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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09:20:46

크리스토퍼 말로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크리스토퍼 말로
Christopher Marlowe
파일:크리스토퍼말로.jpg
출생 1564년 2월 26일
잉글랜드 왕국 켄트 캔터베리
사망 1593년 5월 30일 (향년 29세)
잉글랜드 왕국 켄트 뎁퍼드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극작가, 시인
학력 케임브리지 대학교 코퍼스 크리스티 컬리지

1. 개요2. 생애3.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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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극작가, 시인.

29년이라는 짧은 인생에서 불과 10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시인 중 한 명으로 현재까지 칭송받고 있다. 그의 작품과 문학적 스타일은 수많은 후대 영문학 작가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며, 특히 그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2. 생애

1564년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킹스 스쿨[1]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 대학교 코퍼스 크리스티 컬리지에 입학했다. 1584년 인문학과 학사 학위를 받은 후에도 학교를 다녔지만 1587년 인문학과 석사 학위 수여를 거절 당했다. 이유는 지난 3년 중 너무 많은 기간 동안 학교를 떠나 있던 것이 수상쩍어서였다. 추밀원 의원들이 말로가 랭스에서 "폐하를 위해 좋은 복무와 충직한 거래"를 했다는 내용의 서신[2]을 보낸 후 학사 학위가 수여되었다.

학위를 받은 후 런던으로 이주해 여러 각본을 썼는데 이 때도 여러 사건에 휘말려 여러 차례 법정 기록에 이름이 남았다.

1593년, 켄트 뎁퍼드[3]의 한 집에서 세 명의 남자와 합석해 모임을 가졌다. 기록에 의하면 이때 밥값을 두고 다툼이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합석한 이들 중 하나인 잉그램 프라이저(Ingram Frizer)가 찌른 단검에 오른쪽 눈을 맞고 즉사했다고 한다. 말로가 먼저 칼을 꺼내 휘둘렀으며 프라이저는 정당방위를 위해 칼을 빼앗아 반격했다는 증언에 따라 프라이저는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3. 대표작



[1] 서기 597년 캔터베리에 세워진 학교. 지금도 퍼블릭 스쿨로 존재한다.[2] 이 서신 때문에 그가 가톨릭 상대로 밀정 임무를 수행했다는 주장이 있다.[3] 현재는 런던 루이셤 자치구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