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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5 21:20:01

유비(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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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학생 유비.jpg 파일:1부유비.jpg 파일:2부 유비.jpg 파일:3부유비.jpg
16세 시절 시즌 1 시즌 2 시즌 3
파일:4부 유비.jpg 파일:5부_유비.jpg 파일:원소군유비.png 파일:살찐유비.jpg
시즌 4 시즌 5
(서주 대학살 당시)
원소군 시절
(시즌 6 116화)
비육지탄 에피소드
(시즌 7 5화)
파일:삼고초려유비.jpg 파일:삼톡한중왕유비.jpg
삼고초려 에피소드
(시즌 7 16화부터)
한중왕 즉위
(시즌 11 3화)

1. 개요2. 작중 묘사
2.1. 외형2.2. 성격2.3. 능력
3. 작중 행적4. 인물 관계
4.1. 가족 및 부하들4.2. 주적 및 협력관계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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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 등장하는 유비를 서술하는 문서이다.

2. 작중 묘사

2.1. 외형

올리브색의 머리와 갈색-올리브색의 투톤 홍채를 가졌으며, 턱에 몇가닥 난 걸 빼면 수염도 많지 않고[1], 귓불이 굉장히 큰 부처님 귀가 매우 인상적이다.[2] 이 부처님 귀는 사실상 유비의 상징으로 적대하거나 유비가 맘에 안드는 사람들은 '귀큰 놈'이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초창기의 머리스타일 때문에 독자들에게 김치만두라 불리는 장비에 이어 유비 역시 초창기 머리스타일에서 따와 파인애플이란 별명이 붙었는데, 시즌을 거듭할수록 반 묶음 머리 → 투블럭 포니테일 → 올백 포니테일 → 앞머리를 내린 포니테일 → 로우테일 → 올백 똥머리 → 포마드 숏컷으로 머리 스타일이 바뀌고 있다.

시즌 6부터 눈가에 잔주름이 생기는 등 조금씩 나이를 먹은 티가 나기 시작하는 중이다. 사실 161년생의 유비는 시즌 6의 시작 시점인 196년에 이미 30대 중반이었다. 이후 여포, 원술, 공손찬이 차례로 몰락한 198년에서 199년엔 30대 후반이고, 관도대전 개전 시점(200년)에는 세는 나이로 마흔이 된다. 그리고 시즌 7 적벽대전 무렵에는 이제 5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2.2. 성격

초반의 성격은 허세가 넘치고 놀고 먹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와는 반대로 고생만 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현실의 벽에 좌절하게 되고 점점 냉철하고 진중한 성격으로 변모한다. 다른 사람의 부하 위치인지라 어쩔 수 없이 상대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을 많이 보이며, 상대에게 대놓고 한마디하기보단 웃으면서 상대를 설득하려는 면모도 자주 보인다. 그러나 서주로 옮겨가면서 점점 야심을 보이는 컷들이 더 보이게 된다. 고개 숙여 예의바른 행동을 하면서 밑으로는 슬그머니 웃고 있다거나. 이런 내면을 꿰뚫어본 미축은 유비를 두고 욕심많은 실뱀같다는 얘기를 했다. 힘도 없으면서 조조에게 맞서고 서주를 탐내는 것이, 제 덩치에 감히 삼키지 못할 큰 먹이를 탐하는 작은 실뱀 같다고.[3]

이래저래 연의에 비해서는 능글맞고 현실주의적인 성격이 되었지만,[4] 작중 최고 수준의 선량하고 정의로운 성격이기도 하다.[5] 일단 백성들을 발벗고 도와서 항상 민중의 지지를 받는 것이 꾸준히 묘사되고, 황건적이나 도적떼들도 단순히 악당으로 보지 않고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된 것을 인지하여 아량을 베푼다. 조조의 서주 대학살에 몇 안 되는 병사로 맞서 필사적으로 서주 백성들을 지켜내기도 했다.

