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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의 상징인 '롬의 깃발(Styago le romengo)'. 유랑 민족이라는 특성을 바퀴로 표현했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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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집시(Gypsy)는 서아시아, 유럽, 특히 동유럽, 중부유럽, 남유럽에 주로 거주하는 인도아리아계의 유랑민족을 일컫는 영어 표현이다.[2] 당사자들은 영어 기준으로 Romani people(롬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3]
2. 명칭
집시라는 표현의 어원은 '이집트인'을 의미하는 중세 그리스어 이프티(Γύφτοι / Gýftoi)에서 유래하였다. 집시라는 표현 이외에도 중세 그리스어 아칭가니(Ἀτσίγγανοι / Atsínganoi) 또는 아팅가니(Ἀθίγγανοι / Athínganoi)에서 유래한 '치간(Tzigane)'이라는 프랑스어·영어 표현도 사용된다.[4]현대에는 집시나 치간 등의 표현이 멸칭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집시계 민족 중 하나인 롬인이 모어인 롬어로 자민족을 지칭하는 표현에서 유래한 '롬인'이나 '로마니인'을 사용하고 있다.[5] 관련 글. 가령 독일어권에서는 집시를 가리키던 표현이었던 치고이너(Zigeuner)를 대신해 '신티인과 롬인'이라는 뜻의 진티 운트 로마(Sinti und Roma)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관련 글.
집시라는 표현은 롬인에만 한정되는 표현은 아니며 넓은 의미로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족(travellers)'을 뜻하기도 한다. 과거 집시라고 간주된 민족들 중에는 외모나 혈통상으로는 백인에 더 가까운 '예니셰인(Jenische, Yenish people)'과 아일랜드에서 이 두 민족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생겨난 '아일랜드 유랑민(Irish Travellers)'라는 유랑집단이 존재한다. 예니셰인은 정확한 기원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독일인과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언어도 독일어와 가깝기도 하고. 아일랜드 유랑민은 대체적으로 올리버 크롬웰의 침공으로 토지를 잃거나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인해 파산한 농부들 중에서 땅을 잃고 유랑생활을 하게 된 이들의 후손임이 알려져 있다. 즉, 이들은 아일랜드인과 같은 민족이다.
농민이 유랑민으로 돌변한 사례는 생각보다 매우 흔하다. 미국의 카우보이들도 흉년으로 농사를 망쳤거나 가축을 키울 목초지를 자연재해 등으로 잃어서 미국 서부로 이주하여 유랑민 생활을 하게 된 경우다. 아프가니스탄의 이란계 유목민인 아이마크인이나 베두인이라고 불리는 아랍인 유목민 집단도 아라비아반도의 사막화로 인해 농지를 잃고 몰락한 고대 아랍인 농민들이 농업을 포기하고 유목민이 되었다가 현대까지 계속 이 생활을 유지하게 된 케이스다. 일본에서도 다이쇼 시대에 지주들의 과도한 수탈[6]을 이유로 땅을 잃고 산 속으로 달아난 사람들이 산카(サンカ)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에서도 유대인들이 출애굽기에서 언급되는 바에 따르면 흉년으로 인해 몰락하여 풍요로운 이집트로 가서 유랑생활을 한 적도 있었고[7] 중국에도 영가의 난으로 인한 이민족들의 침공을 피해서 남쪽으로 달아난 한족 이주민들의 후손인 객가인들이 있다. 그래서 인류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집시의 기원도 고대 인도의 인도유럽어족계 농민들이 어떤 이유로 인해 몰락해서 유랑민이 된 케이스가 아닌지 추정해 보기도 했으나 이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북서인도지역에는 현대에도 집시와 비슷하게 유랑생활과 연예 활동을 병행하면서 부업으로 노점 같은 간단한 상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종족이 여럿 있는데 이들이 집시와 근연관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으며 유전자 검사와 언어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이들과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집시 본인들은 '집시'라는 용어를 아주 싫어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적인 표현에 민감하기 때문에[8] '로마니' 계열이나 '하프시'(모계나 부계가 집시계인 혼혈)인 사람이 '집시'라는 표현이 쓰인 것을 발견했을 경우 귀신같이 달려와서 그런 비하적 표현을 쓰지 말라고 화를 낸다. 특히 트위터나 텀블러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경우 십중팔구 욕설을 들을 수 있다.
3. 기원 및 분포
인도 북서부에 주거하던 달리트 계층인 돔이 기원으로 유전적으로 볼때 라자스탄과 펀자브 지역이 원향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인도 전역에 유랑생활을 하는 계층으로 현대 들어서 돔이 비하 용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실프카르로 칭하는데 이들은 전통적으로 길거리 음악 연주와 무대 공연 혹은 장례식 처리와 청소 같은 잡일들을 주 직업으로 삼아 살아갔으며 당연히 상위 계층들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차별을 받고 살아왔다. 이들은 드라비다인들처럼 갈색 피부를 지니고 있으나 페르시아와 동로마 제국 등을 거쳐 서부로 이주해 오는 과정에서 중동인 및 유럽인과의 혼혈이 다수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서 중동인, 남유럽인처럼 하얀 피부를 지니거나 중서부유럽인, 상당수의 동북부 유럽인들처럼 아예 금발벽안의 형질을 지니기도 한다. 다만 그럼에도 상당수의 집시들은 여전히 갈색 피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집시들이 라틴계 언어에 능숙할 경우에는 중남미계 메스티소로 오해받거나 서투른 영어, 프랑스어를 구사할 경우에는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아시아 출신으로 오해받는다는 경험담이 종종 있기도 하다. 이들은 따로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승을 전수받지는 않았으며 이들이 인도에서 오게 된 사람이라는 것도 언어학이 발달되고 나서야 밝혀진 사실이다. 집시라는 단어 자체는 이들이 유럽에 들어올 때 이집트에서 발행된 통행증을 들고 이집트의 민족임을 자칭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집시와 이집트인은 별 관계가 없음이 밝혀졌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들은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고대 인도인의 후손이다. 이에 따른 오해 때문에 집시들 스스로가 자기들이 이집트인의 후손이라고 착각한 사례도 있어서 유랑 생활을 중단하고 발칸반도에 정착해서 농경민이 된 집시들의 후손인 발칸 이집트인(Balkan Egyptians)들의 민족명도 이런 오해에서 비롯되었다.일단 아바스 왕조 중기에 반란을 일으켜 페르시아만에서 활동하다가 단체로 추방당하면서 동로마 제국에서 서유럽으로 계속 쫓겨왔다는 것이 역사의 설명이지만 이때 추방된 집시의 수는 겨우 수만 명이었고 그마저도 모두 집시였던 것은 아니고 인도계의 다른 부족들도 다수라서 이 사건[9]은 일종의 계기 혹은 전형적인 집시 추방의 예 정도로 생각된다. 더욱이 인도나 이란, 이집트 등지에는 100만 명 이상의 집시가 있으며 이라크, 시리아, 알제리, 아프가니스탄 등 서아시아 국가들과 중동 국가들에도 돔인(دومر), 나와르인(نوار) 등으로 불리는 소수의 집시가 살고 있다. 이집트 명배우 오마 샤리프가 주연한 〈The Horsemen〉(1971)이라는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의 집시를 다루고 있다. 튀르키예에서는 칭게네(Çingene)라고 불리며 꽤 흔히 볼 수 있는데 특히 이스탄불에 많다. 세계적으로 최소 약 700만 명에서 최대 1,200만 명의 집시가 분포한다. 집시들의 인구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집시의 상당수가 혼혈 등으로 동화되어서 조상중에 집시가 있었지라면서 넘기는 인구도 상당한 것과 함께 동유럽이나 튀르키예 등에서 집시들이 차별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을 집시라고 응답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비집시인 피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거나 할 경우에는 집시가 아닌 타 민족에 속해 있다고 응답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체감되는 집시 비율과 통계상 집계되는 집시의 비율 차이가 크게 난다.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미주 지역임에도 희한하게 집시가 많다. 차별이 많은 유럽에서 사느니 차라리 미개척지가 많고 상대적으로 차별이 덜한 미주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고[10] 홀로코스트로 인해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이나 캐나다 등 아메리카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홀로코스트는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을 탄압하는 와중에 집시도 같이 탄압했기 때문이다. 집시는 유랑민이라 근본이 없다는 이유로 탄압을 당했다.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1,000,00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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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징
나라 없이 살다 보니 지역에 따라 문화나 종교가 다르다.[11] 그럼에도 나라 없이 사는 데다 유랑 생활을 하거나 저임금 노동자로 오랜 기간 살다 보니 여러모로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같다. 물론 이것도 나라에 따라 은근히 차이가 커서 유럽계 이주민이 사회의 주류인 아메리카의 집시들은 어차피 메스티소나 물라토같은 혼혈인들이 많고 신대륙에서는 백인들도 처음부터 정착해야 하는 입장이라 자연스럽게 현지 사회에 융화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집시가 차별받는 유럽과 중동에서는 상대적으로 집시가 더 차별받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그럭저럭 편입된 경우도 존재하기는 한다.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고 사담 후세인 시절의 이라크, 현재 아사드 정권 치하의 시리아와 같이 정권 또는 사회 주류 세력와 후원-피보호 관계를 맺고 이 관계를 활용한 사례도 존재한다.유랑민이라 자유분방하게 살 것 같지만 의외로 전통적인 가부장적 풍습의 흔적을 간직하고 사는 등 보수적인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우선 대가족으로 사는 비율이 높고 미혼 여성들은 혼전순결을 지키는 것이 일반적이라 일찍 성관계를 맺으면 난리가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결혼에 있어서 유럽 대다수 국가들이 결혼의 패턴이 연애혼에 핵가족이 일반적인 데 반해 집시는 중매혼을 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아서 부모가 정해준 신랑, 신부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 2020년대에도 조혼 풍습이 남아 있기 때문에 10대에 혼인하는 경우가 잦으며 이 때문에 출산율이 현지인들보다 대체로 높은 편이라고 한다.[12] 물론 집시라고 해도 중동권이 아닌 유럽권에 주거하거나 매춘업(...)에 종사할 경우에는 그냥 혼전순결이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연애혼을 하는 경우도 많고 암만 집시들이 천시당한다고 해도 아미시 같은 집단처럼 현대 사회와 동떨어져 사는 건 아닌 만큼 이런 전통적인 결혼관도 약화되는 추세이기는 하다.
