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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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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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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 황목 · 황보 · ·
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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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씨에 관한 일화3. 이성동본4. 분관
4.1. 김해 허씨4.2. 양천 허씨
5. 대동항렬6. 외자 이름7. 종친회8. 허가바위9. 나무위키에 등재된 실존 인물
9.1. 한민족
9.1.1. 허씨 5문장9.1.2. 본명9.1.3. 허씨를 예명으로 사용하는 인물
9.2. 중화권
10. 가상 인물11. 관련 성씨12. 관련 문서13. 둘러보기

1. 개요



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부인인 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을 연원으로 삼는 한국의 성씨이다. 양천, 김해, 하양, 태인을 본관으로 한다. 인구는 2015년 기준 326,770명.

이 문서는 양천 허씨, 김해 허씨, 하양 허씨, 태인 허씨 등이라고 입력해도 모두 들어올 수 있다. 이 성씨가 다른 성씨들처럼 앞에 본관이 적힌 채로 항목이 개설되지 않은 이유는 다른 씨족과는 달리 어떤 본관을 가지더라도 조상이 같은 동본관계의 성씨이기 때문이다. 김해 김씨경주 김씨의 관계처럼 완전히 타인 관계가 아니다.[1]

허씨 중에서도 김해 허씨와 양천 허씨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대개 양천 허씨는 수도권, 충청권에 거주하고 김해 허씨는 경상도, 강원도, 전라남도에 많이 거주한다.

가장 일반적인 로마자 표기는 Heo이다. 2011년 외교부 여권 통계에 따르면 Heo가 약 48%, Hur[2] 약 21%, Huh가 약 14%, Her가 약 11%, Hu가 약 3%, Ho 등 기타 표기는 1% 미만이다.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Heo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르면 Hŏ이다.

중국어에서는 許를 Xǔ(쉬)로 읽는다. 서씨(徐, Xú)의 중국 발음과 성조만 다르고 소리는 같다.

2. 성씨에 관한 일화

성씨에 관한 일화는 다음과 같았다.
문헌에 따르면 수로왕비인 허황옥은 인도 지방에 있던 아유타국의 공주로서 16세 때 배를 타고 지금의 경남 창원군 웅동면 용원리(현 창원시 진해구 웅동2동 일대)에 있는 부인당으로 들어와 정박을 했는데 김수로 왕이 의장을 갖추어 영접한 후 왕비로 맞이했다고 한다. 그 후 10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하루는 비가 수로왕에게 말하기를 "첩은 동토의 객이니 사후에 오성을 전하지 못함이 한이 되옵니다."하니 왕이 감동하여 맏아들 거등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여기서 두 아들은 차자와 삼남을 이야기 하는 듯 하다.) 허황후의 성인 허씨로 사성했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하여 하동칠불로 성불했다고 한다.[3]

참고로 이 성씨 설화는 고대 한반도인도남아시아 일대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다. 실제로 DNA분석을 통해서 인류의 계통을 추적하는 하플로그룹 연구에서 인도에서 주로 나타나는 하플로 그룹이 한반도에 꽤 나타난다고 한다.

속설로 김해 김씨 남자는 생식기에 점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같은 시조를 두고 있는 허씨와 인천 이씨에게도 적용되는 속설이다. 꽤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속설에 불과하다. 근데 의외로 확인해 본 허씨 남성들의 말에 의하면 확실히 있다고 하는 경우가 꽤 된다.

그런데 이 속설에도 엄청난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데,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먼저 첫 번째 이야기는 비교적 점을 확인하기 쉬운 남성들의 점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로 보인다.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남근이 너무 커서 배필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지증왕? 그러던 와중, 한번 똥을 싸면 산만하게 싸는 여자가 있다하여 이것도 지증왕 이야긴데? 찾아온곳이 경남 양산이었다. 지금도 양산에 있는 산은 모두 그 여자 똥을 핵으로 가지고 있다고 전해져 올 정도로 큰 똥을 생산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 여자를 찾던 어느날, 여행중 갑작스런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어느 노인이 강을 건너지 못하자, 김수로가 남근을 세워 가죽다리를 만들어 노인을 건너게 해주었다. 그렇게 노인이 다리를 건너고 난뒤 담배 곰방대로 "고놈 참 용하네" 하고 거시기에 담배대를삼국시대에 무슨 담배가 톡! 쳤는데, 그 안에 있던 뿔똥이 떨어져 상처가 돼서 남은게 점이 되어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후손은 거진 고추에 점을 달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김해 김씨들 사이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허씨쪽의 버전은 조금 다르다. 허씨 쪽의 버전은 여성에게도 점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 발견했는지 그것까지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수로왕비와 혼인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가야에 큰 불이 났다. 가야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불을 끄려고 온 힘을 다 했으나,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수로왕이 오줌발을 불이 난 자리에 쏘자 그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따라 하였으나, 오직 수로왕의 오줌발만이 그 불을 끌 수 있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수로왕비가 치맛폭을 걷어 붙이고 오줌을 쌌는데, 이 역시 효험이 있었다. 이에, 수로왕과 수로왕비가 돌아다니며 오줌을 싸고 다녔다. 그러던 와중에 불똥이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국부에 튀었고, 그로 인해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후손들에게서는 국부에서 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어떤 주부의 증언에 의하면, 아들이 태어나자 시아버지와 그 가족들이 모두 몰려와 아이의 생식기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도 한다.

