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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23:45:30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colbgcolor=#DDD,#303234> 도서명 Against Our Will: Men, Women, and Rape(英)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韓)
발행일 1975년(원서)
2018년(역서)
저자 수전 브라운밀러
(Susan Brownmiller)
박소영 역
출판사 Simon & Schuster(원서)
도서출판 오월의봄(역서)[1]
ISBN 979118737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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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및 출간 배경2. 목차 및 주요 내용
2.1. 챕터별 내용 정리2.2. 강간이란?
2.2.1.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다2.2.2. 그것은 권력의 작용이다2.2.3. 전시 강간 설명하기2.2.4. 인종차별과 강간 : 리버럴들의 혼란2.2.5. "너도 즐겼잖아" : 정신분석학의 유산
2.3. 강간 대응법 : 협조 X 저항 O
3. 반응4. 남은 의문점5. 둘러보기

"강간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해 왔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 바로 강간이다."
- pp.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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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및 출간 배경

본서는 '페미니즘 역사상 최초로' 강간이라는 문제를 하나의 의제로 강조하고, 피해자 중심의 관점을 통해 접근함으로써 기존의 통념을 버릴 것을 촉구하는 책이다. 본서는 물론 페미니즘의 고전 중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페미니즘이니 뭐니 하는 것을 제쳐두더라도 성범죄 내지 사회적 문제로서의 강간이라는 테마 전반에 대한 큰 그림을 잡기 위해서는 한 번쯤 완독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뉴욕 공립 도서관은 본서를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100권의 책" 중의 하나로 선정했는데, 이 도서관은 저자가 본서의 저술을 위해서 3년 동안 거의 살다시피 했던 곳이기도 하다고.[2] 저자가 본서를 쓸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도서관에 '강간' 이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없어서 강간과 관련된 자료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본서의 저술 시점은 1975년으로, 저술기간인 1970년대 초엽의 미국 사회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3] 40~50년대의 보수주의적이고 금욕주의적인 분위기에서 탈피하여, 1960년대는 본격적으로 프리 섹스(free sex) 운동을 위시하여 사회 전반의 진보적 움직임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사회 고위층으로의 진출을 장려하는 리버럴 페미니즘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페미니스트들은 늘 '강한 여성' 에만 관심을 가졌지, '성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여성' 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4] 이때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섹슈얼리티는 만끽해야 할 대상이었지, 폭력의 한 종류는 아니었다.

페미니스트들이 성범죄라는 문제에 최초로 눈뜨게 된 것은 1970년 6월을 기점으로 보곤 한다. 월가의 남성들이 행인 여성들을 함부로 성희롱하고[5] 휘파람을 불거나 몸매를 평가하는 경향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 것이다. 페미니스트 칼라 제이(K.Jay)와 앨릭스 슐먼(A.K.Shulman)을 주축으로 하여, '추파의 날'(Ogle-In)이라고 이름붙은 시위가 열렸으며 이때 오히려 여성들이 남성에게 캣 콜링을 하는 소위 '미러링' 이 시도되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미러링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으며, 이와 유사한 활동에 대해 훗날 주디스 버틀러(J.Butler)가 젠더 수행의 패러디라고 일컬었던 적은 있다.)

1970년대 페미니즘은 리버럴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물론, 오늘날 국내의 주류를 차지하는 성 부정적(sex-negative) 페미니즘도 흐름을 따지자면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기원한 것이긴 하지만, 적어도 70년대 초반의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전히 섹슈얼리티에 대해 유화적인 성 긍정(sex-positive)의 관점을 취했다. 이들 역시 섹슈얼리티의 자유, 성 해방, 그리고 여성 혁명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내부에서는 뉴욕 시를 중심으로 강간 근절 운동이 나타나고 있었다. 1971년 1월 24일의 '강간 공론회'(Speakout on Rape), 4월 17일의 '강간 컨퍼런스'(Conference on Rape), 1974년 8월 25일의 '강간 및 성 학대 공론회'(Speakout on Rape and Sexual Abuse)가 바로 그것. 강간 근절 운동의 전개에는 뉴욕 급진 페미니스트(New York Radical Feminist) 단체와 전국 흑인 페미니스트 조직(National Black Feminist Organization)이 주축이 되었다.

본서의 저자인 수전 브라운밀러(S.Brownmiller)는 언론인이자 페미니즘 운동가 및 작가이다. 본서는 전형적인 고학력 중산층 백인 여성의 관점을 반영하여 쓰여진 책이며, 이러한 저자의 출신은 바로 그 점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의 방향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설명에 따르면, 저자는 코넬 대학교 수료 후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1968년에 뉴욕 급진 여성(New York Radical Women)에 가입하여 의식고양 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저자가 강간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1년이다. 그 이전까지는 '강간은 전부 피해자 책임' 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운동가 동료들 중 놀랄 만큼 많은 수가 강간 피해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서 공론회(speakout)를 개최했으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간 근절 운동을 시작했다고. 강간 근절에 관련된 저술 활동으로, 저자는 앨리샤 패터슨 재단(Alicia Patterson Foundation)의 언론 펠로우십을 1973년에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저자의 저술동기에 대해서는 '범죄학자거나 혹은 강간 피해자겠지' 라며 지레짐작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저자가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하면 '그럼 대체 왜 강간 따위에 관심을 갖느냐' 면서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본서의 글쓰기는 어렵지는 않지만 종종 수사적인 글쓰기가 나타난다. 예컨대, 자신의 논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떤 의미심장한 자료를 보여주되, 그 해석을 직접 명시하지는 않고 생략함으로써 독자들이 알아서 자신의 결론에까지 잘 따라오라는 방식이다. 그리고 1970년대 미국 사회에서 리버럴들이 인종차별 문제를 어떤 도덕적 프레임으로 규정하고 담론을 주도했는지 잘 모른다면, 저자가 인종 간 강간에 대해서 어떤 논쟁적인 주장을 펼쳤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유명한데다 중요하고 오래 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한동안 번역되지 않았으나, 2018년에 이르러서 페미니즘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비로소 번역되었으며 소설가 장정일 씨가 서평을 남기기도 했다. #서평 역자의 글로 미루어 보면 본서의 제목을 '우리의 의사에 반하여' 라고 할 생각도 있었던 모양. 전체 페이지 수가 696장에 달할 만큼 상당히 두꺼운 책이다.

2. 목차 및 주요 내용


책의 전체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1. 챕터별 내용 정리

각 챕터의 내용들을 각각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하단에 간략히 정리할 것이다. 먼저 강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본서에서 제시하는 바를 설명할 것이다. 특히, 권력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강간, 전시 강간, 인종 간 강간의 유형을 확인하고, 강간 사건에서 피해자도 그것을 원했을 거라는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 정신분석학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본서에서 제시하는 강간에 저항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2.2. 강간이란?

"인간의 성행위는 종을 재생산하는 역사적 목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으며 약간의 친밀함과 쾌락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성행위 과정에 아무런 불만도 없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 구조로 인해 강제 삽입 행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이 단 하나의 요인이 남성 강간 이데올로기를 창조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강간은 남성의 특권일 뿐만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게 힘을 과시하는 기본 무기이자 여성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며 남성의 의지를 관철하는 주요 동인이 되었다. 여성이 온몸으로 저항하고 싸우는데도 그 몸에 강제로 삽입하는 일은 여성의 존재를 지배했다고 선언하는 수단, 즉 힘의 우위와 남자다움의 승리를 증명하는 궁극의 수단이 되었다."
- pp.24; 25

본서는 강간에 대해서 먼저 남녀 생식기의 해부학적 구조를 살펴보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저자가 보기에, 여성의 몸에 존재하는 '구멍' 속으로 남성의 몸에 존재하는 신체부위 일부를 "밀어넣는" 방식의 생식 메커니즘은 처음부터 강간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는 여성의 신체 '내부', 여성의 개인적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반드시 그 여성의 동의가 필요한 방식이었다. 문제는, 반드시 동의가 있어야만 그 '구멍' 이 열리는 것은 아닌지라, 때로는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바로 이 상황에 대해 저자는 강간이라고 말한다. 즉, 강간이란 곧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강제로 성적으로 침입하는 일이자, 사적이고 개인적인 내부 공간을 동의 없이 침입당하는 일이다"(p.589).

문제는, 동의 없이 다짜고짜 밀어넣는 상황에서, 여성 쪽에서는 이를 막거나 혹은 복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여성은 남성이 강간을 시도하면 걷어차거나 돌을 던지거나 물어뜯는 등으로 저항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도 남성에게 똑같이 강간으로 되갚아 주는 건 불가능했다. 백번 양보해서 남성에게는 침입당할 '뒷구멍'(…)이 존재한다 쳐도, 여성에게는 남성에게 침입해 들어갈 크고 아름다운 굵고 단단한 무언가가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바로 이 생물학적 비대칭이 모든 화의 시작이었다. 남성들은 페니스를 보복의 염려가 없는 무기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 했다. 그래서 "남자들은 강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렇게 했다"(p.24).