교육 수준이 크게 낮아 집시 청소년들이 대학 교육까지 받는 경우가 적고 심하면 초졸, 중졸 수준에서 학력을 마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도 집시 아이들이 차별을 당하는 데다 성인이 되어서 좋은 직장에 원서를 집어넣어도 집시라는 이유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부모나 청소년들이나 체념하면서 일찍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동유럽에서 두드러져서 집시 아이들은 일반 학생들과 다른 특수학교에서 교육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학교들은 일반 학교에 비해 질이 떨어져서 집시들이 수준 낮은 교육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인 데다 일반학교에서 교육받으면 더욱 시궁창이라서 집시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시달리거나 삐뚤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재미있게도 동유럽 특수학교에서 영국이나 북미권 학교로 전학 온 아이들은 성적이 크게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오랜 기간 나라 없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아 온 민족이라는 점에서 유대인의 처지와 종종 비교되기도 했지만 유대민족은 그나마 금융업, 상업으로 부를 거머쥐어 서방 국가들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입지를 다질 수 있었고 근대에 적극적으로 국가건설에 나서면서 식민제국 시대 말기 영국의 지원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하여 종국에는 독립국가인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데 성공했다. 이와 달리 집시는 일정한 거주지 없이 이곳저곳 마을 단위를 이루어 유랑하며 살아온 탓에 항상 유럽인들에게 박해와 차별을 받아오며 살았다. 물론 집시들도 경우에 따라 정착 생활을 하여서 집시 마을들이 있기는 하며 전통적인 집시라고 해도 다 유랑생활을 해 온 것만은 아니고 계층별로 제각기 달라서 금속세 공업이나 말 사육, 대장장이를 비롯해서 전문 기술자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다른 집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려 왔다.
특히 집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유럽 전역에서 도둑질, 사기, 유괴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나치 독일은 홀로코스트에 유대인이나 슬라브인, 동성애자들과 함께 집시들을 민족 말살의 대상에 포함시켰다.[13] 수용소에 끌려가 죽은 집시의 수는 매우 많으나 독일 정부는 이에 대해서 별다른 사죄나 반성이 없으며 다른 승전국들도 인권단체 몇 개를 제외하곤 이에 대해서 별 요구를 하지 않는다. 프랑스나 체코, 그리스같이 현재도 집시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동네는 더더욱. 구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집시들을 동화시키는 과정에서 동시에 불임시술도 강제로 시행해서 인구를 억제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집시들이 동족 이외의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포르토 벨로의 마녀》를 읽어보는 게 좋다. 그 책에 묘사된 집시들의 성격은 현실의 집시들의 성격에 아주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정착하고 주류 사회에 동화된 집시와 유랑하는 집시의 사고관은 다르다. 정착 집시는 집시어를 모어로 하지 않는 비율도 상당수다. 체류국과 사용 언어, 체류 국가의 동화 정책의 차이에 따라 집시 집단이 달라지며 동유럽 혁명 이후 취업전선에서 밀려나서 궁핍한 생활을 하는 집시들이나 반대로 장사, 중개업 같은 정상적인 사업을 벌이든 마약, 매춘같이 불법적인 산업에 뛰어들든 간에 기회를 잘 잡아서 부유층, 중산층으로 올라선 집시들이 있는 등 같은 곳에 살아도 사회적 신분에 따라서 사고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집시 예술은 잘 알아주는 편이다. 집시들의 춤과 노래, 연극은 인도와 중동, 유럽 문화의 특징들이 한데 섞였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이국적인 예술로 두각을 나타냈고 유럽 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현대에도 집시 예술은 꽤 알아준다. 그래서 집시 가운데서도 출세한 사람들은 주로 예체능 계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정치인 중에서는 집시를 찾기 힘들다. 가령 정원이 751명인 유럽의회에서 집시인 의원은 3명에 불과하다. 관련 기사 해당 인물은 독일의 로메오 프란츠(Romeo Franz, 1966년 10월 28일 ~ ), 슬로바키아의 페테르 폴라크(Peter Pollák, 1973년 4월 20일 ~ ), 헝가리의 야로커 리비어(Járóka Lívia, 1974년 10월 6일 ~ )다. 관련 기사 오히려 브라질에서 2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을 정도로 아메리카에서의 입지가 더 나은 편이다.
5. 각 지역별 대우와 현황
현재도 집시들은 오랜 빈곤과 차별, 특유의 유랑 문화 때문에 정주민들과 마찰이 많으며 여러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당연히 유럽이든 중동이든 인도든 있는 나라에선 크게 차별받는 편이다. 그나마 아메리카 국가에서 살고 있는 집시 이민자들 정도가 예외다.[14] 물론 집시라고 해도 자영업을 하거나 금속가공, 건설업 등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 경우에는 굳이 집시라고 밝히지 않으면 대개 라틴 아메리카에서 돈 벌러 온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여하튼 차별을 많이 받다 보니 로마니족의 자체 국가를 건설한다는 구상이 20세기 중반에 있었지만 이때는 한창 제3세계가 독립했던 시절이라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영국이나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모두 집시자치구 구성 계획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고 그나마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 1930년대 소련에서 집시들의 자치주를 구성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소련에서 집시 자치주 계획이 중간에 뒤엎어지면서 집시들의 국가나 자치구역이 성립되는 일이 없었다.[15]
5.1. 유럽
현재 유럽의 많은 집시들은 빈곤층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남유럽과 동유럽의 집시들은 소매치기 등 경범죄와 관광객들에게 싸구려 물품 강매하기 등으로 먹고사는 경우가 많아 집시에 대한 반감을 강화하고 있다. 사실 일용직이나 노점상, 비정규직 노동자나 심하면 마피아 갱단, 매춘으로 먹고사는 것은 타 동유럽인들도 똑같기는 하지만 이들은 유고슬라브인을 제외하면 동유럽 혁명 후에 온 경우가 절대다수고 냉전 시절에는 동구권에서 왔다고 하면 불쌍한 난민 취급받았기라도 했는데 집시들은 동유럽 혁명 이전 훨씬 전부터 정착한 이들이 많아서 보다 직접적인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공교롭게도 원래 자신들을 뜻하는 명칭과 같은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곳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중해성 기후가 원래 북인도에 살던 그들에게 그나마 괜찮은 기후였던 것도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국가에서 집시는 아랍 무슬림과 흑인들이 대규모로 유입되어 유럽 난민 사태가 발생하면서 사회적 이슈에서 비켜난 것일 뿐 집시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마찰이 잦고 갈등이 심한 소수민족 중 하나다.
이탈리아에서는 2008년에 해수욕장에서 행상을 하던 두 집시 소녀가 바닷물에 빠져 죽었는데 경찰이 1시간 뒤에 관을 들고 와 치울 때까지 휴양객들이 거의 개의치 않고 집시 소녀가 사망한 자리에서 일광욕을 하던 사진이 공개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
나치 독일 정권의 최고 지도자였던 아돌프 히틀러도 당연히 집시들을 미워하여 홀로코스트 과정에서 유대인, 슬라브인 못지않게 많은 집시인들을 학살하였다.[16] 사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독일의 집시들도 사회에 정착하려고 독일 제국군에 입대해서 열심히 싸운 경우가 많았지만 이는 무시되었다. 거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집시를 같이 끼워넣은 셈이었는데 다행히(?) 유대인들에 비해 유럽 지역 이곳 저곳을 떠도는 유랑민족으로 떠돌이 생활을 해 온 이력이 있었는지 당시 학살 생존률은 유대인보다는 높았다고 한다. 홀로코스트와 같이 집시인 집단학살을 의미하는 '포라이모스(Porajmos)'나 '사무다리펜(Samudaripen)'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17] 그럼에도 유럽 각지에서 70~80% 가량에 해당되는 50만에서 100만 정도가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될 뿐 자세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독일 정부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에 대해 깊이 참회하고 사과하는 것에 비해서 집시들을 학살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도 잘 안 하고 잘 짚고 넘어가지도 않았고 집시에 대한 나치의 학살은 1980년대가 되어서야 공론화되었다. 나치 독일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크로아티아의 극우 민족 단체인 우스타샤도 크로아티아 영내의 세르비아인, 유대인과 함께 자국의 집시들도 학살했다. 웃픈 사실은 당시 타겟이 된 집시 가운데서는 잘사는 집시들이 많았다는 것인데 이는 독일의 집시 가운데서도 출세를 위해 군입대를 해서 공적을 세운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치가 집권하기 전에는 높은 소득, 높은 교육수준을 지닌 집시 중산층들이 어느 정도나마 형성되었는데 나치 독일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부랑자뿐만 아니라 이들도 같이 학살했다.