어찌되었든 불로 인한 흉터가 국부에 남아 후손들에게까지 점으로 유전되었다는 이야기로 사실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일단 점(신체), 정확히는 모반(母斑, nevus)은 멜라닌세포 등의 색소형성세포가 기형을 일으켜 표피와 진피 사이 또는 진피내에서 군집을 이루며 증식할 때 나타나며 선천적으로는 멜라닌세포 내 단백질 발생 과정에서의 돌연변이가, 후천적으로는 자외선, 노화, 호르몬 등이 주된 원인으로 발생경위가 복잡하고 다양한 만큼 발생시점이나 부위도 랜덤하기 때문에 늘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속설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거론되어 왔다.

3. 이성동본

김수로왕의 아내 허황옥이 허씨였는데, 김수로왕이 9명의 왕자 중 아내의 성도 계속 이어지도록 2명의 왕자에게 허씨를 사용하게 해서 시작된 것이 허씨이므로[4] 허씨와 김해 김씨는 비록 성씨는 다르지만 사실상 동성동본 관계가 되어(이성동본 異姓同本) 서로 혼인을 금한다는 옛 통념이 있었다. 여기에 김해 허씨 말고도 양천 허씨나, 같은 계열 성씨인 태인 허씨에서 갈라져 나온 인천 이씨 등 갈라져나온 성씨가 꽤 많아서 옛 통념상 동성동본이 되어 혼인을 금했던 성씨들이 제법 된다. 하지만 이것은 통념에 불과한 것이고, 민법상 동성동본 금혼 제도가 있었을 때에도 일단 본관이 다르면 결혼은 가능했다. 물론 동성동본 금혼이 폐지된 지금에는 8촌 이내 친인척만 아니라면 결혼이 가능하다.

4. 분관

허황옥의 30세손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는 공암 허씨[5], 같은 30세손 허사문(許士文)을 시조로 삼는 태인 허씨, 33세손 허강안(許康安)을 시조로 삼는 하양 허씨, 35세손 허염(許琰)을 시조로 삼는 김해 허씨로 분관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6]

김해 허씨가 늦게 분관한 것은 족보체계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금관국은 김해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허씨의 집성촌 역시 가야지역에 밀집되어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분관을 하게 되는 경우는 세거지가 옮겨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가야에 남아있던 허씨들이 다른 지역으로 간 허씨들이 만든 족보를 보고 이를 따라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위에 적힌 시조들은 모두 다른 성씨였으면 중시조로 분류되어야 할 인물들이다.

『조선씨족통보』[7]에 따르면 71본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양천, 하양, 김해, 태인, 함창, 수원, 양주 외에는 단순한 세거지명[8]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 현존하는 본관은 모두 앞서 말한 양천, 태인, 하양, 김해이다.

4.1. 김해 허씨

金海 許氏
김해 허씨
관향 <colbgcolor=#fff,#191919>경상남도 김해시, 부산광역시
시조 허염(許琰)
집성촌 경상남도 의령군
경상북도 경주시
강원도 홍천군
대구광역시 달서구
인구 134,068명(2015년)
[clearfix]

4.2. 양천 허씨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충선왕 제정 재상지종 15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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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 가문
경주 김씨
순경태후
정안 임씨
공예태후
경원 이씨
인예태후
안산 김씨
원성태후
당성 홍씨
명덕태후
재상 가문
언양 김씨
김취려
철원 최씨
최유청
해주 최씨
최충
공암 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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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
평양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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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川 許氏
양천 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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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colbgcolor=#fff,#191919>서울특별시 강서구[9]
시조 허선문 (許宣文)
집성촌 경기도 장단군·안성시·파주시
함경북도 학성군·길주군
평안북도 구성군
충청북도 청주시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진안군
전라남도 순천시
인구 149,505명(2015년)
[clearfix]

