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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래피: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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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포르노그래피: 女子를 소유하는 男子들(한)
Pornography: Men Possessing Women(영)
발행일 1981년
저자 안드레아 드워킨
(Andrea R. Dworkin; 1946-2005)
출판사 Women's Press
ISBN 9780704338760
#Amazon
1. 개요2. 특징3. 목차4. 주요 내용
4.1. 챕터별 내용 정리4.2. 남성 권력의 종류4.3. 여성 대상 폭력과 그 사회화4.4. 여성의 성적 대상화4.5. 강간 신화: 가정된 매저키즘과 매춘부로서의 여성
5. 출간 이후: 포르노를 규제해야 할까?6. 평가
6.1. 긍정적 평가6.2. 부정적 평가
7. 둘러보기
지금 여성인 나를 채찍질하겠다고 마음먹은 남자가 나를 죽이는 일까지도 손쉽게 해치울 수 있다고 단호히 말하고, 또한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학대당한 것에 대해 깊고 확고하게 느끼는 분노에서 나온 주장, 결연한 주장, 진지한 여성들이 행하는 진지한 주장을 전제한 다음 해방의 정치학이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라. 그럼 진지한 여성이란 무엇일까?

(인종차별 증언자들이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고민이나 공포의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도 증언하려고 과감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녀들이 한 증언을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용기 있는 증언을 한 탓에 영예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모욕을 당했다. 우리들은 그녀들의 이야기에 수치와 타락의 악취가 배어 있다고 단정하여 얼굴을 돌려 버렸다. 동시에 그녀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두렵고 이해의 차원을 넘어 불쾌한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였던 사람들ㅡ모든 시점에서 우리들 대부분의 인간ㅡ까지도 고발했기 때문이다.

...포르노그래피는 여성의 몸과 정신에 대한 조직화된 파괴행위이며, 강간, 구타, 근친상간, 매춘은 포르노그래피와 서로 활발히 연계되어 있다. 포르노그래피의 특질은 비인간화와 새디즘이다. 그것은 여성에게 선포하는 전쟁이며, 인간의 존엄이나 자아, 그리고 인간적 가치에 대한 끝없는 공격이다.

- 개정판 서문, pp.11; 26-27

1. 개요

1981년미국의 유대계 미국인이자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가 안드레아 드워킨(A.R.Dworkin)[1]이 저술한 책. 래디컬 페미니즘의 첫손에 꼽는 고전이자 성범죄 관련 논란의 책.

2. 특징

현대 페미니즘 사상은 이 책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잠재적 가해자론과 남성 권력, 강간 신화, 성범죄 처벌 등에 대한 논변이 크게 도약하였다고 평가된다. 이 책의 핵심은 여성이 남성 지배적 질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포르노 산업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글을 학자의 글, 운동가의 글, 에세이스트의 글로 분류한다면 이 책은 "운동가의 글"로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운동가의 글이 으레 그러하듯 체계적 분석이나 냉철한 논리적 정합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비약이 뒤섞인 과격한 문구들은 상당히 파괴력이 강력한 프로파간다로서 기능한다. 포르노, 강간, 매춘부 등의 주제와 관련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만연체간결체를 섞어서 글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으며, 전반적 분위기는 격문에 가깝다. 드워킨과 협력하거나 대립각을 세웠던 페미니스트들 역시 이 못지 않은 달필을 자랑한다.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는 "남성을 여성보다 우월하게 생각하는 억압적 권력에 마침표를 찍는 것" 이 저술의 목표라고는 하였지만, 이 책의 저술 배경에는 1970년대의 시대상을 살펴보는 것이 꽤 도움이 될 것이다. 20세기 초엽부터 시작하여 1950년대까지 이어졌던 미국 사회의 완고한 보수주의금욕주의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깨지게 되었으며, 1970년대는 사실상 서구 사회에 소위 프리 섹스와 같은 다양한 섹슈얼리티 담론이 활성화되었던 시기였다. 헌데 페미니스트들 중 일각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들은 '남근의 질내삽입' 으로 환원되는 모든 종류의 섹스들이 이미 그 자체로 여성억압적 행위가 된다고 여겼다. 이런 급진적인 움직임 중의 일부는 심지어 양심적 레즈비언(?)이 되기까지 했으며, 여성끼리의 섹스야말로 페미니즘의 이상이라고 믿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어, 소위 라벤더 위협(lavender threat)이라 하여 페미니즘 내에 상당한 논쟁이 되었다.

그 와중에 저자는 저 유명한 《딥 스로트》 의 배우 린다 보먼(a.k.a. 린다 러브레이스)의 가정폭력 피해 고발을 지지한 바 있었고, 이후 다양한 포르노 출연 여배우들의 고충과 피해, 어려움을 폭로하는 데 힘썼다. 1980년, 그는 동료 래디컬 페미니스트인 캐서린 맥키넌과 협력하여 포르노를 규제하기 위해 먼저 민사적 입법을 시도했으며, 이는 흔히 "Dworkin-MacKinnon Law" 라고도 불린다.[2] 이 과정에서 자신의 논변을 강화하기 위해 쓴 것이 바로 이 책. 그러나 후술하게 될 여러 이유로 인하여 결국 연방위원회에서 수정헌법 1조 위헌 판결을 받게 되었다.

저자 드워킨의 생애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미혼 시절에는 베트남 전쟁 반전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을 경험하기도 했고, 이후 네덜란드로 건너가서 그곳의 한 무정부주의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웬걸, 그 남성은 가정에서만큼은 더없이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고, 그 폭력을 견디다 못한 드워킨은 간신히 남편으로부터 피신하여 유럽을 전전하다 결국 매춘부 생활로까지 내몰렸다. 훗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드워킨은 케이트 밀렛(K.M.Millett),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Firestone), 로빈 모건(R.Morgan) 등과 교류하며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상기한 맥키넌 이외에도 존 스톨튼버그(J.Stoltenberg)나 일레인 마크슨(E.Markson)과도 협력했다. 저자는 리버럴 페미니즘 측과 많은 마찰과 언쟁을 빚었지만, 그들 역시 페미니즘의 대의를 위해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한편 지퍼 스캔들이 벌어졌을 때 빌 클린턴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기도 했다. 2000년에는 데이트 강간 약물이 들어간 술을 마시고 남성에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때만큼은 상당히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저자는 5년 후인 2005년에 향년 58세로 사망했다.

저자의 다른 주요 저서들로서 《여성 증오》(1974), 《우리들의 피》(1976), 《우파 여성》(1973), 《새로운 여성의 상심한 마음》(1979) 등이 있다.

국내에는 1996년에 동문선 출판사에서 유혜련 역자의 도움을 받아서 소개하기도 했다. 꽤 옛날 책이라서 재판할 만도 하겠지만 아직 이보다 더 새로 나온 책은 없다. 따라서 2018년 7월 현재 어떤 서점에서도 이 책을 판매하고 있지는 않으며, 동네 헌책방이나 대학 도서관의 어딘가 귀퉁이를 뒤지다 보면(…)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이 책을 발견할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

참고로 이 책의 내용 중에 대략 열 건 가까이 되는 실제 야한 사진이나 야설들이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3] 이는 저자가 실제로 미국에서 소비되고 있는 것을 목격한 포르노 중 일부를 책 중에서 분석하기 위해 발췌해 온 것이다. 서양 야동이 취향(?)인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상당히 설레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PC통신 시절의 아재들이 돌려 읽던 싸구려 야설 시리즈 같다는 촌스러움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후술하겠지만 저자가 인용하는 포르노들은 장르적으로는 하드코어 포르노에 속하며 BDSM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어쨌거나 반드시 후방주의에 신경을 쓰면서 읽어야 할 책.

