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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키 웨이 • 프랭크 아이에로 • 제라드 웨이 • 레이 토로 |
이름 | 마이 케미컬 로맨스 (My Chemical Romance)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결성 | 2001년 9월 11일 |
데뷔 | 2002년 7월 23일 정규 앨범 1집 <I Brought You My Bullets, You Brought Me Your Love> |
활동 기간 | 2001년 ~ 2013년 2019년 ~ 현재 |
장르 | 팝 펑크, 얼터너티브 록, 이모 락 |
링크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4인조[1] 록 밴드. 줄여서 MCR이라고도 부른다.2013년 3월 22일 밴드가 해체되었으나, 2019년 11월 1일[2] 공식 페이스북에 재결합 소식이 알려졌다. 한국 시각으로 2019년 12월 21일 오후 1시 30분, 드디어 재결합 기념 라이브 공연을 했다.
2. 멤버
2.1. 멤버 변천사
1집 활동 시 | |||||
프랭크 아이에로 | 맷 팰리시어 | 제라드 웨이 | 마이키 웨이 | 레이 토로 |
2집 활동 시(드러머 교체 전) | |||||
레이 토로 | 마이키 웨이 | 제라드 웨이 | 프랭크 아이에로 | 맷 팰리시어 |
2집 활동 시(드러머 교체 후) | |||||
프랭크 아이에로 | 밥 브라이어 | 제라드 웨이 | 마이키 웨이 | 레이 토로 |
3집 활동 시 | |||||
밥 브라이어 | 마이키 웨이 | 제라드 웨이 | 프랭크 아이에로 | 레이 토로 |
4집 활동 시 | |||||
프랭크 아이에로 | 레이 토로 | 마이키 웨이 | 제라드 웨이 |
2.2. 투어 멤버
- 제임스 드위즈 - 키보드 및 백 보컬 및 퍼커션 담당
2007년부터 밴드 해체까지 활동.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키보드 담당. 퍼커션[3]도 담당하며 백 보컬도 담당하지만 키를 낮추어 부르거나 음정이 맞지 않아서 자주 까인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 활동 말고도 솔로 프로젝트인 "레지 앤 더 풀 이펙트"에 활동 중이며, 마이 케미컬 로맨스 해체 후엔 레이 토로가 리드 기타리스트로, 프랭크 아이에로가 베이시스트 및 공동 리드 보컬로써 잠시 활동했다. 참고로 슬립낫의 전 베이시스트였던 폴 그레이도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 마이클 페디콘 - 드럼 담당
밥 브라이어의 탈퇴로 2010년부터 드러머로 활동했다. 하지만 밴드 크루들의 물건을 훔치다 현행범으로 걸려 경찰에 자수했다. 이에 대한 마이 케미컬 로맨스 측에선 마이클을 고소하지 않는 대신에 방출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결국 2011년에 방출당했다.
2.3. 전 멤버
3. 역사
3.1. 결성 계기에 관한 이야기
밴드 결성 계기가 독특하다. 리더이자 메인보컬인 제라드 웨이는 원래 만화를 전공하던 사람인데 <The Breakfast Monkey>라는 만화를 카툰네트워크에 공모했으나 다른 만화와 비슷하다고 거절을 당하고 실의에 빠져있던 중, 두 눈으로 9.11 테러를 목격하게 된다. 그 순간 만화 따위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느끼고 세상을 향해 뛰어들기로 결심한 뒤 결성된 것이 마이 케미컬 로맨스(통칭 MCR)이다.[4]9.11 테러가 밴드 결성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밴드 멤버 각각은 계속해서 어떤 형식으로든 음악 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에서 제라드는 자신이 동생 마이키 웨이와 첫번째로 함께 했던 밴드인 Ray Gun Jones와 Nancy Drew에 대해서 언급했던 적이 있다. 다만 보컬로 활동한 것은 아니고, 기타리스트로 시작한 듯 하며, 데뷔할 생각이라기보다는 아마추어 수준에 그친 듯 하다. 이렇게 반쯤 취미로 밴드 활동을 하면서, 훗날 MCR의 리드 기타가 되는 레이 토로와도 만나게 된다.
프랭크 아이에로의 경우도 계속해서 밴드 활동을 해오고, Pencey Prep[5]이라는 밴드를 통해 인디 레이블에서 데뷔한다. 프랭크가 데뷔한 인디 레이블 Eyeball Record는, MCR의 데뷔 레이블이기도 하다. 아직 MCR에 합류하지 않았던 시절, 프랭크는 MCR의 팬이라고 자칭할 정도로 멤버들과 친하게 지냈고, 그러다 Pencey Prep이 해체하자, 멤버들의 제의를 받고 MCR의 리듬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게 된다. 그가 작곡에 참여한 첫 곡은 1집의 'Early Sunsets over Monroevill'이었다.
My Chemical Romance라는 밴드명은 마이키 웨이가 스코틀랜드 작가 Irvine Welsh가 쓴 'Ecstasy: Three Tales of Chemical Romance'라는 단편 소설집의 제목을 보고 영감을 얻어 지었다고 한다.
3.2. 메이저 데뷔부터 4집까지
프랭크가 합류한 이후, 첫번째 드러머인 맷 펠리시어의 탈퇴(해고라는 설도 있다)와 밥 브라이어의 합류를 거치면서, 메이저로 데뷔 첫 앨범이자 2집인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가 Helena, I'm not okay 등의 히트곡을 낳으며 100만 장 이상 팔려, 성공적인 메이저 진입을 했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MCR이란 밴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3집 The Black Parade가 빌보드와 영국 앨범차트에서 2위를 차지하며 세계적으로 메이저 밴드로 발돋움하면서, 자국인 미국 내에서 인기가 수직상승하여 린킨 파크와 어깨를 견주는 밴드로 성장한 것이 계기이다.[6][7] 3집에서는, MCR의 대표곡이자 타이틀 곡이며, 일각에서는 emo anthem이라고도 불리는 Welcome To The Black Parade를 포함하여, Dead!, Cancer, Mama, Teenager, Famous Last Words 등의 많은 히트곡이 나왔다. 특히 Welcome to the Black Parade는, 2집의 히트곡인 Helena와 더불어서 준 마성의 BGM수준으로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이나 스타, 카오스 등의 게임 중계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쓰였으며 오덕계에서도 애니 MAD로도 종종 쓰였다.