5. 대동항렬

양천 천간지지(天干地支) 김해[10]
31세 만(萬) 26세 우(遇), 만(萬)
32세 욱(旭) 27세 구(九), 량(亮)
33세 회(會) 28세 필(弼), 남(南)
34세 행(行) 29세 행(行), 녕(寧)
35세 무(茂) 30세 성(成), 성(盛)
36세 범(範) 31세 기(紀), 범(範)
37세 강(康) 32세 용(庸), 강(康)
38세 재(宰) 33세 신(新), 재(宰)
39세 정(廷) 34세 정(廷), 병(秉)
40세 규(揆) 35세 발(發), 규(揆)
41세 학(學) 36세 돈(敦), 학(學)
42세 병(秉) 37세 건(建), 숙(肅)
43세 연(演) 38세 인(寅), 연(演)
44세 경(卿) 39세 경(卿), 흔(欣)
45세 진(振) 40세 진(震), 근(根)
46세 룡(龍) 41세 룡(龍), 완(琬)
47세 남(南) 42세 보(寶), 성(性)
48세 수(洙) 43세 업(業), 수(洙)
49세 창(暢) 44세 동(東), 중(重)
50세 상(商) 45세 유(猷), 준(遵)
51세 국(國) 46세 국(國), 기(璣)
52세 곤(袞) 47세 현(鉉), 옹(甕)

6. 외자 이름

허준, 허조, 허균, 허목, 허석[11], 허재, 허웅, 허훈, 허각, 허공, 허수, , 허일[12] 등 허씨는 유난히 외자 이름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은 김수로왕의 30대손으로, 양천[13] 또한 가양동에 허선문이 태어났다고 하는 허가(공암)바위가 있다.[14] 이 지역은 한강 정비사업을 한 지금도 한강 바로 코앞에 위치하고 있을 정도로 서해 접근성이 좋고, 당시에는 아예 이 지역에 나루터가 있었다. 따라서 허선문은 이 위치에서 무역으로 돈을 만지며 호족 세력을 구축했다.

그는 고려 태조 왕건에게 군량을 바친 공로로 양천의 본관을 얻었다. 그 공로로 준왕족의 지위를 보장받아서 당시는 왕족에 한해 사용했던 외자를 대를 걸러(즉, 내가 쓰면 아들은 불가능, 손자는 가능)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고려 초기는 호족이 강성한 시대였고, 이에 허씨들은 "생각해 보니 우리는 허황옥 때부터 왕족이었는데?"라면서 외자를 그냥 대대로 쓰게 됐다.[15]

...이상이 양천 허씨 가문의 주장이고, 외자는 왕족의 전유물로 여겨진 적이 없다. 허씨 시조가 '준왕족'의 지위를 보장받았다는 시기인 고려 초에도 외자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강조, 양규, 최충, 윤관 등이 왕족에 준하는 대접을 받아 외자를 썼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대를 걸러 외자를 사용하도록 했다는 것은 더욱 이상한 이야기로, 지근거리에서 왕건을 모시며 공을 세운 개국공신의 가문에도 그러한 사례가 없다. 왕이 피휘를 고려해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로 외자 이름을 쓰던 것을 뒤틀어서 가문에 유리하게 꾸민 결과다. 양천 허씨가 고려 시대 명문가였던 것은 맞지만, 외자를 많이 쓴 것은 그냥 그런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해 허씨는 두 글자로 된 이름을 쓰지만 양천 허씨들은 지금도 외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변 사람 중에 허씨 성의 외자 이름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양천 허씨일 가능성이 높다.[16]

7. 종친회


김해 허씨 대종회 사이트 카페 자체는 2014년 4월 말에 생성되었으나 2015년 12월 10일에 김해 허씨 대종회 창립추진위원 3인 (가락군인전파승산대종중이사장 허정환, 시빈재공삼문문중회장 허이량, 시중공파중앙회회장 허권중)을 중심으로 한시중공파중앙회회장을 김해 허씨 대종회 회장으로 하여 김해 허씨 대종회가 창립되었다. 사무실 주소는 서울 중구 퇴계로 182 가락종친회관 5층 501호이다.