3. 목차


책의 전체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편 이 책은 개정판으로 재판될 때 저자가 거의 한 챕터에 달하는 긴 서문을 추가한 바 있다. 이는 상술한 Dworkin-MacKinnon Law의 입법 노력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해당 서문의 내용을 역시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4. 주요 내용

4.1. 챕터별 내용 정리

각 챕터의 내용들을 각각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몇 종류로 추려서 하단에 다시 챕터 구분 없이 소개할 것이다. 여기서는 저자가 언급한 남성 권력 7가지, 남성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학습하고 내면화하는 과정, 남성들이 여성을 취급하는 방식, 여성에 대한 학대와 관련하여 남성들이 갖고 있는 왜곡된 생각들을 우선 소개한다.

총 7개의 챕터들 중에서 6번 "포르노그래피" 의 분량이 극단적으로 짧다. 그리고 개정판 기준으로 서문의 길이가 하나의 챕터에 맞먹기 때문에 양쪽이 상쇄되어, 읽어야 할 양은 여전히 7개 챕터 분량이다.

4.2. 남성 권력의 종류

저자는 우선 사회과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통하는 "권력" 의 정의, 즉 "타인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타인에게 강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 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남성들과 여성들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그리고 남성들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무언가를 강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

첫째, 저자가 보기에 남성들은 여성에게서 자기(self)를 흡수한다. 남성의 자기는 아무리 커도 작게 느껴지고, 여성의 자기는 아무리 작아도 크게 느껴진다는 것. 이 현상의 원인은 남성들의 경우 "나는 존재를 원한다. 나는 원하는 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 의 신념이 성립하지만 여성들은 "나는 원하는 것을 가질 권리가 있...나?" 에서 멈추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 그래서 남성들은 여성들에게서 자기를 흡수하여 자기를 확대하며, 여성들은 이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기가 축소되어 간다고 본다. 가장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어머니들이라고...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심지어 남성들은 기생충이고 여성들은 그 숙주라고 한다. 따라서 남성을 기생충에 비유하는 건 이미 40년 된 드립인 것이다!

둘째,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육체적으로 강할 것이 전제되며, 여성들이 이를 어길 경우 사회적으로 기피되는데, 이 때문에 남성들은 여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육체적 연약함을 강조하도록 한다. 저자에 따르면 고소득층이고 웬만큼 잘 배우고 잘 사는 여성들일수록 도리어 '청순가련' 한 신체적 무능력의 이미지를 드러내려 한다고. 저자는 남성들이 이런 여성들을 자신의 부(富)를 통해 구입하여 자기 자신을 '장식' 하는 효과를 얻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물론 남녀 간의 육체적 차이에 의해 유지되기도 하지만, 그 차이는 인간 사회, 즉 법률, 관습, 예술, 문학, 역사, 경제, 가치, 전설에 의해서 더욱 증폭되고 강화된다.

셋째, 남성이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무언가를 행사하는 것은 여성들을 위협하는 과정을 통해 달성된다. 이를 위해 남성들은 자신의 위험성, 공격성, 폭력성, 잔혹성, 투쟁성, 호전성을 여성에게 과시해 보인다는 것. 이러한 위협은 여성의 공포를 자아내는 다양한 행동들이 페니스로서 상징화됨으로써 달성되며, 남성들은 특히 이 위협의 강도, 목적, 대상을 고를 권리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넷째, 저자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강조하는 중요한 권력은 바로 "이름붙이기" 의 권력이다. 남성은 여성과는 달리, 무엇에 대해 이름붙이기를 했을 때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남성이 이름붙인 대상은 그 이름이 유지되지만, 여성이 이름붙인 대상은 얼마 못 가서 이름이 소멸된다는 것. 저자가 보기에 이것이 갖는 문제점은, 지금껏 남성들이 여성을 이름붙일 때 과히 좋지만은 않은 이름들을 붙여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성은 여성들을 '무지한 존재', '직관적인 존재', '감정적인 존재' 로 명명했다. 여성이 "안 돼" 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남성들은 그 의미를 "당연히 되지, 나는 그것을 원하고 있어, 제발 해 줘" 라는 의미라고 제멋대로 정의해 버렸다. 남성들은 섹스에 대해 자신의 폭력성과 적개심을 혼합해서 정의했다. 아내에 대한 남편들의 구타는 '사랑의 증표' 로 명명했다. 애인에 대한 구타는 '에로티시즘' 으로 명명했다. 여성이 성욕을 나타내면 '음란한 여자' 의 딱지가 붙었고, 성욕을 나타내지 않으면 '강간당하기를 학수고대하는 여자' 의 딱지가 붙었다. 도대체 어쩌라고 여성이 공부를 시작하면 '좋은 섹스로 치료해 주어야 할 신경증을 겪는 여자' 라고 명명했고, 여성이 집 밖으로 돌아다니면 '돈으로 몸을 살 수 있는 창녀' 라고 명명했다.

드워킨이 보기에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름붙이는 행위는 결국 그 대상을 자신의 소유로 귀속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여기에 역행한다면 남성의 소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며, 그들은 결국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만다. 여성들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언어사용의 방도가 없기에[4] 이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

다섯째, 남성들은 소유의 권력을 지닌다. 특히 이는 아내의 몸이 남편의 소유물로서 언제든, 그리고 어떻게든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한다. 드워킨은 결혼을 두고 남성이 여성의 몸을 제도적으로 합법적인 방식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특히 결혼의 본질은 "여성에 대한 유괴" 라고 주장하면서 단지 그것이 제도화되었기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하였다. 드워킨에 따르면 결혼생활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평생에 걸친 강탈을 의미하며, 남성은 이를 통해 여성을 취하고, 그 상태를 지속하고, 그로써 여성을 획득한다.

여섯째, 남성의 중요한 권력 중 하나가 금권력, 즉 경제적 힘이다. 드워킨은 똑같은 "" 이라 할지라도 여성에게는 가계부 위의 숫자로서의 의미를 갖는 반면 남성에게는 그에 더해 세상의 모든 가치와 가능성, 지위, 명예를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남녀 간에는 소비생활의 차이가 있는데, 여성은 가난할 때는 생존을 위해, 부유할 때는 남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소비하지만, 남성은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한결같이 오직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소비한다. 더 나아가 남성에게 부유함이란 곧 그 남성이 갖는 성적인 힘을 표상하는데, 이 맥락에서 "정액경제" 라는 표현을 생각해 볼 수 있음을 보였다. 돈과 정액의 공통점은, 평소에는 축적하고 보존하다가 때가 되면 생산을 위해 투자한다는 것이다. 결국 금전에 대한 미덕은 남성성에 대한 미덕과 상통하며, 부유한 여성을 만난 가난한 남성은 마치 남성적 여성을 만난 여성적 남성이 느끼는 치욕감과도 유사한 것을 경험하고 만다. 이런 남성들은, 저자의 예측에 따르면, (폭력과 같은 위협을 동원하거나 비방하는 이름붙이기를 하는 등) 다른 종류의 권력의 원천을 끌고 와서 남성성을 보상받아야만 한다.

