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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2:03:56

조선왕조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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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
파일:조왕톡.png
장르 사극, 개그
작가 무적핑크
연재처 네이버 웹툰 #
연재 기간 2014. 12. 09. ~
연재 주기 수 · 일
단행본
권수
7권 (2017. 08. 28. 完)
이용 등급 전체 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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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개그 웹툰. 작가는 《실질객관동화》와 《실질객관영화》를 그린 무적핑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왕조실록패러디한 것이다. 2024년을 기준으로 5년 째 휴재중이었다가...

마침내 2024년 11월 30일에 돌아왔다. 이번엔 실록에 기록은 되었으나 조명 받지 못한 인물들을 메인으로 다룬다.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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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시즌 1 시즌 2
어느 날 메신저로 찾아온, 조선 시대 그분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조선 시대 인물들의 일화를 네이버의 메신저 라인[1]으로 알려 주는 짤방 모음집이다. 본격 한국사 소재 카톡 짤방이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조선 시대 인물들이 카톡을 하는 내용.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관들이 쓴 실록에 요약내용과 픽션이 나온다.[2] 그러므로 만화에 그림은 거의 없고 카톡만 나온다. 그나마 네이버 연재를 하면서 그림이 늘어난 것으로 페이스북 연재에서는 그림이 아예 없고 카톡만 나왔다. 어떤 느낌인지는 리뷰 스샷만 봐도 대강 알 수 있다.

2.1. 에피소드

시즌제로 웹툰을 그린다.

2.1.1. 시즌1

2.1.2. 시즌2

2.1.3. 시즌3

3. 연재 현황

무적핑크가 정식 연재 전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올리면서 뉴스에도 나오고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팟캐스트 특별 공개방송에서도 소개되는 등 화제가 되었다. 이후 네이버 웹툰에서 2014년 12월 9일부터 정식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 주기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조선의 역사는 472년이지만 자료 조사나 각색 등의 이유로 연재와 휴재가 반복되는 듯하다.

2015년 9월 29일에 82화를 끝으로 10월 한 달간 휴재에 들어갔다. 2015년 11월 4일에 시즌 2로 연재가 재개되었다. 시즌 2는 임진왜란에 집중하여 연재되었다. 참고로 시즌 2에서는 마지막 부분마다 "그리하였다고 한다. 끝."이라고 하며 실록을 쓰던 사관들이 도망쳐서[9] 실록을 쓰는 자리가 한동안 공석이었다. 그러다가 90화 마지막에서 권율에게 패하여 도망치는 왜군이 그 자리를 지나가는 장면이 나왔다.

2018년 1월 7일에 300화로 시즌 2를 끝내고 3월 봄까지 휴재에 들어갔다. 매 화가 끝나고 나면 나오고는 했던 조선 역사 연표 뒤쪽에 새로 추가된 파트로 보아[10] 조선 이후 대한제국, 일제강점기까지 추가로 다룰 예정인 듯하다. 대한제국톡 단독연재는 아니고 기존에 다루던 조선사도 그대로 다룰 거라고 했다.

2018년 4월 22일 시즌 3으로 등장한다고 핑크잼 공식 페북에 떴다.#

2018년 4월 21일 301편 '사랑의 발냄새타인데이'로 재연재를 시작하였다.

2018년 11월 17일에 356화를 마치고 작가의 건강상 문제로 잠시가 아니고 오래 휴재하게 되었다.[11] 아직도 팬들이 마지막 화 댓글칸에서 끝말잇기, 베스킨라빈스 31, 쿵쿵따 등을 하며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웹툰 썸네일이 바뀐 걸로 봐서 복귀 플래그인 것 같았지만 여전히 기약 없이 연중 상태이다.

2023년 9월 14일 작가가 작가홈을 통해 조선왕조실톡 연재에 대한 직접 언급했다. 조선왕조실톡을 깔끔하게 마무리 할 예정이라며, 복귀 날짜는 미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당분간은 삼국지톡에 집중하니, 기다려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2024년 9월 5일 삼국지톡이 완결한 후 작가가 작가홈에 coming right up이란 말과 함께 조선왕조실톡의 연재를 준비하고 있다 말했다.

2024년 11월 29일 휴재를 끝내고 수요, 일요 웹툰으로 바뀌었다.

4. 특징

기사에서 밝힌 바로는 실록과 함께 조선시대 4대 기본 사서(史書)로 불리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을 참고 한다고 한다.

묘호는 왕이 승하한 뒤 붙이는 이름이지만, 이 웹툰에서는 편의상 서로 묘호로 부른다.

일부에서는 작가 특유의 중2병 문체와 우리나라의 역사적 위인들과 왕족들을 대상으로 다소 가벼운 언어들과 은어들을 사용함으로써 희화화를 시킨다[12]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 부분은 유,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육용 만화들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와이랩에서는 The Chat of Joseon Dynasty로 제목을 영어로 번역했는데, 정작 영문판은 없다.

4.1. 패러디

은근히 현대의 SNS를 패러디한 조선판 SNS 등 현대의 것을 패러디한 것이 많이 보인다.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이 음차이다.

목록은 원작 - 패러디 순으로 설명되어있다.

5. 왕족 묘사

5.1. 태조

눈썹이 진하게 그려져 있다. 초반에는 얼굴이 그려져 있다가 이후로는 어진이 얼굴이 되었다. 메신저로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다섯째 아들 방원이 궁궐에 제대로 피 바람을 불러온 터라 둘째 방과가 양위하고 격구를 즐기고 싶다고 하자 찬성도 반대도 못하고 좋을 대로 하라고 한다. 왕자의 난으로 트라우마가 심한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왕위에서 내려온 이후 셋째 아들에게 한 마디하라는 기자의 부탁에 말은 커녕 침묵한 채 법규를 날렸다. 이 때문에 태종에겐 태조 삐성계라며 삐져있다고 언급된다.[27]

제목이 조선왕조실톡이지만 이성계가 고려 때부터 활동한 장수 출신인 만큼 위화도 회군 편도 연재되었었다.

5.2. 정종

프로필 사진은 식은 땀 흘리고 있는 자신.[28] 형제들 중에서 가족♡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평화를 추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다섯 째 동생이 큰 일을 벌려놓은 터라 동생이 왕이 될 거라 예상했었는지 자기가 왕이 된다고 하자 놀라서 식은 땀을 흘렸다. 금방 왕세자인 셋째 동생에게[29] 양위를 해서 재위 기간이 짧다보니 등장이 적은 편이다.