2006년에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집시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동유럽에 있는 집시들에 대한 대우가 좀 나아지나 싶었지만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집시 대상 증오 범죄가 크게 증가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가 나빠지자 무지한 사람들이 아무런 힘이 없는 집시들에게 분노를 돌린 것이다. 사실상 경제위기의 근원은 미국에 있는데도 집시 때문에 일자리가 줄었다며 집시를 대상으로 집단 구타나 심지어 살인까지 자행되었다.
특히 헝가리 농촌에서는 집시라는 이유만으로 노인이나 어린아이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증오 범죄가 늘어나기도 했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2010년 아예 집시들을 추방하는 정책을 도입했는데 당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비비안 레딩(Viviane Reding)은 이를 비시 프랑스의 유대인 추방 정책에 비유하는 한편# "아마 프랑스에 선거철이 다가오나 보다. 사람들은 예산이나 부채 같은 중요한 문제를 다루기 싫을 때 로마니인 얘기를 꺼낸다."는 말로 사르코지를 비판했다. 사르코지는 이로 인해 프랑스의 좌파 대부분으로부터 거센 비판과 비난을 받았는데 사르코지의 뒤를 이은 중도좌파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시절에도 집시 추방 조치를 중단하지 않아 나머지 좌파 인사들로부터 또 다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루마니아에서는 이들을 불가리아나 세르비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같은 다른 동유럽권의 이웃 나라로 추방하려고 했지만 그 나라들도 집시들이 일으키는 범죄와 사회적 문제들을 겪고 있어 결사적으로 반대하거나 루마니아 정부의 집시 추방 결정에 결사반대하는 성명을 내는 바람에 집시들이 갈 곳 없는 처지에 처했다.
2011년 5월 1일 체코 브르노에서 네오나치들의 집회와 시위가 열렸는데 브르노에 꽤 많은 집시 인구가 있는 관계로 주 타겟은 집시였다. 이 시위 얼마 전에는 이 지역 집시 협회의 회장에게 인종차별적 내용이 담긴 익명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집시 여자들은 강간 같은 거 걱정 마라. 짐승보다도 역겹고 냄새나는 너네들은 안 건드린다'는 식의 편지였다. 이 시위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체코 국립영화학교인 FAMU의 다큐멘터리과 학생들에 의해 촬영되었다. 영화 중간쯤 이 익명의 편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레이션처럼 등장한다. 제목은 <Film jako Brno>인데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브르노 같은 영화'.
2011년 9월에는 불가리아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인 플로브디프에서 대규모 반(反) 집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불가리아 집시들은 먹을 게 없어서 고슴도치 고기까지 먹던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동유럽에서의 대접은 개판이고 마침 동유럽 지역에서 정규직으로 일해도 버는 돈이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서 버는 것보다 훨씬 못하니 동유럽의 집시들은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일하러 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서유럽이라고 해서 차별을 안당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랍인이나 흑인이라는 또다른 밑바닥 계층들로 인해서 관심이 분산되는 데다 건설직이나 공장, 가사도우미, 농부, 청소부 같은 저임금직 혹은 일용직이나 노점상으로 일한다고 해도 똑같이 차별을 당하는 동유럽에서 정규직으로 취직해서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이 벌어서 그렇고 매춘도 합법이니 화대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기도 하다. 구걸해도 하위권 동유럽 국가에서 버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기도 하고. 물론 이런 사정은 타 동구권 국가 주민들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며 집시들이 소매치기로 유명한 것처럼 동유럽 마피아들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악명이 높았기는 했다.
하지만 동유럽 각지에서 서유럽으로의 인구 유출로 노동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1990년대 이후에 출생한 저출산 세대들이 사회의 중축을 담당하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집시를 무시하고 다닐지언정 경제적으로나 재정적으로는 더 이상 집시를 무시하고 다닐 수 있는 처지는 아니게 되었다. 연금을 대 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서유럽이나 북유럽으로 빠져나가는 데다 인구 감소 속도도 위낙 가파른지라 지방 곳곳이 유령마을로 변하고 있지만 동유럽권 국가 다수는 이민자들을 끌어모으기에는 임금 수준이 어중간하고 난민들조차도 서유럽이나 북유럽에 정착하는 것을 선호해서 노동 수요를 채울 만한 사람은 집시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시들이 아무리 기피 대상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정착해야 되는 이민자들보다는 그래도 현지 문화에 익숙한 집시가 적응상의 애로사항이 적은데 집시들까지 모조리 내친다면 연금을 누가 대주냐, 일할 사람을 어디서 구하냐는 문제가 생긴다. 물론 경제적인 차별이 상대적으로 완화된다고 해도 문화적인 차별이 완화되는 것과는 별개라서 집시에 대한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북마케도니아 같은 구유고권 국가에서도 집시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 1970년대에 구 유고 연방 시절 유고의 민족 통합과 평등을 주창하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 전 대통령으로부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시민권을 부여받는 등 많은 우대를 받았고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택을 얻어 당시 슬라브인 계열의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처럼 잘 살기도 했다.[18] 이들은 유고 연방 결성 이전인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발칸 전선에서 유고 내 다민족들의 평등을 외치던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 입대하여 구 유고 지역을 점령/할거한 독일 국방군, 슈츠슈타펠 등 나치 독일군과 이탈리아 왕국군, 우스타샤, 한트샤르, 체트니크 등과 싸웠고 이에 티토는 집시 출신 파르티잔 대원들의 공을 높이 사며 국가유공자의 대우까지 배풀었다.
그러나 1980년 5월 유고슬라비아를 장기 통치해 온 티토 대통령이 노환으로 투병 중 사망하고[19] 1980년대 이후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으로 유고연방이 내전으로 해체, 붕괴되는 과정에서 연방의 분열로 독립했던 각국들이 자민족 우선의 정책을 펼치면서 이 나라들에서 살던 집시들도 큰 타격을 받았고 특히 유고 내전 와중에 세르비아군, 크로아티아군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군,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내의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 민병대에 의해 적측의 간첩 또는 회색분자들로 몰려 집시인들도 덩달아 학살당하기도 했는데[20] 유고슬라비아 전쟁 와중에 학살과 탄압을 피하기 위해 집시들을 안 좋게 여기거나 차별하던 헝가리나 이탈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같은 옛 유고 연방과 인접한 나라들로 도피했을 정도였다. 물론 유고 내전 당시 상대적으로 전쟁 피해가 적었던 세르비아[21]와 슬로베니아[22], 북마케도니아에서는 보스니아나 크로아티아에서처럼 학살당하지 않았지만 여기에서도 민족주의를 앞세운 각국 정부의 자민족 우대 정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큰 홀대를 받으면서 티토 대통령과 유고 연방이 존속했던 냉전 시대보다 더 낮은 수준의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세르비아의 집시들 중에도 여가수 타나 사비치와 축구선수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같이 집시계 세르비아인들중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적지만 꽤 있다.[23] 아무튼 자신들이 거주하던 구유고 연방이 냉전 체제 몰락 후 내전과 분열 등의 혼란상을 겪으면서 별개의 국가들로 쪼개지다 보니 이들 중에는 티토와 유고 연방 시기를 그리워하거나 티토 사후에 각각 민족우선주의와 분리독립을 앞세우며 내전 및 제노사이드, 인종청소, 대량학살을 촉발시켰던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 전 대통령이나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 보스니아의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전 대통령,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스릅스카 공화국의 라도반 카라지치 전 대통령 등 유고 내전 당시 각 구유고권 지역의 전 지도자들을 증오, 멸시하며 집시들에게 온정과 관용을 배풀었던 티토를 추앙, 존경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24] 현재는 유고 연방이 내전으로 해체되면서 유고 연방 시절에 나름 누렸던 모든 위세와 재산들을 전쟁으로 다 잃고 여타 동유럽 국가들의 집시들처럼 범죄와 구걸 등에 노출되어 취약하게 사는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 집시 배우인 나지프 무직(Nazif Mujić)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탈 정도로 재능있는 배우로 출세할 듯 싶었지만 정작 모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영상산업이 척박하고 실업률도 높아 멀쩡한 직장에 취직할 수 없어서 자기 자식들을 제대로 먹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다가 2018년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일도 있었다. 실제로 정근재[25] 교수의 말에 의하면 구 유고 내전으로 인해 구유고권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민족은 유고 연방 시절에 자기들만의 거주 영토 없이 유고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평화로이 살다가 연방 해체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큰 피해와 참상을 입고도 유고 연방 붕괴 이후에 자기들만의 독립국가조차 만들지 못하고 연방 해체 후에 분리독립되어 생겨난 발칸 동유럽권 나라들의 하층민으로 몰락한 그 지역의 집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루마니아의 부유층 집시
하지만 집시들이 죄다 다 빈곤으로 불우하거나 범죄에 빠져사는 것은 아니고 사업을 벌여서 대박을 내거나 가수, 스포츠 선수로 인기를 얻어서 성공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도 하며 딱히 크게 성공을 거두지 않더라도 자영업에 종사하거나, 자동차 딜러, 보석세공업에 종사하거나, 공무원에 취직하거나, 말 조련사나 좀 버는 점술가로 살아가는 경우에는 평범하게 잘 살기도 한다. 축구 선수로 성공한 집시들끼리 모여서 로마니인 축구 대표팀을 결성해서 NF-보드와 관련된 축구 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히카르두 콰레스마도 집시 출신인데 로마니인 축구 대표팀의 에이스다. 특히 집시왕을 비롯한 집시 부자들은 비싼 집을 짓고 성채를 사거나 람보르기니, 포르쉐를 비롯한 비싼 스포츠카들을 사들이면서 집시들도 이렇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서 공개적으로 부를 과시하기도 한다. 차별을 많이 받는 동유럽 집시라고 해도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은 해당 계층에서 소수라고 할지라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 비율이 적어서 그렇지.