일곱째, 그리고 아마 이 책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테마인 포르노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으로, 남성의 권력은 페니스를 활용한 섹스 그 자체로부터 나온다.[5]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일부 남성들은 "야한 옷으로 날 유혹한 네 잘못이다" 를 주장하면서, 섹스의 권력이 여성들에게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남성이 어디까지나 의례적인 자극에 대해 발기로서 원치 않는 반응을 했을 뿐이니 남성이야말로 권력적 약자라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의 신체를 대등한 인간의 몸이 아닌 '성적 자극물' 로 대상화하여 추방시켜 버린 권력은 남성에게 있다고 강변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 그렇게 비쳐지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권력의 행사로서의 섹스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정복 행위, 소유 행위, 권력적 강탈 행위, 자기확대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

그리고 마침내, 이와 같은 남성권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공고히 하는 가장 극명한 매체가 다름아닌 (이제부터 논의하게 될) 포르노라는 것이다. 포르노의 존재 이유는 남성 권력을 자명히 하고, 행사하고, 찬양하며, 이를 위해 여성을 격하시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표현을 빌려, "포르노는 폭력적이고 자기망상적이며, 타인을 유의미한 인간으로 지각하지 않고, 자기쾌락적이며, 타인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자기 행동을 고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폐증이다" 라고 평가한다. (때가 때인지라, 자폐증에 대한 이해가 딱 그 시대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이쯤에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세상에 포르노라는 게 한두 종류가 아니기 때문. 성애라는 것이 세상의 남정네들 수만큼 많고, 모에라는 것 역시 엄청나게 많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뭐든간에 포르노의 소재가 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드워킨의 생각을 어디까지 일반화할 수 있겠는가 싶을 수 있다. 물론 그는 여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네 가지의 포르노를 사례로 들어서 각각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 국내에서 한때 이슈가 되었던 맥심 잡지 관련 논란과도 유사한 맥락이라고 보면 되겠다.
〈비버 사냥꾼들〉 삽화   콘셉트 : 남성 우위, 여성 열위
가장 보편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이 문제삼을 만한 소재. 이 사진은 확고하고, 탈취하고, 군림하는 남성의 이미지를 드러내며, 남녀 간 정착된 우열관계를 확증한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성적 추구와 로맨스와 같은 일상 속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여성들에게 느껴지기 때문에, 실제로 여성들을 억압하는 힘을 갖는다고 본다.
남성 권력의 징후 사냥꾼 복장을 갖춰 입은 남성, 벌거벗은 여성
무기(라이플)를 갖춘 남성, 묶여 있는 여성
보호받고 있는 남성, 무기력하게 노출된 여성
국부가 감춰진 남성, 국부가 화면 정중앙에 노출된 여성
여성 독자의 시선 묶인 여성은 고통스러울 것임
모델일지라도 누군가가 실제로 그렇게 묶였었고, 수많은 남성들이 그녀의 몸을 보게 된다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임
여성을 '비버' 로 지칭했기에 인간성이 박탈되는 듯함
사냥당해 죽어 있는 (혹은 곧 죽게 될) 여성을 보며 죽음의 공포를 경험
이전에나 이후에나 사냥이 계속되며 여성들이 계속 노획당할 것이 생각됨
현실에서 자신들이 두려워하는 남성들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공포가 확산됨
〈여자 때리기〉 소설   콘셉트 : 여성 우위, 남성 열위
일견 '해방된 여성' 내지 '아마존' 캐릭터의 여성들이 등장해서 남성의 고환을 걷어차는 등의 내용이 나오기에, 남성 권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잘 보면, 결국 이야기에 등장하는 단 한 명의 남성은 마지막까지 안정적인 남성 권력을 유지한다. 남성 독자들은 이 남성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여성에게 두들겨 맞는 남성은 이 (아마도 주인공일) 남성에게 "호모" 라는 모욕을 듣고, 그 남성을 괴롭히던 소위 '해방된 여성' 들은 마침내 이 주인공 남성을 선택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이 야설의 저자는 여성적인 필명을 내세우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저자들은 여성들이 추구하는 에로티시즘조차 남성의 성적 판타지와 똑같을 것이라는 거짓 확신을 얻게 될 수 있다.
남성 권력의 징후 여성에게 맞는 남성은 남자다움의 달성에 실패한 벌을 받는 것으로 이해됨
(볼 버스팅은 해당 남성에게 상징적 거세의 의미)
남자답지 못한 남성들이 많아지면 위협적인 여성들이 권력을 강탈해 갈 것이라는 경고성의 메시지
작중 등장하는 모든 섹스가 힘과 지배, 잔혹함으로 점철된 남성향적 성욕의 영역에 포함
페미니스트들도 겉으로는 저렇지만 속으로는 진정 자신을 정복해 줄 만큼 강하고 남자다운 남성을 바라고 있다고 거짓으로 선전함
여성 독자의 시선 불합리하고 어리석어 실소가 나오는 전개
남성만이 공감할 수 있고, 여성들은 현실에서 그 어떤 비슷한 것도 경험하지 않는 판타지 그 자체일 뿐
〈나는 젊은 남자가 좋아〉 소설   콘셉트 : 게이 포르노
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야설은 셋 모두 단단하게 발기된 페니스가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내용의 핵심은 "누가 누구와 했는가?" 가 아니라, 왕성하고도 영원히 작동하는 페니스가 모두에게 "얼마나 큰 쾌락과 그 이상으로 잔혹한 고통을 주는가?" 에만 철저하게 맞추어져 있다. 작중에서 반복적으로 고통이 묘사되는 것은 페니스가 주는 최고의 판타지를 암시하며, 이 고통은 '수' 에게 '공' 이 가하는 성적인 의무로 이해되고, 고통이 클수록 사랑도 크다는 메시지를 제공한다. 세 편에서 레즈비언 섹스도 등장하는데, 전체적으로 레즈비언은 남성의 지배자, 남자다움을 강탈하는 위험한 존재로서 묘사된다. 등장하는 게이들은 여성용 속옷을 입고 있거나 하는 여성적 속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조차도 극단적 남근숭배 사상에 봉사한다.
〈무제〉 삽화   콘셉트 : 레즈비언 포르노
삽화의 주제는 레즈비언 섹스로 의심되지만, 실제 레즈비언들이 갖는 섹스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 사진의 내용은 두 여성의 관계가 아니라, 페니스의 역할을 맡은 카메라(와 그것을 통해 들여다보는 남성 독자들)의 현장 참여를 독려하는 것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두 여성은 '카메라를 향해' 엉덩이와 국부를 불필요하게 노출하고 있으며, 이는 이들이 독자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자세는 '카메라에게 있어' 다분히 굴종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여겨지는 레즈비언들조차 남성의 소유로 예속시킬 수 있으리라는 거짓 확신을 제공한다. 즉, 이 삽화는 여성(들)만이 사적인 공간에서 등장하는 유형의 포르노조차 남성 권력이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6]

4.3. 여성 대상 폭력과 그 사회화

"...남자들은 자신들이 인간적인 관점을 지니고, 자신이 그것을 만들고, 그것을 소유한다고 주장한다. 남자들은 휴머니스트, 인간, 인도주의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자들은 강간범, 구타범, 약탈자, 살인자들이다..."