격구광으로 묘사되었다. 결국 그는 편하게 격구하고 싶다며 동생에게 양위하고 왕위에서 내려온다. 그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격구를 했지만 정작 왕위에서 내려온 이후 60대에 생을 마감했는데 그 시대에 비교적 장수한 편이다(...)

10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쩔쩔매는 모습으로 자주 나오며, 은퇴 이후로는 오히려 편하게 살고 있었다.[30]

5.3. 태종

프로필 사진은 과거에도 급제한 엘리트였다는 기록을 반영한 안경을 쓴 채 턱을 괴고 있는 사진. 첫째 양녕대군 때문에 골머리 썩는 모습을 보여준다.결국 양녕을 폐위하고[31] 충녕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으나 위에 효령이 있어서 난감해했다. 왕실 법도상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효령이 해야 하지만 효령은 양녕과는 달리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어도 불교에 심취해 화도 안 내고 술도 안 마셨다. 태종과의 메신저 대화도 묵언수행을 하는 것인지 여래의 이모티콘만 보내서 태종을 답답하게 만든다. 태종은 결국 그에게 잠재돼있을 분노를 꺼내보려고 했으나[32] 허구헌날 웃는 탓에 짜증내기까지 했다. 결국 명나라 사신 대접 때 술도 마실 수 없는 효령대군 대신 똑똑한 셋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피바람을 불러왔기 때문에 부정적인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정말로 노력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특히 아버지로서 신경쓰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첫째 양녕이 여자와 노는 탓에 과외를 제대로 받지 않아 과외교사가 과외비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해 2번씩이나 회초리질한다.

왕자의 난 이후로 돌아선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이성계로 애교 삼행시를 날렸으나 이성계는 오히려 질색했다...[33]

은퇴한 형에게 첫눈빵[34]을 택배로 보냈는데 열자마자 나온 카드가...형님은 미끼를 물어분 것이여.ㅋㅋㅋㅋㅋ[35]

본인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김한로에게 글을 못 쓴다며 돈 많은 할아버지가 되어야 노인정에서 왕따 안 당한다고 발언한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인성 논란이 퍼졌다.

5.3.1. 양녕대군

태종의 첫째 아들이자 폐세자, 프로필 사진은 기록을 반영한 여자가 치마를 입은 다리 사진이다. 자기는 세자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충녕이 더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말한다. 과외도 받지 않아 과외 교사가 자체적으로 월급을 삭감까지 했고 아버지 태종까지 메신저를 차단해 태종이 도승지의 폰으로 연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회초리를 두 대 맞았고 여자를 밝히는 게 심해 동생 충녕대군에게 여자 백성 말고 남자 백성도 예뻐해달라며 디스 당한다.

이후 정신 못 차리고 아들 서산군의 연인까지 뺏자 내이투판에 만행을 폭로당한다.
5.3.1.1. 서산군
내이투판에 아버지에게 여친을 뺏긴 왕족이라며 익명으로 글을 올렸지만 다들 주작이라며 믿지 않자 인증글까지 첨부해 자기 맞다며 억울해한다. 숙부인 세종이 위로 차원에서 고기 기프티콘까지 선물했으나 서산군이 살인까지 저지르며 엇나가자 척추뼈가 사맛디 않게 해줘?라며 불호령을 듣게 되었다(...)

5.3.2. 효령대군

프로필 사진은 자신의 초상화, 태종이 양녕을 폐위하고 효령을 세자로 책봉해야 해서 난감해한다. 효령은 독실한 불교 신자라 대화도 묵언수행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안하고 여래의 이모티콘만 보낸다. 태종이 분노하라고 마구 약올려도 웃는 여래의 사진으로 화답한다. 결국 화도 안 내고 술도 못 마시고 조선이 호구 취급 받을 수 있다며 태종은 효령을 세자 자리에서 탈락 시킨다. 이후 기레기들이 세자 자리에서 떨어져서 속쓰리지 않냐며 동생에게 한 마디 하라며 약올렸지만 효령은 불상 얼굴을 한 채로 충녕을 응원하며 플레어를 내뿜어 기레기들의 눈을 멀게 했다(...)

5.4. 세종

문서가 분리되었다. 세종(조선왕조실톡) 참조.

5.5. 문종

기존에 유명했던 이미지인 허약함, 세자빈의 바람, 아버지동생의 그림자에 가려진 왕이었던 문종이었지만 이 만화에서는 그 이미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만화에서 보여주는 문종은 허약하고 무능한 이미지기 아니라 바로 훈내 나는 밀덕. 명나라 사신들도 슈돌에 등장하는 아기들 예뻐하듯이 사진도 찍고 난리도 아니었다.[37] 하지만 이후 연재 된 결혼 생활 편에서 불운함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말았다...[38]

세 번째 부인인 현덕왕후와는 금슬도 좋았으나 아들을 낳고 사망해버린 탓에 결국 더 이상의 재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39] 이어 엄마 없이 클 아들을 걱정하던 찰나에 동생 진양대군이 자기가 조카를 지키겠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군호를 바꿨으니 다시 저장해야 된다며 알려준 새 군호가... 수양대군이었다. 이 때문에 아내들과 동생에게 뒤통수 맞은 불쌍한 왕으로 등극했다.

5.6. 단종

프로필 사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자기 자신.

등장 당시는 이미 폐위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된 이후였다. 그의 나이 고작 열일곱에 숙부에게 사약이 내려져 사망하게 된다. 이후 크리스마스 이브에 웃고 떠드는 커플 단톡방에 들어와서는 자기 제삿날에 웃고 떠드니 좋냐며 슬퍼한다. 하지만 그의 제삿날은 음력이라 이브랑은 상관없었다.[40]

어린 나이에 즉위해 일찍 폐위되고 사망한 왕이라 분량은 적은 편이다.

5.7. 세조

프로필 사진은 피 묻은 철퇴를 든 사진. 이미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이미지는 회식 러버에 중전 바보, 세자 바보다.

5.8. 예종

사망한 건 현대 기준 성인이 된 이후였으나 주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만 등장한다.

