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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12:45:53

서울예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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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서울예술대학교
서울藝術大學校
Seoul Institute of the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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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40e17> 표어 예술의 서울, 서울예술대학교
창학이념 우리 민족 예술혼의 현대화 ∙ 세계화
교훈 성실 · 협동 · 창의
상징 파일:서울예술대학교 심볼.svg 불꽃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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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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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분류 사립대학, 전문대학
지역 경기도, 서울특별시
설립 1958년 8월 26일 ([age(1958-08-26)]주년)
한국연극연구소[1]
창학 1962년 4월 12일 ([age(1962-04-12)]주년)
드라마센터[2]
설립자 유치진[3]
창학자 유덕형[4]
총장 제14대 유태균[5]
이사장 제8대 임상혁
법인 학교법인 동랑예술원[6]
주소
<colbgcolor=#a40e17><colcolor=#fff>
안산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예술대학로 171
,(고잔동 640),[7]
남산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38
,(예장동 8-19),[8]
학부생 3,139명(2024년)
교원 158명(2023년)[9]
일반재정지원 선정대학(2021년)
웹사이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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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개
2.1. 설립자2.2. 상징
3. 역사4. 학제
4.1. 전문학사 과정
4.1.1. 공연학부4.1.2. 영상학부4.1.3. 음악학부4.1.4. 문예학부4.1.5. 디자인학부4.1.6. 커뮤니케이션학부
4.2.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4.3. 첨단미디어융합콘텐츠 전문기술석사 과정4.4.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캠프
5. 학사 정보
5.1. 입시5.2. 학비5.3. 출신 인물5.4. 그 외
6. 캠퍼스7. 학교기관
7.1. 부속기관7.2. 부설기관7.3. 기타기관
8. 교통
8.1. 버스교통8.2. 철도교통
9. 학생활동
9.1. 동아리9.2. 입학식
10. 자치기구
10.1. 총학생회10.2. 대의원총회10.3. 학보사10.4. 교지편집위원회 예장10.5. 동아리연합회10.6. 교육방송국 SABS10.7. 사회봉사단 마중
11. 사건 사고
11.1. 2018년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 1 선정11.2. 서울예대 공연계 원로 교수 성폭행 사건
12. 기타
12.1. 후문이12.2. 안산시 반값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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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p1065580618112619_820_thum.jpg
<rowcolor=#fff> 서울예술대학교

서울예술대학교경기도 안산시 단원구[10]서울특별시 중구[11]에 위치한 학교법인 동랑예술원 산하의 3/4년제 예술계 사립 전문대학이다.[12]

2024년 창학 62주년을 맞이했다. 한글 약칭은 서울예대[13]이며 영문 약칭은 SeoulArts이다.

2. 소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무수히 많은 문화예술인을 배출한 명문 예술사학, 서울예술대학교

1962년 극작가 유치진미국 록펠러재단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당시 연극인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공공극장의 설립을 목적으로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인 드라마센터와 부설 연극아카데미를 설립한 것을 효시로 한다.[14]

연극을 통해 한국 전쟁 이후 피폐해진 민족혼을 되살리고, 예술 인재의 양성과 연극 자료 및 예술서적 보존에 뜻을 두고 설립되었다. 반세기를 이어온 대한민국 굴지의 예술메카이자 한국 종합예술의 산실. 대한민국 건국과 더불어 불어닥친 정신문화의 빈곤을 타개하고 우리예술의 맥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인들을 널리 배출해왔다. ‘우리민족 예술혼과 전통의 세계화’라는 창학이념을 바탕으로 글로벌 예술인재 양성을 위하여 현장중심의 예술창작 교육을 실현해왔으며, 한류(K-Wave)의 산실로 성장해왔다.

2008년부터 전문학사과정(3년제)과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1년제)이라는 3+1 이원 체제 학위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유럽의 도제식 실기 교육인 ‘컨서버토리(Conservatory)’와 실용주의에 입각한 미국의 이론과 현장중심 교육인 ‘스쿨(School)’ 시스템 장점을 살려 특성화된 인스티튜트(Institute) 체계 전문 예술 창작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1962년부터 2000년[15]까지 사용한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38(예장동 8-19)에 위치한 남산캠퍼스와 고질적 문제였던 협소한 캠퍼스 부지 문제 해결을 통한 수업 환경 개선 및 4년제 대학으로의 승격을 위해 2001년[16]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예술대학로 171(고잔동 640)로 전격 이전한[17] 안산캠퍼스이원화캠퍼스 운영중이다.

2008년부터는 ‘전문학사과정(3년제)’과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1년제)’이라는 이원(3+1 체제) 학위 프로그램을 완비하고, 유럽의 도제식 실기 교육인 컨서버토리(Conservatory)와 미국의 실용주의에 입각한 이론과 현장 중심 교육인 스쿨(School)시스템의 장점을 살려 우리만의 특성화 된 인스티튜트(Institute) 체계의 전문 예술 창작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는 계열간, 장르간, 전공간 연계⋅순환⋅통합으로 예술 창작의 계열은 넓히고 전공은 심화하는 융합교육을 실시한다. 그리고 예술창작기초학부를 따로 두어 예술이론을 포함한 인문학, 교양, 교직 등의 교과과정을 통해 서울예대인의 예술창작 기초소양을 교육한다.

전문학사학위(Associate of Fine Arts)공연학부(연극, 무용, 연기 전공), 영상학부(영화, 방송영상, 디지털아트 전공), 음악학부(한국음악, 실용음악 전공), 문예학부(문예창작, 극작 전공), 디자인학부(시각디자인, 사진, 공간디자인 전공), 커뮤니케이션학부(광고창작, 예술경영 전공), 6개 학부 15개의 전공으로 운영된다.

전문학사학위는 3년간 예술의 분야별 기본소양과 기능 완성을 목표로 현장 중심의 기술 습득 교육을 강조한다. 전공별로 창작기초를 다진 뒤 제작실습을 통해 창작 방법을 익히고 공연과 전시를 통해 전공 기술의 연마를 확인한다. 동시에 다양한 산업 분야와 연계한 현장 실습을 통해 직업교육을 강화시키고 있다. 전문학사학위과정과 학사학위과정의 유기적인 연계ᆞ순환ᆞ통합 교육을 통해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의 관계처럼 안산캠퍼스에서는 전공별 스튜디오와 예술공학센터, 창작실습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예술과 과학을 접목한 창작교육을 실시하며, 교육현장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남산캠퍼스의 「문화예술산업융합센터」와 「동랑센터(드라마센터)」를 통해 발표되고, 문화예술 산업계로 보급된다.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Bachelor of Fine Arts)은 연극, 무용, 연기, 한국음악, 실용음악, 극작(공연극본창작), 예술경영(공연콘텐츠기획) 전공이 서로 연계·순환·통합하는 공연창작학부와 영화, 방송영상, 디지털아트, 문예창작, 극작(영상극본창작), 시각디자인, 사진, 공간디자인, 광고창작, 예술경영(영상콘텐츠기획) 전공이 서로 연계·순환·통합하는 미디어창작학부 2개 학부로 운영된다.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은 1년간의 전공 심화 교육의 ‘예술창작 전문교육’ 과정이다. 개인별 지도교수와 함께 도제식 전공연구(Graduation projects / Individual studies)를 통해 전공을 심화하고, 학부와 전공 간의 벽을 넘어 다른 전공과의 팀티칭 융합교육(랩·스튜디오·프 로덕션 중심의 창작-LAB・Studio・Production)을 통해 창작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이로써 전공의 새로운 응용으로 계열은 넓히고, 창작을 통해 자신의 전공분야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민족문화예술 창달과 전문예술인력 양성이란 이념은 “창조적 예술인 양성을 위한 전문화된 예술교육 조직”을 경영, 영위함으로서 실천될 수 있다. 동랑예술원은 예술가와 도제, 예술가와 사회 등 예술 촉매자, 예술 진흥자의 역할을 수행해 나가기 위하여 예술활동 현장과 예술교육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전문화된 예술교육 조직을 형상화시켜 가고 있다. 이를 통해 교육현장과 예술현장이 융합됨으로써 사회가 요청하는 예술 각 분야의 예술기능인부터 예술가·장인을 배출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2001년 안산캠퍼스가 조성되어 대학의 교육공간이 학교법인의 문화운동공간과 분리되면서 서울예술대학교의 구 캠퍼스인 남산공간은 이를테면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기능과 바우하우스 같은 기능을 합친 ‘예술센터’의 기능을 확대하여 재학생의 현장프로덕션, 졸업생의 인턴십과 예술활동, 대학과 사회의 교류센터, 대학의 산업협동 현장, 학교법인의 예술사업 활동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안산캠퍼스와 상시 초고속 전산망을 구축하여 두 공간간의 고유 기능들을 교환함으로써 교육 시너지 효과를 얻도록 하였다.

학교법인 동랑예술원은 공연예술단체 운영과 드라마센터 등 예술공간 운영, 문화·예술산업을 목적사업으로 하는 문화·예술기업을 경영함으로써 학교에서 배출되는 예술인의 프로모션, 예술 예비인재의 도제 훈련, 학습자의 전문창작실습 참여 등의 기회를 제공하고, 동시에 새로운 소재, 기법, 인력 등을 경영에 흡입, 활용하는 산학일체의 교육사업 및 예술사업을 실현하여 이를 통한 유·무형의 수익을 학교로 환원하도록 하고 있다.

