 거각우 종기를 치료하기 위한 고약을 현대에서 사서 가지고 있었기에, 이 고약을 조선시대 재료로 재현해 내면서 종기 치료용 고약이 만들어지게 된다.
- 물소
거각우 때문에 조선에 있던 물소들이 모조리 섬에 귀양갈 뻔하지만 김금수가 물소 젖으로 만든 모짜렐라 치즈[140]와 카이막, 그리고 운송할 항아리 냉장고를 선보이며 물소젖으로 만든 유제품이 천하의 귀한 약재라고 열심히 설득하여 귀양 대신 한명회와 정인지가 운영하는 목장에서 길러지게 되어 화를 피했다. 한명회와 정인지는 물소젖 유제품을 먹고 만수무강하자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141] 이 소식을 들은 사대부들은 두 대감이 귀한 약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라 부러워했다. 다만 개체수 제한으로 인한 근친교배가 계속 이어진 탓인지 새끼들의 건강 상태가 안 좋아져 개체수가 줄어 한명회가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김금수가 대월로 출장을 가게 되면서 새로운 물소들을 들여오겠다고 약속하고 투자를 받으면서 위기를 넘긴다.
- 젖소
유제품이 귀해 기력회복에 특효약으로 대접받던 시절인지라 이를 원하던 조선 기득권층의 수요를 충족시켜 줄 동물이라서 거각우와 같이 가장 먼저 받아들여진다. 특히나 건강관리를 위해 유제품이 간절하던 고령의 대신들이 공신전 기부마저 납득해가며 사육을 응원했다고 한다. 유제품의 가치를 잘 모르는 젊은 공신들이 공신전 기부에 난색을 표하자 노신들이 사자후를 내질러 강제로 기부하게 만들 정도. 양반가라면 젖소 한 마리 정도는 흔하게 찾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유제품의 인기에 더해서 진수가 교유기까지 만들어내면서 생산이 편해졌고, 평민들도 나름 넉넉한 집에서는 달에 한번 정도는 유제품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는 폐백 음식 중에 치즈가 들어갈 정도로 널리 퍼진 상황.
- 거묘(플랑드르 자이언트 토끼)
평균 7~8킬로. 최대 20킬로까지 자라는 대형 토끼. 어지간한 중형견 급의 덩치로 성종과 내금위 무사들을 당황시켰다. 엄청난 번식속도와 돼지에 비해 먹이를 감당하기 쉽다는 점에 주목한 성종에 의해 백성들에게 나눠져서 식용 가축이 된다. 금수는 안타까워했지만 수십 마리가 반년이면 수천 마리로 불어나는 압도적인 번식력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에 차라리 이렇게라도 개체 수를 유지하는 것이 다른 동물들에게도 낫다고 판단해 납득했다. 거묘 자체가 조선인들에겐 낯선 가축이라서 처음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성종의 지원과 점점 익숙해진 백성들의 인식이 바뀐 덕에 3년차에는 돼지나 닭 못잖은 육류 공급용 가축이 되었다. 다만 삼남 지방에는 호랑이들의 잔칫상을 차려 줄 위험이 있어서 공급을 늦추는 중이고, 해결을 위해서 착호갑사를 추가로 양성 중이다. 결국 강원도에서 일부 탈출한 거묘들 덕에 호랑이들의 잔칫상이 차려져 사람들까지도 피해를 보게 되었다. 그래도 거묘 덕분에 영양공급이 충분해진 호랑이 등의 맹수 가죽의 품질이 눈에 띄게 향상되어 명에서도 조선산 맹수 가죽을 구하려고 상인들이 몰려들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조선 전역으로 퍼진 거묘는 조선의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일반 백성들도 거묘 고기는 기름기가 없는 게 불만이라며 투정부릴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오우치 사절단으로 인해 거묘가 사전지식도 없이 일본에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고위층이 에뮤 고기를 먹는 걸 본 일반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자 상인들이 거묘를 들여온 것인데,[142] 마땅한 천적도 거묘에 대한 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누구도 생각 못 하게 흘러들어간 터라 그 번식력으로 인해 토끼 전쟁이 일어나는 거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는 중.[143] 이 걱정 대로 오우치에 수만 마리의 거묘군단이 나타나 3년간 농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바람에 조선에 구원을 요청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되려 떼거리로 사람을 공격하는 상황까지 벌어져[144] 일본에서는 오니 우사기(도깨비 토끼)라고 불리고 있다. 이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선에서 거묘를 즐겨 먹으면서 인간에게는 해를 입히지 않는 스라소니와 시베리아족제비를 들여오며 해결된다.또 다른 생태계 파괴가 예약될 지도
- 양타(알파카)
양털보다 품질이 좋은 알파카 털과, 키우기 쉬운 점을 인정받아 받아들여진다. 조공무역이나 일부 기득권층이 쓰게 되는 고급 의류를 생산하게 되는 모양. 다만 자기를 키워주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어대는 습성이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예의가 없다고 경원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는 명나라 사신들 앞에서도 예외는 아니라서 조선에서도 고관들만 입고 사신들에게나 주어진다는 고급 옷을 만든다는 말에 직접 보러 온 명나라 사신들도 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고[145] 금수는 양타가 자기 털이 귀한 줄 알아서 건방지게 군다고 해명했다. 캐시미어 산양이 길러지면서 고급의류 1등은 내줬지만, 먹이도 적게 먹어 가성비도 좋고 자연적으로 낼 수 있는 색이 여럿이라서 여전히 고급 가축 대우를 받는다.
- 토발서(프레리도그)
그 친화성과 귀여운 용모로 성종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정말로 쓸모도 없고, 공을 세운 것도 아닌데 귀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혀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있다. 성종은 여러 번 기회를 봐서 토발서를 후원에 들이려고 하지만,[146] 사냥개와 매가 돌아다니는데 후원에서 참사를 걱정한 김금수의 반대와, 거각우나 양타처럼 국익에 직접적으로 쓰일 구석도 없는 생물이라 대간의 반대에 가로막힌다. 그러나 그 귀여움이 명 사신은 물론 황제인 성화제와 만귀비까지 사로잡으며 토발서가 조공품이 되는 대신 다른 조공품을 덜 바칠 수 있게 된데다 명나라 바닷길까지 열게 하는, 국익에 가장 큰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베트남까지도 명성이 퍼진 듯, 베트남의 관료가 조선의 사신단을 보고 그 토발서의 산지인 조선에서 온 것이 맞냐며 놀라는 장면까지 나온다. 다만 명나라에 조공 사례품으로 토발서를 달라고 해도 황제가 컷시키는 바람에[147] 아직 토발서가 베트남에 들어오진 못했고 이에 대월 성종은 토발서를 구해오기 위해 조선에 사절단을 보내려 했을 정도.[148]에필로그 외전을 보면 한산을 연고지로 하는 야구팀으로 한산 토발서가 나온다.
- 파사 고양이(페르시안)
페키니즈와 유사한 생김새 덕분에 토발서와 마찬가지로 명의 황실에서 마음에 들어해 황실 조공품 목록에 올라가 귀한 대접을 받고있다. 성화제가 한 손으로는 토발서를 쓰다듬으면서 무릎 위에 식빵자세를 한 파사 고양이를 얹어놓은 상태로 조선 사절단을 맞이할 정도.
- 서갈계(하이라인 브라운 품종의 닭)
현대 양계장에서도 널리 보급된 닭으로, 달걀 생산량은 높지만 알을 품는 본성은 약한 편이다. 성종과 조정에서는 달걀 생산 능력은 높게 샀지만, 부화하질 못하니 번식시킬 수가 없는 점을 단점으로 꼽았으나 이 점은 김진수가 인공부화기를 제작해 극복한다.[149] 또한 이 인공부화기는 미숙아 아이들의 생존률을 크게 높이는 초기형 인큐베이터가 된다.
- 대서(캥거루)
고기 외에 쓸모가 영 없는 데다가, 가성비도 영 안 나온다는 평가로 전원 도살장 행이 확정되나 했으나, 신숙주가 일본에 외교용 하사품으로 쓰자고 제안해 선보인 결과, 싸우는 모습이 마치 고대 스모 같다고 큰 각광을 받으며 외교용 동물이 된다.[150] 김금수도 캥거루 꼬리곰탕이 되느니 일본에서 대접받으며 사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서 캥거루 외교에 찬성하였다. 이후 일본 내에서는 잘 자란 캥거루 한 마리가 쌀 200석에 거래되고 있다고 언급되었다. 거기다 코끼리 똥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캥거루 똥으로도 종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김금수가 떠올리며[151] 역시나 종이를 만들 수 있다는 실용적인 명분도 얻는 데 성공했다. 특히나 캥거루를 귀하게 여기는 일본에서 '종이접기'가 상류층의 취미로 유행해 캥거루 똥 종이는 부르는 게 값이 되었다고 한다.
- 타조
마찬가지로 고기와 알 외에는 쓸모가 없어서 위치가 위협받고 있다. 거묘가 먼저 육용가축화 되고 서갈계가 알을 대량 공급하면서 당장 주목을 피했다. 이후 명나라 상인들을 위한 도박용 동물[152]과 알을 통한 예술품을 만드는데 이용되게 된다. 거기다 타조 기수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성종이 군제 개혁까지 결심하게 하는 등 조선에서 나름의 나비 효과를 만드는 데도 성공한다.
- 변색룡(카멜레온)[153]
최초로 공개되었을 땐 용이라는 이름이 아깝다고 평가받지만 기온과 환경에 따라 피부색을 바꾸는 특성이 주목받아서 명나라에 조공품으로 책정된다. 특히 명나라 황제들 여럿을 홀린 계효 등의 도사들이 상서로운 짐승이라고 환장하는 모양.
- 보덕걸리(보더 콜리)
현대에도 목양견으로 쓰이는 지능이 높은 품종. 성종이 젊은 나이에 승하한다는 걸 알고 있던 형제가 텐션이 높은 보더콜리들을 운동용으로 성종에게 주었다. 대형견을 산책시키는 데는 일정수준 이상의 체력과 근력이 필요하기에[154] 개들을 산책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운동 효과가 발생했고 갸날펐던 성종의 몸에 근육이 붙어 오랜만에 성종을 본 하급 관리들이 왕의 풍채가 우람해졌다고 평가할 정도. 물론 성종의 사인은 운동부족이 아닌 종기이긴 하지만 종기는 거각우 항목에도 나왔듯이 고약 개발로 해결이 된 데다 운동 부족도 면역력 저하로 연결되어 사망 원인이 될 수 있으니 보덕걸리들의 공이 아예 없다고 볼 순 없다.
금모견과 마찬가지로 귀물원에 딸려온 몇 마리가 현 수백 마리의 개체를 유지하는 지라 수십~수백년 내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었고 그나마 스코틀랜드 원산인 견종이라 여러 품종이 섞여 탄생한 금모견보단 사정이 낫지만 역시나 그 거리가 문제가 되어서 당장은 포기지만 언젠가 우두에 걸리는 소와 보덕걸리를 얻기 위해서라도 금수가 유럽에 갈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된다.