이들은 대부분 유럽의 내로라 하는 나라의 2군에 해당되는 실력을 가진 선수들 위주라서 NF-Board에 소속된 팀 중에서는 꽤나 강팀에 속한다. FIFA 월드컵 유럽 예선을 뚫을 정도는 아니지만.
특히 루마니아의 '부제스쿠'라는 도시[26]에 사는 집시들은 루마니아에서도 알아주는 부유층이다. 공산정권이 붕괴했을 때 금속 거래, 고철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거뒀는데 워낙 돈이 많아 세금도 두둑히 내 주다 보니 루마니아 정부도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덕분에 으리으리한 집에서 금으로 도배된 온갖 사치품 속에서 살아간다. 관련 보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2012년 9월호에서도 이들을 다룬 바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 루마니아인들의 반응은 사회적 기생충들이 뇌물을 동원해 거액을 번다면서 배아파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씁쓸한 현실이다.(...)
2013년 10월 말 그리스에서 집시 부부가 아동 "유괴"로 체포된 사건이 일어났다. 까무잡잡한 집시 부부에게 금발벽안에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 소녀 마리아라는 딸이 있었는데 언론은 이 가엾은 소녀를 금발 천사(blonde angel)라고 부르며 진짜 혈육에 대해 조사했고 아마도 북유럽계 부부 여행객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유전자 조사 결과 마리아의 실제 부모는 양부모처럼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집시로 드러났다. 심지어 이 부부의 슬하에는 마리아 외에도 백인처럼 보이는 자녀가 여럿 있었는데 이에 대해 집시는 원래 인종이 많이 섞인 편이라 부부에게 유럽계 백인 피도 흐르고 있었다는, 즉 격세유전이라는 얘기가 있고 아니면 부친 쪽이 백색증 유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마리아가 아동 인신매매로 넘겨졌는지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모친 쪽은 "아이들을 기를 능력이 안 돼 마리아를 다른 이들에게 맡겼을 뿐, 돈은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마리아를 돌려받고 싶다고 말했다. 어찌되었건 마리아는 유괴된 아이가 아니었고 북유럽계가 아닌 집시 부부의 딸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로미 커뮤니티의 반발이 거셌다. 집시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피부가 모두 까무잡잡하다는 편견[27]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다. 사실 이런 케이스는 마리아뿐만 아니라 여러 번 있다고 한다. 유대인이나 집시가 흔히 생각하기에는 철저한 순혈주의로 다른 인종과 전혀 통혼하지 않을거 같지만 그건 전혀 아니며 처음 정착했을 때만 해도 제법 괜찮은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당시 유럽인들과 결혼하는 경우도 흔했고 드문 경우라고 해도 집시들이 말을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출세해서 귀족, 명문가들과 통혼하는 등의 사례가 있었다.
2015년에는 프랑스의 한 집시 여자아이가 생후 2개월 만에 사망하였지만 부모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주지역 묘지 매장이 거부되어 논란이 되었다. 공공 장례 시설 이용에 대한 패널티는 인종차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융통성 없고 비인간적인 처사였다며 비난을 면치 못했다.
튀르키예에서도 집시가 50만명 가량 살고 있다. 기존에 정착하던 집시들도 있었지만 1989년 동유럽 혁명 이후 자본주의 체제 전환에 실패하거나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여파로 경제위기와 전쟁을 피해 튀르키예로 건너온 발칸반도 국가 출신 집시들이 많다고 하며 2011년에 발발한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시리아 등 중동 지역에서 넘어오는 집시들이 증가했다. 일부 몰지각한 여행객들이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고 대마초를 피워도 좀 봐주는 것과 달리 집시들이 길거리에 공연하면 경찰들이 신고를 받고 나서서 무자비하게 패거나 재판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감옥에 집어넣는다고 한다.
러시아의 집시는 대우가 타 유럽권 집시보다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며 사회통합도 잘 이루어진 편이다. 사실 러시아라고 해서 집시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집시에 대한 차별이 지방정부와 사법당국, 고프닉에 의해서 공공연히 이루어진 적도 있었는데 러시아의 범죄 문제가 얼추 해소된 2010년대에 잠잠해졌다. 러시아가 위낙 다민족국가인 데다 체첸인 등이 나쁜 이미지를 몰빵받았고 사회주류에 일찍부터 편입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미지가 덜 나쁜 것이다. 러시아 제국 시절에는 농노로 분류되었지만 토지에 예속되었던 일반농노와는 달리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고 남자는 장사, 여자는 춤과 점술로 연명하는 것은 타 국가와 똑같았지만 집시들이 말 장사를 했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마다 말을 기부하거나 기병대로 입대하면서 지위향상에 성공했고 이것이 집시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높은 원인이 되었다. 집시 음악이 러시아 제국 전역에 인기를 끌자 집시 무용단과 집시합창단들이 잇따라 창설되었고 적지 않은 집시들이 무용단과 합창단에 소속되면서 귀족과 통혼하기도 했으며 이런식으로 상당수가 상류층이 되어서 러시아 사회에 성공적으로 통합될 수 있었다.
소련 시절에는 대우가 오락가락했던 편인데 러시아 내전 과정에서 동족상잔이 벌어지기도 했고 러시아 내전이 끝난 뒤에는 집시들이 쓰던 롬어의 표준화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1933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까지 집시 신문이 폐간되고 롬어 표준작업이 중단되는 탄압이 벌어지기도 했다. 집시의 정착생활을 유도하기 위한 작업도 펼쳤고 당시 집시들이 많이 사는 곳을 자치구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진지하게 검토하기도 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현상이 심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집시들이 소련군에 징집되어 열심히 싸운 데다 집시 예술가들이 선문활동을 벌인 것이 공훈으로 인정되면서 전후부터 집시 예술이 유행하면서 집시의 위상은 크게 올라갔다. 그러나 소련 당국에서 1956년에 집시들의 유량생활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유량생활을 했던 집시들은 유량생활을 정리해야 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집시들의 정착생활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별개로 집시 예술의 인기는 꾸준해서 집시들이 예능 쪽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련 붕괴 후에는 러시아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집시 일부가 먹고살 길을 찾거나 큰 돈을 벌기 위해 레드 마피아로 입단하면서 집시의 이미지가 악화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놓고 린치가 일어나기도 하는 타 동유럽 국가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하기는 덜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러시아 편에 서서 우크라이나군과 싸우기도 하였으며 먹고살기 위해 바그너 그룹에 입단하기도 했다.
영국의 방송인 케이티 홉킨스는 이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5.2. 아시아와 아프리카
이라크의 집시들은 이라크가 하심 왕가[28]가 통치하는 왕국으로 1932년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독립한 후에 왕국 시절이던 1930년대와 1940, 50년대에는 천대와 박해를 받았지만 1958년 하심 왕가의 왕정이 압둘 카림 카심 총리가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폐지당하고 뒤이어 성립된 카심 총리의 이라크 제1공화국 정부(1958~1963)도 1963년 바트당과 카심 정권에 반대하던 이라크군 장성들이 일으킨 군부 쿠데타로 붕괴된 직후 들어선 아흐메드 하산 알 바크르,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 시절에는 차별당하거나 집시 문제와 관련해선 안중에도 없었던 왕국 시절이나 카심의 제1공화국 정부 시기에 비해서 꽤 우대를 받기도 했다.이들은 제4차 중동전쟁과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에서 이라크군에 참전하여 이스라엘군, 이란군, 쿠웨이트군, 미국/서방 주도의 다국적군과 열심히 싸웠고 이란과 이스라엘, 쿠웨이트와의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국가유공자로까지 인정받으면서 집이나 가게를 얻어 정착해 잘 살아가기도 했다. 거기에 이들이 무슬림, 아랍인들이 아니라고 반대 세력에 의한 테러까지 당하자 아예 군대를 보내 호위까지 해 줄 정도라서 이라크의 집시들은 당시 바크르와 후세인 전 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특수 공화국 수비대에 들어가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총력을 다하여 미군에 맞서 싸웠다. 미군이나 영국군, 이탈리아군 등 다른 서방국가의 군대들도 집시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면 자폭으로 같이 죽자고 할 정도로 아랍인 출신 이라크군 병사들 못지 않게 지독하게 싸웠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결국 후세인이 실권한 후 2006년 교수형으로 죽자 많은 이라크의 집시들은 후세인의 사형을 결정한 당시 이라크 정부와 부시 미국 대통령을 살인자라고 비난하고 그의 사망에 애도하며 슬퍼했다. 이라크에서는 집시들이 살던 집과 마을, 도시에서도 현지의 아랍계 이라크인들이나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IS)한테 쫓겨나 방황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살해당하기도 하고 시리아나 요르단, 이란, 레바논 같은 가까운 중동 주변국들로 가서 난민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하다못해 집시와 똑같이 이라크에서 살고 있는 코카소이드 계통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은 이라크 정부로부터 자치권이라도 얻은 데 비해 집시는 자치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29]
시리아에서도 독재자 부자였던 하페즈 알 아사드와 바샤르 알 아사드가 그럭저럭 잘 대우해 준 편이긴 하지만 여기에서도 2011년 튀니지 혁명에서 시작한 아랍의 봄의 실패로 전쟁이 일어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리아의 집시들도 이라크 집시들처럼 알 아사드 정권의 편을 들어주며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정부군과 같이 ISIS, 시리아 반군, 튀르키예군과 싸우기도 하였다. 아사드도 자기 편 들어주고 목숨 바쳐 싸워주는 집시들을 고마워하며 이들의 가족들을 배려하고 국고금으로 돕기도 하면서 이들의 충성에 보답하기도 한다. 심지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는 러시아 연방군에 지원하기도 하였다. 여하튼 자신들이 살던 이라크와 시리아가 커다란 혼란을 겪다 보니 이들 중에는 친러, 친이란, 반미/반서방주의자들이 많으며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시리아 반군과 IS를 지원하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쿠웨이트 같은 친미/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아랍 군주국들도 적대하는 편이다.