중학생 나이의 세자빈과 아이 만들자고 조르지만 세자빈은 초등학생의 나이인 남편이 그냥 애처럼 보였는지 실컷 놀리다가[42] 예종이 곰 세마리를 부르며 애교를 피우자 귀여웠는지 애기는 황새가 물어준다는 둥 끝까지 놀리자 돌변하더니 잡아먹는다고 했고 이후 그의 나이 열두 살에 아빠가 되었다(!) (세조가 당황하며 어찌한거냐 말하지만 손동작으로 그거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후 세자빈 한씨는 아기 낳은 지 3일 만에 사망했고 그도 즉위한 지 1년 만에 사망하고 만다. 이후 자성대비는 즉위하기엔 너무 어린 자기 손자 대신[43] 예종의 조카 자을산군을 궁궐로 불러들이는데 자을산군은 강아지를 데려가도 되냐고 한다. 그는 바로 조선 9대 왕 성종이다.

5.9. 성종

묘사는 다른 왕들과는 달리 얼굴이다. 프로필 사진도 매.[44]나름 동물 애호가 기믹으로 굳어졌으나 경국대전 반포라는 큰 업적은 제대로 묘사되지도 않았고 폐비 윤씨를 사약 먹여 죽이고 아들을 제대로 망친 아버지로 묘사되었다.[45]

사망 이후 자신과 작은 아들의 무덤이 임진왜란의 여파로 파헤쳐져 시신이 없어지자 멘붕이 왔었지만 큰 아들은 폐위된 왕이라 무덤이 한양 밖에 있어서 왜구의 도굴을 피할 수가 있어서 좋아하고 있었다.[46]

인조가 자기 아버지 정원대원군을 추숭하겠다고[47] 종묘에서 성종을 빼버릴까?하면서 고민하자 종묘듀스11로 자기는 왜 남겨놔야 하는지 내관에게 필사적으로 어필했다.[48]

5.10. 연산군

세자 시절 프로필 사진은 성군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자기 모습,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큰 비밀을 알고는 충격 받아 변해버렸고 이후 저지른 끔찍한 행적들로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되었다.[49] 폐위되고 강화도로 유배 된 이후로는 아파서 약을 지어달라 했으나 백성들에게도 무시당하고,[50] 장녹수와 자기 자식들도 처형 당한 이후 자기의 악행을 말리며 반정 때 도망치라고 했던 중전에게 다시 연락해봤으나 전송 실패해 연락이 되지 않는 씁쓸한 말로를 보여줬다.[51]

사망 이후 하늘에서 무덤이 파헤쳐져 시신이 없어져 아빠동생은 멘붕하고 있었으나 혼자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는 연산군이 폐위 당한 왕이라 무덤이 한양 밖에 있어서 왜구들이 피해갔기 때문이다.

5.11. 중종

주로 묘사되는 모습은 유리 익선관을 쓴 모습.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대신 유리 익선관을 쓰며 하루 아침에 왕이 된 중종을 신데렐라에 비유했다.

이미 중종은 드라마 대장금에서 임호가 연기했던 모습으로 더 대중들에게 익숙했던 터라 작가도 아예 그냥 맛있구나 왕으로 소개했다.

계속 신하들에게 끌려다니는 삶에 지쳐서 개혁을 시도했다. 그 파트너로 자신에게 유리 익선관을 내민 성균관 아이돌 조광조를 추천했고 제대로 반한다! 하지만 소격서 폐지 요구를 시작으로 점점 조광조에게 미운 털이 박히더니 주초위왕 사건까지 터지고 신하들 사이에서도 여론이 안 좋게 되자 결국 중종은 그에게 사약을 내린다...

중증 딸바보로 묘사된다. 효혜공주이질에 걸리자 부드러운 물티슈까지 갖고 가려 했을 정도... 당시 시대상으로는 10살의 나이에 결혼한 성인이었으나 현재 시대상으로는 여전히 아이나 다름없어서 애기 다루듯이 예뻐한다.

5.12. 인종

정사가 정사인 만큼 효자로 묘사되었다. 워낙 즉위기간에 짧음에도 분량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아버지 중종이 사망하고 장례를 치르는데 태종이 한 달로 줄여놓은 3년상을 9개월 동안 제대로 먹지 않아서 바짝 말라버렸고 왕궁 사람들이 유니세프에서 뛰어오겠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내버려두라고 했고 결국 9개월 만에 사망해버렸다. 이후 저승에서 한우 선물세트를 들고 아버지인 중종을 만나러 갔으나 왜 벌써 오냐며 헥토파스칼 킥을 맞았다(...)[52]

어린 동생인 경원대군과는 잘 지냈지만 김안로가 새어머니인 문정왕후 소생이라 훗날 뒤통수칠 수도 있다면서 경계를 강화하라고 하는데 소풍 나와서 도시락 먹을 때는 독을 탔을지도 모르니 은수저 사용을, 야구할 때는 거시기를 터트려서 후사를 못 보게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경원대군에게 사람들이 너무하다며 착해서 죽는 사람이 어딨냐고 했는데...[53]

5.13. 명종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문정왕후수렴청정을 해줬는데 이 때문에 나이를 먹어도 자기 뜻을 펼치지 못했다. 마의 령이라 하여 '엄명'을 따르느라 기가 눌렸었지만 문정왕후 사후 겨우 기 좀 펴보나 했더니 갑자기 쓰러져버린다. 일어나보니 덕흥대원군의 아들이자 명종의 조카 하성군이 세자 복장을 하고 명종의 사과를 깎고 있었다. 자긴 하성군을 세자로 삼지도 않았는데 왜 세자로 정했냐며 신하에게 불만을 표출하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후계자도 못 정하고 죽는 바람에 하성군이 결국 즉위하게 되었는데 이 하성군이 훗날의...

5.14. 선조

명종의 조카로, TEST라고 적힌 세자 복장으로 쓰러진 명종에게 사과를 깎아주고 있었다. 명종은 누구 맘대로 조카를 세자로 세우냐며 화를 냈지만 결국 제대로 후계자도 못 정하고 사망하는 바람에 선조가 왕이 된다.

프로필 사진은 등을 보인 자신의 모습. 작가가 임진왜란 특집을 연재하느라 분량은 많은 편이다. 다만 백성들을 두고 갔다며 까이고 있지만 역사웹툰인 만큼 이 부분은 정정해주는 독자들도 있다. 왕이 잡히면 그대로 조선은 왜구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해군 차별 말고도 이후 기타 행적들 때문에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자신이 피난 간 사이 아들 광해군이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서 하자 백성들의 민심이 모두 광해군을 향했고 선조는 이에 못마땅해 한다. 이후 아들에게 좋은 글들을 써서 보내 아들은 아버지가 화가 풀린 줄 알고 안심했으나 세로 드립으로 너 짜증나 눈깔아 재수없어라고 보낸 것이었다.