3집의 성공 이후에는 드러머인 밥 브라이어의 부상 등을 이유로 음반 작업을 보다는 투어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가, 긴 휴식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본래 2010년 초 예상됐던 4집 발매가 밥 브라이어의 탈퇴로 인해 연기되었다.[8][9]
4집의 정식 발매에 앞서서, 앨범에 수록될 노래들을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그리고 팬들이 몇년간 고대하던 4집이 발매되었는데, 평가는 호불호가 갈렸다. 원래 MCR이 좀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4집은 기름을 부어버린 격이었다. 까는 쪽은 '그나마 3집까지는 봐줄만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심한 펑크 분위기가 난다'[10] 라고 까고, 찬양하는 쪽은 '하지만 거친 느낌은 많이 발전했고, 명곡도 제법 많이 나와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확실히 Na Na Na, Bulletproof Heart 등 몇몇 노래는 까고 빠고 상관없이 들을만 하다는 평. 종합해보면 너무 실험적이었다는게 문제인듯 하다.
2012년 10월부터 매 월마다 두 곡씩 공개하는 "Conventional Weapons"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1월, 12월, 2013년 2월까지 Number One Two Three Four Five 총 다섯 장의 미니앨범. 열 곡을 발표했는데, 사운드는 빵빵한데 매 트랙이 귀를 확 사로잡았던 3집의 임팩트만은 못하다는 평이었다. [11]
3.3. 해체
그리고 2013년 데뷔 후 12년 만에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우리는 무대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모두의 응원에 감사하며, 새로운 모험에 나서겠다”고 전했다고 한다. 팬들이 안타까워하자 팀의 리더이자 보컬인 제라드 웨이가 2200자에 달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는데, 밴드에 대한 그의 추도사라고 밝힌 바 있다.2013년 12월 13일 MCR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14년 3월 25일에 "May Death Never Stop You"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앨범은 지금까지의 MCR 노래들 중 명곡과 미공개곡들 중 몇 곡을 뽑아 만들었다고 공지글에 써 있다.MCR 공홈(물론 영어)
2014년 2월 21일 디지털 싱글 Fake your death가 발매되었다. Fake your death에는 동명의 곡 한 곡만 들어있는데 이 곡은 MCR 멤버가 모두 모여 마지막으로 스튜디오 녹음을 한 곡이라 알렸으며, 인터뷰에서 이 곡은 '밴드를 향한 추모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했다고한다. MV는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MV들로 이루어져있어서 12년 동안 그들의 음악을 들어왔던 팬들에게 아쉬움이 남게한다.
2014년 3월 25일 베스트 앨범 'May death never stop you'가 발표되었다.
3.4. 공백기
보컬 제라드 웨이는 2014년에 솔로 앨범 Hesitant Alien을 발표했는데 NME에서 별점 8점을 받는 등 비평에서 반응이 좋았다. 앨범은 UK 락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베이시스트 마이키 웨이는 Sleep Station의 보컬 데이빗 드비악과 Electric Century라는 밴드를 결성, 2016년 2월에 잡지사를 통해서 첫 앨범 For The Night To Control을 냈는데, MCR의 사운드와는 확연히 다른 사운드를 구사하고 있다.
기타리스트인 프랭크 아이에로도 2016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레코드사와 계약, Frank iero and the patience라는 밴드의 보컬 겸 기타, 프론트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기타리스트이자 밴드의 사운드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레이 토로도 솔로 앨범 Remember the laughter를 발표했으며, 성 소수자 청소년의 자살을 추모하는 곡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 날짜로 2016년 10월 14일, 프랭크 아이에로가 투어를 위해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MCR의 다른 멤버들도 소식을 전하며 위로를 전했다. 다행히 큰 탈 없이 회복한 듯 보인다.
2016년, The Black Parade 앨범 발매 10주년을 기념하여 트리뷰트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첫 스타트를 현재 미국에서 주가를 한창 높이고 있는 2인조 밴드 트웬티 원 파일럿츠가 끊었다. 앨범의 수록곡 Cancer를 커버했는데, 일반 사람들의 평은 괜찮았지만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팬들은 혹평이 심했다. 원곡을 듣고나서 커버를 들어보길. 그런데 트원파의 커버곡이 다른 커버곡들에 비해서 제일 평가가 나은 편이다. 상세 내용은 후술함.
