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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1 20:49:01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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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colcolor=#000> 도서명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발행일 2016년 7월 25일
저자 오찬호
출판사 동양북스
ISBN 9791157031900
교보문고
1. 소개 및 출간 배경2. 목차3. 작가의 주장
3.1. 군대유체이탈 화법: 끌려가는 곳? 남자가 되는 곳?3.2. 남자로 살기 힘들다?3.3. 여자로 살기가 더 힘들다!3.4.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
4. 비판5. 둘러보기

1. 소개 및 출간 배경

본서는 사회학의 학문적 배경을 통해 갈등론적인 관점에서 남성으로서의 삶과 여성으로서의 삶을 분석한 연재물을 모은 도서이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언급되듯이 사회학자로서의 정체성이 적극 반영된 저술로, 남성과 여성이 서로 갈등 관계이며 가부장적 태도를 가진 남성들이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또한 본서 제목이 시사하듯이 일차적으로 남성성에 대한 논의를 다루지만, 후반부 절반 가량은 여성으로서의 삶의 고충 또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서는 저자 오찬호 씨의 과거 연재물을 모아서 개정한 것이다. 70%는 웹진 《이프》(2010-2012) 및 오마이뉴스 송고 기사(2008-2011)를 재구성한 내용이나, 문체를 개정하고 내용도 업데이트했다.

저자 오찬호 씨에 대한 소개는 해당 문서를 참고할 수 있지만, 본서에서 소개하는 정보에 따르면 사회학 박사학위를 소지한 작가로, KBS 〈TV, 책을 읽다〉, 국회방송 〈TV, 도서관에 가다〉, MBN황금알〉, tvN젠틀맨리그〉 에 비정기 출연 경력이 있다. 오찬호 씨는 대중적으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를 저술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외에도 《이따위 불평등》 에도 공저자로 참여했다.

저술배경에 대해 저자는 평소에 자신이 '남자다움, 여자다움이 아닌 '사람다움' 을 지향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개인의 힘으로는 저항하기 힘든 젠더 사회화가 작동하는 현실에서,[1] 좀 더 사람다움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런 관점에서 강의를 하던 것에 감명을 받은 한 여학생이 페미니즘 웹진 《이프》 에도 연재해 볼 것을 권유했고, 그 전까지 저자는 페미니즘과 자신이 딱히 연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침 아내의 출산 때 깨닫게 된 것도 있고 하여[2] 페미니즘 쪽으로도 활동범위를 넓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저자가 해당 연재물들을 블로그에 묵히고 있던 중에, 동양북스 출판사 쪽에서 먼저 연락하여 이대로 묵히긴 너무 아까우니 책으로 개정해서 낼 생각이 없냐고 권유했고, 마침 2016년을 맞이하여 젠더갈등이 극심해지는 터라 승낙했다고 한다. 특히 저자는 무턱대고 "강한 남자" 를 지향하는 한국사회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고, 이를 비판하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도리어 훈수를 두는 경향이 커지는 것에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저자의 작업에 탄력이 붙게 만든 계기는 2013년에 있었던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였다고. 저자가 보기에 이는 국가 수준의 군대식 시민교육이었고 군인정신에 대한 무분별한 찬미의 현장이었는데, 저자가 이를 비판하면서 수업중에 해당 뉴스를 틀었을 때 현장에 사고 희생자의 누나가 강의를 듣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사고의 상세한 소식이 재생되는 동안 해당 여학생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고 배려할 겨를도 없었던 저자는, 이 학생이 상처를 받아 수강포기를 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본서를 저술할 수 있었다고.

책 전반에 걸쳐서 작은따옴표가 과도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등장한다. 출판사 측에서 따옴표의 사용에 대해서 한번 표기상의 통일을 거친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저자의 글쓰기 방식의 특징일 수도 있어 보인다.

사회학을 배경으로 하여 남성성을 분석하는 다른 책으로서 《남성성/들》 이 있으며, 진화심리학을 배경으로 하여 (아마도 본서와는 크게 대립각이 세워질 것으로 보이는) 남성을 주제로 삼은 책으로는 《소모되는 남자》 가 있다. 대중강연자 및 남성교육자인 토니 포터(T.Porter)의 저서 《맨박스》 역시 "강한 남자" 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 관련성이 있다. 더 많은 도서로서, 국내 페미니스트들이 출판한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나 강준만 교수의 저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연세대학교에서 펴낸 《그런 남자는 없다》, 남성교육 강사 잭슨 카츠(J.Katz)의 《마초 패러독스》 역시 남성성에 대한 논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2. 목차


본서는 본래 연재물로 나오던 것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신체부위에 대응시킨 각 장의 제목은 소제목들과는 서로 잘 맞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구분한다면, 1장은 남성 간의 관계와 폭력적 사회화를, 2장은 남녀 간의 관계와 가부장적 태도를, 3장은 여성에게 불이익을 주는 구조적 문제역차별 논리에 대한 비판을, 4장은 여성들이 삶 속에서 직면하는 상충되는 역할 기대의 어려움을 주장하고 있다.