이집트에서는 왕정 시절까지만 해도 자국민의 일원으로 대접받았으나 왕정이 쿠데타로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던 1950년대에 집시들에 대한 마구잡이 구타를 비롯하여 재산몰수, 추방까지 일어나면서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일례로 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일원이었던 그리스의 유명 가수 데미스 루소스도 이집트에서 태어난 집시 출신인데 아버지는 집시이면서도 열심히 일해 상당히 잘 살았다고 하지만 군사 쿠데타 이후에 들어선 가말 압델 나세르 정권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추방당해 방황 끝에 그리스로 왔고 그리스에서도 차별을 받았지만 열심히 일하고 노래를 불러 세계적인 가수로 대박을 거두었다.
이란에도 집시가 있는데 현재 약 8만~9만 명이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와 같은 남아시아 국가나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도 집시들이 소수지만 존재한다. 특히 집시의 선조가 인도 북부 지역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5.3.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미국이나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같은 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개국 후에 각국들이 펼친 이민정책으로 유럽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일 때 유럽에서 살던 집시들이 대거 이주해서 집시들이 많이 살고 있다. 준비만 돼있으면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일례로 앵글로, 라틴아메리카 나라의 집시들도 유럽에서처럼 유랑생활을 유지하며 중고차, 고물상, 미술품 거래, 점성술 등으로 생활하는 경우다 많지만 어차피 남북미 주민들의 거의 모두가 기원이 외지 출신인 데다 이들 나라에서는 빈부격차가 커서 그 정도면 나쁘게 먹고사는 축은 아닌지라[30] 경제적으로 그리 괄시받는 것은 아니다. 당장 대도시 빈민가에 가 보기만 해도 집시를 걱정하는 것이 한가해 보일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차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브라질에서 집시들이 종종 편견으로 차별받을 때도 있기는 한데 집시의 수가 많은 게 아닌 데다 현실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치안이 집시 유랑단보다 눈앞의 마피아 졸개나 부패 경찰관이 백배, 천배는 더 걱정되고 무서울 정도로 개판이기도 하고 흑인이나 원주민과의 갈등이 훨씬 더 큰 문제점이다 보니 묻히는 감은 있다.특히 미국의 집시 같은 경우는 이민을 온 뒤에 집시 특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그냥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려는 평범한 동유럽계 이민자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에 제대로 된 집시 정착촌은 없는데 대다수의 집시계 미국인들은 이민 직후에는 자신들이 살던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과 동화되어 살았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에 이주한 집시들의 후손들 중 자신이 집시의 후손임을 아는 사람도 극소수이며 당연히 스스로 집시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더 적다. 다만 미국이나 캐나다에 사는 일부 집시들도 자잘한 중고 물품이나 싸구려 물품들을 판매하거나 유라시아에 사는 선조들처럼 구걸과 범죄를 저지르며 가난하게 생활하기도 하는데 이 지역은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인구 비중은 더 높은 히스패닉에 대한 악명이 더 커서 집시 출신의 범법자나 노숙자들에 대한 주목도는 유럽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편이다.
호주, 뉴질랜드에도 일부 집시들이 거주한다.
6. 사회 문제
1950~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정권은 집시들에게 공동주택을 무료로 제공하고 사회에 정착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정작 집시들은 공동주택을 받자마자 여름엔 집 안에 있는 난방기, 창문, 변기 등 돈이 되는 모든 걸 다 팔아먹기도 했다. 당시에도 집시들은 전근대적으로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서 현대적인 집에서 사는것이 익숙하지 않았다.[31] 그렇지만 당시 소련에서는 집시들의 아파트 생활이 반강제적으로나마 정착되었고 현대 러시아 집시들도 단독주택이나 유량생활을 하는 대신 아파트가 난방이 잘 된다면서 아파트에서 사는걸 선호하기 때문에 공산화가 1940년대 후반에나 진행된 체코슬로바키아와 이미 1920년대에 진행된 소련의 여건의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 아무튼 집시 강제 정착 정책의 효과가 없지는 않아서 1980년대 이르러서는 집시 고용률이 70%대에 달했다.공산체제 하에서도 통합은 썩 성공적이지는 않았는데 거기에 더해 체제전환 이후 집시들이 우선 해고 대상에 올라 집시들의 실업률이 크게 치솟았고 당연히 중산층이 된 집시들도 다시 빈곤층으로 내려앉았다. 이 상황에서 1997년에 민영방송국 TV노바의 인기 시사프로그램인 Na vlastni oci에서 캐나다에 살던 집시들이 행복하게 잘산다는 식의 방송을 내보내자[32] 이 보도를 털썩 믿은 수천명의 집시들이 전재산을 털어서 캐나다행 비행기표를 대량으로 예매해서 망명비자 발급이 이루어졌고 상당수 지자체에서는 골칫덩어리가 사라지니 이에 좋아라 하면서 아예 집시들의 교통여비와 정착금까지 지원해 주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캐나다 당국에서 캐나다가 마냥 지상낙원은 아니라면서 방송사를 비난했고 체코인들의 비자발급을 한동안 제한하기도 했으며 집시가 입국한다는 소식에 스킨헤드들이 난동을 부리는 사건도 일어났다. 다만 이들 집시들의 후일담을 보면 캐나다 정착 집시들은 체코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면서 그냥저냥 살고는 있는 편이니 캐나다 정착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편이라고 할 수는 있다[33].
체코 모스트 시의 루돌리체에 있는 Chánov라는 동네가 그곳인데 근처 마을의 이름을 따 왔다. 1970년대 공산정권 치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많이 지었던 아파트촌[34]으로 현재 인구는 1,500명에서 2,000명 정도이며 세금을 안 내서 전기고 수도고 다 끊어졌는데 어떻게 불법적으로 끌어 쓰고 있다고 한다. 치안도 당연히 엉망이고 집시 게토 + 범죄의 온상인 동네다.[35]
유럽에서 생활하다 보면 집시를 마주치는 경우가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자주 있다. 마주치는 목적은 보통 구걸이나 소매치기, 관광객을 상대로 한 사기[36], 매춘 등 성범죄다. 때론 행상을 하거나 노점을 하는 집시도 보이긴 하지만 이들도 집시라고 구타와 차별을 받아 포기하고 구걸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차별을 이겨내고 사업이나 일을 하는 경우는 극소수인데 대다수의 집시들 때문에 바른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집시들까지 싸잡아 멸시당한다.
떠돌이 집시들 중에는 간혹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디서 개를 구해 와서 키우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는 처지라 제 몸도 제대로 못 씻는 사람들이 개를 정성껏 목욕시킬 리는 당연히 없다. 그래서 집시들이 키우는 개는 때가 꼬질꼬질하게 껴서 흰 개도 시커먼 개가 돼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 개와 함께 있는 노숙자들은 쫓아낼 수 없다.
영국에도 집시들이 많은데 당연하게 모든 욕이란 욕은 다 듣고 살며 정말 꾸준히 그 욕에 걸맞은 활약을 하며 산다. 가령 임대한 집에서 본인 명의로 들어온 세금도 안 내고 그 집에 있던 모든 가구들, 심지어 욕조까지 다 팔아먹은 다음에 뻔뻔하게 보증금 안 준다고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집시 부모들은 자식을 이끌고 자식을 미끼로 자식이 굶고 있다고 구걸한다. 자식들은 종일 구걸해야 하므로 학교 따윈 가지 않는다. 그렇게 구걸로 성장한 자식들은 마땅히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구걸은 대물림된다. 그러나 체코와 슬로바키아 등지에서 집시 어린이의 학업은 차별되어 왔고 이들 국가에서 정신발달과 지능발달에 문제가 있는 아이를 위한 학교에 정상적인 집시 어린이가 유의미한 비율로 입학당한다. 다만, 체코의 주류 정책은 집시 아이를 위한 교육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므로 집시어로 집시 어린이를 가르치는 학급을 운영하기도 한다.
