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少秋 | Adam Cheng | |
<colbgcolor=#000000>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정소추(鄭少秋) |
영문명 | Adam Cheng |
본명 | 황가충(黃可忠) → 정창세(鄭創世) |
출생 | 1947년 2월 24일([age(1947-02-24)]세) 영국령 홍콩 |
국적 | [[틀:국기| ]][[홍콩| ]][[틀:국기| ]] |
데뷔 | 1967년 영화 성보라포정(聖保羅砲艇) |
가족 사항 | 부인 관정화(官晶華), 딸 4명 |
신장 | 180cm |
별칭 | 추관(秋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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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의 배우이자 가수
1970년대 중화권 브라운관을 사로잡은 당대 최고의 무협 전문 배우로, 탁월한 무술실력을 앞세운 화려한 액션과 쇼맨쉽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를 가리켜 영원한 초류향. 정소추가 곧 초류향, 초류향이 곧 정소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현재까지 영상 매체에서 다뤄지는 초류향의 이미지는 정소추가 연기한 초류향으로 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2. 상세
1960년대 후반에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쇼브라더스 영화사에 전속 배우로 지원했으나 불합격했다. 배우로서 무명 시절을 길게 겪어 돈을 벌기 위해 가수 활동도 병행했었다. 1970년대 초반부터 TVB의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였다. 큰 키에 서글서글한 외모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서검은구록 1976〉부터 〈의천도룡기 1978〉, 〈초류향 1979〉, 〈자객열전〉(1990) 등에 출연하였고 서검은구록, 육소봉, 의천도룡기(1978), 초류향〉 등 본인이 출연한 드라마 주제곡도 대부분 직접 불렀다. 이후 〈서검은구록 2009〉에서 건륭제 역으로도 출연했다.대한민국에 알려진 계기는 아무래도 대만에서 1984년에 제작된 드라마 시리즈인 〈초류향 신전(1984)〉일 것이다. 과거 〈초류향 1979〉은 원래 홍콩 TVB에서 정소추를 주연으로 1979년도에 방영된 드라마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후에 정소추가 TVB를 나오면서 대만으로 건너가 1985년 여러 감독들과 함께 새로운 초류향 드라마 시리즈인 〈초류향 신전(1984)〉을 만든다. 〈신월전기〉(장붕익 연출), 〈난화전기〉(이악봉 연출), 〈앵무전기〉(허성우 연출), 〈영자전기〉(이악봉 연출) 감독이 달라서 각 전기마다 초류향 캐릭터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게 이시리즈의 매력이다. 참고로 홍콩에서 제작된 〈초류향 1979〉는 왕천림 연출이다. 왕천림 감독의 아들은 홍콩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왕정 감독이다.
1984년 대만에서 제작된 〈초류향 신전(1984)〉은 동양 프로덕션을 통해 한국에 처음 알려졌고, 비디오 시장의 부흥기와 맞물리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대만에서 제작한 1984년작 초류향신전이 먼저 알려 졌고 그 후에 1988년도에 서진 통상에서 뒤늦게 〈초류향 1979〉(무화전기, 최후일전)을 출시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 비디오로 출시된 초류향은 많이 편집된 버전이다. 그래서 초류향과 소용용의 감정선이 많이 삭제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정소추는 《초류향》을 시작으로 《신월전기》, 《난화전기》, 《앵무전기》, 《영자전기》 등 《초류향신전》 시리즈를 통해 큰 인기를 누렸다. 초류향 특유의 여유로움, 코를 만지는 제스처, 부채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초류향의 특징들은 대부분 정소추가 연기한 버전에서 시작됐다. 물론 그가 출연하지 않은 《초류향 편복전기》에서 묘교위가 연기한 초류향도 뛰어났지만, 초류향이라고 하면 정소추의 연기가 먼저 떠오른다.
심지어 1995년, 그의 나이 50살이 다 되었을 때 대만에서 다시 《향사전기》에 출연했다. (실제 촬영했을 때 나이는 한국식 세는 나이를 기준으로 49세였다.)
