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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11:39:11

서검은구록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10131><tablebgcolor=#010131><tablecolor=#ffc224> 김용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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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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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룡팔부》와 《사조삼부곡 시리즈》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함.
[B] 《설산비호외전 시리즈》와 《서검은구록》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함.
[C] 《벽혈검》과 《녹정기》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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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국령 홍콩 기(1955~1959).svg 홍콩소설
서검은구록
書劍恩仇錄
[1]
The Book and the Sword
<nopad> 파일:서검은구록 '신만보' 게재본.jpg
▲ 서검은구록 《신만보》 게재본
(1955년 발행)
<colbgcolor=#12265B><colcolor=#D9A84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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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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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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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김용(金庸)
공개 1955년 ~ 1956년 (신만보(新晚報))
언어 중국어 (만다린 / 정체자)
종류 소설
장르 무협물, 가상역사물
배경
시간
CE 1753년 ~ 1758년
( 고종)
공간
중원, 강남, 위구르
등장인물
진가락, 객사려, 곽청동, 건륭제, 복강안, 여어동, 이원지, 문태래, 낙빙, 장소중, 우만정, 육비청, 무진도장, 조반산, 서천굉, 주기, 원사소, 진정덕, 관명매, 목탁륜, 주중영 등
분량
글자수
51만 3천 자 가량[2]
권수
4권 (한국어 단행본)[3]
출판사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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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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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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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명하사(明河社)
2차 창작
영화
6편
드라마
7편
1. 개요2. 특징3. 등장인물4. 영상화
4.1. 영화4.2. 드라마

[clearfix]

1. 개요

소설가 김용이 쓴 1번째 소설. 1955년 2월 8일부터 1956년 9월 5일까지 홍콩의 신만보(新晚報)에 연재됐다.[4] 최초 제목은 '서검강산(書劍江山)\'이었으며, 2002년에 나온 개정판이 마지막 판본이다.

2. 특징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청나라 건륭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5] 제목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책과 검에 얽힌 은혜와 원한의 기록'.[6] 국내에서는 1986년에 고려원 출판사에서 영웅문 3부작[7]과 함께 4권으로 나누어 발매하였으며, 당시 발매 제목은 '소설 청향비(淸香妃)'. 청나라의 향비라는 뜻이다. 역자도 영웅문 3부작과 동일한 김일강.

두 가지 야사가 모티브가 되어 있는데, 첫번째는 건륭제옹정제의 친아들이 아니며, 해녕(海寧) 지방 진(陳)씨 가문 출신의 한족이라는 야사이다.[8] 두번째는 건륭제의 귀비(貴妃) 중에 위구르 출신에 몸에서 향기가 나는 향비(香妃)라는 여성이 있었으나, 청나라가 부족을 학살하여 포로로 잡혀온 원한 때문에 향비는 건륭제를 증오했고, 건륭제가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항상 칼을 가지고 다니자, 아들을 해칠까 염려한 건륭제의 모후가 그녀를 살해했다는 야사이다.[9]

처녀작이어서 그런지 인물상이 입체적이지 않고 단순하며, 양우생 소설과 유사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무공에 대한 묘사로 보면 다른 작품들처럼 과장이 심하지 않아서, 이런 점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비슷하게 한족과 이민족의 갈등을 다룬 천룡팔부녹정기와 달리 한족 제일주의 색채가 짙은 편이다. 예컨대 청나라 인물 중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모두 한족이다.[10][11] 그러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주인공이 이슬람교에 귀의하려 하는 등 약간의 주제 변화가 보이기도 한다.

비호외전과 세계관을 공유하며[12], 진가락을 포함해 많은 등장인물들이 비호외전에도 잠시 등장한다.[13]