주상듀스 27에서 세종과 정조가 1위를 못하자 정철이 샤이 선조팬이 있는 것 같다고 하자 댓글로 병먹금을 당했다.

욕 먹어가면서 평안도로 피난 가있던 도중 증조 할바마마할바마마의 무덤이 임진왜란의 여파로 파헤쳐지는 바람에 안 그래도 정신없던 와중에 바깥에 나와있던 할바마마의 시신이 가짜라는 의혹이 제기되어 혼란스러워 했다. 이에 50년 전 궁궐에서 일했던 궁녀들에게 중종의 얼굴 그리기 대회를 열어서 시신과 비슷한 점이 있는지 알아보게 했지만 그때 일했던 궁녀들이 다 노인이 되어버린 터라 기억을 제대로 못했지만 그림에서 이마에 사마귀, 마른 체형이라는 점은 일치하게 묘사했다. 시신과는 정반대의 묘사,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사망하고 대마도주 평의지가 화해하자면서 당시 무덤을 파헤쳤던 왜구들을 보냈는데 왜구들은 무덤을 파헤쳤던 당시에 초등학생이었다면서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해 위신과 평화 유지를 위해 그 왜구들만 참형시키고 결국 관은 예물 등으로 채우고 다시 흙으로 덮어버렸다.

세자의 복장이 조선 중기 이후로 파란색으로 바뀐 게 세자 광해군이랑 같은 옷을 입는 게 기분 나쁘다고 선조가 바꿔버렸다는 것 때문이라는 게 드러나자 안 그래도 좋지 않던 평판이 바닥을 쳤다.[54]

한석봉극극극성팬으로 묘사된다. 명나라의 문장가 왕세정이 목마른 말이 냇가로 달려가는 것과 성난 사자가 돌을 치는 것 같다고 비유하자 칭찬임에도 한석봉의 글씨가 거칠 게 느껴지냐며 화를 냈다. 이 사랑은 어린 딸 정명공주에게도 대물림되어서 붓글씨 쓴다는 공주를 매우 예뻐했지만 그 사이엔 화가 난 광해군이 있었다...

5.15. 광해군

프로필 사진은 빨개진 자신의 눈에 안약을 넣는 본인의 사진.[55] 머리카락은 푸른색으로 묘사된다.

영창대군의 친모인 인목왕후가 자기보다 어린 것에 상당히 불만을 품었다. 덤으로 자신이 세자임에도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을 낳자 차별당한 것에 점점 불만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이후 14살인 영창대군을 집에 가두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죽이고 만다. 이 부분에 대해 독자들이 멀쩡한 아들을 다 망친 선조의 행적을 비난했다.

눈병에 걸려서 잘 보이질 않아 효도폰을 사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주상듀스27에선 다름아닌 이 분으로 묘사되었다. 덤으로 폐위 당한 탓에 F등급을 받았다(...)

5.16. 인조

큰아버지에 의해 동생 능창군이 죽고, 아버지 정원대원군마저 죽어버리자 광해군을 원망했고 결국 반정을 일으켜 큰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이 됐으나...

청나라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하며 치욕을 당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백성들에겐 사실상 조선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던 소현세자를 죽게 만든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아들이 청나라에서 돌아오고는 얼굴도 보려하지 않고 아들이 죽자 장례도 싼 것으로만, 아들의 사망 원인도 제대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후 며느리에게 욕설한 것까지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에겐 전혀 다르게 대우해준다. 이 때문에 독자들은 광해군과 영창대군을 차별한 선조가 선녀처럼 보인다며 재평가하기까지...[56]

하지만 이후 인조 역시 침으로 사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조가 사망한 건 소현세자에게 침을 놔줬던 이형익에게 침을 맞은 이후였다...[57] [58]이에 독자들은 벌 받은 거라며 조소한다.

재혼한다고 혼인해주오에 글을 올렸으나 이라는 엄청난 스펙에도 나이 때문에 줄줄이 퇴짜 맞았다. 잘 큰 아들 둘이 있는데 뭐가 문제냐며 백성들에게 조롱 당하기까지. 아무도 인조와 재혼하겠다고 나서질 않아 29살이나 어린 소녀를 중전으로 맞아들였다. 와중에 백성들에게 변태라고 욕먹기까지.

이렇게 맞아들인 부인을 쳐다도 보지 않고 네가 조용필을 아냐며 세대차이 때문에 거의 내버려두다시피 했다.

5.16.1. 소현세자

프로필 사진은 마스크를 쓴 자신. 청나라에서 온갖 고생 다 하고 돌아왔으나 정작 돌아온 건 사대부들의 차가운 시선과 아바마마의 차가운 독대 뿐이었다. 이후 학질이형익에게 침을 맞고 원인불명인 채 사망하게 된다.[59] 이후 자기 아내인 세자빈 강씨도 인조에게 욕설을 듣기까지 한다.

즉위하지 못하고 사망한 세자들 중에서 제일 분량이 많은 편이다. 아내 세자빈 강씨도 마찬가지.

5.17. 효종

아버지가 29살이나 어린 소녀[60]와 재혼 후 너무 어리다고 쳐다도 보질 않자 아바마마가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며 어마마마인 장렬왕후에게 토닥토닥하더니 세수하고 치카치카하라며 달래줬다(...)[61] 와중에 장렬왕후는 아들에게 존댓말을 쓰기까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와서 소현세자의 부고를 듣고 오열하고, "아빠 죽인거 알긴 할지?"라는 댓글을 보고 뭔 개소리냐고 기겁한다. 하지만 감기에 걸려서 인조가 형에게 침놓았던 바로 그 이형익을 데려와서 침을 놔주려 하자 귤을 한박스 다 먹고 하루만에 감기를 극복해버린다.[62]

아들 바보로 묘사된다.그리고 아들한테 신데렐라를 읽어주며 이거 ㄱ빡쳐라고 하기도 했다.[63][64] 아들이 이미 당시 시대 기준으로 장성한 성인임에도 수염까지 났다 감기 걸려서 밥도 거르자 아기 마냥 대한다.[65] 물론 다섯 공주도 다 예뻐했지만 유독 아들만 잔병 치레가 심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아들의 감기가 다 나았다며 기뻐하는 채팅을 보내는데 유독 오타가 많았다. 아들 현종은 폰을 바꿨냐고 묻지만 효종은 심각하게 종기 같은 게 한쪽 눈을 덮어버린 얼굴을 보여준다. 이후 어의 신가귀에게 침을 맞아서 치료하려 했으나 수전증 때문에 침을 잘못 놨고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작가는 본편에 효종이 어깨가 넓어 판자를 덧댄 관에 억지로 욱여넣은 기록까지 적었다.

