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WEIRD problemWEIRD란 다음의 5가지 영어 단어의 두문자어로 이루어진 것이자 이 5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사회의 사람들을 일컫는다.[1][2]WEIRD 문제란 많은 심리학 연구에서 좀더 범문화적이고 보편적인 적용을 위해 이 WEIRD에 포함되는 사람들만으로 참가자를 구성해 연구한다는 것에서 기인한 문제점을 말한다. 인간 행동에는 문화 간 차이가 크지 않을 거라는 가정을 전제[4]하고 연구하는 게 현실인데 이것이 갖는 한계성에 대해서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아넷의 보고에 따르면 일류 심리학 저널들의 연구 참가자들 중 96%는 WEIRD에 속한데도 그 대표성을 우려하는 문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렇게 WEIRD 문제는 주로 심리학이나 심리 실험에 활용된 '표본 대표성'의 문제의 하나로 대두된다. 다만, WEIRD로 인한 문화인류학의 기여를 무시할 수 없으며 최초로 이 문제를 제기한 인물 중에는 진화심리학자도 있다.
2. 상세
WEIRD가 전체 인류를 대표할 수 있다고 믿는 신뢰는 근거가 부족한 선험적(a priori) 가정에서 촉발된 문제 제기나 비판이 자주 제기되곤 하였다. 실제로 이들은 협력과 같은 사회적 덕목 이외에도 공간적 추론(spatial reasoning) 등의 인지적 능력, 심지어 시지각(visual perception) 등의 지각적 능력에 있어서도 전체 인류를 대표하거나 일반화되지 못한다고 한다. 예컨대 유명한 뮐러-라이어 착시(Müller-Lyer illusion)조차 인류학자들은 남아프리카 지역 칼라하리 사막의 부족민들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이것이 문화적으로 형성된 시각적 습관 때문일 수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연구 대상으로 활용된 수많은 집단들 중에서 유독 미국 대학생들은 이 착시에 가장 극단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미국 대학생들은 세계 각지의 부족민들에 비해 해당 착시 짤의 두 선분의 길이가 가장 심하게 다르다고 응답했다. 오히려 "WEIRD" 사람들이야말로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장 아웃라이어였던 셈이다. 비슷한 것으로는 나이 및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에빙하우스 착시에 따른 영향 정도가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2010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의 진화문화인류학자 조셉 헨리치(J. Henrich), 사회문화심리학자 스티븐 하인(S. J. Heine), 진화심리학자 아라 노렌자얀(A. Norenzayan)이 《네이처》 지에 기고한 사설 〈Most People Are Not WEIRD〉, 그리고 다른 저널에 기고한 논문〈The Weirdest People in the World?〉를 통하여 학계에 처음 알려진 문제다. r6 버전 기준으로 이 문서의 서술도 두 문헌을 최대한 참고했다. 더 궁금하면 구글 스칼라에 검색해 볼 것. 제프리 아넷(J. Arnett) 역시 미국심리학회(APA)에 지나치게 인구학적 편중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Arnett, 2008.) 제프리 아넷은 발달심리학의 성인 진입기(emerging adulthood) 개념을 제안한 인물이다. 얼핏 발달심리학자 같지만 사실은 문화심리학자인데 그 이유는 성인 진입기 자체가 문화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학의 근간을 뒤엎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중대한 비판이며 《네이처》 에서도 아마도 이 점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껏 심리학을 주도하고 있는 북미 인지/신경심리학 연구자들은 표본조사의 대표성이나 일반화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야, 그렇다고 미국인하고 일본인하고 코이산족들하고 설마 맹점이 다 다른 위치에 있겠냐?" 같은 식으로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지각(perception)이나 인지(cognition) 등의 담론에서는 개인차, 문화차가 거의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원체 거의 생물학 등의 경성 과학에 가까운지라 이들의 귀에는 마치 "문화적인 이유로 인해, 미국인의 심장은 왼쪽에, 일본인의 심장은 오른쪽에 있다" 같은 주장만큼이나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다. 저 유명한 《심리학의 오해》에서도 "인간의 인지적 수준에서는 문화적 차이가 의미가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같은 서술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심지어 사회화를 거치지 않은 10세 이하의 어린이들도 문화권에 따라서 기초적인 인지적 수준에서부터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세계 각지의 인류를 공평하게 비교할 때 "WEIRD" 사람들은 분명 아웃라이어이며 특히 미국 대학생들은 (논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아웃라이어'(outliers among outliers)라고 한다. 연구결과의 일반화를 염두에 두고 연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WEIRD" 사람들은 (역시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최악(worst)의 표본이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동기부여 이론 중 2요인 이론이다. 동기부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동기요인(동기부여에 +가 되는 요소들. 성취감, 만족감, 소속감 등.)과 위생요인(동기부여에 -를 지우지만 +를 주진 못하는 요소들. 임금, 승진 등)의 두가지 요인으로 분류했는데 설문 대상을 백인 화이트칼라 남성에서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고 승진의 중요성이 높은 한국의 공무원들로 옮겼더니 임금, 승진이 위생요인이 아닌 동기요인으로 분류됐다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WEIRD" 사람들로 구성된 표본이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기존의 학설에 반례를 제시하는 등 무엇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할 때는 일반화를 시도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일반화에 의심하는 것이므로 이들 표본을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저자들은 영장류 및 어린이 연구를 병행하는 것만으로는 일반화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국제적, 간학제적 연구 네트워크가 형성됨으로써 연구 참가자들을 지구 이편과 저편에서 손쉽게 모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즉, 대학에서 어떤 심리실험이나 연구를 할 때 "심리실험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공고를 교내에만 덕지덕지 붙이는 게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다른 대학의 교정에도 같은 공고가 붙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서서 국가 간 참가자 모집 서비스와 관련된 사업을 차리거나, 아니면 APA쯤 되는 학회 차원에서 프로젝트 비슷하게 진행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개인이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은 마땅치 않다. 전체 과학자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3. 관련 문서
[1] WASP(백인(White) + 앵글로색슨(Anglo Saxon) + 개신교도(Protestant))와도 공통점이 많은 집단이다.[2] 영어 단어 위어드(weird)는 그 자체로 기이한, 특이한, 기묘한 등의 뜻을 가진다. 일견 "평범"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평범한 집단이 아니라는 위트가 돋보인다.[3] 일단은 중산층 이상이면 대부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4] 즉, 이러한 인간 행동이 모두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에 의한 것이라는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