3. 작가의 주장

각 챕터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내용들을 각각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몇 종류로 추려서 하단에 다시 챕터의 순서와 무관하게 소개할 것이다. 우선 1장에서 언급하는 바 한국 남성들이 군복무에 대해 늘 비난하고 욕을 퍼부으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한편으로는 군대에 다녀와야 남자가 된다고 믿고 사회생활도 잘 할 것으로 기대하는 등의 "예비역 프리미엄" 을 누린다는 이중적인 측면을 먼저 소개한다. 다음으로 3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국 남성들이 생각하는 젠더 불평등에 대한 태도를 저자가 어떻게 비판하는지 정리한다. 그리고 나서, 4장에서 언급되는 바 한국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2장에서 나열된 것처럼,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여성혐오적인 방식들에 대해서 정리한다.

작가가 주장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1. 군대유체이탈 화법: 끌려가는 곳? 남자가 되는 곳?

저자는 자신의 아내가 출산하던 당시의 경험을 들어서 군대 문제를 끄집어낸다. 저자는 아내의 출산 당시 제왕절개 권유를 받았지만 "이거 다 의사가 돈 벌려는 수작" 이라며 무시해 왔는데, 막상 유도분만이 실패로 돌아가고 의사에게 핀잔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실상은 자연분만에 집착하던 것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분만실의 심리학 vs. 분만실의 사회학〉 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리고, 오마이뉴스 측에도 기사로 송고했는데, 덧글란에서 난리가 났다. 전체 글의 마지막 문장 마지막 대목에서 저자가 지나가듯이 '분만실 40시간에 비하면 군생활 26개월은 실로 장난이었다.' 라는 표현을 덧붙였는데, 이것에 시비가 걸려서 수많은 군필자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자신의 군복무에 관련된 주제의 언급은 아무리 간략히 지나가더라도 엄청난 반발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언급하진 않았지만 대략 10여 년 전의 월장 사건과도 (스케일은 훨씬 작지만) 유사한 양상.

저자에 따르면, 남성들이 이처럼 군복무 경험을 신성시하는 것은 언행불일치의 성격을 갖는다. 한국 남성들은 군생활에 대해서 "보상이 필요하다" 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 된다" 고 주장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즉, 군필자로서 사회생활에서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왜 군 가산점 위헌 판결에는 벌떼같이 들고일어나 분개하는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 자체가 이미 하나의 군대와 같고, 군대에 적응 잘 한 사람은 사회에도 적응을 잘 하며, 군대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사회에서도 대개 통한다. 게다가, 군생활의 경험과 경력을 동료 혹은 윗서열의 남성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대화를 통해 남성 간의 어색함을 깨뜨리고, 협상이나 교섭도 수월해지며, 상대방에게 제대로 된 어엿한 남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취업 시에도 군필과 미필을 구분하며, 다른 단체생활에서도 (ex. 대학 기숙사) 군 미필자들은 늘 예비역들에게 면박을 받기 일쑤다.[3] 이쯤에서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군생활 2년이 정말로 남성들의 주장처럼 '손해' 인가? 정말로 '버리는 시간' 인가? 군필 딱지를 통해 얻는 엄청난 사회적 이득은 뭐란 말인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성들은 군대를 증오하는 만큼 옹호하며, 이 때문에 군대 떡밥만 나오면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 나타나게 된다. 사실 군복무 기간 단축에 반대한다거나 "요즘 애들은 군기가 빠졌다" 고 혀를 차는 남성들도, 본인들의 군생활에 대해서 무슨 대한민국 국방부 홍보대사처럼 멋들어지게 말하지는 않는다. 이들도 자신의 군생활의 터무니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 이라고 말하기는커녕 " 같았던 시간들" 이라며 원색적으로 욕을 퍼붓는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는, 군복무 기간을 줄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갔다 와 보면 안다, 오히려 기간을 늘려야 한다!" 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국방부를 포함하여 복무기간 연장의 주된 논거로 옹호자들이 거론하는 것은 숙달된 전투원을 양성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병장 시기를 돌이켜 보면 기껏 숙달했던 전투력이 하락한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문제는, 많은 예비역들은 군생활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폄하하지만, 사회에서 자꾸 군필자들에게 "역시 진짜 남자", "역시 리더십 있다" 고 띄워주니 "사실 군대는 지랄 같은 곳"이라면서 대놓고 털어놓지 못하게 된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여,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남성 특혜, 정확히는 예비역 프리미엄이 존재한다는 신호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이중적인 모습은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훈련에서 나타나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언행으로 잘 설명될 수 있다. 예비역들은 유독 동원훈련장에서 일탈을 추구하고 단정한 매무새를 거부하지만, 희한하게도 이들이 민방위가 되어 훈련을 받으러 가면 가장 심한 일탈이 고작해야 잠을 자는 것 정도로 순하디순한 양들처럼 바뀐다. 사회학자로서 저자는 이러한 극단적 일탈에서 극단적 순응으로 한순간에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며, "마치 사상전향처럼 보인다" 고까지 표현했다. 양자간의 차이점은 저자가 보기에는 단 두 가지인데, 첫째는 예비군들은 군인 신분으로서 군복을 입지만 민방위는 민간인 신분으로서 사복을 입고 모인다는 점, 둘째는 예비군들은 일탈을 통해 현역들의 동경을 받지만 민방위들은 (마찬가지로 민간인인) 공익근무자들의 통제를 받기에 따로 동경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정리하는 것은, 의기양양하고 폭력적이며 우쭐대는 예비군 남성들의 민낯이야말로 바로 우울하고 음침한 표정의 민방위 남성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남녀가 서로 만났을 때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국 남성들은 여성들 앞에서 남성이라는 군복을 입은 채로 우쭐거린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젠더분쟁에 대해 저자가 견지하는 기본적인 틀로서 본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저자의 이런 주장은 남성들 사이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남성들은 군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분명 외부자일 거라고, 군생활을 해 본 사람은 옹호하면 옹호했지 절대 비판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군필 남성[4]인 저자가 군대를 비판하면, 일차적으로 남성들은 "여자 아냐?" 의 반응을 보이고, 그 다음에는 "미필 아냐?" 의 반응을 보이며, 최후에는 결국 "아니, 멀쩡히 군대까지 갔다온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의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일단 전역을 했다면 그때부터는 민간인의 신분으로서, 내부인이 아닌 외부인의 관점에서 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군대는 외부자의 의견을 차단한다는 게 문제이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군에 대한 비판을 받으면 "미필 주제에 군대를 아느냐!", "해병대도 아니면서 기수열외에 이러쿵저러쿵하느냐!" 같은 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진중권(2007) 씨도 이에 대해 일침을 놓았는데, "알이 곯았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일부러 닭이 되어 알을 낳아볼 필요는 없다"는 말이 있다.

