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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02:35:55

진화심리학

1. 개요2. 진화심리학의 역사3. 진화심리학의 반대의견과 그 반론
3.1. 실험, 증명의 부재3.2. 유전체학과의 모순3.3. 진화생물학과의 모순3.4. 통계적 오류
3.4.1.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혼동
3.5. 인간의 관점의 투영3.6. 학계 내의 관점 차이
3.6.1. 생물학적 결정론3.6.2. 범적응주의
3.7. 이데올로기 관련 비판
3.7.1. 우익 이데올로기의 합리화?3.7.2. 자연주의적 오류와 도덕주의적 오류3.7.3. 관련 문서
3.8. 비판에 대한 정리3.9. 관련 문서
4. 진화심리학에서의 유의점5. 한국의 진화심리학6. 대학 교육과정으로서의 진화심리학7. 주요 연구자8. 관련 문서

1. 개요

/ evolutionary psychology

인간의 마음이 진화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인간의 많은 심리 기제들이 어떠한 근원을 가지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인지주의 심리학 등의 발달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용어가 자연과학에서 통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73년 기셀린의 논문으로 추측되지만, 심리학계에서는 오히려 미국의 1세대 심리학자라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W. James)가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evolutionary psychology" 단어를 주창했다. 또한 심리학사(史)를 훑어보다 보면 20세기 초엽에 맥두갈 같은 사람들을 비롯하여 본능(instinct) 담론이 굉장히 활발히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1] 이를 진화심리학의 정신적인 계보에 포함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생소한 용어를 널리 대중화시킨 것은 존 투비(John Tooby)와 레다 코즈미디즈(Leda Cosmides)의 덕이다. 만들어진 지 20여 년밖에 되지 않는 신생 학문이다 보니, 대표적인 인물들은 아직도 거의 다 생존해 있다.

독자적인 커버리지를 구축한 대표적인 진화심리학 저널로서 《Evolution and Human Behavior》나 《Human Nature》가 있다. 그런데 보다 보면 진화론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논문들도 좀 보인다. 물론 진화론 자체가 적용성이 워낙에 크다 보니, 다른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저널들에서도 진화심리학을 차용한 연구들은 심심찮게 게재되는 편이다.

2. 진화심리학의 역사

"언젠가 정말로 중요한 연구를 위한 영역이 열릴 것으로 본다. 심리학은 새로운 기반에 기초하게 될 것이다"
찰스 다윈, 『종의 기원』(1859)에서
진화심리학의 기원은 실제로 찰스 로버트 다윈종의 기원이다. 이 언급이 실제로 실현된 것은 20세기 말에 와서였다.

그 과정은 험난한 길의 연속이었다. 스키너로 대표되는 행동주의가 대세였을 때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학습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인간의 행위가 본능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나 이후 이러한 행동주의의 열풍도 잠잠해지고, 인지주의가 새로운 심리학의 대세로 자리잡자 생물학자들 사이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성향의 논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윌슨사회생물학 논쟁이었다. 윌슨이 주창한 사회생물학은 인간의 본능을 너무 직설적으로, 한편으로는 일면적인 관찰사례를 중심으로 써내려간 나머지 반대하는 과학자들로부터 “생물학적 결정론”이니 “우익 이데올로기”니 하는 비판을 받었던 것이다.

다만 윌슨의 여러 단점이나 미처 자각하지 못한 선입견 등에 대해 레슬리 스티븐슨은 그의 '인간 본성에 관하여'를 중심으로, 김진석은 '통섭'을 중심으로 비판하고 있다. 윌슨의 기본적 시각이나 사고관 자체부터가 이미 기존의 보수적 관념과 편견에서 자유로운 '객관적' 시각이 아니라는 것.[2] 애시당초 연구자 개인이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생겨나는 여러 선입견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철학 등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는 문제이며 현재는 완전하게 '객관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상황. '인간 본성(human nature)'이라는 것부터가 (적어도 사회적 맥락에 한정한 협의적 면에서는)이미 일종의 관념적 산물이라는 견해도 있다. 인류학 등에서도 윌슨이나 진화심리학의 여러 단정이나 일면적 관찰에 대한 반박이 쏟아져나온 상황이다. 덧붙여 윌슨의 번역서들이 이후 수십 년간 축적된 생물학이나 인류학 등지의 새로운 연구결과나 반박들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윌슨 이후에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가 나오고 이쪽 진영의 기반이 다져진 후에, 80년대 후반에 와서 인지주의와 진화론을 결합해 진화심리학이란 용어가 나오게 되었다. 진화심리학자를 자처하는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윌슨 사회생물학의 후예라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지 않고, 이기적 유전자를 정신적 교과서로 적극 활용한다. 하지만 이로써 반대하는 과학자들(스티븐 제이 굴드가 대표적이기 때문에 굴드파라고 한다)과의 격한 대립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3. 진화심리학의 반대의견과 그 반론

'진화심리학이 과학인가?'에 대한 지적들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대체로 현재의 진화심리학이 과학적 방법론을 엄수했는지, 그 결과가 과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에 대한 지적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반대 의견에 대해 반론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긴 하나, 진화심리학 자체가 과도기를 겪고 있는 신생 학문이며 후술할 이데올로기적 논란까지 겹쳐 과학계에서 바라보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부정적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이 분야의 전공자가 매우 부족하여 비판에 맞설 연구자 풀이 작다는 특징도 있다.[3] 학문 자체가 추구하는 사상적 방향에 대한 내용보다도 비판하고자 하는 말들이 더 많다. 그만큼 허점과 오류가 많기 때문에 대체로 비판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3.1. 실험, 증명의 부재

이것은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한 비판으로, 진지한 진화심리학 비판에서 가장 핵심적이면서 큰 줄기이기도 하다.

