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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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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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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3. 내용
3.1. 연표
3.1.1. 삼성기3.1.2. 단군세기3.1.3. 북부여기3.1.4. 고구려본기3.1.5. 대진국본기3.1.6. 고려국본기
4. 평가
4.1. 옹호론자들의 주장4.2. 역사학계의 비판
5. 구성6. 역주본 목록7. 분석과 비판8. 창작 소재로서의 가치9. 의문과 해답10. 기승을 부리는 환빠들11. 왜 환단고기인가?12. 결론13. 관련 문서
13.1. 내용 관련 문서13.2. 문헌 관련 문서13.3. 인물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환단고기(桓檀古記)는 1979년이유립이 출간한 유사역사학 서적으로, 한민족의 상고사를 날조하여 기술한 위서(僞書)이다. 환단고기 및 그 추종자(소위 '환빠')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 열풍을 일으켜 학문과 민간에 끼친 해악이 지대하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를 인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연구부정행위(Scientific misconduct)로 직결될 수 있어 매우 금기시되며 소수 재야 민족주의 논단이나 역사학자를 참칭하는 집단에 의해서만 향유되고 있다.

한편 환단고기의 저자 이유립과 그 추종자들은 이 책이 1911년계연수라는 인물에 의해 저술되었으며 소위 환국이라고 하는 단군 이전의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역사를 모아 편찬한 귀중한 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저자 자신이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창작하고 수정을 반복하며 교묘하게 만들어낸 한 편의 사기극에 가깝다.

이러한 소설에 가까운 사서가 왜 생겼나를 생각해보면[1] 당시 시대상은 일제강점기 혹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고 당시에는 민족주의 사관이 대세였다. 지금에서야 대한민국은 민족주의 사관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경향이 과거에 비하여 옅어졌지만, 당시에는 민족의식 고취와 민족 단결, 그리고 집단주의를 위해서 역사 연구과 서술은 목적성을 띄었다. 한국의 역사학의 갈피를 잡은 단재 신채호도 한국 역사학계의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지만 그와 동시에 노골적인 민족주의 사관으로 비판도 많이 받는다. 그러한 시대상이 반영되어 환단고기 역시 노골적인 민족주의적 관점을 띄게 되었고 작가 개인의 종교적인 가치관도 맞물려 신화적인 성격도 띄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환단고기는 20세기 중후반의 대한민국의 역사관에는 어떠한 관점이 있었나를 살펴보는 용도로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겠지만 사실로서의 역사 서술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에는 논할 가치가 없는 사료이며 단지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사관이 반영된 책이라고는 평가할 수는 있다.

2. 명칭

환단고기(桓檀古記)라는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대략 '환웅단군에 대한 오래된 기록'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엽기적인 사실은 정작 이 괴문헌에서 다루고 있는 시간대가 단군은 아득히 초월한 채 위로는 세계와 인류의 창조부터 아래로는 고려 시대의 위화도 회군 전야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원래라면 고조선의 건국만 서술해야 하지만, 고조선 이전에 태고의 왕조들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며 고려 말까지 엄청나게 오래된 기간을 서술한 것이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어디까지나 위서다.

1986년에 환단고기를 일본에서 국내에 역수입한 임승국이 "환인은 우리말 하느님을 한문으로 음차한 것이고, 따라서 환이란 하늘의 준말인 한이다."라고 주석을 단 이래 이 괴문헌의 이름을 '한단고기'라고 읽는 경향이 생겨났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임승국의 주장은 그 어떠한 학문적 근거도 없는 견강부회다.

한자의 옛 독음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운서들을 보아야 하는데 당운(732)과 광운(1008) 모두 桓의 독음이 호관절(胡官切)임을 분명히 명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절법이라 하여 '호'의 성모(초성) 'ㅎ'과 '관'의 운모(중성과 종성) 'ㅘㄴ'을 결합하여 '환'이라는 음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참고로 이 운서들에는 환(丸)도 똑같이 호관절(胡官切)이라 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당운보다 먼저 만들어진 절운(601)과 옥편(543)에서 각각 桓의 독음을 호만절(戶瞞切)과 호단절(胡端切)이라 하고 있기는 한데.... 瞞은 모관절(母官切)로서 당시에는 '뫈'이었고, 端은 도환절(都丸切)로서 당시에는 '돤'이었다. 당장 지금도 중국에서는 端을 '뚜안(duān)'이라 발음하며, 한국에서도 동국정운(1448)에서 '돤'이라는 소릿값이 확인된다. 瞞 역시 중국어의 옛 형태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광동어에서는 '문'(mun⁴)이라고 발음해 桓(wun⁴)과 같은 모음을 쓰고 있다.

한편 한국어의 '한'이 하늘의 준말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어에서 '한'은 넓다 · 크다는 뜻이지 '하늘'이란 뜻은 없다. 따라서 올바르게 선후관계를 따진다면 차라리 '하늘'이라는 말이 '한'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야 논리관계가 맞는다. 고로 '한'이라는 음소 자체에 하늘이라는 의미가 함축된다고 본 임승국 등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따라서 '한단고기'는 족보에도 없는 이름이라고 판정할 수 있다.