다음으로 군 비판론에 대한 또 다른 부정적 태도는, 군 부적응자가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이다. 저자는 군 부적응자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다가 마침내는 자살이나 프래깅 등의 극단적인 사고를 일으켜서 언론에 보도되는 유형이 있고, 마침내는 독하게 마음먹고 군에서 요구하는 것을 전심으로 따르다가 최악의 괴물이 되어버리는 유형이 있다는 것이다.[5] 여기서 문제는 의외로 후자인데, 군에서 요구하는 폭력적 남성성을 과잉사회화하는 흑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폭력을 재생산하고 대물림한다. 처음으로 군 부적응 문제를 공론화시켰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너무 어린 사람들끼리 너무 오래 함께 살았기 때문" 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저자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거론하면서, 군에서 폭력적으로 구는 인원들은 원래부터 그런 종자인 인간 말종들이 아니며, 군대라는 사회적 환경과 조직적 상황에 의해서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군대는 원래는 선량했던 남성들을 폭력적으로 재교육하는 온상이다. 특히 군대에서는 물리적인 폭력으로 조직 내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적인 집단폭력으로 특정인을 린치하고 따돌리는 것이 "남자답다", "군대 체질" 이라는 찬사를 받는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군내 폭력의 양상은 갈수록 선임병들이 소인배에 비겁자처럼 구는 경향을 띠고 있는데, 요즈음에는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가장 남자답고 멋있다는 암묵적 인정을 받더라는 탄식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나온 적이 있다고... 남성들은 군대에서 폭력에 무감각해져 가며,[6] 이는 영화 《디 벨레》 에서도 잘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폭력에 호의적인 문화는 전역 후에도 대학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계속 유지되며 폭력과 함께하는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이기에 우리나라는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마음껏 '부려먹기에' 최적화된 환경이라고.

대한민국 사회는 이처럼 일상의 병영화가 완료되어 있는 사회이기에, 다른 나라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민들을 군인처럼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는 게 저자의 비판이다. 프롤로그에서 나열한 것에 따르면, 박노자(2014)가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던 표현처럼, "전국 병영화는 비공식적 국시"가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한다. 대기업 신입사원 연수 때 100km 행군을 시키는 것, 예능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에서 여성들에게 군대 경험을 시키면서 마지막에는 늘 "남자들이 이렇게 고생하는 줄 몰랐다" 발언으로 마무리하는 것, 연예인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서 4살배기 아이들에게 병영체험을 시키며 "우리 응석받이들이 이제야 좀 어른스러워졌다" 며 아빠들이 흐뭇해하는 것, 미성년 학생들이 스펙에 추가하면 취업에 도움이 된다며 너도나도 해병대 캠프로 몰려가는 것 등이 그 사례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강한 남자"를 부당한 대우 속에서도 오랫동안 군소리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남자로 재정의하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보면 군사독재 시절의 병영문화가 아직도 죽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군사독재적 병영문화에 대한 비판은 이미 여러 차례 몇몇 논객들에 의해 제기되어 왔다. 특히, 한국의 남성성이 군대문화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일찍이 월장 사건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유명세를 얻었던 논객 진중권 씨와도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을 만한 부분은, 한국 사회에서 군대에 관련된 담론은 늘 신성시되어 왔고, 여성에 관련된 그 무엇과도 차마 비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위에서 언급했었던 박노자 씨와도 접점이 있다. 그 역시 "내 모국에서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을 보니 인격 자체가 망가져 있었다, 대한민국의 병영문화 역시 다르지 않아 보인다" 등의 비슷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3.2. 남자로 살기 힘들다?

저자는 3장에서 역차별 담론을 꺼내든다. 요즘 세상은 갈수록 남성들에게 권리는 없고 의무만 부여된다면서, 남자로 살기 너무 힘들다는 불평불만이 자주 나온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아버지 세대와의 비교를 통해 나온 발언이지만, 기본적으로 미숙한 비교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버지 세대는 불평등의 차이가 컸고 지금은 그 차이가 상대적으로 작아졌을 뿐, 아직은 여성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불평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그걸 보고 이제는 여성우위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정도의 작은 불평등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으로서 살아가는 의무가 막대할 수는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그에 대한 분노는 여성들과 페미니즘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부조리를 자아내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향하는 게 올바르다.[7] 저자는 남성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건전한 시민의식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비하와 차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신세다. 대학 졸업 이후 취업전선에 뛰어들 것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지만,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더 심한 불안을 느낀다. 한 예로, 저자가 아는 어떤 여학생이나 동년배 여성도 "나중에 잘 안 되면 뭐, 아버지 가게라도 물려받아야겠죠" 라고 가볍게 말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사회 진출에 대해 남학생들보다 더 큰 불확실성을 느끼고, 그 결과 남학생들보다 더 악착같이 공부하는 경향이 있으며, 강의 때에도 앞자리 중앙에 앉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학생들은 이런 필사적인 간절함이 덜하다는 것만 보더라도, 남자로 살기는 아무래도 좀 더 쉽다는 게 저자의 요지다.