2.1. 설립자

파일:유치진 선생 사진.jpg
동랑 유치진
서울예술대학교는 극작가이자 연극연출가동랑 유치진에 의해 설립되었다. 동랑 유치진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18]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14년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졸업하였다. 1921년 동경 도요야마(풍산) 중학교에 편입해서 1925년 졸업하였다. 다음 해인 1926년 일본 도쿄에 위치한 릿쿄대학 예과를 거쳐, 1927년 영문과에 입학하여 1931년 졸업하였다. 로망 롤랑의 「민중예술론」을 읽고 연극에 뜻을 두고 귀국하여, 1931년 7월 서항석(徐恒錫)‧이헌구(李軒求)‧이하윤(李河潤)‧장기제(張起悌)‧정인섭(鄭寅燮)‧김진섭(金晉燮)‧함대훈(咸大勳)과 함께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했다. 고골리의 「검찰관」에 출연하는 것을 시작으로 희곡·창작·연기·연출·평론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면서 극예술연구회를 주도하였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삼일극장에 「빈민가」를 공연하였고, 주영섭과 이해랑 등이 주도한 동경학생예술좌의 창립을 후원해 「소」를 초연했다. 극작가로 등단한 것은 희곡 「토막」부터였다. 이후 극예술연구회 시기(1931~1939)에 70여 편에 달하는 연극비평과 희곡비평, 시론, 연극계결산, 희곡창작법과 영화계에 대한 조언 등을 발표하였다. 희곡으로 「빈민가」(1935), 「소」(1935) 등이 대표적인데, 이 가운데 농촌 현실과 식민지 현실을 다루었다. 1940년 12월 조선연극협회 이사에 취임하면서 일제에 협조하였다. 1941년 2월 부여신궁 조영공사에 근로봉사하였으며, 3월 조선연극협회 산하 극작가동호회 회장에 피선되었다. 7월 조선연극협회와 조선연예협회로 양분된 공연예술단체를 통합하여 결성한 조선연극문화협회에서 상임평의원에 임명되었고, 12월 영화기획심의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43년 4월 조선문인보국회 이사로 임명되었고, 6월 조선문인보국회 소설희곡부 회장이 되었으며, 10월 조선문인보국회 주최한 결전소설과 희곡 공모 심사원으로 위촉되었다. 1944년 6월 조선문인보국회 극문학부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인 1944년 11월과 1945년 2월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 일어극 각본 공모 심사원으로 위촉되었다. 해방 후 1947년 2월까지 은둔생활을 하다가 1947년 한국무대예술원 초대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48년 서울시 문화위원으로 피선되었다. 1949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56년과 1957년 구미와 동남아를 순방하면서 세계 연극 흐름을 시찰하였다. 1960년과 1961년 대외활동에 전념하여 동국대학교에 연극영화학과를 창설하여 초대 학과장을 맡고 전국극장단체협의회장과 문교부 대학교수자격심사위원에 위촉되었고, 동경에서 열린 아세아영화제 국제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62년 드라마센터를 건립하여 한국연극연구소와 연극학교, 연극아카데미 등 부설기관을 만들었고, 같은 해 전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초대 회장과 예술원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1963년 동경아세아영화제 국제심사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4년 극단 드라마센터를 창설하였다. 1971년 한국극작가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1974년 2월 10일 사망하였다.

동랑 유치진은 침체된 민족예술의 발현을 시대적 소명으로 자각하여 평생을 문화 예술계와 연극계에 헌신하였다. 1931년에 창립한 극예술연구회를 통해 민족 예술의 토대를 다지고, 1962년에 드라마센터와 한국연극연구소 및 부설 연극아카데미를 설립하여 한국 연극의 장을 새롭게 열었으며 서울연극학교, 서울예술전문대학 시절을 거쳐 오늘의 서울예술대학교가 있게 하였다. 학교재단인 동랑예술원, 동랑레퍼토리극단과 동랑청소년극단,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와 동랑청소년예술캠프, 동랑체 등에 사용된 동랑은 유치진 선생의 아호이다.

2.2. 상징

파일:서울예술대학교 로고.svg
서울예술대학교 로고
서울예술대학교의 상징은 불꽃이다. 서울예술대학교의 로고는 그 불꽃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본교의 아이덴티티이다.

서울예술대학교의 로고는 조상의 미학적 숨결이 살아 있는 백제 금관식 왕비관의 고유문양에서 착안하여 현대와 전통의 융합을 외곽의 어눌함과 날렵한 곡선을 이용하여 포지 네가티브로 표현하였다. 또한 불꽃과 날개를 하나로 조합하여 진정한 예술혼을 불태우며 꿈을 향해 비상하는 서울예대인의 모습을 이미지화 하였다. 주색인 붉은색은 예술의 극치와 무한한 열정을 의미하며 2000년부터 서울예술대학교 국영문 Logo와 서울예술대학교 앰블럼을 사용하였으며, 동랑체를 사용하고 있다.

아래 이미지는 서울예술대학교 로고의 변천사를 나열한다.
파일:서울예술대학교 로고변천사.gif
서울예술대학교 로고 변천사

3. 역사

4. 학제

서울예술대학교는 3/4년제 전문대학으로 3년제 전문학사 과정과 4년제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을 운영 중이다. 학사학위 과정은 전문학사 과정을 마친 후 지원할 수 있으며,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전문학사학위와 학사학위 과정을 이수한 자에 한해 정규 4년제 예술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만든 학위 제도이다.[49]

2024학년도부터 전문기술석사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전문기술 석사학위과정(2년 과정 / 첨단미디어 융합콘텐츠 과정) 지원가능한 학과는 아직 미정이다.[50]

4.1. 전문학사 과정

파일:서울예술대학교 흰색 로고.svg 의 전공
공연학부
연극전공 무용전공 연기전공
영상학부
영화전공 방송영상전공 디지털아트전공
음악학부
한국음악전공 실용음악전공
문예학부
문예창작전공 극작전공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 사진전공 공간디자인전공
커뮤니케이션학부
광고창작전공 예술경영전공


전문학사(Associate Degree In Arts) 과정은 연극 · 무용 · 연기 전공의 공연학부, 영화 · 방송영상 · 디지털아트 전공의 영상학부, 시각디자인 · 사진 · 공간디자인 전공의 디자인학부, 문예창작 · 극작전공의 문예학부, 한국음악 · 실용음악 전공의 음악학부, 광고창작 · 예술경영 전공의 커뮤니케이션학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3년간 예술의 분야별 기본소양과 기능 완성을 목표로 현장 중심의 기술 습득 교육을 강조한다. 전공별로 창작기초를 다진 뒤 제작실습을 통해 창작 방법을 익히고 공연과 전시를 통해 전공 기술의 연마를 확인한다. 동시에 다양한 산업 분야와 연계한 현장 실습을 통해 직업교육을 강화시키고 있다.[51]

학부 및 전공의 기재 순서는 개설년도에 따른 것이다. 이를 테면 연극전공의 개설년도가 1962년으로 가장 빠르기에 공연학부 또한 가장 먼저 기재된다. 이후 공연학부로 묶인 타 전공들(무용, 연기) 중 먼저 개설된 무용전공이 두번째로 위치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영상학부의 디지털아트전공과 같은 비교적 늦게 개설된 전공의 경우에도 영화전공이 개설년도가 연극전공 다음으로 두번째로 빠르기에 영상학부가 공연학부 다음에 위치하는 것이며, 같은 학부로 묶인 디지털아트전공이 학부 내 세번째 전공에 위치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예외 사항이 있다. 어째서인지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당시 응용미술과)이 1974년 개설되어 음악학부 한국음악전공(당시 국악과)의 개설년도인 1980년도보다 빠름에도, 음악학부가 먼저 기재되며 1976년 개설된 문예학부 문예창작전공(당시 문예창작과)보다도 개설년도가 빠름에도 음악학부-문예학부-디자인학부 순으로 기재된다.
더불어 최근에 리뉴얼한 학교 공식홈페이지의 학부 소개 부분에는, 공연학부 내 전공 소개를 연기전공을 무용전공보다 먼저 하며, 음악학부의 경우에도 한국음악전공이 아닌 실용음악전공을 먼저 하고, 디자인학부의 경우에도 시각디자인전공이 아닌 사진전공을 먼저 한다. 그런데 공교로운 점은 이러한 순서가 각 전공의 입시 경쟁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소개되는 전공들의 경쟁률이 더 높다는 것. 그러나 엄연하게는 틀린 순서이며, 전공의 전화번호나 학번 같은 학교의 공식 자료들 예외 없이 위의 표와 같은 순서가 적용된다.

