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11><colcolor=#fff> 율 브리너 Юл Бринер | Yul Brynner | |
본명 | 율리 보리소비치 브리네르 Юлий Борисович Бринер Yuliy Borisovich Brynner |
출생 | 1920년 7월 11일 |
극동 공화국 블라디보스토크 | |
사망 | 1985년 10월 10일 (향년 65세) |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1943~65) → [[스위스| ]][[틀:국기| ]][[틀:국기| ]] (1965~85) |
직업 | 배우, 음악가, 작가, 사진작가, 감독 |
활동 | 1941년 ~ 1985년 |
신체 | 173cm |
묘지 |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교회 묘지[1] |
배우자 | 버지니어 길모어 (1944년 ~ 1960년, 이혼) 도리스 클라이너 (1960년 ~ 1967년, 이혼) 자클린 시몬 티옹 드 라 숌 (1971년 ~ 1981년, 이혼) 캐시 리 (1983년 결혼) |
자녀 | 5명 |
종교 | 동방 정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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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태생의 미국 영화 배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태생으로 본명은 율리 보리소비치 브리네르(Юлий Борисович Бринер). 날카로운 눈매, 위엄있는 목소리, 당당한 몸놀림, 그리고 배우에게 외모상 큰 약점이 되기 쉬운 대머리[2]를 오히려 매력으로 승화시킨 카리스마[3][4]로 1950~60년대 할리우드 대작 역사영화물에서 군주 역할을 주로 맡았다. 특히 브리너의 눈빛은 카리스마가 넘친다.[5] 영화 외에도 작가, 가수로도 활동했을 정도.그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포스로 유명하지만 미국 할리우드 산업에서 요구하는 외모 조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키가 170cm 전후(프로필 상 175cm, 실제 172~3cm 추정)로 그다지 크지 않고[6] 대머리의 소유자이기까지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율 브리너의 아이덴티티가 될 정도로 할리우드 내에서 엄청난 인상을 남긴 배우들 중 하나이다. 게다가 동안이기까지 해서, 사망 당시 65세였지만 50대로 보일 정도로 젊은 외모를 자랑했다. 젊을 때는 좀 노안이긴 했다. 십계, 왕과 나에 나올 때 35세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게 그대로 유지되어 20대부터 50대까지 얼굴이 거의 똑같다. [7]
왕과 나, 십계, 웨스트월드 같은 영화에서 어마어마한 씬스틸러로 나오며, 워낙에 포스가 강해서 그런지 맡은 배역의 상당수가 반동인물 혹은 악역이다. 크지 않은 키와 동양적인 외모로 러시아인(아나스타샤), 태국인(왕과 나), 이집트인(십계), 아메리카 원주민(사바타) 등 여러 민족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의 전담 성우는 박상일(KBS 방영판 전담) 또는 양지운(MBC 방영판 전담)이 맡았으나 양지운이 은퇴하고, 박상일이 2021년에 지병인 암으로 사망한 지금은 국내에서 율 브리너를 연기하던 성우들이 모두 사라졌다.
2. 생애
조부는 율리우스 요세프 브리너(Julius Josef Bryner),[8] 스위스에서 러시아로 이민을 온 스위스계 러시아인이다.[9] 친할머니가 몽골계 부랴트인이어서 동양적인 느낌도 얼굴에서 풍긴다. 그래서 젊었을 때 타이제 칸(Taidje Khan)이라는 몽골식 예명도 쓴 적이 있다. 조상 중에 집시 혈통도 있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집시의 인권을 위한 활동에도 헌신했다. 이국적인 외모로 왕과 나에서는 태국 왕 역을 맡았을 정도이다. 다만 친할머니 나탈리아 쿠르쿠토바가 몽골계인 부랴트인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몽골 칸이나 집시라는 설정들은 그가 미국으로 이민오면서 신비로움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 낸 설정으로 본다. 물론 설정이 아니라 진짜라면 이는 당대에 만연했던 화이트워싱일 뿐이다.[10]아버지 보리스 브리너가 기업을 물려받았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가 공산화가 되자 많은 러시아 사업가들이 미국, 유럽으로 떠났으나 보리스 브리너는 러시아에 남아서 정권과 협상에 나섰고 결국 사업을 유지했으나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집권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결국 그는 기업을 반납하고, 중국 하얼빈으로 이주했다.