또한 저자는 사회적 논쟁거리가 된 노키즈존에 대해서도 비판적 목소리를 낸다. 저자는 노키즈존이 만일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여 점포 측의 금전적 손해를 방지함에 그 목적이 있다" 는 맥락에서 논쟁이 전개되었다면 부정적으로만은 보지 않았을 것임을 시사하면서, "시끄러운 아이들을 무개념 엄마들이 통제하지 않으니, 그런 유아동반 여성 고객들은 전부 금지해야 한다" 는 맥락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노키즈존 찬성파들은 자신들의 논거로 오직 "컵에 소변을 받는 엄마들이 있다, 똥기저귀를 버리고 가는 엄마들이 있다, 아기 몫의 음식을 공짜로 달라고 떼쓰는 엄마들이 있다" 를 찾는 데에만 골몰한다는 것이다. 노키즈존의 정당성을 자꾸 차별에서 찾는다는 것으로, 아무리 그 의도가 좋았더라도, 같은 논리를 들어 길거리에서 흡연할 여지가 있는 모든 남성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온 적이 없는 걸 보면, 역시 남성들은 암묵적으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가 보기에 맘충들이 끼치는 피해보다 길거리 흡연자(즉 절대 다수가 남성)들이 끼치는 피해가 오히려 훨씬 크다는 것이다.

또한 직장에서의 성차별이 공론화될 때,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 여부보다는 자꾸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의 합리화의 논리부터 먼저 찾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직장에서의 성범죄 사례에서도 가해자가 왜 그런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으며 어째서 양해받아야만 하는지를 먼저 따지고, 임금격차와 승진 차별, 채용 차별에 있어서도 어째서 여성들이 그런 대접을 받아야만 했는지를 사후적으로 해명하려 애쓰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남성들은 집단 내 협동에서 여성들이 뒤처진다고 주장하지만, 여학생들끼리 모여서 조별과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게 하면, 정확히 똑같은 논리를 들어 남학생들을 비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말인즉슨, 남학생들은 있어 봐야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성별만 대칭일 뿐 비난의 요지는 양측이 모두 똑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비협조적인 남성에 대해서는 그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만, 비협조적인 여성에 대해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거 봐, 여자들은 다 저렇다니까" 의 한 마디를 꺼낸다. 저자가 보기에 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이 아직도 작동한다는 신호다.

특히 저자는 과거와 비교하여 과연 여성들의 사회적 영역에서의 삶이 나아졌는지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만일 여기에 긍정할 수 있으려면, 과거에는 유효했던 것으로 여겨졌다가 현대에 들어서 해묵은 남성중심적 관점이라고 비판 받아 바뀌게 된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아직도 유효하게 작동하는 사례들이 있다. 우선 종교생활에서 여성들은 아직도 차별을 받고 있다.[8] 적어도 가톨릭에서, 절대자는 늘 남성으로 묘사되고 그 주위에서 수발을 드는 천사들은 전부 여성처럼 묘사된다. 종교행사 중에는 늘 남성들이 축복을 하는 등의 권위 있는 역할을 맡지만, 여성들은 그 남성들의 수발을 들고 들러리가 되어야 한다. 주교급의 일부 남성들은 거창한 대중동원적인 "환영식" 을 당연하다는 듯이 누리면서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 종교적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언제나 남성은 중심적이고 여성은 주변적이다. 문제는 이 뼈대가 세워졌던 것이 대충 잡아서 2천 년 전의 과거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세상 많이 나아졌다, 여자들이 저렇게 남자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고." 같은 소리가 나오냐는 것이다.