4.1.1. 공연학부

공연학부
School of Performance
연극전공 무용전공 연기전공

4.1.2. 영상학부

영상학부
School of Film and Media Arts
영화전공 방송영상전공 디지털아트전공

4.1.3. 음악학부

음악학부
School of Music
한국음악전공 실용음악전공

4.1.4. 문예학부

문예학부
School of Creative Writing
문예창작전공 극작전공

4.1.5. 디자인학부

디자인학부
School of Design
시각디자인전공 사진전공 공간디자인전공

4.1.6. 커뮤니케이션학부

커뮤니케이션학부
School of Communication
광고창작전공 예술경영전공

4.2.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

서울예술대학교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
Bachelor of Fine Arts Degree
공연창작학부 미디어창작학부

4.3. 첨단미디어융합콘텐츠 전문기술석사 과정

엑스-랩(X-Lab)
Master of X-Lab, Art & Technology Expression Laboratory

4.4.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캠프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 소개영상
동랑청소년예술캠프 소개영상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는 예비 예술가를 발굴할 목적으로 1962년부터 시작된 대회이다. 부문별로 뮤지컬, 연극, 문예, 광고, 영상, 국악, 사진, 무용이 개최되고 있다. 심사는 각 주관 학부 전굥교수들이 심사를 본다. 예술제에 참가하여 개인상을 수상한 사람한테는 해당부문 주관 학부(전공)에 지원시 가산점을 부여하는데, 동랑대상은 50%[96] 으뜸•버금상은 15%, 열심상은 10%의 가산점이 붙는다. 또한 부문별 동랑대상 수상자는 입학 시 한 학기 수업료[97] 전액을 면제해준다.

5. 학사 정보

5.1. 입시

예술대학교이다 보니 일반 대학들과는 다른 입시를 치르고 들어가야 한다. 특히 디지털아트과는 해마다 시험방식이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항상 시험 방식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는 수능보다 중요한 것이 실기이기 때문에 영어 단어 한 개 더 외울 시간에 실기 연습 한 번 더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학업을 필요 이상으로 등한시하고 실기에만 전력을 쏟지는 말기를. 높은 실기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주변에 서울예대 입시 학원들이 매우 많은데, 주로 실용음악 쪽 학원들이다. '서울예대 몇 명 합격!' 이런 글귀를 많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연기, 실음, 문창 등 서울예대 입시를 위한 학원이 곳곳에 분포해 있다.

높은 실기 반영률은 토 나올 정도의 경쟁률로 이어진다.[98] 실용음악과는 초강세 학과로 경쟁률이 매년 갱신된다. 이 곳의 경쟁률은 전국 대학 기준으로도 최고치이다.[99]서울예술대학교의 경우 치열한 입시 경쟁만큼, 예비순위 역시 지독하게도 빠지지 않는 편이다. 경쟁률이 심하게 높은 학과의 경우 예비번호 1번에게도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극작이나 예술경영과 같은 서울예대와 한예종에만 존재하는 학과는 경쟁률이 높지 않아도 예비 1번에게도 기회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실기가 당락을 좌우하며 최소 10:1부터 400:1 혹은 그를 넘나드는, 피를 토하는 경쟁률을 자랑하다보니 재학생들의 실력은 확실히 검증되었다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즉 이 학교의 실기를 뚫고 들어온 사람은 사실상 이미 준프로라고 봐도 된다.

과거에는 수능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전형도 많고, 내신 실질반영비율도 16점대(!)로 정말 정말 낮았었다.[100] 정말 실기만 파면 5~7등급도 갈 수 있었던 대학...이었지만, 아 물론 그 정도라면 실기 성적이 극강으로 좋아야 한다. 막말로 신들린 수준의 재능 보유자라면 내신이 대수랴. 9등급과 별반 다르지 않는 수준임에도 유명 대학에 실기 합격한 사례는 일반 종합대 예술 전공에도 더러 있으니 특이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실기 중심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2012학년도 정시 모집부터는 내신 실질반영비율이 총점의 33% 정도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실기만 파면 갈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옛 말이 된 셈. 사실 이는 다른 학교들의 예체능계 학과들도 마찬가지로, 실기 위주로 선발한 학생들에게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통 동점자에 한 해 내신 점수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실기를 씹어먹으면 붙을 수 있다. 어쨌든 실기 입학 학교니까 실기 능력이 좋아야 함은 당연하다.

실기 시험 시 문예창작과나 극작과, 광고창작과처럼 창의성을 요구하는 과의 경우에는 참으로 난해한 주제를 던져주는 경우가 허다하여 매년 실기 후에 원망과 탄식을 쏟아내며 시험장을 나서는 입시생들을 볼 수 있다. 다른 학교의 경우 누구나 무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주제를 주는 반면 서울예대는 웬만한 실력자가 아닌 이상 손도 댈 수 없는 악명 높은 문제들이 즐비하다. 예를 들어 '조개껍질을 눈에 박은 사람이 안개 속에서 오래된 철교를 부수는 소리'로 소설을 쓰라고 하라든가 '동물원에 갇혀 있던 말레이곰이 우리집에 찾아오고 난 뒤 상황'을 이야기로 쓰라고 하라든가. 심지어 손이 찍힌 사진 등을 제시하여 글을 쓰라고 하기도 한다.

인지도와 인기가 높은 학과는 현역 합격이 매우 드물다. 실기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실력을 쌓기 위해 재수 혹은 N수하는 일이 많고, 다른 학교에 다니다가 혹은 사회생활을 하다가 예술에 눈을 뜨고 입학하는 학생이 많다.

편입학이 없는 대신 '전문대졸이상 전형'이 존재한다. 전문대학 졸업자와 4년제 대학 2학년이상 수료자가 지원할 수 있다. 일반 전형에 비해 경쟁률도 낮은 편이며, 반영 비율도 간단하다.[101] 실용음악과 같은 간판 학과는 전문대졸이상 전형에서도 강세를 보이지만 어떤 학과는 경쟁률이 1:1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학점은행제로 빠르게 전문학사를 취득해서 지원 기준을 충족시키는 전략도 존재한다.

5.2. 학비

전문대학 중에서 가장 학비가 비싼 학교이다. 한 학기 등록금이 400만 원대다. 기숙사까지 합하면 1년에 1,000만 원가량. 그래도 재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의 종류가 많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된다. 2012년 총학의 노력으로 등록금을 7% 인하했다. 그러나 2020년도 기준 학비는 동일하다. 2019년부터 시행되는 강사법을 비롯하여 변경되었지만, 타과수업보다 전공학점취득에 집중하여 전공에 집중할 수 있다.

5.3.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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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그 외

행정OT 때부터 가르치고 행사 때마다 부르는 예장가라는 노래가 있는데, 가사와 멜로디는 완벽하게 종로학원 원가.

봄에 신입생 단합을 위한 체육대회가 있는데 이 체육대회를 위해서 3주 전부터 학회 선배들이 새벽 5~7시에 1학년들을 불러서 연습을 시킨다. 일부 군기가 강한 과는 저녁 연습도 따로 시킨다. 얼차려와 구타는 10학번 이후로 사라진 지 꽤 되었다. 기숙사생, 자취생, 안산주민이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느라 상당히 에너지를 뺏기기 때문에 교수들 사이에서도 반대의견이 상당하다고 한다. 다른 학교 재학생이나 졸업생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경악한다.

특수 교육으로는 멘토 시스템과 스토리텔링 연계과정이 있다.

멘토링 시스템은 일반적인 스터디 그룹과는 달리 가르치는 사람을 자의적으로 정해서 배울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는 가르치는 사람(tutor)과 배우는 사람(tutee)이 직접 학교에 신청하여 배울수 있는 시스템으로 교수 간, 교수-학생 간, 학생 간 등등으로 그룹을 정하여 학기마다 결과를 보고해야한다. 멘토1명당 멘티 5명까지 그룹을 만들수 있다. 만약 멘토링을 받고싶은데 멘토가 주위에 없다면 교수학습지원센터에 요청할 수도 있다.

스토리텔링 연계과정은 2012년부터 진행되었으며 대학 문예계열 학과(문예창작과, 극작과, 광고창작과) 및 관련 전공 교육과목 중 스토리텔링 관련 교육과목을 연계⋅통합한 교육과정으로 입학 후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이는 거의 모든 학과의 학생들이 연계하여 수업을 받을수 있다.

재학 중 토익 점수가 700점이 넘으면 소정의 장학금을 1회 받을 수 있다!(소정 치곤 꽤 준다!) 같은 장학금의 텝스 커트라인 점수는 토익에 비해 형편없이 높으므로 토익을 추천한다.

6. 캠퍼스

파일:예대 남산안산.gif
서울예술대학교 이원화캠퍼스

서울예술대학교는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38 (예장동)에 위치한 동랑예술센터 즉 남산캠퍼스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예술대학로 171에 위치한 안산캠퍼스로 구성되어 있다.

안산캠퍼스 설립으로 인해, 서울예술대학교의 남산캠퍼스 즉, 동랑예술센터는 예술창작중심, 경기도 안산시의 대학본부는 예술교육전문공간으로 이원화되어 운영되어보다 효과적인 예술교육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6.1. 남산캠퍼스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138(예장동8-19)에는 1962년 개관한 한국 최초의 현대식 극장 드라마센터를 중심으로 심재순관과 예술관, 문화예술산업융합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4년제 대학으로의 개편 및 부지 확장을 위해 2001년도에 안산으로 캠퍼스를 옮기게 되었고, 남아 있는 남산캠퍼스는 이원화캠퍼스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워 이를 동랑예술센터[102]라고 명명하게 된다.