한국 시간 2016년 7월 21일 기준으로 공식 홈페이지가 리뉴얼되고, 아래와 같은 티저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은 WTTBP의 앞 부분 반주를 따라 새로운 MCR로고의 깃발이 펄럭이다 날짜를 보여주고 끝난다. 공홈 메일링 리스트로도 영상을 뿌리고 홍보한 것을 보면, 2016년 9월 23일에 뭔가 있기는 있을 예정인 모양인데, 아직까지는 이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알기 어려운 상황. 그러나 몇몇 팬들은 혹시나 재결합인가 하는 희망을 다시 품기 시작했다. 비관론부터 이야기하자면, Electric Century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마이키, DC코믹스와 프로젝트를 시작한 제라드, 프로젝트 그룹인 Death Spell과의 투어가 예정된 프랭크, 여전히 솔로 앨범 작업중인 레이 등 재결성이 9월에 이뤄질 확률은 멤버들의 각자의 스케줄을 보면 불가능에 가까워보인다. 또한 이번처럼 크게 티저를 내놓은 적은 없었지만 워너브라더스가 마이켐 공홈의 메일링 리스트로 상술쩌는 마케팅을 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기에... 참고로 마이켐 멤버들은 해체 이후 공홈의 내용이나 공식 트위터 내용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12]
재결합을 기대한 팬들의 반응이 예상 외로 뜨거운 것이 부담이 되었는지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재결합이나 투어 소식이 아닌 The Black Parade 앨범의 발매 10주년을 기념하는 티저임을 밝혔다. 출처
2016년 8월에는 밴드의 공식홈에 9월 23일 발매될 앨범의 정보가 공개되어 예약주문을 받았다. The Black Parade앨범의 재발매이면서, 이전에 미공개된 트랙과 데모 트랙 11개가 추가된 구성으로, 추가된 트랙은 아래와 같다.[13]
2016년 9월 23일 앨범의 모든 수록곡이 공식 유튜브 계정에 공개되었다.
전곡 듣기
1 The Five of Us Are Dying (rough mix) [14]
2 Kill All Your Friends (live demo)
3 Party At The End Of The World (live demo)
4 Mama (live demo)
5 My Way Home Is Through You (live demo)
6 Not That Kind Of Girl (live demo)
7 House of Wolves, Version 1 (live demo)
8 House of Wolves, Version 2 (live demo)
9 Emily (rough mix)
10 Disenchanted (live demo)[15]
11 All The Angels (live demo)
3.5. 재결합 선언
재결합으로 다시 모인 멤버들이 같이 찍은 사진.
- 2019년 11월 1일 공식페이스북으로 재결합을 선언하였다.
- 2019년 12월 20일 LA Shrine Expo 라이브 영상
- 2020년 1월 20일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 2020년 1월 30일 16분짜리 영상이 올라왔다. 과거 발매되었던 앨범들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보여주며 2020년 북아메리카 투어 일정을 공개했다.
재결합 소식이 뜨자 마자 전세계의 락 팬덤에게 엄청난 이슈가 되었고, 전세계에 고루 분포하고 있는 MCR 팬층은 물론이요 뒤늦게 MCR을 접하거나, MCR에 관심이 없던 일반 팝 팬들의 이목까지 집중시키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덕에 그대로 묻혀버렸다. 지금 위의 북아메리카 투어 티켓 예메 사이트를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가장 가까운 MCR 투어 날짜가 무려 2020년 기준 2021년 10월 16일이다.[16] 그리고 결국 이 공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니 현재로써는 신곡을 내는 것도 리스크가 있고, 그렇다고 다른 활동을 하기에는 북미의 코로나 상태가 썩 좋지 못한 상황. 그 덕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음악계 최대 피해자라는 말도 떠돌 정도이다.
3.6. 활동 재개 이후
- 2021년 5월의 기사에 따르면 현재 5집을 준비 중에 있다고 한다. 2023년 하반기 기준 아직도 5집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들려오는 것은 없으나, 팬들 사이에서는 두고두고 떡밥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또한 팬덤을 넘어 일반 락 리스러들과 여러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매 해가 밝을 때마다 "올해의 기대작"같은 식으로 MCR의 5집이 언급되는 등 거의 모두가 행복회로를 돌리는 중(...)
- 한국 시간 기준 2022년 5월 13일 신곡 The Foundations of Decay가 공개되었다.
4. 특징
4.1. 라이브
원래 초기 MCR의 대표곡이 다른 밴드에 비해 더블링에 의존을 많이 하는 편인데 거기다 메인 보컬인 제라드 웨이가 전성기에 약물중독 및 알콜중독에 빠져 라이브를 잘 하지 못한다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심지어 일본공연 때에는 자낙스와 보드카를 150달러치[17]를 마신 후 공연 중 옷이 벗겨지고 넘어지는 등, 정상적인 공연이 불가능해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었다.제라드는 이후 꾸준한 상담과 치료를 통해서 현재는 약물 의존 상태에서 완벽히 회복되었지만, 이 때의 여파로 목소리와 폐활량이 상당히 망가지는 바람에 라이브 실력은... 심지어 MCR하면 바로 떠올리는 'Welcome to the Black Parade'의 백미인 내지르는 후렴구를 구현하지 못하는 게 그 대표적인 예. The Black Parade 투어 당시 후렴을 아예 모두 한 키 낮춰 불렀고, 2010년 라이브를 들어도 후렴구에서 일부분은 한 키 낮춰서 부른다.[18] 후렴을 창조해서 부른다든지, 제라드 웨이의 보컬 인생은 Carry On과의 전쟁이라고 비꼬는 말이 있을 정도. 4집에 이르러서야 라이브가 상당히 괜찮아졌다. WTTBP와 비슷한 키인 The Only Hope For Me is You는 후반부에 살짝 무너지지만, 그걸 제외하면 모두 잘 소화해내고, 쉴 틈 없이 계속 소리지르는 Na Na Na도 꽤 잘 소화해낸다. 2011년 4집 활동 당시 레딩 페스티벌이 상당히 좋다. 심지어 carry on 부분도 해낸다. 예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장족의 발전.[19] 쉽게 비교하자면 2006년 레딩 페스티벌과 2011년을 비교해보자. 특출나게 가창력이 좋아진 건 아니지만 보다 안정적으로 부른다.