하지만 효종이 사망한 이후 엄청난 키보드 배틀이 펼쳐진다...

5.18. 현종

병약한 이미지로 묘사된다. 특히 눈은 3_3 이렇게 묘사된다.[66] 이 때문에 아빠 효종과 엄마 인선왕후가 아주 아기 마냥 대한다.

배탈로 인해 뒷간 휴지를 다 써버리고 복이나인이 탕비실 갔다오겠다고 하자 "내 방에 종이(신하들이 쓴 사직서)가 산더미처럼 있으니까 비벼서 갖다달라"고 한다.

다른 왕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며[67] 아예 작가가 현종 편을 따로 만들어줄 정도였다. 묘사된 모습은 중전 바보에 누나들과는 현실 남매 사이.

약해진 왕권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고생하다 사망했다. 이후 아버지 현종의 장례를 치르던 세자가 빌드업을 하려한다...[68]

5.19. 숙종

역시나 인현왕후장희빈과의 이야기가 묘사되었다. 숙종의 변덕스러움 때문에 독자들 사이에서 숙종의 평가는 좋지 못한 편.

삼국지관우를 덕질했다는 기록이 연재되었다. 그런데 이후 작가가 삼국지톡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음슴체를 쓰며 성지순례하는 독자들이 늘었다. 본편에서 관우 미모가 뛰어난 탓에 다들 자기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가 간다고 답했다.

숙종의 성격이 성격인 만큼 어릴 때에 대해서도 나왔다. 당연히 싸가지 없는 모습으로 등장.[69]

5.20. 경종

후덕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성불구자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본편에서 묘사되었다.[70]

아이가 생기지 않자 선의왕후는 입양이라도 하자며 격려해준다. 하지만 이후 그들은 노론의 입김에 27살 아기를 입양한다(?)

엄마가 억울하게 사망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희빈 장씨도 숙종의 변덕, 당파 싸움의 희생자라며 동정의 여론도 있는 편이다.

후덕한 모습과 더불어 병약하게 묘사된다. 화병을 달고 산 탓에 밥을 잘 먹질 않았으나 오랜만에 수랏상에 올라온 간장게장과 생감을 다 비우고 이후 경종은 사망했다...[71] 이 이후 경종의 사망원인은 왕세제(弟)인 동생의 곁을 평생 떠돌게 한다...

엄마가 쫓겨나고 서류상 엄마인 인현왕후와는 어색했었고 인현왕후도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의 자식이라 화가 치밀었지만 어린 경종의 지극한 효심에 감동해서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경종은 친엄마와 새엄마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5.21. 영조

프로필 사진과 얼굴은 자신의 어진, 실제로는 장수한 왕, 업적도 많은 왕이었으나 아들 사도세자에겐 최악의 아버지로 등극되었다. 거의 아들을 망친 원인으로 묘사되었다. 선조, 인조와 더불어 3대 막장 아버지로 나왔을 정도. 그래도 업적이 있는 터라 비교적 욕은 덜 먹는 편이다.

젖소 사랑이 대단해서[72] 아들 사도 세자가 소를 아끼는 영조에게 소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애교도 부렸지만 영조는 미친 놈이라고 답하고 나가버렸다.

자기만 웃기고 웃기지도 않은 무례한 임금님 개그를 아들에게 시전한다. 오죽하면 신하들은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새색시 마냥 왜 그러냐는 농담을 듣자 자기들이 다 창피해했을 정도. 작가는 태종과 세조보다 더한 최고의 모욕 플레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아들 사도세자를 '덜 떨어진 놈'이라고 저장해놨다.

삼국지톡에서 유부녀에 미쳐 적장자를 죽게 만든 아버지호적을 탈부착식으로 쓰고 셋째만 편애한 아버지, 장수가 아닌 양자로 입양해 괜히 문제만 일으킨 아버지 등 막장 아버지가 등장하자 꾸준히 누구는 아들을 뒤주에 가뒀다며 같이 언급된다.

5.21.1. 사도세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혹독한 교육을 받으며 외롭게 컸다. 이 때문에 사도세자가 훗날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독자들은 영조가 가정교육을 잘못 시켰기 때문에 변한 거라며 동정하기도 했다.

영조가 젖소를 좋아하는 걸 보고는 젖소 소리를 흉내내며 애교도 부려봤지만 아버지에게 미친 놈이라고 욕만 먹고 9년 뒤 뒤주에 갇혀 죽게 되었다...[73]

5.22. 정조

프로필 사진은 자신의 어진, 조선왕조실톡 중후반부에 자주 등장했다. 작가가 정조 팬클럽을 만든 이력이 있는 만큼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어째서인지 묘사는 욕쟁이.[74][75]

신하들에게 기습 퀴즈대회를 열어서 틀린 사람은 창덕궁 부용지 안에 있는 섬으로 유배 보냈다고 한다.오늘 하루도 유쾌했도다. 껄껄껄껄... 아...전하...카메라 치워요....

신하들의 뒤통수로 화나있었다. 이후 궁궐을 지나가다가 웬 성균관 유생과 부딪혔고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냐며 이름이 뭐냐고 묻자 그 유생은... 이후 정조는 그 유생에게 제대로 반한다.

김홍도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이것저것 시키는 데 흡사 모습이 조선 초기의 세종 보는 느낌과 흡사했다. 이후 김홍도에게 비밀리에 대마도 지도 좀 그려오라고 시켜서 대마도로 보냈고 중간에 계속 톡을 보냈다.홍도야....홍도야 혹시 죽었니? 그러다가 김홍도가 미션 클리어라는 문자와 함께 도주중인 사진을 보내면서 만족을 했다.왜 자꾸 소신에게 이상한 거 시키시는 겁니까! 사랑해서^^

5.23. 순조

어진이 불에 탔다보니 본인의 이모티콘마저도 반쯤 까맣게 칠해져서 나온다.

허약한 몸 때문에 나랏일을 조별과제 잠수타듯이 해서 신하들이 골머리를 썩는 모습이 나온다. 결국 대리청정을 언급하자 신하 중 한 명인 남공철이 실수로 좋아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는데 실수가 아닌 듯 했다(...)