캠퍼스 이전 후 남산 공간은 서울시 측에 임대를 내주고 서울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여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라는 명칭으로 약 12년간 공공극장으로 사용되었다.

본교를 경기도 안산시로 이전하게 된 데에는 안산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학교 측의 캠퍼스 이전에 대한 강한 의지가 만나면서 이루어졌다. 안산시는 80~9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공단도시 이미지가 강했다. 현재 학교가 위치한 고잔동 광덕산 자락을 안산시에서 학교 측에 무상으로 내줬다는 카더라가 있다. 물론 학교 측에서 뜬금없이 아무 연고도 없는 안산시로 이전하려고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고 서울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자 수도권 내 도시로의 이전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고 그중 지하철 및 대중교통이 갖춰진 곳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학교가 캠퍼스 이전 계획을 세운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남산캠퍼스 공간이 너무나 협소하여 제대로 된 수업환경이 갖춰지지 못했다. 운동장은 물론 학교 소유의 강의실과 연습실, 동아리실, 교수 사무실도 변변하게 갖추지 못한 실정이었다. 서울예대의 명성과 인지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으며 학과도 지속적으로 증설되고 있었다. 늘어나는 학생수와 그에 맞춰 시설 확충의 필요성도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남산 공간에서 학교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의 예장동 공간 외에 당시에는 퍼시픽 호텔 주변 남산동 자락에 위치한 두 개의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했다.[103] 당시 재학생들은 교내에서 캠퍼스 이전 반대 시위를 하며 "시설이 낡고 협소해도 괜찮으니 서울에 남아야 한다. 안산으로의 이전은 학교가 자진해서 퇴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라고 외치기도 했다. 학교 측의 입장도 강경했다. 반드시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학교는 1995년 경기도 안산시로의 캠퍼스 이전을 확정지으며 공사를 시작하였다. 1990년대 초에는 경기도 부천시로 이전할 계획을 세워 설계도 작업까지 마쳤으나 모종의 이유로 무산되었다.[104]

안산시가 잿빛 도는 공단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운 시정 사업으로 대학 유치, 녹색 도시 사업 등이 있었으며 이를 적극 추진했다. 그 중 명문 예술사학 서울예술대학교의 캠퍼스 이전 사업은 안산시의 이미지 개선과 생활환경 인프라 변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안산시고잔동월피동 사이에 위치한 광덕산 자락의 부지를 제공하였고[105], 공사가 한창이던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로 공사 작업이 잠시 늦어진 것 외엔 큰 차질 없이 이전 사업이 진행되었다. 학교 특성상 관객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명동과 남산 사이에 위치한 학교의 협소한 부지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안산시로의 이전은 실질적으로 학교의 명성과 입시 지원율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한 남산 학번 선배에 말에 의하면 캠퍼스 이전 직전인 90년대 말 실용음악과의 경쟁률이 1000:1에 육박했다고 한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 '서울'은 예나 지금이나 단순히 '행정적 수도'로서의 역할을 넘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면에서도 중심이다. 안산으로의 이전이 문제라기보다, 서울에서도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남산 예장동 자리를 떠나야 했던 학교의 협소한 학교 부지 문제가 지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부지 확장을 하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는데, 남산캠퍼스가 위치한 예장동을 비롯한 이른바 명동 일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지가와 남산 고도제한[106] 등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조건 속에 있다. 거기에 서울시 내 대학의 부지 확장을 웬만한 이유로는 허락지 않는 태도로 일관 중이었기에 더더욱 불가능했다.[107] 애초에 설립자 유치진은 과거 조선총독부가 위치해 있던 예장동 8-19번지 부지를 교육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불하받은 것이 아니라, 소극장을 세워 한국 연극의 발전과 민족 예술 중흥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토지를 불하받은 것이었다. 그 좁은 공간에 극장과 도서관, 몇 개의 강의실과 연습실을 고작으로 운영해야 했으니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전해야만 했다. 1962년부터 40여년의 세월을 품어 온 서울예전 영광의 남산 시절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캠퍼스 이전이 완료된 이후 두 캠퍼스의 관계를 묻는 경우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1년도에 안산캠퍼스가 완공된 이후로는 캠퍼스 생활은 안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허나 예외의 경우가 있다. 지금처럼 안산캠퍼스에 완전히 정착하기 이전인 2000년대 초반 학번(01~03학번)의 경우 남산캠퍼스에서 몇몇 강의를 진행한 바 있다. 현재 학교 본부도 안산캠퍼스로 명시한다. 그렇다고 남산캠퍼스를 현재(2022년 기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연학부(주로 연극전공, 연기전공)와 영상학부(주로 영화전공, 방송영상전공), 디자인학부(주로 시각디자인전공),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주로 미디어창작학부)의 졸업 작품 및 제작실습 발표회를 남산캠퍼스에서 갖는다. 이 외에도 학교에서 주최하는 굵직한 행사나 강연 등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108] 하지만 재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하는 곳은 안산이며, 학교를 다니면서 앞서 언급한 몇몇 전공 외에 다른 전공 학생들은 남산에 가볼 일이 없기도 하다.

부족한 강의실 등 시설 문제
"취임 당시 남산 본부동만으로는 늘어나는 학생들을 수용할 수가없어서 드라마센터 근처 건물들을 사거나 임대해서 교실과 교수 연구실 등을 마련했다. 남산 본관 옆 녹음실 상층을 임대해서 교수실을 마련하고 장독대 옆 한옥을 사서 모자란 교수실을 제공하는 한편 영화진흥공사 아래층을 임대해서 시각디자인과 실내디자인과 교실로 또는 교양과목 강의실로 사용했다. 또 그 아래 동네의 4층 건물을 매입해서 예술관과 연구관을 만들어 문예창작과와 극작과의 강의실로 이용하는 등 모두 뿔뿔이 흩어진 상태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사태를 맞게 되었다. 더 이상 늘어나는 학생 수를 감당할 수 없어 안산에 부지를 마련해 캠퍼스를 건설 중이었는데 IMF 사태를 당해 일시중단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일거리를 잃은 건설사들이 앞다투어 외상으로 학교를 지어주겠다고 나서 삼환기업에 차후 몇 년간에 걸쳐 건설비를 갚는다는 조건으로 안산캠퍼스를 예정대로 완공할 수 있었다.

안산캠퍼스 이전 반대운동
안산캠퍼스를 완공해 이전 준비에 착수하자 학생들과 일부교수가 이전 반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타 지방대학은 대학로나 압구정동에 캠퍼스를 마련하려고 애쓰는데 왜 우리 예술대학이 충무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야 하는가?’라는 명분을 내세워 농성 사태도 벌어졌다. 그러나 운동장도 냉난방시설도 없는 열악한 남산캠퍼스의 환경과 늘어나는 학생 정원으로 인해 수용 한계를 넘어섰으므로 안산캠퍼스로의 이전은 불가피했다.

2001년 2월 안산캠퍼스로 이전 완료
이전 반대를 외치는 학생들과 교수들을 설득하기 위해 안산캠퍼스에서 체육대회를 개최하며 제대로 된 안산캠퍼스의 시설을 돌아보게 하고, 남산에 남고 싶은 과는 마음대로 하라는 반강압적 설득 끝에 2001년 새 학기를 안산에서 맞았다. 학장으로 재임 중 나의 마지막 숙원 사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 2010년 6월 24일, 일산 자택에서 인터뷰 ─ 김기덕 학장(1998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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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안산캠퍼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예술대학로 171(고잔동 640)에 위치해 있다. 남산캠퍼스의 협소한 부지 문제와 학생 복지 개선과 같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2001년 안산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교지 면적은 241,622㎡이다[109]. 다만 현재까지는 45,456㎡의 교사시설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이며 캠퍼스를 확장할 수 있는 부지가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포털 사이트 지도에나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정확한 내용이 나와 있지 않으나, 앞서 언급한 면적으로 보아 아직 자연 상태로 남아 있는 광덕산 전체 부지가 학교의 소유 부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안산캠퍼스는 1단계사업 완료 후 “한국건축문화대상(2001)”과 “한국건축가협회상(2002)”(테제 건축사사무소 설계, 삼환기업 시공)을 동시에 수상했다. 그리고 제2단계사업(마/바/아텍/기숙사) 완료 후에는 한국건축문화대상의 우수상(2007년), 경기도건축문화상(2009년)을 수상했다.독일의 바우하우스를 오마주한 설계에 한국 전통미를 가미한 건축물이 독특하다.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각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이는 각 전공이 서로 화합하고 협업하라는 의미에서 설계된 구조이다. 학교의 랜드마크이자 흔히 빨간다리라고 불리는 예술정보센터(도서관)가 캠퍼스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계절마다 변하는 캠퍼스의 전경과 광덕산과 어우러진 친환경적 분위기가 차분하면서 조화롭다. 모더니즘 건축물에 중간중간 우리나라 고유의 창문, 계단, 조형물들이 혼합되어 있어, 고유한 캠퍼스 분위기를 뽐낸다. 학교는 자연친화적 캠퍼스를 위해 광덕산 아래 자리잡았으며 남산캠퍼스의 협소한 부지 문제 해결, 학생 복지 개선 및 4년제 대학으로의 승격을 위해 1995년 착공을 시작하여 2001년 완공하여 전격 이전했다. 수도권 전철 4호선 중앙역의 부역명이 서울예술대학교이지만, 학교까지의 거리가 2.1km나 되어 사실상 도보로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다. 신설 예정인 신안산선 성포 정거장이 들어설 경우 이 쪽이 훨씬 가까워진다. 77번 버스(부곡동행)를 이용하면 약 15분 정도 소요된다.