- p.99

드워킨이 "모든 남성들은 여성을 학대하는 강간범" 이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남성들은 종자 자체가 글러먹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소년과 성인 남성을 대조하여 바라본다. 소년들은 타인을 대상화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물이나 무생물조차도 살아 있는 존재로 여기지만, 성인 남성은 언제부터인가 여성을 대상화하는 경향을 보이며, 여성에게도 인간성이 존재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나타나는 것일까? 드워킨은 이 지점에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 을 인용하며, 소년들이 성장 과정에서 "상처입고, 지배당하고, 힘없고, 보호할 수 없는" 여성과 "상처입히고, 지배하고, 힘있고, 보호할 수 있는" 남성을 발견하게 되고, 약한 여성이 아니라 강한 남성이 되는 길을 택하려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그가 여성의 삶의 고통과 운명에 귀를 막음으로써 강간범, 구타범, 약탈자, 살인자들과 같은 편에 서야 한다는 것. "무서운 남성" 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서 자기 자신이 그 무서운 남성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드워킨은 거의 모든 남성들이 폭력을 숭상하고 폭력에 충성한다고 비관한다. 설령 일부 폭력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드워킨은 이들에 대해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폭력에는 반대할지 몰라도, 유독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에는 무감각하기 때문. 예컨대 아우슈비츠와 같은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스러워하지 않는 남성들은 거의 없지만, 고문실이나 지하감옥, 수용소 콘셉트의 포르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남성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으며 제작되며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남성중심적 문화 속에서 무법자들은 경찰만큼이나 영웅적이다. 남성들이 폭력에 반대하거나 옹호하는 기준은 단지 "내가 그것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가, 얼마나 참을 수 있는가" 일 뿐이라고 한다. 남성들은 자신이 자신 있는 폭력이라면 타인의 몸과 마음을 유린하는 것에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남성들이라 할지라도 성인 남성으로부터의 성적 학대에서 예외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 남성이 낮은 사회적 지위를 점유하거나 연령이 어리거나, 가난하거나, 유색인종이라면 더욱 그렇다. 저자가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를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할 때 남성 간 성적 학대를 들어 반론하려 드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남성 피해자의 존재를 강조할수록 여성 피해자의 학대범죄는 남성의 정상성(normativity)의 표출로 여겨지게 되며, "남성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여성은 딱히 보호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는 사회적 전제를 깔고 있다. 심지어 남성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일부 남성들은 실제로 여성 피해자를 늘리는 방법을 진지하게 제시하기도 했다고.[7] 그리고 남성 피해자의 존재는 가부장제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여러 조치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피해자 소년에게 "다들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야" 라고 둘러대거나, 친족 간 성추행에서도 남성 간에는 범죄가 잘 발생하지 않거나, 형무소 내 계간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형무소 밖 사회의 진정으로 심각한 성범죄 문제는 쉬쉬하거나 하는 것이 그 사례라고 한다.

저자가 보기에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여성성으로 인해 오염된) 자신의 자기를 극복하고 더욱 남자다워지려는 시도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 "남성들의 영역에 여성은 굴욕적인 자세로 기어들어가지만, 그 모습조차도 남성에게는 격렬하게 위협적이다" 라고 하였다. 일부 남성들은 자신이 유년기에 어머니보모에게 의존했던 것조차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문제는 남성은 여성을 물건 취급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은 물건이 아니기에 남성이 기대하는 물건의 이미지에서 항상 조금씩 일탈한다는 것. 그 모습을 봤으면 남성들은 알아서 "아, 여자들은 물건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이구나" 라고 여겨야 되는데, 오히려 "모든 여자들은 조금이라도 풀어놓으면 금세 남자를 잡아먹을 것들이야" 라고 믿게 된다고 한다. 이를 통해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지배가 시급하고 긴요하다고 인식하게 되며, 남성이 인식하는 남성 자신은 여성 앞에서 도리어 한없이 연약하고 상처입기 쉬운 존재가 된다.

현대사회 들어서 가치와 덕목이 불확실해진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남성들은 스스로를 위한 위로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부터 찾고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자기의 붕괴와 인류의 절멸로부터 남자다운 자신을 '구원' 해 줄 유일한 피난처는 여성을 지배하는 남성의 우월한 모습이다. 그리고 남성들은 그런 우월감을 포르노를 통해서 대리만족한다. 포르노야말로 남성 권력의 불변성과 영구성, 무한함을 전심으로 추앙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포르노가 보여주는 것은 사물이 된 여성이 아니라, 사물을 필요로 하는 남성의 모습이라는 저자의 결론이 여기서 나왔다.

저자가 보기에는, 뭇 남성 문인들과 남성 사상가들이 그렇게나 사드 후작의 인생에 대해 실드를 치고 어떻게든 미화하려고 드는 이유 역시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현대의 가장 지독한 포르노마저 자신의 삶을 통해 그대로 실현할 수 있었던 능덕(?)인 사드 후작은, 조지 바타유, 도널드 토머스, 리차드 시버, 오스트린 웨인하우스, 노먼 기어, 장 폴랑, 호버트 라이런드, 로널드 헤이먼, 안젤라 카터, 롤랑 바르트 등의 논객들과 전기 작가들에 의해서 정성 어린 변호를 받아 왔다. 사드의 행적에 조금이라도 옹호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곧바로 결론으로 도약하고, 옹호하기 힘든 지점에서는 교묘하게 그 중요성을 격하시키거나 엉뚱한 비유를 들어서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는 것.[8] 또한 사드의 비행을 막으려 들었던 그의 장모에 대해서도, 사실은 그녀가 사드에게 색정을 품었지만 이것이 좌절되자 질투에 불탔기 때문이라고 여론을 몰아갔다고 한다. 사드의 무절제한 성생활은 이들에 의해 이름도 그럴싸한 '프리 섹스' 로 치장되었다. 그 '프리함' 은 사드를 상대하는 여성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드워킨에 따르면 이들은 사드를 마치 "금욕주의자들에 의해 부당하게 박해 받았던 자유로운 영혼의 천재"처럼 묘사하고 낭만시하며, 자신의 저서들을 읽게 될 남성들을 향하여 "사드 후작은 당신이 범하고 싶었던 모든 성적인 죄를 대신하여 죽은 것이다" 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사드는 결국 성적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게 아니라, 성적 폭력성 덕분에 영향력을 끼치는 셈이다. 드워킨은 "어떤 여성의 인생도 사드의 그것만큼 숭배받고,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영광스럽게 표현된 적이 없었다" 고 한탄했으며, 동료 페미니스트 로빈 모건의 경우 여기에 더해 "어떤 여성의 범죄도 사드의 그것만큼 정당화되고, 변명되고, 양해를 받고, 낭만시되고, 매력 넘치는 의미를 부여받은 적이 없었다" 고 덧붙였다.

4.4. 여성의 성적 대상화

"통나무로 상정된 여자는 대상 · 사물로, 존재하는 것을 보거나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객관적일 수 없고, 객관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통나무는 인식할 수 없다. 통나무는 통나무의 본성을 지니는 것으로 상정한다. 굴려지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통나무는, 자신의 본성과 입장을 모르는 통나무다. 굴려지는 것에 저항하는 통나무는, 정의상 통나무가 아니다. 통나무가 되기를 저항하는 여자는, 정의상 여자가 아니다."

- p.181

드워킨에 따르면, 남성에 의해 성적 대상화된 모든 여성은 사실상 그 남성의 방에 있는 오나홀 내지 더치 와이프와도 다를 것이 없다. 저자는 여성의 몸이 남성의 재산으로 취급받으며, 그 재산은 "" 로서 환원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재산이 소유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남성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서일 뿐이다. 따라서 아내들은 남편과의 섹스에 (본인이 어떻게 느끼건) 언제든 참여할 '의무' 가 있으며, 아내의 몸을 관리하는 주체가 남편이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에게 주먹질을 하든 따귀를 때리든 문제될 것이 없어진다. 그저 '남의 집 가정사' 일 뿐인 것이다.

드워킨이 인용했던 독일의 정신분석가 오토 바이닝거(O.Weininger)는 일찍이 《성과 성격》 에서 "남자는 자신의 성기를 소유한다. 여자는 성기가 여자를 소유한다" 는 말을 남겼던 적이 있다. 바이닝거는 여성의 삶이 남성이 사용해 줄 것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성기로서의 의미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마지막 금기》 의 저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제임스 브레인(J.L.Brain) 역시 "여성의 육체는 남성을 상시 유혹해 강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고 주장했으며, 한 술 더 떠서 노먼 메일러(N.Mailer)라는 사람은 "우리 남자들에게는, 여자의 얼굴보다 그들의 이 언제나 더욱 가깝다" 고까지 했다. 여성은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라는 것이다. 남성들은 여성에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역량에 대한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세상의 어느 더치 와이프가 아는 능력이나 인식하는 능력을 갖고 있던가? 세상의 어느 오나홀이 "오늘은 싫습니다" 라고 말하며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던가?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이 이 모양이라는 게 드워킨의 주장이다.