율 브리너의 어머니는 페트로그라드 음악학교(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오페라를 전공했고, 어머니의 여동생은 피아니스트이자 러시아 최초의 정신과 의사였다. 율 브리너가 4살 때, 아버지 보리스 브리너는 여배우 예카테리나와의 불륜으로 이혼했다. 그렇지만 율 브리너의 할머니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함께 살다가 1927년 중국 하얼빈으로 이주했으나 1931년 일본군이 만주사변을 일으키자 하얼빈을 떠났고,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그렇게 조부 요세프 브리너가 유럽을 떠난지 50여 년 만에 다시 유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율 브리너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키워나갔다. 그가 처음으로 노래를 부른 곳은 러시아인이 운영하던 레스토랑으로 그 러시아 가족은 집시였는데, 그는 집시 문화에 매료되었고, 14살 때는 서커스를 보면서 흥미를 느껴 곡예를 배우다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7세에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 보리스 브리너는 반대했지만 두번째 부인이자 여배우였던 예카리나는 율 브리너를 이해했고,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의 수제자이자 연출가인 미하일 체호프로부터 연기 수업받기를 권했다. 1939년 율 브리너는 영국으로 건너가 미하일 체호프의 극단에 들어갔으나,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율 브리너는 폐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와 함께 온 가족이 또 다시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연기 스승인 미하일 체호프도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그의 명성은 대단해서 그가 연기학원을 열자 수많은 연기 지망생들이 몰려들었는데, 그들 중에는 안소니 퀸,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릴린 먼로와 같은 훗날 대스타들도 있었다. 율 브리너도 미하일 체호프의 연기학원에 다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되자 군대에 가게 됐고, 미군 심리전 부서에서 대 프랑스 선전방송을 담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 배우로 데뷔했지만 한동안 단역만 맡았다. 그러나 1950년대 뮤지컬 '왕과 나'애서 주연을 맡아 대성공을 하며 유명해졌고, 뮤지컬이 1956년 영화화되고, 역시 같은 해인 1956년에 '십계', '아나스타샤'가 함께 개봉하면서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왕과 나'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1950~6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고 1980년대에는 영화배우로서는 활동이 뜸했지만 여전히 뮤지컬 '왕과 나'로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했다.
냉전시대였던 만큼 러시아 즉 소련에서 할리우드 영화 자체를 개봉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러시아에서는 그를 몰랐으나, 미국과 소련의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헐리우드 영화들이 개봉되자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였다. 다만 쿠바 미사일 위기로 다시 냉전무드가 되자 고향을 방문할 수는 없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그의 귀국 길이 열리는가 했으나 이때 율 브리너는 폐암 말기였고, 결국 1985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고향 땅을 밟지는 못했다. 그는 나탈리 우드, 커크 더글러스, 더스틴 호프만, 숀 펜, 스티븐 시걸, 밀라 요보비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11] 실베스타 스텔론[12]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13]까지 러시아 출신, 러시아 이민자 2세, 3세 영화인들 중에서도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다.