- 금모견(골든 리트리버)
새끼들이 중전 윤씨의 반려견으로 낙점.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던 윤씨를 진정시켰다. 이후 양반 부녀자층에게 악귀를 쫓아내는 개라는 호평을 받으며 줄을 서서 입양을 받으려 한다. 그 영의정 정인지조차도 금모견을 얻기 위해 번호표 받고 대기해야 할 정도로[155] 엄청난 인기를 구가 중. 다만 역시 귀물원에 딸려온 몇 마리가 현 수백 마리에 달하는 개체를 유지하는 중이라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내로는 문제가 생길 여지가 다분했다.[156] 금수는 근친교배가 해롭다는 것을 알려서 근친교배를 막았지만, 역시 그 경우에도 피가 옅어져서 조만간 귀한 몸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성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수에게 유럽까지 갈 것을 명했지만, 호주보다 훨씬 먼 거리라서 그냥 죽으란 이야기가 되는지라 포기했다. 대신에 골든 리트리버 자체가 여러 견종들의 혈통이 섞여 탄생했단 점에서 착안해 가능한 한 리트리버와 가까운 품종들을 모아서 혈통을 보존하기로 한다.
- 캐시미어 산양
현대 섬유업계의 발전소나 다름 없는 역할을 하는 짐승. 전세계 양털 산업의 과반을 지탱한다. 현대에서 트립해 온 동물은 아니고 명국에 간 금수가 우연히 네팔에서 온 상인이 파는 것을 보고 은덩이를 건네주고 30마리를 전부 구매해 온 것들이다. 잘만 키우면 양타를 능가하는 돈벌이가 될 만한 사업이지만, 문제는 캐시미어 산양의 양털은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조선 내에서는 키울 수 있는 지역이 상당히 제약될 것으로 보인다. 금수는 백두산 기슭이라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성종은 그 지역은 여진의 위협이 있어서 위험하다면서, 북벌 계획을 구체화시킨다.
성화제의 여진 정벌에 동참해 건주 여진 수뇌부의 괴멸과 천여 명에 달하는 포로, 그에 맞먹는 여진군 사살이라는 큰 업적과 같이 오미부와 우라산성 인근까지 북벌 및 영토 병합에 성공하여 본격적인 목축이 시작되었는데 최초로 만들어진 캐시미어 제품이 명국 황실에 납품된 토발서용 방한복이였다. 조선의 대간들은 이걸 못마땅해 했지만 명 황제에게 바치는 물품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듯.
- 낙타
캐시미어 산양과 함께 중국에서 들어오게 된 동물. 성종의 지시로 흑마포 1백필 을 예산으로 받아 2마리를 들여오려 했으나 서역의 동물들을 본 만귀비가 힘을 써준 덕에 황제에게 하사받는 형식으로 단봉·쌍봉 합쳐서 50마리나(...) 준비되었고 너무 많아 감당이 안된다 여긴 금수가 고르고 골라 쌍봉낙타 3마리와 단봉낙타 1마리가 조선에 들어오게 된다. 일단 성종이 애완동물 용도로 두고두고 구경하려고 들여온 것이지만 금수가 말한 용도인 짐을 나르는 용도로도 쓰일 것으로 보이며 특히 단봉낙타는 카마 번식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금수는 건주 정벌에 직접 나서기로 하면서 사재를 털어서 20마리의 낙타를 추가로 구입했다.[157] 금수는 말보다 큰 덩치와 힘을 가진 낙타의 힘을 이용해 등에다 신기전을 얹어 쓰는 강철달팽이식 운용법을 계획하고 실용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건주 정벌에도 동원되어 크게 활약했다.[158] 외전 시점에서는 초기형 회선포가 개발되어 낙타에 얹고 다니면서 사용하고 있는 중.
- 회색앵무
사람의 말을 잘 따라하는 지라 명나라 편에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았다.[159] 당장 명나라에서도 서역의 동물을 조공으로 줄 때 회색앵무만은 무조건 황실에만 주라고 언급을 할 정도로[160] 영물로 주목받으며 만귀비와 왕직은 회색앵무를 통해 주우탱의 입지를 약화시키려 하지만 요승 계효가 이를 자신의 입지를 올리는데 사용해 버린다. 그 과정에서 주우탱이 회색앵무에 빠져 도술 등에도 발을 담그게 되어 원 역사의 명군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생겼기에 소설상에서 가장 큰 나비 효과를 만들어낸 동물이 될 가능성이 높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조선 내에서도 상위권의 영리함을 지닌 개체들이 조의제문을 외워서 사화를 일으킬 뻔하거나, 사대부들이 반려조로 키우면서 글귀를 외우게 시키는 등 인기가 매우 높다. 아예 앵간원이라는 관직까지 만들어질 정도이지만[161] 번식력이 매우 약하고 개체 수가 적어 근친으로 인한 유전병의 위협이라는 단점이 있어 김금수가 한시바삐 대양항해를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후에 몽골과의 전쟁에서 몽골 장수의 목소리를 흉내내게 하는등의 모략전에도 써먹었다.
- 대주마(타이슈마)
대마도의 말. 금수가 대마도에서 들여오자 한 동물 중 하나로 덩치도 조선산 조랑말보다 크고 편자를 박을 때 네 발을 묶어둬야 할 정도로 성격이 더러운 조선산 조랑말보다[162] 성격도 순해서 짐말로 쓰기 적합하다는 근거를 댔다. 명분이 실용적이었기에 성종도 바로 납득하고 신하들의 반대도 없어서[163] 대마도에서 보낼 조공품으로 선정되었고 건주위 정벌전 때 짐말로서 활약한다. 이후 삼봉도 원정대에선 기병들이 탄 말이 대주마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를 보면 군마로도 쓰이는 모양.
- 대마도 삵(쓰시마 야마네코)
대마도의 삵. 이쪽이 들어오게 된 이유는 공식적으론 귀여워서.(...) 당연히 성종은 혹하지만 이전의 토발서처럼 실용성은 1도 없는 지라 대신들의 반대가 컸는데, 그걸 금수가 말빨로 바르며 조공품으로 선정된다. 물론 금수가 이 친구를 들여오려 한 진짜 이유는 쓰시마 야마네코가 현대에 와선 멸종 위기종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보존을 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때문. 즉 소설상에 나온 금수의 목적인 멸종 동물 보호의 한 단계로서 보호대상 1호가 된 것이다.
- 긴꼬리투구새우
징그러운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밝혀지며 전국에 퍼지게 된다. 또한 긴꼬리투구새우 보급을 기점으로 설립된 축산 실학소가 사림의 기반인 지방 향반들과 대거 충돌하면서 사림의 분열을 촉발시킨다.
- 칡소·퍼렁소·백소
거각우와 젖소처럼 고기 맛이 없는 소와는 달리 고기 맛이 좋은 덕에 금수가 보존을 권했고 성종이 세종의 칭찬을 예로 들어 승낙했다. 또한 칡소만큼이나 퍼렁소와 다른 품종도 고기 맛과 영양 등의 다른 요소에서 우수하기에 정숭조가 보존을 권해서 사업 담당을 맡게 된다.
- 동경이
귀여운 개라는 말에 성종이 보존 프로젝트를 승낙했다. 개체수가 적은 금모견, 보덕걸리와 섞여서 새 품종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 꿀벌
김금수 형제의 동물농장 근처에 둥지 틀고 있던 꿀벌들도 트립에 휘말려 조선시대로 넘어왔고, 조선 토종 꿀벌보다 덩치도 크고 꿀도 많이 만든다는 특성 덕분에 아까시나무와 함께 양봉업자들에게 아주 유용하게 쓰이며 조선의 꿀 생산량을 대폭 향상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우연히 트립한 데다 김금수 형제는 같이 넘어왔다는 사실조차 몰랐기에 귀물원에서 관리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퍼져나간 유일한 현대 생물이기도 하다.
- 시베리아호랑이
이쪽은 들어오게 된 계기가 김금수가 사냥한 식인호랑이의 새끼들을 거두어 들인 것. 본디 인간의 고기맛을 봤다면 새끼들도 죽여야 하는 게 맞지만 다행히도 아직 젖도 못 뗀 새끼들이라 고기를 먹을 수 없어 급한 토벌은 피했다. 이후 새끼 호랑이들의 귀여움에 빠진 성종이 동물원 설립을 승인하면서 과천에 지어진 동물원의 첫번째 수용 동물이 된다. 사람을 해치는 맹수를 키운다는 말에 당연히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명 황실에 바칠 조공으로 키운다는 명목으로 무마시킨 상태. 이후 호조 가에서 에뮤 때문에 간토 평야가 막혀버리자 이 호랑이를 조선에서 받으려 하는데 아무리 절박하다해도 호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금수와 비슷하게 생각하던 왕이 호조 가가 호환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이에 호조 가는 대마도를 통해 밀수하기로 한다. 10년 정도 지나자 금수가 걱정한 그 폐해가 여실히 드러났는데 장벽이 쳐진 이즈 국 서쪽을 제외하고 사실상 혼슈 전역이 호환을 겪을 지경이 되었다. 오죽하면 덴노와 그를 따라온 백성들 망명 사유가 에뮤떼와 호환을 버티지 못해서일 정도.
- 아시아코끼리
대월과의 교류 과정에서 한 쌍이 들여졌다. 도입 전만 하더라도 태종·세종 시기 코끼리를 키우다 고생한 걸 근거로 대간들이 반대했지만 김금수가 그 때는 코끼리 키우는 노하우를 몰랐다는 팩트폭력을 가하고[164] 코끼리 똥으로 종이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밝히며 대간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165] 명과 대월에서도 코끼리 똥으로 종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말했기 때문에 세 국가들에 상분지가 널리 퍼질 듯하다. 이후에는 마자파힛 제국의 사절단이 한 쌍을 선물로 데려오면서 수가 더 늘어났다. 이 상분지가 만들어지고 나서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던 승려나 농민들이 역에서 벗어났다고 감사를 표하는데 이 때부터 금수의 인류애가 시작되었다.
종이 생산용 가축으로 사육되던 와중에 북방에서 여진족의 움직임이 관측되자 김금수 형제의 합작으로 코끼리 전용 갑주[166]와 화포를 얹어 전차로서 운용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조선을 방문한 다 빈치가 개입하여 코끼리를 동력원으로 한 다빈치 전차가 등장하게 되었다.
- 쥐사슴
이쪽도 대월에서 도입되는데 역시나 '귀엽다'라는 한 마디에 성종이 프리패스시켰다. 본래 베트남은 추워도 영상을 유지하는 기후인 지라 영하 십수 도까지도 심심치 않게 떨어지는 한반도의 기후를 버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쥐사슴의 귀여움에 푹 빠진 성종이 비싼 양타 털까지 이용해 털옷을 만들면서 신관학파 측인 앵간원이 대간과 단합해 저지하려 드는 우스운 사태를 일으킨다. 성종은 애매하게 남은 털을 썼을 뿐이라고 항의했으나 상의원에 두번째 쥐사슴용 털옷을 지으라고 주문한 게 들켰다.(...) 성종은 늘 그러듯이 금수를 불러서 화려한 말빨로 대간을 제압해 주기를 바랬지만, 쥐사슴만 털옷을 입는 것이 영 맘에 안 들었던 금수는 드물게도 대간의 편을 들고[167] 그 대신에 예산과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다고 폐지된 온도조절형 온실인 토우를 대대적으로 건축하자고 제안한다. 물론 대간은 털 좀 아끼자고 했더니, 온실을 짓겠다고 답하자 격하게 반대했으나, 과거 비슷하게 자연의 질서에 어긋난다고 반대했다가 대간을 개작살 낸 항온기가 언급되자 다들 입을 다물어야 했다.
