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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2 20:10:09

허관걸

허관걸
許冠傑|Sam H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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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허관걸 (許冠傑, Samuel Hui Koon-kit)
출생 1948년 9월 6일 ([age(1948-09-06)]세)
중화민국 광둥성 광저우[1]
국적
[[홍콩|]][[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72kg
언어 광동어, 영어
학력 홍콩대학 (심리학 / 학사)
별명 大哥Sam、阿Sam、歌神
부모 아버지 허세창(許世昌)
어머니 이청운(李倩雲, b.1920년~d.2009년)
형제 맏형 허관문(許冠文, b.1942년~)
둘째형 허관무(許冠武, b.1944년~)
셋째형 허관영(許冠英, b.1946년~d.2011년)
여동생 허주적(許珠迪, b.1948년~)
배우자 레베카 플레밍(Rebecca Fleming, m.1971년~)
자녀 장남 허회흔(許懷欣, b.1976년생)
차남 허회곡(許懷谷, b.1978년생)
직업 가수, 작사가, 작곡가, 배우, 코미디언
활동기간 1964 ~ 1992년
2003년~

1. 개요2. 생애3. 필모그래피
3.1. 영화
4. 디스코그래피
4.1. 수상내역 -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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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許冠傑 (간체: 许冠杰) (병음: Xǔ Guànjié (쉬관제), 광동어: Heoi2 Gun3git6 (허이군깃))

홍콩의 가수 및 영화배우다. 한국에서는 최가박당의 킹콩(금강) 역 때문에 코미디 배우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홍콩에서는 배우보다 영어광동어 가수로 더 유명하다.

1970, 1980년대 중화권 연예계에서 그의 위치는 한국을 예로 든다면 박중훈조용필을 섞어 놓은 위상.

데뷔 초인 1960년대 중후반에는 홍콩의 다른 가수들처럼 영어곡을 부르다가 이후 광동어로 된 곡을 직접 만들어서 불렀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귀마쌍성, 최가박당, 반근팔량 등등)의 영화 주제곡도 직접 불렀다. 가수로서는 거의 독보적인, 우리나라로 치면 조용필과 맞먹을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별명도 가신(歌神). 이 가신이라는 별명은 이후 장학우가 물려받았다. 허관걸 본인은 청소년기부터 가요에 관심을 가졌고 엘비스 프레슬리비틀즈의 팬이었기에 음악적으로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2. 생애

음악가인 허세창과 이청운의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여동생 허주적과 쌍둥이로 태어났다.

코미디 배우였던 허관문(1942~), 허관무(1944~) , 허관영(1946~2011)을 형으로 두고 있으며, 막내 여동생으로는 1973년 미스 홍콩에 나갔다가 광탈했었던 허주적[2][3]이 있다. 4형제 중 둘째인 허관무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 영화배우가 되었으며 1970년대는 두 형, 허관문, 허관영과 함께 3형제 코미디물에 자주 나왔다. 이것이 바로 미스터 부 시리즈.

1964년에 친구들과 함께 Harmonicks를 결성해 베이스 기타 연주자 겸 보컬로 활동했다. 1965년에 Harmonicks는 해체했고, 그는 (후에 그가 활동한 로터스의 전신인) 바 식스(Bar Six)의 멤버가 된다. 바 식스는 1966년에 로터스(Lotus, 중문명: 蓮花樂隊))로 그룹명을 바꿨고, 로터스는 당시 홍콩 가요계에서 영어곡을 부르는 밴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밴드로 언급될 정도로 성공했다. 허관걸은 로터스에서 보컬을 맡았다.

공부를 꽤 잘했던지, 홍콩대학[4]에서 사회과학(심리학과)을 전공했다. 큰형 허관문[5]TVB에서 쌍성보희라는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허관걸은 쌍성보희에 출연하며 영어 노래를 부르면서 큰형 허관문, 그리고 셋째 형 허관영과 함께 인기를 끌었다.

이후 큰형 허관문이 쇼브라더스와 영화의 게런티 문제를 놓고 다툼을 벌여 골든하베스트로 이직하여 귀마쌍성을 만들자 귀마쌍성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하였다.

이들 형제의 영화와 본인이 직접 만들고 부른 주제곡이 크게 히트하자, 허관걸은 싱어송라이터와 배우로 중화권 연예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가지게 된다. 허관걸 이전에도 광동어 가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6] 대부분의 곡들이 번안곡이었고 그 당시의 가요계 시장에서 주류는 표준 중국어 노래였다. 그러나 허관걸은 광동어 곡을 자신이 직접 창작해서 불렀고 특히 홍콩에서는 이질적인 록을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도하며 큰 반항을 일으켰다. 그렇게 해서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중화권 가요는 광동어 가요, 이른바 광동팝(칸토팝)이 석권하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허관걸과 고가휘, 황점이 있었는데, 고가휘는 주로 TVB를 위해 TVB 드라마의 주제곡들을 만들었다. [7]