작품 상에서 아픈 경험을 하며 성격 변화가 눈에 띄는데, 어려서는 까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가 연재 초기에는 허세가 많은 성격, 그러다가 좀 더 진중해지고 냉철한 모습도 보여준다. 이 덕분에 능구렁이같은 모습도 독자들에게 납득이 가도록 보여주고 있다.[6] 오히려 작중에서는 조조보다도 더 냉철한 모습[7]을 보여줄 정도로 보다 보면 신삼국의 유비가 언뜻 보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선량하고 정의로운 사람 맞고, 가끔은 속 없어 보이기도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머리를 어찌나 잘 굴리는지 교활해 보일 정도다. 이 때문에 정사의 유비처럼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관도대전 편에서 자신을 얕잡아보는 진궁에게 일갈하고, 자신을 이용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려는 조조를 역으로 이용해 조조가 자신을 내칠 수 없게 만드는 활약을 보이며 더욱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이런 처세술이나 사회생활 같은 부분과 달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내는 능력은 오히려 부족할 정도. 개그에 가깝게 나왔지만 초반에 의미도 없는 황족을 내세우다 쪽을 당한다던가, 조조에게서 기껏 달아나놓고 얼마 안가 쳐들어 올 수도 있다는 점 따윈 생각도 못하고 대군을 끌고오니 그제서야 아무것도 몰랐다는 태도로 당황하는게 대표적인 예시.[8]

그 외에도 다른 대다수의 삼국지 작품들에 비해 구별되는 차이점이라면 야심이나 정의감 같은 것들이 기본적인 원동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 뜯어보면 의외로 유비가 애초에 출세하고자 한것도 가족 혹은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 거느리며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게 근본 동기였지, 조조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가 바라는 패업을 일궈내고자 하는 성향과는 거리가 멀게 묘사된다. 게다가 백성들을 구하겠다는 목적을 품고 도원결의를 맺었지만 미축을 만나기 전까지는 든든한 스폰서도 없고 제대로 된 근거지도 없이 주군을 바꾸면서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신세인지라 자신의 사람들과 안정적인 생을 사는데에도 급급한 상태이다. 야심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축의 저 말은 '자신과 가족들 챙기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법한 유비란 인간의 잠재된 면'을 꿰뚫어본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실뱀을 용으로 키워보고 싶다.'던 미축의 말을 생각하면 형주에서 제갈량과의 만남을 통해 야심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열려있다.[9]

형주에 객장으로 들어가 늙고 쇠약해진 유표를 대신해 적장자인 유기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형주 소유권의 정당성을 얻게 된 후, 마찬가지로 형주를 노리는 손권 진영을 상대로 속내를 들키지 않게끔 어리숙한 모습으로 방심케 만들면서도 원소와 조조 등 자신이 거쳐갔던 자들의 수법을 적절히 활용해 따라하는 등 모략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전반적으로 정사 속 야심만만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효웅의 모습을 많이 반영했던 신삼국의 유비를 많이 닮아가고 있다.

2.3. 능력

분명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활약한 청주성 전투와 양성 전투가 전부 스킵됐기 때문에 취급이 좋지 않다는 논란이 있었다. 다만, 이건 조조와의 대립구도 때문일 수도 있다. 유비는 난을 일으켰다고는 하나 살기 어려운 백성들이 많은 황건적을 봐주지 않고 죽인 조조를 보고 껄끄러운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청주성 전투와 양성 전투를 그릴 경우 유비도 황건적들을 봐주지 않고 죽인 셈이 되기 때문에 유비가 모순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시즌 2에서 재등장하며 냉정해진 모습[10]과 전투력도 상승하는 등 멋있는 면모가 상당히 늘었다. 더불어 모순적인 모습도 유비가 힘이 없는 상태에서 포악한 공손찬의 밑에서 신세를 지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그러면서도 공손찬 군의 약탈을 막기 위해 편법을 써서 백성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11]

서주 대학살 때는 군을 대치한 상황에서 조조의 뒤통수를 치는 지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중에 조조에게 의탁했을 때는 유비를 싫어하는 정욱조차 쓸 만한 장수라고 인정하며 원술 막는데 쓰자고 조조에게 건의하며 주군들이 무시하고 나름의 목적이 있어 실행되지 않았지만, 여포 진영에 있던 고순과 진궁, 그리고 조조 진영의 순욱[12]은 유비는 예사 인물이 아니니 당장 죽여버려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작중에서 인물 해석에 자주 실패하는 조조와 달리, 인상만 보고도 인물 해석을 제대로 해내는 편이다. 실제 역사에서 조조는 순욱의 인물 감정평에 크게 도움을 받았고, 반대로 유비는 제갈량도 놓친 인물들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했던 일화가 있기 때문에 양쪽의 차이를 부각할 겸 조조는 인물 감정에 약하고 유비는 강한 것으로 설정한 것 같다.