게다가 사지멀쩡한 남자들은 당연히 구걸을 해 봐도 소득이 없어 도둑질이나 일삼게 되고 이런 대다수의 집시 덕분에 정말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집시까지 도매금으로 차별받게 된다. 집시라는 이유로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일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현실에 절망하고 그냥 다른 집시처럼 도둑질이나 하며 살게 되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집시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많은 무슬림들이 구걸하는 집시들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슬림들은 자선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돈을 준다. 특히 라마단 때는 금식과 더불어 자선도 더 행해진다. 이러하다보니 노르웨이의 집시들은 타 국가의 집시들과 달리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드물다. 구걸만으로도 먹고살만하니 굳이 범죄를 저지를 필요가 없는 것. 그러나 현지인들이나 비무슬림들은 눈도 깜짝 안 하고 지나간다. 문제는 이로 인해 집시들이 무슬림들을 좋은 먹잇감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과거 공산정권이 들어섰던 동유럽에서는 강제적으로라도 집시를 노동에 투입하게 하고 정주생활을 강요했는데[37] 체제전환 이후 실업률이 높아지고 하다보니까 저 집시들 때문에 취직이 안 된다고 애꿏게도 손가락질 받았다는 사연도 많다.
전술한 루마니아 부제스쿠에 사는 집시들처럼 재물을 모은 집시들은 루마니아 정부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돈 많은 집시라도 이라크와 시리아, 구 유고 연방 출신 국가들의 사례처럼 전쟁이나 내전으로 몰락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포르투갈과 프랑스 파리에선 집시들이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을 상대로도 범죄를 저질러서 이 문제가 심각한데, 파리는 이미 최소 16세기 이전부터 범죄가 많기로 유명했고, 포르투갈 경찰들은 집시들이 강력 범죄라도 저지른 게 아니면 손을 놓은 거나 마찬가지라 더더욱 문제다.
유럽 관광지에서는 관광객이건 현지인이건 집시들로 인한 직, 간접적인 피해가 많다 보니 집시가 상점내의 관광객한테 구걸하려고 하면 가게 주인이 집시를 내쫓기도 한다.
이렇게 유랑하면서 잡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일부 집시 클랜들은 정착한 뒤 강력한 갱단이나 마피아 조직을 설립해서 각국에서 설치기도 한다.
7. 집시 출신의 유명인
- 나지프 무지치: 제6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배우. 그러나 2018년에 생활고로 인한 건강 악화로 사망했다. 당시 자식들에게 3일 동안 밥을 먹이지 못해서 베를린 영화제에서 받은 트로피를 단돈 530만 원에 팔아 쓸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 조르주 치프라: 헝가리의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이자 리스트 스페셜리스트. 집시 혈통으로, 집시 풍의 〈루마니아 환상곡(La fantaisie Roumaine)〉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리고 본인 외 누구도 그 곡을 치지 못했다 - 데미스 루소스: 그리스의 유명 가수. 부모가 집시 출신이다.
- 아지스: 불가리아의 가수.
- 율 브리너: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어머니가 집시라고 한다.
- 찰리 채플린: 집시와 영국인의 혼혈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찰리 채플린이 집시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내용의 편지가 찰리 채플린의 유품에서 발견되기도 했다.[38]
- 장고 라인하르트: 벨기에 태생의 기타리스트, 어릴적부터 집시 무리와 함께 유랑하면서 그들의 음악의 영향을 받아 집시재즈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유럽 재즈뮤지션들에게 있어서는 전설과도 같은 존재다.
- 토니 갓리프: 알제리 태생 프랑스계 집시 영화 감독. 카빌계 아버지와 집시계 어머니를 두었다. 때문에 북아프리카 집시 문화에 대한 영화들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추방당한 사람들이 있다.
- 타나 사비치: 1985년생의 세르비아 여가수. 그러나 본인은 출신 민족이 집시가 아닌 슬라브 계열의 세르비아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타이슨 퓨리: 퓨리는 아일랜드 집시의 후손이며 별명은 "집시킹"
집시들의 왕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현재 헤비급에서 꽤 강력한 복서 중 한 명으로 그 별명은 허세가 아니다. 집안이 복싱으로 유서 깊은 듯하다. 그의 할아버지도 집시 출신 베어너클 복서였고 그의 사촌인 휴이 퓨리도 헤비급 복서로 활동중이다. - 시니사 미하일로비치: 세르비아의 축구 선수. 아버지 친가가 집시 혈통이라고 한다.
- 셰어 로이드: 영국의 가수. 부모가 집시 출신이며 어렸을때 유랑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 로니 우드: 롤링스톤즈의 기타리스트. 롤링스톤즈 문서 참고.
- 로버트 플랜트: 레드 제플린의 보컬리스트. 어머니가 집시이다.
- 밥 호스킨스: 영국의 명배우. 영화 누가 로져 래빗을 모함했나 로 유명하다. 할머니가 집시였다고 한다.
- 헤수스 나바스: 집시 혈통이며 현재 세비야의 주장이다.
- 와싱톤 루이스 : 브라질의 대통령. 포르투갈 집시 출신이다.
- 주셀리누 쿠비체크 : 브라질의 대통령. 모계 조상이 집시였다.
- 안잘리 비마니
8. 매체에서의 모습
집시: 도와줘! 유럽 애들이 나를 못살게 굴고 있어! 넌 어떻게 했길래 걔들이 널 그냥 놔두는 거야?
이스라엘: 음… 세계급으로 음모라도 꾸며 봤어?
집시: 아니.
이스라엘: 돈은 많고?
집시: 난 그리스 돈을 훔치고 산다고, 말이라고 해?
이스라엘: 특별한 기술력이라든가?
집시: 기술력이 뭐지?
이스라엘: '되찾아야 할 조상들의 땅' 같은 거는?
인도: (집시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자) 날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 컨트리볼로 묘사된 집시의 모습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엔 한국에서 미디어의 영향으로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보헤미안이라고 포장된 적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돈 없는 집시들이 정상적인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다 보니 갱단이나 마피아가 되는 비율이 높을 뿐이다.이스라엘: 음… 세계급으로 음모라도 꾸며 봤어?
집시: 아니.
이스라엘: 돈은 많고?
집시: 난 그리스 돈을 훔치고 산다고, 말이라고 해?
이스라엘: 특별한 기술력이라든가?
집시: 기술력이 뭐지?
이스라엘: '되찾아야 할 조상들의 땅' 같은 거는?
인도: (집시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자) 날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 컨트리볼로 묘사된 집시의 모습
브램 스토커의 소설인 《드라큘라》나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에서도 집시들은 마녀나 흡혈귀들로부터 돈을 받고는 아이와 여자를 납치하는 일도 얼마든지 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에 등장하는 집시 소녀 에스메랄다는 진짜 집시가 아니라 아기 때 집시들에게 유괴되어 그들 사이에서 성장한 프랑스인이다. 그때 에스메랄다와 바꿔치기당한 아이는 콰지모도인데 이쪽은 프랑스인으로 자랐지만 인종과 핏줄만큼은 집시인 데다 척추후만증, 시각장애, 청각장애가 있다. 이렇게 대우가 나쁜 소설에서는 거의 무슨 인간이 아니라 오크나 고블린 같은 몬스터와 동급으로 묘사된다.
대부분의 매체에서 묘사되는 집시들은 어쨌건 간에 일은 안 하고 점성술 같은 신비롭거나 노점상 같은 자영업자 혹은 범죄에 몰두하고 남자는 약탈, 강간마, 여자는 문란하고 남자를 유혹해 어쨌든 나쁜 결과를 낳게 하는 범죄적 인종들로 묘사된다. 대표적인 작품이 프랑스인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의 소설 《카르멘》으로, 흔히 퍼져있는 아름다운 팜 파탈인 떠돌이 집시 여인의 이미지는 100% 카르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메리메 자신이 《카르멘》의 뒤에 붙인 저자 해설(?)에서 "스페인에는 아름다운 집시 여자가 극히 드물다. 독일에는 흔히 아름다운 집시 여자가 있다."고 한 것이다. 스페인 집시 여자의 추한 몰골에 대해서는 메리메가 직접 "안달루시아 집시 아낙네의 머리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제아무리 이와 때투성이인 말 갈기를 떠올리더라도 그 더러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정작 《카르멘》의 배경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으로 개방적인 아름다운 팜 파탈인 떠돌이 집시 여인의 이미지는 남유럽에서 더욱 강해 프랑스의 담배 상표 중 하나로 지탄(집시)이라는 것이 있는데 필터가 없는 독한 담배로, 움베르토 에코가 이 담배를 즐긴다. 루팡 3세의 주인공 루팡이 피우는 담배가 지탄 카포랄이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영화감독인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1988)은 세르비아 집시의 생활상과 고민을 밀도 깊게 그려낸 수작으로 꼽힌다. 서구권 영화계 사상 최초로 대본 전체에 집시 언어인 롬어가 사용되었다. 집시를 다룬 작품을 드라마와 영화, 다큐멘터리를 막론하고 이 정도로 공을 들여 만든 경우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등장하지 않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연기 경험이 없다시피 한 일반인이다. 쿠스트리차는 이 영화로 1989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는데 시사회 당시 5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다.