저자는 논개의 사례를 들어서, 역사적 위인이 당대에 받아들여지던 양상 그대로 현대에도 똑같이 소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대의 조선 사대부들은 충(忠)이라는 가치를 지향점으로 삼고 있었는데, 어지간한 남성들도 차마 하지 못할 자기희생적인 충의 실현을 여성인 논개가 이루어내자 엄청난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이다. 분명 유교적 가치를 고려하면 그녀를 기리고 높이 대우하는 것이 맞는데, 그들이 갖고 있던 '남자로서의 자존심' 은 감히 여자가 그런 위대한 일을 해냈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실록에 즉시 실리지 못하고 130여 년을 끌어야 했으며, 지역에서 인정해 달라고 줄기차게 상소를 올려도 "증거를 제시하라" 고만 일관했고, 마침내 마지못해 떠밀리듯이 인정할 때에도 "기생 논개" 라고 힘주어 명시했다는 것이다.[9] 그런데 이런 남성중심적 시각이 고쳐지지 않고 현대에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면, 어떻게 현대에 들어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또 언급할 만한 것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역차별을 부르짖어야 할 정도로 높아졌다면 응당 바뀌어야 할 언어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세계에 여성혐오적 내용을 담은 속담들만 총 15,735개가 존재한다고 하며, 누군가가 이를 《세계 여성 속담 사전: 지혜 혹은 잘 포장된 편견》 제하의 책으로 모은 결과 552페이지에 이르렀다고 한다.[10] 저자가 문제삼는 것은, 아직도 이런 속담들 중 많은 것들은 사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놓고 여성을 비하하는 속담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여성들의 지위가 그렇게나 크게 상승했다면 반드시 사라졌어야 할 표현들이 몇 가지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나열을 언급하자면, '커리어우먼', '워킹맘', '현모양처', '딸바보' 같은 표현들은 존재할 수 없어야 한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이 사회적으로 돋보이게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불행한 삶을 자녀의 성공을 통해 보상받으려 하지 않을 테니 사교육 과잉도 감소할 것이며, 이혼 역시 부정적인 딱지를 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단어들과 그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 건재하게 소통된다는 것은, 결국 불평등이 줄어들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갈 길이 상당히 멀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3.3. 여자로 살기가 더 힘들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주어야 할지 몰라서 늘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성들은 이렇게 살면 이렇다고 욕을 먹고, 그 때문에 저렇게 살면 또 저렇다고 욕을 먹게 된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저자는 EBS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 을 소개한다. 다큐에서 여성들은 후줄근한 옷차림의 남성에 대해 점수를 매겨 달라는 요청을 받자 "점수 안 주면 안 돼요?" 라면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같은 남성이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변호사 같다, 같이 만나서 식사라도 하고 싶다" 는 호평이 이어졌다는 것이다.[11] 하지만, 남성들은 옷차림만 바꾸면 금세 사회적인 대우가 바뀔 수 있지만, 여성들은 아무리 잘 차려입어도 그만한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 여성이기에 아무리 말끔하더라도 생산성은 아무래도 제한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그렇다고 여성들이 이번에는 자신의 고소득을 암시하기 위해 값비싼 옷차림을 하면, 이번에는 "사치스럽고 흥청망청 돈을 쓰는 여성" 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옷을 못 입은 여성은 별 볼 일 없는 여성이고, 옷을 잘 입은 여성은 별 볼 일 없는 본모습을 애써 가리려고 사치스럽게 사는 여성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를 대충 각색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기대하고 주문하는 내용이 너무나 복잡하며, 최악의 경우 어떤 경우에도 세간의 시선을 만족시킬 수 없어서 결국에는 욕을 먹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음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본서에서 몇 가지 더 들고 있는데 다름아닌 여성 직원들의 회식 참석 문제, 그리고 옷차림과 성범죄 문제다. 이를 똑같은 방식으로 정리해 볼 수도 있다.[12][13] 특히 우리나라에서 누나의 경우 어머니 못지않은 희생정신으로 유명하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누나들에게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중의 부담을 지우면서도, 오히려 그 실제 양상은 어머니라기보다는 하녀에 가깝다. 게다가 그 역할이 여동생에게는 향하지 않고 오직 남동생에게만 향한다는 것도 문제. 이런 누나들은 회식에 참석하다가도 어린 남동생 밥을 차려 주어야 한다며 먼저 일어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물론 "회식도 업무의 연장" 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후폭풍 없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이처럼 저자는 언뜻 여성들에게 뭔가 긍정적으로 부여하는 이미지들조차 실상은 여성억압적이고 차별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고 지적한다. "누나" 에 담긴 이미지와 유사하게, 흔히 업무 현장에서 홍일점은 분위기를 밝게 하고 남성들을 위로하며 기분을 좋게 할 것을 기대받는다. 저자가 인용한 바 배우 류승룡 씨는 한때 촬영장에서 여배우의 덕목으로서 '애교' 를 거론하기도 했다고. 정작 남성들은 "애교 부려서 분위기 좋아졌으면 됐지 뭘 이런 걸로 시비냐" 라는 반응이 다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에서는 여성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압력이 존재한다는 사례가 된다는 것이다.

계속 사례를 들자면 여성 전용 흡연부스를 들 수 있다. 언뜻 이는 페미니즘의 승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의 관점에서 이는 씁쓸하기 짝이 없는 세태이다. 지금껏 그 어떤 여성도 세간의 시선을 무릅쓰고 길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지 못했는데,[14] 어디서나 타인을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흡연하는 것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남성들만이 당당하게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결국 쫓기고 쫓겨난 여성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바로 여성 전용 흡연부스로서, 그 부스 밖의 모든 실외를 사실상 남성 전용 흡연공간으로 승인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여성 전용 공간을 두어서 여성들의 권리가 신장된 게 아니라, 얼마나 지켜지지 않았길래 여기까지 쫓겨왔느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금연 정책이 여성보다는 남성의 흡연율을 더 크게 줄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정부 정책이라고 해 봐야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못 하게 막는 것이 가장 큰데, 원래부터 숨어서 피우던 여성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사례로 술집에서 사람들이 '이모~' 라는 호칭으로 점원을 부르는 문화를 들 수 있다.[15] 특이하게도, 우리는 점원들을 '고모' 라고 부르기보다는 '이모'라고 부르는 편을 선호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이모들이 집에서 권력을 갖지 못하므로 조카와 친근하게 놀아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반영된 거라고 한다. 즉 이모는 기본적으로 조카의 입장에서는 친근한 존재인 것이 맞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집에서 식물인간처럼 지내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관심이 있어도 내색하지 못하고, 신경이 쓰여도 손을 쓸 수 없는 아무 힘도 없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저자가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나가면 이 대목에서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라고 하는데, 한편으로 이런 아주머니들도 본인이 고모가 되었을 때에는 그런 권력의 행사를 보여주어야 하는 이중적 역할을 요구 받기 십상이라고 한다.