3. 등장인물

4. 영상화

4.1. 영화

4.2. 드라마



[1] 윳팽으로는 'syu1 gim3 jan1 sau4 luk6'이다. 간체자로는 '书剑恩仇录', 한어병음으로는 'shūjiàn ēnchóu lù'이다.[2] 중국어(광동어) 글자수로 추정된다.[3] 1986년고려원에서 출판한 책이다. 공식 라이센스는 없는 책이다.[4] 유명한 명보는 1959년에 창간하였으며, 창간호에 연재된 것이 바로 신조협려이다. 그 이전 작품인 서검은구록, 벽혈검, 사조영웅전은 다른 신문에 연재했다.[5] 작품의 시작 시점은 건륭 18년 6월, 서기로는 1753년이다.[6] 어떤 책과 검을 말하는지는 소설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굳이 찾아보자면, 위구르 족의 이슬람 경전과, 건륭제의 출생에 대한 비밀 기록, 장소중의 검인 응벽검(凝碧劍) 같은 것이 일부 단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사조영웅전구음진경, 무목유서, 의천도룡기도룡도, 의천검처럼 이야기 전체의 중심이 되는 물건은 없다.[7]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8] 절강성 해녕현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9] 향비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은 용비 화탁씨로 청나라와 위구르의 화친을 위한 정략 결혼이었고 1760년 궁궐에 들어와 1788년 53세로 병사할 때까지 건륭제의 비로 28년이나 살았다. 역사책에는 몸에서 향이 났다는 기록은 없는 듯 하다.[10] 장소중을 비롯한 한족 가운데 악인들은 청나라 만주족의 앞잡이이며, 위구르족은 한족과 마찬가지로 청나라의 탄압을 받는 동병상련의 집단이다. 즉, 서검은구록에서 모든 악의 배후에는 청나라 조정이 있으며, 반청복명(反淸復明)은 절대적인 대의명분이고, 한족과 만주족 사이에 타협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이에 비해, 천룡팔부에서는 가장 정의로운 영웅이자,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소봉을 통해, 마찬가지로 녹정기에서는 훌륭한 정치를 펼치는 강희제를 통해, 한족만이 옳고 이민족은 모두 그른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계속 환기된다.[11] 정확히 말하면 김용 작품에서는 후기로 갈수록 한족중심주의적 경향이 약해지고 범중국주의적 경향이 강해진다. 처녀작인 서검은구록은 말할 것도 없고, 전반기 장편인 사조영웅전신조협려까지만 봐도 한족은 선역이고 이민족이나 그 앞잡이는 악역이며 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의 강산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대의라는 구도가 명확한 편이다. (다만 마찬가지로 초기작인 벽혈검은 이런 성향이 낮기 때문에 무조건 맞는 설명은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조금 늦게 나온 중기작인 의천도룡기에 이르면 여전히 한족의 자주와 독립은 의심의 여지 없는 절대 대의명분으로 여겨지지만, 개인의 차원(간단히 말해 장무기조민)에서는 충분히 이해와 공감이 가능한 것으로(다만 자기 민족보다 사랑을 더 중시해야 함. 사실 한족 입장에서 몽골족은 엄연히 침략자인 것은 맞고, 의천도룡기에서도 장무기는 주원장을 비판적으로 보기 때문에 주제가 마냥 한족 지상주의는 아니다.) 다뤄지고, 최후기작인 천룡팔부나 녹정기에 이르면 "한족이 선하고 오랑캐는 악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선하고 영웅적인 개인이나 악하고 비열한 개인이 있을 뿐" 이라거나 "강희제의 통치는 명나라의 역대 폭군에 비해 훨씬 나은데 그래도 만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다시 세우자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즉, 한족과 이민족 문제 자체는 사실상 김용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인데, 후기로 갈수록 이 주제를 보는 김용의 관점이 달라진 것에 가깝다. 이 점은 김용 자신이 자신의 작품은 후기작으로 갈수록 낫다고 자평한 것이나 평론가들 역시 김용 작품은 나중에 쓴 작품일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평가한 점과 연관해서 해석하면 흥미롭다.[63][12] 서검은구록 결말 시점에서 6년 뒤가 비호외전 초반부, 10년 뒤가 후반부라는 설정이다. 다만, 비호외전은 기본적으로 독립적으로 집필된 설산비호의 세계관이기 때문에, 같은 시간대임에도 설산비호-비호외전의 세계와 서검은구록 세계는 잘 통합되지 않는다. 