다만 무대에서 제라드가 보여줬던 매너는, 안정성이 떨어지는 라이브 실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카리스마 있는 프론트맨의 목록에 올려놓았다. 또한 노래와 어울리는 특유의 음색과 라이브 분위기 덕분에 커버는 그 느낌이 안나서 커버를 싫어하는 팬들이 많다. 주로 회자되는 퍼포먼스 일화는 남팬들 티셔츠 벗어서 돌리게 하기, 맨 앞에 있는 남팬한테 뽀뽀하기 등이 있다. 삑사리가 나던 말던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며 노래하던 3집 까지의 라이브 이후로, 4집 때 비교적 얌전하게 라이브를 하게 되니 차라리 삑사리 나도 좋으니 예전처럼 열과 성을 다해 부르라고 불평하는 팬도 있었을 정도.
재결합 발표 후 첫 라이브에서는 WTTBP의 후렴부를 거의 성공시키는 등 힘을 조금 더 빼고 팬들에게 마이크를 많이 넘긴 것을 감안해도 훨씬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복귀 후 해가 지나면서 과거 라이브를 못했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4.2. 장르
정식 분류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 되어 있으나(2008년 그래미 상 후보에서도 얼터너티브 분류에서 린킨 파크와 후보로 겨루었다.) 오히려 펑크한 느낌의 곡들이 많다. Emo 색에 의하여 그 쪽으로 분류도 자주되나. 스스로 이모코어는 쓰레기다[20]라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바 있다.본래 MCR의 멤버들은 장르에 대한 구분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었지만, 유명세를 얻고 난 후[21] 위와 같이 격하게 거부하는 발언을 하게 되었다. 초반 인기를 끌었던 Emo 장르를 대표하는 밴드로 여겨졌음에도, 이러한 장르 구분을 갑자기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 이유로는, 언론에서 Emo 장르와 청소년 자살을 연관지으려던 시도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보여진다. 밴드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했던 간에, 팬덤에는 통속적으로 Emo 서브컬쳐로 받아들여지는 요소를 즐기는 집단과 교집합을 이루는 청소년 팬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러한 Emo 서브컬쳐가 대중의 관심사에 오르내리면서, 이를 불필요하게 위험한 것이나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서브컬쳐를 즐기는 청소년에 대한 부당한 비난이나, 심한 경우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MCR은 Emo 장르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으로부터 주로 청소년으로 이루어진 밴드의 팬덤을 보호하고자 했던 시도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감정적으로 취약한 청소년 팬들이 급격히 유입되던 3집의 유명세로 인해, Emo 장르와 부정적으로 연관되는 것과의 단절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22]
다만 해체 이후 유명세가 줄어들고, 당시의 청소년 팬들이 성인으로 성장한 지금에 와서는, 제라드 본인은 Emo 장르와 연관되는 것을 예전처럼 격하게 부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듯 하다. 엄밀한 음악적 장르의 구분으로서라기 보다는, 2000년대 초반 함께 장르를 대표하는 밴드로 유명세를 얻었던 폴아웃보이 등과 함께, 일종의 추억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듯.
Emo냐 아니냐의 소모적인 논의를 벗어나서 본다면, MCR은 평단으로부터는 '한 앨범에서 여러 장르의 곡을 들어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록밴드'라는 평을 받았다. 좋게 말하면 록 음악이라는 분류 내에서 여러 가지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밴드이고, 나쁘게 말하면 짙은 자기 색이 없는 밴드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MCR만의 고유한 색깔을 표현하였다. 전반적으로 MCR만의 고유한 색깔은 가지고 있는데 평범한 펑크 밴드로 분류해도 상관없었을 1집 이후에는 검정, 죽음 등으로 대표되는 코드를 특유의 펑크한 느낌으로 오히려 가사와 상관없이 곡 자체만 들었을 땐 꽤 밝은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편이다. 설명만으로는 악동의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아예 펑크 곡이 타이틀곡이었던 1집 이후에는 펑크의 색이 많이 빠진 편이기 때문에 어떤 밴드인지 판단하려면 직접 들어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4.3. 팬덤
MCRmy[23]로 스스로를 칭하는, 열성적인 팬층으로 유명하다. MCR은 데뷔 초기부터 마이스페이스 등을 활용하여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한 밴드였다. 그렇게 팬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2집의 성공을 거뒀는데, 그 이후 3집을 통해서 메가히트를 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어린 팬층이 유입되었다. 그러면서 팬덤이 급격히 확대되며 또 팬덤의 토대가 되었던 온라인 커뮤니티의 형태도 급격히 변모하는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는 MCRmy의 특성(부정적인 면을 포함한)은 이 시기에 많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앨범마다 음악색이 같은 밴드인가 싶을 정도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특히 3집을 기점으로 팬층이 갈리는 현상이 많이 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집부터 해체할 때까지 밴드의 팬임을 자처하는 팬층도 두터운 편으로, 팬덤의 전반적인 충성도가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멤버들도 팬덤을 아껴서, 데뷔 때부터 알고 지내던 팬이 암으로 사망하자 추모의 메시지를 트위터로 올린 적도 있다.
MCRmy 외에도 Killjoy도 많이 쓴다. 4집에서 자신들의 팬들을 배터리 시티( 4집 세계관 )의 Killjoy라고 지칭했기 때문이다. NANANA 앞 부분에 Killjoys, make some noise 라는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 킬조이들, 소리질러 )
5. 디스코그래피
자세한 내용은 마이 케미컬 로맨스/디스코그래피 문서 참고하십시오.6. 루머
- 마이키 - 항목 참조
- 프랭크 - 항목참조
* 레이 - 루머의 청정 지역(...)