저자는 강간에 대해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우선, 강간은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여성이 남성들의 '재산' 이라는 성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가하는 압력으로 존재한다. 9장에서 저자는 인류학적 연구 성과들을 들어,[6]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거나 남성의 소유물로서 존재하는 역할로부터 일탈하거나, 그 역할에 저항할 때 형벌로서 윤간이 자행된다고 하였다. 이들뿐만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서 악명을 떨쳤던 시지스몬도 말라테스타(S.P.Malatesta)나, 18세기 런던에서 활개치던 상류층 깡패 무리인 '모호크'(The Mohocks) 및 '볼드 벅스'(The Bold Bucks) 등이 12~13세의 소녀들을 백주대낮의 길거리에서 마음 놓고 붙잡아 마구 윤간했지만(…) 그들의 권력 때문에 처벌하지 못했던 것 역시 서구 문명사회의 사례라고 한다. 강간이란 단순히 욕구불만의 해소 수단이 아니라, 여성을 남성이 마음대로 굴려댈 수 있는 위치로 확정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여성이 강간당할 때 누군가 기분 나빠하는 남성이 존재했다. 미혼의 여성의 경우는 피해자의 아버지가, 기혼의 여성의 경우는 피해자의 남편이 바로 그들이었다. 따라서 남성들은 한편으로는 강간을 문제시하고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을 강간으로부터 막아줄 사회적 제도를 만들었고, 저자에 따르면 바로 이것이 오늘날 존재하는 가부장제의 기원이다. 즉, 먼저 강간이 있었고, 이로 인해 가부장제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름만 그럴싸한 보호였다. 여성에게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고 전제하고, 여성을 아버지 혹은 남편의 재산으로 만들어 버리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즉, 미혼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처녀성 절도로서 공정가격을 치르지 않고 가부장의 딸을 도용하는 죄"(p.31)요, 기혼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그 남편의 배타적인 섹슈얼리티 독점 권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재산권 침해를 저지르는 죄였다. 저자는 이것을 강간에 대한 남성의 관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9장에서 '강간 영웅' 이라는 표현을 통해, 현대의 미디어가 강간을 미화함으로써 강간 범죄를 영속화한다고 비판한다. 대중매체는 강간을 우스개처럼 가볍게 다루며,[7] 강간의 참혹함을 진지하게 다루는 사례는 그저 남성이 남성에게 복수하는 상황에서 복수귀의 동기에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경우로 한정된다고 한다.[8] 이에 대해 영화계에서는 늘 "관객들은 강간을 보고 싶어한다, 우리도 어쩔 수 없다" 고 항변하지만, 저자의 관점에서는 대중매체는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반영하기보다는, 대중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를 정해주는 것에 가깝다. 강간에 대해 설령 비판이 이루어지더라도, 미디어는 강간에 대한 찬미가 마치 농담처럼 들릴 만한 여지를 남겨놓아서 빠져나간다고 한다.[9] 미디어에 대한 이와 같은 저자의 관점은 훗날의 문화적 페미니즘(cultural feminism)의 느낌도 풍기고 있다.

저자는 또한 11장에서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사관들은 강간 피해자가 신고를 했을 경우 "누가 당신 같은 여자를 덮친다고?" 라며 비웃거나(…), 심지어 저자가 입수한 증언 중에는 경찰에게 책 잡히지 않도록 기껏 조리 있게 또박또박 증언했더니 "당신 사회학자냐?" 라는 밑도끝도 없는 질문도 나왔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피해자가 백인 소녀일 경우, 남편을 동반했을 경우, 사회적 지위가 높은 전문직일 경우에는 이런 적대적 태도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저자는 경찰이야말로 법의 집행에 필요한 전문지식으로 무장해야 하건만, 유독 강간죄에 있어서만큼은 비전문적인 일반인 남성들과 다르지 않은 몰이해를 보인다고 비판한다.

일찍이 17세기 법학자 매슈 헤일(M.Hale)은 "강간은 고발하기 쉽고 입증하기 어려우며, 피고가 아무리 결백할지라도 변호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고 했으며 이는 강간 범죄에 대한 대명제처럼 추앙되어 왔다. 그러나 카미유 르그랑(C.E.LeGrand)의 논문에 따르면,[10] 오히려 고발이 가장 어렵고 변호가 가장 쉬운 범죄가 바로 강간이다. 다른 논문에 따르면,[11] 수사당국은 백인 피해자, 즉각적인 신고, 낯선 사람, 낯선 장소, 무기의 사용, 비명, 능동적 폭력이 충족되는 강간 사례가 아니면 강간으로 간주하지조차 않는다고 하며, 심지어 자신의 신고가 허위라고 기각된다는 사실조차 대부분의 신고자들이 고지 받지 못한다고. 수사당국은 강간 피해 신고 여성이 대부분 돈을 받지 못한 성매매 여성일 거라고 웃어넘기지만, 실제로 브렌다 브라운(B.A.Brown)이 멤피스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의 신고 비율은 전체 신고 비율의 1.02%에 불과했으며, 뉴욕 시의 성범죄 전담반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강간 신고 중 2%만이 허위 신고였다고 하였다. 이는 다른 종류의 중범죄들의 허위 신고율과 유사한 것이다.

법정에서도 피해자들의 여건은 녹록지 않아서, 피해자가 아동일 경우 가능한 한 유아적이고 순진무구한 옷을 입고 법정에 출두해야 의제강간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법정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모든 성관계 이력에 대해 전부 증언해야 했고, 여성 쪽의 문란함에 대해서는 들춰대면서도 남성의 문란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묻지 않았다. 또한 저자도 지적하듯이, 배심원 제도는 강간 가해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제도이다. 실제로 모든 형사사건 중 피고가 배심재판을 가장 선호하는 유형의 사건은 강간 사건이며, 이는 배심원들이 강간 신화를 신봉하는 일반 시민이라는 것을 가해자들 본인부터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법학 도서에 따르면,[12] 전체 106건의 강간 사건 중 폭력이 없는 42건에 대해 판사들은 22건을 유죄로 판단했지만, 배심원단은 단 3건만을 유죄로 판단했다고 한다. 특히 배심원단은 여성 원고의 사생활을 가혹하게 조사하고, 피고에게 관대하게 판단하며, 형사소송에서 통하지 않는 '자발적 위험감수' 같은 개념들을 변칙적으로 적용해 왔다고.

많은 법정에서 피해자에게 흔히 묻는 것이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 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중범죄 사례에서는 묻지 않는 질문이다. 저자는 마치 강도 피해자가 강도에게 저항하지 않았다고 해서 강도질에 동의한 것이 아니듯, 강간 역시 무저항이 동의라고 간주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는 상당히 대조적인 태도인데, 대개 강도에 있어서는 "저항하지 말고 협상하라" 고 조언하는 반면, 강간에 있어서는 "협상하지 말고 저항하라" 고 조언하는 이중적인 메시지이기 때문.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는 굳이 본서에게 묻지 않더라도 명백하다. 어떤 성적인 결합 행위는 서로 정말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602페이지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바로 여기에 맹점이 있다. 즉, 현대의 법은 남성의 관점만을 반영한 결과, 서로 정말 원해서 이루어진 결합 행위와, 강요를 통해 성적으로 공격하는 범죄 행위를 서로 '구분하지 못한다' 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 결과, 섹스와 강간을 구분하는 기준으로서 "남성이 강요했는가?" 를 질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여성이 저항했는가?" 를 잘못 질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남성의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섹스 방식은 원래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잘못 믿는 세태가 존재한다. 남성이 강요해서 이루어지는 성적 결합조차 '정상적인 섹스' 의 범주에 잘못 포함된다는 것이다.

2.2.1.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다

이제부터는 강간범들의 범죄통계학적 특성을 살펴보자. 물론 저자가 6장 서두에서 먼저 못박아 놓듯이, 강간 범죄는 통계로 포착되기 어려운 "정보의 거대한 심연"(p.268)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인용할 만한 제대로 된 강간 연구의 시작은 메나헴 아미르(M.Amir)의 《Patterns in Forcible Rape》 인데, 당시로서는 최첨단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를 활용한 분석이었다. 아미르에 따르면, 강간범들이 "특별히 뚜렷한 점은 없으나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부류라고 하였다. 또한 FBI에서 발간한 《The Uniform Crime Report》 는 비록 페미니즘의 정의보다 협소하게 강간을 정의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본서에서 인용할 가치가 있는 통계 자료로 취급되고 있다. 이런 정보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전형적인 강간범의 프로파일을 그려낸다. 강간범들이 서구 사회에서 흔히 "성적 매력이 넘치는 한량이나 '정상적인' 성욕 발산 수단을 빼앗긴 소심한 영혼, 통제할 수 없는 성욕에 사로잡힌 초인" 인 것처럼 믿어지는 것과는 달리, 현실의 강간범들은 그보다는 훨씬 찌질한, 그저 "따분하고 평범한 존재들"(이상 p.319)일 뿐이었다. 이들의 범죄 패턴은 전형적인 청소년 강력범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이들의 범죄의 양상을 다른 중범죄들과 비교해 보면, 강간에서 관찰되는 여러 특성들은 강도와 폭행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표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분류)강도강간폭행
<colbgcolor=#DDD,#303234>폭력성낮음<colbgcolor=#EEE,#394245>중간높음
면식낯선 관계지인친밀한 관계
가해 목표가치의 탈취가치의 탈취
& 신체의 상해
신체의 상해
협상 여부가능부분적으로 가능불가능