5.23.1. 효명세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진이 불에 타버려서 프로필 사진도 반쯤 불에 탄 어진이다.

허약한 아버지 대신 대리청정을 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때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세지도 바꿨는데 구르미 그린 달빛에 등장하는 이영의 실제 모델 아니랄까봐 프로필 사진은 드라마 장면 패러디이며, 상태 메세지는 불허한다, 내 서류다.라고 적어놨다(...) 열심히 일하다가 젊은 나이에 급사해버려서 아직 유치원생 나이인 아들 이 상주 복장으로 아기 상어를 듣고 있었다...

5.24. 헌종

주상듀스 27에서 세종, 정조를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의아해할 줄 알았으나 백성들은 인정한다는 반응(!) 이유인즉슨 헌종은 조선 왕들 중에서 미남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76] 다만 사진은 커녕 초상화도 불타 없어지는 바람에 얼굴 묘사는 선원보략에 실린 삽화로 되어 있다(...) [77]

어렸을 때 아버지 효명세자를 일찍 여의어서 얼굴도 모르지만[78] 효명세자를 모셨던 궁녀가 똑닮았다고 증언해 아버지의 얼굴을 궁금해해서 자기 얼굴 셀카를 자주 찍는 걸로 묘사된다. 슬픈 장면이지만 궁인들은 어째서인지 창피해한다(...)

5.25. 철종

얼굴은 어진으로 묘사되었다. 왕족이긴 했으나 공부와는 거리 둔 삶을 살아서 그런지 맞춤법도 엉망으로 쓴다. 재위 기간은 짧았으나 사랑하는 연인도 잃고 상당히 슬프게 묘사된다.

5.26. 고종

얼굴은 본격적으로 사진이 나오기 시작했던 터라 실제 고종의 사진으로 나온다.

조선에 맞춰져 있던 소프트웨어를 대한제국에 걸맞게 업그레이드한다.

덕률풍이 개발되자 들여와서 안방부터 무덤까지 설치해달라고 요청한다. 그 무덤의 주인은 바로 명성황후. 담당하던 신하가 왕의 전화도 어명이라면서 어명 받잡기 전에 절하다가 허벅지에 담이 와서 3분 뒤에 다시 걸어달라고 하자 화상이라고 하더니 전화가 연결되자 태연I를 불러줬다.

5.27. 순종

그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무기한 휴재 직전에 겨우 등장했다. 프로필 사진은 순종의 사진.

고종이 유배보낸 김홍륙에게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받은[79] 고종이 아들에게 같이 마시자며 보내서 커피를 마셨지만 고종은 맛이 이상해서 금방 뱉었고 순종에게 먹지 말라고 했으나 순종은 이미 다 마셔서 건강을 해친 뒤였다...

이후 순종은 결국 후유증 때문에 치아가 다 빠져버려서 평생 틀니를 하고 살게 되었다. 상태 메세지는 이 때문에 "임플란트 중"이라고 쓰여있다.

6.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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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단행본

01권 02권 03권
파일:조선왕조실톡1권.jpg
파일:조선왕조실톡2권.jpg
파일:조선왕조실톡3권.jp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년 08월 17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년 12월 17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년 04월 15일
04권 05권 06권
파일:조선왕조실톡4권.jpg
파일:조선왕조실톡5권.jpg
파일:조선왕조실톡6권.jp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년 07월 27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년 12월 23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년 04월 25일
<rowcolor=#010101> 07권
파일:조선왕조실톡7권.jp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년 08월 28일
2015년 8월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공저자로 이한이 있는데 대중 역사서들을 집필한 작가이며 이 책에서는 내용 해설을 맡았다.

8. 미디어 믹스

8.1. 드라마

MBC every1의 프로그램 웹툰히어로 툰드라쇼를 통해 드라마화 되었다.

2015년 7월 27일부터 2015년 10월 19일까지 툰드라쇼 1에서 방영했으며, 2016년 1월 28일부터 2016년 4월 14일까지 웹툰히어로 툰드라쇼 2에서 방영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세종이 자신을 ''이라고 부르면서 안드로메다로 간 고증을 보여주었다.[80] 문제는 바로 이 드라마화가 된 시점에서 가장 최근화였던 62화와 63화의 주요 키워드가 '전하'와 '폐하', '짐'과 '과인'이었다는 것이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도 아무 곳에서나 나오는 등,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참고로 만든 웹툰의 드라마화라고 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8.2. NFT

