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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8:10:42

독고영재

<colbgcolor=#8000FF><colcolor=#FFFFFF> 독고영재
獨孤永宰 | Dokgo Yeong-jae
파일:독고0재.jpg
본명 전영재 (全永宰)
출생 1952년 12월 13일 ([age(1952-12-13)]세)[1]
강원도 강릉군
(現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정선 전씨
학력 서울광희국민학교 (졸업)
배명중학교 (졸업)
배명고등학교 (20회 / 졸업)
서울연극학교 (연극과 / 전문학사)
가족 아버지 독고성, 어머니, 아들 독고준, 딸 전지은
종교 불교
소속사 아이티이엠

1. 개요2. 상세3. 여담4. 출연 작품
4.1. 드라마4.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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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배우.

2. 상세

생년월일은 1952년 12월 13일 이며, 아버지는 악역 전문 배우였던 독고성[2]. 독고영재는 이예춘의 아들 이덕화와 함께 영화배우 아들 라인의 큰 형으로, 황해의 아들 전영록, 조항의 아들 조형기,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 박노식의 아들 박준규(배우)|박준규, 허장강의 아들 허준호 등 수많은 5060시대 인기 영화배우 아들들과 어릴 때부터 모임도 하며 알고 지냈다. 이들 독고영재, 이덕화, 전영록, 조형기, 최민수, 박준규, 허준호 등은 죄다 오토바이 매니아들이기도 했는데, 서로 오토바이를 돌려 타는 사이였다. 그리고 이덕화가 전영록의 오토바이를 빌려탔다가 대형사고로 목숨을 잃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천만다행으로 수술이 성공해서 생존하기도 했다.

본명은 전영재. 1973년 영화 '빗방울'로 데뷔해 아버지처럼 배우가 되었지만, 무명 생활이 오래가면서 1980~90년대 에로영화B급 영화에 많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하얀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잇따라 캐스팅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3]

40살이 넘은 중년 이후 점잖은 중년신사 이미지를 얻었지만 20대, 30대의 무명시절 20년 동안에는 열등감도 심했고, 성격도 거칠어져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을 못하고 있는 기간[4]에는 반건달(후대의 폭주족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도 치고 살았다고 한다)처럼 행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세바퀴에 조형기와 함께 출연했을 때, 조형기가 이를 폭로했는데 영화배우 아들 라인 모임에서 가죽옷에 반다나 두건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껌까지 씹으면서 어느 정도 탤런트나 영화배우 활동을 괜찮게 하던 동생들 앞에서 껄렁거리며 한명씩 앞에 가서 "얌마, 너 요새 잘나간다며? 너 어디(영화나 드라마 이름) 나오더라. 야 너 좋겠다"[5]라고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당시 탤런트였던 조형기 본인에게도 했다고 하는데, 조형기의 표현으로는 가히 그냥 불량배였다고. 다들 어릴 때부터 보던 큰형님이라 시비에 대응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 폭로에 당황한 독고영재가 내가 젊었을 때 힘들어서 잠깐 좀 그런 걸 갖고 너는 그런 걸 방송에서 얘기하고 그러느냐고 성을 냈는데, 조형기가 당황하지 않고 "젊기는, 형님 그때 마흔이었수! 불혹의 나이!"[6]라고 받아치자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다른 출연진들도 당시 나이를 듣자 빵 터지면서도 "40살이나 먹고 그러고 다니셨다고요?"라고 당황했다.

그 후 최민수의 추천[7]으로 엄마의 바다에 출연하게 된다. 당시 매니저 배병수가 최민수 주연의 조건으로 독고영재와 허준호를 끼워팔기 한 것이며 셋 다 배병수 사단의 일원이었다. 결국 드라마는 대히트했고, 독고영재와 허준호도 인기있는 배우가 되었으니 서로가 윈윈한 셈이다. 참고로 당시 엄마의 바다 출연진은 최민수, 김혜자, 고현정, 고소영, 독고영재, 허준호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이었다. 특히 당시 신인인 고소영은 첫데뷔작 KBS 내일은 사랑에서 중반 하차할 만큼 연기력에 문제가 있었으나 이 작품으로 톱스타로 등극했다.[8][9], 이후 중년스타로 떠오르며 드라마 코리아 게이트에서 무려 주인공 박정희 역할을 맡는[10] 등 생전 못해본 주연급 배우가 되었고, 이후 계속 영화에서 주연이나 주연급 조연으로 활동하였다. 젊을 때 조단역을 전전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달라진다. 아직도 TV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 선구안은 별로라서 인지도가 올라가고서도 싸구려 영화에 꽤 많이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주글래 살래에서 주인공의 아버지역과 키드캅에서 도둑놈 두목 역. 둘 다 작품성이 처참했고 흥행도 쫄딱 망했다. 오히려 무명시절에 비중 낮은 단역으로 나온 작품 중에는 괜찮은 작품들이 있다. 근데 본인이 별로 안 나온다.