여담으로 브리너 집안과 한국 사이엔 사연이 있는데, 이건 1980년대에 와서야 보도되며 널리 알려졌다. 조선 말기 고종은 일본이 침략 야욕을 드러내자 1896년 러시아를 끌어들이기 위해 러시아에 상당한 경제적 혜택을 제공했는데,[14] 율 브리너의 할아버지가 조선의 두만강, 압록강 연안 삼림 채벌권을 받았다고 한다. 중앙일보가 2008년 이걸 특종인 냥 1면 보도했지만 묻히고 지나갔다.관련기사 그도 그럴 게 이미 알려진 내용이고, 율 브리너가 사망한지 20년도 지난 때였으며, 정작 율 브리너는 어릴 때 집안의 부를 누리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의 삼림 채벌로 엄청난 부자가 된 것처럼 기사를 냈는데, 원래 그전부터 상당히 부유한 집안이였고,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면서 조선의 삼림 채벌권을 행사하지도 못했다.[15] 원래 조부가 블라디보스톡 개발에도 큰 역할을 했고, 현재 러시아 극동 지역 최대 종합대학인 극동연방대학교의 전신인 '동양학 대학' 설립에도 참여할 만큼 부유한 집안이였다. 그러나 율 브리너가 태어나기도 전인 러시아 혁명 와중에 조부가 재산을 다 뺐기고, 아버지가 그나마 연이 닿았던 조선을 오가며 벌목업과 숙박업 등 사업을 하다가 결국 경제적 어려움과 여러 문제로 4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집안이 몰락한 상황에서 태어난 율 브리너는 블라디보스톡에서 7살 때까지 살다가 1920년대 만주, 조선에서 잠시 지냈는데 그 시절에 매년 아버지를 따라 여름마다 함경북도 주을온천관련기사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들 록 브리너(Rock Brynner)에 의하면 율 브리너는 생전에 자신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러시아 극동 지역과 한국에 짙은 향수를 지녔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록 브리너 또한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으며, 남북관계가 해피엔딩이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율 브리너의 생가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국제 영화제에 오는 사람들은 한 번씩 찾는 명소.
여러 나라를 떠돌았기 때문에 독일어, 러시아어 등 수개 국어에 유창했다. 전쟁 당시 프랑스어 선전방송을 했을 정도로 프랑스어도 유창했지만, 20살 때 영어권에 진입했는데도 영어 발음이 유창하며 매우 카리스마가 있다.
사진에도 조예가 깊어서 부인과 자식들, 그리고 친구들을 찍은 사진들이 많다. 매우 돈독한 친구 사이였던 오드리 헵번을 특히 여러 번 촬영했다.
대단한 골초여서 하루에 담배를 1~2갑씩 꼭 피우다보니 에디 밴 헤일런 등 지인들이 경악하며 말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피웠다.[16] 결국 말년에 폐암에 걸려서야 금연 홍보 운동에 전력했다.[17] 1985년 10월 10일 세상을 떴을 때 그의 나이 65세였다.[18] 네레트바 전투(Bitka na Neretvi)(1969)에서 공동 주연을 맡은 오슨 웰스와 한날한시에 함께 영면에 들었다.#
3. 작품
- 아나스타샤 1956년작.
러시아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망한 후에 프랑스로 망명한 전직 백군 장군으로 나온다. 로마노프 왕조가 비밀리에 남겼다는 막대한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공산군에게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공주와 닮은 여인(잉그리드 버그먼 분)을 찾아내 아나스타샤 공주라고 주장하는데, 알고보니 그 여인이 진짜 아나스타샤 공주였다. 두 사람은 사기극을 꾸미는 과정에서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태후(아나스타샤 공주의 할머니)에게 진짜 공주로 인정받지만 결국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내용. 1991년 9월 7일 토요명화 방영 당시 박상일이 연기했다.
- 빌라 라이즈 Villa Rides 1968작.
실존인물 판초 비야를 그린 영화로 율 브리너가 판초 비야를 연기했으며, 로버트 미첨, 찰스 브론슨같은 호화 캐스팅에 멕시코 혁명을 다루다보니 엄청난 물량공세를 보여준 작품. 한국에선 풍운아 판초비라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으며 MBC에선 92년 1월 2일 새해특선으로 오후 2시 55분에 풍운아 판초 빌라라는 제목으로 더빙 방영했다. 여기선 양지운이 율 브리너, 김기현이 로버트 미첨을 연기했다.
- 십계 1956년작.
람세스 2세 역으로 나왔는데 카리스마가 넘친다. 모세 역을 맡은 찰턴 헤스턴과 막상막하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였다.[19] MBC 명절 특선(이때는 양지운이 더빙했다. 모세역은 당연히 유강진)및 여러 재방영 당시에는 박일이 연기했다.[20]
- 왕과 나 1956년작.