신경 과학자 라마찬드란은 그의 저서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PHANTOMS IN THE BRAIN)』에서 진화심리학을 조롱하려고 만든 가설이 의심없이 받아들여진 사례를 소개했다. # [4] 그런데 실제로 현직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진화심리학에 대해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는 모양.

가장 큰 문제는, 진화심리학이 일반적인 과학처럼 관찰 → 가설 → 실험 → 이론(입증)이 아니라 가설 단계에서 멈춤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를 확실하게 검증된 과학적 이론인 것처럼 잘못 주장하기 쉽다는 것이다. 가설만으로 그럴싸한 말을 만들기는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실험해 볼 길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극도로 어렵다. 현재까지도 가장 대표적인 반론이며, 실제로 학자들이 진화심리학을 받아들이는 데에 가장 큰 난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교수의 반대 의견이 있다. 요약하자면 진화심리학 역시 반증 가능성에 기반한 증명이 가능하며, 단지 지나쳐보일 정도로 가설 설정이 쉽고 이것이 학술 논문 및 서적이 아닌 일반 대중 언론으로도 많이 유포되어서 마치 진화심리학의 이론 전체가 단순한 가설 설정으로 끝나는 것처럼 오해를 사기 쉽다는 내용이다.[5] 또한 이와 유사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논문으로 "How obvious are hypotheses in evolutionary psychology?"(Trafimow & Gambacorta, 2012.)가 있다. 여기서의 대략의 결론은, "실제로 일부 가설들은 엄밀하지 못하고 개선의 여지가 있긴 한데, 뻔해 보이는(obvious) 가설들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진화심리학이 아주 쓸모없다거나 반대로 최고의 과학이라고 할 수는 없다" 는 것이다. 서로 의미가 상반되는 두 개의 진화심리학 가설들을 나란히 놓고 어느 쪽이 실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지되고 있는지 맞추어 보라고 했는데, 대학생이건 대학원생이건 간에 똑같이 반타작도 못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명하고 많이 인용된 것들의 경우는 더 당연한 듯한 반응을 얻었다고.

그러나 이런 의견은 겉으로는 반론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잘 살펴보면 논점 이탈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증명 부재 비판론의 핵심은, 과학적 이론은 '가설'이 '검증'을 거쳐야 '이론'이 될 수 있는데, 진화심리학이 이 검증 단계를 거치지 않고 건너뜀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이론이 되는 것처럼 어필한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 있다. 즉 가설이 정밀하지 않다거나 뻔해 보인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가설 단계에서 이론화 단계로 넘어갈 때 필히 거쳐야 하는 중간 단계를 건너뛴다는 문제가 핵심이다. 위 단락에 소개된 반론(?)들도 정작 이 중요한 난점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설이 단순하든 뻔하든 어떻든 간에 결국 과학적 증명을 거치지 않고서 이론화 단계로 비약한다는 핵심 문제는 여전히 남는 것이다.[6] 이러한 문제는 진화심리학뿐 아니라 일부 다른 갈래의 심리학에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3.2. 유전체학과의 모순

진화심리학의 큰 문제 중 하나는 현대적인 유전학 연구 결과와 모순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배고픈 유전자 가설(Thrifty Gene Hypothesis)은 현대인에게 많이 발견되는 당뇨나 비만을 수렵채집시대의 유산으로 본다. 신석기 시대 이전에 농사를 짓지 않아 열량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열량을 선호하는 유전자가 선택됐으나 그 결과 영양 공급이 풍부해진 신석기 이후에 이 유전자들에 의한 과도한 영양 섭취로 성인병이 증가했다는 주장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유전학자들은 인간 유전체에 존재하는 자연선택의 흔적을 DNA 시퀀싱 데이터를 바탕으로 직접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따라서 배고픈 유전자 가설이 옳다면 BMI를 증가시키거나 당뇨 위험을 높이는 유전자에 자연선택의 흔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 연구들은 우리 유전체에서 자연선택의 흔적이 매우 드물게 발견되며 심지어는 당뇨 위험을 낮추거나 BMI를 감소시키는 유전자에서 자연선택이 더 많이 발견된다는 보고를 일관적으로 하고 있다. 즉, 배고픈 유전자 가설은 사실상 반박된 주장이다. Cell Metabolism이나 | 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 등에 게제된 논문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3. 진화생물학과의 모순

진화생물학과 연관된 학문에 대한 가장 잘못된 인식 중 하나가 자연선택의 중요성이 과장됐다는 점이다. 이미 1930년대부터 진화생물학에서는 유전적 부동이나 비-무작위적 짝짓기 등이 진화에 미치는 영향이 자연선택만큼 중요하다는 점이 잘 알려져 있었다 링크.