그런데, 강간범들이 의외로 평범하다는 말은, 자칫하면 평범한 모든 일반인 남성들이 강간범과 실질적으로 크게 달라지는 점이 없다는 식의 논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6장 말미에서 강간 가해자들과 다른 일반인 남성들 사이의 관계를 그리스 신화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즉, 평범한 일반인 남성들이 저 위대한 영웅 아킬레우스라면, 강간범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영웅 아킬레우스에게 충성하면서 온갖 더러운 일들을 도맡아 하는 아킬레우스의 부하들 미르미돈(Myrmidon)이라는 것이다. 미르미돈들은 아킬레우스가 손을 더럽히지 않으면서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물심 양면으로 봉사하면서 충성하는데, 강간범들 역시 평범한 남성들이 도덕적 비난을 받지 않고서도 문화적으로 여성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일부 강간범들로 인하여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종속적 위치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한다면, 그 여성들 위에 위치한 남성들은 부지불식간에 강간범의 덕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일부 남성이 강간을 하는 것만으로 모든 여성은 항상 협박당하는 상태에 몰리게 되며, 남성의 저 생물학적 도구가 언제라도 해로운 무기로 변할 수 있으니 경외심을 품어야 한다는 생각을 영원히 뇌리에 각인하게 된다... (중략) ...강간을 저지른 남성은 사회에서 일탈한 자이거나 '순수를 더럽히는 자' 가 아니라 사실상 남성의 전위 돌격대로 복무해 왔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싸움에 투입된 테러리스트 게릴라이다."
- p.320

마지막으로 언급할 만한 강간범들의 특징으로, 강간범들의 상당수는 집단으로 강간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미국 각지의 통계를 보면 30~70%의 강간 범죄가 집단 강간, 즉 피해자 수보다 가해자 수가 더 많은 범죄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한다. 가해자들이 남성으로서의 자신은 익명성의 수풀 속에 숨으면서, 피해자 한 명은 전체 여성들을 대표하는 위치로 공공연히 드러낸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청소년 집단 강간에 대해 사회심리학계에 보고된 한 논문에서는[13] 그 집단을 장악하는 폭력적인 특정 구성원이 존재하고, 다른 구성원들은 그로부터 공포를 느끼며, 그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의 주장에 끌려가게 된다. 이는 강간이 10대 남자아이들의 욕구불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동성사회성(homosociality)에 가까운 문제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를 남성들 간의 폭력성의 학습과 전수 체계라고 보면서, 남성들끼리 모여서 뭔가를 하고 싶어도 흙수저들은 원체 등산이나 래프팅 같은 건전한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여성을 힘으로 찍어누르는 활동을 여가생활 삼아서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2.2.2. 그것은 권력의 작용이다

위에서 피해자가 저항했느냐를 묻는 것이 불공정한 질문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피해자가 저항했다면 꼭 나쁜 질문일까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실제 강간 사례들은 피해자가 저항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강간에 권력이 작용할 때, 그 권력은 피해자의 적절한 저항을 가로막게 된다. 인기 있는 영화배우나 운동선수, 록 가수, 집단 내에서 존경받는 남성"(p.394)의 경우,[14] 특히나 피해자는 비난을 받기 쉽고 가해자는 자신의 휘광에 숨을 수 있게 된다. 권력이 작용하는 강간에서 피해자는 저항할 수 있는 자기통제력조차 상실하게 되며, 이를 뒤늦게 되찾아서 강간 고발을 하면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마음을 바꿨다" 는 비난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마치 대학교에서 교수에게 코가 꿰인 대학원생들이 온갖 부조리까지 묵묵히 참고 순응해야 하듯이, 권력 없는 여성은 권력 있는 남성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라고 말하면 (심지어 청바지를 입고 있을 때에도)[15] 자기 손으로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꼴마초 남성들은 "움직이는 바늘에 실을 어떻게 꿰냐" 면서 피해자들을 비웃지만, 바늘을 손아귀 힘으로 붙잡고 있으면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은 간과한다는 것이다.

강간이 욕구불만의 여부보다는 두 사람 간의 권력의 강약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은 특수한 권력적 환경에서 나타나는 강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8장에서 감옥에서의 동성 간 강간을 그 사례로 들고 있다. 감옥 강간은 〈Fortune and Men's Eyes〉(1971) 영화에서도 묘사될 만큼 잘 알려진 현상이지만, 흔히 '일부 수감자들의 일탈' 이라거나 '수감된 동성애자가 퍼뜨리는 악습' 같은 식으로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감옥 강간은 남성들 사이에 발생한 권력의 위계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73년에 컬럼비아 감옥에서 벌어진 윤간 사건을 폭로한 스티븐 도널드슨(S.Donaldson)이 증언했듯, 간수들은 일부러 어린 정치범들을 폭력범 수감동에 넣음으로써 이런 권력구조에 동조하고 감옥의 '질서' 를 지켰다고 한다.

감옥 강간을 이해하려면 먼저 권력의 밑바닥에 위치한 수감자 '갤보이'(gal-boy)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이 사람들은 흔히 '바텀' 이라 불리는 역할을 감당했다. 일반적으로 어떤 감옥에 10대의 약한 수감자가 들어오면 장기간의 폭행을 거쳐 "여자 만들기 공정"(p.401)이 진행되었고, 이후 이들은 자신의 육노예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여서 이를 통해 자신도 돈을 벌거나 타인에 의해 인신매매가 되는 것을 허용하게 된다고 한다. 감옥 환경이 혹독할수록 갤보이의 비율은 점점 증가하여, 극단적일 경우 전체 수감자의 50~70%(…)가 갤보이인 교도소도 있었다고. 이러다 보니, 수감자들은 자신이 갤보이로 전락하는 상황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위험한 난투극이나 폭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수제 나이프로 타인을 냅다 찌르는 등의 과시적인 폭력성을 드러내야 했다. 미국 드라마의 한 장면이 스친다면 대충 그거다. 이들이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라, 이 정도로 난폭한 남성성을 과시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등짝을 보이게 될 수 있어서였다. 이들은 불행히도 남성성의 증표를 폭력에서 찾았다.

이 때문에 서구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교도소 개혁 운동이 진행되어 왔으며 이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데, 1968년 필라델피아 감옥 실태조사에 따르면 본서가 저술되던 그 무렵에는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6만 명의 수감자 중 2,000건의 강간 사건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신고 건수는 그 중 96건, 기록화된 경우는 64건, 훈육된 경우는 40건, 기소된 경우는 26건에 그쳤던 것이다. 젊고 가녀린 남성 수감자는 입소 1~2일 내로 강간의 위협을 받으며, 가해자 무리에게 반복적으로 윤간당하고, 일부는 참다못해 한 명의 가해자에게 배타적으로 성을 제공하여 안전을 보장받으려 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현실에서, 감옥 밖에서 여성들이 겪는 강간을 겹쳐 보았다. 감옥 밖의 여성들이나 감옥 안의 갤보이들이나, 피해사실을 공론화하지 못했고, 젊은 남성의 완력에 의해 제압당했으며, 한 사람의 가해자의 보호를 필요로 했으며, 가해자보다 어린 연령이었던 것이다. 어떤 가해 수감자들도 자신이 게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게이는 저쪽이라며 갤보이를 손가락질했으니, 성적 지향과는 무관한 문제로 보였다. 그보다는, 상대방 갤보이에 대한 비하와 정복감의 획득을 목적으로 강간을 자행했다. 피해자들 또한 감옥 환경에 대한 불안과 가해자의 성적인 보호 및 경제적 지원 때문에, 가해자에게 쉽게 굴복했으며 차마 저항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감옥 밖 세상에서 강간으로 인해 결혼가부장제가 나타나게 된 과정을 고스란히 따라갔다.

권력이 작용하는 또 다른 사례로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강간을 들 수 있다. 유명인들의 자서전과 회고록, 전기들에서[16] 자신이 겪었던 어린 시절의 성 학대 회고가 심심찮게 나타나는데, 1969년에 미국 인도주의 협회(AHA; American Humane Association)가 아동 성 학대 사례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연구되지도 못했다고. AHA는 피해자 연령이 만16세 미만, 가해자 연령이 만16세 이상인 경우로 한정하여 조사했고, 그 결과 위에서 설명했던 일반적인 강간범들과는 약간 달라지는 프로파일이 도출되었다.