더불어 저자는 가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권력의 불평등으로서 남편이 생계부양자라는 점을 언급한다. 물론 많은 남성들은 "마누라에게 용돈 타 쓰고 있는 마당인데 무슨 말이냐, 우리 가족의 경제권은 마누라가 쥐고 있다"고 항의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지점에서 경제권과 경제력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내들은 경제력의 결여를 대가로 경제권을 받았다는 것이다. 즉, 생계부양은 남편이 하되 금전의 관리는 아내가 하는 것으로 하고, 그나마 그 관리라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지출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 예속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16] 이를 극단적으로 말하면 "돈을 못 벌면 관리라도 잘 해야지!" 라면서 아내에게 가계부를 떠맡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다행스러운 것은 점점 현대에 들어서 가부장적 남편의 이미지에 미안함을 느끼는 남편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male-breadwinner model)은 깨지지 않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대가 변해서 모델은 점점 비효율적이게 되었지만, 폐기되기는커녕 모델 속 약자인 여성들이 오히려 그 비효율성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렇듯 신산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도 지쳤을 때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 먼저 남성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식을 살펴보자. 일상에 지친 남성들이 하는 것은 주로 피 튀기는 폭력적 격투기 방송을 시청하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는 직장인들의 "밤 문화", 즉 1차와 2차, 경우에 따라 성매매까지 포함되는 유흥문화를 즐긴다. 물론 이것은 남성들의 본성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스트레스에 치이며 살다 보니 일부가 부도덕한 문화에 순간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확히 동일한 현상이 여성들에게도 벌어진다. 이들에게는 막장 드라마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상에 지친 가정주부들은 아침 시간을 남편의 출근과 자녀의 등교를 위해 소비한 뒤, 이 애처로운 시간이 끝나고 나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아침드라마를 찾게 된다고 한다. 물론 이런 장르가 막장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막장성의 정도로 따지자면 현실에서 벌어지는 직장인들의 유흥문화가 더욱 막장적인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은 간신히 짬을 내어 기분 전환이라도 하려는 주부들이 드라마에 빠져 있는 상황 자체를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남성들이 심야에 즐기는 것과 여성들이 아침에 즐기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한다.

어떤 여성들은 초월자에게 의지하게 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유독 개신교 성직자들이 일탈적 발언을 많이 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일탈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목사가 아무 말이나 해도 다 받아주는 신자들이 존재한다는 사회적 문제점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저자는 개신교계가 주로 4:6 정도 비율로 여성 신자들 위주의 구성을 따르는데, 그나마 남성들은 인맥관리 목적으로 다니는 반면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많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이런 여성들은 자신이 가정주부로서 사회 속에서 생산성을 내지 못한 만큼 남편과 자녀들이 대신 성공해 주기를 원하고, 이런 대리만족의 심리가 그대로 기도로 표출된다. 노명우(2013)에 따르면,[17] 이들이 온갖 시시콜콜한 것까지 기도하게 되는 배경에는 개인을 그만큼 지원하지 못할 정도로 병들어 있는 사회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결국, 이 여성 신도들은 당장 급한 것이 자신의 가정에 닥친 문제들 뿐이며, 목사가 어떤 발언을 하든지 이를 감시하고 제재하는 데 관심이 없기에, 목사들이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조차 잃게 만든다고 한다.

3.4.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

저자는 2장에서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 간 교류의 양상을 사례별로 정리하고 있으며, 이를 목록화하면 다음과 같다.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면, 한국 남성들은 여성들 앞에서 자신이 무례하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항상 당당하다는 점, 심각한 갈등의 원인을 일차적으로 여성에게서 찾거나 그것이 안 되면 애써 진실을 회피한다는 점, 평소에는 여성들의 영역에 손도 안 대다가 남들 앞에서는 사소하게 숟가락 하나 얹어준 뒤 엄청나게 으스대고 생색을 낸다는 점,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자신 정도면 도덕적으로 수준 높은 남성이라고 자화자찬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장이야말로 한국 남성들에 대한 가장 날선 비판의 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사례들 중에는 누가 봐도 명백히 남성들이 잘못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사회적으로 꽤 잘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특히나 선의에서 나온 것인데 이상하게 나쁘게 해석된 듯한 사례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사회학은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며, 그 이면에 얽힌 원인을 찾기 위하여 상상력을 동원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차원에서는 분명히 여성을 향한 따뜻한 손길로 여겨질 만한 것들이, 구조의 차원에서는 뜻밖에도 여성을 향한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MT에 가서 팔을 걷어붙이며 "오늘만큼은 내가 요리사!" 를 외치는 남성은 정말로 학과의 학우들을 위한 배려와 봉사의 정신에서 그런 말을 했을 수 있고, 그 주변에서 "어머나 선배님 센스 있으세요!" 를 호들갑스럽게 외치는 여성들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았을 수 있지만, 이런 남녀가 모이고 모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요리는 원래 기본적으로 여자들이나 하는 거고, 남자는 특별한 날에나 남들 앞에서 어쩌다 가끔씩 하는 거지" 라는 사회적인 암묵적 합의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4. 비판