2023년 5월 15일 출시되었다. #

9. 기타


[1] 라인이 신버전으로 업데이트되자 웹툰상의 라인도 신버전으로 바꾸었으며 시즌 2에서는 와이파이 감도도 조절했다. 그리고 작가가 한동안 와이파이를 까먹어서 몇 화 동안 1칸으로 고정되어있다가 댓글을 보고 고쳤다고 한다.[2] 이 부분도 시즌 2부터 갈아엎어졌으며 중간에 '픽션' 부분이 나오는 휴대폰에 연결되어 있는 이어폰 때문에 요약 내용이 잘보이지 않는다고 독자들이 호소하자 이어폰 선을 줄이거나, 아애 없애버렸다. 그러나 이어폰을 꼽는 부분은 없어졌어도 밑의 이어폰 선이 그대로 남아있어 어색하다.[3] 참고로 새벽에 갓 올라왔을 때에는 내용이 달랐다. 완결인 줄 알았다고 하는 베스트 댓글들은 새벽에 올라왔던 3.1절 편이 꽤 어두운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4] 이 에피소드로 인해 어느 금요 웹툰 팬들의 멘탈이 부숴졌다고 한다.(...)[5] 중간에 실제로 나무위키가 나왔다. 개요, 상위문서 등 나무위키 용어도 꽤 나온다.[6] 그날은 실제 무적핑크생일이었다[7] 조선시대 이전의 이야기라 고려왕조실톡으로 바뀌어 있다.[8] 제목부터가 자국 혐오적인 단어를 담고 있고, 만화의 내용에서도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함에도 독자 중 아무도 이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목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는 베스트 댓글이 있을 정도였다. 또한 이러한 자국 혐오성 용어를 지적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추천 폭탄을 맞은 상황이었다.[9] 83화에서 왜군이 쳐들어온 것을 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오고, 84화에서 도망치는 장면이 나온다. 100화에는 아이들을 돌보는 그림이 나온다. 구름이 그린 달빛 특집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등 각종 귀여운 모습들이 많이 나왔다.[10] 기존에는 1392년부터 1910년까지만 나와 있었지만 1945년까지의 짧은 칸이 새로 추가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또한 지금까지처럼 태조~철종까지 모두 등장하고 거기에 고종, 순종, 임시정부를 끼얹는다는 부연설명이 쓰여 있다.[11] 무적핑크의 다른 작품인 삼국지톡은 정상적으로 연재되고 있지만 삼국지톡은 이리가 그리는 만화이다. 즉, 건강 문제로 그림은 그리기가 힘들고 글만 쓸 수 있는 상황인 듯하다.[12] 이는 나무위키의 역사 관련 문서에서도 심심찮게 보이는 문제점이다.[13] 인스타그램이 소식을 주고받는 것을 생각하면 적절한 이름이다.[14] face의 f가 얼굴 顔(안)으로 바뀌었다.[15] 하지만 대만/중국에선 진짜로 臉書라고 훈차한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얼굴책.(Face가 臉이고 Book가 書으로 번역된다.)[16] 고려시대 사람이 조선시대 사람에게 봉화를 보내는 것으로 나온다.[17] 맥크리의 풀네임은 제시 맥크리이다. 제시가 최랑 발음이 비슷하다. 최씨 막구리라고 읽어보면 더 알기 쉽다. 하지만 진짜 맥크리쪽은 제시가 이름이라는게 함정이다.[18] 사실 침이 아니라 등에 난 가시 뼈이다.[19] Vol.1은 가오갤 2의 넘버링 패러디로 추정된다.[20] 교서 위조문서에 이렇게 씌어있었다.[21] 가사 중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는 122화에서 "피보라 휘날리며 흩날리는 오랑캐들 이역만리 북벌길을 둘이 걸으소"로 패러디되었다.[22] 심청가리믹스라고 한다. 암 욜 효녀 anywhere 암 욜 효녀 anywhere 줄게 my 삼백석 #[23] 250화에서 무려 아내 몰래 구매한 30냥짜리 벼루로 나온다.[24] 이순신 장군의 말에 따르면 옛 성현이라는 설정이다. 올마갈아[25] 정조심환지에게 시전한다.[26] 우루롱은 근심 우, 눈물 루, 흐릿할 롱으로 나라를 근심해서 눈물로 앞이 흐려진 군자의 마음이라고 한다.[27] 하지만 태종이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인 상황이라 삐진 게 아니라 분노해도 시원찮은 게 당연하다.[28] 형제의 난으로 두 명의 동생을 죽인 방원에게 겁이 난 모습을 묘사한 듯하다.[29] 장남인 정종의 형 진안대군 이방우는 정종이 즉위하기 5년 전에 이미 사망했다.[30] 작중 나오는 어린시절 사진과 비교하면 대조적인데 어린시절에는 쾌활한 이미지의 모습으로 동생인 방원을 껴안으며 웃고 있었고 그 사진 밑에는 '공부벌레 이방원. 가끔은 형하고도 좀 놀자.'라는 글이 써져있었다.[31] 가뜩이나 어리 문제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당시 놀음이나 다름없던 바둑까지 두고 있었다. 그리고 태종은 몸소 바둑알로 KILL을 만들어 준 뒤 "니 방으로 어여 튀어와."를 시전해주셨다.[32] 분노를 표출하는 이모티콘도 선물했다. 하지만 효령은 여래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 괜히 태종만 열받게 만든다.[33] 이건 픽션이 아니라 실제 기록을 반영한 부분이다(!) 태종은 태조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설설기며 춤까지 췄다고!!!아버지에게 잘 보이려는 삼십대 아저씨의 똥꼬쇼 흡사 용의 눈물 아바마마 보십시요 소자가 병신같이 춤을 추고 있사옵니다~[34] 고려시대 풍속으로, 첫눈을 포장해 상대에게 보내서 상대가 알아채면 상대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면 본인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벌칙은 한턱내기.[35] 어떻게 보면 흔하디 흔은 형제간의 장난 같지만 태종 입장에서는 절실한 상황이었는데 이 당시면 정말 태종이 왕이 아니라 그냥 인간 이방원, 동생 이방원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둘째 형인 정종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큰 형인 이방우는 조선 건국 되기도 전에 죽었고 바로 위에 형인 이방간은 왕자의 난으로 귀양 보낸데다 왕자 신분도 못 쓰게 만들었고 셋째 형인 이방의는 이 시점이면 지병으로 죽었을 상황이고 아내하고도 처남들 문제로 갈라선 상황이기 때문이다.[36] 이에 황희가 어느정도 위로하듯이 말하려 했지만 태종은 자조 섞인 말투로 "왜 그 예시 여기 있잖아. 이복동생 둘 죽이고 친형 칼로 잡아 제끼고 아버지 가슴에 대못 박고 왕 자리 오른 새끼 여기 있잖아." 라고 자기를 표현했었다.[37] 심지어 세자 시절에는 사신들이 무슨 아이돌 보듯이 외모가 수려하다는 말을 했었다. 그 예시로 차은우 급 외모로 보듯이 말했었다.[38] 첫번째 후궁인 휘빈 김씨는 주술에 빠져서 갈려나갔고 두번째 후궁인 순빈 봉씨는 궁녀하고 사랑에 빠져 레즈비언 짓을 하다가 걸려서 쫒겨났다.[39] 실제로 문종은 종묘에 중전 없이 올라간 유일한 왕이다.[40] 성종도 다른 해 비슷한 날에 사망했다.