AHA의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의 프로파일은 만17세에서 만68세에 이르는 남성이었으며, 40%는 만34세 이상이었다. 이는 다른 강간 사례들에 비해서 가해 연령이 더 높은 편임을 보여준다. 고연령층일수록 직접적인 강간보다는 손으로 만지거나 더듬는 등의 성추행을 더 많이 저질렀다. 가해자의 절반은 전과기록이 있었으며, 주로 저소득층에 밀집되어 있었다. 또한 일반적인 강간에서 많은 수가 뭉치거나 패거리를 이루는 것과 달리, 아동 강간범들은 불과 10%만이 집단강간을 했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는 젊은 남성들이 성인 여성을 강간하는 이유가 "남자다움과 동성사회성" 에 있는 반면, 나이 많은 남성들은 더 이상 그런 남자다운 완력을 과시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하고 순종적인 어린이들을 건드리게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들이 이처럼 손쉽게 어린이들을 학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성인과 아동이 만났을 때 성인 쪽이 권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2.3. 전시 강간 설명하기

"남성만 따로 선발해 총을 쥐어주고, 그 총에서 나오는 권력을 잠재적으로 모든 여성에게 휘두를 수 있게 만드는 제도는 이미 그 속성 상 강간 가능성을 품고 있다. 전시 강간에서 한 여성이 피해자로 선택되는 이유는 그 여성이 적을 대표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여성이고, 고로 적이어서 선택되는 것이다."
- p.101 (강조 표시는 원문에 존재)

본서는 아마도 전시 강간에 대해서 방대하게 논의하는 흔치 않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저자는 3장에서 전시강간에 대해서 긴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전시강간이 발생하는 이유를 몇 가지 거론하고 있다. 첫째, 강간은 전쟁 승리의 한 증표가 될 수 있다. 둘째, 전근대의 평민 보병들은 지휘관들에게 제대로 된 전리품을 받기 힘들었으므로, 강간이야말로 그들에게 주어진 얼마 안 되는 특권이었으며 사기를 증진할 동기화였다. 실제로 당시 지휘관들과 장군들은 "적국의 여성들은 우리나라 여성들보다 아름답다" 고 외쳐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셋째, 거창한 대의명분을 통해 자신들의 행위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합리화할 수 있었다. 이는 강간 이후에 강제개종 의례를 거행하거나, 적국을 이교도, 야만인, 기타 등등으로 지칭하는 것이 있다. 넷째, 적국 군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심리적인 패배감을 주는 전략적 무기로서의 효과를 노리고 자행하는 것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네 번째 동기, 군사적 테러리즘으로서의 적국 여성 강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여성의 몸을 전쟁터로 삼아서 이쪽 남성들과 저쪽 남성들이 상징적인 전쟁을 벌이는 것과도 같다. 이쪽의 남성들은 여성의 몸을 '빼앗기지 말아야 할 영토' 처럼 대하고, 저쪽의 남성들은 여성의 몸을 '우리가 정복하고 유린해야 할 영토' 처럼 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정복이 이루어지게 되면, "정복당한 나라의 남자들은 '우리의 여자' 가 강간당한 일을 궁극의 수치이자 치명타로 여기기 마련" 인데, 왜냐하면 "남자들은 '내 여자' 가 강간당한 일을 사실상 자기가 겪는 패배의 고통으로 전유해 온 유구한 전통"(이상 p.62)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국 남성들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심어 주기 위한 목적의 강간 행위는 의외로 전근대 및 고대 사회에서는 드물었다. 고대 사회에서는 저 옛날 구약성서에서 거론된, "이민족 남성들을 전부 죽이고 여성들은 아내로 취하는" 방식, 즉 적국 여성을 사로잡아 자신의 아내나 첩으로 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양쪽의 민족성은 희석되고 동질성이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헌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로, 강간은 가능한 한 충격적이고, 부도덕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 피해국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었다. 실제로 20세기 초의 전시 강간은 피해자의 남편이나 아들, 아버지 등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어졌으며, 심지어 일부러 잡아와서 묶어놓고는 강제로 그 모든 것을 지켜보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본서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이 문제에 관련해서는 벨기에가 매우 유명한 편.

군사적 테러 목적의 강간 행위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기 위해, 가능한 한 패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쪽에서 자기들끼리 크리스마스 휴전이니 뭐니 하면서 온갖 낭만은 다 부리던 남성들은, 다른 한편에서는 예컨대 딸이 강간당하는 장면을 아버지가 강제로 지켜보게 하거나, 아버지가 딸을 직접 강간하도록 강요하거나,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강간하거나, 그 장면에 놀라서 우는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살해하거나, 어린아이를 강간한 뒤 변소에 던지거나, 심지어는 현지 산부인과 병원에 쳐들어가서 출산을 앞둔 임산부들부터 막 출산한 뒤 몸을 풀던 산모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강간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모든 사건들은 50~60년대 유럽에서는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차마 믿을 수 없는 소문처럼 받아들여졌다. 본서에는 심약한 사람은 차마 읽기도 힘들 정도로 생생한 목격담과 구술 증언들, 그리고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J.Toynbee)가 제시한 사례들이 수십 건 가까이 나열되어 있다. 이런 참혹한 내용들을 읽다 보면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

갑자기 이런 현상이 대전기에 출현한 이유 중 하나는 애국주의의 고취와 주전 여론을 끌어내는 프로파간다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가해국에서 상술한 이유로 전시 강간을 선호하긴 했지만, 가해국의 계산이 틀렸던 지점이 한 가지 있다면, 피해국 역시 강간 피해를 겪으면 사기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적국의 강간' 은 "네놈들이 감히!" 식의 분노를 일으켜서, 적이 저지른 통상의 테러 행위보다도 더 큰 주전 여론을 유발시켰다. 이는 유명 정치학자인 해럴드 라스웰(H.D.Lasswell) 역시 예측했던 부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때때로 각국에서는 강간 피해를 겪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강간이 발생한 것마냥 언론플레이를 하기도 했으며, 접경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오싹한 이야기를 괴담처럼 퍼뜨리거나 찌라시로 뿌리기도 했다.[17] 이렇다 보니 전후복구 중에 굉장히 고생했던 것이 바로 역사학자들이었다. 사실과 거짓이 너무나 많이 섞여 버려서, 어떤 강간 이야기가 사실이고 어떤 강간 이야기가 가짜뉴스였는지 판별하기가 너무 어려워진 것이다.

물론 동맹국이나 추축국들만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것은 아니었듯이, 강간 역시 연합국에서도 빈발했다. 물론 적어도 이들은 '열등한 민족을 말살한다' 는 계획까지 세우진 않았으나, 오히려 강간을 하는 군인이 "이 파시스트 년들!" 이라면서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기도 그만큼 쉬웠다. 본서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당장 소련이 독일에 진격하던 당시 독일 여성들을 숱하게 강간했으며, 이는 독일 여배우 힐데가르트 크네프(H.Knef)의 자서전이나 역사학자 코닐리어스 라이언(C.Ryan) 등의 문헌에 기록되었다. 특히 저자는 미군이 점령지에서 체계적으로 성매매 산업을 육성했다는 데 주목한다. 물론 미국은 유독 전시 강간에 엄격했으며 자국군의 강간 사건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는 면모를 보이긴 하지만,[18] 그 대신 이탈리아 항복 후 로마에 주둔하는 동안에,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에 주둔하는 동안에 엄청난 성매매 산업의 호황을 이끌었다는 것. 베트남에서 미군의 성매매 시장은 '허드렛일을 하는 현지 하녀' 를 의미하는 후치메이드(hootch maid), '미군 접대 업소' 를 의미하는 도그패치(dogpatch) 같은 신조어들이 쏟아져나올 정도로 엄청났다고.

그런데 전시 강간과 관련하여, 베트남 전쟁은 뜻밖의 통찰을 제공한다. 모든 남성들이 총만 쥐어주면 들개처럼 여성들과 흘레붙는 것이 아니라, 강간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들이 있는가 하면 높이는 요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서방 종군기자들에게는 얄밉게도, 중국공산당의 홍군이나 베트남의 베트콩, 기타 여러 농촌기반 무장 게릴라 단체들에서는 군인들이 민간인 여성을 강간하는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베트콩들이 딱히 신사적으로 전투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들은 기회만 왔다 하면 친 남베트남 인사에게 최대한 잔혹한 테러리즘을 일삼았지만, 가장 잔인한 살인을 추구하면서도 희한하게 약탈과 강간은 놀랄 만큼 꺼렸다. 단순히 도덕적으로 꺼리는 정도가 아니라, 여성 전투원을 정말로 남성 전투원과 대등한 군인으로서 대우했고, 여성들 역시 작전 수행에 있어서는 남성들 못지않은 전과를 올렸다.[19] 여성을 강간하여 문책 받은 베트콩 대원은 가차없이 총살당했다. UPI 캄보디아 국장 케이트 웹(K.Webb)이나 의료재활센터 소속의 마저리 넬슨(M.Nelson)은 베트콩에게 생포당한 경험이 있는 서방 여성이었는데, 풀려난 후 자신이 강간을 당한 적이 없다고 밝힐 때마다 기자들이 실망하는(?) 눈치였다고 회고했다. 중국공산당 역시, "인민에게서 바늘 하나 실 한 오라기도 취하지 말라" 는 규칙을 만들어서 농촌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 외에 거론할 만한 다른 영향 요인들은 남베트남군(ARVN)의 전시 강간과 주월미군의 일탈 행위로부터 파악할 수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낮추는 요인은 초록색, 높이는 요인은 빨간색, 큰 효과가 없는 요인은 노란색으로 표시했다.