여느 래디컬 페미니즘 저서들이 그러하듯, 남성이라는 집단 전체에 대한 악마화, 일반화의 오류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일반화의 오류는 딱 이른바 '피싸개' 따위의 여성혐오적 표현이나 조선족, 외노자, 무슬림들에 대해 만연해 있는 오리엔탈리즘적 인식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한국 사회가 거대한 병영과 같아서 저자가 언급한 것과 같은 모종의 성역할을 은연중에 주입한다 하더라도 모든 남성들이 거기에 굴종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거기에 문제의식을 품고 저항하는 남성들도 있을 수 있고 또 있다. 이런 악마화, 일반화는 '모든 여성운전자는 운전을 엉망으로 한다', '모든 무슬림은 테러범이다' 따위의 편견 및 고정관념과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적어도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는 성평등을 공식 가치로 천명하고서 공식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여전히 은연중에 성차별적인 인식과 사고에 경도된 남성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엄연히 민주화 이후의 공식 교과과정에서는 비록 모순과 한계가 있을지라도 최소한 명목상으로나마 성평등의 당위성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성역할 고정관념을 타파해야 한다고 교육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리고 그래서 저자가 일반화해 악마화한 것과 달리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품고서 성평등을 지향하는 남성들도 엄연히 존재하는데(마치 모든 여성들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차별에 굴종하지는 않는 것처럼), 이런 양면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의식은 대다수 남성들 입장에선 본인의 이해관계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허위의식, 노예의식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의식에 대해 이런 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주의적으로 낙인을 찍고 단죄하는 방향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그런 후진적 의식을 극복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면 되었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변종인 '페미천국 마초지옥'일 뿐이다. 그렇게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쳐 대 봐야 한국 개신교가 갈수록 망해 가기만 하는 걸 떠올리면 이게 왜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남성들의 남성성의 사회화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군대를 거론한 것은 책의 전반부의 응집성을 높이고 있으나, 한국 여성들의 여성성의 사회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메커니즘도 제시되지 않고 단지 사례의 나열만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후반부는 분석서라기보다는 오히려 《82년생 김지영》 과 같은 에세이의 성격까지도 갖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어쩌면, 군사적 폭력의 문화가 여성들에게까지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나마) 사회화를 일으켰을 수도 있고, 혹은 남성들의 사회화 기관이 군대라면 여성들의 사회화는 모녀관계 혹은 유치원 교사와의 일대일 관계 등에서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궁금해할 수도 있음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3장에서 논개 이야기를 꺼내면서, 저자는 논개가 기생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해당 문서에서도 보듯이, 논개는 최초 문헌에서 기생으로 명확히 적시되었으나, 현대에 들어 오히려 논개가 사실은 귀족집 출신인데 복수를 위해 기생으로 적을 올렸다는 (다분히 이념적으로 각색된) 주장이 나타났다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논개는 귀족집 출신이 분명함에도, 최초 사료에서는 사대부들이 여성의 활약을 부끄럽게 여겨 기생으로 치부했으며, 현대에 들어 오히려 젠더 평등하고 올바른 관점이 뒤늦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같은 문헌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의 차이일 수도 있으며, 딱 잘라 어느 쪽이 옳은 설명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렇듯 의견이 분분한 사안을 들어서 "남성들이 여성 위인을 소비하는 방식이 이러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리고 저자는 본문과 뒤표지에서 성격차지수가 145개국 중 115위라는 통계를 언급하였는데,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성격차지수 통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와 관련영상을 참조하면 도움이 된다. 반대로 UN 산하 UNDP(유엔 개발 계획)의 성불평등지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이 세계에서 열한번째로 양성평등하며, 아시아 2위라고 발표한 자료도 존재하기 때문에, 성격차지수만을 가지고 남성들의 경험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온당한 사회 분석이라 보기 어렵다.