- 자바코뿔소
역시 대월에서 들여왔으며 그래도 이쪽은 실용성이 없다시피한 쥐사슴이나 빈투롱과 달리 서각이라는 약재를 생산할 수 있는지라 반발은 덜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금수가 들여온 동물들에 대해 대간들이 조정에서 키울 것을 반대하면서도 코뿔소와 코끼리는 조정이 키워야 할 동물로 인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귀한 약재를 만들어 내는 만큼 무병장수에 아주 관심이 많은 한명회가 직접 코뿔소를 돌보겠다고 자처하여 한 마리 얻어가기도 했다.
- 화식조
조선에 동물을 좋아하는 왕과 권신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마자파힛 제국의 사절단이 들고 오면서 첫 등장했다. 정확히는 뉴기니 섬 북부에 사는 아종이 들어왔으며 이를 본 금수가 마자파힛 제국과 교류하면 호주 대륙을 찾을 수 있다 생각해 마자파힛 제국과 조선의 교류가 70여년 만에 재개되며 이후 조선에서 호주 탐사대를 찾아갈 때 일부 데리고 간다. 용도는 화식조 고기가 인육과 비슷한 맛이 난다는 점을 착안해 오세아니아 대륙권에 잔존해 있는 식인 풍습을 없애기 위한 것.
- 녹란조(에뮤)
삼봉대륙에서 금수가 들여오기로 목표한 짐승. 에뮤 고기는 맛이 좋아서, 식육동물로서 소를 대체할 수 있기에 수백 년 후의 먼 미래에 환경문제로 축산업이 받을 비난을 줄이기 위해, 농촌의 밭 가는 황소 값을 내리기 위해 도입하기로 한다. 금수가 거의 작정을 하고 준비하기에 수천 명 이상의 병력과 현지인들의 협조까지 받아서, 에뮤들이 실제 역사의 호주의 사냥법에 대응 성공한 것처럼 적응하기 이전에 생포작전에 돌입하여 많은 수를 포획하였다. 이후 육용가축으로 조선에서 키워지는데 부산물로 나오는 깃털이 조총 탄환도 막을 수 있어[168] 에뮤의 가치를 알아본 오우치 가문에 에뮤를 수출하게 되었는데, 운송 과정에서 에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던 적대 다이묘[169]의 군대에 습격을 받아 200여 마리의 에뮤가 혼슈 지역에 풀려나게 되어 대재앙이 예약된 상태.[170] 이후 언급을 보면 폭발적으로 번식하여 밀수된 거묘와 함께 혼슈 지방을 초토화 시키는 상태로 보인다. 특히 에뮤가 풀려나 버린 지역인 간토 지방의 호조 가문과 우에스기 가문의 영지가 가장 피를 보고 있으며, 인간에 대한 적응은 진작에 마쳤는지 상대가 활을 쏘면 약점인 머리를 마구 흔들어 피격 확률을 낮추는 재주를 보이고 별동대를 운용해 농작물을 터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더구나 산지에도 점점 적응중이라 잠재적으로 혼슈 전체가 위기에 빠질 상황이다. 오죽하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금수가 오우치에 혼슈쪽 영토에 방벽을 깔라고 말할 정도.
사고로 인해 야생으로 풀려난 일본과는 달리 철저한 통제하에 사육중인 조선에서는 육용가축이 아니라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간토 평야를 중심으로 한 동일본 지역에서는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농작물을 다 쓸어먹고 가는 까닭에 아귀조라고 불린다. 혼슈 동부에서는 결국 수십만 마리 단위로 불어나 간토 평야를 사실상 점령해버리고 말았다. 더 문제인 건 인간이 먹는 쌀에 맛이 들려버려서 쌀이라면 환장하는 상태가 되었다. 언급을 보면 산악지형도 상당히 적응한 상태라 산을 타고 넘어와 마을을 쓸어버리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171]
- 기린조(모아)
하스트수리와 함께 금수가 주도한 삼봉대륙 탐사의 최종 목적 동물이자 멸종 동물 보호대상 1호가 될 동물. 15세기 말이면 아슬아슬하게나마 살아있을 때라[172] 김금수가 상당히 서둘렀고 다행히 마오리족에게 얻은 정보로 뉴질랜드 북섬 동쪽 평야에 수천 마리 이상이 남아있어 아직 늦지 않은 상태임을 알아낸다. 특히 금수가 벼르던 자이언트 모아 아종도 살아남아 있었기에 일단 마오리족과 함께 움직이며 생태 연구를 진행하고 이들을 포획해서 타조 경주 대회에서 쓰거나 군용 탑승 동물로 쓸 생각이다. 길들여지는 데 성공한 뒤에는 탑승용으로도 쓰이고[173] 타이우니 부족의 하카를 같이 추게 해서 적대 부족들을 기선 제압하는 데도 쓰인다. 조선은 물론 마오리족도 모아의 유용성을 깨닫고 김금수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아 가축화시켜 놨기에 멸종될 일은 사실상 없어진 상태이다.
이후 조선에 당도하여 성종에 의해 영락제 시절 중국에 온 기린처럼 키가 커서 기린조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렇게 들여온 모아는 조선의 기병전력으로 육성되기 시작했는데 적을 부리로 쪼거나 발차기로 공격하는 등 근접전에서는 말보다 더 위협적인 위력을 보이고 있다. 기린조 기병단에 호되게 당한 여진족들에게 조선이 괴수를 부린다며 조선에 대한 공포심을 각인시킨 것은 덤. 원산지는 뉴질랜드이지만 마오리족은 조선 외에는 교류하는 곳이 없고 본격적으로 운용하는 게 조선인 지라 조선과 멀리 떨어진 인도나 유럽에서는 조선산 짐승으로 인식되고 있다.
신수(神獸)의 일종이라는 상징적인 가치와 군사전력으로서의 가치가 더해져 조선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는 지라 임금에게 기린조를 하사받는 게 세상에 둘도 없는 영광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 봉황취(하스트수리)
모아와 함께 금수가 주도한 삼봉대륙 탐사의 최종 목적 동물이자 멸종 동물 보호대상 1호가 될 동물. 김금수가 자이언트 모아는 모르겠지만 하스트수리는 16세기에도 살았던 것이 확실해서 지금 가도 아직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고 실제로 갓 삼봉도에 도착했을 때 마오리족 아이를 덮치려는 모습으로 첫 등장했다. 이후 이 하스트수리는 조선 탐험대가 호멸총을 쏘아 쫓아내고 아이를 구해내는데 이를 통해 하스트수리의 생존을 확인했으며 조선 탐사대가 마오리족과의 첫 만남을 우호적으로 갖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 건 덤. 이후 탐사대가 마오리족과 함께 모아 사냥을 나갈 때 모아 무리를 덮치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워낙에 크고 사나운지라 길들일 수 있는 거 맞냐고 한보가 우려를 표하지만 김금수는 친척뻘인 작은수리도 길들였으니 어렵긴 해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단 길들이고 나서는 전투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김금수의 목적.[174] 이후 조선에서 매를 잡는 방식으로 포획에 성공했고 길들이는 것도 성공해 자이언트 모아 포획 작전 때 길들여진 5마리가 투입되기도 했다. 조선에 도착해서 성종에 의해 봉황처럼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고 봉황취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후 15kg 정도를 들고 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김진수가 비격진천뢰를 개발하여 훈련시킨 하스트수리로 적이 밀집한 곳에 폭격을 가하게 만들어 세계 최초의 공군(?)으로 조선의 군사력 증강에 기여하고 있다. 폭격용에 더불어 말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이용해 북방 기병들을 하늘에서 덮치는 요격부대 역할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유럽 사절단 편에서는 김일손이 고안한 말벌 폭탄을 이고 날아가 왜구들을 격파하는 데 기여하며 유럽인들에게도 충격을 준다. 그나마 일부 군주들에게 선물로 주어지거나 팔리기도 하는 자이언트 모아와 달리 어느 군주에게도 주어지지 않는 귀하신 몸 취급 받으며 그 간신인 임사홍도 봉황취를 팔아달라는 교황의 요청에 절대로 팔 수 없다고 단언할 정도.[175][176]
여담으로 김진수의 노력으로 조선에 프로야구가 도입되었는데 김진수가 후원하는 팀의 이름이 화나 봉황취이다. 역사의 복원력인지 여기서도 죽을 쑤고 다니냐는 김진수의 한탄은 덤. 외전 마지막에 화나 봉황취가 우승을 하였는데 이게 3백 년 만의 우승이라는 걸 봐선 원 역사보다 훨씬 더 처참한 실력으로 죽을 쑤고 다닌 모양.(...)
- 유황앵무
삼봉대륙 탐사단이 조선으로 데려온 동물들 중 하나. 처음 마주쳤을 땐 유황앵무의 성질[177]을 잘 아는 김금수가 먹이를 주지 말라고 엄히 단속하였지만, 탐사단 중 일부가 먹이를 주는 바람에 떼거리로 몰려와 식량 일부가 털리는 등 탐사단이 곤욕을 치렀다. 그러한 까닭에 조선에서는 도적앵무라고 불리고 있는 중.
- 장수앵무(카카포)
삼봉대륙 탐사단이 조선으로 데려온 동물들 중 하나. 명나라 사신으로 파견된 김금수가 홍치제에게 선물하였고, 김금수의 영향으로 새를 좋아하던 홍치제는 카카포가 오랫동안 장수한다는 말을 듣고[178] 매우 기뻐하였다.
- 극락조, 소대서(쿼카)
삼봉대륙 탐사단이 조선으로 데려온 동물들. 극락조는 아름다운 깃털로 대신들의 감탄을 자아냈고 쿼카는 먹이를 준 성종을 특유의 미소로 성종의 다리를 껴안아 성종이 체통을 잃고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이후 쿼카는 전쟁 준비로 코끼리가 필요해진 조선에서 코끼리를 받는 대가로 대월국에 선물로 보내지기도 하였다. 거기다 쿼카는 유럽 사절단에도 따라가서 음험함의 끝판왕인 알렉산데르 6세까지도 홀려버리는 기염을 토한다.
- 소웅묘(레서판다)
조선의 요청으로 천축국 사신이 선물로 바친 동물. 레서판다 특유의 위협하는귀여운자세를 본 성종은 저런 위협이면 15분 간격으로 당해도 기쁠 거라는 평을 남겼다.
- 군자 해우(스텔러바다소)
연해주에서 오호츠크 해를 향해 북상하다 볼 수 있는 생물. 1700년대에 고기 맛이 좋다고 남획당해 멸종되었으나, 1400년대인 당시엔 당연히 멀쩡히 살아 있었다. 금수가 유독 보고싶어 했던 멸종 짐승. 금수가 유독 적극적으로 북벌 및 여진 통제에 나선 것은 전부 이 스텔러바다소를 보러 갈 길을 열기 위해서였다(...). 조선이 홀룬·몽골 연합과의 전쟁 승리와 몽골 제국과 밀약에 의해 요서·송화강 이남을 합병한 이후 금수의 코끼리보다 거대한 해양생물은 이후 조선의 해양 활동에 큰 위협이 된다는 그럴듯한 궤변으로 조사대를 꾸려서 연해주에서 야인여진들의 협조로 배를 얻어서 만나는 데 성공한다. 기록대로 해조류만 먹고 살지만 매우 거대해 코끼리보다 크다. 천성이 순하고 친화성이 좋아 다들 껌벅 죽었다. 금수는 여기에 더해 해우는 덕을 아는 군자라면서 추켜세워서 군자 해우라는 영물로 대우받게 된다. 사림 역시 기후이상이나 돌연변이 동물을 치세 비판에 이용하는 것으로[179] 남용해 왔기에 별 반대는 나오지 않았다. 거기다 군자 해우의 기운을 받은 이들이 과거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양반계층 모두가 군자 해우를 영험한 동물로 인정하고 이들의 기운을 얻기 위해 앞다투어 몰려들기도 하였다. 이름이 해우가 아니라 '군자 해우'인 것이 이 때문.