그 외에도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저자는 5장에서 서부개척시대 미국인들이 북미 원주민들과 충돌하면서 양측에서 벌어진 강간 사건 역시 다루고 있다. 물론 양쪽 모두에서 상대방 여성을 강간한 사건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적어도 미국인들은 "저놈들이 우리 여자를 강간했다" 는 내용을 기록으로 남길 수는 있었다는 것. 첫째, 원주민들에게 백인들이 강간당하는 경우, 백인 여성들은 사회에 복귀하기 위하여 '정숙한 여성' 을 연기하거나, 혹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되면 아예 원주민 사회에 남기도 했다. 적어도 그쪽에서는 자신을 원주민의 일원으로 받아주기는 했기 때문. 물론 원주민이라고 해서 딱히 생각이 개화된 것은 아니라서(…) 예컨대 1879년 9월 29일에 벌어졌던 화이트 리버 우테(Ute)족 납치 사건에 대해 조사위원회가 열렸을 때, 명목상 참여한 원주민 측 대표는 "여성의 강간 증언 맹세는 우리 인디언들 사이에서는 아무 가치도 없다" 면서 냉소하기도 했다. 둘째, 백인들에게 원주민들이 강간당하는 경우, 그 강간 사건 자체가 아예 묻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1871년 4월의 아리파바 아파치 피습 사건이나, 1864년 11월의 샌드크리크 학살 등은 현지 주술사들의 구술 증언을 통해서 간신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 뿐, 철저한 침묵 속에 가려져 있다.

2.2.4. 인종차별과 강간 : 리버럴들의 혼란

"1971년 여성운동이 강간을 논하기 시작했을 때 리버럴이 받은 충격은 심대했다. '당신이 왜 검찰 쪽에 서느냐?' 며 마치 강간을 문제화하는 것이 그 자체로 인종주의와 반동의 증거인 것처럼 비난하던 사람들과 그들의 불신에 찬 표정을 나는 기억한다. 그러나 새로운 견해를 유연하게 흡수하는 능력이 없는 리버럴은 리버럴이 아니다."
- p.391

저자에 따르면 미국 사회에서 인종 간의 강간은 같은 인종끼리의 강간보다 더 드물게 일어나지만, 일단 벌어졌다 하면 상당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다. 만일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면, 리버럴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반대로 만일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을 강간했다면, 또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본서가 저술되던 시점에서 인종차별 문제는 리버럴들의 민권 운동으로 인하여 늘 핫 이슈가 되고 있었고, "억압자 백인 vs. 박해받는 흑인" 구도가 매우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 시점에서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가해자가 백인이든 흑인이든, 피해자가 백인이든 흑인이든 간에 모든 강간은 문제시되어야 한다" 는 저자의 목소리는 굉장한 논쟁을 불러왔다.

저자는 여성으로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하는 사례가 자꾸 정치 논리로 침묵당하려는 것에 반대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자꾸 "흑인 남성 전체를 강간범과 동일시하는 것이야말로 백인 지배계급의 선전선동이다" 라고 외쳐 댔고, 흑인 커뮤니티에서도 엘드리지 클리버(E.Cleaver) 같은 급진파 지도자들은 "백인 여성에 대한 강간은 인종차별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에 심지어 맥스웰 가이스마(M.Geismar) 같은 신좌파 진영의 백인 남성들까지 "모든 흑인 죄수들은 정치범이다" 같은 유명한 슬로건을 만들어서 동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 이것은 단지 피억압자가 억압자를 모방하면서 억압자들의 재산과 가치를 쟁취하려 하는 것에 불과했다. 흑인들 역시 강간을 정당화한다면 마땅히 비판 받아야 하지만, (본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에게 흠뻑 취한(…) 백인 급진주의 남성들은 강간범에게 무분별하게 동정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진보연하던 이들은 '위기에 처한 흑인' 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강간 피해 여성에 대한 증오발언들을 쏟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강간이 흑인이나 소수민족과 같은 약자들의 연대를 약화시키기 위해 지배세력이 새로 개발한 음모론이라고 선전하였다. 또한 이런 강간 사례에 대해서는 백인 여성이 인종차별적인 의도로 흑인 남성을 강간으로 무고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에 대응하는 보수주의자들 역시 가관이었다. 이들은 강간 위기에 처한 '정숙하고 고귀한' 백인 여성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깜둥이' 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

사실, 인종 간의 이런 정치적 관계는 20세기 초반의 스코츠보로 소년들(Scottsboro boys)이라고 불리는 사건에서도 이미 잘 드러나고 있다. 사건인즉, 1931년 대공황 시기에 빈민층 백인으로서 성매매로 몸을 팔던 두 여성이 (17세, 20대 중반) 잠시 부랑 여행을 위해 기차에 무임승차했는데, 하필 그 열차에서 흑백 간 다툼이 벌어졌고, 이때 싸움에 진 백인 소년들이 전보를 쳐서 "두 명의 백인 소녀들이 위험에 빠졌다" 는 언론플레이를 시도했다. 그러자 나중에는 강간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서, 마침내 75명의 성난 남성들로 구성된 자경단이 꾸려지고 분노한 군중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으며, 아무 죄 없는 흑인 소년 9명이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이 혼란의 와중에 두 백인 여성은 역장에게 발견되었고, 그 중 하나가 흑인들과 함께 (무임승차 죄목으로) 수감되기는 싫었는지 그만 "당했다" 고 거짓말로 대답하고 말았다.

이 상황만으로도 벌써 총체적 난국인데(…), 결과적으로 엉망이고 우스꽝스러운 재판을 거쳐서 그 소년들 9명 중에 8명이 무려 사형(!)을 선고받았다. 두 여성은 백인 사회에서 자신이 '존엄한 여성' 임을 입증 받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서 강간 거짓말을 늘어놓았고, 흑인 소년들도 자신이 선처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다른 동료가 강간하는 것을 보았다는 불리한 증언들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차후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파견한 여성 조사관이 쓴 보고서에 따르면, 이 두 여성은 나중에 자기 남친에게 '그것은 사실 다 거짓말이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쓴 적이 있었고, 이들이 강간을 인정한 이유는 분노한 백인 남성 군중의 분위기에 휩쓸렸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리버럴들의 해석이 문제였다. 흑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은 이 사건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면서 "거봐, 여자들은 원래 이렇게 남자들을 강간 무고하는 경향이 있어!" 라고 떠들고 다닌다는 것.

저자가 소개하는 또 다른 사건은 1945년 11월 2일에 발생한 윌리 맥기(W.McGee) 강간 의혹 사건이다. 당사자 윌리 맥기는 트럭 운전사이자 주유소 직원으로, 인종 간 강간의 혐의를 받고 1951년 5월 8일에 사형당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문제의 당일에 미상의 흑인 침입자에게 자신의 집에서 강간당했는데, 그 사람이 술을 마신 흑인이라는 것만 빼면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지역 경찰은 인근의 식료품 회사에서 윌리 맥기라는 트럭 운전사와 그의 트럭이 실종되었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의 집 근처에서 식료품 트럭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들어 그를 체포했다. 그의 재판이 세 번 이루어지는 동안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군중 소요(…)가 발생했으며, 세 번 모두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리고 리버럴들은 이번에도 "강간 무고를 일삼는 백인 마녀" 라면서 강간 피해자를 비난했다.

그런데 차후, 맥기의 부인이 별도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반대의 주장을 내놓았다. 사건은 조작되었으며 피해자와 맥기는 불륜 사이였고, 맥기는 헤어지려 했지만 자꾸 피해자 쪽에서 동침을 제안해 왔다는 것이며, 피해자는 스스로를 '정숙한 여성' 으로 보이기를 원해서 강간 피해자 행세를 했으리라는 것이다. 훗날 미 공보처장을 지내는 흑인 언론인 칼 로완(C.Rowan)은 당시 《Tribune》 의 신참 기자였는데, 그는 이 사건에 관련하여 "백인 소녀들이 흑인 소년과의 정사 현장을 들키게 되면 반사적으로 '멈춰 깜둥아!' 라고 외치곤 하더라" 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자체적으로 흑인 커뮤니티를 돌면서 소문과 정보를 수집했지만, 너무 민감한 주제라서 차마 기사화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맥기의 부인이 발표한 내용이 자신의 탐문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고 용기를 내어, 《South of Freedom》 이라는 자신의 남부 기행록의 한 챕터에 맥기 이야기를 추가했다고 한다. 위의 두 사건, 즉 스코츠보로 소년들과 윌리 맥기 사건을 일각에서 해석하는 방식은, '정치논리에 함몰된 리버럴' 이라는 저자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21]

