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 趙恒 | |
본명 | 조항의(趙恒義) |
출생 | 1928년 10월 21일 |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 |
사망 | 1968년 7월 17일 (향년 39세) |
서울특별시 | |
본관 | 평양 조씨[1] |
학력 |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
데뷔 | 1946년 연극배우 |
가족 | 남동생 조항일[2] 아들 조형기, 딸[3] 조카 조민기 손자 조경준, 조경훈[4] |
종교 | 개신교(감리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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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였다. 1940년대에 데뷔하여 5, 6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발돋움하였지만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2. 활동
1946년, 연극배우로서 배우 생활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 이후, 1953년 영화 '최후의 유혹'의 주인공을 맡으며, 영화배우 생활을 시작했고 그는 곧 1950~60년대 전설의 배우가 된다. 그 외에 1967년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68년 7월 14일, 결핵으로 쓰러져 투병 중 사흘 만인 7월 17일 끝내 숨을 거두었다. 향년 39세.오랜 옛날 연예인인데다가 타계한지 워낙 오래되어[5]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현재는 사실상 잊혀진 인물이지만, 그의 전성기를 경험했던 노년층은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할 배우로서 많이 기억하고 있다. 조형기가 과거 일밤에서 본인 집을 공개할 때 부친 조항의 사진과 영화 포스터들을 공개하자 이를 본 김용만이 "저한테도 옛날 영화지만, 이거(포스터) 옛날 우리 동네 비디오 가게에 붙어있던 건데, 그게 조형기 형님 아버님이라고요?"라고 하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3. 여담
- 아들은 중견배우로서 활약 중이었던 조형기다. 손자인 조경준 역시 래퍼이니 가히 예술가 집안이라 불릴 만 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배우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아들이 음주운전 뺑소니 살인범 전력이 드러나 아버지의 명예에도 먹칠을 하게 되었다.[6] 또한 조카 조민기도 배우로 활동했으나, 성추행을 저질러 미투 운동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나마 장손자가 집안의 명예를 유지하고 있다.
- 이예춘, 독고성, 황해, 최무룡, 허장강, 박노식 등 당대 영화 스타들과 어울렸기에 그의 아들인 조형기도 그들의 아들들과 평생 친분을 이어 왔었다. 가장 친했던 건 어릴때 어울렸지만, 이민가서 헤어지고 미국에 살다가 30대에 한국에 돌아와 다시 만난 박준규.
4. 대표작
- 최후의 유혹 (1953)
-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 물레방아 (1966)
- 서울은 만원이다 (1967)
[1] 첨추공파(僉樞公派) 29세 항(恒)○ 항렬.[2] 배우 조민기의 친아버지이다.[3] 일반인. 2012년 사망.[4] 배우 조형기 아들. 큰손자는 힙합 레이블 Vismajor Company 소속 아트 디렉터이며, 작은손자는 배우다.[5]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당대엔 유명했지만 한창 나이에 죽어 잊혀진 김승호, 허장강 등이 있다. 그러나 조항은 이 둘보다도 10살 가량 더 젊은 나이에 죽었으니 더 잊혀질 수밖에.[6] 조형기는 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각종 예능프로에 출연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2018년 이후로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재조명되어 활동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