갑자기 몰려든 과거 수험생 부모양반들 덕에 관광 특수로 대박을 친 연해주 야인여진들이 군자해우를 길들이는 것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우의 젖과 고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왕가에만 납품 가능한 특식이 되었으며 김금수는 이를 이용해 군자 해우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 삽살우(하일랜드 카우)
북스코틀랜드에 사는 소.
- 도도새
임사홍과 김일손이 유럽에 다녀오면서 데려온다. 미래인인 주인공형제는 엄청 기뻐하지만, 당시 조선인눈에는 딱히 쓸모없는 바보같은 새를 구한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 순록
유자광이 시베리아 동부를 탐험하면서 데려온다.
- 허숙희(시베리안 허스키)
연해주를 넘어서 북단에서 길러지는 견종. 조선에서는 홀룬국 격파 이후 연해주 이북 지역에 관아를 설치하고 축치족의 협력을 얻어 허숙희들을 기르고 있었다. 개썰매를 끌고 하루에 4~50km를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은 데다가 붙임성도 좋고 용맹해 유자광의 탐험대를 데리고 알래스카까지 이동하도록 돕는다. 유자광과 탐험대원들은 정을 많이 붙여서 귀국할 때도 데려오면서 조선에도 전해진다.
- 말코손바닥사슴
유자광 탐험대가 알래스카에서 늑대 무리에게 포위되어 있던 수컷을 구하면서 첫 등장. 처음에는 도축될 뻔 했으나 원정대원 중 사슴 덕후로 이름난 원녹수가 길들이겠다고 나서서 길들이는데 성공했다. 원정대가 귀국하면서 조선에도 들어오는데 사슴덕후인 성종이 이 놈만큼은 반드시 후원에서 기르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한반도의 여름기후를 견디지 못한다는 김금수의 설득에 눈물을 머금고 북방으로 보냈다. 이후 조선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지만 엉뚱하게도 조선이 아닌 몽골에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바로 말코손바닥사슴을 탈 수 있다는 정보가 몽골에 들어오면서 때마침 몽골에도 말코손바닥사슴이 서식했기에 이를 생포해 길들여 말코손바닥사슴 중기병대를 창설, 서역 원정에서 유용하게 써먹었던 것.
말보다 배는 큰 덩치와 흉폭한 성격으로 중동과 유럽 병사들을 짓밟았으나, 말보다 훨씬 예민한 성격이 약점이 되어 체사레 보르지아의 일제사격에 난 총성에 놀라 날뛰면서 아군의 진형마저 해치는 단점이 발견된다. 이에 다얀 칸은 말들처럼 사슴들의 고막을 터뜨려 대응에 나섰는데, 문제는 이게 동물덕후인 김금수와 사슴덕후인 성종의 귀에 들어가 극대노하면서 조선이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6.3. 식물
- 티모시, 알팔파
동물농장에서 체험용 작물로 쓰려고 종자를 갖고 있던 걸 조선시대로 트립한 이후 김금수가 한명회의 조력을 얻어 가장 먼저 재배를 시도한 작물. 김금수 형제와 함께 트립한 동물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조선 가축들에게도 유용한 사료작물로 재배되고 있다.
- 감자, 고구마
티모시와 알팔파와 마찬가지로 사료로 쓰려고 갖고 있던 걸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다는 특성을 살려 조선 전역에 보급되었다. 특히 감자는 건주위 여진족 토벌 때 함정을 파서 싹이 난 감자를 먹게해 여진족의 전투력을 대폭 깎아내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였다. 감자, 고구마의 보급으로 조, 수수, 보리 등 잡곡의 수요가 줄었다고 한다.
- 아까시나무
사료용으로 쓰려고 보관중이던 묘목을 심어 경기도 일대에 널리 퍼졌다. 꽃이 많이 핀다는 특성 덕분에 조선의 양봉업자들에게 꿀나무라 불리며 사랑받고 있으며 성장속도가 빨라 목재 자원으로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 개다래나무
호랑이와 표범 등 고양이과 동물들을 잡기 위한 미끼로써 이용되고 있다. 개다래나무 열매를 이용해 잡은 최초의 호랑이가 약빨이 잘 받는 체질이였는지 개다래나무 추출물을 묻힌 담요를 껴안고 골골송을 부른 것은 덤. 이 외에도 열매가 모기를 쫒는 용도가 있어 방충용으로도 사용되고 있어 후에 유럽에 사절단으로 온 임사홍이 이를 알렉산데르 6세에게 건네주면서 유럽사의 큰 변혁을 예고했다.[180]
[1] 홍문관의 이름을 바꾼 것이다.[2] 시작부터 당상관 바로 직전. 그리고 종2품이면 최소 중요 부처 처장급으로 공식적으로 대감이라고 불리는 정2품 바로 아랫급이다. 작중에서도 그냥 제조 대감이라고 불린다.[3] 이 때 나이가 40살도 안 되었다. 벼슬에 오른 지 10년도 안걸려서 영의정이 된 것. 심지어 어유소의 영의정 승진은 반대하던 사림도 김금수의 영의정 취임은 반대하지 못했다.[4] 정확히는 동물권이라는 개념은 현대에도 제대로 정착이 안 된 개념인지라 이 시대에선 더욱 이상한 소리로 들릴 수 있어 당장 동물권을 주장하기보다는 주인이 함부로 도살은 못 하게끔 하는 것이다. 조선에서 농사일에 쓰던 소나 군마를 함부로 도살하지 못하던 사례를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5] 소·말·양·돼지·개·닭에 더해서 양타, 거묘, 대서가 더해진다.[6] 쌍봉낙타 3마리에 단봉낙타 1마리. 본디 명황제가 50마리를 준다 했지만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 4마리만 고른 것.[7] 코끼리는 무료화 시절 표지에도 나와 있었기에 들여올 것을 예상한 이들이 많았다.[8] 캥거루는 근친간 번식 방지용으로 들여오며 에뮤는 또다른 식용 가축으로 쓸 용도다.[9] 이후 이 사건으로 친해진 인물들을 모아 신관학파를 만든다.[10] 다만 상술했듯이 김종직을 두둔해 준 데다 어우동 사건을 수습해 주기도 한 덕에 대간과의 개인적 관계들은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다. 간신이라는 평가도 성종의 동물덕질을 부추기는 듯한 행보를 보여서 나온 거지 김금수 본인도 동물덕질에 필요한 것 이상의 권력과 재물은 탐하지 않고, 결과만 놓고 보면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어 놓은 게 사실이기에 사대부층에서도 김금수에 대한 평이 나쁘지 않다.[11] 이후 작가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서도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 정도가 좀 심한 짐승코패스로 주인공의 성격을 잡았다고 하면서 독자들의 비판을 보면서 자신이 너무 심하게 묘사했음을 깨달았고 이제부턴 완급 조절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작가의 완급조절 실패도 짐승코패스처럼 금수가 보이게 한 원인이라는 것.[12] 다만 유일하게 코알라는 그 귀여운 생김새에도 데려오지 못했다. 왜냐면 한국은 너무 추워서 유칼립투스를 키울 수 없기 때문. 거기다 코알라는 늙은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데 늙은 유칼립투스는 옮기기가 어렵고 어린 유칼립투스를 키우자니 그것도 시간이 걸리는 데다 상술된 기후 문제로 키우기도 어려워 당장 코알라를 데려갈 수가 없었다.[13] 그리고 이 때 역시 (현대에서는 멸종된) 동물인 주머니늑대와 멸종위기종인 태즈메이니아데블이 살고 있는 테즈메이니아 섬에는 들리지 않는데 이유는 이 둘은 오세아니아에서 딩고와 함께 육상종 중에선 맹수라고 할 수 있는 종들인데 맹수에 약한 호주 토착종들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어(실제 현실에서 테즈메이니아데블이 이와 관련한 사고를 친 적도 있었다.) 다음에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 가려고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다.[14] 사림에서 이거 가지고 뭐라 할까 했으나 공을 세운 직후에다가 너무 요란하게 한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15] 영락제 시절 정화의 항해로 기린을 데려왔었던 만큼 어설프게 영수의 혼혈이 나타나 봤자 사람들이 영락제 시절만 못하다고 말할 것이라고 말한다.[16] 실제 처음 트립 시점이 동로마가 멸망한지 21년 정도 된 시기인 지라(1474년이면 동로마를 멸망시킨 메흐메트 2세도 아직 살아있을 시기다. 물론 최신화 시점인 1484년에는 죽은 지 3년이 지났긴 했지만.) 많은 동로마 유민들이 아직 살아있을 시기이며 금수의 나이가 20대 후반인 지라 동로마가 멸망할 때 살아있던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가축 기르는 기술 같은 거야 본인이 가축 담당관의 가문 출신이라 했으니 가문에서 배웠다고 말해도 되고.[17] 사실 의도하지 않았을 뿐 직간접적으로 멸망시키거나 박살낸 세력의 수로만 치자면 정말로 상술된 둘과도 비교할 만한 수준이다.[18] 다만 성종의 금수에 대한 신뢰는 여전했고 내심 정권의 오점이 될 단종 문제를 눌러놔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서 동감했고 1년뒤에 다시 불러오려고 했다.[19] 이를 묘사한 일기에 담긴 언급이 소름 돋는데 '인간도 짐승이다'라는 문장 이후 "그렇다면 인간은 내가 좋아할 수 없는 유일한 짐승이다"라고 적어놓았다. 자식의 탄생과 많은 경험 후에도 김금수에게 있어서 인류애라는 개념은 낯설었던 것이다. 물론 어떻게든 가족들과 더 화목하게,결과적으로 모든것을 조화롭게 하기위해 거의 영혼을 깎고 다듬는 고행을 해야했다.[20] 동물의 권리신장에만 관심 있었지 정작 백성들에겐 무관심했던 간신이자 위선자라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말년에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이런 부정적인 평가가 대체로 사실이였다는 점이다. 아들을 낳고 나서부터는 매번 자선사업을 하다보니, 조선 사회에서도 인정이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서 제자들조차 김금수의 본성을 모르고 군자로 여기고 있었다.[21] 물론 어우동의 목적은 김진수를 딸인 이번좌의 사윗감으로 삼는 것이었기에 다른 스캔들남들처럼 문신을 새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22] 당연히 형인 김금수도 이를 듣고 황희의 사례를 들며 주상께서 우리를 잘도 놀게 해주겠다며 핀잔을 줬다.[23] 참고로 김금수가 동생에게도 비밀로 한 유일한 건수나 마찬가지다. 