그런데 진화심리학은 유전적 부동이나 비 무작위적 짝짓기에 대한 고려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진화생물학의 현대적인 진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유전적 부동을 다루는 이론들은 오래 전부터 확률미분방정식과 같은 정교한 수학을 도입했는데, 정성적인 논의에 의존하는 진화심리학은 이를 고려하지 못한다.

특히, 일부 진화심리학자는 진화심리학이 정신질환을 이해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규모 데이터를 이용한 진화생물학 연구는 완전히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2018년 네이쳐에 실린 Psychiatric Genomics Consortium(이하, PGC)의 연구는 40,000여명의 대상자를 이용하여 자연선택에만 의존하는 설명들이 조현병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조현병은 상당히 치명적인[7] 질병임에도 굉장히 높은 빈도로 발견됐기 때문에 오랫동안 과학자들에게는 미스터리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조현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들이 다른 이점[8]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전자풀에서 살아남았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상단의 연구에 따르면 조현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들은 대부분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고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조현병 유전자들의 진화적인 이점을 주장한 기존의 가설은 틀렸다고 볼 수 있다.

이에 PGC의 연구자들은 자연선택 뿐만 아니라 유전적 부동과 돌연변이를 함께 고려한 수학모델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유전적 부동과 돌연변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자연선택이 대립유전자 빈도를 낮추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수학적으로 보여주면서, 이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선택과 정성적인 설명에만 의존하는 진화심리학은 조현병 뿐만 아니라 우울증이나 자폐증과 같이 흔하게 발견되는 다른 질병들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3.4. 통계적 오류

학계에서 진화심리학이 공격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진화심리학이 내놓는 주요한 결론들은 대부분 통계적으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

첫 번째, 실험 데이터의 한계다. 통계를 정확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통계이론이 요구하는 이론의 가정들이 만족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무작위 추출(Random Sampling)인데 대부분의 진화심리학 연구들은 유의추출을 사용하기 때문에 결과를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혹자는 연구자원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최근에는 양질의 대규모 공개 데이터(UK Biobank 등) 생산이 활성화되어 이런 문제가 해소된 지 오래다.

두 번째, 실험 디자인의 한계다. 이성을 고르는 기준이 남녀 간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 진화심리학자 David Buss의 연구는 교란요인을 전혀 통제하지 않았다. 그는 37개의 문화권에서 앞서 언급한 성차가 동일하게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비교는 남녀 사이의 소득, 교육수준과 같은 교란요인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성별이 차이를 낳은 것인지 다른 교란요인이 차이를 낳은 것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세 번째, 통계 방법론 적용의 한계다. 보통 통계적 유의성은 p-value=0.05를 기준으로 나눠지는데, 통계 검정의 갯수가 증가하면 1종 오류 확률이 증가하므로 유의수준을 0.05보다 낮춰야 한다. 이를 다중비교(Multiple Comparison)의 문제라고 한다. 상단에 소개한 연구는 37개 문화권에 대해 각각 검정을 했으므로 0.05보다 훨씬 작은 유의수준을 적용해야 하지만 저자인 Buss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다중비교를 보정하는 본페로니(Bonferroni)의 방법으로 유의수준을 조절하면 버스가 보고한 통계적 유의성의 80프로가 사라진다.

네 번째, 학계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통계 조작(p-hacking 등)과 선택적 보고(Publication Bias)이다. 성적으로 자극이 되는 이미지가 남성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주장이 진화심리학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메타 분석은 해당 연구가 노골적인 조작과 선택적 보고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링크.

해당 메타분석에 따르면 선택적 보고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연구들이 보여야 하는 분포와는 다른 분포가 관찰된다.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게 나온 연구들은 출판되지 않고 (선택적 보고), 통계적 유의성의 기준에서 아슬아슬하게 탈락한 연구들에는 부적절한 조작이 가해졌을 때(통계 조작) 나타나는 분포가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해당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이뤄진 대규모 후속 연구들은 메타분석 결과를 지지하고 있다 링크.

3.4.1.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혼동

충실한 통계적 절차를 통해 데이터간 상관 있어보이는 유의미한 결과값을 얻었다고 해서도 문제가 있다.

진화심리학계에서 통계를 통해 얻은 상관관계를 바로 인과관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지적들이 있다.[9] 위에서 서술된 교란요인이나 가정들을 배제하였을 지라도 어디까지나 통계적 철자를 통해 얻은 값은 인과관계를 확증할만한 실험과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상 아직 검토되어야 할 요인들간에 상관관계에 해당한다.

그러나 진화심리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들은 통계적 절차를 거쳐 얻은 결과들을 인과성에 대한 검증 없이 상관관계를 바로 진화적 적응의 결과로 (인과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다.

3.5. 인간의 관점의 투영

우린 사물을 쉽게 이해하려고 의인화해 해석하는 버릇이 있다.
예컨대 동물을 아기에 비유해 감정이입을 하거나, 자연이나 물건, 기계에 마치 의지가 있는 양 이해한다.
(...)그러나 그 같은 사고방식은 역시 제멋대로 지어낸 픽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사물은 자연의 이치를 엄격히 이행할 뿐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중에서-[10]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서 인간이 아닌 대상들에게 인간의 관점을 투영(투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동물의 행위를 유전적으로 설명할 때 인간행위에 빗대어 설명하면서 주로 발생하는데 불필요하게 사람이 아닌 대상들에게 인간의 사회적관점을 적용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물론 자연현상을 알 수 있는 것에 빗대어 설명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론을 언어구조로 표현하여 과학적 인과관계를 확립하기 위해서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다.
가령 인지 능력이 거의 없다시피한 작은 곤충들 중에서 오직 한 수컷과 암컷 개체만 짝짓기를 하며 새끼를 낳는 종은 일부일처제 종이며 여러개체가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는 종은 다처제, 다부제 등 복수혼제 곤충이라고 사회생물학자, 진화심리학자등이 말하는 것은 인간의 결혼제도를 곤충들에게 투영하는 것과 같은 이상한 일이라는 것이다.