[41] 궁궐 안 사람들의 의식주를 담당하는 일[42] 기저귀 가는 법 아냐고 물어봤지만 어린 예종은 맞춤법 다 틀려가며 기저귀 가는 법 검색까지 했다.[43] 이때 있었던 손자는 예종이 12살 때 본 인성대군이 아닌 제안대군이다. 인성대군은 아기 때 사망했다. 자성대비가 제안대군 대신 자을산군을 왕으로 세워서 그렇게 제안대군은 엄연히 살아있는 적장자임에도 왕위 근처도 못 가보게 되었다. 다만 왕실의 어른 취급을 받으며 나름 천수를 누리다 갔다.[44] 매를 좋아했다는 기록을 반영했다.[45] 아바마마 어딜 가시옵니까 특집에선 상담사가 아빠가 엄마를 죽였는데 안 미치고 배기겠냐며 일갈했고 동물을 붙여주면 괜찮지 않겠냐고 묻자 어린 아들은 이미 변해버려서 "강아지 죽일 거야"라고 답해 괜히 눈물만 짓게 되었다(...)[46] 그도 그럴게 아버지 성종은 연산군이 왕되고 나서 계속 아버지처럼 하라는 강요를 받았다보니 커서 좋게 볼리가 없고 중종은 자기 몰아내고 왕된 애니 연산군 입장에서는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47] 추숭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숭된 사례가 있다.[48] 하지만 말만 꺼냈지 업적이 있어서 남겨놨다.[49] 다만 이 웹툰은 폐비 윤씨 사후부터 연산군이 싸이코패스마냥 변해버렸다고 묘사한 적도 있었다. 물론 특집이긴 하다. 동물 인형들을 죄다 음란 행위를 시킨다든지, 가렴주구랍시고 인형을 발로 밟는다든지, 인형들을 죄다 찢어놓고는 사림들 내장으로 줄넘기라는 끔찍한 놀이를 했다... 상담사 말로는 아빠가 엄마 죽였는데 애가 안 미치고 배기겠냐고... 동물을 붙여주면 낫겠지 않냐는 아빠 성종의 질문에 아들 연산군 "강아지 죽일 거야"라며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암시해버렸다. 물론 실제로는 갑자사화 이전에는 제정신이었고 애초에 그정도였다면 성종도 답도없다 여겨 폐위했겠지만. 조선이 적장자 승계를 중요시하지만 적장자가 도저히 왕이 될만한 사람이 아닐 경우에는 다른 사람(차자 이하)에게 넘기게끔 되어 있었다.[50] 연산군이 한 짓을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51] 연산군의 유언은 중전 신씨가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52] 중종曰: 왜왔어!!!!![53] 근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54] 그런 와중에도 광해군은 새로은 세자 복장도 나쁘지 않다며 자신을 위로 했었다. 하지만 영창대군이 태어나고 선조가 톡방에 갓난 아기인 영창대군이 왕과 같은 색의 복장을 입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대신들이 이에 왕자는 왕과 같은 색 옷 못 입는다고 하시지 않으셨냐고 말하자 선조 曰 :뭐 어때? 내 아들인데. 라고 답했고 그 다음 순간 광해군은 폰을 내 던져 버렸다. 光해가 狂해가 되는 순간.[55] 눈병을 심하게 앓았다는 기록을 반영한 것이다.[56] 선조, 영조와 더불어 막장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지만 선조는 그나마 백성들을 두고 도망친 것은 나라의 수장이 잡혀 왜에게 나라를 넘기는 일이 없게끔 하기 위해 도망친 것이라 해당 부분을 정정해주는 사람도 있고, 영조도 업적이 많아서 성군이라 불리고 있지만 인조는 그럴 만한 여지도 딱히 없어서 제일 욕을 많이 먹고 있다.[57] 어의도 같고 침을 맞기 전 진단명도 같고 침 맞고 의식불명이 된 것까지 똑같았다.[58] 그는 ‘정석을 거부하는 프리스타일 침놓기’로도 유명했다.맛도리가 간듯[59] 독살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었다.[60] 형인 소현세자와는 띠동갑에 당시 봉림대군이었던 효종보다도 5살 어렸었다.[61] 현대 패치가 돼서 그렇지 당시 15살이면 혼인이 가능한 성인 맞다.[62] 실제로 저러진 않았을거다. 아무렴.[63] 송시열이 불러도 안왔기 때문[64] 실제 기록에서도 효종이 자식들을 끔찍이 아꼈다고 기록되어 있다.[65] 인선왕후 역시 아들의 밥을 맘마라고 하고 코한다고 답장한다.[66] 눈병에 자주 시달렸다는 기록을 반영했다.[67] 경종, 인종도 마찬가지.[68] 더 가관인 건 현종이 쓰러진 상황에서도 송시열 등의 일원과 허목을 중심으로 한 남인들이 이 상황에서도 사직서 누가 먼저 낼까하며 지들끼리 히히덕거리고 있다가 현종이 자기 쓰러진 사진을 찍어서 "니들 진짜 마지막까지 너무한다."라는 글까지 보내자 그제서야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알아채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현종의 장례를 치른 세자는 그 동안 신하들이 쓴 사직서들을 험악한 인상을 쓰면서 북북 찢고 있었다. 이 때 베스트 댓글이 숙종 : 니네가 씨발 우리 아버지 무시했냐? 였다. 이 세자가 바로 숙종이다.[69] 숙종의 성질은 한 성질머리하던 어머니 명성왕후도 학을 뗄 정도였다.[70] 인터넷에 그가 성불구자일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이 만화로 제작되어 올라왔다. 제일 유명한 루머가 장희빈이 경종의 그 부위를 세게 움켜쥐어서 성불구자가 되었다는 루머인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게 사실이라면 왕이 적지 말라고 한 것까지 적는 실록에 진작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해당 부분은 WHY? 조선후기 편에선 배꼽을 움켜쥐어 기절시켰다고 바뀌었다.[71] 간장게장과 감의 궁합은 조개옥수수, 복숭아장어의 조합만큼 몸에 좋지 않다고 한다.[72] 저 당시엔 젖소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소의 젖을 마신 것이다.[73] 소 흉내를 내진 않았지만 정조가 쓰던 아기 모자를 써가면서 영조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었다고 한다.[74] 독자들은 아버지의 사망, 암살 위협, 성불구자 음해 등 정조가 겪은 풍파를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고 한다.[75] 또한 대중매체에서 흔히 전해지는 '아버지를 죽인 노론과 싸우다 암살당한 비운의 군주' 이미지와도 상당히 거리가 멀게 묘사된다[76] 다만 당시 미의 기준은 지금하고 다르고 오히려 현재의 미의 기준에 가깝게 묘사된 건 연산군이다.[77] 이 초상화는 상당히 노안이라서 실제 선원보략에 나온 영조처럼 실제 영조의 어진하고 달라 실물이 아닐수 있다[78] 본편에선 제대로 나온 사진도 없고 있는 사진마저 얼굴이 흐리게 나왔다.[79] 기프티콘엔 김홍륙이 보냈다고 쓰여있진 않았다. 익명의 팬이 보냈다고 쓰여 있었을 뿐... 심지어 잔액은 돌려주지 않는다는 설명까지.[80] 짐은 황제가 쓰는 말이다. 대중매체에서는 과인이라 하는 것이 보통이나 이것은 스스로를 낮추는 말인지라 아무 때나 쓰던 말은 아니었으며, 그냥 "나" 라고 하는 게 보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