단적으로 두 세계관에서 무림의 주요 세력이 아예 다르다. 설산비호 세계관에서는 호(胡), 묘(苗), 범(范), 전(田)이라는 4대 무림 명문이 등장하며, 호가와 묘가는 100년 넘는 세월 동안 대를 이어 무림의 최고 고수였고, 범가는 개방의 핵심, 전가는 천룡문(天龍門)이라는 문파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으나, 서검은구록에는 그 중 누구도 언급되지 않는다. 반대로 서검은구록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소림파, 무당파는 설산비호는 물론 비호외전 중반부까지도 언급되지 않는다. 비호외전 초반부와 종반부에서 두 세계관이 만나긴 하지만, 세계관 통합을 위해 억지로 묶은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13] 조반산은 초반부에 등장하며, 후반부에 심연과 육비청, 서천쌍협을 시작으로 진가락, 무진, 문태래, 서천굉, 여어동, 이원지 등이 등장한다. 또한 비호외전의 주역 중의 하나인 원자의도 홍화회와 깊은 인연이 있다.[14] 홍화회와 천지회는 모두 삼합회의 전신이라는 설이 있다.[15] 청나라 군대의 회원들이 실제로 등장하는 대목이라곤 총타주에게 말을 바치거나 절을 하는 정도이다.[스포일러1] 젊었을 때 진가락의 어머니와 연인이었다.[17] 총타주 자리를 정식으로 물려 받기 전에는 소타주(少陀主)라고 불렸다.[18] 진세관은 실존인물이다. 1680년에 태어나 옹정, 건륭 시기에 계속 고관을 역임하고 1758년 건륭 23년에 사망했다. 실존 인물은 작중 시간대에 아직 생존해 있어야 하지만, 작중에서는 고인으로 보인다.[19] 직접 등장하지 않는 친형에 대한 언급이 있다.[20] 외팔이가 된 사연은.. 어느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면 한쪽 팔을 잘라보이라고 하자 그대로 했다. 정작 그 여자는 남의 사주를 받아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사실을 알고나서도 마음이 약해져서 여자를 용서해주고 출가해서 도인이 되었다.[21] 자이언트 로보화영이 쓰는 궁술 추혼탈명검은 여기서 이름을 따온 것. 검법의 이름을 궁술로 바꿨다.[22] 작중에서 천산파의 진정덕, 무당파의 장소중, 조정 시위인 저원과 대결을 한 적이 있으며, 진정덕과는 막상막하, 장소중보다는 한 수 위, 저원보다는 까마득하게 위(...)로 추정된다.[23] 서검은구록과 비호외전에서는 태극권과 태극검이 무당파의 무공이 아닌 태극문의 무공으로 나온다. 무당파의 무공으로는 유운검술(柔雲劍術), 무극현공권(無極玄功拳) 등이 나온다.[24] 흑무상 백무상은 두 사람의 이름에, 상, 혁(중국어로 黑과 발음이 비슷하다), 백이 들어간 걸 이용한 말장난으로, 무상귀(無常鬼)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혼백을 빼앗는 귀신.[25] 다만 홍화회에서 2가인 무진부터 6가인 상백지까지는 강호에 적수가 거의 없는 정상급 고수들인 반면에, 서천굉부터는 비교적 무공이 떨어지는 듯 하다. 무당파 장소중과 비교했을 때, 무진은 명백히 무공이 위고, 조반산, 문태래는 백중지세인 듯 하며, 상혁지, 상백지는 별 차이가 없거나 약간 뒤떨어지는 듯 하다. 그러나 서천굉부터는 장소중보다 명백히 한 수 아래로 묘사된다.[26] 주기가 초반엔 서천굉을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더니 중반부터는 츤츤대는 사이로 발전한다... 서검은구록이 처녀작임을 생각해보면 역시 괜히 신필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27] 이 때 무진이 연환미종퇴로 실력을 발휘해서 청기방을 굴복시킨다.[28] 금표자는 수호전양림의 별명이기도 하다.[29] 태산석감당(泰山石敢當)에서 나온 말이다. 태산석감당은 중국 태산 지역에 내려오는 전설로, 석감당이라는 이름의 용감한 청년이 요괴를 물리쳐서 집집마다 액막이를 위해 돌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는 이를테면 중국판 처용 이야기다. 원래는 태산 지역의 신기하게 생긴 돌에 석감당이라는 글을 생기고 신령함을 가진 영석(靈石)으로 숭배하던 것에서 유래한 전설이라고 한다. 어쨌든 용감하다는 뜻으로 쓴 별호.[스포일러2] 결말부에서 홍화회 두령 중 유일하게 전사한다.[31] 비호외전에서는 종씨삼웅도 같은 별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온다.[32] 홍화회에 들어온 후 조반산에게 태극문의 현현도법(玄玄刀法)도 배웠다고 한다.[33] 여담으로 사조영웅전의 간(簡) 장로가 황용과 대결할 때 풍마장법을 사용한다. 다만, 풍마장법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작품이 약간 다르게 묘사되는데, 서검은구록에서는 긴나라왕(緊那羅王)이 창시한 소림사의 무술로 묘사되고, 사조영웅전에서는 수호전노지심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나온다.