즉, 유전적으로 다른 계통에 속하는 동물들은 뇌구조가 다르며 인지구조가 다른, 다른 종에 속하는 동물들은 생물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인간의 관점을 투영하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다.

여기에 대해서 진화심리학자들은 오히려 역으로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습성을 인간들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본다면 생물학적으로 다른 종들을 통해 인간과의 유사성을 설명하거나 인간과 동물과의 유사성을 설명하는 것이 서로가 다른 종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오히려 인간우월주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 또한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동물로 취급한다고 해도 유전적으로 다른 계통에 속하는 동물들의 뇌 구조 및 작동 방식, 기전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전하며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이다.[11]

3.6. 학계 내의 관점 차이

이 항목에서는 주로 굴드파와의 갈등을 서술하기로 한다.

3.6.1. 생물학적 결정론

굴드파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주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생물학적 결정론, 또는 유전적 결정론이라 불리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본능(=유전자=DNA)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처럼 말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진화심리학자의 말에 따르면 범죄자 DNA를 가진 사람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스키너행동주의와 정확히 대칭되는 개념이다. 행동주의는 인간이 학습에 의해 전부 결정될 수 있다고 하였고, 본능의 역할은 거의 없다고 말하였다. 유전적 결정론은 학습은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 문제는 수백 년 이상 논쟁을 벌인 주제로, 영어로는 nature vs. nurture(본성과 양육)라는 라임 가득한 구절로 표현한다.

진화심리학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진화심리학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환경으로 인해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지(유전과 환경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또한 인간의 심리는 타고난 하드웨어 (뇌) + 그 동안의 학습된 기억을 이용해 유전자로 인해 발현되는 본능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3.6.2. 범적응주의

적응은 특정 기능을 위해 잘 설계된 생물학적 특성이고(예를 들자면, 뼈가 칼슘으로 구성된 이유는 칼슘이 자연에 흔하게 존재하는 입자이고, 비교적 튼튼한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부산물은 적응적 특성을 만들기 위해 곁들여진 우연한 특성이다(뼈가 흰색인 이유는, 칼슘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며, 진화적 이유는 없다).

굴드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모든 심리적 특성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적응'이라고 주장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진화심리학자들도 적응부산물을 구별하는 능력쯤은 가지고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이 대표적으로 드는 부산물이 읽기 능력이다. 읽기는 문자가 발명되지 않은 선사시대에는 필요없는 기능이었을 테고, 분명히 시각 능력과 기타 여러 능력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부산물임에 틀림 없다.

여기서 문제 한 가지. 언어는 적응일까, 부산물일까? 굴드파는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대표적으로, 그 유명한 놈 촘스키). 진화심리학 학자들은 언어와 같은 복잡한 능력이 부산물로 생길 리 없기 때문에 적응이라고 말한다(대표적으로, 스티븐 핑커. 그는 그의 대표작 '언어본능'에서 놈 촘스키의 언어이론을 매우 세심히 설명하고서도 촘스키의 '언어 부산물' 이론을 신랄하게 까내려 애증의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놈 촘스키는 이 책에 매우 호의적인 추천사를 써주었다는 사실.).당연하지 핑커는 촘스키의 제자거든

3.7. 이데올로기 관련 비판

진화심리학이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목적으로 하거나 전제로 하고 있기에 유사과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비판 역시 많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은 분명히 진화심리학 자체의 과학성, 완전성 자체에 대한 비판의 측면이 될 수 있다.[12]

다만 진화심리학자들의 이념적 성향, 정치, 경제, 사회적 성향은 다양하고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의할 것. 진화심리학자 중에도 극우극좌, 래디컬 페미니즘마초이즘, LGBT 친화 성향과 호모포비아 성향 같이 극과 극인 성향이 모두 존재한다.[13]

3.7.1. 우익 이데올로기의 합리화?

진화심리학 연구 결과는 남자가 쉽게 바람 피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연구결과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과 이데올로기는 완전히 별개다. 과학은 '그러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진화심리학은 남자가 쉽게 바람을 피우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윤리적으로 정당화하거나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논리학에도 바로 이걸 까는 개념으로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것이 있다. 이 자체에 대해서는 아래의 '자연주의적 오류와 도덕주의적 오류'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경제학에서도 비슷하게 실존하는 경제 현상을 기술하는 실증경제학과, 특정 경제 현상을 지향해야 하는 당위성과 그 현상을 이룰 방법론을 제시하는 규범경제학을 나누어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아주 단순하게 예를 들어, '남성은 진화적으로 보아 많은 수의 성관계 파트너를 가지기 원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연구 결과(내지는 주장)가 있다고 해서 '남성이 바람을 피우는 것은 본능을 따르는 것이므로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자연주의적 오류'의 전형을 보여주는 추론방식이다.[14] 또한 진화론에 의한 사회적 행동의 설명 방식이, 정치적으로 인종주의·성차별과 가부장제·생존경쟁에 따른 계급사회와 엘리트주의를 옹호하는 우파 친화적 설명이라고 함부로 규정하는 것 역시 다소 어폐가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아도 학자들이 인간인 이상 중립적일 수 없었던 것이 드러나고, 학설들도 밑바닥에 특정한 목적을(의도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깔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편향적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만도 할 수 없다.

