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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13:51:51

홍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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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중국사3. 한국사4. 관련 세력 / 인물
4.1. 동계홍건군 계열4.2. 서계홍건군 계열4.3. 기타
5.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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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말명초 화북강남 일대에서 일어난 원나라를 대상으로 일어난 한족 반란군 중 하나로 백련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봉기하였다. 홍건군이나 농민봉기로도 서술하나, 통상 홍건적, 홍두적, 홍적 등 도적으로 폄하해 부른다. 홍건이란 것은 황건적처럼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르고 다닌 것에서 유래했다.

2. 중국사

원나라 말기에 봉기한 군웅 세력은 화북의 원나라 계통 군벌들과 장사성, 방국진, 진우정, 하진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홍건적 계열이다. 다만 홍건적은 황건적과 마찬가지로 단일 종교단체라기보단 느슨한 정치·군사 종교세력으로 홍건적의 난을 일으킨 한산동, 유복통, 한림아[1] 휘하 동계홍건군의 송나라가 가장 세력이 큰 종주였으나 여러 동서남북 계열로써 원말명초의 붕괴 후 혼란기 난세군웅할거하였다.

결국 홍건적의 난으로 원나라가 무너지고, 홍건적 출신의 주원장명나라를 세웠으니 중국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성공한 반란이라고 할 수 있겠다.[2] 백련교는 일명 '명교(明敎)'라고도 불렸는데, 주원장이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명(明)'으로 하였던 것에서 명교의 영향력이 있었다 여겨진다. 그러나 주원장은 명나라 건국 전후 정통 중화제국황제로 자처하면서 흑역사 홍건적의 성격을 부정하고 홍건적의 토대 백련교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여 백련교를 금지시키고, 자신을 추종하지 않고 명 왕조국가의 잠재적 위협이 되던 독자적인 명교 세력을 대거 숙청했다.[3]명나라에게 숙청된 명교

3. 한국사

홍건적은 한국의 역사와도 연관성이 있는데 여말선초 원의 토벌에 쫓겨나 2차례에 걸쳐서 고려를 침공하기도 했다.(홍건적의 침공)

4. 관련 세력 / 인물

여러 분파가 있으나 가장 세력을 떨친 것은 영주에서 일어난 동계홍건군과 기수 유역의 서계홍건군이 있다.

4.1. 동계홍건군 계열

4.2. 서계홍건군 계열

4.3. 기타

5. 관련글


[1] 황건적의 난에서의 명목상의 수령 장각, 진말한초진승초의제의 위치.[2] 중국 역대 왕조는 민중들의 반란이 계기가 되어 멸망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정작 반란을 주도한 세력이 새로운 왕조를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었다.[3] 현대 중국 역사에서는 민중들의 불만이 종교와 결합하여 왕조를 위협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중국 공산당이 인기가 높아져가던 파룬궁 및 여타 종교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한데는 단순 무신론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중국사의 역사적인 이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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