3.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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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연표

3.1.1. 삼성기

3.1.2. 단군세기

3.1.3. 북부여기

3.1.4. 고구려본기

3.1.5. 대진국본기

3.1.6. 고려국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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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이미 위서로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대한민국 사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해악이라 할 수 있다.

4.1. 옹호론자들의 주장

이게 환단고기를 부정하려면 반드시 육하원칙을 들어야죠. '환단고기를 언제, 어디서, 누가, 뭘 가지고, 어떻게, 왜 위조했나'라는 육하원칙을 제시해야지 막연하게 자기 종교성하고 상반된다고 해서 부정하고, 자기 학파하고 안 맞는다고 부정하고 하는 것은 학자다운 자세가 아닙니다.[2]
송호수, KBS 역사스페셜 인터뷰, 1999.10.02 방영.
환단고기도 그렇고, 규원사화도 그렇고, 이것을 읽고 많은 분들이 그 많은 분들을 사실로 믿고 또 많은 분들은 이게 위서라고 주장하는데... 저는 이것이 '사실이다 위서다’라는 그 차원에서 이제는 한 차원 좀 넘어가야 된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냐면은 '환단고기 사(史)'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환단고기의 내용이 맞다 틀리다는 차원이 아니라, 환단고기를 한번 본격적으로 연구를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이덕일, "고구려는 천자..." 저자간담회, 2007.09.12.[3]

4.2. 역사학계의 비판

더욱이 「환단고기」에서 도가사상을 단군 시대의 신교와 연결시키면서 이를 다시 일본의 민족종교 인신도(신궁)와 연계시키는 것은 「한일 문화동원론」이며 나아가 일선 동조론에 이용될 소지가 있다. 결국 이들 고서는 일제의 논리에 기반한 가치론적 민속개량수의 입장에서 다른 민족주의를 비판했던 책이며 민족주의의 외피를 쓴 신 일본주의 노선이 나타날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이들 고서가 지니는 부정적 영향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박광용, 「규원사화」·「환단고기」-"일제 때 씌여진 위작이다", 1990.08.28
환단고기는 그 성립되고 공개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문제점이 많은 그런 책입니다. 국사 연구와 국사 교육이 우리 사회 성원들한테 분명한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그런 요구는 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료적 가치가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가지고 그것을 통해 접근하는 것은, 마치 기초공사 없이 고층빌딩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하고 무모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영훈, KBS 역사스페셜 인터뷰, 1999.10.02 방영분에서
환단고기는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의 뿌리의 상고사 자체를 복원하는 데는 자료적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환단고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후에 쓰여진 책입니다. 그런 만큼 이 책을 통해서 우리의 상고사를 복원할 수는 없습니다. 단 이 책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후에 우리 선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권력화하였느냐는 당시인들의 역사의식을 파악하는 데에는 유효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노태돈, KBS 역사스페셜 인터뷰, 1999.10.02 방영분에서
환단고기는 역사서로는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논리성을 결여하고 비합리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역사에 대한 특별한 해석을 매개로 집단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왜곡시키고, 특정한 세계관을 비자발적으로 실천시킨 예를 많이 보아왔다. 우리는 그러한 흐름에 의해서 여러 번 희생당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을 가능한 한 제거시키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
윤명철, 환단고기의 사회문화적 영향 검토, 2000.07.
사서 읽지 마세요. 책값도 아까워! 어디 헌책방 같은 데서 한번 뒤져보라고. 완전 거짓말이야. 삼국유사에도 허황된 얘기는 나오지만, 어떤 민중적 사유라든가 그런 걸 담고 있죠. 단군신화는 그냥 신화로 해석해야지. 고대에 천조대신이 어쩌고저쩌고… 이게 말이 되냐고? 석기시대돌멩이 들고 싸우던 시절인데 어떻게 제국을 건설해요? 역사발전에서 그 시기는 부족국가 시대예요.
이이화, "역사의 판단에 맡겨?...", 한겨레, 2015.11.21.

5. 구성

환단고기는 구한말 계연수(桂延壽)라는 사람이 자신이 수집한 문헌 5권을 하나로 묶어 출간한 책이라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 한 부가 이유립(李裕岦)의 손에 들어갔고 이것을 이유립이 다시 찍어내어 출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에 따라 저마다 범주나 지향이 다른 문헌 5권이 제각기 따로 있다 보니 내용을 비교 해보면 서로 말이 다르거나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정작 그 흩어진 내용을 통합적으로 파악하기 무척 어렵다.

어쨌든 내용은 아래 분석에서 차차 정리하기로 하고 환단고기의 서문에 해당하는 '범례'에서 언급되는 5권의 문헌은 차례대로 다음과 같다.

6. 역주본 목록

환단고기는 순수 한문으로 적혀 있었기에 이유립이 1979년에 처음 출간하였을 때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당시가 지금보다 비교적 한문해득력이 있던 시대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국한문혼용 기반 사회였다.

이 때문에 환단고기가 처음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환단고기를 일본어로 역주한 카지마 노보루(鹿島昇)의 책을 임승국(林承國)이 다시 역수입해 출간한 시점이었다. 임승국이 '한단고기'를 출간한 1986년 이래 여기에 각종 번역과 해석을 덧붙인 서적 수십 종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는데 나중에는 한문으로 된 원판은 슬그머니 빠지고 머릿속 망상만 난무하는 이름만 '환단고기'인 환단고기 책도 나왔다.