사실 진화심리학이 문제가 되는 건 진화심리학자들 전부가 전체주의자이거나 인본주의적 가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물론 과거 사회진화론, 우생학 등이 대두되면서 일어난 비극을 반복할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어설프게 아는 유사 진화심리학자들이 제멋대로 해석해서 사고를 저지를 가능성을 더 큰 위험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15] 우생학도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 막 해석하고 집단적으로 오독하면서 일어난 광기였고 말이다. 당연히 오늘날 주류 과학계는 이런 우생학적 관점에 회의적이다.#[16] 진화심리학이 가설로 내세우는 내용들 자체는 중립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분명 있다. 인문학적으로도, 왜 인간이 패스트푸드나 섹스 같은 초정상자극에 빠져드는지 아는 건 중요하게 생각해볼 문제고 말이다. 어쩌면 이를 알면 보다 효과적으로 인본주의 가치를 전달할 방법을 알아낼 수도 있을지 모르니까.

대표적으로 현대 진화심리학은 연대와 협동이 인간의 근본적인 행동원리라고 보고 이를 진화론적으로 규명하려 시도하고 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 사회와 같이 거대규모로 형성된 사회에서 장기간의 협동과 이타적 행동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특이한 현상으로서 인식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개체의 이타적 희생이 결과적으로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집단 전체의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란 해석이 대표적. 사실 이타적 행위가 일어나는 원인을 해석하려는 노력은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체계화되기 전부터 존재했다.

3.7.2. 자연주의적 오류와 도덕주의적 오류

나는 사회생물학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몰아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우익 인종주의자들의 논리 체계의 유사성을 부각시켜 비난하지 않으면 약육강식을 합리화하게 된다. (고종석, 프레시안, 04.6.2)
사회생물학은 모든 사회성 동물의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시각안에서는 현재의 인간 세계의 계급 제도, 인종주의, 가부장제, 엘리트주의 등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상원, 중앙대신문, 06.3.13)
... 나는 이 세계가 혼란스러웠다. 논증들이 난해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논증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아니 유치할 정도로 단순했다. 꽤 진보했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철저하게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다고 믿는 학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 진화심리학이 제시하는 모범답안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나머지 분야 사람들이 수십 년에 걸쳐 해체해 온 성 고정관념을 원상 복구시키고 거기에 과학적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가 더 평등한 땅으로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점에, 진화심리학은 성에 대한 불평등주의적 시각을 장려한다. 진화심리학은 빠르게 변하는 젠더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을 부채질하면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모호한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답을 제공한다. 진화심리학은 젠더 관계의 현 상태가 무자비하게 가부장적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은 채 이러한 현 상태를 재언명한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일상이 점점 비슷해지는 지금 이 시점에 차이의 수사를 고집한다...

-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M.Ruti)[17]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종주의나 페미니즘 측에서 오해할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18] 또한 제국주의 시대를 정당화했던 사회진화론과 같이 인종차별, 성차별 등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 정당화되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에 속을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 모두가 위에서 말한 '자연주의적 오류'이다. '어떠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 사실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오류이며 그리고 이것은 도덕주의적 오류로도 이어진다. 이는 거꾸로 어떠한 명제가 윤리,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이유로 그 명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오류. 과격 페미니스트들이 남녀 성평등을 주장하면서 '인류는 본래 생물학적으로 '모권사회'를 본능적으로 누려왔으나 농경이 시작되면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게 되었다'라고 무리하게 주장하거나,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 간에 타고난 유전적 차이점이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19]는 주장이 그 예. 그 한 실례로, 고인류학자 이상희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인류의 기원》 에서, 연구소에서 박사과정 중 고대인류 뼈의 성별에 따른 특징을 분석하고 있는데, 동료가 의아하다는 듯이 '성별은 순수하게 사회적인 개념인데 어떻게 뼈로 남녀를 구별할 수 있지?' 라고 물었던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20]

그리고 진화심리학에서는 애초에 남성이나 여성중 어느쪽이 더 낫다든가 둘 사이에 우열이 있다는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현대에서는 진화심리학의 여성성 재발견으로 인해 여성의 가치를 보다 높게,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도 성차별이 아니라 성차별 해소의 근거로 쓰일 때가 많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같은 경우는 진화심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서적에서 공감-체계화 이론을 설명하며 '이 이론이 이 사회에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의 기회 불평등을 옹호하려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이 진보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러한 염려는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수 많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진화심리학을 근거로 남성이 더 우수하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조금 과격하게 표현해서 '멍청하고 무식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선정적인 '강간은 남자의 본성' 운운하는 식으로 어설프게 받아들여서는 자신의 마초적 미친 짓을 정당화하려 들면 또 문제가 된다.[21] 인종차별 문제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생물학의 많은 연구들에서는 (직접적으로 진화를 언급하진 않더라도) 종 내 유전적 다양성이 높은 집단이 더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적응적 이점을 누린다는 사실을 언급하는데, 교양지 스켑틱에서는 이를 들어서 " 소수민족을 차별하지 않아야 하는 과학적 근거도 존재한다" 고 소개하기도 했다.