인종을 초월한 사랑에서 영화 분야의 효시격인 작품으로 영국인 백인 여교사에게 감화되는 태국 왕 라마 4세 몽꿋으로 출연한다. 태국에서는 왕실 모독죄로 이 영화가 개봉 금지되었다. 1999년에 주윤발, 조디 포스터 주연의 《애나 앤드 킹》으로 리메이크.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안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한 실제 몽쿠트 황제와 굉장히 다른 이미지로 연출되었고, 때문에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 브리너가 연기한 황제의 카리스마와 포스는 압도적이다. 그리고 이면에 감춰진 온화함까지 표현함도 제대로 표현하였다. 1995년 2월 26일 명화극장으로 더빙 방영했고 1997년 6월 28일 토요명화로 재방영했다. 여기서도 성우는 박상일.
-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958년작. 1988년 5월 28일 주말의 명화로 더빙 방영했다.
-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1959년작.
여기서는 이스라엘 왕 솔로몬으로 나온다. 이복형 아도니야의 반란을 진압하고, 아도니야의 편을 들어 자신을 유혹시키려 했던 시바의 여왕을 오히려 마음으로 사로잡아 사랑을 얻는다는 내용. 머리를 기르고 나온 몇 편 안 되는 영화. 사실 원래 솔로몬 역을 맡은 배우 타이론 파워가 촬영 중에 죽어서(..) 대타로 들어갔기 때문에 머리를 기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198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특선으로 KBS2에서 오후 1시에 더빙방영했으며 1989년 크리스마스 밤 10시 50분에 KBS1에서 재방영했다. 여기서 성우는 박상일.
- 황야의 7인 Magnificent 7 1960년작.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할리우드판 리메이크. 주인공 격인 크리스 역을 맡았다. 원작에는 못 미치지만 속편이 몇 편 더 나와 있으니 원제로 검색해 보자. 1980년 1월 3일에 TBC에서 새해특선으로 오전 10시 50분에 더빙 방영했고 1986년 7월 12일 오후 4시 25분에 KBS1로 재방영했으며 박상일이 맡았다. 이후 1996년 설날특선으로 주말의 명화로 2월 17일 토요일에 재더빙하여 MBC로 방영했는데 여기선 김관철이 맡았다.
- 타라스 불바(대장 불리바) 1962년작.
니콜라이 고골이 쓴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 카자크의 족장 불리바로 출연, 민족을 위해 아들도 희생하는 지도자 상을 잘 살려낸 수작. 1983년 9월 24일 주말의 명화로 더빙 방영했는데 이 MBC판에서는 김현직이 목소리를 맡았다.
- 더블 맨 1967년작.
스파이 영화로 1인 2역을 한다. 정확히는 특수요원 돈과 그의 얼굴을 똑같이 성형수술한 적군 스파이 칼머. 칼머는 돈의 아들인 로버트를 얼굴로 유인해 죽인 원수이기도 하다. 카리스마는 넘쳐흐르는데 친구가 "자넨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하자 귓방망이를 올려버린다.[22] 훗날 가짜와의 심리전에서 친구가 가짜를 가려낸 복선이 된다. 한국에선 1972년에 더불맨(...)이란 제목으로 극장 개봉하여 서울관객 97,736명을 기록했으며 주말의 명화로 1987년 5월 16일 취리히 특급이란 제목으로 더빙 방영한 바 있다. 성우는 양지운. 감독은 빠삐용(영화)으로 알려진 프랭클린 J. 샤프너이며 영국에서 촬영하고 영국 자본으로 만든 영국영화이다. 미국 배급은 워너 브라더스. 참고로 아들인 록 브리너가 단역으로 나왔다.