3. 여담

4. 출연 작품

4.1. 드라마

4.2. 영화



[1] 1953년생으로 알려졌지만, 같은 연예인 2세 박준규가 2006년 당시 상상플러스에서 독고영재가 실제 나이는 이덕화와 같은 1952년 생 동갑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따라서 박준규 본인과 띠동갑. 1952년생 이계인과도 50년간 친구로 지내고 있다. 사실 1970년대 초반생 까지는 주민등록이 1년 늦은 케이스가 흔했다.[2] 악역이긴 했어도 의외로 인기가 많았고 굉장히 출연을 많이 하던 대스타였다. 지금으로 치면 마동석이나 정만식보다 인기나 출연 비중이 한단계 위일 정도의 수준. 즉 악역이자 주연. 아들 독고준까지 3대가 똑같이 예명을 독고 씨로 써서 성이 독고인 줄 아는 이들도 있지만 프로필에도 있듯 본명은 전씨다.[3] 하얀전쟁에서는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는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수상과 더불어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4] 사실 그 시기에도 찾아보면 출연 작품 수는 적지 않으나, 알다시피 비중이 높은 조연이 아니고서야 일반적으로 조단역은 촬영분량이 적어 여러 작품에 나왔다고 해도 촬영을 한 기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하루이틀만 촬영하면 한 영화의 출연이 끝나기도 한다. 비중 높은 조연이라도 자주 했으면 괜찮으나, 드문드문 했을 뿐이고 상당 기간 동안은 비중 낮은 역할만 해서 그러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거 없는 날이 많았던 것이다.[5] 조형기의 표현으로는 동생들의 가슴을 손등으로 살짝 치며 말했다고 한다.[6] 독고영재는 실제로 1952년생이기에 이때의 일은 1991년 상반기를 말한 것인데, 문제는 이 시기 직후인 1991년 8월에 조형기 본인은 교통사고 후 시체유기라는 중범죄를 저질러 경찰에 체포되고 구속되어 감옥에 갔었다는 것이다. 사람 죽이는 중범죄보다는 그냥 후배들에게 말로 시비걸고 모임 깽판치는 게 낫지 않나요? 독고영재의 프로필 생일이 가짜라는 명확한 정황 증거이기도 한데, 진짜 1953년생이라면 이 일이 1992년이어야 하지만 이때는 조형기가 계속 감옥에 있어서(징역 5년이 나왔지만 1993년초 복역 1년반만에 가석방으로 출소)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없고, 독고영재의 배우 인생 자체도 1992년부터 술술 풀렸다. 1992년은 영화, 1993년부터는 드라마까지 풀리며 승승장구했다. 1953년생에 만 나이까지 적용한다면 1993년인데, 독고영재가 승승장구한 시점이라 그 시기는 1991년으로 보인다. 당시 감독이나 제작자들에게 주조연으로 독고영재를 적극 추천한 최민수의 영향(당시 부친 최무룡을 뛰어넘을 대배우감으로 주목받고 있었고, 독고영재와 함께 주연을 2작품이나 했다)이 컸다고 한다. 아무튼 조형기 본인이 감옥가기 직전에 있던 일을 방송에서 말한 것도 대단하다[7] 사실, 최민수와 같이 출연한 작품은 영화를 중심으로 꽤 많다. 엄마의 바다 이전에는 남부군, 결혼 이야기에 같이 출연했으며, 엄마의 바다 이후에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테러리스트, 남자 이야기에 같이 출연했다.[8] 지금은 훌륭한 연기자지만, 당시엔 첫 출연하는 드라마여서 그런지 연기가 차마 좋다고는 말 못할 수준이었다. 일명 국어책 읽기의 진수.[9] 독고영재 본인은 처음엔 ‘영화배우가 TV에 나가면 욕먹는다’고 거절했지만, 드라마 국장이 ‘우리도 영화배우를 출연시켜 덕 본 적이 없다’고 말해 오기가 생겨서 출연했다고 회자했다.[10] 심지어 부인 육영수 역할이 독고영재 청년기에는 근처에도 못 가던 천하의 대스타 고두심이었으니, 독고영재에겐 가히 인생역전. 사실 두 배우는 소위 동년배로 나이가 비슷하다 못해 고두심이 1살 많지만, 실제 박정희는 육영수보다 8살이나 많아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였고, 동년배 부부가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독고영재는 50대 후반~60대 초반 역할을 위해 실제 나이보다 많이 나이들어 보이게 분장을 하고, 고두심은 당시의 50대 초반 육영수보다는 어렸지만 50대 느낌을 살리지 않고 동년배 독고영재보다 어려 보이도록 실제 나이에 맞게 밝은 톤의 화장을 했다.[11] 본인이 교통사고로 중환자가 되고 장애를 얻은 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퇴원하기도 전에 이미 병을 앓고 있던 부친까지 사망했던 그때만큼 선거 이후의 정신충격이 생각보다 더 커서, 한동안 우울증이 심했다고 한다. 아예 섬에 들어가서 3개월을 살면서 낚시를 하고 살았는데, 낚시하다가도 너무 괴로워서 바다에 뛰어들어 빠져죽고 싶다는 충동도 꽤 느껴봤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성공한 배우가 되고도 중증 우울증을 두번(교통사고 후 부친 사망, 선거 낙선)이나 앓았다.[12] 보통 이진수, 이창환, 독고영재를 박정희 전문 배우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13] 2012년 당시만 해도 국내 유저수 극히 적고 젊은층에서도 잘 이용하지 않던 SNS였다. 그래도 한국 청년층은 2010년 무렵부터 싸이월드 대신 트위터를 쓰던 시기여서 2012년에도 중장년층도 트위터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들어보기는 했던 시기이다. 또한 오늘날의 환갑과 다르게 2012년의 환갑인 1952년생은 인터넷, 컴퓨터에 어색한 세대로, 70이 넘은 현재도 스마트폰에 어색한 경향이 있다.[14] 최민수와 같이 영화 주연을 했을때는 동갑 친구로도 나왔다. 최민수보다 10살이나 형이라 최민수는 어릴때부터 독고영재를 형도 아니고 영재 형님이라고만 부른 사이였는데, 동갑 역할을 했을 정도니.[15] 당시 눈빛이 너무 사나워서 임예진 본인 표현으로는 겁이 나서 눈을 피했다고 한다.[16] 당시 독고영재는 부모님에게 사업이 잘 된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물론 금방 들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