안산캠퍼스 이전 계획 수립

교육기관의 운영에 대해 정부는 ‘교육기본법’, ‘사립학교법’, ‘고등교육제'을 통해 교육기관의 운영규칙, 학생과 교수의 신분 관리와 임무, 조직과 교육과정, 입학과 졸업 등과 관련한 세부사항을 규정하고 대학설립 운영규정을 두어 대학이 갖추고 있어야 할 교사, 교지, 교원, 기본재산 등의 물량적 규모와 내용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와 같은 법률과 규정에 따라 규정이행 상황, 경영 및 교육 실적, 발전 계획 평가 등을 통해 특성화·차별화 정책으로 사학발전 지원금의 규모를 결정한다. 특히 학제개편, 학과신설, 정원증원 등 인가 사항에 대해서는 교지와 교사확보율, 교원확보율을 승인의 기준으로 적용하므로그 기준이 대학발전의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외에도 학교를 설립, 경씁해나가는 데에는 ‘수도권정비법’, ‘도시계획법’ 등 또다른 특별법 형식의 규제가 있어, 정원증원이나 시설확장 등에 따른 인구 증가 유발 억제와 토지이용관리, 도시계획 차원에서의 제한과 통제 등이 이뤄진다. 교육부 대학지도 정책에 따른 교사확보율과 교원확보율(법적 기준의 각60% 이상)도 있는데 서울예술대학의 경우 교원확보율은 이를 상회한다. 반면 남산캠퍼스의 교사확보율은 60% 기준으로 약1만5490㎡(4686평)에 이르러야 하나 약7600㎡(2300평)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 때문에 비록어떤 예술대학보다도 질적으로 훌륭한 공연장과 실습장, 기자재를 보유했지만 학제개편, 학과신설, 정원증원 등에서 물량 기준으로는 절대적 제한을 받고 있었다. 남산캠퍼스에서 교사확보율을 충족시키려면 현 건물의 증개축과 부지 추가 확보 및 신축을 해야 하나 ‘도시계획법’에 따라 일체의 증개축이 허용되지 않는 데다 증축에 필요한 인접 부지 추가 매입도 주변환경상 불가능한 형편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법률적 제한과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21세기 예술교육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돌파구는 무엇인가. 새로운 예술 환경과 교육 수요에 적응해갈 수 있는 전문화 교육과정의 확충, 교육 내용과 교수법의 발전, 시설 공간의 확대와 첨단기능의 보완 등 획기적인 물적·질적 개혁이 필요했다. 질적 변화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미래 통찰에 따라 제도와 조직의 개선으로 성취해야 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물적 환경은 교육부의 물량적 기준과 함께 예술교육에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거두어낼 수 있는 틀과 그릇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를테면 의과대학(안산캠퍼스)과 부속병원(남산캠퍼스)과 같이 교육현장과 체험현장을 갖출 수있는 제2의 캠퍼스 건립을 구상했다. 서울예술대학이 앞으로 추진하는 학제개편, 학과신설, 정원증원 등 장기적 발전과제를 담아낼 수 있으려면 교지는 최소 14만8760㎡(4만5000평) 이상이고, 교사는 6만6115㎡(2만평) 이상 신축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교육환경도 양호한 부지를 갖추어야만 한다. 이러한 조건의 토지를 서울시 경계 안에 확보한다는 것은 면적상으로나, 도시계획상으로나 그 후보지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학교법인은 이 같은 현실과 미래를 함께 보며 대학 장기 발전계획의 일환으로 새로운 캠퍼스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수도권 지역이어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면학환경, 교통 접근성, 토지의 효율성 등 제반 캠퍼스 입지조건과 타당성을 토대로 서울 근교 전체를 조사한 결과, 시 중심에 광덕산이라는 자연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전철이 연결되어 교통 편의가 뛰어나며 토지 규모, 매입 조건 등 모든 여건이 대학 입지로서 적합한 안산캠퍼스를 선택한 것이다. 이때가 1986년이었다. 이후 토지 확보, 제반 법규 절차의 진행, 세계 유명 예술대학 시설 조사, 토지 기초조사 등을 통해1994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교육부로부터 대학 이전계획을 승인 받았다. 그리고 1992년부터 건축설계를 시작해 예술교육에 가장 적합한 기능을 갖춘 세계적 예술공간의 실현이라는 대명제를 갖고 오랜 작업 끝에 드디어 1996년 건축 공사에 착수했다. 보통의 대학이 경제성과 공정 등을 이유로 싼 자재와 고층형 강의실 위주의 교사를 짓는 반면 안산캠퍼스는 마스터플랜 구상에 약 3년, 설계에 5년 이상의 기간을 소요할 만큼 세계 어느 대학보다도 우수한 예술교육 공간 실현에 매진했다. 또한 모든 공간에는 우리 세대의 예술혼과 시대정신, 문화의식과 전통을 담고자 했으며 설계 및 시공 차원에서도 교육의 효율성과 예술 활동의 기능성, 수업의 편의성에 중점을 두고 모든 건물을 3층 이하의 평면 전개형 및 접속식으로 배치했다. 공정 관리도 시간 관리에 따른 일정 관리가 아니라 품질과 기능 위주의 성능 관리를 택했다. 당시 유덕형 학장은 안산캠퍼스 1단계 공사 내내 안산캠퍼스라는 건축물을 통해 예대인의 정신과 혼을 연출해내고자 노력했으며, 모든 예대인의 창조적 에너지가 담긴, 또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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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학교기관

7.1. 부속기관

7.2. 부설기관

7.3. 기타기관

8. 교통

8.1. 버스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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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대학 (18364/18365)[학교앞]
[ 정류장별 노선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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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대학(18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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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시내
서울예술대학(18365)
월피동 방면
일반시내
}}}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라성빌라 | 고잔주공7단지 (18363/18360)[삼일로]
[ 정류장별 노선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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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성빌라(18363)
선부동/중앙주공5단지 방면
일반시내
직행좌석
고잔주공7단지(18365)
다농사거리 방면
일반시내
직행좌석
}}}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중앙초등학교앞 | 센트럴푸르지오 | 중앙중학교[화랑로]
[ 정류장별 노선 목록 ]
||<-4><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 ||
중앙초등학교앞(18354)
안산시청 방면
일반시내
직행좌석
중앙중학교(18735)
안산시청 방면
시외버스
센트럴푸르지오(18366)
스타프라자 방면
일반시내
직행좌석
중앙중학교건너편(18736)
성포주공4단지 방면
시외버스
}}} ||
}}}

8.2. 철도교통

4호선 : 대외적으로는 4호선(=안산선) 중앙역을 이용할 수 있는데, 중앙역의 유상판매 부역명으로 서울예술대학교를 표기하고 있다. 배차 간격은 좀 넓은 편 : 6~15분 간격[113]

수인분당선(4호선 일부 직결) : 2020년 9월부터 수인선이 연장되어 중앙역에서 수원과 인천, 용인, 분당 방향으로의 연결성이 개선되었다. (서현-중앙역 68분 소요)

다만, 수인분당선으로 통학하기 훨씬 좋아진 것은 사실이나 서울, 과천, 안양, 군포쪽에서 올 때는 4호선을 이용하고 인천, 수원, 용인, 분당쪽에서 올 때만 타는 것이 옳다고 본다.[114] 참고로 4호선은 10량 (1-1~10-4 승차위치) 하늘색/파란색 열차, 수인분당선은 6량 (1-1~6-4 승차위치) 노란색/파란색 열차.
서해선 : 2018년 6월 서해선이 개통되어 선부역도 중앙역과의 거리에 비해 크게 멀지 않은 거리에 있고, 20-1번 혹은 21번 버스를 타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서해선 버스 모두 배차간격이 많이 넓은 편이기에, 위와 마찬가지로 앱으로 실시간 도착정보를 꼭 확인하길 바란다. 그리고 2023년 이후에는 보다 다양한 지역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이용할 거라고 본다. (파주,일산,고양,김포,부천,시흥,강서 등)

신안산선(예정) : 차후 신안산선이 개통할 경우 학교 인근에 성포 정거장 #이 생길 예정이고, 중앙역에서 신안산선으로 환승할 수도 있다. 대략 조감도를 보자면 중앙역 지하차도 안에 대합실을 신설할 예정이다. 여의도부터 중앙역까지 대략 30분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다만, 학교 특성상 실습이 많기 때문에 늦게 작업(혹은 과제)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웬만하면 통학하는 것보다는 자취하는 것을 추천한다.