파일:attachment/환단고기/혐짤1985.jpg
1) 김은수본(가나출판사 1985)
임승국보다도 앞선 최초의 환단고기 국역본이라는 데 의의가 있는 책. 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래도 교보문고 중고시장에 다수 떠돌았던 있는 것으로 보아 그래도 출간 당시에 제법 팔려나갔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1986년 6월 10일자 동아일보 기사 "단군神話 바람"에 의하면 당시 인기몰이를 하던 김정빈 작가의 한국형 신비주의 장편소설 '[7]'으로 이미 이런 게 팔릴 밑밥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해당 도서를 낸 가나출판사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든 곳과 동일한 회사다. 2000년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스캔본 형식으로 공개되어 협약 공공/대학도서관 원문검색용 컴퓨터로 열람 가능하다.

파일:attachment/환단고기/혐짤1986.jpg
2) 임승국본(정신세계사, 1986)
임승국이 번역한 판본. 헌데 우습게도 정작 임승국은 본래 영문학자 출신으로 고전 한문을 읽고 해석하고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에 일본의 유사역사학자 가지마 노보루가 일본어로 환단고기를 역주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다. 즉 이중번역이라는 말. 이 책이 나왔을 무렵 이미 사회인이었던 1950년대생부터 아직 십대였던 1970년대생까지 지금의 유력 또는 중견 정치가, 군인부터 일반인까지 환단고기라고 하면 일단 이 책으로 접한 사람이 많다. 1980~1990년대 대학가에는 민족종교와 고대사에 관심을 가지는 조류가 있었기에 이런 관심을 타고 꽤 퍼진 책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카지마 노보루가 쓴 'ニキハヤヒのモデル(니기하야히의 모델)'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니기하야히노모데루'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거나 '外蒙古喀爾喀界內(외몽고 할하 경계 안)'이라는 말을 잘못 끊어서 '고객이객계(古喀爾喀界)'[8]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고려 후기의 문신 정지상에 대한 서술에 고려 중기에 김부식에게 살해된 정지상에 대해 주를 다는 등 번역조차 막장이다. 안 그래도 정신세계사는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 같은 환빠계 신비주의 문서나 오쇼 라즈니쉬 같은 뉴에이지 신비주의 계통의 도서를 주로 취급하던 출판사다. 이 역시 2000년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디지털 스캔본 형식으로 업로드되어 협약 공공/대학도서관의 원문검색용 컴퓨터로 열람 가능하다.

파일:attachment/환단고기/혐짤1987.jpg 파일:attachment/환단고기/혐짤1987_참고.jpg
3) 김낙천본(고려가, 1987)
역사스페셜에 공개된 바에 의하면 이유립 자신도 환단고기에 현토와 평주를 달아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이유립이 죽기 직전까지 참여했고 그의 사후 고려가 김낙천 사장이 발간했다는 '대배달민족사'에 반영되었으리라 추정된다. 환단고기는 '대배달민족사'의 제1권 5장에 수록되었다. 이를 1500질 찍어냈다가 별로 팔리지 않았고 발행처였던 고려가는 1990년에 고려원미디어로 바꾸어 잔존하다가 1997년에 모기업인 고려원이 망하면서 같이 해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몇년 전에 창고가 침수되어 재고는 전량 폐기되어 이유립판을 시중에서 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선 2000년부터 디지털 파일 형태로 업로드 중이긴 하나 굳이 보려면 시간을 내서 협약 공공도서관 원문검색용 컴퓨터로 접속해서 봐야 한다. 2014년에 한배달에서 다시 찍어 보급한다고 했으나 그마저도 사실상 무산된 걸로 보인다.

파일:attachment/환단고기/혐짤1998.jpg
4) 전형배본(코리언북스, 1998)
단학회 연구부에서 번역한 판본으로, 창해출판사의 전형배 사장에 의해 출간되었다. 전형배는 위의 김낙천과 함께 이유립의 직속 제자였으니 그 내용은 김낙천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김낙천본의 비극적인 운명과 달리 이 판본은 2002년까지 거듭 발간되어 한동안 시중에서도 구할 수 있었고 2006년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디지털 스캔본이 업로드됐으나 1권은 관내 공개, 2~3권은 협약도서관 내 공개이다. 즉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 가운데 이유립의 의도와 원전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판본이다. 전체 4권으로 구성되어 1권은 환단고기 본문, 2권은 색인, 3권은 연표, 4권은 지도·도표로 출간할 계획이었으나 어째서인지 4권은 출간되지 않았다.

파일:attachment/환단고기/혐짤1998B.jpg
5) 이일봉본(정신세계사, 1998)
분명 제목은 한단고기가 맞는데 정작 환단고기 본문은 나오지도 않는다. 그저 이일봉 자신이 환단고기를 읽고 떠오른 머릿속 망상만 잔뜩 써 놓았다고 보면 적절하다. 실제로 '타클라마칸'이란 위구르어로 '산-사막(타클/라마칸)'이라는 뜻으로, 북으로는 천산산맥, 서로는 파미르 고원, 남으로 쿤룬산맥, 동으로 치렌산맥에 둘러싸인 이곳의 지리적 특성을 묘사한다. 현지음으로는 타클리마칸(تەكلىماكان)이다. 이 역시 2006년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디지털 스캔본 형식으로 업로드되어 협약 공공/대학도서관 내의 원문검색용 컴퓨터로 열람 가능하다.