여기서 드워킨은 대상화에 대해서 "필연적 발기를 일으키는 타인의 형태에 대한 고정된 반응" 이라고 정의한다. 대상화된 여성은 남성들에게 발기를 일으켜야 할 막중한 시대적 사명(?)이 있으므로, 그들의 가치는 이상적 아름다움이라는 미명으로 가장되며, 아름다움만이 여성의 사물로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기준이라고 선전된다. 드워킨에 따르면 여성의 신비화된 아름다움은 그들의 지성에 의해 위협받게 되며, 이는 곧 처벌의 형태로 되돌아온다. 따라서 여성은 백치일수록 바람직하다. 그리고 남성들은 여러 여성들을 바라보면서 저마다 다른 수준의 성적 자극을 경험하고, 그 아름다움의 개인차에 따라서 여성들을 '진짜 여성' 과 '가짜 여성' 으로 품평(?)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진짜 여성' 으로 분류된, 완벽하게 대상화된 최상의 사물로서의 여성들은 포르노 속에 모여서 아우성치고 있다. 따라서 포르노 속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서사가 없다. 단지 그 순간 독자/시청자들을 만족스럽게 발기시켜 줄 '물건' 일 뿐.

다음으로 드워킨이 주목하는 현상은 바로 페티시(fetish), 즉 물신화이다. 이 역시 발기된 페니스의 권력을 명시하며, 여성의 생식기 이외에 유사한 방식으로 페니스의 발기를 이끄는 힘을 갖는다. 특히 다수가 공유하는 페티시는 실제로 여성들의 현실의 패션을 결정하기도 하며, 여성들은 이를 적절히 활용하여 남성을 매료시킬 것을 요구받는다. 저자가 든 예시로는 서구사회의 굽 높은 하이힐이나 전근대 중국의 전족 문화가 있다.[9]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이런 페티시적 요소들로 철저하게 무장(?)하고 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셈.

4.5. 강간 신화: 가정된 매저키즘과 매춘부로서의 여성

"여자는 포르노가 폭로하고 확인한 것을 감추고 부정한다. 포르노가 폭로한 것은, 여자가 그것을 원하고 여자들은 모두 그것을 원한다고 하는 것이다. 남자는 명명의 권력을 지니고 있고, 포르노에서 그 권력을 행사하고, 여자를 음란한 존재로 명한다. 외설스럽고, 방종하고, 철면피하고, 언제나 간청하는ㅡ자신의 본성대로 사용하여 달라고 구걸하고 요구하는[10]ㅡ매춘부가 바로 여자다. 수 세기 동안 포르노를 입수하지 못했던 여자들, 오늘날 슈퍼마켓의 진열대 위에 놓인 오물을 바라보고 참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은 놀란다. 포르노가 여자에 대해 말하는 것을 남자들이 믿는다는 것을 여자들은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남자들은 현실적으로 믿는다. 최악의 남자에서 최상의 남자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은 그렇게 믿는다...

...남자들은 그것을 믿는다. 남자들은 우리들 여자가 그들의 성 제도의 공포를 직시하지 못하여,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남자들은 그들이 묘사한 매춘부로서의 우리들의 상(像)이 우리들을 낙담시키고, 심장을 멈추게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남자들은 남자의 페니스와 주먹과 나이프와 성교와 강간이 우리들을, 그들이 우리들의 본성이라고 하는ㅡ섹스로 존재하는 맹종적인 여자, 포르노에서 묘사하는 탐욕스런 컨트(cunt)들, 진정으로 조금만 더 원하기 때문에 저항하는 매저키스틱한 음란녀ㅡ것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남자들은 확신한다. 남자들은 틀렸다."

- pp.256; 331

드워킨이 보기에 남성들은 여성들의 속마음에 대해서 뭔가 한참 잘못 짚고 있다. 특히 그것이 성적인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강간 신화(rape myth)라고 흔히 정리될 수 있는 이 잘못된 통념은 남성들이 여성을 학대할 때에조차 여성에 대해 "이들은 이런 것을 원할 거야, 이들의 가학성은 지금 내가 하는 것에 비하면 댈 것도 아니야. 그러니 지금도 속으로는 쾌락을 원하지만 그냥 내숭을 떨고 있는 것에 불과해" 라고 생각하는 경향으로 풀어 설명할 수 있다. 여성들이 갖고 있는 야성적 색욕에 대한 거짓 믿음은, 남성들이 나서서 그 욕정을 통제하고 억제시키지 않으면 자신의 남성성이 도리어 거세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준다. 또한, 강간조차도 여성들의 숨겨진(?) 본성을 만족시키거나 적어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계기일 뿐이기에 상대방 여성이 '희생자' 가 될 수 없다고 여기게 한다. 드워킨에 따르면 이는 특히 유색인종 여성들일 경우 더욱 심하다.[11]

이런 시각은 여성의 본성에 대해 성녀-창녀 이분법, 즉 성적 복종자(성모) 대 성적 도발자(창녀)의 사뭇 다른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는 한 동전의 양면처럼 여겨지지만 현실에서는 잘 구분되지 않는데, 드워킨은 이것이 마치 모래시계 속 모래의 양의 상대적 차이와도 같다고 하였다. 어쨌거나 이러한 "겉보기에는 얌전하고 참한 처자, 실상은 밤마다 엉망이 되도록 쾌락을 탐닉하는 창녀 본성" 이라는 낮져밤이? 이미지는 마침내 여성들에 대한 가정된 매저키즘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여자들은 침대 위에서 "결정적일 때 내숭을 떨어서 약간의 도발을 하게 마련이고, 마침내 안달이 난 남성이 더 강한 힘으로 자신을 야수처럼 철저하게 제압시키는 것을 좋아할 것" 이라는 거짓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섹스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여성들은 잠자리에서 자신이 고통받는 쪽을 '선택' 했을 뿐이고, 그 고통을 '좋아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간조차도 마찬가지다. 그 여성은 남성을 유혹한 것이고, 곧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이고, 곧 자신의 매춘부로서의 욕망을 '선택' 한 여성이 되는 것이다.

드워킨이 염려하는 것은, 남성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포르노를 무수히 많이 소비해 왔기 때문에, 그런 강간과 구타가 여성의 의지의 침해가 아닌 여성의 의지의 실현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포르노를 통해 여성을 배우고 섹스를 배우며, 포르노는 "여성들이 가르쳐 주지 않는 '감추어진' 성적인 진리" 라고 믿는다.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더라도, 이 상황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진실은 포르노에 있거나 실제 여성들의 목소리에 있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남성들은 언제나 포르노만을 진실로서 간주하고 여성들의 목소리는 듣기 싫어함으로써 합리적인 사고에 실패한다. 남성들에게 포르노는 여성의 속내를 '폭로' 하는 내부고발(?)이 되고, 여성의 목소리는 그 폭로된 실체를 뒤늦게 숨기기에 급급한 꼴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여성의 저항은 언제나 "좋아, 더 해 줘" 의 반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해되고, 그것이 진심으로 끔찍하게 싫어하는 반응일 거라고는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한다.

물론 드워킨 역시 강간 신화가 날것 그대로는 대중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몇몇 사건들, 특히 가정 내에서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근친상간에서는 종종 돌연히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 범죄자들은 강간 신화를 통해서 "인륜을 저버리는 짓이기에 나도 자제시키려 했지만, 자기가 먼저 좋다고 했소, 날 유혹했단 말이오!" 라는 식으로 스스로의 범죄를 정당화하고, 상대방의 모든 반응을 즐기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범죄를 수사하는 당국의 수사관들도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어디 팔다리라도 부러지지 않은 한, 그들의 반응은 저항이 아니라는 식이다. 피해자는 만지작거리는 '터치' 까지도 꺼리지만, 이들은 피해자가 두들겨맞지 않았다면 어쨌거나 괜찮다는 식이다. 피해자의 저항은 으레 커플 간에 벌어지곤 하는 "밀고 당김" 의 일부일 거라고 여겨지며, 마침내 남성이 삽입하고야 말았을 때에 그 여성은 그 남성에게 앞으로도 영원히 섹스를 허용했다고 간주된다.