- 네레트바 전투 The Battle Of Neretva 1970년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티토의 빨치산 부대들이 독일군, 이탈리아군, 체트니크들을 격파한 네레트바 전투를 당시 유고슬라비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영화화한 작품. 율 브리너 외에도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하디 크루거, 쿠르트 유르겐스, 프랑코 네로, 오슨 웰스 등 유명배우들이 등장하였다. 율 브리너는 여기서 유고 저항군 전투공병대 대장으로 등장하여 추축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한 폭파작전을 벌인다. 한국에서는 오아시스 비디오에서 1991년 10월에 네레트바 강의 다리라는 제목으로 비디오를 발매했다. 1992년 토요일이었던 현충일 주말의 명화로 MBC에서 밤 10시 30분에 더빙 방영했다. 여기서도 성우는 양지운이 맡았었다.
- 그레이트 시맨/적도의 사투 The Light at the Edge of the World 1971년작
쥘 베른이 쓴 소설 'Le Phare du bout du monde'이 원작. 하지만 작가도 이건 실패작이라고 하여 발표하지 않던 걸 작가가 죽은 뒤에 유족과 출판사가 냈다가 베른의 명성을 날린 실패작이라는 평을 듣었다. 그리고 영화도 영 평이 안 좋았다... 커크 더글러스 주연이며 율 브리너는 유니콘을 가장한 뿔달린 말을 타고 다니는 해적 두목인 콩글레를 연기했다. 적도의 사투는 비디오 제목이며 1972년 개봉 제목은 그레이트 시맨. 1986년 크리스마스 특선으로 '케이프 혼의 등대'란 제목으로 1986년 12월 23일 밤 9시 50분에 MBC에서 더빙방영했는데 이땐 양지운이 율 브리너를 연기했고 KBS 명화극장판은 박상일이 연기했다.
- 웨스트월드(비디오 제목은 이색지대) 1973년작. Westworld
국내에는 쥬라기 공원으로 잘 알려진 마이클 크라이튼이 각본과 감독까지 한 SF 작품이며 이 줄거리를 조금 고쳐서 쓴 게 바로 쥬라기 공원이다. 국내에서는 극장을 거치지 않고 1983년 3월 7일 상편, 14일 하편으로 나누어 KBS2TV에서 월요일 저녁 8시 10분에 50분씩 나눠 처음 더빙 방영했고, 1985년 2월 6일 수요일 밤 10시 25분 특별영화로 KBS1 재방영을 했다. 이후, 91년에 대우비디오에서 '이색지대'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왔다. 율 브리너는 냉혹한 총잡이(gunslinger) 로봇으로 나온다.[23] 픽셀화 정도 수준이지만 CG가 사용되었다. 율 브리너가 연기한 로봇을 보면 누구든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터미네이터를 떠올릴 정도로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큰 영향을 준 작품. Futureworld라는 76년작 속편이 있는데, 연속된 세계관이지만 주연은 피터 폰다이고 브리너는 카메오 수준으로 나오는 영화이다. 이 퓨쳐월드는 율 브리너의 마지막 미국영화 연기작이다.
- 최후의 전사 The Ultimate Warrior 1975년작
전염병으로 멸망한 미래의 뉴욕[24]에서 배런(막스 폰 쉬도브)이 이끄는 소수의 생존자 그룹이 황폐한 땅에서도 자랄 수 있는 채소 씨앗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뉴욕시에는 재배할 토지 자체가 부족한데다 이들의 거주지 밖에는 두목 캐럿[25]의 폭도들이 날뛰어 함부로 나가기도 어려운 상황. 이 와중에 지나가던 칼잡이 카슨(율 브리너)에게 채소 씨앗과 배런의 임신한 딸 멜린다를 뉴욕 바깥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달라는 의뢰를 하게 된다.의뢰비는 시가 한 박스[26]
어느 모로 보나 매드맥스나 매드맥스에 영향을 받은 북두의 권처럼 보이지만 이건 그 작품들이 나오기 한참 전인 1975년에 나온 작품이다. 아마 매드맥스도 어느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을 정도. 율 브리너는 당시 한국 나이로 55세임에도 웃통 벗은 근육질 몸매를 자랑했다. 용쟁호투를 감독한 로버트 클라우스(1928~1997)가 감독했으며 80만 달러 저예산 영화인데 미국에서만 900만 달러를 벌며 흥행도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최후의 용사라는 제목으로 SKC에서 1990년 비디오로 냈던 바 있다. 율 브리너가 주연으로 나온 마지막 미국영화이다. 1998년 1월 7일 수요일 특선 외화로 밤 11시에 KBS2에서 더빙 방영했다. 성우는 박상일.