파일:attachment/환단고기/혐짤2003.jpg 파일:attachment/hwan.jpg
6) 한재규본(북캠프, 2003)
이일봉본이 오로지 망상이라면 이쪽은 환단고기 본문을 베이스로 망상이 더해진 양상이다. 진화론을 부정하는 패기는 기본이고(1권 140-161), 엔릴이 수메르로 원정 나간 배달국의 장군 '얹날'이라거나,(2권 103) 치우가 그리스까지 밟아 보았다거나(3권 120) 하는 내용은 환단고기 본래의 내용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쪽도 '번역'이라기보다는 자의적인 '해석'에 훨씬 가까운데, 게다가 그걸 만화로 그렸으니 그 파급력이란 어떠할지는 능히 짐작된다. 이 역시 세월이 흘러 절판되었으나 2017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디지털 스캔본 형식으로 업로드되어 협약 공공/대학도서관 내 원문검색용 컴퓨터로 열람 가능하다.

파일:attachment/환단고기/혐짤2005A.jpg 파일:external/www.daehansinbo.com/art_1371363505.gif
7) 고동영본(한뿌리, 2005)
고동영이 번역한 판본으로 한뿌리에서 발행되고 있다. 참고로 이 출판사는 규원사화신단실기 및 한재규가 그린 만화 환단고기도 출판하고 있는데, 대체로 다른 번역본들과 달리 번역자의 주관적 해석이 거의 개입되지 않은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 특징. 디자인과 크기(약 300쪽)가 심플한 대신 한자로 된 원문은 수록되어 있지 않아서 한문본을 보려면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8) 안경전본(상생출판, 2012)
증산도의 지도자인 경전 안중건이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 증산도 계열 출판사인 상생출판[9]에서 간행하고 있다. 증산도 조직을 이용해 갖은 홍보를 다 하는데, 길거리에서나 서점에서 환단고기 광고 및 홍보물들은 그냥 죄다 이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더군다나 1,415쪽이라는 몹시 비실용적인 크기를 자랑한다.[10] 해제 부분이 반이고 원문 번역이 반이다. 원문 부분에는 한자 하나하나 찾아주는 친절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도 등이 많이 들어 있다. 이처럼 물량전에 가까운 대대적인 전략에, 전국의 역덕후들은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카더라.
파일:attachment/환단고기/혐짤2013.jpg 파일:attachment/환단고기/혐짤2013_크기비교.jpg

7. 분석과 비판

일부 아마추어 역사가들과 종교 단체에서는 왜곡되지 않은 진실을 담은 역사서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조작된 위서(僞書)다.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위서란 저자나 저술연대와 같은 서지사항이 위조된 책을 의미한다.[11] 환단고기는 여기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예컨대 지금 누군가가 고구려사를 기전체로 정리했는데 제목을 '신집'이라고 하고 필명을 '이문진'이라고 했다고 해 보자. 물론 그 안에는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서기 600년에 고구려인 이문진이 쓴 신집은 아니다. 그리고 이덕일은 이걸 두고 '이유립이 1970년에 쓰긴 했지만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있으니 위서는 아니다.' 주장하며 용어를 혼란시킨다.

반면 서지사항이 위조되지 않았어도 내용은 지어내거나 왜곡된 가짜 역사일 수 있기에 진서라고 무조건 추종하거나 위서라고 무조건 배척하는 게 아니라 다각적인 사료 비판을 통해 내용을 검증해야만 한다. 대표적인 게 일본서기(日本書紀)다. 일본서기 자체는 대단히 이른 시기에 집필되었고 서지사항도 명확한 진서지만, 그 안에는 진구 황후임나일본부설 등 너무나도 분명하게 거짓인 기술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서기를 역사적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역사가에 의한 조심스러운 문헌비평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12][13]

하지만 환단고기에 있는 내용은 인류의 단계적 발전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사적 추세로서 물질문명의 발달, 국가의 형성과 조직 과정을 정면으로 무시한다. 대표적인 게 저 유명한 환국(桓國). 그밖에도 16세기나 20세기가 되어야 나타나는 지명[14]이라든가, 틀린 것으로 드러난 학설들이 버젓이 차용되어 있다. 여기에 기원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종족들이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것까지 들면 한도 끝도 없다. 환단고기는 확실히 가짜 역사다. 당장 역사스페셜이 환단고기를 다룬다고 했을때 많은 전문가들이 협조를 거부한 것만 봐도 이 '역사서'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방영년도가 1999년이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환단고기의 서지사항이 일제강점기독립운동과 결부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종합해보면 독립운동의 당면과제는 배제되고 오히려 일본대동아 공영권 사상과 흡사한 확장적 · 공격적 민족주의 의식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환단고기를 올바른 애국심의 발로로 볼 수 없는 근거가 된다. 실제로 임승국 등 환단고기의 초기 추종자들은 독재정권에 협력을 자청한 이들이었다. 임승국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한 전두환에게 "공산주의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국수주의 독재를 해야 한다!"고 진언하기도 했다. 전두환단고기 정말 임승국의 생각대로 한국이 굴러갔다면 대한민국북한의 닮은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단군교의 천부경대종교의 삼일신고를 무단으로 베껴다가 싣고 있으니 주객전도가 따로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핵심에는 자신의 가문을 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 선양하려던 이유립의 흑심이 있었다. 바로 이러한 것을 총칭하여 거짓 포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12환국 명칭도 실제 역사랑 시기가 다르다. 중국 진서 사이전에 '비리국,양운국,구막한국,일군국'이 등장하고 삼국사기에는 '구다천국,매구여국,구다국'이 등장, 광개토대왕비문에는 '비리,객혁한,구모객두,매구여'라고 나온다. 하지만 12환국 시기보다 훨씬 후대에 언급된 명칭들이고 비리국의 경우 서기 395년에 비리가 조공을 하지 않아서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했다고 나온다.