포르노는 상기 강간 신화를 확고히 하는 데 일익을 감당하고 있다. 본디 포르노(pornography)라는 말은 porno + graphy 로 나누어지며, 여기서 porno는 그 어원상 가장 비천하고 낮은 신분의 매춘부를 의미하는데, 남성의 지배 질서 속에서 포르노는 실제로 현실을 그렇게 규정한다. 그리고 그 현실을 진실이라고 믿은 남성들은 "포르노에서는 다들 좋아하던데? 그러니까 너도 이걸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라는 헛다리를 짚게 된다. 대중화되고 보편화된 포르노 산업은 더욱 많은 '천한 매춘부' 들이 자신에게 벌을 주고 범해 달라고 애걸하는 영상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남성이 "나는 여자가 필요해" 라고 말할 때 그의 말은 "나는 포르노가 필요해" 와도 거의 같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드워킨의 생각이다.

여성의 본질은 본디 매춘에 있다는 남성지배적 질서, 그리고 그 강간 신화는 남성들로 하여금 강간과 매춘, 학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여성들의 시선을 오히려 황당무계하고 불가해한 것으로 이해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심지어 여성의 모성성과 출산조차도 매춘부적인 맥락에서 해석됨을 주장한다. 드워킨이 사례를 들어 보이고 있는 '임산부 포르노' 에서는 임신한 배 자체가 이미 페티시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런 장르의 포르노에서 임신은 모성의 숭고함이 아니라 "이 여자에게도 질이 있답니다!" 를 보여주는 증거물이 되며, 임산부는 결과적으로 조금 더 특별할 뿐인 성적 물체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은 그녀가 남성에게 이미 사용당했음을 드러내는 장치이며, 그 여성에 대한 남근의 승리를 표상하는 상징물과도 같다는 것이다.

드워킨은 곧이어,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던 제왕절개 수술 역시 성적인 의미가 짙게 배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제왕절개 시술이 산모와 자녀에게 꼭 필요할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구태여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하지만 남편 분을 위해서라면 제왕절개를..." 하면서 강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드워킨이 보기에, 이는 (남편을 위해 매춘부로서의 소임을 다해야 할) 아내의 질을 처녀 상태로 보존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 시술 과정은 포르노의 그것과도 유사하다. 산모는 포르노가 묘사하던 바로 그 자세로 수술대 위에 '포박' 되고, (그 자체로 페니스를 상징하는) 메스를 들어 직접 자궁을 범하게 되는 과정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들은, 적어도 드워킨의 관점에서는, 우리 사회에 포르노가 한껏 부추긴 성적 대상화로 인해 빚어진 재앙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남성들은 자기들만의 확신을 갖고 여성들에게 매춘부로서의 본질(?)을 일깨우고자 애쓰고 있다.

5. 출간 이후: 포르노를 규제해야 할까?

상단에 서술했던 것처럼 드워킨이 전력을 다해 준비하고 있던 것은 포르노를 규제함을 골자로 하는 Dworkin-MacKinnon Law를 관철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고등법원 및 대법원의 판단은 드워킨의 조례에 부정적이었다. 이들에 따르면, "표현물에 나타난 특정 관점을 근거로 하여 표현물을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침해" 이며, "여성을 대하는 시각을 특정한 한 방향으로만 강제한다는 점에서 사상의 자유의 침해" 이기도 하고, 설령 포르노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실로 미국스러운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드워킨은 수정헌법 1조에 대해 "자신의 규제론은 수정헌법 1조가 보호할 대상임을 부정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문제는 그것이 포르노의 출판의 자유를 허용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수정헌법 1조가 여성들을 제대로 보호하는가이다" 라고 말했다.

법적인 시도는 무산되었지만 페미니즘 내부에서는 포르노를 검열하는 게 정말로 페미니즘의 정신에 비추어 온당한 것인가의 문제로 격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포르노 검열에 반대하는 일군의 성긍정론(sex-positive)의 페미니스트들은 FACT(Feminist Anti-Cencership Taskforce)라는 단체를 결성했고, 드워킨을 따르면서 포르노 검열을 주장하는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WAP(Women Against Pornography)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맞섰다. 굳이 따지자면 규제론자들 중에서 유명세는 맥키넌이 더 큰 듯했지만 급진성은 드워킨이 한 수 위여서, 맥키넌은 '에로티카'(erotica)라는 개념을 통해 여성을 억압하지 않는 성적 표현물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드워킨은 그것에 대해서 "고급진 지식인들 취향을 위해 더 그럴싸하게 포장한 포르노일 뿐이며, 포르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선별하여 에로티카로 예외 취급하는 건 지식인들의 나쁜 버릇이다" 라고 하였다. 어쨌거나 이런 사상적 대립은 성노동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등의 이견까지 겹치면서 심지어 "섹스 전쟁"(Sex Wars)이라고까지 불릴 만큼 격화되었다.[12]
당연히 Dworkin-MacKinnon Law의 추진에 있어서도 양쪽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양쪽의 이름을 꼽을 만한 거두들을 한 명씩 유명 어록과 함께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는 여성에게 '빅 시스터' 는 빅 브라더만큼이나 환영받지 못한다."

- 네이딘 스트로센(N.Strossen), 성긍정론자이자 여성 법학자
"수정헌법 1조의 이름으로 보장되는 남성들만의 이익과 쾌락에 반대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여성들의 몸뚱아리가 쌓여야 한다는 말인가?"

- 캐서린 맥키넌, 포르노 검열론자이자 Dworkin-MacKinnon Law의 주창자

이러한 두 흐름은 아직까지 어느 한쪽이 무조건 옳고 다른 한쪽이 무조건 틀렸다는 식으로 평가를 하기에는 어렵다고 여겨진다. 우지숙(1999)[13]에 따르면, 양쪽 모두 저마다의 한계를 갖고 있는 입장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성긍정론자들은 여성의 자유에 대해 상당히 순진한 가정을 전제하고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한계를 보였던 반면, 규제론자들은 젠더 억압과 젠더 폭력에 지나치게 골몰한 나머지 그만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부적절하고 비현실적으로 다루고 말았다는 한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1992년에는 캐나다의 포르노 규제법 제정 당시 드워킨의 이 책이 참고물로 쓰이기도 했다는 낭설이 있다.

이후의 페미니즘의 흐름을 통해 볼 때, 박미선(2016)[14]은 성긍정론과 규제론 사이의 대립은 곧 인간 섹슈얼리티의 다양성과 소수자성, 그리고 퀴어함(queerness)에 대한 사유로 이어졌다고 하였다. 이러한 영향은 결과적으로 페미니즘 제2의 물결의 종언을 고하고, 차후 제3의 물결의 도래를 이끄는 단초가 되었다고도 평가되고 있다.

6. 평가

이하의 평가는 오롯이 책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책에 짙게 반영되어 있는 드워킨의 포르노에 대한 관점 그 자체에 대한 평가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남성들의 포르노 소비에 대한 심리학계의 리뷰를 원할 경우 Wright & Bae(2016)[15]를 참고할 수 있다.

6.1. 긍정적 평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작 안드레아 드워킨의 《포르노그래피-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 은 과소평가된 고전이다. 이 책은 '잠재적 가해=일상적 폭력'의 내용과 구조, 역사를 파헤친다. 서양사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제2의 성》 에 비견할 만하다. 내가 처음 여성학을 공부할 때 외워버린 책이다."