직전까지는 금수는 동생은 어차피 자신을 평생 봐왔기도 해서 속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사윤작 관련을 포함해 뭘 묻든 간에 찔려하면서도 솔직히 말해주었다. 사실 사윤작 외에는 찔려하지도 않았고.[24] 한화 이글스가 우승한 때는 1999년이고 김진수의 나이를 20대 중후반으로 잡아도 한화 우승 때 김진수는 아직 유아라서 우승 순간을 봤어도 기억에 안 남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한화는 2006년에도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으니 한국 시리즈는 직접 봤을 수도 있다.[25] 물론 같이 첫 야구를 관람한 숙종도 지금은 이꼬라지 이긴한데 나중에 몇년단위로 하나하나씩 덜 폭력적이게 개선하면 되는 거라고 위로한다.[26] 다만 이게 현대문물이라는 건 두 형제가 이야기 안해줘서 서역의 신기한 기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27] 기린조 기병단을 이끌고 왔으니 케찰코아틀의 은총을 받은 것이고, 어미를 잃은 새끼 재규어를 길들인 것은 테스카틀리포카의 은총, 선진농법을 전수한 것은 틀랄록의 은총, 펌프로 물을 끌어온 것은 찰치우틀리쿠에의 은총, 전구와 축전지로 불을 밝힌 것은 토나티우의 은총, 봉황취를 거느린 것은 우이칠로포츠틀리의 은총을 받았기에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28] 다만 이에 대해선 김일손이 선택을 잘 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는데 회색앵무가 조의제문을 큰 소리로 떠들어서 주변의 노비들도 들었을 수 있는데 함부로 숨겼다간 역적 혐의를 김일손의 가문과 남곤의 가문까지 덤터기 쓸 수 있었기에(두 가문 모두 김종직과 절친이었으니 역적 혐의에 같이 딸려갈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동향 및 가문 사람들의 지탄을 감수하고 먼저 고변하는 게 가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문에서도 어쨌든 김일손 덕에 역적 혐의는 벗을 수 있었으니 약간의 질책은 할 지언정 결국 용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29] 이때 작품 내외로 식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작품 내적으로는 '안 그래도 위험한 녀석을 왜 항아리에 담아오느냐?'였고 작품 외적으로는 혹시라도 유럽까지 가서 유럽 양봉이 일본처럼 절딴 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임사홍이 빨랑 저것들 치워버리라고 해서 왜구들에게 다 써서 장수말벌이 유럽까지 갈 일은 없게 되었다.[30] 김금수가 내세우는 사상인 "짐승이 행복한 세상이 되려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굶주리는 사람이 없이 모든 백성이 행복해야 한다."가 먹혔기 때문. 그리고 실제로 김금수가 매번 구휼활동을 하기도 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모습을 보이다보니 측은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조선 전역에 퍼졌기에 성인군자라는 확신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동생인 김진수를 제외하면 모두가 김금수의 본성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며, 연기에 심취한 김금수가 본인조차 속이는 지경까지 갔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31] 젖소 도입을 반대하는 신하들 앞에서 버터를 쉽게 만드는 기구 시연식을 벌였는데 이걸 주변에 수풀과 연못이 있는 구역에서 저녁시간에 벌여서 기구 사용법을 시연하는 김금수 형제와 성종 본인은 나인들에게 부채질을 시켜 모기가 접근도 못하게 만들고 반대하던 신하들이 아디다스 모기에 잔뜩 물리게 만들도록 유도하였다.[32] 평안도와 요동지역이 이어지는 경제권으로 한양과도 직통으로 연결되기에, 최대출력을 뽑는 삼남 다음가는 조선의 핵심이 된다.[33] 종기가 죽인 조선왕이 한두 명이 아닌 걸 고려하면 이 시점에서 조선 역사는 엄청나게 다른 노선을 타게 될 것이다. 성종의 사망은 1495년인데 작중시점은 이미 즉위 25년을 이미 넘겨서 성종은 40대를 지났다.[34] 세조는 술자리 때 무례를 저지른 공신들을 벌하지 않았다.[35] 사실 성종의 나이는 이 때 77세인데 나이를 실수한 것이다.[36] 호랑이와 에뮤떼로 난장판이 된 일본혼슈를 구경하겠다며 생떼를 쓰고있다고 외전에서 짧게 근황이 나왔다..[37] 본작에서는 출산 후에 나타난 성격 이상이 애니멀 테라피로 치료하는 데 성공하면서 폐비당할 일은 없을 가능이 높다. 그렇다면 후일 연산군 대에 봉해진 '제헌왕후'라는 이름이 남을 것이다.[38] 금수의 묘사로는 일부 야사대로 이목의 집중을 받는 '서늘한 인상의 미인'이라고 한다.[39] 실제로 정신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추론 중이다. 금수는 윤씨가 어릴 적부터 홀어머니를 모시며 고생해 온 인물인 만큼 번아웃 증후군과 기타 증세가 단번에 나타난 게 아닌가 생각했다.[40] 야사에서는 연산군이 즉위하자마자 한 일이 바로 성종이 키우던 사슴을 활로 쏘아 죽인 것이라 전해질 정도로 동물들에게 잔혹하게 대했기에, 성종 다음 왕이 연산군이였다는걸 떠올린 김금수가 그날 밤 연산군이 자신의 앞에서 동물들을 활로 쏘며 헤드샷을 외치는 악몽을 꿀 정도.[41] 엘리자베스 2세와 찰스 3세의 사례를 본떠 연산군을 73년 동안 왕세자 신세였던 찰스 3세와 같은 포지션으로 만들 생각인 것.[42] 허락 없이 임금이나 세자의 얼굴을 처다보는 것만으로도 곤장형에 처해지는 시대인데 역대 최고로 잘생겼다 소문난 세자의 얼굴을 보려고 시도하다 벌을 받는 여인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43] 이융은 1476년 생이니 65세에 제위를 물려받은 것이다. 김금수 형제의 나비 효과로 의학이 발달하였기에 원 역사보다는 나아졌겠지만 16세기에 65세면 오래 산 축에 속하기 때문에 상당히 늦은 나이에 제위에 오른 것.[44] 김금수 사후에 김진승과 김맹수도 그 옥에 티와 같은 가끔씩 폭발하는 포악한 성정만큼은 어쩌질 못해서 미리 법관련으로 군주도 법을 함부로 개정하지 못한다고 고쳐놨기 망정이지 연산군이 제대로 빡치면 천연기념물 밀렵꾼에 대해 교수형으로 처리할것 조차 거열형으로 찢어발겨 죽일 양반이라며 다들 한숨만 푹푹 내쉴지경.[45] 성종이 김금수에게 실학자로는 정인지가 뛰어나다고 자문을 구할 것을 명할 정도.[46] 공신의 우두머리격인 신숙주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홍윤성도 50세에 요절해서 남은 훈구공신인 한명회와 같이 자주나오는데 둘이서 100살까지 무탈하게 부귀영화를 누려보자고 의기투합해서 계산기를 두들기거나 술자리를 같이하며 의논하기도한다. 나중에 머리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는특징은 김금수가 그대로 물려받는다.[47] 심장마사지의 단점이긴한데,이경우는 정인지가 너무 나이들어서 이런것.본래 심장 마사지에서 지금 환자가 죽는것보다 그나마 가망이있는 갈비뼈좀 희생하고 살리는게 낫다라고 가르치는게 보통 인지라 별수 없는 사항이다.[48] 금수진수 형제에게 잘해라. 실학공부 부지런히 해라. 도박하자 마라 등[49] 실제로 정인지가 면포 10필, 정숭조가 면포 100필을 걸었는데 역배팅이 성공하면서 무려 1만 1천필을 벌어들인 것이다. 도박에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50] 이후 이 염소고문법은 불효자를 처벌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라며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나중에 유자광이 몽골군과의 전쟁에서 몽골장수를 고문하는데더 이용해먹었다[51] 이게 왜 망언이냐면 운성부원군 박종우의 존재 때문. 박종우는 태종의 딸인 정혜옹주와 결혼해 부마가 되고 나서 세종 시기에 형조판서로 제수되어 세조 시기까지 직무를 수행했고 심지어 다소 일찍 사망하긴 했으나 한명회, 정인지와 동급인 정난 1등공신이었는데 정창손의 말대로라면 '부마인 박종우를 관직에 앉혀 국사를 맡긴 세종과 문종, 세조는 암군이다'(저 때만 해도 단종은 왕위를 찬탈 당해 노산군이라 불리고 있었기에 제외.)라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는 것. 특히 세조는 성종의 할아버지인 만큼 성종에게까지 제대로 먹칠을 하는 기군망상의 죄가 따로 없는 것이다.[52] 김금수 형제가 초반에 한명회의 조력을 구하기 위해 알파카 털코트를 선물해서 애지중지하고 있었는데, 그걸 입고 명에 갔다가 황제가 눈독을 들여 어쩔 수 없이 바치고 왔던 상황에 집안일까지 겹쳐서 장남에게 단단히 화가 나 버렸다.[53] 게다가 늘그막에 품종개량된 삼겹살에 맛들이면서 술과 고기도 참지 못하고 먹어댔다.[54] 병문안을 온 대간들의 서슬 퍼런 눈길에 한명회 사후 벌어질 대간의 집중포화를 직감했다. 또한 한명회의 9명 아들 중에서도 단 한 명도 가문을 지킬 힘이 없었다고 한다.[55] 호주 원정길에 정박한 곳에서 어깨에 앉은 박각시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선 채로 기절하였다. 사실 한보는 아버지 후광으로 벼슬만 있을 뿐, 실전은 한 번도 뛰어본 적 없었기 때문.[56] 김금수도 재산 8할을 유산으로 준 홍윤성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도 생각하며 속으로 사과한다.[57] 사실 백성들이 유자광이 부패한 권신이 되고 싶었다는 걸 실감하기 어렵기도 한 것이, 유자광은 막대한 돈을 만지면서도 도박에 돈을 쓰느라 정작 자기 집은 고관대작치고는 가난했다. 자식들이 최고급 방한복이라고는 해도 캐시미어 산양털옷을 구하느라 형제들이 전부 쌈짓돈을 모아야 했을 정도. 또한 본인도 사치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주변 백성들이 보는 것은 모친을 잘 봉양하는 모습과 국무에 정신 없는 모습만 봤을 것이다.[58] 그리고 어유소가 빠진 조선군은 빈 여진족 영역에서 군비만 낭비하다가 퇴각한다.[59] 조선군 총수는 2만 명이지만 실제 전투에 나선 건 카멜슬러그낙타 기병 10기와 호위 거각궁 기병 500기였다.[60] 이 생각은 적중하여 석전에 익숙한 이들은 이것도 심심하다고 말했다.[61] 물론 김종직은 예외로, 원 역사의 김종직-김일손 라인이 사림의 극단화에 일조를 했던 탓에 한명회와 유자광이 나장을 매수하고 청부살인 형식으로 죽였을 때 김종직은 진짜 잘 죽였다고 할 정도였다.[62] 대간들을 일으켜 도끼상소를 하려하나 하필 그날이 명나라 황제가 오는 날이어서 실패. 