- 제라드 - 항목 참조
6.1. 해체 이유와 재결성을 둘러싼 루머
어째서인지 밴드의 해체 원인과 재결합 가능성을 둘러싼 루머가 계속해서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고 있다. 아마도 비록 3집의 상업적 성공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Danger Days' 앨범이 평단과 팬들로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투어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었으며 인터뷰 등을 통해 5집 작업중이라는 이야기들이 돌던 와중에[24] 갑작스럽게 해체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에 팬들의 충격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그렇지만 해체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여기는 팬들의 시선과는 달리,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제라드가 진행한 인터뷰등을 참고했을 때 소속사나 멤버간 불화 등의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였다기보다는 밴드의 핵심멤버라고 할 수 있는 제라드가 느낀 내면적인 갈등이 그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 인용된 국내기사에서 대충 인용해서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는 그가 해체공식발표 3일 후인 25일에 올린 장문의 트윗에서도 어느 정도 그 원인을 짐작 가능하다. 아래는 그의 트윗에서 그가 생각하는 해체 이유에 관한 내용들을 발췌 후 해석한 것이다.출처는 제라드의 트위터
(전략)There are many reasons My Chemical Romance ended. The triggerman is unimportant, as was always the messengers- but the message, again as always, is the important thing. But to reiterate, this is my account, my reasons and my feelings. And I can assure you t>here was no divorce, argument, failure, accident, villain, or knife in the back that caused this, again this was no one’s fault, and it had been quietly in the works, whether we knew it or not, long before any sensationalism, scandal, or rumor.
My Chemical Romance가 끝나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나 원인의 제공자는 언제나 그렇듯이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메시지는늘 그렇듯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반복하자면, 이 글은 저의 입장에서, 제 이유와 제 느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밴드의 종말은 이혼도, 다툼도, 실패도 사고도 어떠한 악당에 의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의 배신에 의해서 초래된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가 알았건 몰랐건 간에(밴드의 종말은) 그 어떤 스캔들이나 루머 이전부터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My Chemical Romance가 끝나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나 원인의 제공자는 언제나 그렇듯이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메시지는늘 그렇듯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반복하자면, 이 글은 저의 입장에서, 제 이유와 제 느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밴드의 종말은 이혼도, 다툼도, 실패도 사고도 어떠한 악당에 의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의 배신에 의해서 초래된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가 알았건 몰랐건 간에(밴드의 종말은) 그 어떤 스캔들이나 루머 이전부터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중략)The show is… good. Not great, not bad, just good. The first thing I notice take me by surprise is not the enormous amount of people in front of us but off to my left- the shore and the vastness of the ocean. Much more blue than I remembered as a boy. The sky is just as vibrant. I perform, semi-automatically, and something is wrong.
I am acting. I never act on stage, even when it appears that I am, even when I’m hamming it up or delivering a soliloquy. Suddenly, I have become highly self-aware, almost as if waking from a dream. I began to move faster, more frantic, reckless- trying to shake it off- but all it began to create was silence. The amps, the cheers, all began to fade.
All that what left was the voice inside, and I could hear it clearly. It didn’t have to yell- it whispered, and said to me briefly, plainly, and kindly- what it had to say.
What it said is between me and the voice.
I ignored it, and the following months were full of suffering for me- I hollowed out, stopped listening to music, never picked up a pencil, started slipping into old habits. All of the vibrancy I used to see became de-saturated. Lost. I used to see art or magic in everything, especially the mundane- the ability was buried under wreckage.
Slowly, once I had done enough damage to myself, I began to climb out of the hole. Clean. When I made it out, the only thing left inside was the voice, and for the second time in my life, I no longer ignored it- because it was my own.
(번역) 공연은[25]...괜찮습니다. 끝내주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고, 그냥 괜찮죠. 내가 처음으로 알아차린 것은 놀랍게도 눈 앞의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내 왼 편에 펼쳐진 해안과 거대한 바다입니다. 어릴 때 기억하던것 보다 훨씬 푸른. 하늘도 마찬가지로 선명합니다. 나는 반자동적으로 공연을 하고,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낍니다.
저는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독백을 하거나 과장을 할 때처럼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저는 무대에서 절대 연기를 하지는 않았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갑자기 저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스스로를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느낌을 떨쳐버리기 위해 더 빨리,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건 적막만을 낳았습니다. 앰프도, 환호도, 모든 것이 잦아들었습니다.
남은 것은 내면의 소리 뿐이었고, 나는 그것을 분명히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소리는 소리칠 필요도 없었고-나에게 간명하고, 친절하게, 그것이 해야할 말을 속삭였습니다.
무엇을 말했는지는 나와 그 목소리 간의 일입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했고, 이어지는 몇달간은 고통으로 가득했습니다-나는 공허함을 느꼈고, 음악 듣는 것을 멈췄고, 연필도 들지 않았으며, 옛날의 버릇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볼 수 있었던 선명한 모든 것들이 탁해지고, 상실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에서 예술과 마법을 볼 수 있었는데-특히 일상적인 것에서-그 능력은 폐허 밑에 묻혀버렸습니다.
천천히, 스스로에게 충분히 피해를 입히고 나자, 나는 구멍밖으로 기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깨끗하게. 밖으로 나오자, 내 인생에서 두번째로 그 목소리만이 나에게 남았고, 나는 그 목소리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았습니다-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목소리였기에.
I am acting. I never act on stage, even when it appears that I am, even when I’m hamming it up or delivering a soliloquy. Suddenly, I have become highly self-aware, almost as if waking from a dream. I began to move faster, more frantic, reckless- trying to shake it off- but all it began to create was silence. The amps, the cheers, all began to fade.
All that what left was the voice inside, and I could hear it clearly. It didn’t have to yell- it whispered, and said to me briefly, plainly, and kindly- what it had to say.
What it said is between me and the voice.
I ignored it, and the following months were full of suffering for me- I hollowed out, stopped listening to music, never picked up a pencil, started slipping into old habits. All of the vibrancy I used to see became de-saturated. Lost. I used to see art or magic in everything, especially the mundane- the ability was buried under wreckage.
