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이예춘(李藝春) |
본관 | 연안 이씨 |
출생 | 1919년 7월 20일 |
경기도 경성부 (현 서울특별시) | |
사망 | 1977년 11월 23일 (향년 58세) |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필동병원 | |
학력 | 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 |
가족 | 부인 강원숙[1], 아들 이덕화 손녀 이지현, 손자 이태희 사돈 김진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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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로 배우 이덕화의 아버지이다.2. 생애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극단 백양좌에 들어가 활동을 하였고 이후 약초, 무궁화 등의 악단생활을 하다가 1955년 영화감독 이강천의 피아골을 통해서 영화배우로 데뷔하였다.당대의 영화배우인 허장강(허준호의 아버지), 최무룡(최민수의 아버지), 독고성(독고영재의 아버지) 등과 함께 50, 6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가 되었으며 특히 악역 역할을 많이 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들인 이덕화 역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악역 역할을 많이 하였다는 아이러니가 있었다.[2]
역대 출연작으로 성춘향, 맨발의 청춘, 푸른 하늘 은하수[3], 연산군, 원효대사, 임꺽정, 단종애사, 한양건달, 밤에만 흐르는 강 등에 출연하였다. 참고로 1964년작 마도로스 박에도 출연한 바 있는데, 이 때 같이 연기한 배우 중 한 명이 바로 박준규의 부친인 박노식.
1977년 11월 23일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필동병원에서 지병인 고혈압으로 사망했다. 향년 58세.
3. 말년과 임종에 대한 후일담
1968년부터 고혈압을 앓고 있었지만 아들의 사고로 인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아들인 이덕화 항목 참조.무릎팍도사에서 이덕화의 회고에 의하면 무뚝뚝하면서도 아들과 가족을 많이 사랑하는 아버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투병 중에도 아들이 병문안을 오면 '번거롭게 왜 찾아왔냐'고 퉁명스레 쏘아붙였다는데, 사실은 그 전날부터 밤새다시피 정갈하게 차려입고 아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또한 사망 당시 사고를 당한 아들과 같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아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자러 가야겠다는 말과 함께 헤어졌는데 그날 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빠를 부탁해 28화에서 이덕화가 아버지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이덕화가 당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병상에서 꼼짝도 못하던 자신을 대신해 영화배우협회에서 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묘도 만들어 주었다고 하였다. 워낙 심한 부상을 입었던 나머지 이덕화는 몇 년 후에나 몸이 회복되어 아버지 산소에 방문할 수 있었다고 한다.(당시 이덕화는 사고 후 회복과 재활이 끝나는 데까지 3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말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화천댐의 파로호[4]에서 휴양을 했다고 한다. 이미 몸이 많이 불편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문안차 방문하면 흙을 깎아 좌석을 만들고 밑밥도 단단히 뿌려두는 등 아주 좋은 낚시터를 만들고 기다렸다고 하며, 밤새 낚시하는 아들에게 커피를 챙겨주는 게 낯간지러워서 호수에 방문한 낚시꾼들에게 커피를 다 준다는 핑계를 댄 다음, 기어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 주고 난 후에 와서 '이거 조금 남았는데 너 마셔라.' 하는 식으로 줬다고 한다. 임종 당시의 상황도 언급되었는데, 당시 이덕화가 입원한 옆 병실에 이예춘이 입원하였는데, 한밤중에 어머니가 이덕화에게 와서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이야기 했다 한다. 당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이덕화가 간신히 벽에 기대서 아버지의 병실로 갔고, 침대를 끌어내어 당직 의사가 있는 4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덕화의 손을 잡은 채 사망했다고 한다. 자신의 사고로 인해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이덕화는 아버지에게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덕화는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 중 부친에 대한 회고를 했던 경우들에서 항상 우리 아버지는 환갑도 못 사셨다는 말을 많이 하면서, 자신이 아니었다면 건강이 안 좋았어도 환갑까지는 넘기셨을 거라는 말을 하곤 했다. 부친이 환갑을 못 넘긴 것에 대한 한이 큰 것으로 보인다.
[1] 姜遠淑. 2003년 별세.[2]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덕화의 학생 시절 회고에서는 학교에서 극장에 단체관람 갈 때 이예춘 본인의 출연작이면 항상 이덕화가 가도 되냐 물었고 대부분의 대답이 "가지 마라"라고 했다고 한다. 이덕화의 회고로는 실제 가정에서의 모습도 영화 연기랑 비슷하게 무서웠다고 한다. 아버지의 정이란 건 성인이 될 때까지 전혀 느껴보지 못했고 집에서도 화를 낸 적이 많았다고 한다.[3] 아들 이덕화가 초등학교 6학년때 이 영화를 관람했었다[4] 방송에선 '파라호'로 오타가 났다. 화천, 양구 현지인들은 파라호라고도 부르기에 확인이 미흡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