타조 도박장을 만귀비가 마음에 들어해서 그 뒤엔 기회도 없어졌다.[63] 이 때 성종이 금수와 진수가 만든 인공 부화기로 칠삭둥이들도 살릴 수 있다 했는데 이서장은 거기다가도 칠삭둥이들이 죽는 건 자연의 섭리라고 딴지를 걸었다. 그런데 하필 눈 앞에 있는 좌의정 한명회가 그 칠삭둥이였고, 결국 분노한 한명회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린다.[64] 제자인 김일손, 자신을 지지해 준 대사간 정괄, 적과 아군을 오가지만 도움이 되면 되었지 명확하게 대립한 적 없는 대사헌 박숭질도 사림 쪽이다.[65] 40대 정도까지는 살살 쳐서 힘을 빼게 하고 40대 언저리가 되자 세게 치면서 꼬리뼈까지 쳤다. 이로 인한 쇼크로 사망.[66] 김종직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하고 조의제문을 읊었다.[67] 김금수를 적대하던 사림들 중 젊은 세대들은 천하제일의 권세와 부, 재상 자리까지 내버리고 귀양 가는 길을 자처하는 모습에 의기를 보였다 여겨서 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편들고, 나이든 이들은 김금수가 저런 지조와 절개를 보였는데 자신들이 가만히 있었다간 완전히 끝장이라는 생각에 김금수를 편들 수밖에 없었다.[68] 사실 성종도 단종을 안타깝게 여겨서 복위시켜주려고 했지만, 훈구파의 문제도 있어서 자신의 대에선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단종을 핍박하고 죽인 죄를 홍윤성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김금수가 보여주자 김금수를 귀양 보낸 것도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구명운동에 나설 것을 짐작하고 보여주기식으로 행한 것이었다.[69] 다만 이는 딸이 김진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가 사윗감으로 적합한 지 평가해 보기 위한 것이었음이 밝혀졌다.[70] 주변에서는 다들 경악하며 말리려 들었는데, 어우동을 소박 맞게 만든 전 남편도 조선 왕실 방계이므로 친척 간에 여자 때문에 스캔들이 나면 왕가 차원의 개망신이 되기 때문. 심지어 이난은 20대 나이로 이미 30대 중후반인 어우동과도 부모 자식 가까이 나이차가 났다.[71] 당장 팔만대장경을 팔아치워서 일본 영주들에게 한 탕 받아먹을 계획을 생각해 냈다.[72] 모국어인 중세 한국어는 당연하고 강회관화, 중세 베트남어, 중세 자바어, 호주 원주민어, 마오리어를 마스터했다. 현대 한국에서도 6개 국어가 가능한 통역가는 엄청나게 대우 받으니 이 때에도 대우는 상당히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73] 금수가 활약 여부에 따라서 관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힘 써 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외국인 통역사들도 필요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공부하고 있다.[74] 유자광은 홀룬국 전쟁에서도 어유소를 따라 종군하며 상당한 전공을 세웠다.[75] 사실 제안 자체가 무리수가 많긴 했다. 성종 입장에서도 요서·요동을 차지할 명분이 필요해서 일부러 언급한 것.[76] 원 역사의 아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망했다. 비슷한 방식이라 하는 이유는 정덕제는 강물에 빠졌다면 홍치제는 겨울 바다에 빠진 것이기 때문.[77] 명나라 암군 라인업의 스타터라고도 불리나 그래도 자기 할 일은 나름 다했고 성과도 있었기에 암군이라고 부르기는 뭣하지 않냐는 의견들도 있다.[78] 오죽하면 일순간이나마 금수를 뛰어넘은 광기로 등극했다.[79] 5만냥이면 1825kg이라 워낙 큰 액수라 호조판서가 그 액수에 경악해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며, 너무 과하지 않냐고 따졌지만 김금수가 재정은 이와미 통해서 충분하니 군자라면 인색하게 굴어서 안 된다고 강력하게 5만냥 연금을 내리는 것을 지지해 임사홍을 제외한 모두에게 명 황제에 대한 측은지심을 보였다고 여겨진다.[80] 은 1825kg이면 현대의 은 시세로도 20억원이 넘는다. 당시 은의 가치가 더 높은 시대상을 반영하면 이걸 해마다 받는다는 것은 훨씬 어마어마한 것이다.[81] 동물 애호가인 성종과 금수가 저 요리들을 막으려면 양위를 받아야 뭘 할 수 있기에 자연히 찬성파로 바뀔 거라는 계산에서 한 행동이다.[82] 금수는 결과적으로 당하기는 했지만 유근이 고의적으로 자신을 이용한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복수한 것이다.[83] 성종은 불교와 요술 신앙을 매우 경멸했는데(태조가 숭유억불의 일환으로 만든 도첩제조차 폐지시켜서 조선의 불교가 산간불교화하게 만든 원인을 만든게 바로 성종이다), 계효는 불교 승려이면서 요술사, 간신이라는 성종 입장에서는 말 한마디 나누기 싫은 분류의 사람이다.[84]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를 여진족이 손에 넣게 되면 폭발적인 세력성장을 이룰 수도 있어 정벌 이전에는 북방지역에서 재배를 금지하고 있었다.[85] 감자싹에 함유된 독인 솔라닌은 아주 적은 양으로도 복통과 설사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심지어 증상이 나오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려서, 감자가 원인이라는 건 알아챘지만 이미 다 먹어버린 뒤라 손 쓸 여지조차 없었다.[86] 애당초 톨로는 이 전쟁 후 3년이면 병사하고 동생이 30년이 넘게 현역으로 군림한 추장이 된다. 어쩌면 환경이 크게 변한 만큼 운명이 변할 수도 있지만.[87] 이것도 성종과 금수가 '그래도 갓 어른이 된 젊은 청년을 죽이기는 좀 그렇죠?'라면서 나름의 합의점을 도출한 것이다. 만일 기오창가가 협조적이지 않다면 100% 모살당한다.[88] 방호복을 갖춰서 화살도 안 통하는 열 마리의 코끼리 부대가 등에 화포를 지고 쏘아대는 데다가, 말보다 훨씬 큰 자이언트 모아들이 덮쳐 오고 하늘에서는 열기구에 탄 조선군의 화살 세례가 내려오며 건주위를 무너트린 낙타 화차에 압도적으로 박살났고 도망치는 와중에 강철 발톱을 단 하스트수리들이 공중에서 내리 찍는 상황이다. 해설로는 전투 개시 30분만에 1만명이 녹아버렸다고.[89] 오히려 '쳐들어 가도 얻을 게 있을까'로 고민했다.[90] 홀룬·몽골 연합 5만명을 압도적으로 격파하면서 조선군이 생사를 걸고 싸워야 할 강적임이 입증되었는데, 정작 몽골군은 북중국 사방에서 일어난 한족 칭왕세력들을 제압하고 다니느라 여력이 없을 만큼 바빴다. 게다가 중원의 경제가 거진 붕괴상태라 생각한 만큼의 물자도 얻지 못한 몽골 제국으로선 북중국을 제대로 정복하기 위해선 조선에서 수출하는 식량과 사치품이 반드시 필요했다.[91] 이 때 등주지휘첨사가 척계광의 조상인 척선과 척경통.[92] 10년 전에도 강적이었던 조선군이 지난 수년간 기술 발전과 인구 증가로 더 강해졌던 지라 이기기도 어렵고, 설령 이긴다 한들 적자를 메울 정도의 약탈이 가능할 지는 재기 어려운 판이다. 그러니 조선과의 중개 무역으로 꿀을 빠는 유럽을 흔들어서 중개무역을 해치거나 물자를 약탈하려고 작정한 것.[93] 오우치 가문이 번성하고 조선과도 밀접해지면 임진왜란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하지만 원 역사에서는 센고쿠 시대에 나름대로 세력을 떨쳤으나 산하의 사무라이인 스에 하루타카의 배반으로 몰락하고 모리 모토나리에게 마침표가 찍힌 것이라서 외침이 아닌 내란이 문제다.[94] 이 때 조총 2정 값으로 지불한 은이 무려 6천냥으로 현대 가치로 따지면 20억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한 터라 조정의 대간들이 이렇게 은을 많이 줬으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냐며 우려를 표했지만 김금수가 조총 복제는 당장은 무리일 것이고 저들의 의도라 봐야 돈 많이 줄 테니 다른 다이묘에게 눈길 주지 말 것을 당부하는 동시에 우리 부가 이 정도라는 걸 보여주어 가문의 위신을 세우는 정도일 것이라고 설득해 우려를 가라앉힌다.[95] 토끼는 귀가 날개와 같다고 하여 새 취급 하여 먹기도 한다.[96] 정확히는 1480년대 후반 에뮤나 조총 무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아마노 가문이 위협적이라고 했는데 1490년대가 되면서 아예 언급이 사라진다. 작중 후반에는 오우치가 규슈를 일통했다는 늬앙스의 언급이 나온다.[97] 혹시라도 에뮤가 탈출해 야생화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김금수가 직접 주의사항 및 사육법을 오우치 사절단에게 전수해 주었고, 오우치에서는 이를 철저히 준수하였기에 오우치의 세력권인 규슈 지방에서는 에뮤가 풀려나지 않았다.[98] 스오국은 오우치 가문의 시조가 처음 자리잡은 본관 지역이기에 오우치 가문으로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99] 현재 오우치는 조선에 의존하는 바가 큰 데다가 명나라가 망해버리면서 동아시아 최강국이 조선이 되어버린 탓에 조선의 분노를 사느니 동일본 모든 영주와 적대하는 쪽이 나은 상황이다.[100] 그나마 본인들이 직접 친 건 아니기에 수송대를 직접 공격한 타케다 가문이 가장 많이 욕을 쳐먹겠지만 그래도 시킨 건 호조이니 이게 드러난다면 가장 욕 먹을 건 호조 가문일 것이다.[101] 호랑이가 날래고 늪지에서도 잘 지내는 만큼 에뮤의 천적이 될 거라 판단한 것. 물론 호환도 생기겠지만 간토 평야가 에뮤에 장악당해 영지 전체가 죽는 것보다 호환으로 수백 죽는 게 훨씬 낫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엄연히 호랑이 주 서식지는 산지인 만큼 도리어 간토 평야만이 아닌 산지도 잃게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102] 호랑이는 수풀 속에 은신하다가 사냥감을 덮치는 방식으로 사냥하는데 에뮤의 주 서식지는 평야지대이므로 호랑이가 은신하기 매우 어려운 데다, 호랑이가 에뮤를 사냥하는데 성공하더라도 에뮤의 덩치를 생각하면 한 마리 잡으면 며칠은 먹을 양이므로 사냥으로 죽는 에뮤보다 새로 태어나는 에뮤가 더 많은 상황이 되기에 사실상 아무 효과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에뮤보다 인간쪽이 더 손 쉬운 사냥감이기에 사실상 에뮤의 천적으로서 역할은 안 하고 있다.[103] 이 때 데려온 백성들 중 다수가 친인척이 호환을 당했단 말을 보면 정말 광범위하게 호환이 벌어지고 있다. 대놓고 망명 사유가 에뮤랑 호환을 피해서라니 그 피해는 상상조차 힘들 정도.