9. 학생활동

9.1. 동아리

9.2. 입학식

서울예대의 입학식은 매우 화려하다. 화려하기보다는 쓸데없을 정도로 크게 벌인다. 입학식날은 안산시 축제라고 불릴 정도. 중앙역과 학교의 거리는 2.1km정도 되는데, 입학식날이 되면 아침 일찍 나와서 중앙역 앞에서 응원전을 한다. 학과마다 서로 경쟁하며 응원을 하고 학교까지 걸어서 시가행진(...)을 한다.[115] 춤추고 노래하며 서커스단이 된 기분으로 행진을 하는데 소음공해 수준. 실제로 입학식날 경찰서로 엄청난 민원이 들어온다고... 또한 행위예술, 노래, 코스튬 등등 선배들이 옆에서 같이 볼거리도 보여 준다.

레드카펫을 밟고 입학식이 시작되면 연예인 선배들과 각 과마다 성공한 선배들이 영상편지를 보내주고, 총 동문회장이자 연기과 교수 박상원이 나와서 연설도 한다. 많은 공연과 볼거리들을 보여 주고나면 맨 마지막은 실용음악과의 노래로 끝낸다. 끝날 때 즈음에는 해가 떨어진다. 3월 초라 졸라 춥다 집에 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뒤풀이를 한다. 안 돼!! 그렇게 입학'식'만 열시간. 뒤풀이는 무한의 시간

그러나 2018학번 신입생부터는 안 좋은 사건도 몇몇 있었고 외부 이미지를 고려하여 입학식을 간소화하였다. 중앙역부터 2km가량되는 거리를 행진하는 대신 학교 바로앞 광덕공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시작해 학교를 한 바퀴 돌아서 운동장에 모여, 각 과별 슬로건 공개를 진행하고 레드카펫 밟기를 진행했다. 중앙역 행진이 부활할지는 아직 미지수.

2020년 현재, 앞으로는 매년 광덕공원에서 학교행진으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광덕공원에서 출발하여 정문을 통해 나동 뒷길로 텔동과 마동을 지나 운동장에 집결하여 입학식 메인 행사라고 볼 수 있는 현수막 하강식을 진행한다.[116] 이후, 레드카펫을 통해 중앙광장에서 입학식이 거행된다.

10. 자치기구

10.1. 총학생회

총학생회는 서울예술대학교 학생 전체를 대표하는 자치기구로써 창의, 협동, 성실의 학훈 아래 학교의 발전을 위해 매진하고 있으며 학사일정 및 자체기획한 학생행사를 충실하게 수행해 가고 있으며, 학교와 면밀한 협의를 통해 예대인의 권익 증진과 면학여건 개선을위해 배전의 노력을 더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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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대의원총회

대의원총회는 학생자치기구의 최고 심의의결기구로서 15개 학과에서 직접 선출된 각 학과 대표 2인으로 구성되어 각 전공과 자치기구의 사업 및 예·결산 심의 및 집행 결과에 따른 감사를 진행하고 감사보고서를 작성한다. 또한, 선거관리위원회와 각종 비리 고발 등 신고를 받는 신고기관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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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학보사

학보사는 대학의 건학정신을 구현하고 예대인의 창작 의욕과 학구열을 드높이며 대학문화 창달을 위한 폭 넓은 지식과 교양을 증진, 건전한 학풍을 조성함으로써 학교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학보는 연 7회(3·4·6·9·10·11·다음해 1월) 발간되며 예대의 특성을 살려 예술과 문화 전반의 폭 넓은 정보와 심도 깊은 주제를 전달하는 대학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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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교지편집위원회 예장

교지편집위원회는 서울예술대학교를 대표하는 교지 「예장」을 매년 1회 발행한다. 예장은 예대인들의 예술적 성과를 정리하여 상호교류의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교지편집위원회는 대학의 학훈 아래 예대인들의 대내외적인 예술탐구와 활동 및 성과를 「예장」에 담아 이를 객관화하고 예대인들의 상호 화합 및 평가, 재연구의 장으로써 역할을 다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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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동아리연합회

동아리연합회는 "지향과 요구를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동아리들의 공동이익과 발전을 도모하고 우리대학의 특성 중의 하나인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여 예대만의 대학문화 창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6. 교육방송국 SABS

교육방송국 SABS는 높은 이상, 넓은 교양, 깊은 진리라는 국훈 아래 예대인의 정서와 올바른 학내 여론 형성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학교의 주요 행사를 기록하고 외부에 중계하며 우리의 예술혼을 널리 알리는데 매진하고 있다. 또한 자체 기획하는 콘텐츠들을 정기적으로 방영하고 있으며 서울예대의 올바른 학내 여론과 더 많은 정보전달, 다양하고 유익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방송국 SABS 유튜브 채널
교육방송국 SABS 인스타그램

10.7. 사회봉사단 마중

사회봉사단 마중은 지역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예술을 통한 공익활동‘을 진행하는 봉사 자치기구이다. 문화예술을 통한 공익활동을 실현하며, 기존의 봉사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서울예술대학생들의 봉사활동 영역 확대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예술 콘텐츠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사회봉사단 마중 인스타그램

11. 사건 사고

11.1. 2018년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 1 선정

서울예술대학교는 2018년 9월 3일,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재정지원제한대학 유형 1로 최종 선정됐다. 이로 인해 내년부터 10%의 정원 감축을 해야 하고, 19학번부터 학자금 대출을 50% 제한받으며, 국가장학금 2유형 역시 제한받고, 정부 지원 역시 끊긴다.

학교 측에서는 대학 평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시위를 반대했지만, 재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으며, 결국 총장이 사퇴했다. 이후 서울예대는 교육부 감사에서 이러한 것들이 문제가 되어, 2019년도 진단평가에서 재정지원제한대학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학교 운영진들의 방만한 경영과 비리, 학생들을 억압하던 행태들이 곪을대로 곪아 이같은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앞으로 학교 운영회 측에서 학생들이 입는 불이익을 어찌 처리할지 두고볼 일이다.

2020년에 해제되어 역량강화대학으로 지정되었다.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는 일반재정지원 선정대학에 선정되었다.

11.2. 서울예대 공연계 원로 교수 성폭행 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서울예대 공연계 원로 교수 성폭행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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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8일에 발생한 사건이다.

12. 기타

12.1. 후문이

학교 후문에 서식하고 있는 길고양이인데, 예대인들의 사랑을 듬뿍받는 고양이다. 사실 원래 학교 근처에 자취하는 예대생이 길렀던 집고양이었으나, 잦은 가출로 인하여 길고양이가 되었다. 주로 낮에는 후문 앞에 있는 후문이집에서 자고, 밤에는 학생들을 졸래졸래 쫓아가서 먹을 것을 얻어먹는다. 가끔 가다 하교하는 자취생들을 뒤쫓아가 자취방으로 말도 없이 들어오는데, 이 때는 잠만 자고 아침에 문을 열어주면 나가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후문이보다 인근 광덕산에 사는 너구리가 더 많이 보이는 편이다.

12.2. 안산시 반값 등록금

윤화섭 안산시장은 2019년 4월 "안산시 대학생 본인 부담 등록금 반값지원"사업을 재정해 반값등록금을 시행한다고 하였다. 이는 지자체 중 최초 도입이며, 2020년 실제로 집행되었다. 현재로서는 안산시에 주소를 두고 있는 다자녀가정,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장애인 대학생 등에게 지급하였으나 단계를 거쳐 전체 대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확대할 방침이다.