Slowly, once I had done enough damage to myself, I began to climb out of the hole. Clean. When I made it out, the only thing left inside was the voice, and for the second time in my life, I no longer ignored it- because it was my own.
(번역) 공연은[25]...괜찮습니다. 끝내주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고, 그냥 괜찮죠. 내가 처음으로 알아차린 것은 놀랍게도 눈 앞의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내 왼 편에 펼쳐진 해안과 거대한 바다입니다. 어릴 때 기억하던것 보다 훨씬 푸른. 하늘도 마찬가지로 선명합니다. 나는 반자동적으로 공연을 하고,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낍니다.
저는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독백을 하거나 과장을 할 때처럼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저는 무대에서 절대 연기를 하지는 않았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갑자기 저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스스로를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느낌을 떨쳐버리기 위해 더 빨리,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건 적막만을 낳았습니다. 앰프도, 환호도, 모든 것이 잦아들었습니다.
남은 것은 내면의 소리 뿐이었고, 나는 그것을 분명히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소리는 소리칠 필요도 없었고-나에게 간명하고, 친절하게, 그것이 해야할 말을 속삭였습니다.
무엇을 말했는지는 나와 그 목소리 간의 일입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했고, 이어지는 몇달간은 고통으로 가득했습니다-나는 공허함을 느꼈고, 음악 듣는 것을 멈췄고, 연필도 들지 않았으며, 옛날의 버릇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볼 수 있었던 선명한 모든 것들이 탁해지고, 상실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에서 예술과 마법을 볼 수 있었는데-특히 일상적인 것에서-그 능력은 폐허 밑에 묻혀버렸습니다.
천천히, 스스로에게 충분히 피해를 입히고 나자, 나는 구멍밖으로 기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깨끗하게. 밖으로 나오자, 내 인생에서 두번째로 그 목소리만이 나에게 남았고, 나는 그 목소리를 더 이상 무시하지 않았습니다-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목소리였기에.
발췌된 부분을 읽어보면, 이전과는 다르게 밴드활동을 위한 열정을 상실하게 된 것이 해체를 결심하게 된 원인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다만 해당 글의 원문이 워낙 길고, 원어민들도 다 읽고 나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할 정도로(...)모호하게 작성된 바도 없지 않아 있다. 다만 이후에 솔로 활동을 진행하면서 그가 한 인터뷰를 보면, 보다 더 확실하게 해체의 이유와 관련하여 발언하고 있음을 확인이 가능하다.
"... when we finished ‘…Parade’ and we had finished the touring, I didn’t want to do it anymore. That was a nice ending point for me. It was an extremely high note, I had said all I’d wanted to say. There was nothing more for me to say under that umbrella of My Chemical Romance.”DIY매거진 인터뷰
(번역) 3집 투어를 마쳤을 때, 나는 더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나에게는 좋은 마침표였다. 그건 매우 높은 성취였고,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상태였다. 내게는 MCR이라는 이름하에서 더 말할 것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 To be honest, I never saw My Chemical Romance going past Black Parade."
2014년 NME와 인터뷰. 0:37부터 발언을 확인 가능하다.
(번역) 3집 투어를 마쳤을 때, 나는 더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나에게는 좋은 마침표였다. 그건 매우 높은 성취였고,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상태였다. 내게는 MCR이라는 이름하에서 더 말할 것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 To be honest, I never saw My Chemical Romance going past Black Parade."
2014년 NME와 인터뷰. 0:37부터 발언을 확인 가능하다.
이러한 인터뷰들에 따르면, 3집 이후의 밴드 활동에 대해서는 그 전만큼의 창작욕구를 느끼지 못했지만, 3집에서의 막대한 성공으로 인해 팬덤의 기대와 밴드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밴드 활동을 지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4집까지는 그것이 유효했지만, 5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내면적 갈등이 심화되어 해체라는 수순을 밟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밴드의 해체와 솔로 활동에 관하여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한 다른 인터뷰가 있지만 길어서 다 옮길 수 없으므로 링크로 대체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밴드의 재결합 가능성과 관련하여 이전에 본 문서에 작성되어있던 "밴드의 컴백에 대해서 제라드 웨이는 장문의 메세지로 'MCR의 재결성시 멤버들 중 프랭크 아이에로 등 몇몇 멤버들은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 MCR이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마이키(웨이)가 이 밴드명의 창시자인데, 마이키 없이는 이 밴드명을 쓸 수 없다'라고 밴드의 재결성 가능성과 그때에 쓰여질 밴드명, 그리고 마이키 웨이의 불참을 비추었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루머에 가깝다. 해당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출처는 이 이미지뿐인데, 일단 제라드가 작성한 것으로 보기에는 그 동안 그의 발언과 대치되고 있으며, 텀블러 등을 사칭한 계정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참고로 이미지는 fake twitter gerard way reunion(...)으로 구글 검색 시 하나 나온다.) 제라드의 공식 텀블러는 official-gerardway이며 주소 클릭시 공식홈으로 이동하니 참고.