진화심리학이나 이와 관련된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학문으로서의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는 떡밥을 물게 될 때, 십중팔구는 저 위의 반론 중 하나로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사회과학이 그러하듯 진화심리학도 사회과학 또는 사회과학과 큰 접점을 가지는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이상, 정치적 논리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어떤 정책적 제안을 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가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으므로[22] 이때는 학문으로서의 진화심리학의 중립성을 주장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논쟁의 형태를 보면 진화심리학에 대한 반감의 형태가 수 세기 전 진화론이 마주쳤던 반발과 유사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시에도 합리적인 과학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면 어떠한 식으로든 우주의 역사가 수천년 단위일 수 없다는 점이나, 동물들의 종이 살고 있는 환경과 생존에 맞춰 분포해 있다는 점을 알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자연의 이치' 라고 입에 내기가 어려운 사회적 압력이 있었다. 일반 서민들의 시각에서는 지구가 격변하고 동물이 멸종하고 미물이 변해가는 숭한(?) 것보다 세상이 완벽한 평형으로 무한히 순환한다고 치면 모든게 다 '선하고' 아름답다는 안심을 할 수 있으니, 지금 진화심리학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을 주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메신저가 불순하다는 생각부터 우선적으로 하게 되었다. 지금 사람들이야 완벽하게 객관적인 타자의 입장에서 어느 이론이 옳을지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시대의 대중들에게는 특정 이론의 옳고 그름 여부와 사회적 사상집단 간의 대립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의 대중 기독교인들이 진화론을 꺼린 것이 '멍청해' 보인다고 느껴진다면, 당장 현재 진화심리학에서 남녀의 성과 관련된 해석을 내놓았을 때 일부 사람들이 성평등적 담론('이래야 한다는 당위성')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가지고 그 해석이 어떻게 (과학적 타당성 검증과 무관하게) 치부하는지를 떠올려보면 그 행동원리가 그리 다르지 않음을 눈치챌 수 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반박은 진화심리학이 비판받는 이유를 연구방법론의 타당성이 아닌 도덕성과 윤리성의 부재에 한정짓는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에 불과하다.

한편 진화심리학이 소위 대안 우파들의 놀이터가 되었다는 주장은 꽤나 예전부터 나왔던 것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진화심리학의 논리를 들어서 성차별인종차별을 하는 대안 우파들을 왜 막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과학 공동체와 시민단체의 역할을 혼동하기에 발생한다. 심리학자들은 학계 내에서 자기네 논리를 들어서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문이 나올 때 적절히 제지하고 있다. 예컨대 리 주심(L.Jussim) 같은 심리학자는 고정관념이 의외로 대인지각에서 정확할 수 있다는 연구를 한 사람이지만, 본인이 아무리 자기 논리 가지고 차별하지 말라고 자기 논문에서 외쳐대도 이것 하나 때문에 이미 논란의 아이콘이 된 상태이다. 심지어 《Politics of Social Psychology》 같은 책들을 읽어보면 심리학계에 오히려 이런 경향이 너무 과도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기도 하는 걸 볼 수 있다.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과학적 지식을 오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넓은 범위에서는 과학자들의 역할이기는 하나, 막상 이게 제대로 되지 않기에 "과학 대중화" 라는 이슈가 따로 존재하고 시민사회의 노력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때로는 페미니스트들과 평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메시지에 진화심리학이 딴지를 거는 경우도 꽤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딴지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성차별 행위가 되고 인종차별 행위가 된다. 받아들이는 쪽에서 이렇게 받아들이겠다면 진화심리학자들도 딱히 더 해 줄 말이 없다. 실증적(이고자 몸부림치는) 연구를 통해 거의 명백히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에 대해서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니 그걸 지적했을 뿐인데, 거기다 대고 도덕적 영역에서의 비난을 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른 실증적 데이터를 가져와서 반론이라도 한다면 모르겠으되, 그걸 사상가들의 관념과 철학자들의 고담준설과 문화평론가들의 비평을 근거로 들어서 악인(惡人)의 딱지를 붙인다면, 진화심리학자들은 어깨만 으쓱해 보이고는 다시 자신들의 연구실로 돌아가는 것밖에는 정말 할 것이 없다.

사실 진화심리학은 물론이고 과학적 사실의 타당성을 과학자들이 순수하게 논증할 때는 인문학자나 사회과학자, 사회운동가 등이 별로 끼여들 여지가 없다. 다만 자주 논쟁이 생기게 되는 때라면 과학만능주의, 환원주의와 같이 진화심리학이나 다른 과학적 사실을 인간의 심리와 행동, 그리고 사회적 행위양식의 파악에 직접적으로 끌어다 쓸 때이다.[23] 이런 경우는 필연적으로 충돌이 생길 수 있다. 물론 극단적이지 않을 경우에는 꼭 충돌하거나 일방적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으며 좀 더 온건하고 합리적인 입장이 필요하게 된다.