8. 허가바위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10호 11호 13호[17]
보신각 터 허가바위 무악산 동봉수대 터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11호
허가바위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26-5, 26-28, 1469-2
분류 자연유산 / 명승 / 문화경관 / 건물지
수량 / 면적 토지 205㎡
지정연도 1991년 12월 24일
관리자
(관리단체)
강서구
파일:허가바위.jpg
허가바위[18]
[clearfix]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허가바위란 바위가 있다. 양천 허씨의 시조 허선문이 이 바위에서 태어났다는 일화가 전한다. 1991년 12월 24일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받았다.

9. 나무위키에 등재된 실존 인물

9.1. 한민족

9.1.1. 허씨 5문장

허씨 5문장
허엽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

초당 허엽과 그 자녀 넷이 모두 문장에 재능이 있어 "허씨 5문장"이라고 불렸다.

9.1.2. 본명

9.1.3. 허씨를 예명으로 사용하는 인물

9.2. 중화권

정체자 許, 간체자로 许이고 발음은 Xu(쉬)이다. 대만에서는 Hsu로 표기한다.[39]

10. 가상 인물

11. 관련 성씨

12. 관련 문서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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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와 유사한 사례로 박씨가 있다. 박씨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한데, 박씨는 54개의 본관이 모두 시조가 박혁거세 한 사람이다. 이는 신라의 왕으로서 박혁거세의 아들들과 그 후손들이 세를 불리면서 분관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2] 이스라엘계 성씨인 허(후르)와 표기가 같다. 대표적으로 벤허의 주인공 유다 벤 허가 있다.[3] 출처: 『한글판 우리집의 족보』, 민중서원, 1997.[4] 거의 모든 허씨의 조상은 본관과는 상관없이 김수로왕과 허황옥이기 때문이다.[5] 공암은 양천의 옛 이름으로, 현재는 양천 허씨라 불리는 씨족이다.[6] 출처: 『한글판 우리집의 족보』, 민중서원, 1997.[7] 1928년 세창서관에서 초판 발행한 종합계보서.[8] 해당 성씨가 대대로 살았던 곳의 지명[9] 양천구가 아니라 강서구인 이유는 옛 양천현의 중심지는 강서구 가양동 일대이기 때문이다. 양천 허씨의 시조 허선문이 태어났다고 하는 허가바위를 비롯하여 양천현 관아, 양천향교 등 행정기관과 교육시설은 강서구 가양동 일대에 있고 지금의 양천구는 조선 시대 양천현의 중심지가 아니었다.[10] ##[11] 본명이었지만 허석김보성으로 개명했다.[12] 김해 허씨다.[13]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서구. 양천현의 중심지는 강서구 가양동 일대이다. 양천현 관아터와 양천향교 모두 강서구에 있다. 양천구는 구 양천현의 일부이지 양천현의 중심지는 아니다.[14] 강서구에는 양천 허씨인 허준의 이름을 본떠 허준로가 있으며, 공암바위는 구암공원(이 역시 허준의 호에서 따왔다.)라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15] [황규인의 잡학사전] 허준, 허재, 허임..허씨는 왜 외자 이름 많을까[16] 다만 양천 허씨 대종회에서도 선조의 휘(諱)와 겹치는 문제, 다른 파 간에 있는 이름의 혼동(예로 들면, 같은 이름을 가진 후손이 대수(代數) 상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 석자 이름을 쓰는 걸 권장하고 있다.[17] 12호 낙천정 터는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2009년 10월 22일에 해제되었다.[18]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19] 허공의 쌍둥이 동생.[A] 31세손 '萬'자 항렬[바른이름] 허경영의 바른 이름은 허경녕이다[C] 29세손 '寧'자 항렬[23] 허각의 쌍둥이 형[B] 33세손 '會'자 항렬[B] 33세손 '會'자 항렬[B] 33세손 '會'자 항렬[27] 개명 전 이름은 허석으로, 본관은 양천이며 같은 본관인 웨이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28] 허성관의 동생[29] 허영지의 언니[A] 31세손 '萬'자 항렬[31] 허훈의 형[32] 연기자로 활동하던 시절의 본명은 이혜련(李慧蓮)으로, 본명이 두 개인 이유에 대해서는 해당 인물의 문서 참고.[33] 영어 이름은 Jennifer Huh[C] 35세손 '茂'자 항렬.[35] 허장강의 아들[36] 前 반도의흔한애견샵알바생[B] 33대 '會'자 항렬[38] 허웅의 동생[39] 성씨 중 서(徐)씨와 성조만 다르고 발음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