제라드가 솔로 활동 내내 인터뷰에서 MCR 활동이나 재결성에 미련이 없음을 위와 같이 피력한 상황에서, 근거가 불충분한 재결성 루머가 퍼지는 것은 팬들을 희망고문할 뿐이다. 현재 모든 멤버들이 각자의 솔로 활동에 매진하고 있고, 팬들의 반복되는 재결합 관련 질문에도 계획이 없음을 밝히고 있었다. [26] 하지만 2019년 11월 1일, 페이스북으로 재결합 사실을 밝혔다. # 또한 하루 만에 단독공연 예매표를 매진시키고 바로 뉴질랜드 투어를 떠나며 내년 다운로드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를 차지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
7. 여담
- 린킨 파크와 플라시보 같은 밴드들과 함께 Projekt Revolution 투어에 참여했고, 그러면서 플라시보 프론트맨인 브라이언 몰코와 교분이 좀 생긴 듯하다. 제라드 웨이와 그가 같이 찍힌 사진도 있으며, 제라드가 '플라시보의 라이브를 보는 걸 좋아한다'라고 했으니 적어도 음악적으로는 좋아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사실, 같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이기도 하니 신기한 일도 아니다. 플라시보에 관해 언급한 인터뷰를 보면 원문은 다음과 같다.Meds, by Placebo. Placebo is one of my favorite band of all time. We're on tour with them right now, on Projekt Revolution. Meds is, um, an amazing video, because, I think, anybody that's ever been on tour, has kind of, felt like that. It's obviously dealing with some psychological elements too, maybe some hard things you face on the road, maybe some hard things you face in your relationships with people on the road. And, it's also, kind of a really sexy video, kind of opens up with Brian Molko on a bed in some really small black underwear, so. (laugh) It's pretty amazing. But I love the video for so many reasons as much as I love the band. So, I love the band.
해당 인터뷰는 제라드가 좋아하는 뮤직 비디오를 선정하는 내용이었다. 일단 플라시보의 팬인 것은 확실한 듯.
- 영국의 모 형제 밴드와는 다르게, 마이키와 제라드의 형제 사이는 매우 돈독한 편이다. 인터뷰를 보면 기회만 있으면 서로 칭찬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형제 사이가 매우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이키 웨이는 밴드에 합류하기 위해 대학교를 자퇴하기도 하고, 제라드가 마약과 알코올 중독 문제로 고생할 때조차 등을 돌리거나 사이가 소원해지는 기미를 조금도 보이지 않았을 정도다. 또, 본인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조차도 밴드에 끝까지 남으려고 노력했던 것을 보면, 밴드나 형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편으로 보인다.[27] 인터뷰에서 마이키 웨이는 솔로 활동으로 일본에 투어를 간 제라드를 보기 위해 지리를 잘 알지도 못하는 도쿄에 갔는데 혼자 덩그러니 있어서 외로웠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 팬들은 MCR의 노래 제목을 따와 자신의 딸들의 이름을 'Helena', 혹은 'Emily'로 지어야겠다는 등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또한 팬들 사이의 밈으로 MCR의 노래를 오랜만에 듣기 전엔 준비 과정으로 "Darken clothes, Strike violent pose(옷을 어둡게 입고 과격한 포즈를 취할 것)[28]"를 해야다는 드립도 꽤 유명하다
- 가장 조회수가 많은 뮤비는 The Black Parade 앨범의 'Welcome to the Black Parade'. 2024년 8월 기준으로 3억 4천만 뷰다. 2위는 2억 1천만 뷰의 'Helena', 3위는 1억 7천만 뷰의 'Teenagers', 4위는 1억 7천만 뷰의 'I Don't Love You'[29], 5위는 1억 2천만 뷰의 'Famous Last Words'이다.
- 밴드 해체 전 작업중이었던 5집 앨범의 원래 이름은 'The Paper Kingdom'로, 몇몇 팬들은 4집의 실적 부진으로 인해 이전 앨범들처럼 음울한 분위기의 앨범 작업을 하게 된 것과 부담감이 겹쳐 한때 해체 선언을 했던 원인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 2018년 1월 18일에 갑자기 마이 케미컬 로맨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 뮤비에서 삭제된 장면들같은 아웃테이크 영상들을 한꺼번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찍어둔 걸 모두 삭제하기 전에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두는 게 아니냐는 댓글들이 나오고 있다.
- 유튜브에 venganza 라이브 풀버전 자막이 올라와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Nl5oEGvAIw
7.1. The Black Parade Tribute
2016년 9월 12일, Rock Sound에서 발매된다. 전설의 3집 The Black Parade여기로 가면 공지를 볼 수 있고, 여기서 예약주문을 할 수 있다.
꽤나 쟁쟁한 밴드들이다.
01. The End. - ONE OK ROCK[30]
02. Dead! - Escape the Fate[31]
03. This Is How I Disappear - Creeper
04. The Sharpest Lives - State Champs
05. Welcome To The Black Parade - Crown The Empire
06. I Don’t Love You - Moose Blood
07. House Of Wolves - Palisades
08. Cancer - Twenty One Pilots
09. Mama - Ghost Town
10. Sleep - New Years Day
11. Teenagers - Against The Current
12. Disenchanted - Chunk! No, Captain Chunk!
13. Famous Last Words - Asking Alexandria
원곡을 생각하지 않고 들으면 상당히 좋은 노래들이지만 기존 MCR의 음악에 익숙한 팬들이 너무 많기에 호불호가 상당히 나뉜다. 프로젝트의 슬로건이 'Their Memory Will Carry On'이기 때문에 새로운 밴드들이 그들만의 음악으로 재탄생시켜서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도 있지만, 반대로 MCR 최고의 앨범을 망쳤다고 불평하는 입장도 있다.
"Yeeessss.... No."
(좋아아아아... 아냐, 안 좋아.)좋아...안돼
유튜브 댓글 中
가장 우려가 됐던 'Welcome to the Black Parade'를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노래들이 MCR 특유의 EMO스러움이 부족하거나 노래가 조금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도 작품성은 둘째치고 일단 MCR의 노래를 새롭게 듣게 되니 기쁘다는 반응이 가장 많다.(좋아아아아... 아냐, 안 좋아.)