행정쪽으로는 완전 잼병이라 유비의 아내가 계속 그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묘사되었다. 제갈량이 유비 휘하로와서 각종 계획서와 견적을 짠 대량의 장부를 들고왔는데 유비는 이 것들을 볼 줄 몰라 제갈량이 놀랜다. 고위급 자제은 커서 가문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행정 관련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13] 하지만 유비는 계속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배울 기회조차 없었고, 어쩌다가 땅이 생겨 통치를해도 행정쪽으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늘 오래 가지 못하였다.[14]

어릴 때는 검도를 꽤 오래 했다고 하는데, 후일 유비가 쌍고검을 다루는 데에 대한 개연성을 높히는 장치라 볼 수 있을 듯. 그리고 형벌부대에 입대하면서 마침내 쌍고검을 들게 되었다. 칼자루에 L(Left), R(Right)글자가 박힌 것이 특징. 여포와 3대 1로 싸울 때를 비롯해서 칼 솜씨도 좋게 나오지만, 그보다는 활솜씨가 더 많이 부각되는데, 작중에서 솜씨는 백발백중이다. 연의에서 활로 황건적 두목을 잡거나 조조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 어전 사냥에서 사슴을 직접 쏴 죽인 내용이 있는 것을 반영한 것 같다. 보통 유비는 무예를 묘사해도 쌍검술을 묘사하지 궁술은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이한 해석.

3.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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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물 관계

4.1. 가족 및 부하들

4.2. 주적 및 협력관계

최후 역시도 닮은 듯 다른 모습이었는데 최후까지 권력을 놓지 못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던 조조는 자신이 치세의 능신으로 사는 꿈을 꾸고는 깨달음을 얻고 전부 내려놓은 뒤 인간 조조로서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고 유비 역시 주마등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은 건 같지만 황제 유비로서 마지막 할 일을 하고서야 세상을 떠났다.