[104] 이 때 금수가 발표한 유전의 법칙 때문에 본의 아니게 우생학이 태동하려던 상황이라 오랑캐에 대해 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 것도 있다.[105] 다만 연락책인 다섯 닌자들 중 넷이 호환으로 사망하고 호랑이가 적은 지역을 지난 한 명만이 겨우 살아남아 전달했다.[106] 이를 위해 철저히 조사한 모양인지 김금수 일행이 조선에서 왔다고 하니까 항구의 관리가 토발서의 나라 조선에서 온 것이냐며 바로 알아볼 정도였다.[107] 본래 사신단의 목표는 코끼리 한 쌍과 쥐사슴을 포함해 10마리 이하였다. 그러나 112마리의 동물을 준비해 두었다. 특히 김금수가 처음부터 들이고자 했던 코끼리, 쥐사슴, 자바코뿔소, 빈투롱은 물론이거니와 델라쿠르 랑구르, 베트남연못거북, 양쯔강대왕자라, 황제꿩까지 준비해주는 성의를 보인다.[108]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코를 비비는 마오리족의 인사법[109] 자이언트 모아를 말처럼 쓸 것이라는 김금수의 설명에 모아를 타고 주변 부족을 정복하는 상상을 펼치기도 하였다.[110] 이는 김금수가 의도한 것으로 마오리족의 전쟁에서 패자는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 승자에게 잡아먹히지만, 하카에서 기선을 제압 당해 항복할 경우 승자는 패자의 마나를 흡수한 것으로 간주해 패자를 잡아먹지 않으므로 마오리족의 식인 문화를 없애기 위해 하카를 더욱 박력 있게 보이려고 모아를 이용한 것이다. 물론 모아가 추는 춤은 마오리족이 하카를 출 때 옆에서 같이 발 구르고 괴성을 지르게 하는 정도다.[111] 오죽하면 한명회보다 교활하고 정인지보다 탐욕스러우며 홍윤성보다 잔혹하기까지한데 독마저 잘다룬다고 경고해줬는데 임사홍 조차 독의 달인이란 부분을 듣자 식은땀을 흘릴 지경.[112] 만남을 가진 곳이 아파트라서인지 작은 동물들인 동경이와 오리너구리, 쿼카를 데려왔다.[113] 김금수가 다빈치에게 기린조를 소개할 때 원산지에서는 모아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고, 가장 덩치가 큰 대장격인 모아의 이름이 리자라는 걸 알려줘서 다빈치의 작명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114] 원래는 김금수가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라며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고 있었는데, 마키아벨리가 유럽에서 데려온 말티즈를 선물하자 동물을 활용한 것을 알려주었다.[115] 농사에 도움이 되는 생물을 보급하기 위해 차려진 실학소를 귀물원의 수족이라고 지방 사림들이 경원시하면서 농민들과 알력다툼이 생겼다. 또한 금모견, 보덕걸리 등을 키우는 것을 비난하면서 한양을 비롯한 주요도시의 유지들과도 거리가 벌어진다.[116] 김종직은 무심코 읊은 조의제문이 갔던집 회색앵무를 통해 누설되는 것으로 왕실을 능멸한 죄와 그를 증오한 이들이 뒷공작을해 곤장을 맞다 급소부분을 맞아 사망하고, 무오사화의 단초를 제공한 김일손은 축산업에 매료되어 김금수의 제자가 되었으며, 사림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조광조는 김진수가 제작한 열기구에 매료되어 스승인 김굉필과 함께 공돌이 김진수의 제자가 되었다.[117] 트립할때 공작용 기구들도 같이 넘어왔기에 동생인 김진수는 마음만 먹으면 조선시대에서도 AK를 만들수 있지만 무연화약과 뇌관이 없어 껍데기만 만드는 수준이라고 자조하면서 현실과 타협하여 조총을 만들어내었다.[118] 이전에는 조선에 유리 제작기술이 없어서 주인공들이 개념과 설계도는 알고 있었지만 만들 엄두도 못 내던 상태였다.[119] 김금수만 해도 동물을 사람보다 아낀다고 적잖이 욕을 먹는 와중인데, 금수 형제의 조선 생활 초중기 주 후원자가 한명회, 정인지, 신숙주 등이고 주요 측근 정치인들이 유자광, 임사홍이다...[120] 중국의 힘을 빼놓기 위해 작정하고 수를 쓰는 다른 대체역사물의 주인공들과 달리 김금수는 그저 동물덕질을 위해 명 황실의 환심을 사려고 움직인 것 뿐이였지만 이게 명의 몰락을 앞당기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121] 남경을 차지한 월나라를 중심으로 아직도 황충 재해를 극복하지 못해서 여전히 빈곤하며, 몽골은 물론 조선과 다른 외국에도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참새를 수입해서 어떻게든 뒷수습을 한 원 역사의 제사해 운동과 달리, 메뚜기 떼의 창궐이 참새의 개체수 감소가 원인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상황이기에 참새를 보호하지 않는 이상 피해 복구에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상황이다.[122] 조선은 장기적으로는 송화강 이남을 조선의 밀 농업단지로 개척하고, 홀룬국에 적극 무역을 통해 개입해서 조선에 동화시킬 작정이다.[123] 에뮤는 조선에 충성하는 오우치를 돕기 위해 김금수가 직접 사육법을 철저히 가르쳐 보내준 건데 다이묘끼리의 세력 다툼에 휘말려 야생에 풀려나버렸고, 거묘는 줄 생각조차 없었는데 일본 선원들이 육용가축으로 밀수하는 바람에 일이 터진 것.[124] 그나마 에뮤나 거묘는 초식성이라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사실상 없지만 호랑이는 조선에서도 공포의 상징으로 군림하던 존재이며 마땅한 먹이 경쟁자도 없는 일본을 끝장내긴 딱이다.덤으로 군림한이상 자기 영역인근의 일본늑대를 도륙내고 다닌건 덤.[125] 심지어 토끼와 에뮤의 번식을 억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이묘들 간 다툼으로 대병력을 사냥에 동원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조도 수천 명 이상을 동원해서 에뮤 떼를 몰이사냥 해야 유의미한 성과가 나온다는 건 이미 조선 상인을 통해 전해 들었지만 주변 다이묘들과의 적대 관계 탓에 그 방법을 쓰지 못한 것. 심지어 그러면서 호랑이를 수입할 돈은 무리해서 군사를 일으켜 이웃 영지를 약탈해서 벌었다.[126] 왜 국립공원 화하냔 동생 진수의 질문에 어차피 이시대에 이렇게까지 불어나서 쌀에 맛들린데다 +산악지형에 익숙해지고+교활함도 Max를 찍어버린 에뮤와 군단충마냥 불어나는 거묘+잡으라는 에뮤는 안잡고 일본 늑대나 일본인을 덮치는 호랑이라는 동물재앙+지리학적으로 지진이 활발한 일본땅에 정착민을 밀어넣거나 지원을 가보려해봐야 이미 늦었고,돈만 날리고,조선의 위신이 꺾이느니 깔끔히 국립공원화 하고 지킬데만 지키는게 낫다며 포기해버린것이다.[127] 덕분에 오우치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규슈의 아마노, 모리, 쇼니 씨는 원 역사에 비해 성장하지 못하고 1490년대에는 완전히 규슈에서 밀려난다.[128] 후대의 도쿠가와 가문[129] 생태계 파괴가 단순히 토종 동물들의 피해만이 아닌, 농경을 망치는 수준까지 가버렸고 이에 따라 다이묘들의 수입이 줄어들어 교역량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벌써부터 다이묘들의 영향력이 줄고 있는데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칠 맹수까지 들어와 버려 혼슈는 인외마경이 될 것이기에 혼슈 지방 다이묘들은 클래야 클 수가 없다.[130] 그나마 오다 가문이 위치한 오와리 국은 아직 동물들의 마수가 덮쳐오진 않았다고 언급되며 나름 조선에 협력적이기에 원 역사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위세를 떨칠 순 있을 것으로 보인다.[131]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보티첼리, 마키아벨리, 에라스뮈스 등 서양의 등골을 빼먹었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132] 아메리카 대륙은 원래 살던 원주민들을 제외하고 콜럼버스 이전에 바이킹들이 먼저 발견하긴 했지만 소설의 배경인 15세기 말엽에는 콜럼버스가 다시 발견하기 전까지 유럽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고 결정적으로 라마와 알파카가 사는 남미 대륙과 프레리도그가 사는 북미 서부 지역은 그 바이킹들도 모르는 지역이었다. 거기다 오세아니아 대륙의 존재는 17세기가 되어서야 유럽에 알려진다. 즉, 김금수가 일단 동로마인으로 기록된다 한들 당대에 이 두 지역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혹여 동로마가 이 지역들을 알고 있다 한들 금수가 살던 시절에는 도시국가 수준까지 추락해 지중해 끝자락에 간신히 위치해 있었으니 대서양까지 나가기도 무리고 결정적으로 동로마가 안다면 당대의 해양강국인 포르투갈과 스페인, 베네치아나 제노바 및 동로마를 감싸고 있는 오스만 제국이 모를 리가 없는데 이들은 역사가 말해주듯 소설 최신화 시점에서도 두 대륙의 존재를 알지 못한 상태다.[133] 최신화 시점인 1491년이면 대항해시대가 태동중이긴 한데 초기 대항해시대인 주역인 포르투갈은 아직 아프리카도 못 벗어난 상태이며 스페인은 곧 레콩키스타가 끝나긴 하지만 우선적으로 아메리카 탐험에 집중할 것이라 당장 조선과 오세아니아를 알긴 무리고 콜럼버스는 항해는 꿈도 못꾸고 후원자 찾다가 이제 막 이사벨 여왕과 접촉해 항해를 준비하고 있을 시기다.[134] 하지만 멸종 동물 보호를 위한 김금수의 탐험이 단순히 오세아니아 찍고 끝날 리가 없다는 건 모든 독자들이 알고 있고 특히 김금수는 회색앵무 건으로 언젠간 아프리카까지 가야 해서 그과정에서 포르투갈과 접촉해(아시아 항로 개척은 포르투갈이 먼저 진행하기 때문) 오세아니아 대륙이 원 역사보다 빠르게 유럽에 알려질 가능성은 있다.[135] 해당 개체의 이름이 구름이였는데 일이 수습된 후 김진수가 히드라나 코그모로 바꿔야 한다고 투덜댄 건 덤.[136] 성체 라마는 해발 5,000m가 넘는 산악에서도 70kg 이상의 짐을 지고도 하루 20km 이상 움직이지만, 당시 조선에는 그 정도로 고지대에서 짐을 나르는 동물이 필요하지가 않다.[137] 한마리는 결국 죽었고,한마리는 살았지만 여생동안 다리를 절게됬다고 덕분에 금수가 두배로 빡쳤고.[138] 전통 각궁 중 최상급은 조선에선 키우기 힘들어 사실상 수입에 의존하는 물소뿔을 가공해 민어 부레로 만든 아교로 이어붙여 만들기에 제작비도 비쌌는데 습한 날씨에는 아교가 녹거나 썩어버려 쓸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거각우 각궁은 통으로 깎아서 만들면 되기에 아교가 필요 없는 데다 한 마리의 뿔로 활 2개를 만들 수 있기에 생산비와 제작기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될 수 있었던 것. 처음에는 낯선 짐승을 거두는 걸 반대하던 대신들도 거각우 뿔의 잠재력을 알게 되자 바로 거각우 도입에 찬성할 정도였다.