한편, 일각에선 환단고기의 실제 저자가 허술한 이유립이었으니 망정이지 화랑세기 필사본의 실제 저자로 추정되는 박창화였으면 큰일날 뻔했다는 얘기도 한다. 이유립의 환단고기는 전문가들이 금방 위서로 판정할 정도로 질이 떨어지는 책이지만 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은 현재까지도 진위 논쟁이 벌어질 정도[15]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따라서 어설픈 이유립이 아니라 나름 역사적 지식이 있는 치밀한 박창화가 환단고기 비슷한 가짜 역사책을 썼으면 분명 일시적으로나마 역사학자들 중에서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나왔을 수도 있으니 악영향이 훨씬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유립은 모든 이야기를 창작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는 않았다. 이유립이 원본 환단고기를 보며 기억한 것이 아니라 순수 기억력으로 100% 똑같이 적었다는건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다. 또 환단고기와 유사한 내용들은 이미 조선 후기부터 시작되었다. 1914년에 나온 대종교 책 '신단실기'에 환단고기랑 일부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이래 고사(古史)와 경전(經傳: 聖賢이 지은 책)이 전하여져 부여나 고구려 때에 번역, 간행된 것이 많았으나 병화로 소실되고, 일부 남은 것들은 조선시대에도 전하여졌다. 그러나 이것마저 세조·예종·성종 때에 왕명으로 8도관찰사에게 명하여 대궐로 거두어 들였다가 뒤에 병화로 소실되었다.'라고 적혀있는데 거기서 소실된 책을 보면 '조대기,삼성밀기,삼성기 등'으로 나오는데 20세기 초에도 삼성기를 본 사람이 없다고 봐야 정확하다. 근데 계연수가 삼성기를 환단고기에 포함시켰다는 말은 말이 안되는거다. 1950년대 이고선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단서대강'에 환단고기를 참고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일부 왕들의 호칭을 기록하지 않고 그저 몇세 환웅,환검 정도로 기록 되어있다. 만약 환단고기를 참고했다면 똑같이 적었어야 했는데 내용 일부가 빠졌다. 이 책은 1981년에 출판된 '심당전서'에 포함 되어있다. 그리고 환단고기와 달리 치우가 조선이 아니라 '단국'을 세웠다고 적혀있다.

7.1. 서지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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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고증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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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사상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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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창작 소재로서의 가치

사료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유사역사서가 민간 설화나 문학 작품 등의 소재가 되어 의도치않게 후대의 문화 창작에 기여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유사역사서인 브리타니아 열왕사인데, "영국인의 조상 브리튼인트로이 유민들이다."[16], "아서 왕이 유럽 대륙을 지배했다."[17] 등 환단고기 못지 않게 황당한 내용들이 많고 현대 역사학계에서 사료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는 유사역사서로 평가받지만, 아서 왕 전설, 리어 왕 등 후대의 수많은 설화와 문학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18] 때문에 일각에서 환단고기도 창작 소재로만 사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저작권에도 문제가 없는 것이, 어차피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이를 진실이라 믿고 있고 저작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환단고기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기에 그럴 일도 없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내용이 허술하고 단조로운 데다 무미건조해서 창작 소재로서도 쓸만한 내용이 거의 없다. 공간적, 시간적 배경은 넓고 길지만 그에 비해 내용의 밀도가 매우 낮다. 평균 수십 년을 헤아리는 단군 치세에 잘해야 대여섯 개 기사만 있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나마 그 기사들 역시 '어느 역사서에서나 나올 법한 흥미없는 내용들' 밖에 없다.

그나마 흥미로워 보이는 내용도 기존의 한국 신화중국 신화, 규원사화, 옛날 도교 서적 등을 베낀 것에다 조금 살을 붙이거나 설정을 조금 바꾼 정도라서 독창성도 없으며, 비중있는 내용도 역사서적이 아닌 태백교의 경전으로서의 종교적인 내용이 대다수이다.[19]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환빠들은 성경도 읽다보면 지루하고 재미도 없다거나 "우리 조상들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졌기 때문에 허황된 괴력난신 따위를 들먹이지 않았다."라는 식으로 둘러대지만 그조차 궁색한 변명인 것이, 당장 성경을 보면 레비아탄이나 베히모스, 바알제불, 아스모데우스, 릴리스 같이 중근동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던 온갖 다양한 요괴들에 얽힌 흥미로운 전설들을 알 수 있어 판타지 세계관 창작에 매우 유용하다. 또한 한국 신화한국의 요괴 항목에 들어가봐도 조선 시대의 다양한 고문헌과 구전 등을 통해 요괴도깨비귀신 같은 환상종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환단고기를 판타지소설, 대체역사소설로서 향유할 수도 있겠지만 문체가 소설체가 아닌, 기존의 연대기적 사서들에서 볼 수 있는 간결하고 무미건조한 한문 번역 문체라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다.

