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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 없음 |
시호 | 귀덕후(歸德侯) / 순덕후(順德侯) |
성 | 진(陳) |
휘 | 리(理) |
생몰기간 | ? ~ 1408년 |
재위기간 | 1363년 ~ 136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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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양산(梁山) 사람으로 진한(陳漢)을 세운 진우량의 아들이자 진한의 2대 황제. 아버지가 주원장과의 대결(파양호 전투)에서 전사하자 아버지의 시신을 데리고 무창(武昌)으로 도망가 제위를 이었다가 1364년 주원장에게 항복하였다.2. 생애
당시 진리는 10살 정도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죽일 필요가 없다며 주원장은 신하들이 죽여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작위를 내려줬다. 하지만 이대로 명나라에 살면 신변이 위태롭다 판단해서 고려로 망명시켜주는데, 이때 공민왕에게 특별히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하는 등 대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1]이후 그는 나라가 조선으로 바뀌고 생계가 어려워지자 조선 태조에 의해 순덕후에 봉해지고 전지(田地)를 하사받았으며 1408년 조선 태종 재위 기간인 1408년에 사망하였다.
3. 기타
양산 진씨의 시조라고 한다.4. 둘러보기
진한의 역대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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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화를 보면 주원장은 본인의 부하들에게는 잔혹했지만, 완전히 몰락한 옛 정적의 유족에게는 관대한 편이었다. 비슷한 처지인 명하 황제 명옥진의 아들 명승도 진리처럼 고려로 망명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