유튜브 댓글 中
그 와중에 'The End'와 'House of Wolves', sleep' 그리고 'Cancer'[32]는 원곡 이상으로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Cancer는 트웬티 원 파일럿츠의 대표곡으로 불릴 정도로 좋다...고 하지만 과한 오토튠과 이상한 효과음이 합쳐져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안타깝게도 'Teenagers'와 'This Is How I Disappear'는 매몰차게 욕을 먹고 있다.[33]
전반적으로 본 앨범에 품은 기대치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MCR에 대한 작은 헌정 및 재해석을 생각하고 들은 이들과, EMO 충만한 MCR의 음악 세계 그 자체를 소망하며 들은 이들의 기준치가 다를 것이 자명하기 때문.
[1] 데뷔 초기에는 5인조였으나 현재는 드러머 없이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2] 현지 시각으로 할로윈이었다.[3] 'Teenager' 후반에 들리는 타악기 소리 등[4] 나중에 엄브렐러 아카데미라는 만화 스토리를 담당하기도 했고 몇몇 일러스트도 그리기도 했다. 평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5]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학교 이름[6] 다만 외국에서는 인지도가 그리 높은 것은 아닌 듯 하다. 특히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그나마 아시아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인 일본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 웨이 형제가 일본을 좋아한다는 것은 유명하며, 일본에서 여러 차례 공연한 바 있고 아예 일본 전용으로 라이브 앨범도 내기도 하였다. 또 4집인 Danger Days의 8번 트랙인 Party Poison 초반부는 아예 일본어다.[7] 그러나 자국인 미국을 제외하고 MCR 팬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해체 전과 후를 막론하고 일본이 아니라 영국이다. 영국에서의 컬트적인 인기는 영국의 Daily Mail이 MCR에게 팬의 자살과 결부된 emo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낙인처럼 부여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팬들이 Daily Mail에 대한 반대 집회를 열기까지 했다. 출처:가디언지 기사를 보면 데일리 메일이 문제삼은 자살한 영국 청소년은 자살 2주 전에 MCR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고 한다. 청소년 문제에 대한 희생양을 음악이나 게임에서 찾으려고 하는 언론의 전형적인 행보에 가깝다.[8] 탈퇴 이유는 그렇게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나, Famous Last Words 뮤직비디오 촬영 시 불길에 화상을 입은 것, 그리고 손목부상이 겹쳐서 드러머 생활을 못하게 되어서 탈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9] 밥 브라이어가 참여한 마지막 곡들은 원래 4집으로 발매되려다 중지하고, 이후 Conventional Weapons라는 비정규 컴필레이션 앨범의 형태로 발매되었다.[10] 실제로 80~90년대 락큰롤 느낌이 너무 물씬 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11] 원래 4집으로 계획하던 노래인데 중간에 마음에 안들었는지 때려치고 Danger Days를 만들기 시작해서 4집 공개가 늦어졌다고 한다.[12] 제라드는 본인 트위터를 통해 밴드 공식 트위터에 올라오는 내용과 무관함을 밝힌 바 있다.[13] 굵은 표시는 미공개곡. 출처는 공식 홈[14] 2016년 8월 3일 공식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다. Welcome to the black parade의 전신 격인 곡으로 보인다.[15] 해당 곡은 3집에 실려 공개되기 전 Shut up and Play 라는 이름으로 3집 녹음 이전의 투어에서 연주된 적 있다. 라이브 데모는 그 때 공연된 버전에 가까운 전주와 가사 등의 수정을 거치기 전의 데모로 보인다.[16] 이마저도 임시적으로 1년 뒤로 밀어버린 것 뿐, 2021년 기준으로 복귀를 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이다.[17] 스케줄이 없던 때 일상적으로 마시던 수치였으나, 컨디션 관리가 어느 때 보다 중요한 공연 투어 중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해당 공연이 끝난 후 백스테이지에서 속에 있는 것을 전부 게워내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특히 2집 시기는 알콜 중독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I'm not okay 첫번째 뮤직 비디오를 보면 중간에 제라드가 작업 도중 고통스러워하며 기어다니다시피 바닥에 엎어지는 장면도 있다.[18] 후렴구인 Car↗ry ↗On~ 부분을 Car↘ry ↘↘On↘↘~ 이렇게 부른다. 저 화살표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19] 노래를 부를 때 특정 구간이나 발음에서 입술을 안으로 마는 습관이 생겼다.[20] My Chemical Romance's Gerard Way Taps Another Nail Into "Emo" Coffin(롤링스톤)[21] Emo 장르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시작한 것은 3집 활동 시의 일이었다.[22] 해체 이후 제라드가 한 인터뷰에서, 이 당시부터 어린 팬들을 보호해야하는 입장에 서야했던 막중한 부담감에 관해 이야기한 내용이 있다. 이는 간접적으로 제라드가 해체를 결심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23] MCR + Army, 즉 MCR군단[24] 케빈 스미스의 프로그램에서 5집 작업중이라고 발언한 영상[25] 2012년 5월 19일 Blink-182의 대타로 진행한 뉴저지 공연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이 공연은 MCR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이 되었다.[26] 팬의 재결성 질문에 대한 프랭크의 대답[27] 제라드가 우울증이 걸린 동생을 위해 쓴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가 바로 'Famous Last Words'이다.[28] 노래 'Teenagers' 가사 중 일부[29] 'Teenagers'와 조회수 차이가 약 1백만 차이가 난다.[30] 재밌는건 one ok rock의 곡 중에 'The Begining'이라는 곡이 있다는 것이다.[31] ETF는 마이 케미컬 로맨스에 의해 평가된 지역 라디오 대회에서 우승을 했던 전적이 있다.[32] MCR 버전은 모든 희망을 잃고 절규하는 느낌을 준다면 TOP 버전은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33] 전자는 분위기가 바뀌어도 너무 '이질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서 "이건 그냥 딴 노래잖아"라는 반응이다. MCR에 비해 너무 가벼운 느낌을 주긴 한다. 그나마 들어줄만하다는 평이 있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노래 자체에 힘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