즉, 조선 시대에 쓰인 서적들,[20] 한국 설화를 모티브로 한 현대의 창작물들,[21]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때 쓰일 참고용 자료로서 쓰인 서적들이[22] 환단고기보다 창작 소재로서 더욱 가치있다.

다만 환단고기를 '이유립이 20세기에 구축한 문학 서사'로 규정하고 진행된 문학 연구가 아예 없지는 않다.#

9. 의문과 해답

10. 기승을 부리는 환빠들

11. 왜 환단고기인가?

사실 이런 유사역사학 계열의 위서는 적잖이 찾아볼 수 있는 편이다. 단기고사규원사화의 내용은 환단고기와 거의 비슷하고, 다소 마이너한 것으로는 부도지라는 괴작도 있다. 특히 부도지는 창세신화급 이야기다 보니 증산도와는 맞지 않고, 단월드에서 밀어주는 편.

하지만 이런 위서들을 제치고 환단고기가 가장 지명도와 지지도가 높은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개중에 환단고기가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규원사화는 완성도와 일관성은 더 높지만 내용이 너무 소박하고 간단하다. 규원사화에서 고조선은 요동, 만주, 한반도 북부 지역 등 고구려 수준의 영토만 지배할 뿐이다. 반대로 단기고사는 각종 오버 테크놀러지가 환빠의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 황당하다.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전화기와 잠수함이 있었다'와 같이 상식적으로 전혀 말이 안되는 거짓말을 책 내내 하고 있는데 누가 속겠는가?

안 그래도 신채호는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가, 고려의 어떤 장인이 증기선을 창조하였다는 문구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조선상고사)라고 이런 류의 거짓말을 대차게 비판한 바 있다. 따라서 둘 사이의 절충적 스탠스를 가지고 있는 환단고기의 내용이, 그나마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먹음직스럽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환단고기에 나오는 한민족의 강역도 생각보다는 좁다. 마치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한 것처럼 이야기되는 환국도 실질적으로는 바이칼 호 일대만을 좀 장악한 것으로 나오고, 환단고기에서는 초대 환웅이 환국의 분파를 이끌고 만주 일대로 '진출'해 그 땅을 '개척'한 것으로 나온다. 근데 만주 일대가 처음부터 환국의 땅이었다면, 이미 자신의 땅인데 왜 다시 깃발을 꽂고 개척해야 했을까?

즉 환웅 이전 시대에 만주는 한민족의 영역이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수밀이국 같은 것은 기껏해야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이 몇 차례 나올 뿐, 직접 복속했다는 기록도 없다. 치우가 개척했다는 배달국의 강역도 고작해야 중국의 동해안 일대를 넘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고조선은 기껏 개척해놓은 중국의 동해안 일대 강역을 어느새 다 날려먹고 춘추시대의 연나라 따위와 티격태격한다. 그나마도 일방적으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는 수준.

즉 환단고기의 내용상으로 고조선은 거의 요동에 머물러 있었으며, 춘추시대의 삼류 국가였던 연나라와 티격태격 하는 수준의 나라였던 것이 고작이다. 가끔 연나라를 지원나온 제나라와 싸운 기록이 있다. 하지만 춘추시대의 진짜 강국이었던 진(晉), 초(楚), 진(秦)과는 아예 충돌한 기록 자체가 없다. 생각보다 훨씬 좁다. 그 외에는? 은나라와 좀 붙고, 반 은나라 세력의 뒤 좀 봐주고. 끝.

전국시대로 가면서 그 자랑스러운 고조선의 실체가 매우 초라하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고작 사냥꾼 출신의 우화충이 일으킨 수만 명의 반란군에 나라가 완전히 무너진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는 한번에 무려 40만 명을 생매장하고 있었다.

물론 상대적인 기준이다. 훨씬 후대인 고구려동천왕~중천왕 때까지만 해도 고구려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정규병은 2만 남짓이었다. 즉 실제 고조선에서 '수만'이라는 군대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문제의 요지는 '중국보다 위대했다고 환빠들이 망상하는 고조선'에 대면 턱없이 적은 숫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걸 달리 말하자면 생각보다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중국 측의 사서들과도 어찌되었든 연결되기는 하는 편이고, 일반 사학계의 관점을 봐도 고조선이 맞붙었던 상대는 연나라와 동호를 비롯한 여러 북방민족들이었다. 환빠들은 바로 이러한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대륙설 계통의 주장은 환단고기를 직접 근거로 삼지 않고, 삼국사기 등의 사서에다가 억지를 쓰는 경우가 많다. 실질적으로 대륙설로 가면 환단고기는 거의 인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 때문에 그나마 이유립의 의도 그대로 환단고기 지도를 만든 환단고기 판본은 상생출판에서 펴낸 환단고기 번역판에 실린 지도가 유일하다고 할 정도다.