- Death Rage 1976년작
이탈리아 영화로 그의 유작이다. 피터라는 이름을 가진 히트맨으로 나오는데 평가는 그냥 그런 액션영화. 감독인 안토니오 마르게리티(1930~2002)는 온갖 액션, 스릴러 영화를 감독했는데 한국에 제법 많이 개봉하기도 했다. 존 색슨 주연 영화인 지옥의 카니발, 오슨 웰스가 롱 존 실버로 나온 영국과 합작영화 보물섬(1972), 1984년 와일드 기스라는 제목으로 만든 영화(와일드 기스 항목에 나오듯이 한국에서 성공한 와일드 기스 속편인양 나온 영화.)이라든지...마르게리티 감독 유작은 마빈 해글러 주연 액션영화 인간병기 인디오 2(1991). 이후로 율 브리너는 1980년 영화 Lost to the Revolution에서 나레이션을 맡았다.
4. 사생활
- 21살이던 1941년에 마흔이 된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만나 10년 이상 관계했다. 1951년 뮤지컬 '왕과 나'가 만들어질 때도 관계하고 있었다. 첫 번째 아내와의 결혼생활 기간과 겹친다. 헤어진 뒤에는 평생 친구로 지냈다.
- 첫 번째 아내 버지니어 길모어는 1940년대 초반 활발히 활동한 배우였다.
- 첫 번째 아내와의 이혼 전인 1959년 혼외관계로 자녀를 보았다. 아이는 상대여성이 키웠고 브리너는 양육비 지원을 했다.
- 두 번째 아내 도리스 클라이너는 칠레에서 성장했으며 집안이 매우 부유해 어려서부터 왕족들과 어울린 유럽 사교계의 명사였고 피에르 가르뎅 등을 위해 일한 모델이기도 했다.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친했다.
- 세 번째 아내 자클린 시몬 티옹 드 라 숌 역시 사교계 명사였다.
[1] "Yul Brynner", findagrave.com[2] 젊었을 때부터 탈모가 심해 삭발했다. 24살때 이 정도였으니.[3] 한국의 액션배우 조춘은 그와 외모가 비슷한 데다, 똑같이 삭발해서 성공했기에 영화가에서 '한국의 율 브리너'라는 칭송을 받았다.[4] 비슷한 대머리 카리스마 배우로 텔리 사바라스(1924~1994)나 패트릭 스튜어트도 있지만 브리너에는 못미친다. 1950년대 나온 김성환의 4컷 신문만화 고바우 영감에서는 당시 전쟁 직후라서 물자가 시원찮아서 저질 샴푸가 탈모현상을 일으키는 사태를 풍자한다. 만화에 나온 불량 샴푸 업자가 율 브리너식 머리를 만들어주는 샴푸로 선전. 특히 왕과 나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덕에 2000년대 간지대머리인남캐형님의 원조격인 인물.[5] 심지어 50년이 지나서도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서 람세스 역을 맡은 조엘 에저튼의 연기가 영화 십계에서 율 브리너의 카리스마에 묻힌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이다.[6] 헐리우드 유럽계 남성 배우 기준이다. 당시 일반인 평균 신장보다는 그리 작지 않다.[7] 웨스트월드 출연 당시 이미 50세를 넘겼다. 아마 대머리여서 그런지 노화가 잘 보이지 않는 외모인 듯. 심지어 생전 율 브리너가 헤비 스모커였고, 잦은 흡연이 노화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경이로운 동안인 셈이다.[8] 율 브리너는 미국에서 '브리너'를 '브라이너'로 발음하지 않도록 'n'을 하나 더 넣어 'Brynner'로 고쳤다.[9] 스위스 제네바 인근에서 태어나 바깥 세상에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16살 때 해운회사 무역선 보조 조리사로 취직해 중국 상하이를 오가며 무역을 시작해 크게 성공한다. 일본 요코하마에도 정착하였다가 25살에 신생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 정착한다. 러시아 사업가 쿠즈네초프와 동업으로 '브리너, 쿠즈네초프&Co.'라는 회사를 차렸고, 목재 수입과 해운업, 광산업으로 사업이 번창하였으나 훗날 러시아 페스코(FESCO) 해운 회사와 합병된다. 페스코(FESCO) 그룹은 현재 러시아 최대 물류 운송기업이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율 브리너의 생가도 페스코 그룹 소유이다.[10] 태양의 제국이라는 영화에서는 아메리칸 인디언 전사 역을 맡았다. 웃긴 건 거기 나오는 마야족 상급계층은 다들 백인이다.