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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2:45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colbgcolor=#fff> '''유고슬라비아 인민해방군과 파르티잔 분견대
Narodnooslobodilačka vojska i partizanski odredi Jugoslavije
Народноослободилачке војска и партизански одреди Југославије
National Liberation Army and'''
파일: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깃발.svg
창설일 1941년
해체일 1945년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
이념 공산주의, 사회주의
규모 80,000명 ~ 800,000명
후신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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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추축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활동하던 저항 운동 조직인 파르티잔이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끌었다. 추축국, 특히 나치 독일크로아티아 독립국을 최대 적으로 규정했다. 왕당파 저항조직 체트니크와는 처음부터 사이가 안 좋았고, 전쟁이 심화되며 이후 체트니크가 기회주의적으로 추축군에 붙어 빨치산을 공격하자 이에 반격하며 동시에 체트니크를 추축국의 일부로 선전했다. 1943년, 티토와 파르티잔들은 유고슬라비아 민주 연방의 건국을 선포하였고, 파르티잔은 유고슬라비아 민주연방의 지휘 아래 놓인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으로 바뀐다.

추축국에 대항하는 저항 조직으로 대부분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은 추축군에 저항하던 저항군들 중 가장 강력했고, 뛰어난 조직력을 보인 저항군이었다. 그냥 파르티잔 수준을 넘어서 전차, 심지어 소수였지만 공중 장비[1]들에 해군[2]도 보유했을 정도로 반 나치 저항군 중 가장 거대한 저항군이었다. 당시든 지금이든, 세계적으로 봐도 규모가 큰 비정규 군사부대에 해당한다.

군가는 Uz Maršala Tita이다.

2. 상세

초기의 파르티잔은 농민, 탈영병, 광부, 신문기자, 경찰 등의 별 볼일 없는 전투력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는 오합지졸이었다. 하지만 독일 침공 이후 유고슬라비아 정규군의 30% 이상이 합류하였고 무기도 좋아져서 MG42, 3호 전차, 박격포 등을 운용하였다. 전쟁 말기이던 1944년 하반기에는 군부대 4개, 사단 52개, 총합 80만 여명에 달하는 규모로 늘어났다. 저항군 주제에 아예 노획 전차로 독립 편재된 기갑부대를 운용, 소뮤아 S35에 영국군이 지원한 AEC Mk.II 장갑차의 6파운더 대전차포를 달거나 영국군이 지원한 M3A3 스튜어트 전차 차체에 노획한 PaK 40 대전차포를 통째로 올리는 등 등 온갖 해괴한 마개조 기갑장비들을 운용해 소수 밀덕들 사이에서 컬트적 인기를 얻을 정도이다.

이 80만이라는 규모가 잘 실감이 안 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규군이 약 50만 정도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대한민국의 인구는 5천만에 달해 결코 인구가 적은 소국이 아닌 데다 징병제까지 실시하기 때문에 동원할 수 있는 거대한 군조직이 대한민국 국군이다. 대략 50만이라는 이 수치는 2019년 기준 무려 세계 8위이다. 그런데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은 전 국토가 적대 세력에게 점령당한 상황에서 일개 저항군, 비정규군이 8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21세기 기준으로 세계 6위의 병력이며 100만인 러시아 연방군과 맞먹는 수준이다. 물론 파르티잔에는 중년, 여성과 미성년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기는 해야 한다. 그래도 이쯤 되면 2차대전에서는 비정규군 중에선 굉장히 강성한 편인 폴란드 국내군과 프랑스 레지스탕스도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며 거의 정규군 클래스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저항군의 상징과도 같은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프랑스 정부 공인으로 약 22만 명,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폴란드 국내군은 20 ~ 60만 정도로 보통 4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티토가 80만 대군에게 보급은 어떻게 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추축국 점령이란 암울한 현실 아래 바로 그 나치 독일군도 질릴 만큼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벌인 우스타샤, 허울뿐인 괴뢰 세르비아 구국정부, 빨갱이 때려잡기 위해서는 점령군과도 협조할 의향이 있는 체트니크, 외부에서 굴러들어온 바르다르 마케도니아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 등의 세력들 사이에서의 살벌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발칸 정국에서 결국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최종 승자로 떠오른 것은 유고슬라비아의 민족 문제와 정치적 문맥과 밀접한 상관이 있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처음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군, 헝가리 왕국군이 유고슬라비아 침공으로 밀고 들어갔을 때에는 크로아티아인들은 신나서 복수를 외치며 우스타샤 등의 단체를 만들고 위험에 빠진 세르비아인 지역 유지 및 보수파들은 체트니크를 형성하는 등 피비린내 나는 종족주의적 민족항쟁에 빠졌지만 이것도 추축 점령군이 유고슬라비아 지역 민족들의 안위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것이 얼마 가지 않아 밝혀지고[3]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슈냐크인,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유대인 할 거 없이 발칸 반도의 민족들이 전부 다 같이 추축군에 죽어나가면서 슬슬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1941년 및 1942년까지만 하더라도 크로아티아 내에 살고 있던 세르비아계들이 중심이던 크로아티아 파르티잔 부대의 다수가 크로아티아계로 바뀐 것이 보여 주듯 전쟁이 계속 되면서 유고슬라비아 민족 간에도 정신나간 폭력의 연쇄는 끝이 보이지 않고, 독일과 추축국 치하에선 모두가 괴롭다는 공감대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여태까지는 우스타샤, 추축국 점령군, 체트니크에게 돌아가면서 두들겨 맞던 신세였던 파르티잔이 오히려 민족을 가리지 않고 모집, 활동한다는 그 독보적인 성격이 강점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우스타샤 혹은 체트니크 등의 특정 민족들의 무장단체는 그 향토방위군과 유사한 성격 때문에 일단 근거지 밖으로 나가기도 힘들고, 아예 나치 독일 같이 세간의 눈길이나 최소한의 인권개념 따위는 대놓고 밥말아먹고 토벌작전 벌이는 놈들 상대로는 보복피해가 하도 심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파르티잔은 일단 특정 지역에만 붙어 있을 필요도 전혀 없고, 한편으로 보면 비정하기도 하지만 SS 치안대가 보복으로 마을 주민 전체를 다 쏴 죽이든 말든 간에 산으로 다시 후퇴하면 그만인지라 훨씬 더 자유롭고 유연하게 활동할 수 있었으며, 일단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자 이런 전략적 강점은 시너지를 일으켜 결국 게릴라전의 역사상 전설이 된 규모와 전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유고슬라비아와 같이 상호 불신, 증오가 심각하여 극우적 분위기가 만연한 환경에서 어설프게 민족을 뛰어넘어 단결하자는 티토의 공산주의적 유고슬라브주의 같은 메세지는 포지션을 똑바로 잡지 못하고 사방에서 목 졸려 말라죽기 쉽다. 그러나 티토를 비롯한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지도부의 정치적 노련함과 무엇보다 이 폭력의 순환을 주도하는 현지 민족들 당사자들조차 진저리나게 만들 만큼 잔인한 추축국 점령하 유고 전역의 현실은 결국 이 애매하고 취약한 포지션을 장점으로 역이용 가능케 하여 다른 강력하고 잔혹한 경쟁 세력들을 꺾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피점령 레지스탕스 세력 중 가장 독보적으로 성공적인 승전뿐만 아니라, 향후 40년 간의 성공적인 연방국가의 기틀이 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종전 이후 건국된 사회주의 유고 연방이 이렇게 서로 미워하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슈냐크, 슬로베니아인들 모두 한솥밥 먹으며 같이 고생하고 투쟁하던 경험의 공유와 특정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기반했다는 점은 길게 내다보면 그 한계가 뚜렷했다.