[1] 現 학교법인 동랑예술원. 드라마센터를 짓기 위해 먼저 재단을 설립한 것이다.[2] 한국의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드라마센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으로서, 한국연극사에 있어서도 기념비적인 곳이다. 같은 해 10월 15일 한국연극연구소 부설 연극아카데미(2년제 과정)에 연기과와 연구과를 설치하여 인재 양성을 시작하였다(1964년 첫 졸업생 배출). 학교의 공식 개교기념일을 법인의 설립일이나 교육기관(한국연극아카데미)의 교육 개시일이 아닌 드라마센터의 개관일로 하는 것은 그만큼 학교에서 드라마센터를 학교의 뿌리이자 상징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인들의 공공자산이었던 드라마센터를 학교 측에서 임의로 사유화했다는 문제는 건립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란을 빚고 있다.[3] 극작가연극연출가이자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연극 분야에 기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 태평양 전쟁 시기에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친일 연극을 다수 공연했다. 예를 들어 1942년 발표한 〈북진대〉는 일진회 회장 이용구의 생애를 찬양한 작품이다. 관제 연극 공연을 위한 현대극장을 주도했고, 현대극장 창립 작품으로 일본의 만주 침략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흑룡강〉이란 희곡을 썼으며 함세덕, 조천석 등의 친일 작품을 연출하고 친일 수필도 여럿 발표한 기록이 있다. 조선연극협회, 조선문인협회의 간부를 지냈고, 1944년에는 어용 문인 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의 소설·희곡부 회장이 되었다. 남산캠퍼스와 안산캠퍼스 두 곳에는 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4] 설립자 유치진의 아들이자 수십년간 학장 및 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학생들의 피 같은 돈을 횡령하여 강남의 아파트를 구매하는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시위로 인해 퇴진하는 듯했으나 시간이 흐르고 학생들의 관심이 뜸해진 틈을 타 학교는 그를 '명예이사장', '창학자'라는 이름으로 다시 복직시켰다.[5] 설립자 유치진의 손자이자, 수십 년간 학장 및 총장을 지낸 유덕형 현 명예이사장의 아들이다. 총장 임명 이전엔 영상학부 영화전공 교수였다.[6] '동랑'은 설립자 유치진의 아호(雅號)이다.[7] 행정동중앙동이다. 안산 최대 번화가인 중앙역 로데오거리를 비롯하여 안산문화광장, 고잔신도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상록구 월피동과 맞닿아 있는, 광덕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학교 옆으로 안산정수장이 들어서 있다.[8] 행정동 필동 관할의 법정동이다. 소파로와 남산1호터널 진입로 사이에서 남산 정상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예장동은, 조선 시대 5군영의 군사들이 무예를 연습하던 훈련장인 예장(藝場)이 이곳에 있던 데서 유래한다. 무예장(武藝場)을 줄여서 예장이라고 한 것이다. 조선총독부경복궁 앞으로 이전하기 전인 1924년까지 이곳에 위치해 있었다. 또한 도로명주소인 '소파로'는 아동문학가인 방정환의 아호인 '소파'에서 따온 것이다.[9] 전임교원수: 84명, 전임교원 확보율: 53.16%[10] 안산캠퍼스는 남산캠퍼스의 협소한 공간 문제 해결과 4년제 대학으로의 승격을 위해 1995년 착공하여 2001년 완공 및 이전을 완료한 현재의 캠퍼스이다.[11] 1962년~1964년 한국연극아카데미, 1964년~1974년 서울연극학교, 1974년~1978년 서울예술전문학교, 1978년~1998년 서울예술전문대학 그리고 2001년 안산캠퍼스로 이전하기 전 서울예술대학 시절까지 개교 후 40년간 사용한 기존의 캠퍼스이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안산캠퍼스의 시설이 완전하지 않아 학생들은 안산과 남산을 오가며 강의를 들었다. 현재는 학생들의 공연 및 전시 공간이자 주요 행사들을 진행하는 장소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남산 초입에 자리하고 있으며 인근 학교로는 리라초등학교, 숭의여자대학교가 있다. 학교 교지 『예장』과 응원가인 '예장가', 안산캠퍼스 마동에 위치한 공연장 '예장'의 이름 모두 이곳 예장동에서 온 것이다. 명동역 1번 출구에서 남산 방향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2001년도에 안산캠퍼스가 완공되면서 캠퍼스 이전했다.[12] 3년제 전문대학이며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4학년 과정)에 한하여 예술학사 학위를 수여한다. 또한 2024학년도부터 '기술석사과정'을 교육부로부터 인가 받아 교육과정에 설치하게 되었다. 주요 내용은 'XR 기반 첨단미디어 융합콘텐츠 기술'이다.[13] 서울예술전문학교 및 서울예술전문대학 시절 약칭이 '서울예전'이었다. 7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서울예전 사단은 가히 전성기라 할 만큼 방송가를 주름잡고 있었다. 오죽하면 "노조가 파업해도 방송은 나가지만 서울예전 동문들이 파업하면 방송이 안 나간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당시 약칭이던 '서울예전'의 명성을 기억하는 사람들, 주로 기성세대들에 유지되고 있다.[14] 1962년 4월 12일 극장 드라마센터 개관(학교의 공식 개교년월일.) → 1962년 10월 드라마센터 부설 한국연극아카데미(2년제) 연구과, 연기과 신설 → 1964년 서울연극학교 개교(한국연극아카데미의 후신) → 1974년 서울예술전문학교 개교(문교부 공식 인가. 정식 2년제 전문대학으로의 도약.) → 1978년 서울예술전문대학 개편(이른바 영광의 서울예전 시기. 이 당시 모집인원 828명, 교원 80명에 육박할 정도로 큰 학교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1998년 서울예술대학에 이르기 전까지를 흔히 전성기로 일컫는다.) → 1998년 서울예술대학 개편(1995년도 부터 안산캠퍼스 착공 시작. 학생들과 교수진이 캠퍼스 이전을 두고 학교 내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함) → 2001년 안산캠퍼스로의 이전(예술교육 전문공간 - 안산캠퍼스 / 예술창작체험 공간 - 남산캠퍼스 이렇게 이원화캠퍼스 체제에 돌입. 이를 학교는 '의과대학(안산캠퍼스)과 부속병원(남산캠퍼스)'의 개념으로 설명.) → 2012년 5월 '서울예술대학교'로 명칭 변경.[15] 한국연극아카데미 - 서울연극학교 - 서울예술전문학교 - 서울예술전문대학 - 서울예술대학 시절[16] 2012년에 '서울예술대학교'로 명칭 변경. 2015년에 학부제 도입.[17] 1995년 착공 시작. 2001년 완공.[18] 이 외에도 교육자, 연극평론가, 연극행정가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19] 첫 공연 작품: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 <햄릿>[20] 現 안산캠퍼스 예술정보센터[21] 現 영상학부 영화전공[22] 설립자 유치진의 딸. 現 공연학부 연극전공 명예교수.[23] 現 현 영상학부 방송영상전공[24] 설립자 유치진의 아들. 現 학교법인 동랑예술원 --명예이사장.[25] 유치진의 아내. 現 남산캠퍼스 심재순관의 이름이 이곳에서 왔다.[26] 現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전공[27] 現 공연학부 무용전공[28] 現 문예학부 문예창작전공[29] 現 서울예대학보(학보사)[30]서울예술대학 학장, 現 동국대학교 연극학부 명예교수. 서울연극학교 1기(공연학부 연극전공 64학번)이며, 現 공연학부 연극전공 안병구 전임교수의 친부이자 유인형 명예교수의 남편이다. 2019년 5월 23일 오후 3시경 작고.[31] 훗날 문예창작과 2부는 극작과, 응용미술과 2부는 실내디자인과가 된다.[32] 이때부터 그 유명한 서울예전의 전성기가 시작되는데 서울예대 출신의 유명인들은 대부분 이 당시 서울예전 출신이다. 지금도 명성이 이어지고 있지만 1970년대부터 90년대 끼지는 거의 모든 방송국을 서울예전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방송국 하나가 파업해도 방송은 돌아가지만 서울예전 출신들이 파업하면 방송을 할 수 없다." 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33] 現 디자인학부 사진전공[34] 現 음악학부 한국음악전공[35] 現 문예학부 극작전공 명예교수[36] 디자인학부 공간디자인전공[37] 문예학부 극작전공[38] 現 음악학부 실용음악전공[39] 現 커뮤니케이션학부 광고창작전공[40] 컬처허브(CultureHub)사업으로 'Industrial Application'부문 선정, 국내 예술대학 중 유일.[41] 2021년도에 첫 톱100에 이름을 올렸다.[42] 산업적용가능성 30위(작년보다 상승), 학생교류 및 개방성 47위, 위기관리 부문 21위로 다양한 부문에 이름을 올렸으며 21년도 또한 국내 예술대학 중 유일하다.[43] 산업응용부문 25위, 학생의 이동성과 개방성 부문 45위, 위기관리 부문 26위, 4차 산업혁명 16위로 선정되었다. 22년도 또한 국내 예술대학 중 유일하다.[44] 지역자원 특성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한 차별화된 로컬 콘텐츠를 개발, 로컬창업에 잠재력있는 예비창업자 육성을 위한 지원사업으로 본교와 안산시와 더불어 사업 운영[45] 본교를 비롯한,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대, KAIST,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5개교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 및 문화콘텐츠 산업 인재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였다.[46]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5개 대학은 기초·응용예술 교류, 문화예술 콘텐츠 교육 및 전문 인력 양성, 문화예술·콘텐츠연구 및 기업 산학프로그램 운영, K-컬처 분야 발전 방안 협력 및 문화예술·콘텐츠 생태계 강화 등 분야에서 상호 협력 할 예정이다.