12. 결론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설명한 귀선(龜船)의 제도를 보건대, 배는 널빤지로 꾸미고 철판으로 꾸민 것이 아닌 듯 하니, 이순신을 장갑선의 비조라고 함은 옳으나 철갑선의 비조라 함은 옳지 않을 것이다. 철갑선의 창조자라 함이 보다 더 명예가 되지마는, 창조하지 않은 것을 창조하였다고 하면 이것은 진화(進化)의 계급을 어지럽힐 뿐이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가, 고려의 어떤 명장(名匠)이 증기선을 창조하였다는 문구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신채호, 『조선상고사』

물론 사학도 사회과학이기 때문에 '모든 과학은 반증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열린 사고로서 모든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려는 시각'은 보여야 하나, 환단고기는 이미 숱하게 검증되어 위서로 판명되었고, 그 내용들도 단 하나도 증명이 안되고 있으니 이 책의 개연성은 고사하고 사학의 한 가지 가능성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것조차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열린 사고로 과학을 한다고 해도 영구기관이니 피라미드 파워니 하는 헛소리마저도 과학으로 인정해줄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피라미드 파워가 차라리 나을지도.[30]

이윤기는 이 책에 대해 '19세기에 새로 만들어진 신화'라고 했는데, 상당히 적절한 평가다. 덧붙이자면 악의와 배타성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환단고기를 믿는 제1의 이유인 '작은 것은 초라하고, 짧은 것은 비루하다. 고로 기존의 한국사는 초라하고 비루하다'는 생각 자체가 본디 일제로부터 주입된 것임을 명심하자. 작다고 초라한 것이 아니고, 짧다고 비루한 것이 아니다. 오늘 날에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역사가 얼마나 된 것인지와 함께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북유럽 여러 강소국들의 규모가 어떠한지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13. 관련 문서