스코츠보로 사건이나 윌리 맥기 사건을 보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 강간 무고 현상을 (무작정 부정하거나 짜증스럽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정교하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리 요약하면, 인종 간 강간에서 유독 강간 무고의 유혹이 커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흑인에게 강간을 당하지 않은 상황에서 강간 피해자로 지목된 백인 여성은 두 가지 판단의 기로에 놓인다. 첫째, 솔직하게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경우, 대중은 다른 방식으로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럼 이 여성이 유혹한 것" 이라고 말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품위 있고 존중 받을 만큼 정숙한 여성' 이라는 자신의 이미지가 깨지게 된다. 미국 남부의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는 크나큰 위험이었다. 둘째, 강간을 당하지 않았지만 강간 피해자 행세를 한다. 이 경우, 대중은 "불운한 여성이 짐승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 고 동정할 것이고,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게 된다. 이는 강간 이후의 2차 가해와 비교하면 정반대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면 여성이 2차 가해를 당하지만, 사회적으로 약자인 남성에게 강간을 당하면 그 여성은 거꾸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22] 이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2.2.5. "너도 즐겼잖아" : 정신분석학의 유산

본서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본서는 "모든 여성은 강간당하기를 원한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강간당하는 여성은 있을 수 없다", "그녀가 원했다", "어차피 강간당할 상황이면 긴장을 풀고 즐기는 편이 낫다"(p.484)는 등의 강간 신화에 대해 바로잡는 저술목적 역시 겸하고 있다. 남성들은 이런 강간 신화를 맹신하며, 여성들에게 그것을 납득시키려 한다. 강간 신화가 설득력을 얻는 사회 속을 살아가는 피해자들은, 혹시라도 자신이 겪은 불행한 일이 '자신의 옷 때문이었는지, 잘못된 행동이나 태도 때문이었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보면서 자기불신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여성들도 강간을 내심 즐긴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통념은 아인 랜드의 《파운틴헤드》(1943)과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확산되었다.[23] 사실 저자에 따르면, 강간 신화라는 것은 자기모순을 품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여성들은 강간을 원한다" 고 주장하다가도, "처음부터 강간 따위는 없으며 그저 정상적으로 섹스를 한 후 남성을 골탕먹이려는 여성들 뿐" 이라고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 모든 논리가 그 정합성 여부와 무관하게 남성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심리적 기능에 봉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0장에서 저자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여성은 스스로 강간을 바란다" 는 논리는 정신분석학에서 기원한다. 이는 1924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논문 《The Economic Problem of Masochism》 에서 처음으로 제안된 것으로서, 이후 헬렌 도이치(H.Deutsch)의 《The Psychology of Women》 과 카렌 호르나이(K.Horney)의 소녀의 꿈 해석에서 정교화되었다. 이 중에서 도이치는 반여성적인 이론으로 악명 높은 인물로, 저자는 이 인물이 빅토리아 시대의 관념을 1950년대 서구사회에 과학의 이름으로 고스란히 주입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호르나이는 도이치의 문제성 있는 이론에 대해 잘 비판하는 공헌을 했지만, 마찬가지로 여성이 겪는 강간 악몽의 상징해석에서 실패해 버렸다고 하였다.

먼저 헬렌 도이치의 "여성은 피학증적 성향이 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저자는 "그녀가 여성의 성에 실질적이고도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p.492). 도이치에 따르면, 강간은 여성 경험의 원형이다. 페니스의 질내삽입에서 진통과 분만에 이르기까지 생식기에서 가해지는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 그것으로부터 쾌락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여성이고, 이를 원활히 하기 위해 여성은 남성보다 피학증적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도이치는 소녀에게 질이 '깨닫지 못한 성적 부위' 로 존재하다가, 강간(에 준하는 섹스)의 경험을 통하여 비로소 드러나게 되고 성감대로 발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즉, 여성의 몸은 남성의 삽입을 받아야만 비로소 '깨어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도이치가 현상과 당위를 혼동한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여성들이 설령 피학증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사회가 여성들을 구태여 그렇게 훈련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며, 여성들이 고통을 참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게 더 바람직하다. 하지만 도이치는 그것이 자연의 섭리인 양 정상화하면서, "에서 느껴지는 격통을 통해서 소녀는 여자가 된다" 는 기괴한 찬미를 늘어놓았다. 미국 남성들이 도이치의 이론을 여성의 성심리학에 대해 경전처럼 떠받들었던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또한 도이치는 처녀성 파괴(defloration)가 여성의 심리성적 발달에 갖는 역할을 강조했는데, 실상 여성들은 대다수가 특별한 고통이나 통증, 불편감을 느끼지 못하며, 그저 남성들이 그것의 존재감을 과장했을 따름이다. 처녀성은 남성들에게 그녀가 자신만의 확실한 사유재산임을 확신시켜 주기 때문이다. 즉, 처녀막의 기능과 가치와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오직 남성의 시선뿐이다.

다음으로 카렌 호르나이는 논자에 따라서는 심지어 페미니스트 정신분석학자라고 불리기도 하며, 프로이트의 이론 속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들을 철폐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 온 인물이다. 그런 호르나이는 앞서 설명한 도이치의 이론, 즉 "여성들은 성 학대를 즐긴다" 는 해괴한 논리를 거세게 비판했지만, 불행히도 강간 악몽을 잘못 해석하고 말았다. 호르나이는 다양한 심상들을 죄다 강간 악몽으로 이름붙였으며,[24] 이를 통해 여성의 이 무의식 수준에서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여기 들어와야 한다" 고 외치고 있는 신호라고 주장했다.

도이치가 피학증의 존재를 입증하려 했다면, 호르나이의 관점은 질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함이었다. 호르나이는 프로이트의 남근선망(penis envy) 이론을 철폐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은 인물이었는데, 이를 위해 질을 페니스와 대등한 존재로 격상시키려 하였다. 즉, 질이 갖는 섹슈얼리티적 가치가 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호르나이는 여성의 심리성적 휴지기 동안에 질 내부에서 본능적인 충동이 발생하여 무의식적으로 '페니스의 질내삽입을 바라는 마음' 이 나타나게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질은 여성에게 남성의 페니스만큼이나 중요한 기관이고, 그만큼 여성에게 큰 영향을 끼쳐야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뭇 여성들의 시각에서 보면, 여성들이 질 속에 누군가의 페니스를 밀어넣지 않으면 무의식적 욕구불만을 경험한다는 주장은 황당할 뿐이라는 것.

정신분석학이 "사실 여성도 강간을 즐긴다" 를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주장한다면, 대중매체는 "사실 여성도 (의식적으로) 강간을 즐긴다" 를 주장하는 사례였다.[25] 그러나 저자는 이런 대중매체의 메시지 역시 틀렸다고 말한다. 실상 여성들의 섹슈얼리티적 판타지는 문화적으로 만성적인 부족에 시달리며, 그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들이 정해 놓은 범위에 만족하거나 욕구불만에 처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설령 여성이 강간에 대한 환상을 의식적으로 즐긴다 해도 그것은 남성들이 강간하고 싶어하는 환상을 갖고 있었기에 그에 대응하여 거울처럼 나타난 것일 뿐이며, 이들이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탐색하는 이상, 여성들은 딜레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2.3. 강간 대응법 : 협조 X 저항 O

위에서 소개한 메나헴 아미르의 《Patterns in Forcible Rape》 에 따르면, 전체 강간 범죄의 25%는 피해자의 저항으로 인해 미수에 그친 사례였다. 다시 말해, 여성은 강간의 위기 속에서 저항함으로써 강간을 좌절시킬 수 있다. 통계조사에 따르면 성인 강간 피해자의 51%, 아동 강간 피해자의 66%가 강간범의 요구에 따르는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으며, 무기를 동원하여 협박할 때에는 그 비율이 71%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가해자가 물리적인 폭행을 시도하면 저항의 확률이 높아지게 되고, 일단 저항이 시작되면 그 이후에는 아무리 무기로 협박하더라도 저항이 좀처럼 중단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가해자가 한 명인 강간 범죄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났다.