미스터 부, 최가박당 시리즈로 아시아권(범 중화권)에서의 엄청난 흥행을 발판으로 영화 배우로서 허관걸의 전성기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이어졌고 1990년에는 영화 〈소오강호 1990〉의 영호충 역을 맡기도 했다. 다만 1980년대 중후반의 홍콩 영화의 황금기에 국내에서 대히트한 작품이 없다보니 한국에서는 성룡이나 주윤발, 주성치 등의 유명세에 어느 정도 밀리는 감이 있다. 최가박당이 조금만 늦게 나왔어도 이들의 반열에 들었을텐데 물론 이는 연예계가 어느 분야(가수, 배우, 코미디언)든 간에 외모가 큰 영향을 끼치는 분야인 것도 큰데 아예 확 잘생긴 주윤발이나 촐싹거리는 인상을 가져서 코메디언 하기 좋은 얼굴의 주성치와는 달리 허관걸은 얼굴이 평범하게 생긴 게 문제였다.

1992년 가족들의 권유로 잠정적으로 연예계를 은퇴[8]했다가 2003년부터 다시 활동하고 있는데, 주로 가요계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그마저도 신보는 거의 내지 않고 작은 공연 위주로만 활동하고 있다.

두 아들을 두었으며, 맏아들 허회흔(許懷欣, 1976 ~)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허관문의 딸, 그러니까 허관걸에게는 조카가 되는 허사행(許思行)도 잠시 가수로 활동했었는데, 결혼 이후 은퇴하여 일반인의 삶을 살고 있다. 참고로 허사행은 세일러문의 홍콩 방영판 주제곡들을 부른 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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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허관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중앙이 허관걸, 왼쪽의 젊은 남자와 여자가 허회흔과 그 부인, 그리고 오른쪽의 대머리 남자와 젊은 여자가 차남 허회곡과 그 부인 임옥문, 나이가 든 여자는 허관걸의 부인(필리핀계 미국인) 레베카 플레밍 (Rebecca Fleming)이다.



두 아들, 그리고 제자가 허관걸의 대표곡 부모은(父母恩)을 합창하고 있다. 노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허관걸이 자신의 부모를 위해 만든 노래이며, 1989년 어머니날에 했었던 콘서트에서는 아버지의 연주에 맞춰 이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3. 필모그래피

3.1. 영화

4. 디스코그래피

4.1. 수상내역 - 음악

* 1977년
제 1회 홍콩 골든디스크 - 반근팔량

* 1978년
제 2회 홍콩 골든디스크 - 반근팔량 (100주년 기념상), 재신도
제 1회 십대중문금곡 - 매신계

* 1979년
제 3회 홍콩 골든디스크 - 매신계
제 2회 십대중문금곡 - 가가열조
제 1회 중문가곡뇌대 - 십개여자

* 1980년
제 2회 중문가곡뇌대 - 야야염노교


[1] 출생 당시 중화민국[2] 여기서 珠迪(주적)은 영어 이름 Judy의 중문 음차다.[3] 여동생이긴 하되, 쌍둥이라서 허관걸과는 생년월일이 동일한 동갑내기다.[4] 홍콩 대학은 들어가기 어렵다고 정평이 나있다. 특히,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홍콩에는 대학이 몇 개 없었다.[5] 큰형 허관문은 베트남 화교 출신 서극이 등장하기 전까지 당시 중화권 방송,영화계를 통틀어 거의 독보적인 제작자(방송,영화), MC, 영화감독, 방송 PD, 작가(시나리오, 방송대본), 배우였다. 한국을 예로 든다면 최동훈 감독과 유재석을 섞은 위상[6] 아역배우 출신의 광동어 영화 아이돌 스타였던 진보주와 소방방이 자신들이 출연한 영화의 주제곡을 직접 부른 것이 크게 히트했다.[7] 1970-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나문, 정소추, 왕명전, 장덕란, 엽려의, 엽진당, 선두랍, 관국영, 견니, 서소봉, 화왜 등의 가수들은 고가휘가 만든 TVB 드라마 주제곡들을 불러 스타가 되었지만, 허관걸은 그들과는 달리 자신이 직접 곡을 썼기 때문에 고가휘와는 함께 작업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허관걸과 황점, 고가휘, 세 사람이 공동으로 작곡한 <위아헌상심운> 이라는 곡이 있기는 하다. (관국영이라는 여가수가 녹음하였다.)[8] 그 당시 허관걸의 은퇴 기념식을 했는데 알란탐, 장국영, 장학우, 유덕화, 매염방 등 그 시절 잘나가는 가수들이 총출동해서 무대에서 허관걸의 히트곡을 한곡씩 불렀다. 웃기는 점은 이 중 1950년생인 알란탐은 허관걸보다 고작 2살 어린데 거기서 엄청 후배인 것처럼 깍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