드라마 외에 영화 출연도 많았는데, 《명검》이라든지, 부성과 함께 출연한 《어묘삼희금모서》 등 쇼브라더스 작품도 있고, 임청하와도 3개나 같이 했다. 1980년대 초반 《촉산》, 《강호영웅》(원제: 정인간도), 그리고 대만에서 제작된 《무림쌍절》(원제: 오야난화)에 연달아 함께 출연하여 잘 알려졌는데, 맡은 역할을 보면 초류향의 연장선인 듯하다. 오야난화와 정인간도는 초류향의 원작자인 고룡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영화이다. 묘하게 서검은구록과 인연이 깊어서 주인공 진가락과 건륭제 모두 연기했으며, 역시 이에 파생되어 나온 작품인 영화《방세옥》에서도 진가락을 맡았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연걸에 손색없는 화려한 무술액션을 보여주며 왕년의 무협스타다운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천하칠검 양가장》에 양업으로 출연했었는데, 홍콩영화의 퇴조와 함께 정작 국내에는 상영관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무협 드라마/영화의 배역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당연히 무협에서만 출연하지 않았고 현대극에도 많이 출연했다. 한국에서 존재감이 떨어질 뿐. 1920년대의 상하이를 다룬 상해풍운, 홍콩 주식시장을 소재로 한 대시대[1], 역시 현대 홍콩이 주제인 천지남아, 홍콩의 도시전설을 소재로 만들어진 ViuTV 드라마 궤탐(詭探)의 프리퀄인 궤탐전전(詭探前傳) 등.
조아지와도 많이 작품을 했는데,<<대보복>>, 《대형》, 《의천도룡기78》, 《초류향79》, 《봉화비화》, 《쌍면인》, 《비응》(국내 출시제목:매의 후예), 대만 드라마 《희설건륭》 등 연인이나 부부 사이로 자주 분했는데, 그래서인지 국내외 이 두 사람 커플링하는 팬들이 꽤 많은 편이다. 워낙 선남선녀인데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그러했으니…. 그렇지만 두 사람은 이미 가정이 있었다. 심지어 팬들 사이에서는 조아지의 현재 남편인 황금신이 두 사람이 작품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언제부턴가 조아지가 어딜 가든 황금신은 항상 동행한다.
그나마 커플빠들에게 즐거움을 주는건 정소추 조아지 커플은 종종 비지니스적으로 행사장에서 같이 공연해서 투샷은 볼 수 있다. 홍콩에서는 초류향과 소용용 커플로 사랑받고 대륙에서 희설건륭 커플로 사랑받고 있다.
《희설건륭》의 국내출시 제목은《 강호풍운록》, 《은원천리》, 《절세연풍》이다.
젊었을 적 정소추와 조아지
2005년, 조아지와 정소추의 콘서트 연습 장면
조아지와 마찬가지로 결혼생활이 순탄치는 않았다. 총 2번의 결혼을 했고, 데뷔 전에, 어린 시절에 만난 여자친구와도 동거한 적이 있다. 슬하에 딸을 무려 4명이나 두고 있는데, 데뷔 전부터 사귀었던 여자친구 노혜여(盧慧茹) 사이에서 낳은 딸 정안의(鄭安儀, 1968 ~ 2023)가 있고, 전부인인 심전하(1945 ~ 2008)[2][3]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정흔의(鄭欣宜, 1987 ~)가 있다. 그리고 현 부인인 대만 출신의 배우 관정화와의 사이에 두 딸 정영은(鄭詠恩)과 정영희(鄭詠曦)를 두고 있다. 차녀 흔의는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고, 3녀 영은과 4녀 영희는 미디어에 자주 모습이 공개되었다. 장녀 안의는 2023년 9월에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했다. 향년 55세 관련기사
정소추와 정흔의, 그리고 심전하
정소추와 관정화, 그리고 딸 영은과 영희 사진
정소추와 심전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정흔의[4]. 정소추의 자녀들 중 가장 미디어에서 모습이 자주 공개되는 딸로, 본인의 부모를 따라 홍콩에서 연예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여담으로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캐나다 시민권자라 영어를 모어로 쓰며 영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구사하는 편.[5] 정흔의의 키는 168cm로 아버지 정소추처럼 장신이지만, 정소추보다는 어머니 심전하의 외모를 더 많이 닮았다. 심지어 자칭 뚱땡이 언니(肥姐)라 불렸던 어머니처럼 똑같이 조금이라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살이 금방 찌는 체질까지 닮았다.[6] 15살 때 무려 100kg까지 찌기도 했다고. 그래서 안티들로부터 "정소추의 딸이 맞냐" 혹은 "살 좀 빼라"는 식의 악플을 많이 받는 편. 위 사진에서처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는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던 편이었으나, 최근에는 본연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의미에서 다이어트를 잘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부모가 이혼했기 때문에 어머니 심전하의 생전에는 아버지와 거의 교류를 많이 하지 않았으나[7] 어머니 사후에는 부녀가 콘서트 무대에 올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는 등 아버지와 간간히 교류를 하는 듯 하다. 그리고 화해하면서 정소추가 정흔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다고. 1980년에 정소추가 찍었던 위원당 양음환(位元堂 養陰丸)[8] 광고를 2015년에 정흔의가 리메이크하였는데, 마지막 멘트도 '아빠가 먹고, 딸도 먹어요!'이다.