[34]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비호외전에서는 이 별호가 연청권 장문인이자 악명 높은 도둑인 구양공정(歐陽公政)의 별호로 나온다. 설정 충돌이거나, 동명이인처럼 여겨야할 듯 하다.[35] 이 표현은 부드러움 속의 날카로움을 뜻하는 것으로 내가권법을 묘사할 때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다. 간혹 금리침이라고 번역된 부분이 눈에 띄는데 솜 면(綿)을 비단 금(錦)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스포일러3] 비호외전 시점에는 출가하여 무청자(無靑子)라는 이름으로 사망한 마진 대신 무당파 장문인이 되었다.[스포일러4] 주영걸은 작중 초반에 아버지에 손에 실수로 맞아 죽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부상을 입고 청 조정에 쫓기던 문태래를 주중영이 숨겨주었는데, 아직 어린아이였던 주영걸이 장소중의 유도신문에 순진하게 넘어가서 문태래의 위치를 발설해 버렸고, 문태래는 조정의 포로로 잡혀간다. 주중영은 자식이 저지른 일에 충격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갖고 있던 철담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쏘았는데, 하필이면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뛰어든 주영걸에게 명중해서 즉사했다. 그의 아내는 아이가 실수로 저지른 일인데 남편이 냉혹하게 친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해서 분노하고 집을 나가버린다. 뒤늦게 도착한 홍화회 군웅들은 주영걸이 어린아이라는 것도 고의가 아니었던 것도 모르고, 문태래를 조정에 팔아넘긴 당신 아들을 내놓으라면서, 주중영이 제대로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철담장에 불을 질러 태워버리고 철담장 사람들을 공격했다. 주중영을 차륜전으로 돌아가며 공격했으나, 주중영이 오해를 풀기위해 사정을 봐주면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진가락과의 대결에서 백화착권에 진 주중영이 아들을 내어주겠다며 관에 담긴 시신을 보여주고, 주기에게 전후사정을 듣게 되자 모두 주중영에게 사죄한다.[38] 외모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성미가 급하고 싸움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보인다.[39] 철담장과 홍화회가 대립할 때 방화를 주도한게 서천굉이라 주기는 한동안 그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이 맺어질 때, 주씨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서천굉은 데릴사위가 되었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도 주씨 성을 갖게 된다. 결말에서 홍화회가 건륭제에 대한 복수를 포기한 것도 난전 중에 이 아이가 인질로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주씨 집안의 대를 또다시 홍화회 때문에 끊기게 할 수는 없으니까.[40] 본작 후반부에서 진가락은 보전 소림사에 보관된 건륭제의 출생에 관한 문서를 얻기 위해 이 다섯 명의 소림 고수에게 도전한다. 대고에게는 이겼고, 대전과는 실력이 비슷한 것 같은데, 대치부터는 진가락보다 무공이 확실히 높은 것으로 묘사된다. 항렬이 다른 천경과 천홍에게는 아예 상대도 안 된다. 그러나 임기응변과 상대방의 양보를 통해 어찌어찌 통과한다.[41] 시간이 3분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힘을 3분의 1만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세 배 빠르다고.[42] 비슷하게 지모가 뛰어난 황용이나 조민과 비교해보자면, 황용은 상황판단과 임기응변이 매우 뛰어나고 강호에서 닳고 닳은지라 사람을 잘 헤아린다. 조민 역시 상황판단이 뛰어나고 음모를 꾸미는 데 재주가 있다. 그리고 둘은 공통적으로 교활하면서 주인공을 휘어잡는 면모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곽청동은 영리하기는 하지만 성격 자체는 둘에 비하면 훨씬 순진한 편이며, 가장 뛰어난 분야는 특이하게도 병법이다. 삼국지연의를 읽고 병법을 배웠다고 한다.![43] 언제나 꽃을 먹어서 몸에서 향기가 난다는 설정이다.[44] 출처는 명확하지 않으나, 작가인 김용이 자신의 소설 속 미녀로 소용녀, 왕어언과 함께 객사려를 꼽았다고 한다. 