냉전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내전으로 해체, 붕괴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숙청된 체트니크, 우스타샤 등은 귀신같이 복원되었고, 당시까지 생존하였고 정계나 인민군 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던 파르티잔 출신 인물들도 출신 민족과 국가에 따라 갈라져 내전에 참전하게 되었다.[4] 당장 크로아티아의 초대 대통령인 프라뇨 투지만과 제2대 대통령인 스테판 메시치의 경우만 하더라도 파르티잔 출신이었으며 유고슬라비아 내전 초기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전쟁을 지휘했던 벨코 카디예비치(Veljko Kadijević) 전 유고슬라비아 국방장관 역시 파르티잔 소속으로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싸운 사람이었고, 보스니아 전쟁 당시 학살 범죄자로 알려진 라트코 믈라디치 역시 과거 본인의 부친과 일가 친척들이 파르티잔 소속으로 우스타샤 및 나치 독일군과 싸운 이력이 있었다. 다른 국가/민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노년에 코소보 독립운동을 막후에서 지원한 파딜 호자(Fadil Hoxha) 역시 젊었을 적에는 파르티잔 대원이었다. 민족 정체성 때문에 자신들이 격파하였던 적대세력들과 한편이 되고 옛 파르티잔 동지들에게 총탄을 난사하게 되는 끔찍하고 잔혹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물론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밀로반 질라스[5] 전 부주석처럼 유고 연방 유지와 각 공화국간 평화협상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유고슬라비아가 내전과 민족/종파 대립으로 조각나는 상황에서 평화주의를 추구하던 일부 유고 정계 내의 파르티잔 출신 인사들도 없지는 않았다.

[1] 초기에는 연락기나 정찰기 몇 기가 전부였지만 후반에는 추축군에게서 노획한 슈투카까지 운용한다. 유고군 도장을 한 슈투카는 모델러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하다.[2] 달마티아 해안가는 수백 개에 달하는 유인도와 무인도가 존재했고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추축국 진영이 이 도서 전체를 통제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파르티잔 해군 조직은 초기에는 몇몇 도서 지역에서 나중에는 연합군이 장악한 이탈리아 반도 남부를 거점으로 활동했다. 주로 해상을 통한 후방 잠입, 습격과 사보타주 등을 수행했다.[3] 나치 독일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 이탈리아와 헝가리 역시 각각 슬로베니아인과 세르비아인을 대상으로 인종 청소를 시행하고 자기들만의 강제수용소를 건설했다. 일단은 같은 추축국이었던 크로아티아 독립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이탈리아와 헝가리가 각각 항복할 때까지 두 나라가 마음대로 뺏어간 영토를 되찾지 못했다.[4] 알렉산다르 란코비치(Aleksandar Ranković)와 에드바르트 카르델(Edvard Kardelj) 등 티토 정권 당시 고위직을 지낸 파르티잔 출신의 유고 지도부 인사들은 유고슬라비아 전쟁 발발 전인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노환으로 사망했으므로 제외한다.[5] Milovan Đilas(Milovan Djilas). 파르티잔 당시부터 티토의 최측근이었으며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으나 공산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반공주의자로 전향해 오랜 수감 생활을 거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반정권적 행보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지 '유고슬라비아'라는 통합 국가 자체에 대한 부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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