유명한 진화심리학자 아무개가 이러이러한 차별적 발언을 했다더라, 이러이러한 도덕적 잘못을 저질렀다더라, 따라서 진화심리학계는 그 자체로 차별적인 학문이 맞다더라 하는 식의 선전 역시 방대한 인터넷 세계를 둘러보다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조금만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닌 논리 전개임에도 불구하고,[24] 이런 주장들은 종종 교묘하게 도덕적 라벨링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임을 확인 받고 싶은 뭇 독자들은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 잘못이라는 것도 상기한 것처럼 "자신들의 통계 자료나 이론이 잘못되었다며 딴지를 거는 부도덕한(?) 강연을 했다" 정도라면, 심지어 그 사람이 학계 연구자도 아니고 어디서 어설프게 진화심리학 썰을 듣고 풀기만 하는 네오나치, 레드필 인사 정도라면, 상황은 더욱 수렁에 되고 만다.

더 많은 논의가 궁금하다면 전중환(2010)이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입장을 밝힌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토대와 쟁점들", 오현미(2012)의 "진화론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과 수용", 천현득(2009)의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진화심리학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등을 참고할 수 있다. 해외 문헌 중 최신의 것으로는 "Misrepresentations of evolutionary psychology in sex and gender textbooks"[25]를 들 수 있다.

3.7.3. 관련 문서

3.8. 비판에 대한 정리

인간의 마음에 대해 그야말로 근원의 규명을 추구하는 지극히 생물학적인 연구분야이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실제로 사회심리학의 경우 50년대 무렵에 밀그램, 짐바르도 등의 활약으로 갑자기 붐을 일으키던 때에는 "야, 길거리에서 세 명이 하늘 쳐다보면 남들도 똑같이 하늘을 쳐다본다고? 근데 그게 과학이라고? 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같은 소리가 실제로 학계에서 나왔던 적이 있다. 긍정심리학의 경우도 초기에 굉장히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이게 진짜 과학이 맞긴 하냐는 식의 반발이 빗발쳤고 그것 때문에 마틴 셀리그만 같은 간판급 학자들이 고생했었다. 유독 진화심리학만 공격당하는 건 아니다.

단, 현재의 진화심리학이 비판에 제대로 대처하고 발전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쉬이 대답하기 어렵다. 통계적 부실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데다가 제기되는 가설들 역시 제대로 된 모델링을 가지고 있지 않아 비판받기 일쑤이다. 사실 진화심리학이 우생학적이라는 공격을 받는 것은 절반은 억울할 수 있어도, 절반은 진화심리학적이라고 등장하는 모델링 다수가 그만큼 부실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위에 언급된 사회심리학 역시 실험들이 재현되지 않거나 실험들이 조작된 문제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실험은 커녕 제대로 된 통계연구도 반영하지 못하는 진화심리학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3.9. 관련 문서

4. 진화심리학에서의 유의점

5. 한국의 진화심리학

현재 한국에는 경희대학교의 전중환 교수[27] 등을 포함해서 단 2명의 진화심리학 전공자가 있다. 교양과학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작은 수준이다. 그래서 한국의 심리학 교수 및 연구자들은 진화심리학 관련 주제가 나오면 대단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6. 대학 교육과정으로서의 진화심리학