물론, 피해자에게 강간 위기 속에서 "왜 저항하지 못했느냐" 고 탓할 수는 없다. 저자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강간당할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살해당할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면서 강간을 당한다. 간호학계의 한 문헌에 따르면,[26] 응급실에 실려온 80명의 피해자 중 절반이 무기로 위협받았으며, 21명이 신체적 폭행, 12명이 언어적 위협에 노출되었고, 거의 모든 여성들이 강간 이전에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 를 경험하였다고 하였다. 즉, 거의 모든 피해자들은 강간 상황에 처하면 일차적으로 얼어붙게 되고, 자신의 몸을 내어줘서라도 일단 살고 싶다거나 칼에 맞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문제는, 고분고분한 행동이 피해자를 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피해자는 일종의 규칙을 가정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려고 하지만, 강간범 또한 비슷한 합리성과 규칙을 갖고 문명인처럼 움직인다는 법은 없다"(p.563). 저 악명 높은 보스턴 스트랭글러 사건 당시에도 일부 피해자들은 전적으로 강간을 허용했으나, 강간이 끝난 직후 살해당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리처드 스펙(R.Speck) 연쇄 강간살인 사건을 소개한다. 사건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966년 7월 13일, 가해자 리처드 스펙이 시카고에서 병원의 간호실습생 여성 8명을 체계적으로 강간, 고문,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칼 하나를 들고 침입하여 여성들을 위협했는데, 완전히 압도당한 여성들은 그가 한 명씩 일일이 침대보를 찢어서 손을 묶고 옆 방으로 데려가는 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즉, 가해자가 피해자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강간하고 고문하는 동안, 나머지 피해자들은 사실상 통제 밖에 있는 상태였다. 이 틈을 타서 필리핀계 미국인 여성 코라존 아무라오(C.Amurao)는 다같이 도망치자고 제안했지만, 다른 피해자들은 "우리가 허둥지둥하다 저 사람을 더 자극하면 피를 볼 테니 가만히 있으라" 고 말했다. 결국 코라존은 혼자 침대 밑으로 숨어들었고, 나머지 여성들은 차례차례 끔찍하게 난자당해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강간의 기쁨에 도취되어 한 명이 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코라존은 유일한 생존 여성이 되었다. 스펙의 체포 후, 처음에는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곧 주 정부에 의해 사형이 위헌이 되었고, 다시 진행된 재판에서는 피해자 1명당 50~150년 징역형을 합산하여 도합 400~1,200년 징역형(!)이라는 미대륙의 기상(…)다운 선고가 내려졌다. 가해자 스펙은 투옥 25년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강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남성들은 제시카 발렌티(J.Valenti)가 '강간 일정'(rape schedule)이라고 불렀던 온갖 복잡한 수칙들을[27] 지키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는 여성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음을 전제하고, 남성에게는 자유로운 행동이 여성에게는 무모한 행동이라고 해석되며, 인간불신에 빠져야 안전해진다는 식의 잘못된 논리라는 게 저자의 비판이다. 강간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만 지워지고 남성에게는 지워지지 않는다면, 이런 수칙들은 강간을 겪지 않은 여성들까지도 강간 피해자들처럼 사회적으로 움츠러들게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즉, 남성들이 이런 식의 충고를 하는 이유는, 여성을 얌전하게 처신해야 할 존재로 여기고 그 처신에서 일탈한 여성은 무슨 일을 겪든 자기 책임이라는 발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아니, 강간범을 만나면 우선 사타구니부터 한 방 걷어차고 도망가면 되지 않아?" 라고 생각했다면, 스스로에 대해 약간의 뿌듯함을 느껴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남성의 약점이 바로 낭심이라는 점에 대해서 심지어 생물학적으로 공평한 구조라고 말할 정도로 다행스러워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타구니를 걷어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해자의 사타구니를 걷어찰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에 있다. 즉, 수많은 미국 여성들은 자신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가해자를 신체적으로 타격하여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설령 알더라도 연습하지 않았기에 익숙하지도 못하다. 위기 상황에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린 상태로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여성들이 이처럼 호신술에 생경해하는 이유는, 소년들은 강인한 신체와 전투 기술을 숙달하면 칭찬을 받지만, 소녀들은 가능한 한 숙녀답고 가녀리며 취약한 모습을 보여야 칭찬을 받는 문화적 풍토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28] 즉, 여성들이 신체적 폭력에 굴복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런 폭력에 대항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 역시 주짓수, 가라테 등의 훈련을 받는 동안, 자신의 몸에 "상대에게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잠재력"(p.631)이 존재함을 깨달았다고 12장에서 회고한다. 처음에는 저자도 각종 무술의 동작들을 몸으로 따라하면서 대단히 낯설게 느꼈는데, 알고보니 지르기나 발차기 등의 강한 동작들은 미국 전통의 '숙녀다운 몸가짐' 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 즉, 여성이 싸움을 못 하는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근육량이 더 적다거나 하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때리는 것에 대한 금기"(p.631)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 남을 때리는 기술 역시 남성들 사이에게서만 전수되는 문화적 유산이라고 말한다.[29] 바로 이 점에서,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한테 맞으면 너도 때려야지!" 라고 독려하듯이, 저자는 앞으로 여성들이 "네가 날 강간하려 한다면, 나도 얼마든지 되갚아 줄 수 있어, 난 너에게 맞서는 법을 알아" 라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독려한다.

3. 반응

본서에 대한 세간의 호평은 대개 지금까지 오랫동안 경시되거나 무시되어 왔던 사회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조명한 사례라는 데에서 쏟아졌다. 특히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사 서평들에서 저자가 정치적 권력관계 내에서의 강간이라는 문제를 새롭게 강조함으로써 강간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급진적으로 바꾸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특히 본서는 법학계에서도 강간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피해자를 대하고 어떻게 가해자를 처벌할 것인지에 대해서 성범죄 관련 법제를 현대화하고 합리화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본서 출간 직후, "자연 세계에 오직 인간만이 강간을 하는 동물" 이라는 1장의 한 단락에 매우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이 발끈했다. 이들에 따르면, 자연계에서 이성에게 성행위를 억지로 강요하는 동물들은 매우 많이 관찰되며, 특히 일부 경쟁력 떨어지는 수컷들은 다른 수컷들의 빈틈을 노려서 몰래 '싸고 튀는' 전략을 채택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생물학자 랜디 손힐(R.Thornhill) 및 인류학자 크레이그 파머(C.T.Palmer)가 《A Natural History of Rape》 를 출간하여 본서를 비판했으며, 이들은 강간 또한 진화 과정에서의 적응의 산물 내지는 그 부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반박 역시 나타났다. 우선 저자부터 서문에 언급하기를, 강간을 비용 대비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인정하는 것 자체가 그것을 마치 '거스를 수도 없고 거슬러서도 안 되는 암울한 숙명처럼 여기는 것' 이라고 반론했다. 아무리 진화적인 관점에서 가성비가 좋다 하더라도, 부도덕한 행위를 그걸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반론은 심지어 과학계에서도 제기되었다. 유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더발(F.de Waal)이나 다른 학자들은, 강간을 한다고 해서 더 많은 유전정보를 전수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반론했다. 강간을 할 때마다 100% 임신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다, 주류적 전략을 쓰는 것보다 딱히 낫지도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강간 피해자의 상당수가 어린이나 노인 등 가임기 여성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였다. 어린이나 노인은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강간이 진화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인 문제로 이해될 수 있었다. 또한 동물행동학자 진 올트먼(J.Altmann)은 동물들의 짝짓기 생태를 '강간', '치정', '싸움' 같은 인간의 가치가 개입된 용어로 섣불리 해석하려 하는 경향을 막으려 했는데, 이런 노력은 페미니즘 과학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Haraway)가 출간한 《Primate Vision》 에서 호평받기도 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저자가 인종차별 문제와 강간 문제에 대해 취하는 관점이 많은 리버럴들을 발끈하게 만들었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공격 받은 쪽은 공산주의-흑인 급진주의 계통의 진영이었다. 이 분야의 흑인 운동가인 앤절라 데이비스(A.Y.Davis)는 자신의 저서 《Women, Race, and Class》 에서 본서에 대해 인종차별 근절에 흑인 여성들이 기여한 바를 누락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저자가 본서를 출간하고 나서도 저자의 강연 장소마다 흑인 운동가들이 난입해서 강연을 방해하거나 전단지를 돌리는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본서와 크게 관련은 없지만, 훗날 유명한 페미니스트이자 언론인인 수전 팔루디(S.Faludi)가 자신의 저서 《백래시》 에서 저자 브라운밀러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유인즉슨, 브라운밀러가 나중에 출판한 도서 《Waverly Place》 에서 가정폭력으로 인해 아내가 사망한 사건을 다루면서 "아내 잘못" 이라고 피해자 비난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는 본서에서 천명했던 '피해자 중심의 관점' 이라는 가치를 저버리는 수정주의적 변절이라는 것이 팔루디의 비판이었다. 또한 팔루디는 브라운밀러가 "남녀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면서 젠더 간에서 생물학적으로 나타나는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했다고도 공격했다.