또한 미러링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무리 논리적으로 반론을 펼쳐도 남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미러링이라는 묘안을 짰다" 는 서술은, 마치 남자들을 그저 우기기만 하는 바보들인 양 묘사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간에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는 왜곡, 과장하여 부각하지만 불리한 자료는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미러링의 사례로 제시한 "어딜 남자가 담배를 피워!" 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대해서도, 사실은 이것이 "남성 흡연율이 여성 흡연율보다 더 높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익숙하기 때문일 뿐" 이라고 간단히 대안적 설명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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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본서의 에필로그에서는 저자의 당시 7살 난 딸이 저자가 평생 가르친 적도 없는 '섹시한 공주님 포즈' 를 취하며 저자에게 "아빠, 나 이뻐?" 를 백 번도 넘게 물어봤다고 하면서, 이것이 아마도 가정교육으로 저항할 수 없는 유치원에서의 사회화가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우려하는 내용이 나온다. 가정에서 아무리 신데렐라 이야기를 안 가르쳐도 결국 유치원에서는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2] 하술하겠지만 아내가 분만실에서 겪었던 고통을 남성들의 군복무의 고통과 비교했던 한 문장이 발단이 되었다.[3] 심지어 한국사회의 적지 않은 "인싸"(normie) 들은 집단에서 혼자 겉도는 것 같은 군필자가 있으면 대놓고 "넌 군대 다시 다녀와야 한다, 너 군필 맞냐" 며 공공연히 모욕을 주기도 한다.[4] 구체적으로는 행정병 출신이라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저자가 이를 밝히면 "행정병 주제에 무슨..." 하면서 비웃는 남성들도 수도 없이 봤다고 한다.[5] 군에서 흔히 "악마" 라는 별명이 붙은 선임병들은 이등병 시절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의외로 그다지 잘 하지는 못한 경우가 많다. 잘해봐야 그냥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적당히 하던 인원 수준. 저자 역시 이 지점을 자신의 일화를 들어서 언급하고 있다. 오히려 늘 칭찬 받던 후임병은 나중에 선임이 되면 상당히 느긋한 성격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매사 공사구분이 뚜렷하고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인원들이 이런 경향이 크다.[6] 남자답다는 칭찬은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도 주어지지만, 타인이 휘두르는 폭력을 거뜬하게 참아 넘기는 것에 대해서도 주어진다고 한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를 들자면, 이런 경향은 체벌이 일상화되어 있던 시절의 흔한 남고에서 자주 관찰되었다고 한다. (ex. "선생한테 저렇게 빠따를 맞고도 비명 한 번 안 지르다니, 저 새끼 생긴 것과 다르게 남자답네!")[7] 일부 남성들이 연애와 결혼의 부담으로 인해 아예 비혼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일단 "용감하고도 아름다운 포기" 라고 긍정하기는 하지만, 이는 그 사회가 그만큼 나쁜 사회라는 신호이기도 하다면서 이 역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으로 연결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제안한다.[8] 참고로 저자는 유신론자이나, 현재 종교적 소속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가톨릭 냉담자라고 하며, 종교적 교리와 조직 체계 특유의 권위주의적인 측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9] 논개의 신분과 정체에 대해서는 사실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하단의 "비판점" 단락에서 한번 더 설명한다.[10] 여성혐오적 속담들 중 일부를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데, 본서의 pp.228-229를 참고할 수 있다.[11]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이를 강의실에서 접하는 남학생들의 재미있는 반응을 언급한 바 있다. 남학생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외모를 바탕으로 평가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면서도, 자신들 역시 평가자 여성들의 외모를 기준으로 "지 얼굴은 모르고..." 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12] (여성이 회식 자리에 참석하려 하자 남편이 만류함) → "애는 안 봐? 회식자리에 술 돌리면 어떤 취급 받는지 몰라서 그래? 술 취해서 늦게 들어오는 꼴은 못 봐." → (이 여성이 1차가 끝나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자 상사가 만류함) → "벌써 갈 거야? 분위기 깨지게? 회식도 업무의 연장인 거 몰라? 허허 참, 이래서 여직원들은 문제라니까."[13] (여성이 정장 바지 차림으로 늘 출근함) → "여자가 좀 여자다운 맛이 있어야 하는데 저렇게 머스마 같아서야..." → (이 여성이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여성스러운 스커트 차림으로 출근함) → "저렇게 입으니까 괜히 지하철에서 성희롱을 당하지, 저것도 다 남자들 꼬시려고 저러는 거야."[14]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어딜 여자가 담배를 피워!" 라는 말보다는 "어딜 남자가 담배를 피워!" 라는 말이 더 낯설게 들리고, "흡연은 임신에 안 좋다는데" 라며 여성의 흡연을 만류하는 사람은 있어도 "흡연은 정자 수를 줄인다던데" 라며 남성의 흡연을 만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15] 흥미롭게도 고려대의 심리학자 허태균 교수가 《어쩌다 한국인》 에서 이를 언급한 적이 있다. 단, 여기서는 이를 통해 한국인들의 확장된 가족성 및 '우리성'(we-ness)을 설명한다. 사회학의 관점에서는 "어째서 겨우 이모밖에는 안 되는가" 의 질문을 한다면, 심리학의 관점에서는 "어째서 생판 남남끼리 이모씩이나 불러주는가" 의 질문을 한다는 차이가 재미있다.[16] 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남성중심적 기업체들에서 흔히 회계나 경리, 비서직을 여성 위주로 선발하는 것 역시 이와 마찬가지 배경이 있을 수 있으며, 권한의 범위라는 것 역시 거의 동일할 수 있다.[17] 노명우 (2013). 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 사계절.[18] 저자에 따르면, 이는 전시상황의 특수성으로 옹호될 수 없다.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미국의 경우, Orderly Departure Program을 통해서 미국인 혼혈아들의 미국행을 지원해 왔지만, 한국은 전쟁 이후로 라이따이한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 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19] 심지어 1995년 5월 2일 한겨레신문 기사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기다리다 못한 아내가 한국으로 남편을 찾아오려 하자, 해당 여성에게 출입금지 명령을 내려 달라고 국가에 요청한 남성도 있었다고 한다.[20] 저자 부부가 일부러 동네의 재래시장에 방문하여 두어 시간 동안 관찰해 보았는데, 서른 명이 넘는 남성 흡연자들이 공공연히 꽁초를 들고 걷는 모습을 보았지만 여성 흡연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21] 강인규 (2012).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당신에게. 오마이북.[22] ex. "술 마시고 강간하는 것에 비하면, 술 마시고 섹스를 요구하는 나는 문제가 안 된다", "술 마시고 애인을 죽이는 놈에 비하면, 술 마시고 가끔 물건 집어던지는 나는 양반이다", "집안일에 수수방관하는 남편들에 비하면, 어쩌다 쓰레기라도 한두 번 버려주는 나는 자상한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