[139] 사대부의 소양인 육예(六藝) 중 하나가 활쏘기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대부는 좋은 활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었다.[140] 모짜렐라 자체는 그냥 우유를 써도 무방하나 원고장 이탈리아에선 물소것으로 만든것을 으뜸으로 쳐준다,실제로도 맛이 더 좋다고.[141] 다만 한명회는 물소들을 구제하고 귀한 약재를 왕실에 바쳐 동물을 아끼는 성종에게 그에 대한 보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도 노렸다.[142] 일본은 육식금지령 때문에 고기를 안 먹긴 했지만 이걸 다 지킨 건 아니고 먹을 사람은 몰래 먹었는 데다 새고기는 금지대상에서 예외로 쳐줬는데 토끼의 경우 "가죽을 벗겨놓으면 털을 뽑은 새랑 비슷하게 생겼으니 이건 새고기다"라는 기적의 논리로 먹었다고 한다. 문제는 거묘는 토끼 안에서도 가장 늘어나는 속도가 가장 악명높기로 자자한 놈이라 한반도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거묘로 배를 불린 호랑이가 세를 확장해 큰일날뻔 했는데, 거묘를 견제할 맹수가 부족한 일본에 거묘를 수출할 생각이 금수에겐 없었단 것.[143] 당장 실제 역사의 호주와 본작 내의 조선에서도 똑같은 사태가 터졌었다. 호주는 수십억 마리 정도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토끼들을 죽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몇 퍼센트도 줄이지 못하자, 여우를 도입했다가 토종생물들만 잡아먹히는 재앙이 일어났고, 결국엔 토끼 질병을 퍼뜨려야 했으나 이조차도 면역을 획득한 토끼들이 번식해 실패한 바람에 아직도 전쟁은 현재진행중이다. 다만 작중 시점의 조선의 경우 호랑이나 표범·반달곰과 늑대 같은 토끼의 천적이 될 만한 대형 맹수들이 드글대는 환경인 지라 토끼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일본에서도 소설 속 시점에서는 늑대나 반달곰, 여우와 같은 토끼의 천적이 될 수 있는 동물들이 살고 있어 호주보다는 사정이 낫긴 하지만 조선만큼 대형 맹수들이 많은 건 아닌 지라 조선처럼 아무런 피해 없이 지나가는 건 무리일 것으로 보인다.[144] 토끼나 쥐 같은 소형동물은 평소에는 포식자를 피해 도망다니지만 개체 수가 많아지면 집단으로 포식자를 공격해 쫒아내는 특성이 있다. 원 역사의 호주에서도 군인들이 토끼사냥 도중에 토끼 무리 속에 들어가 총을 난사하다가 토끼들이 덤벼들어 바지와 신발을 물어뜯어서 위기에 처했다는 전투기록이 있다. 당시 호주군보다 키가 작고, 옷의 방호력도 부족한 일본인들에게는 진짜 생명의 위협이다.[145] 거기다 사신들이 보러왔을 땐 털을 다 깎아낸 상태라 굉장히 볼품 없어 보이는 상태였다는 것도 한 몫 했다. 사신들이 죽도 못 얻어먹은 거지같다고 말할 정도.[146] 심지어 정희왕후 핑계까지 대면서 말이다. 그러나 금수가 토발서는 땅 파고 나무 갉는 걸 좋아해서 후원에 들였다간 정희왕후가 뒷목 잡는다면서 반대했다.[147] 번식력 좋은 토발서가 무분별하게 퍼져 농작물을 망치는 해로운 동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한 김금수가 토발서만큼은 누구에게도 하사하지 말 것을 성화제에게 요청하였기 때문.[148] 정확히는 막내공주가 토발서 그림을 보고 토발서를 갖고 싶다고 떼를 쓰다 몸져 누워버린 탓에 성종도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탓이 크다.[149] 가마를 만들어 장작으로 열을 조절하고 시간마다 사람이 확인해 알을 돌려가며 부화시킨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사용한 유서 깊은 방식으로 산간 지방에서는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효율적이다. 대형 가마는 소설의 설명대로 2천 마리 정도를 부화시킬 수 있다.[150] 이 때 김금수가 데리고 나온 캥거루의 이름이 타이슨과 홀리필드였다. 두 마리의 사이가 안 좋아 마주치면 싸워대서 일본 사신단에게 보여주기 딱 좋은 개체들이였다.[151] 실제 2005년경 캥거루 똥으로 만든 종이가 호주에서 반짝 유행을 했었다.[152] 그 방식이 경마와 비슷한 지라 독자들 사이에선 이 세계선에선 우마무스메와 함께 타조무스메도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돌고 있다.[153] 실제 카멜레온의 한자어는 칠면석척(七面蜥蜴)으로, 개역한글판 성경에도 등장한다. 구체적으로는 레위기 11장으로, 부정한 동물의 일람에서 합개와 육지 악어와 수궁과 사막 도마뱀과 칠면석척이라라고 언급된다. 개역개정판에서는 도마뱀붙이와 육지 악어와 도마뱀과 사막 도마뱀과 카멜레온이라라고 번역되었다.[154] 이걸 간과하고 귀엽다는 이유로 대형견을 키우는 견주들이 개를 통제하지 못해 역으로 질질 끌려다녀 개가 사람을 산책시키는 일이 자주 생기곤 한다. 심하면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 같은 탈것이 필요한 수준도 발생한다.[155] 그 와중에 원래 차례였던 유자광의 몫을 빼앗겠다고 수작을 부리려고 한다.[156] 골든 리트리버는 현대에도 유전병 문제가 매우 심각해 애견인들의 속을 태우는 중이다. 암으로 인한 사망도 보통 믹스견들의 두 배가 넘을 정도.[157] 이 때 쓴 돈이 환산하면 35억이 넘는다고 한다. 어유소와 성종이 감탄한 건 덤.[158] 다만 본편 시점에선 굳이 비유해서 따지자면 발칸이 아닌 미사일포대 를 장비한 형태.[159] 이전에 기르던 사육사가 폭력적인 성인용 미국 드라마를 자주 봐서 기분이 나쁠 때마다 영어로 욕하는 습관이 들었기에 초반에 성종을 보자마자 "Motherfucker"(...)를 시전했다. 물론 성종은 영어를 몰라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했고 김금수도 대충 좋은 뜻이라고 얼버무렸다. 여담으로 영어로 패드립 치는 회색앵무 두 마리의 이름이 사무엘과 잭슨이다.[160] 본디 귀물원 출신의 모든 동물들이 황실에만 납품되고 사신에게 사은품으로 주지 않기로 결정이 되었지만 이 동물들을 최초로 데려온 공이 있는 정동만은 예외로 뒀다. 그 정동마저도 못 받게 된 동물이 회색앵무니 그 가치를 가늠할 만하다.[161] 민간에선 임금의 말씀을 전달하는 영물 취급 받고 있다.[162] 구한말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말은 악마라고 매도할 정도로 토종말은 성격이 매우 거칠어 주인에게도 자주 반항하는 편이다.[163] 여기에는 금수가 들여오자고 한 또 다른 대상이 귀여움 빼곤 실용성이 1도 없어 보이는 쓰시마 야마네코라서 거기에 어그로가 쏠린 것도 한 몫을 했다.[164] 코끼리는 적당한 풀이나 나무만 줘도 잘 먹는데 태종 시기에는 이걸 몰라서 쌀과 콩을 퍼먹이다 먹이값이 감당이 안 돼서 코끼리를 섬으로 유배 보내라는 상소가 빗발쳤었다.[165]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높은 수준의 행정력을 갖췄다 인정받는 조선에서 종이는 진짜 중요한 사무용품이었다.(종이는 전자문서 사용이 늘어난 현대에도 중요한 사무용품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니 종이를 더 늘릴 수 있는 수단을 코끼리가 쥐고 있다는 게 명백한 순간 대간들의 반대 명분은 사라진다.[166] 몸통은 에뮤 깃털로 덮어 원거리 공격에 대한 방호력을 갖추고 약점인 코와 다리 부분은 사슬과 철편을 엮어 근거리 공격에 대비한 갑주이다. 화약무기가 없어 창·칼과 화살이 전부인 여진족에게는 공략이 불가능한 무적 그 자체이다.[167] 이런 김금수의 반응에 성종은 "김금수 너마저"라며 허탈해 했다.[168] 실제로 에뮤 전쟁 때 루이스 경기관총으로 쏴도 깃털로 보호되는 몸통을 뚫지 못했을 정도였다.[169] 호조 가문이 사주해서 타케다 가문이 수송대를 습격했다.[170] 이에 대한 복선이 있었는데 김금수 형제가 일본이 침략해 오는 미래를 어찌해야 하나 논의하다 김금수가 에뮤를 일본 열도에 풀어버리는 건 어떨까 말했고 김진수는 "조선이 일본에 에뮤를 풀었다"라며 웃어넘겼는데 그것이 실제로 벌어졌던 것. 번식력·적응력이 뛰어난 에뮤가 떼거리로 혼슈 평야에 풀려났으니 일본 본토의 생태계와 농업이 박살나는 건 시간문제인 상황으로, 20세기에 벌어진 에뮤 전쟁 때보다 열악한 16세기 시점의 일본으로선 수습 불가의 대재앙인 셈이다.[171] 타작품인 근육조선에서도 이 에뮤들과의 전쟁은 거의 진짜 전쟁처럼 묘사되었고,비록 유생들의 계략으로 에뮤에게 공포를 각인시켜서 겨우 이긴데다 공포가 각인됬어도 건기에 배를 주려서 절박해지면 다시 발발할 에뮤 재침공을 방지하려고 수백년에 걸친 호주 녹화사업을 행했을 지경.[172] 오지에 살고 있던 고원 모아종은 16세기까진 확실히 살아있긴 했다.[173] 크기가 크기인 만큼 안장에 줄사다리를 넣고 다니며 이를 이용해 타고 내린다.[174] 패잔병 추격이나 공중 감시와 같은 군견과 비슷한 용도라 볼 수 있다.[175] 물론 교황도 그 위력상 절대 팔 리 없다는 걸 알고 그냥 떠보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176] 더구나 본작 세계관에서 하스트수리는 현대전 최강의 전투기 F22와 같은 위치에 있는 군사병기다. 실제로 미국은 다른 전투기는 다 팔아도 F22만큼은 다른 나라한테 팔지도 임대도 안 해주는 거랑 같은이유다.[177] 평소에도 굉장히 시끄러운 데다 야생 개체를 살갑게 대하며 먹이를 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단체로 몰려와 깽판을 치는 특징이 있다. 별명이 날아다니는 비글이라는데서 말 다한 셈.[178] 카카포는 평균 수명이 95세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대인들도 90세 이상 살기 쉽지 않은 판에 현대보다 훨씬 열악한 16세기 사람들의 평균 수명을 생각해보면 어지간해서는 주인보다 먼저 죽을 일이 없는 최고의 반려동물인 셈이다.[179] 원 역사에서도 가뭄이나 홍수, 태풍으로 인한 재해가 일어나거나 돌연변이 동물이 태어나거나 나타나면 임금이 부덕한 탓에 하늘이 경고하는 것이라며 임금이 추진중인 정책을 철회할 것을 강권하는데 써먹었다.[180] 원 역사에서 알렉산데르 6세는 이탈리아 통일의 야심이 있어 아들인 체사레를 첨병으로 삼아 계획을 진행하던 중 말라리아로 사망하며 모든 게 수포가 된다. 참고로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기는 질병인데 모기를 쫓아내는 개다래 열매가 왔으니 교황이 말라리아에 걸릴 일이 없어져서 알렉산데르 6세의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 율리오 2세와 프랑스가 절규하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