[47] 2024학년도부터 전문기술석사과정을 운영한다. 전문기술석사과정이란 전문대에서 운영하는 석사 과정으로, 서울예대는 예체능분야에서 첨단미디어 융합콘텐츠 과정으로 인가를 받았다.[48] 산업응용부문 25위, 학생의 이동성과 개방성 부문 31위, 위기관리 부문 16위[49] 명목은 이러하나, 타 3년제 전문대학, 전문대학 3년 과정에 준하는 교육과정을 마친 이들도 지원이 가능하다. 4년제 대학에서 3학년까지 수료해도 가능하다.[50] 학사학위 과정을 수료, 준하는 교육 과정을 이수후 업계 경력 3년을 가진자만 지원이 가능 할 예정이다.[51] 예술창작기초학부는 교양강의를 위한 학부로 학생은 없고 교직원만 소속되어 있다.[52] play, drama, theater가 아닌 theatre(떼아트레)인 이유는 서울예대의 뿌리가 극장 드라마센터에 있으며, 그곳에서 연극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53] 서울예전 출신 연예인들 중 연극과 출신이 유독 많은 것은 당시 연극과, 영화과, 방송연예과에 세부 전공으로 연기 전공이 각각 설치되어 있었던 점과 학교의 시작이 극장 드라마센터 및 부속 한국연극아카데미인 점 때문이다.[54] 각종 광고와 내레이션으로 유명하다. MBN 나는 자연인이다가 대표작. 배우 활동도 겸하고 있다.[55] 서라벌예대는 이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으로 인수합병되어 그 역사를 잇고 있다.[56] 시간이 흘러 불필요한 군기 문화는 서서히 청산되고 있다. 군기 담당이던 규율부장이 점차 약화되더니 15년도 2학기부터는 아예 사라지는 등, 이제는 최소한 인간관계에서의 예절과 극장에서의 안전 수칙을 제외하면 공적으로 체벌 혹은 기합을 주는 일도 사라졌다. 과거 이런 구태가 심할 때는 방송연예과 신입생들이 기합 받고 있으면 연극과에서 "우리가 질 수 없지!"하는 정신 나간 논리로 중앙계단 앞에 신입생 전원을 소집, 보란 듯이 엎드려 뻗쳐 시키는 수준이었다. 수십 년간 물려 내려온 인습이자, 더러운 폐단이었다.[57] 과거 과복을 단체 구입하는 학과는 연극과(연기과 분과 이전), 영화과, 방송연예과(現 방송영상) 정도였기 때문. 과거 해마다 변별력 없던 것을 2009년 안팎에 과별로 지정키로 협의한 것이다.[58] 첫 기수 동문으로 07학번 박서준, 박진주 등이 있다.[59] 이 응원구호가 재밌어서 따라하는 타 과생들이 적지 않다. 열정연기 오오오 나가신다! 오오오오 비켜라![60] 드래곤볼의 손오공처럼 주황색 상하의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연기전공 학생이다. 멀리서도 아주 잘 보인다.[61] 예시: 영화 아카데미 16기 합격자 공개=신한솔(연세대) 권경원(서울대) 부성철(서강대) 봉근웅(연세대) 황태건(서울예대) 박경목(경북대) 이승민(단국대) 하연주(미국 캘리포니아대) 김경란(단국대) 권일순(단국대) 변승현(연세대·이상 연출분야) 임재수(서울과기대) 이종열(중앙대), 최주영(단국대) 최찬민(서울예대) 이형덕(중앙대·이상 촬영분야)[62] 현재 전임교수이기도 하다.[63] 라디오TV과 → 방송연예과 → 방송영상과 → 영상학부 방송영상전공[64] 연기과가 신설되면서 방송영상과는 제작 파트에만 전념하게 되었다.[65] 현재는 통합되었다.[66] 2023 수시 최고 1.6등급 최저 2.3등급.[67] 단 실기전형은 점수 반영이 크지 않다.[68] 서울예대는 타 전공 수업을 자유롭게 수강 신청하여 들을 수 있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69] 국악과 시절부터 KOREAN TRADITIONAL MUSIC이었으나 한국음악으로 전공명을 변경하면서 바뀌었다.[70] 국악과 → 한국음악과 → 음악학부 한국음악전공[71] 위 동문들이 재학 중일 때는 실용음악과가 전국 어느 대학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과거 국악과의 야간은 실용음악과, 문예창작과의 야간은 극작과였다.[72] 디시인사이드 악기 갤러리나 실용음악 입시생 카페 등으로 가보면 흔히 말하는 실음과판 SKY인 서동호(서울예대, 동아방송예대, 호원대) 라인으로 언급 되며, 그 위상을 알 수 있다.[73] (2015년 수시 보컬 경쟁률 437:1)[74] 드럼인 박가람을 제외한 세 명. 김태현(보컬), 김현우(키보드), 김재흥(베이스)이 해당된다.[75] 슈퍼스타K6에 출연했던 임도혁이다.[76]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의 우승 밴드[77] 더 궁금하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대학명을 찾아보자. 서울예대일 확률이 높다.[78] 기백 대 1에 달하는 경쟁률 탓에 다른 학과가 1-3일간 입시면접을 치르는 것에 비해 보통 일주일 단위로 실기면접을 친다. 매년 전공교수님들이 스튜디오에 억류되는 게 연례행사[79]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총 12년간 재직하였다. 2024년 10월, 대한민국 최초 및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80] 1977년부터 2001년까지 총 25년간 재직하다 정년퇴임하였다. 이후에도 학교에 여러번 특강을 여는 등 지속적으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81] 1982년부터 2001년까지 총 20년간 재직하며 후학 양성을 위해 힘썼다.[82] 1989년부터 2021년까지 33년간 전임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명예교수이다.[83] 1996년부터 2018년까지 총 23년 동안 재직하였다. 퇴임 후 문학과지성사 대표로 활동 중이다.[84]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총 6년간 재직하였다. 이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훗날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작가의 시창작 교수가 되기도 했다.[85] 기존에는 PLAYWRITING이었으나 변경되었다.[86] 응용미술과 → 시각디자인과[87] 배병우 교수는 수 년 전에 강의를 그만두고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으나, 2018년도에 미투사건이 터져 교수직을 내려놨다.[88] 원래 INTERIOR DESIGN이었으나 전공명이 공간디자인으로 변경되며 함께 바뀌었다.[89] 실내디자인과 → 실내디자인전공 → 공간디자인전공[90] 18학번까지의 과잠로고는 은색이었다. 실내디자인전공은 색을 중요시 여기기보단 독자적으로 새로운 로고를 만들어 스케일자의 단면도 사용하였다. 색은 시멘트색이라고 장난 삼아 이야기한다.[91] 매년 입시요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92] 회계 과목이 있었으나 학생들이 어려워하고 기피해서 폐강 되었다고 한다.[93]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학점은행제 과정이 아니라 학교 자체에 설치되어 있는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으로 3년제 전문학사 과정을 마친 이후 학사학위과정에 지원, 합격하면 해당 과정을 이수할 자격이 생긴다. 3년제 전문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1년제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을 이수하면 예술학사를 수여 받을 수 있는데 이 경우, 서울예술대학교 총장 명의의 4년제 학사학위 취득 및 졸업이 가능하다.[94] 다만 원한다고 해서 모두 4년제로 진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성적이 좋은 일부만 가능하며, 포트폴리오도 굉장히 잘 준비해야 한다. 4년제로 진학 가능한 인원은 서울예대가 아닌 교육부에서 정해준 것이다.[95] 이는 교육부에서 딱 정해준 수이기 때문에 서울예대에서 마음대로 줄이고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다.[96] 단, 사진부문은 30%이다[97] 입학금 제외[98] 물론, 전공마다 경쟁률의 편차가 크다.[99] 2013학년도 정시 기준 ▷ 보컬(남자)437:1 보컬(여자)306.5:1 작곡108.3:1 싱어송85.5:1 연주(드럼)92.5:1 연주(베이스)75.3:1 연주(기타)134.7:1 연주(피아노)58.4:1 연주(관악외)10:1 전자음악50.5:1 슈퍼스타K가 멀리 있는게 아니다. 어떻게 해도 경쟁률은 해가 지날수록 계속 올라간다.[100] 2009학번까지 수능미반영 전형이 존재하는 과들이 있었다.[101] 23년도 수시 기준으로 시각디자인과, 공간디자인과, 광고창작과를 제외하고 실기 100%로 학생을 모집한다.[102] 이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주로 '남산캠퍼스'나 '남산 드라마센터' 부른다.[103] 한양교회 옆 명지원 건물도 임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104] 원미산 일대의 소사동 혹은 역곡동이었을 것으로 보인다.[105] 무상으로 학교 측에 제공했다는 말도 있다.[106] 당시 남산을 풍치지구로 정부에서 지정하여 남산을 가리는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없었다. 동국대학교가 높은 건물이 없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107] 명동은 아니지만 대표적인 대학가가 있는 홍익대연세대, 이화여대 등이 지하캠퍼스를 만들고 있는 이유이다.[108] 서울예술대학교 남산캠퍼스, 남산 드라마센터, 심재순관, 문화예술산업융합센터 등으로 장소를 표기할 경우 모두 남산캠퍼스에서 진행함을 의미하는 것이다.[109] 서울 소재 대학과 면적을 단순 비교하자면 서강대보다 조금 큰 정도이다.[학교앞] 학교 정문 앞에 있는 정류장이다.[삼일로] 학교 인근 삼일로에 있는 정류장이다. 버스에서 하차 후 덕성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서울예대 방향으로 걸어오면 된다. 도보로 약 10분가량 소요된다.[화랑로] 학교와는 거리가 꽤 있는 화랑로변의 정류장이다. 도보로 약 20~30분 소요된다.[113] 지하철 어플로 열차 실시간 도착정보를 꼭 확인하길 바란다.[114] 또한, 배차기간이 4호선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실시간 도착정보를 잘 확인하고, 4호선과 혼선해서 타지 말 것.[115] 이 때는 경찰과 주민들이 도로 통제를 도와주기도(!!) 한다.[116] 2020년 입학식은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영상으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