3. 음악활동
1971년 앨범 《애인결혼료(愛人結婚了; 애인이 결혼했다)》를 발매한 이후 가수로도 활동한 그는 한국 나이로 이미 70세를 넘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수 활동은 지속하고 있다. 그의 친구인 왕명전과 함께 종종 콘서트를 열고 있다.2005년, 《가전호효 연창회》를 장천애, 관국영, 등취문, 조아지와 함께 했다. 각각 다른 컨셉으로 진행했는데, 특히 조아지와는 당시 유행했던 대장금을 컨셉으로 하여, 민 종사관과 장금이(?) 버전으로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다만 한복 퀄리티는 떨어진다…. 이 연창회에서 《I Believe》의 2절을 한국어 발음으로 부르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당시에도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힙합이라던가 화려한 퍼포먼스를 여지없이 보여주어 팬들이 열광했다.
4. 정해효과
홍콩에선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이 될때면 홍콩의 주가지수인 항생지수(HSI)가 폭락하는 정해효과, 영어로 팅하이 이펙트(丁蟹效應, Ting Hai Effect)[9]라는 징크스가 있다. 징크스의 자세한 내용은 정해 항목을 참조.당연히 정소추 본인은 정해효과에 대해 "나 자신이 주가하락의 원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5. 기타
2005년경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적이 있었는데, 그의 머리가 진짜가 아닌 가발이라는 것.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이 기사화 되어서 잠시 떠들썩했었다.변호를 해주자면, 그의 나이가 적지 않다는 것도 있고, 젊었을 적부터 워낙 사극 분장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부작용으로 머리가 많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듯. 최근 사진을 보면 딱히 머리를 숨기지 않는 듯하다.
[1] 그가 맡은 배역은 홍콩 현지에서 그 초류향과 맞먹을 정도의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2]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지만, 아역 시절부터 홍콩의 저명한 흑백 영화배우였으며, 가수이자 방송인이다.[3] 심전하와 정식 결혼은 1985년에 했지만 결혼 전 수년 간 동거를 했었고, 정식으로 결혼을 하기 전에 정소추는 이미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심전하도 정소추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정소추는 그 사실을 부인했고, 오히려 심전하에게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딸 정흔의가 태어난 지 8개월 만인 1988년에 심전하와 정소추는 이혼한다.[4] 1987년생으로 이보람, 김승혜, 문근영, 박재범 등과 동갑이다.[5] 이 당시 양육권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 심전하는 홍콩에서 활발하게 연예활동을 했던 탓에 외할머니가 캐나다에서 키웠다고 한다. 2008년 심전하가 사망했을 때 정흔의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어머니의 유해를 홍콩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옮겨 안장하고, 어머니의 위패를 홍콩 샤틴의 보복산(寶福山) 보선당(寶禪堂)에 안치했다.[6] <무림삼봉>이라는 영화에 등장한 심전하의 모습과 위에 올린 사진 속의 정흔의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왜 정흔의가 심전하의 딸인지 알 것이다.[7] 그래도 가끔 티비 프로그램에 이혼한 부모와 같이 출연했던 적은 많았다. 하지만 2008년 정흔의의 어머니이자 전 부인이었던 심전하가 사망했을 때, 정소추는 추모식에만 모습을 드러내고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정흔의 혼자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야 했고, 이 때문에 동료 연예인이었던 등광영이 정소추를 비난하기도 했다.[8] 파괴지왕에 나왔던 그 광고다.[9] 정소추의 별명인 추관(秋官)을 본떠 추관효과 (영어로 Adam's Effect)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