5. 여담




[1] 수염이 적은 건 실제로 유비의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이 콤플렉스를 건드린 신하기억해뒀다가 몇 년 뒤에 숙청했을 정도. 다만 이 숙청은 단순히 뒤끝이 아니라 유씨의 나라를 부정하는 불손한 발언을 지속적으로 한 것에 대한 응징에 더 가깝다. 그리고 서로의 외모를 씹은 일화는 유비가 처음 입촉했을 당시 유비 vs 반 유비파 유장측 인사들의 신경전도 내포하고 있다.[2] 이 긴 귀 때문에 독자들에게 토끼라고도 불린다.[3] 얼핏 보면 디스 같지만 이어지는 말은 "이 미축만큼 탐욕스러운 자는 처음 본다. 이 뱀을 용으로 키워 보고 싶다". 즉 미축은 야심가 유비를 자신과 동류라고 생각하고, 꽤 우호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가진 재산 전부 털어 유비의 스폰서 역할을 해준다.[4] 정사의 유비는 대의를 중시하지만 마냥 뜬구름 잡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주의자적인 면도 있었다.[5] 물론 그렇다고 당연히 각색이 없는건 아니고, 말수가 적고 표정변화를 드러내지 않았다던가, 느긋하다가 할 때 한다기보다는 기본적으로 강단이 있는 성격으로 서술되었던 정사의 부분들과 비교하면 차이는 있다.[6] 젊어서는 독우를 대놓고 폭행하기도 했었으나, 이후에는 굽신거리는 척하면서 장비와 짜고 관정을 속여넘겨 약탈을 막게 하거나 유우를 죽이려는 공손찬을 넙죽거리면서 막으려고 했다.[7] 조조는 상당히 감정적인 성격이라 쉽게 격정에 휩싸이고, 쉽게 이성을 잃는다. 정서가 풍부하고 감성적 동기로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자기 통제가 안 되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눈 돌아가서 사고를 친 사례의 끝판왕이 서주 대학살이고, 그 외에도 한 번 감정에 휩쓸리면 책사들이 쩔쩔매며 어르고 달래고 뜯어말리러 나서는 걸 흔히 볼 수 있다.[8] 다만 이 부분은 실제 유비는 원소와의 협력 등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재해석의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하는 측이 많다. 유비와 원소는 예전에도 협력 가까이 간 적이 있고, 서주를 손에 넣은 유비가 원소와 협력한다면 중간에 끼인 조조는 힘들 수 밖에 없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안이었다. 조조가 재빨리 대응했고 열심히 계산하던 원소가 득보다 실이 크다 판단해 버려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패했을 뿐, 그저 바보같이 조조가 무서워 대책없이 도망나온 것이 아니다.[9] 형주에서 10만 백성을 구원할 때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백성으로 확대 되어 '백성들을 구원하겠다.'라는 생각이 얼마 든지 될 수 있다.[10] 장비가 형벌부대에서의 끔찍한 식사에 차라리 굶고 말겠다고 투덜대는 옆에서 먹어야 산다며 꾸역꾸역 먹어치우고 그 전날 전투에도 내 앞가림은 내가 할 테니 걱정 말고 전선에서 날뛰라고 보낸 뒤 고생하지만 자기가 살아야 의동생들도 산다는 일념 하에 살아남아보인다.[11] 댓글 창 중에는 저러니까 남들 뒤통수를 쳐도 백성들에게 환영받는 것이란 감상도 보였다.[12] 여담으로, 우연의 일치인지 작가의 의도인지 모두 주군을 잘못 만났다고 평가 받고 있으며 일부 독자들에게 차라리 유비에게 가는 게 나았을 거라고 평가받은 인물들이다...[13] 해당 장면에서 어린 조조가 장부를 검토를 하는 장면과 손권이 어머니에게 장부 작성하는 법을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14] 미축의 가문은 알아주는 재벌이었고 재정쪽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겠지만, 군사적 보급관리, 행정관리, 정치 같은 분야에선 큰 힘을 못썻을 수 있다. 이런 부분을 해소시켜 준것이 바로 제갈량.[15] 정황상 삼고초려가 진행 중인 제갈량 영입 및 유선 탄생 전으로 보인다.[16] 비록 왕명을 어기고 관우의 죽음에 막대한 책임을 진 이상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유비는 칼을 든 손을 떨며 망설였고, 유봉은 스스로 유비의 칼에 몸을 던지며 죽음을 택하였다. 때문에 가족을 연달아 잃은 유비는 멘탈이 나가면서 이릉전쟁을 선포하게 된다.[17] 조조는 유비가 백성들을 구해 서주성 내로 도망치자 "날 괴물로 만들어서 네가 영웅이 되겠다는 거냐"며 몹시 분개했다. 