4. 남은 의문점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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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0년 일월서각에서 전반부만 번역한 절반 번역본도 있다. 절반 번역본의 제목은 <성, 성폭력, 성폭력의 역사>다.[2] 본서 저술기간 중에 도서관 직원들과 함께 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을 정도(…)라고 하며, 어디서 일하냐는 주변의 질문에 대해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일한다" 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3]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대략 반 세기 전의 책이다) 현대사회와는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12장에서는 부부 간 강간에 대한 법조계의 희박한 인식을 비판하지만, 현대에는 1993년에 남편의 페니스를 절단(!)했던 로레나 보빗(L.Bobbit)의 무죄 판결 이후로 부부 간 강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뚜렷해졌다.[4] 공정하게 말하자면, 강간이라는 '의제' 에 이때까지 별 관심이 없었다 뿐이지, 리버럴 페미니즘으로 아예 강간이라는 '현상' 의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섹스는 당연히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5] 그때만 하더라도 영어사전에 아예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6] 예컨대 문두구모르(Mundugumor) 족에 대한 마거릿 미드(M.Mead)의 연구, 남미 문두루쿠(Munduruku) 족의 윤간에 대한 로버트 머피(R.F.Murphy)의 연구, 야노마미(Yanomami) 족의 적성 부족민 윤간을 연구한 나폴레옹 섀그넌(N.A.Shagnon)의 연구, 케냐의 구시(Gusii) 족의 처녀 납치 문화를 연구한 로버트 레빈(R.A.LeVine)의 연구가 있다.[7]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로는 작가 해럴드 로빈스(H.Robbins)의 《Adventurers》(1969), 앤서니 버지스(A.Burgess)의 《시계태엽 오렌지》(1962), 알프레드 히치콕의 《프렌지》(1972), 데이비드 페킨파(D.S.Peckinpa)의 《어둠의 표적》(1971) 및 《Going Home》(1971) 등이 있다.[8] 이에 대한 사례로서 저자는 제임스 디키(J.Dickey)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Deliverance》(1972)를 들고 있다.[9] 이에 대한 사례로서 저자는 작가 에드 불린스(E.Bullins)의 소설 《The Reluctant Rapist》(1973)를 들고 있다.[10] LeGrand, C. E. (1973). Rape and rape laws: Sexism in society and law. Califonia Law Review, 61, 919-941.[11] Wymer, D. E. (1968). Police discretion and the judgment that a crime has been committed: Rape in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Law Review, 117, 277-322.[12] Kalven, K., & Zeisel, H. (1966). The American jury. Boston: Little, Brown.[13] Blanchard, W. H. (1959). The group process in gang rape.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49, 259-266.[14] 패권적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미국 사회에서 이런 남성의 전형은 근육질의 액션 배우나 보디빌더, 미식축구 선수, 해병대원 같은 사람들에 해당한다.[15] 강간 근절 운동에서 청바지는 늘 골칫거리로 여겨졌는데, 사람들이 '치마 입은 사람이 당하면 강간이지만, 청바지 입은 사람이 당하면 좋아서 한 거다' 라는 짐작을 했기 때문. 청바지는 타인이 강제로 잡아벗기기 힘든 종류의 옷이기 때문이다.[16] 이에 대한 사례로서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조카 퀜틴 벨(Q.Bell)이 폭로한 이모의 성 학대 피해경험, 빌리 홀리데이의 자서전 《Lady Sings the Blues》(1956), 마야 앤절로(M.Angelou)의 자서전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1969) 등을 들고 있다.[17] 저자가 소개하는 일부 선전선동의 내용을 여기 요약해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국 병사들은 매독이 있으면 자국의 성매매 여성들과 섹스를 하는 것이 군법에 따라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우리 여성들을 겁탈할 것만 노리고 있다. 그들은 강간 후 여성의 가슴을 총검으로 도려내는데, 이는 자기 뒤에 도착할 다른 자국 동료들에게 매독 감염의 위험을 경고하려는 표시이다."[18] 미군은 이 시기에 자신들이 주둔하는 곳마다 "해방군" 을 자처했는데, 심지어 점령지의 주민들마저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질서한 전시 강간이 얼마나 드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장 우리나라 역시 6.25 전쟁 때 국내에 들어왔던 미군이 한국인을 강간했다는 이야기는 어지간한 반미 시위 현장에서도 들어보기 어렵다! 월남전쟁 때에도 가장 악명 높았던 부대인 '아메리칼 사단' 의 집단 강간 범죄조차, 막상 실제 사건 발생일은 1968년 3월 16일, 6월 2일의 두 번뿐이었다. 그리고 월남 이후 1971년에 반전 베트남 참전용사회(VVAW)는 일명 '윈터 솔저 조사단' 을 꾸려서 베트남의 잔혹행위 사건들을 자발적으로 증언하고 고백하기도 했다.[19] 그래서 "여성은 군복무에 부적합하다" 는 주장이 나올 때의 (다소간 일반론적인) 반례 중 하나로서 이 여성 베트콩 전투원들의 신출귀몰한 전투수행 능력을 들기도 한다.[20] 똑같은 ARVN일지라도 변방 멀리 파견된 부대일수록 강간 발생이 극심했다. 저자에 따르면, "강간범과 피해자가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조건은 강간 발생의 중요 요소가 된다"(p.137).[21] 보수주의자들은 강간 피해자를 동정하고 보호하려 하는 반면, 진보측 남성들이 강간 피해자를 유독 심하게 비난하는 행보를 보인다는 점은, 국내에서도 강준만 교수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과 같은 문헌들에서 암시되고 있다.[22] 당장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잘나가는 언론인, 연예인, 예술인, 스포츠인, 정치인, 교수에 대한 강간 고발이 벌어지면 종종 피해자를 꽃뱀이라며 비난하곤 하지만, 만일 가해 남성이 예컨대 저 파키스탄 노동자라거나(…) 예멘에서 온 난민들이라거나 하면 피해자 비난은커녕 오히려 '무고한 피해자' 라면서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23]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남성 인물은 여성 인물의 침실을 한밤중에 습격하여 잠들어 있던 여성을 덮친다. 그나마 그것도 애정 어린 섹스가 아닌, 여성에 대한 모독과 멸시의 행위였다. 그런데, 여성 인물은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황홀감을 느꼈으며, 그 남성이 단 한 번이라도 다정한 행동을 했다면 오히려 흥분이 싸늘하게 식어서 아무 쾌감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식으로 묘사되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이 소설은 도널드 트럼프가 매우 좋아하는 소설로도 유명하다.[24] 예를 들면 총을 들고 있는 남성이나 역으로 진입하는 기차의 모습, 품으로 뛰어드는 동물 등의 꿈을 전부 '이것도, 저것도 전부 강간에 대한 이야기다' 라고 설명했다.[25] 이에 대한 사례로서 저자는 〈딥 스로트〉(1972), 〈존스양 안의 악마〉(1973)를 들고 있다.[26] Burgess, A. W., & Holmstrom, L. L. (1973). The rape victim in the emergency ward. American journal of nursing, 73(10), 1740-1745.[27] 예컨대, '호루라기를 지참하라', '야간 외출을 피하라', '속옷은 실내에 널어라', '창문을 잘 잠가라', '동료 남성의 경호를 받으라' 등이 있다.[28] 그에 더하여, 미국 소년들의 옷차림은 단단하고 질기며 강인한 소재로 제작되고, 옷이 먼지와 땀과 스크래치로 범벅이 될수록 사나이답다는 칭찬을 받는다. 반면, 미국 소녀들의 옷차림은 하늘거리고 섬세한 시스루 드레스, 흠집이 가기 쉬운 에나멜 소재의 메리 제인 구두, 아차 하면 찢기는 나일론 스타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옷이 해어지거나 찢어지면 방정맞은 소녀라며 크게 혼이 난다는 차이점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소녀들은 어릴 때부터 연약한 옷들로 온몸을 덮은 채 조심조심, 가만가만, 사뿐사뿐 몸을 다루는 가혹한 '제식훈련' 을 받는 셈.[29] 우리나라의 경우, 흥미롭게도 매우 많은 수의 소녀들이 태권도검도, 유도, 합기도 등을 초등학생 시절에 배우는 문화가 보편적이며, 여자아이에게 '블랙벨트' 를 독려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크게 이상하다는 취급을 받지 않는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그렇게 자라난 우리나라 여성들은 강간 상황에서도 곧바로 그런 무술들에서 배웠던 호신술이 튀어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저자가 놓친 무언가가 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30] 저자는 선사시대 남성들이 그들과 마주치는 여성들을 겁탈하기 위해 '남성 연대'(male bonding)라는 패거리를 이루어 몰려다녔다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을 저자가 문제시할 수 있는 이유는, 저자의 논리를 따르자면, 저자가 가부장제 사회 속의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강간을 위해 몰려다닐 때, 선사시대 여성들도 (마치 현대인 여성들처럼) 그것을 자신의 성적 온전성(sexual integrity)과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하는 가해행위라고 여겼을까?[31] 국내에서는 워마드 등지에서 이런 주장이 많이 나오지만, 과거 20세기 초중엽의 서구에서는 "왜들 그래? 남자들은 원래 다들 강간 정도는 해 보는 법이야, 당연한 거 아냐?" 하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분위기가 팽배했다.[32] 페미니즘은 일각에서는 전자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다른 일각에서는 후자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사상적으로 복잡하고 이질적이다. 후자의 관점에서 전자를 비판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Badinter)의 《잘못된 길》,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했던 팔루디의 《백래시》 이다.[33] 오늘날에는 거의 조롱의 의미로 쓰이는 'triggered' 라는 표현도, 이런 점에서는 피해자를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34] 이 문제는 국내에서도 영화평론가이자 유명 페미니스트인 손희정 씨가 자신의 저서 《페미니즘 리부트》 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내러티브를 어떻게 스크린에 옮길 것인가에 대해 언급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즉, 일본 군인들에게 처절하게 강간당하던 피해자들의 어릴 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춘다고 해서 할머니들을 후원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 할머니들이 그 폭력 '이후에' 어떻게 무너진 삶을 살아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회에 재복귀하려 애쓰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유명한 흑인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R.Gay) 역시 자신의 저서 《나쁜 페미니스트》 에서 유사한 주장을 한 바 있다. 흑인 노예들의 서사를 〈노예 12년〉 처럼 잔인하고 가혹한 장면들로 채워넣는 것은 흑인들을 괴롭게 할지언정 흑인들의 지위 상승에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