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무술
중국무술은 대부분 병장기와 함께하는 권병일치의 무술이기 때문에, 태극권문에서 익히는 검술은 태극검, 당랑권문에서 익히는 검술은 당랑검 등으로 칭한다.실제 태극검의 역사는 20세기 초반, 중국의 민국시대에 북양군벌 이었던 이경림 장군이 양가태극권을 배운후에 소림 달마검법에 기초하여 창작해서 만들어 냈다고 한다. 중국측 기록에 명확하게 적혀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19세기 말 까지는 태극검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2. 김용의 작품에 등장하는 무공
태극권과 함께 장삼봉이 만들어낸 총 54초의 검법이다. 장삼봉이 무당파의 안마당에서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무기에게 처음 공개적으로 전수함으로써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런데 장삼봉의 시범은 모든 초수가 느릿느릿하기 그지없었으며 재차 삼차 시전해 보일 때마다 같은 초식의 형태가 달라지는 기이함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전수받는 장무기는 시범이 이어지면서 '반쯤 기억이 난다' '두세 초를 잊지 못했다' 운운하더니 마침내는 '초식을 전부 잊어버렸다'라는 반응을 보여 지켜보던 고수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장삼봉은 마지막 대답을 듣고 흐뭇해함으로써 좌중의 혼란에 결정타를 날린다(...).이 전수 과정은 태극검의 뜻(劍意)를 전하기 위한 것으로, 일초 일식에 숙련되는 것이 아니라 초식의 뜻을 익혀 자유자재로 검을 펼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태극검의 모든 초식은 원을 그리는 것으로 아우를 수 있는데, 끊임없이 검으로 원을 펼쳐나가며 상대를 제압하고 몸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태극검의 진수이다. 태극검을 완전히 터득한 장무기는 의천검을 목검으로 제어하는 신기를 보여준다(!). 상대는 팔비신검의 칭호를 가졌던 쾌검의 고수이고 의천검의 예리함은 상상을 초월하나, 칼 옆면을 맞대고 원을 그리며 초수를 흘려보내고 무력화시키는 태극검에 밀려 대결이 끝나기 직전까지 목검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을 정도.
태극검의 검의는 독고구검과는 정반대인 후발제인(後發制人)인데, 이 후발제인은 '뒤에 손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한다'라는 뜻으로, 적을 상대할 때 한 걸음 양보하여 그 우열을 살핀 뒤에 약점을 공격하여 적을 제압한다라는 뜻이다. 이러한 경지는 의천도룡기에 등장하는 구양신공의 무학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구양신공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무당파의 무학 자체가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후발제인의 묘리가 장삼봉의 오랜 연구에 따라 극대화된 것이 태극권과 태극검인 셈.
그리고, 독고구검의 검의는 선발제인(先發制人). 즉, 독고구검과 태극검의 관계는 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 검의부터 서로 상반이 되기에, 독고구검과 태극검은 서로 정반대라고 할 수가 있다.
태극검과 독고구검은 서로 상반이 되어보이지만, 공통점이 딱 하나는 있다. 바로, 초식이 없다라는 점. 또한, 태극검과 독고구검이 서로 격돌하면 독고구검이 이기느냐, 태극검이 이기느냐고 생각할 텐데, 그런 건 사실상 무의미. 그 이유가, 풍청양 가라사대 상대도 초식이 없고 자신도 초식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승부를 예측하기가 힘들다. 오로지 그 자신의 공력에 따라 승부가 가려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소오강호에서 독고구검(영호충) vs 태극검(충허도장)의 대결이 있었는데 양측 모두 각자의 검법을 대성한 상태는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충허도장 측이 연륜 때문에 경지가 더 높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결국은 충허도장이 패배를 시인하였다.
하지만 이 결과를 가지고 독고구검의 우월함을 주장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충허도장과 싸우는 도중 영호충은 열 발자국 가까이 뒤로 물러났고 (독고구검의 중요한 특징은 "오로지 공격"인데, 그 부분이 깨진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 부분에서 패배를 인정할 수도 있다.) 마지막에 반격을 가할 때에도, 충허의 태극검의 약점을 정확하게 찾아서 공격했다기보다는 '가운데가 약점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팔이 잘릴 것이다' 라는 생각과, '나를 위해 갇혀있는 임영영을 위해서라면 손 하나가 잘라져 나가더라도 오히려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찌른 것이었다. 즉, 팔이 잘릴 각오로 검을 찌른 것인데 그것이 운이 좋게 맞아서 주인공 보정으로 영호충이 이긴 것이다. 게다가 충허도장이 패배를 시인하긴 했지만 요행 약점을 공략한 영호충도 편하지는 않고 속이 뒤집힐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고 나온다.
영호충이 아니라 풍청양이 나섰으면 쉽게 이겼을 것이라는 추측도, 영호충이 이긴 것이 어느 정도는 요행이었다는 점을 본다면 그다지 쉽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영호충과 대결하기 전의 충허도장의 말을 들어보면 풍청양을 존경하면서도 그의 검법에 대해서는 경쟁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 또 충허도장의 태극검 역시도 무초식의 경지에까지는 이루지 못했으므로 만약 진짜로 무초식의 경지에 이른 독고구패 vs 장삼봉의 대결이라면 또 다른 양상을 보여줬을 수도 있다.
한국 무협지에서는 무당파의 기초검법으로 등장하며 태극권의 검술버전으로 묘사된다. 무당검사는 태극검법부터 배운 뒤 태극양의검이나 태극혜검 같은, 태극 뒤에 몇자 더 붙인 상승검법을 배워나가는 것으로 설정된 경우가 많다.
[1] "한 두어 절 배웠다고? 하하하, 풍선배의 검술이 그렇게도 대단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