- 정희진 #한겨레칼럼: [정희진의 어떤 메모] 잠재적 가해자?

이 책이 있기 전까지 기존의 포르노 담론은 도덕적이냐 부도덕하냐의 관점에서 논의되었다. 이 기준에서 보수주의적 접근과 자유주의적 접근의 두 가지가 제시되어서 형법 체계의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 그런데, 조국(2003)[16]에 따르면, 드워킨은 여기에 젠더 권력과 여성의 예속을 논하는 정치의 영역으로 담론을 끌고 들어갔다. 즉, 포르노를 판단함에 있어서 기존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여성계의 시각을 새로이 전면 반영했다는 의의가 있다.

많은 포르노 규제론자들은 포르노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범죄를 부추긴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실제로 위에서 몇 차례 언급했던 페미니스트인 로빈 모건의 경우, "포르노가 이론이라면, 강간은 그 실천이다" 라고까지 하였다. 게다가 당시 미국 사회를 고려할 필요도 있는데, 당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스너프 필름(snuff film)에 대한 온갖 무시무시한 이야기[17]들은 여성에 대한 실제적인 위해와 생명의 위협을 명백히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실제로 아동 성범죄나 스너프 필름 같은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어지간한 논자들, 특히 표현의 자유를 들어 규제론에 반대하는 논자들까지도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할 정도였다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규제론자들의 논변을 시의 적절하게 정리한 정수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

형사정책적으로 보아 이 책의 근간이 되는 드워킨과 맥키넌의 포르노에 대한 관점은 실제로 도움이 되기도 함이 확인되었다. 예컨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수행된 Lindgren(1993)의 연구에 따르면[18] 기존에 성범죄 여부를 판별하던 검사인 "Miller Test" 에 비하여 Dworkin-MacKinnon Law에서 규정하는 각 항들이 훨씬 더 명시적이고 객관적인 판단기준을 제공함을 확인하였다. 기존의 체크리스트는 실제 성범죄 사례들을 활용하여 확인했을 때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자의적이라는 문제가 있었던 것.

국내의 유명한 자칭 평화학자 정희진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상동 출처) 'radical' 하다는 말은 급진적(急進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발본적(拔本的)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남성에게 육체를 지배당하고 있는 여성의 삶을 이해함에 있어서 드워킨의 사상을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래디컬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작가인 제사 크리스핀(J.Crispin)은 자신의 저서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Why I Am Not a Feminist)에서, 현대에 들어 힙한 라이프스타일(…)쯤으로 전락해 버린 슬랙티비즘적 백인여성주의(white feminism)에 대해 비판하며, 이런 '주류' 페미니스트들에게 "모든 남성은 전부 강간범" 이라고 주장한 안드레아 드워킨은 (특히나 베티 프리댄의 《여성의 신비》 에 비교한다면) 캐서린 맥키넌이나 밸러리 진 솔라나스만큼 불편한, 소위 "너무 나간" 논객으로 치부되고 말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6.2. 부정적 평가

"비록 현실 속의 남성들이 성불평등적 관점과 사고방식을 벗어나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포르노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성욕 충족에만 급급하고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여성을 강간하는 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로 고정화하는 것은 지나친 남성혐오주의다."

- 하주영(2004),[19] p.132

드워킨의 책을 읽으며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던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FACT 및 기타 성긍정론자들은 포르노를 검열하는 행위가 끼치는 악영향을 주로 문제삼았다. 가장 우선 언급할 만한 것은 드워킨이 하드코어 포르노만 관심을 가졌을 뿐, 소프트코어 포르노는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심영희(1994)[20]에 따르면, 성긍정론자들은 여성들(과 아마도 레즈비언들)이 섹슈얼리티의 실현을 위하여 즐겨 소비하는 여성향 로맨스 소설과 같은 소프트코어 포르노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데, 드워킨의 논리대로라면 이것조차 함께 검열되고 여성들은 섹슈얼리티에 제약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드워킨이 "여성은 언제나 성행위의 피해자일 뿐" 이라는 또 다른 종류의 고정관념을 심어주려 하고 있으며, 여성이 성적 주체로서 스스로의 섹슈얼리티를 탐험해 가고 개발하는 데 포르노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도 비판하였다.

《성·미디어·문화: 여성과 커뮤니케이션》 핸드북에서 정인숙(1994) 역시 이 관점에 입각하여 몇 가지 주요 비판들을 소개하였다. 예컨대, 남성은 언제나 음탕한 지배자이고, 여성은 언제나 무기력한 희생자라는 구도는 섹슈얼리티의 복잡성을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또한, 현재 확립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사실은 남성들에 의해 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이라면, 진정 여성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답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드워킨이나 맥키넌을 비롯한 소수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만이 판단의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안전어(safe word)를 배치하는 등, 성인들 간에 상호 합의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BDSM의 경우조차, 드워킨의 관점에서는 이것 역시 예외를 두지 않고 거부해야 한다는 이상한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

베티 프리댄을 비롯한 리버럴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이 관점의 "과격함" 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다. 예컨대, Tong(1998)[21]의 교과서에서 소개된 바에 따르면 "모든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하는 포르노 작가이고, 매춘 중개인이고, 성추행자이고, 강간범이고, 여성학대자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생산적인 남성 혐오증(man-hating)" 이라면서,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을 좋아하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남성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페미니즘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모성신화(myth of motherhood)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한 여성학자인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Badinter)는 자신의 저서 《잘못된 길》(Fausse Route)에서, 음란물과 남성의 성적 폭력 및 강간을 연결짓는 80-90년대의 페미니즘 조류가 남녀를 생물학적 본질주의의 관점에서 규정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드워킨의 시각이 극도로 보수주의적인 관점을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도 있다. 한 예로 질라 아이젠슈타인(Z.Eisenstein)은 《The Female Body and the Law》에서,[22] 드워킨의 규제론이 일차원적인 것으로서 심지어 "시스-헤테로규범적 젠더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포르노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보수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다" 고 비판했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인용한 바 있는 하주영(2004) 역시 규제론이 금욕주의적인 관점에 기초해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드워킨, 맥키넌 등 성부정 페미니스트들은 80년대 기독교 보수주의로 대변되는 트랜스포비아 카르텔에 협력했으며, 래디컬 페미니즘의 TERF 움직임은 상당 부분 보수주의 정권의 입맛에 부합한 측면이 있었다.(수잔 스트라이커의 <트랜스젠더의 역사> 참조)

드워킨을 비롯한 규제론자들의 주장, 즉 "포르노는 성범죄를 부추긴다" 는 주장 자체가 그다지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성·미디어·문화: 여성과 커뮤니케이션》 에 기고한 이은영(1994)은, 포르노를 허용한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와 비교할 때 종적으로 보나 횡적으로 보나 성범죄와의 명확한 관계가 드러나지 않거나 그 발생건수가 도리어 감소했음을 언급했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질라 아이젠슈타인의 경우, 포르노와 성범죄 간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Lindgren(1993)에 따르면 드워킨 본인의 소설 《얼음과 불》(Ice and Fire)이나 《자비》(Mercy) 역시 Dworkin-McKinnon Law의 기준에서 보면 몇몇 장면들이 조항에 걸려서 포르노에 속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상단에서 인용했던 성긍정론자 네이딘 스트로센의 저서 《Defending Pornography: Free speech, sex and the fight for women's rights》 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는 실제로 수사기관이 드워킨의 저작물들을 외설 혐의로 압수했던 적이 있었다고.