널리 알려진 대학 교재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7. 주요 연구자

8. 관련 문서


[1] 물론 오늘날에는 본능을 연구하지 않는다. 이론 자체가 워낙에 사후설명적이고 중구난방이라서 그냥 흑역사화됐다. 그리고 현대의 심리학자들은 본능이라는 개념을 쓸 일이 있으면 오히려 고정행동패턴(FAP; fixed activity pattern)이라는 잘 정의된 용어를 사용한다.[2] 인간 본성에 대한 10가지 이론, 기우뚱한 균형[3] 다만 전공자가 적다는 것과 학설의 문제점이 주로 비판받는 것은 딱히 상관관계가 없다. 학설에 대한 반응이 주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이유는 학설 자체가 내포한 문제점 때문이지 전공자의 수 때문인 건 아니다.[4] 지적 사기 사건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5] (사실 반증 불가능성은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는 가장 큰 논리중 하나이다.) 라는 코멘트가 있었는데, 대부분 논리학적 오류와 자체 모순으로 차 있는 잘못된 내용이다. 우선 '반증 불가능성을 이유로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면 사이비다'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우물에 독 뿌리기(Poisoning the well) 오류'에 해당하는 논법이므로 정당하지 않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의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인용해 놓고서 이를 거꾸로 진화심리학을 옹호하는 내용인 것처럼 처리하며 코멘트를 마무리하는데 이는 피아식별(?)에 혼동을 빚어 자체 모순을 범한 것이다. 또한 이 코멘트의 마지막 문장은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에 해당한다. 배고픈 유전자 가설이나 조현병 가설에 대한 아래의 비판적인 언급들은 진화심리학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설명한 '부분'에 난점이 있다는 비판이지 진화심리학 '전체'가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애초에 아니기 때문이다.[6] 여기서 말하는 증명이란, 결론을 실제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에 입각한 타당한 증명을 말하는 것이지, 결론과 직결되지 않는 것을 근거인 것처럼 제시하면서 '근거를 댔다'고 포장하는 허위적 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7] 현대에서야 향정신성의약품과 같은 해결책의 등장으로 조금이나마 나아졌지만, 과거엔 그런 게 없었다. 지금은 오래 방치되면 뇌손상까지 일으킨다는 것도 밝혀졌다.[8] 이 가설에 따르면 기발한 창조성이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능력이 이 유전자들의 역할인데, 기발한 아이디어가 지나쳐져서 망상이 되는 것이 조현병이라고 추정했다.[9] 여름날 아이스크림 소비량의 증감과 일사병 환자의 증감이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아이스크림이 일사병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10] 《비트겐슈타인의 말》, 시라토리 하루히코 엮음, 박재현 옮김, 인벤션, (2015) 033 에서 재인용[11] 사슴과 해파리, 그리고 물고기는 모두 동물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뇌 구조가 같지는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12] 단순히 진화심리학이 내놓은 연구결과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찬성과 반대를 따지는 것은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오류가 되지만, 진화심리학을 비판한다고 모두 그런 의도라고 바라보는 것 역시 이데올로기적 오류이자 비과학적의 영역에 속한다.[13] 물론 '비이념'을 자처하는경우도 많지만, 학술적으로 보면 비이념도 하나의 이념이 된다. 그리고 국가신토가 비종교를 자처했던 것처럼, 비이념, 무이념을 자처한다고 진짜로 중립이라고 볼 수만도 없다.[14] 남성만큼은 아니지만 여성도 진화적으로 보면 배우자 이외의 성관계 파트너를 가지기 원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보다 바람기를 적게 타고날 뿐이지 안 타고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사실 남성의 바람이 본능이기에 정당하다는 논리대로면 여성의 바람 또한 본능이기에 정당한 것이 된다.[15] 이런 책, 레드필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저명한 진화심리학자들 중에 페미니스트도 적지 않다는 것을 고려할 때 전형적인 유사과학적 주장이다. 물론 데이비드 버스 등 저명한 진화심리학자의 학설 중에는 페미니즘 주류 이론과 상충되는 것도 많다.[16] 당 칼럼에 대해서도 다소 주의해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인종' 개념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이 존재하며 당 칼럼에서는 그 중에서 인종 긍정론이라는 특정한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물론 우생학과는 다르다.) 일단 '유전자풀의 차이'와 '인종'을 구분할 필요가 있으며, '인종' 개념은 순수한 과학적 논리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거나(적어도 현재로서는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인종 개념은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대중심리적 요소가 반영되어 규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종의 우열을 따지는 과학적 인종주의는 현재 유사과학으로 여겨진다.[17] 이 책은 페미위키의 "근접원인과 궁극원인" 문서에서도 흔한 혼동의 사례라고 비판 받고 있다.[18] 페미니즘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세계관과 대치되는 면도 있지만(반페미니즘으로 해석될 만한 사례가 무지 많긴 하다) 적당히 이해한 채로 페미니즘 측에 떡밥 던지기도 쉽기에...[19]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개별적인 차이점'까지 깡그리 부정함을 의미[20] 이와 관련해서 약간 전후설명을 하자면, 이는 유명 페미니스트 저메인 그리어(G.Greer)가 《여성, 거세당하다》 라는 책에서 뼈조차도 사회적 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그리어는 뼈(특히 골반)가 남녀 간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더라도, 그 차이는 문화에 의해 종종 과장되게 마련이라고 하며, 예컨대 똑같은 여성의 골반일지라도 더 얌전하고 소극적인 생활을 할수록 후천적으로 더욱 넓고 크게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을 하는 텍스트와, 그것을 기정 사실화해 생물학적 성 자체를 아예 부정해버리는 사람들이다.[21] 강간이라는 테마와 관련해서는 김성한(2006)의 "강간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설명 비판은 타당한가" 도 함께 볼 것.[22] 이 점을 조한진(2015)이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비판한 바 있는데, 이 문헌에 따르면 진화심리학은 필연적으로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가 주장한 것과 같은 이쿼티 페미니즘을 제외한 모든 페미니즘을 적대할 수밖에 없다고 하며, 대표적인 예로 스티븐 핀커(S.Pinker)를 든 바 있다.[23] 리처드 도킨스 같은 경우도 최근 개정판에서 해명을 붙이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려는 의도를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좋은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도킨스는 저서에서 아주 완곡하게 "진화론 이전의 인간에 대한 학문, 즉 철학과 같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가치가 없다"는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24] "유명 진화론자 아무개가 이혼했다더라, 그럼 진화론은 그 자체로 가정을 파탄 내고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을 망치는 학문이 아니겠느냐", "유명한 여성 기업가가 투자에 크게 실패했다더라, 그럼 여성들은 그런 중요한 의사결정을 못 한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 와 얼마나 다른지는 각자 생각해 보자.[25] Winegard, Winegard, & Deaner, 2014.[26]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진화심리학에서 현생 인류란, 현대인의 외피를 뒤집어 쓴 원시인(혹은 선사시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이라고 보기도 한다.[27] 경희대학교에는 심리학과가 없고, 전중환 교수는 교양학부인 후마니타스 칼리지 소속이다. 근데 정작 인간의 가치 탐색에는 진화심리학 지문이 없는데,, 데이비드 버스가 쓴 글은 있다..[28] 영장류 행동 동물학자 겸 진화심리학자다.[29] 엄밀히 말하면 신학적 다양성. 여기에는 물론 무신론도 포함되며, 심지어 무신론적 다양성도 역시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