13.1. 내용 관련 문서

13.2. 문헌 관련 문서

13.3. 인물 관련 문서



[1] 사실 소설도 이 정도로 질이 낮다면 졸작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전 소설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따진다 하더라도.[2] 물론 거증책임은 입증하는 쪽에 있다. 이 책이 진서인지를 증명할 책임은 진서임을 입증하는 쪽이 지는 것이지 부정하는 쪽이 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3] 비판론 쪽 노태돈이 말한 것 같은 '이 책이 진짜로 쓰인 시기(19~20세기)의 동북공정과 식민사관 등 현대 역사왜곡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다'는 말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이덕일의 기타 행적을 보면 빼도박도 못하는 환빠이기 때문에 이 발언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제작연대를 속이는 위서는 그 자체로 주작과 왜곡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므로 사실을 포함하고 있든 말든 사료적 가치는 없고 따라서 사실추정이나 교차검증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4] 삼성(三聖)은 한국에서 환인-환웅-단군 세 성인을 가리키는 말이다.[5] 그런데 삼국유사 원문에는 또 "이모형제(異母兄弟)", 즉 배다른 형제로 되어 있다.[6] 마한세가(馬韓世家) 상/하편, 번한세가(番韓世家) 상/하편으로 구성[7] 소설자체는 1984년부터 출간되어 1985년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당시 라디오 광고도 했고, 심야시간대 TV 광고까지 넣을 정도로 출판사에서 신경썼다.[8] 굳이 음역하자면 고할하경계다.[9] STB 상생방송도 증산도 계열 TV 채널이다 보니 안경전본의 홍보를 담당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10] 하드커버판(B5), 보급판(B5), 축소판(A5), 포켓판 외에 청소년 환단고기, 어린이환단고기 등 10가지 정도 종류가 나와 있다. 그런데 정작 보급판이 한문 원문만 있는 영인본이라는 것이 반전.[11]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관자(管子)이다. 실존인물 관자의 이름을 빌려 후대의 사상가들이 공동집필한 책이지만 워낙 이른 시기(전국~한초)의 것이므로 다른 책에서 접할 수 없는 당대의 사실들이 많이 담겨 있다. 따라서 위서임에도 훌륭한 역사적 자료로 사용된다.[12] 고대 사가들, 특히 헤로도토스 이전 기록자들에게는 역사를 객관적, 실증적으로 기술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 벌어질 리 없는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왕을 보호하여 전투에서 이겼다', '왕이 110세까지 살고 주변국 어디어디를 정복했다' 등의 초자연적이거나 시대상에 맞지 않는 서술이 정사로 간주되는 역사서에 당당히 나온다.[13] 물론 동양에서도 사마천이 등장하여 역사 편찬 방식을 정립했고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국가들도 최대한 사마천의 방식에 맞춰 정식으로 역사를 남기려고 노력은 했지만 정치적인 이유, 종교적인 이유 등 역사 외적인 부분에 영향을 받으며 와전되거나 날조된 부분이 꽤 많다. 사실 이건 중국이나 근대 이전 서양 국가들도 마찬가지니 그냥 시대적인 한계라고 보는 게 맞다.[14] 영고탑(만주어 ‘닝구타’에서 유래), 송화강(만주어 ‘숭가리 울라’에서 유래), 사백력 등.[15] 물론 21세기 들어선 서강대학교 역사학과 계열 정도를 제외하곤 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서라는 의견으로 대세가 기운 상태다.[16] 실제 브리튼인은 켈트 계열이다.[17] 아서 왕이 실존했다고 여기는 학자들도 많지만 유럽 대륙을 지배했다는 내용은 교차검증할 다른 나라의 사료가 존재하지 않아 정설로 인정되지 않는다.[18] 다만 이 책은 역사와 전설의 구별이 어려웠던 전근대에 쓰였기에 20세기에 쓰여진 환단고기와 동일선상에 놓기 힘들다. 제프리의 창작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삼국유사처럼 판타지적인 구전 전설을 실전된 사료나 민간인들의 증언을 참고하여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19] 기성종교의 경전인 성경불경도 고대의 역사나 문화, 과거에 존재했던 관념 등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지만, 환단고기는 이마저도 부실하다.[20] 조선왕조실록, 성소부부고, 청성잡기, 용재총화, 어우야담, 청구야담, 천예록, 금계필담, 천군기 등[21] 전설의 고향 시리즈, 신과함께[22] <한국 괴물 백과>#, <한국 요괴 도감>#,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23] 여담이지만, 상술한 대로 창작 이래 지금까지 환단고기 전체의 해석에서 가장 웃기는 부분.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는 세상 만물을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로 분류한 명나라의 백과사전 "삼재도회(三才圖會)"에 일본 관련 내용을 보충하여 일본에서 펴낸 책이다. 조선에도 알려져 여러 학자들의 책에 인용되었다("왜한삼재도회(倭漢三才圖會)"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책에 조선어 일부가 실려 있는데 여기 쓰인 한자는 모두 일본식으로 음독해야 한다. 즉 '波乃留(파내류)'는 일본식 발음으로 '하나루'이며 이는 그냥 조선어 보통 명사 '하늘(하ᄂᆞᆯ)'에 불과하다. 이걸 모르고 무작정 '파내류 산'이라는 고유명사로 읽어서 중앙아시아 어드메니 파미르 고원이니 하는 온갖 비정을 다 하고 있다.[24] 위서 고구려전에는 '을불리의 아들이 소(召)이다. 열제(烈帝) 때 모용씨와 더불어 서로 공격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수서에서 이 구절을 '을불리의 아들 소열제가 모용씨와 더불어 서로 공격하였다.'라고 잘못 기록한 것이다. 삼국사기는 고국원왕의 휘 중 하나로 쇠(釗, 당시 발음은 '소이/soj/'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를 전한다. 열제(烈帝)는 탁발선비의 추증 황제 중 한 명인 탁발예괴(拓跋翳槐)를 가리킨다.[25] 단군이 기원전 667년에 배반명을 보내 바다를 정벌했다고 한다. 일본서기는 진무 덴노의 건국년을 기원전 660년으로 잔뜩 부풀려놓았는데, 이유립은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26] 고서인 신당서에 이미 실려 있는 내용.[27] 주역에 이미 실려 있었던 내용.[28] 나중에 단재가 '소싯적 썼던 <대동제국사>는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이불킥한다'고 했던 걸 보면, 단재는 저승에서도 편히 쉬지 못할 듯.[29] 근데 정치인이란게 원래 직업상 온데군데 축사 보내기 마련이라 마냥 확정짓긴 좀 애매하긴 하다. 지지자들 좀 늘리려고 온데군데 추파 던지다 논란이 터지면 본인들은 관련없고 모르는 단체라고 입 싹 닦는게 이쪽에선 꽤 흔한 일이다. 환빠 계열은 아니지만 비슷한 사례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통일교 행사에서 이짓 하다가 앙심을 품은 괴한에 의해 살해당했다.[30] 유사과학은 과학으로 까일 수라도 있지만, 환단고기는 털리고 먼지만 남아도 이미 믿는 사람은 어찌할 수가 없다. ‘고조선 자료가 있었으나 소실되었다.’ 등의 논리로 배 째기 때문. 그러나 그 당시 기술력으로는 내용 자체가 증명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 당시 통치제도로 환단고기에서 서술되는 내용을 구현한다는 건, 편지로 인터넷 속도를 넘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31] 뭔 소린가 싶겠지만, 환단고기의 논리대로라면 일본 제국은 쥬신의 후예여야 한다. 거기에다 환빠들이 그렇게 빨아 재끼는 시나리오인 중국을 물리쳐 옛 고구려대륙 백제의 영토를 회복한다는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에 진 것이 분하다면 비슷한 환빠 논리로 배달국으로 둔갑 가능한 몽골 제국으로 자위하는 방법도 있다.[32] 실제로 환단고기가 진서라고 대놓고 주장한 적이 있다. 역사학자긴 하지만 본인 전공이 아닌 고대사나 조선후기사 관련 서적에 음모론을 넣거나 검증되지 않은 설을 주장하면서 타락한 예다.[33] 환단고기의 내용을 소설에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그를 소재로 소설을 썼지만, 나중에는 "소설가로서 가설로 제시"한 것 뿐이라면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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