법학계에서는 에이미 애들러(A.Adler)가 "해석문제" 를 제기,[23] 에로티카와 포르노 사이의 구분이 엄격하지 않아 국가권력을 통한 검열이 남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우지숙(1999)은 매체를 매개로 하여 일어나는 행위와 매체 내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서로 구분되지 않고 있다고 드워킨을 비판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형법학자들은 드워킨과는 다소 다른 관점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들에 따르면 포르노는 남성의 본질적인 권력유지 수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존하는 남성권력을 단지 비추어 보이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표상론' 을 주장하는 로스 카워드(R.Coward)에 따르면, 포르노는 남성의 성적 본질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성적 체제(sexual regime)를 형성하는 것일 수 있으며, 남성의 여성종속 수단이 아니라 여성종속적 사회에 대한 메타포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심영희(1994)가 인용한 바 카워드에 따르면, 시내 광고판과 여성잡지에서 묘사되는 여성과 포르노에서 묘사되는 여성의 차이는 음부가 드러났는가 가려졌는가밖에 없다고 한다.

현대 형법학계는 포르노를 규제하거나 성범죄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으로서 이상의 여러 관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즉, 기존의 도덕/부도덕 기준에 따라 만들어지는 보수주의적 관점과 자유주의적 관점, 그리고 여성억압 구조를 반영하되 드워킨과 맥키넌을 따르는 규제론적 관점과 카워드를 따르는 표상론적 관점을 서로간에 비교 대조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쨌거나 이런 법적 사안들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결국 드워킨의 본서를 진지하게 읽어보고 그 논지를 수용하거나 비판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다시 말하면 드워킨이 놓친 포르노의 여러 속성들을 이해하려면 카워드의 표상론으로 반드시 보완하고 교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퀴어학계에서는 게일 루빈(G.Rubin)이 BDSM에 대한 규제론자들의 보수적 성 담론을 비판한 바 있었다. 박미선(2016)이 소개하는 《일탈: 게일 루빈 선집》(Deviations: A Gayle Rubin reader)에 따르면, 수많은 여성학대적 매체들 중에서 왜 하필 포르노만 규제 대상이 되는지, 왜 포르노만이 가장 강력한 정치적 쟁점이 되는지, 왜 규제론자들은 반대자들을 도덕적으로 몰아붙이며 인신공격을 하는지, 그들이 인간의 성적 다양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다시 말해서 왜 특정 성행위는 성적 비행이라고 낙인을 찍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 외에도, 페미니즘 예술가들 역시 드워킨의 관점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에 따르면, 포르노를 비판하기 위한 주요 예술적 방법론 중 하나가 그 포르노를 소통의 수단으로서 활용하는 것인데, 드워킨의 주장대로 포르노 자체를 전부 검열해 버리면 이런 접근방법을 더 이상 취할 수 없게 된다는 것.

[1] 보통 '드워킨'이라고 하는데, 자유주의 성향의 법학자 로널드 드워킨과 성이 같아서 혼동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법원리주의의 제창자로서 법철학이나 법학 원론 서적에서 자주 인용되는 드워킨은 A. R. 드워킨이 아니라 R. 드워킨이다.[2] 그런데 여기서, 수정안 본문에는 남성, 소년, 성전환자를 주제로 한 포르노 역시 이 정의에 포함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동문선 출판사의 유혜련 역에 따르면 그런 것은 포함될 수 없다고 정반대로 번역되었다.[3] 단, (적어도 국내 번역서의 경우) 야한 사진의 경우 사진 원본이 직접 첨부되어 있지는 않다.[4] 이 지점에서 세칭 미러링과 같은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이 나왔을 때 그것이 운동가들 사이에서 그럴싸하다고 여겨지게 될 수 있었다. 남성들의 이름붙이는 권력을 전복시키자는 이 움직임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언어의 의사소통적 기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의미를 도외시함으로써 여러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초래했다고 여겨진다.[5] 상기했던 바, 모든 종류의 남근삽입적 섹스가 이미 그 자체로 여성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당시 페미니즘 내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고려해 보자. 남성의 페니스가 여성의 의지에 반하여 여성을 임신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 원치 않는 여성에게까지 강제로 삽입하는 것이 가능한 기관이라는 것 역시 이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고 봐도 되겠다.[6] 논의를 확장시키면, 여성 홀로 나와서 자위행위를 하는 포르노가 있다고 할 때, 만일 이를 촬영하는 카메라가 그 장면을 '훔쳐보는 구도' 로 촬영하거나, 혹은 여성이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거나, 카메라를 향해 국부를 보여주려 애쓰는 모습이 있다면, 이것 역시 드워킨의 관점에서는 남성 권력이 작동하는 포르노로 분류될 수 있다.[7] 저자의 예를 들면, 어떤 논자들은 "형무소 계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감자들에게 충분한 수의 매춘부들을 공급하자" 고 주장한 적이 있다고 한다.[8] 저자의 예를 들면, 사드의 희생자들 중 "로즈 켈러" 학대 사건(a.k.a. 부활절 사건)의 경우 그 인물이 매춘과는 관계 없는 평범한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슈가 되었지만, 이들 옹호자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녀 역시 매춘부였을 게 뻔하다고 단언해 왔다고 한다.[9] 직감적으로 우리나라 현실에 와 닿는 예를 들자면, 특히 맨다리에 흰 와이셔츠 차림은 많은 남성들에게 페티시로서 공유되고 있으며,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의실종 패션으로 이미 정착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10] 이 지점에서 드워킨이 떠올린 포르노 속 여성들의 주요 대사를 좀 더 잘 와닿게 재현하자면, "오, 저는 창녀예요! 그러니까 저를 범해 주세요! 더 많이 벌해 주세요! 더 아프게 때려 줘요!" 정도이고(…), 남성들의 주요 대사는 "궁둥이를 대란 말이야 이 걸레야, 너도 그것을 원하잖아!" 정도이다(…). 사실 이 책에서 타깃으로 삼고 있는 포르노의 대부분이 이런 스토리다.[11] 유대인 여성들의 경우 성폭행을 소망하는 심리가, 멕시코인들의 경우 통제되지 않는 강렬한 성욕이 포르노에 자주 반영된다고 한다.[12] Tong, Rosemarie. Feminist Thought: A More Comprehensive Introduction (p. 48~52). Avalon Publishing. Kindle Edition.[13] 우지숙 (1999). 포르노그라피 규제에 대한 담론을 통해 본 사이버스페이스와 여성문제. 韓國言論學報, 44(1), 244-286.[14] 박미선 (2016). 섹슈얼리티 권력체계와 일탈의 성정치: 게일 루빈. 안과밖, 40, 211-229.[15] Wright, P. J. & Bae, S. (2016). Pornography and male socialization. In Y. J. Wong, & S. R. Wester (Eds.), APA Handbook of men and masculinities (pp.551-568.), American Psychology Association, Washington DC.[16] 조국 (2003). 음란물 또는 포르노그래피 소고, 서울대학교法學, 44(4), 141-162.[17] 1976년 영화 '스너프'는 실제 스너프 영상인 것처럼 마케팅을 펼쳐 스너프에 관한 도시전설을 부추겼다. 스너프에 대한 두려움은 안티 포르노 운동에 대한 감정적 동조를 부추긴 면이 있다.[18] Lindgren, J. (1993). Defining pornography, U. Pa. L. Rev., 141(4), 1153-1269.[19] 하주영 (2004). 어떤 환원주의: 맥킨넌의 그늘. 철학과 현실, 10, 130-140.[20] 심영희 (1994). 포르노의 법적 규제와 페미니즘. 한국여성학, 10(1), 120-180.[21] Tong, R. (1998). Feminist thought. Boulder, Colorado: Westview Press.[22] Eisenstein, Z. R. (1998). The female body and the law.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nia Press.[23] Adler, A. (1996). What's left? Hate speech, pornography, and the problem of artistic expression, Calif. L. Rev., 84, 1499-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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