토니 갓리프의 영화들이 현실의 집시들을 잘 다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갓리프는 실제로 집시 출신이기도 하다.
현대에 와서는 '자유로운 집시 여자'라는 에로틱하고 낭만적인 이미지가 꽤 유행하고 있다. 집시들은 방랑하는 동시에 대부분 생계를 위해 잡화상이나 말장수, 일용직, 믿거나 말거나식 점술[39]이나 돌팔이 의료 등에 종사하며 간혹 기타나 우쿨렐레 같은 악기들을 들고 길거리에서 공연하며 돈 버는 자들도 있다.
- BLOOD+ - 하지, 공식 설정에서 로마니족이라고 확정. 작중에서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라는 대사로 언급된다.
- Dying Light 2 Stay Human - 대니어(Danior): NPC이며 주인공 에이든 콜드웰과 만날 때 롬어를 사용한다.
- 강철의 연금술사: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
- 가면라이더 스트롱거 - 제너럴 섀도우
- 끝없는 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 대항해시대 4 - 샤를롯트 미첼: 확장팩인 파워업키트로 플레이 시에만 등장하는 캐릭터로, 주인공들 중 한 명인 라파엘 카스톨로 플레이하면 등장한다. 집시 출신으로 아메리카 이주를 알선해 주는 브로커에게 낚여서 가족들 및 다른 집시들과 함께 오늘날의 미국 플로리다 주의 펜사콜라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가 한 악덕 상인에게 갑질당하던 것을 라파엘 일행이 그 상인을 참교육해서 구해준 것을 계기로 라파엘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에도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살던 지역을 상당히 발전한 무역항으로 키워냈고 엔딩에서는 라파엘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면서 둘이 이어지게 된다.
- 덱스터의 실험실: 1990년대 미국에서 방영했던 미국 애니메이션. 주인공 덱스터와 누나 디디 남매의 아버지가 집시 장사꾼으로부터 게임 카트리지 타이틀 하나를 구매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북미권의 대중매체에서도 집시의 존재가 언급된 적이 있다.
- 드라큘라
- 떠돌이 할아버지와 집 없는 아이들 - 미렐리와 니키, 그리고 팅카를 비롯한 집시 아이들: 나탈리 새비지 칼슨의 소설
- 로얄 블러드 - 모니카 러셀: 과거 집시 출신이었다가 마녀 사냥으로 인해 죽임당할 뻔하다가 에드먼드의 도움으로 뱀파이어가 되면서 살게 되었다고 직접 언급된다.
- 루지탕(LE GITAN): 죠세 조반니 감독의 영화. 프랑스의 국민배우 알랭 드롱이 의협심 강한 집시 범죄자로 출연했다.
- 마더 러시아 블리즈
- 마블 코믹스 - 빌런 닥터 둠과 그가 국왕으로 있는 라트베리아 국민 대다수
- 마비노기: 아브네아 호수의 집시캠프
- 미뇽의 노래: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곡
-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중고품을 내놓고 벼룩시장을 하는 흑발의 미국인 백인 여성에게 주인공이 집시라며 미국에서의 삶은 어떠냐는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 불의 단서: 모바일 추리 게임이다.
- 사이퍼즈 - 악몽의 티샤
- 스내치: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로 브래드 피트[40]가 아일랜드계 집시 복서 역을 맡았으며 극중 주연인 제이슨 스타뎀의 내레이션에서 집시들을 만나서 힘든 점은 아일랜드어도 영어도 아닌 집시 특유의 억양을 알아들기 힘든 점이라고 말하고 극중에 보여지는 그들은 유랑민족의 이미지처럼 캠핑장의 트레일러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산다.
- 연금술사 - 주인공 산티아고의 꿈을 해몽해주는 집시
- 어쌔신 크리드: 레벨레이션: 집시들이 주인공 에지오를 돕는 NPC로 나온다.
- 울티마 시리즈 - 현실-브리티니아를 떠도는 집시 무리들: 메인 퀘스트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고 집시의 왕인 졸탄은 마법재료 상인이기도 하다. 특히 인트로에서 볼 수 있는 현실 집시 여인은 캐릭터 작성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도와주고 9에선 시작부터 엔딩에서 써야할 마법을 스포일러해준다.
- 일 트로바토레 - 아주체나[41]: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 쥐 - 집시 주술사: 잠깐이지만 아냐 슈피겔만이 집시 주술사를 만나는데 나방으로 묘사된다.
- 집시 여인: 1980년대 후반에 '이치현과 벗님들'이라는 가수를 히트시킨 곡으로 바로 집시를 모티브로 한 노래다. 1988년 후반에 나온 노래로 당시 상당한 히트를 쳤고 한국에서 집시의 인지도를 올려 준 노래라고 볼 수 있겠다.
- 집시의 시간: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1989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 카르멘: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 이 소설을 조르주 비제가 오페라화한다.
- 카산드라의 거울 - 그라지엘라
- 코드 기어스 망국의 아키토
-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4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신부로 쓸 여자를 구하기 위해 소녀를 유괴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 트리니티 블러드 - 카야 쇼카
- 파리의 노트르담(노틀담의 꼽추): 빅토르 위고의 소설로 그것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
- 포르토벨로의 마녀 - 주인공 아테나의 생모
- 피키 블라인더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의 영국 버밍엄 갱단을 그린 영국 드라마로,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가족인 셸비 일가를 포함하여 여러 집시 집단이 등장하는데, 대우가 썩 좋지 않다. 툭하면 '집시 놈들'이라고 욕먹기 일쑤이며 알피 솔로몬스[43]는 주인공 토마스 셸비와 처음 대면하자마자 정말 텐트나 포장마차에서 사냐고 물어볼 정도다.
- 황금나침반: '집션'이라는 가상의 민족이 등장하는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현실의 집시를 모티브로 삼은 민족이다. 정발본에서는 그냥 집시로 오역되었다. 이 때문에 현실의 집시와 같은 민족으로 오인되고는 하지만 해외 위키피디아에서는 현실의 집시와 분명히 구분한다.
- 헴록 그로브 - 피터
- 名犬ジョリィ(한국 이름: 용감한 죨리-1981년 MBC): 이 작품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피레네 산맥에서 할아버지와 살던 주인공 세바스찬이 버림 받은 개 죨리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서 여행을 하는 스토리인데 이 어머니가 유랑극단에서 공연을 하는 집시다. 주인공도 집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들이 여행하는 중 어느 집시 마을을 들르게 되는데 이들은 경찰들에게서 우물에 독을 넣는 사람들이라며 탄압을 받고 있었다. 이 경찰들 중에 집시에게서 전향한 사람이 있고 마을 사람들에게서는 배신자라며 배척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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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 집시 카드 마이너 갤러리 : 무료로 러시안 집시 카드 점을 받아볼 수 있는 커뮤니티이다[1] 인도 국기와 유사한데, 자신들이 인도에서 건너온 민족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다.[2] 물론 집시들이 농사를 아예 안 짓는 것은 아니라서 전근대에도 농장에서 알바 개념으로 농사를 짓거나 땅을 불하받아 농사를 짓는 집시들은 종종 있었으며 현대에는 돈이 안 되어서 때려치는 경우가 많지만(...) 농장에서 일하는 일부 집시들이 있기는 한다.[3] 서유럽에선 지역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프랑스에서는 마누시, 이베리아반도와 핀란드에서는 칼레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4] '치간(Tzigane)'은 특히 게르만어파와 슬라브어파에서 집시를 가리킬 때 더 자주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치고이너바이젠(Zigeunerweisen)〉의 치고이너(Zigeuner)나 러시아어권의 성씨인 치가노프(Цыганов / Tsyganov)를 들 수 있다. 튀르키예어인 칭게네(Çingene)도 같은 어원이다.[5] 남성형은 롬(Rom), 여성형은 롬니(Romni), 복수형은 로마(Roma), 그리고 롬(Rom)의 남녀 형용사형이 각각 로마노(Romano)와 로마니(Romani)이다. 롬어의 R는 구개수음인 [ʀ]로도 실현되기 때문에 R를 두 번 사용해서 Rrom, Rroma, Rromani로 표기하기도 하며 특수문자인 Ř, ř를 사용하기도 한다.[6] 당시 일본의 전국 평균 소작료는 55.1%에 달했고 일부 후안무치한 자들은 80% 이상을 부르기도 했다.[7] 출애굽기에서는 아예 정착한 유대인들이 세를 지나치게 불려 핍박받게 되어 출애굽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역사적으로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8] 미국에서는 이런저런 문제로 각종 홍역을 겪은 탓에 자신이 선택하지 못하는 것을 소재로 하는 문제를 표현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미국 코미디언들이나 익명 사이트에서 하는 인종 유머나 종교 유머 같은 것을 아무 때나 해도 되는 줄 알고 하다간 운이 좋아도 갑분싸, 자칫 주먹이 어쩌면 총알이 날아올 각오를 해야 한다.[9] 잔즈 반란으로 추정되기도 한다.[10] 물론 이들 나라라고 해서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원주민과 흑인들이 차별의 타켓이 되어서 집시에 대한 차별은 상대적으로 덜했다.