[11] 외할머니가 현재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이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독일로 이민갔다. 그래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우크라이나에 천만 달러를 기부했다.[12] 실베스타 스텔론의 증조모 로사 라비노비치가 물론 현재는 러시아와 전쟁 중이지만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이다. 그래서 러시아 보드카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광고 문구는 "우리 모두의 몸속에는 러시아가 있다(There is a bit of Russian in all of us)"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베스타 스텔론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상징하는 배우이기도 하다.[13] 스티븐 스필버그의 조부가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1906년 미국으로 이민갔다.[14]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이 등장해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이완용이 친일파로 흑화되기 전으로, 심지어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친일파 척결에 나서기도 했다. 물론 이때 이완용이 애국심이 넘쳐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간을 보는 시기였다.[15] 러일전쟁 전부터 일본의 반대가 심했고,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자 1904년 5월 정식으로 폐기되었다.[16] 정작 에디 벤 헤일런도 유명한 골초였고 설암 판정을 받고 수술했지만 금연에 실패하다 결국 후두암으로 2020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죽음은 흡연에 대한 경고를 줬다.[17]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 공익광고에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는 이제 떠나지만 여러분께 이 말만은 해야겠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마십시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담배만은 피우지 마세요."출처공익광고 원본[18] 공교롭게도 절친 오드리 헵번도 엄청난 골초였고, 이로 인해 암에 걸려 1993년에 브리너의 사망 당시와 비슷한 나이인 63세로 사망했다. 그리고 그의 지인이던 에디 밴 헤일런 역시 지독한 골초였으며 후두암으로 2020년 65세에 세상을 떠났다.[19] 모세의 연인이었다가 강제로 그의 왕비가 된 네페르티티가 "난 절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에요"라고 하자 차갑게 비웃으며 "그게 의미가 있소? (Does that matter?)"이라고 하는 장면에서 절대군주의 여유와 카리스마, 냉혹함이 느껴진다.[20] 이전 판(최초방영)에서는 양지운이라고 되어 있었으나, 여기서(재방영)는 박일이 연기했다.[21] 화이트 왁싱 영화인데다, 주인공이 속한 마얀족이 멕시코에서 북미로 이주하는 것이나, 적대 부족인 후나켈은 청동검으로 무장하는 등, 고증은 그냥 안드로메다로 간 수준이다.[22] 맞을 만 했다. 아들이 살해당한 아버지에게 “넌 네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23] 총잡이의 복장은 "황야의 7인"의 크리스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다.[24] 단순히 식량 정도가 부족한 게 아니라 연료나 총알도 없어서 대부분 칼이나 몽둥이를 들고 다닐 정도로 막장이다. 그나마 석궁 쓰는 폭도가 하나 있긴한데 별 비중 없이 중반에 끔살.[25] 주무기가 철퇴다(...)[26] 실제로 배런이 챙겨준 짐 속에 시가 상자가 들어있긴 했지만 농담이 아니라 양쪽 집단에서 콜을 보낼 때 배런의 집단을 선택한 이유가 배런에게 시가가 있어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