작품이 다르기 때문에 김용 작품 전체에서 최고의 미녀를 비교하는 것은 결론을 내기 어렵겠지만, 이 세 여성의 공통점은 소설 속에서 어딘가 신선이나 선녀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황용, 임영영, 조민 등도 절세미녀로 묘사되지만, 각각 영악하고, 괴팍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권모술수에 능숙하고 야성적이라는 개성이 뚜렷해서 더 인간적인 반면, 신비로운 분위기는 덜하다. 그러나 객사려, 소용녀, 왕어언은 인간적인 개성이 강하게 묘사되지 않아 외모의 신비로운 면모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위구르 군대와 청나라 군대가 싸우다 그녀가 나타나자 미모에 놀라 청나라 군사들이 전쟁을 멈추고 쳐다 보고, 진가락과 객사려가 사자로 조혜를 만나러 왔을 때 객사려의 미모에 넋이 나간 병사를 처형하자 객사려가 눈물을 흘리니 처형했던 병사가 사죄하며 자결할 정도. 객사려의 이러한 신비한 면모는 작품 결말부에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45] 요즘으로 치면 수도방위사령관 겸 친위대 대장[46] 두 사람은 숙질 관계이며 나이도 비슷하기 때문이다.[47] 1708-1764. 건륭제와는 인척이며, 티벳, 위구르 토벌군 사령관을 역임했다.[48] 조선으로 치면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49] 최후에도 나름대로 지조를 지키며 자결한다.[50] 마지막에는 관동육마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여어동과 나름대로 우정을 쌓은데다, 홍화회 사람들도 합합태는 인품이 나쁘지 않은 것을 알고 살려보내준다.[51] 장소중과 말로 무공초식을 겨루다가 승복한지 않자, 단 1초만에 장소중을 제압한다.[52] 작중에서 가장 대단한 권법으로 묘사된다. 젊은 시절 강호를 돌아다니며 익힌 소림권, 팔괘유신장, 태극권, 무당장권, 응조공 등 여러 무술을 집대성해서 만들었으며, 각 무술을 쓰는 도중에 방향 등을 조금씩 다르게 해서 상대방이 헷갈리게 한다는 방식이다. 작중에서는 여러 속임수(百花)는 쉽게 막지만 하나의 차이점(錯)은 막기 힘들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용의 후기작에 등장하는 신비한 무공들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원리가 덜 심오해보인다. 연적인 진정덕을 제압하려던 것이 창안 동기라고 한다.[53] 심지어 실력은 좀더 위였다. 또한 장소중을 잡으려는 홍화회의 계략에 철저하게 이용당했지만, 모든 사정을 안 뒤에도 홍화회의 입장을 이해하고 원망하지 않은 대인배였다.[54] 건륭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자불어(子不語)가 '청나라 귀신요괴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미식가로도 유명해서 수원식단(隨園食單)이라는 요리책도 썼으며 신계숙 교수의 번역으로 국내에도 나와있다.[55] 호가 효람(曉嵐)이라서 기효람이라고도 불린다. 사고전서의 총 편찬자이자,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의 저자로 유명하다. 명성이 원매와 쌍벽을 이뤄, 북의 기윤 남의 원매(北紀南袁)라고 불렸으며, 건륭 시대 배경 사극에 자주 등장한다.[56] 이십이사차기(二十二史劄記)라는 역사책으로 유명하며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다.[57] 홍화회는 충의회(忠義會)로 바뀌었으며, 충의회 초대 총타주가 우만정이 아닌 진세관으로 나온다고 한다.[스포일러5] 이 영화판에서 진가락을 제외한 홍화회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59] 2편은 국내에서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스포일러7] 서검은구록과는 반대로, 건륭이 한족이 아니라 진가락이 만주 황실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설정이다.[61] 팽문견은 TVB에서 주최한 스타 발굴 대회에서 뽑히고 바로 주연을 맡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후 연예계를 은퇴하고 중국에서 보험회사를 세웠다.[스포일러6] 우만정이 사실은 건륭의 아버지인 옹정제와 왕위를 겨루다 패한 9황자 윤당이었으며, 황제 자리를 되찾는데 이용하기 위해 청나라 반대세력인 홍화회를 조직했다는 것으로 각색했다. 위춘화와 석쌍영도 윤당의 수하였다. 이후 차례로 서천쌍협, 양성협과 장사근을 살해하고, 본색을 드러낸 후 무진마저 살해하지만, 결국 진가락에게 죽는다. 진가락의 칼을 빌린 사실상의 자살었으며 옛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