[11] 유럽권 집시들은 기독교를 믿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중동권 집시들은 이슬람을 믿으며 인도 집시들은 힌두교를 믿는 경우가 많다.[12] 유럽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도 만혼의 영향이 크다. 다만 유럽에서 집시들이 애를 다섯, 열 명씩 낳아재껴서 다산한다는 식의 루머가 돌아다니는 것과 달리 집시들의 평균적인 출산율은 정주민에 비해 크게 높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특출나게 높지 않다고 하며 대략 1명대 후반~2명대 중반 정도로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같은 나라들과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집시 내에서도 계층에 따라서 출산율이 달라지는 편이다.[13] 문제는 집시들은 히틀러가 찬양하던 진짜 아리아인에 속하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물론 히틀러는 독일 게르만족만을 진정한 아리아인의 후손으로 여겼다.[14] 대부분 현지인으로 동화되어서 아메리카 대륙 이민자 집시인의 후손들은 조상 중에 집시가 있었다는 정도만 자각하고 있다.[15] 비슷한 취지로 소련에서 유대인을 대규모로 유치하자는 이유로 유대인 자치주를 설치했다. 물론 이것도 인구 유출로 인해서 말로만 유대인 자치주다.[16] 슬라브족 같은 경우는 그래도 구 유고슬라비아의 우스타샤나 우크라이나의 반데라 분파와 같은 나치에 부역하던 친나치 파시즘 세력들도 존재했지만 유대인, 집시는 얄짤없이 무조건 멸절 대상이었다.[17] 그러나 서방 사학계에서는 나치의 집시인 집단학살도 홀로코스트의 일부로 포함시키고 있다.[18] 티토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대통령이었을 적에 남슬라브인 계열인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같은 구 유고 연방에 속해 있는 유고 연방의 구성 공화국들뿐만 아니라 슬라브계 민족이 아닌 코소보의 알바니아인이나 보이보디나의 헝가리인들에게도 자치권을 부여하고 이들의 언어 사용과 문화 보존을 허용하는 등 다양한 민족우대 정책을 견지했다. 다만 세르비아계를 은근 배척, 홀대하는 경향이 있었는지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게 발단이 되기도 했다. 헌데 그렇다고 티토가 유고 대통령이었을 시절에도 무조건 세르비아계를 완전히 배척한 것도 아니었다. 티토의 세 번째 아내이자 티토 대통령 집권 시기 유고슬라비아의 영부인이었던 요반카 부디사블레비치(Јованка Будисављевић)와 알렉산다르 란코비치 등 티토 시기에 활약했던 일부 유고슬라비아의 정치인들이 세르비아계 출신이었다. 무슨 특별히 세르비아인 차별 의식이 있어서 배척한 게 아니라 가장 수가 많고 정치, 군부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유고의 주도민족으로 세력이 강대한 데다가 융화 정책에 가장 불만이 많은 세르비아계를 그냥 무턱대고 풀어 놓았다가는 무슨 사단이 날지 알 수 없으니 견제한 것이다.[19] 다리 혈행장애가 악화되어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세한 건 요시프 브로즈 티토 문서 참조.[20] 심지어 유고 연방에서 분리독립한 나라들의 국적으로 변경할 것을 강권하며 당시 유고 국적을 갖고 있던 자국의 집시들을 죽이거나 구타하기도 했다.[21] 코소보 전쟁 당시 NATO군의 공습과 알바니아계 주도의 코소보 해방군과 세르비아 주축의 신유고 연방군과의 충돌이 있었지만 1990년대 초중반 크로아티아 전쟁과 보스니아 전쟁 당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 비하면 전쟁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22] 1991년 유고 내전 초반기에 세르비아와 전투를 벌였지만 열흘만에 분리 독립을 인정받는 등 전쟁 피해는 같은 시기에 전쟁이 벌어졌던 크로아티아나 이듬해에 내전이 일어난 보스니아보다는 크지 않았다.[23]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출생 민족이 집시가 아닌 세르비아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24] 심지어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위치한 티토의 묘역에 찾아와서 '티토 대통령님 다시 돌아와주세요'라고 말하며 오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25]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세르비아어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한국에서 유일하게 세르비아 등 구 유고권 지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드물게 발칸 현대사에 능통하며 세르비아 등 구 유고권 국가들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시선도 일부 잡아주는 답변을 하기도 한다.[26] 알렉산드리아 서부에 있는 조그만 소도시다. 알렉산드리아 자체도 인구 5만 정도에 불과한 수준인데 부제스쿠는 더 적어서 알렉산드리아 인구의 1/10 정도의 수준이다.[27] 앞서 언급되었듯 집시는 애초에 코카소이드인 데다 유럽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유럽계 주민들의 피도 섞였기 때문에 금발벽안 집시도 얼마든지 있으며 이 사건에 대해 자기 자식들도 피부가 희니까 아동 유괴범 취급할 것이냐며 비아냥거리는 로미들도 있었다.[28] 이라크의 이웃국가인 요르단의 현재 왕실 가문도 하심 왕가다.[29] 자치권을 행사하는 자치주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쿠르드족은 그래도 아르빌, 디후크 등 현재 쿠르드 자치주 정부가 통치하는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라도 인구 구성비가 비교적 높아 자치권을 행사하는 자치주를 만들 수 있었던 데 비해 이라크의 집시들은 이라크 국내에서도 쿠르드족들보다 더 극소수인 데다 오랫동안 아랍계 이라크인들과 잡거해온 시기가 너무 길어서 자치주로 삼을 만한 집시가 다수를 차지하는 영토가 없다.[30] 캐나다는 그나마 아메리카에서 흔치 않은 복지국가라서 빈부격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북극과 너무 가까운 곳이라서 상대적으로 추운 기후 때문에 인구가 많지 않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도 더는 거부하는 난민들을 오히려 받겠다면서 빗장을 열거나 이민 요건이 미국에 비하면 다소 완화되는 등 더 많은 인구를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혈안이 되어 있어서 집시들을 배척할 분위기가 아니며 이런 상황 때문에 캐나다 사회는 타 인종들에 대한 대우가 미국에 비해 훨씬 나은 편이라서 집시든 그 누구든 차별하는 경향도 덜하다.[31] 비슷한 예로 한국에도 경제개발기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수세식 변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수세식 변기를 우물로 착각한다거나(...) 사람들이 서양식 변기 대신 동양식 변기에 익숙해서 변기 위로 앉느냐고 변기커버를 깨뜨려먹었던 시절도 있었다.[32] 물론 당시 체코가 타 동구권 국가보다는 낫다고 해도 캐나다에 비하면 소득수준이 크게 낮았기 때문에 아주 틀린 보도는 아니었다. 물론 지상낙원인 양 보도한것은 과장된 것이지만.[33] 상술했듯이, 캐나다는 인구가 너무 부족해서 이웃나라 미국에 비하면 이민법도 다소 널널한 편일 정도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때문에 인종차별은 커녕,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의식조차 진즉에 뿌리가 뽑힌 상태라서, 집시들이나 히스패닉, 동아시아인계가 정착하기엔 매우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다.[34] 말이 좋아서 아파트지 시멘트 벽돌을 조립하듯 지은 허접한 주거지다.[35] 이런 상황인데도 체코는 유럽에서도 그나마 집시의 정착화와 동화에 성공한 국가 중 하나이다. 집시를 정착시키려고 시도한 국가 자체가 얼마 없는데 체코에 거주하는 집시 1/3은 체코인과 평범하게 어울려 살며 전통적인 생활을 고수하는 비율도 비교적 낮은 편인데 역사적으로 체코의 집시들의 정착 비중은 높은 편이었다.#[36] 이들은 대표적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그럴싸한 단체를 만들어 싸인을 요구한다. 보통 수법은 장애인 단체, 농민 기부 단체를 표방하며 프랑스로 적은 뒤 그럴싸하게 다른 필력으로 타인들이 싸인을 해줬다는 듯 조작한 뒤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특유의 필체가 있는 만큼 자세히 보면 한 사람이 썼음을 파악이 가능한데 당연히 이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게 싸인을 재촉하며 빠르게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만약 관광객이 마지못해 싸인하면 그때부터 "너 기부에 싸인 했고 좋은 곳에 기부하는 거니까 돈 내놔"라며 집요하게 쫓아오며 심지어 돈이 없다하면 ATM기를 안내해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싸인만 했을 뿐인데 왜 돈 내야 하냐며 반발하면 싸인한 것을 보여주며 마치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듯이 허세를 떠는데 당연히 피해자측이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면 그제서야 꼬리 내리고 도망친다. 이들을 만나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시하는 거고 뭣도 모르고 싸인한다면 경찰을 부르는게 가장 좋다.[37] 이런 탄압에도 유랑생활을 이어나가던 집시들도 있었다.[38] 하지만 유명인들 혈통을 정리한 사이트에는 잉글랜드계에 아일랜드계 약간의 혼혈로 표기돼 있다.[39] 타로카드부터 집시 여자 점술사가 떠오르는 이미지였다.[40] 미국 국적의 브래드 피트가 싱크로율 100%인 아일랜드계 집시 연기를 선사해 모두의 극찬을 받았다.[41] 만리코의 엄마다.[42] 디즈니 애니메이션[43] 극중 등장하는 유대인 갱단의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