조조 자신은 스스로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실제로 조조는 말년에 "뻘짓을 하다 조앙을 죽게 하고 그 어머니와 헤어진 게 평생의 유일한 회한"이라 말했을 뿐, 서주대학살은 죽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18] 유비는 개인적으로 유우를 존경하기도 했고, 백성들이 유우를 지지하는 것도 고려해서 그를 살리고 싶어했는데, 그렇게 말해 봤자 공손찬이 귀담아 듣지 않을 테니까 공손찬의 수준에 맞춰서 '유우를 죽여 봤자 실익이 없으니 그냥 살려주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그런데 공손찬은 유비의 의도를 파악하고, 땅에 메다꽂고 목에 칼을 겨누면서 "너는 내가 아닌 저 백성들이 두려워 이러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며 기어이 처형을 강행했으며, 이는 결국 공손찬의 몰락을 불러 일으켰다. 유우가 유비를 아끼긴 했어도 둘은 초면일 뿐이었다. 정확히는 유우 사건 전부터 공손찬의 잔혹함에 회의감을 느낀 상황이었고 유우를 처형할 때, 백성들의 마음을 저버린 채 공손찬이 독단적으로 유우를 처형했기 때문이다.[19] 여포 시절엔 받아주다가 배신 당해 서주를 뺏기질 않나, 조조 시절엔 황제 유협이 은근슬쩍 호의를 보여 조조와 황제 간의 줄타기를 해야 하질 않나, 원소 시절엔 원소가 본래 매우 경계하는 성격에 하필 관우가 조조 라인에 있어 견제를 실컷 당하질 않나, 마지막으로 유표 시절엔 눈칫밥만 먹다 살까지 뒤룩뒤룩 쪄야했다.[20] 물론 그 이유는 위에 있는 원소가 침공할 때 유비를 화살받이로 써야 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21] 유비가 욱하는 맘에 독우를 팼다가 도망자 신세가 되고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겨 사면 받은 경험이 있어 더욱 그럴 것 이다.[22] 유우와 대비 되는 부분인데, 인의를 바탕으로 무리하게 공손찬을 공격했다가 패하고 목숨을 잃었다. 물론 공손찬도 유우를 죽인 대가로 사방을 적으로 만들어버렸다.[23] 물론 유비는 세력 확장을 위해 형주를 차지할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대놓고 야욕을 드러내기보다 입지가 위태로운 유기를 돕는 것으로 명분부터 차례차례 얻어가는 뒷작업을 하고 있었다.[24] 예로 유비를 챙겨주는 척하며 대놓고 조조 세력권 코앞인 소패성에 꽂아넣은 도겸과, 말로는 숙부라고 부르면서 속으로는 유비를 조조의 대항마로 이용할 생각인 헌제 유협 등. 사실 작중 묘사가 그렇게 되었을 뿐, 둘 다 기브 앤 테이크 관계에 가깝다. 도겸은 유비를 예주자사로 밀어주고 본인의 후임 서주자사로 임명하는 등 나름대로 대가를 챙겨주었고, 유협은 본인만 일방적으로 유비를 이용하는 게 아니고 유비 쪽에서도 그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관계. 오히려 유비 본인이 황제를 이용해 얻을 건 다 얻어 놓고 발을 빼려니 마음에 걸려 내심 미안해하고 있다.[25] 스승이었던 노식은 모함당해 좌천, 한때 영웅으로 존경했던 조조는 서주대학살로 괴물이 되어버렸으며, 존경했던 유우는 자신의 사형인 공손찬에게 살해당하고, 공손찬은 역경루에 틀어박혀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26] 공융은 유비가 스스로를 미끼로 던져 서주 백성들을 구하는 작전을 냈을 때 이상한 친구라고 말하면서도 지지해 주며 호감을 표했고, 전해는 유비가 공손찬을 손절하려는 것을 눈치챘지만 이를 묵인해 주며 도리어 '도겸이 공짜로 이것저것 퍼줄 리 없으니 신중히 처신하라'고 진귀한 충고를 해주었다.[27] 무적핑크의 트위터에서 밝혀진 바로는 삼톡 세계관에서 라이언 같은 인기 캐릭터라고 한다.[28] 무적핑크가 트위터에서 푼 사족에 의하면, 사실 장비도 하나 받았으며 한동안 장팔사모에 달고 다니기도 했단다. 그런데 장팔사모를 내지를 때마다 흔들리는 장식이 자기 얼굴을 치는 게 너무 거슬렸던 관우가 달고 다니지 말고 주머니에 넣으라고 압박을 넣어 할 수 없이 관물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29] 제갈량에게 줄 것도 만들고 있었으나, 고맙지만 직접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잔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어도 제갈량은 이후 주군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백우선에 유비가 만들어준 키링을 달게 된다.[30] 나중에 관우도 조조에게 의탁할 때에 유비처럼 조조가 준 양복 위에 반티를 겹쳐 입는 모습을 보여줬다.[31] 다만 이 시대에 '개나 말을 좋아했다'는 건 단순히 동물 개와 말을 좋아한다는 뜻보다는 개와 말을 데리고 하는 활동인 사냥, 즉 놀기를 좋아했다는 걸 돌려 말하는 뜻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풀죽은 유비를 위로할 생각으로 장비가 개와 말 사진을 보냈다가, 유비의 기분이 영 풀릴 기색이 아니자 관우에게 '큰형 개랑 말 좋아한대서 사진 보냈는데 효과가 없다'고 톡을 보냈고 관우가 '그건 진짜로 개나 말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답장하는 소소한 개그씬도 지나간다.[32] 적토는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 신겐의 애마는 페라리 SF90 스트라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