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 Mary Shelley | ||
본명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혼후 성명) Mary Wollstonecraft Shelley |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혼전 성명) Mary Wollstonecraft Godwin | ||
출생 | 1797년 8월 30일 |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런던 소머즈타운 | ||
사망 | 1851년 2월 1일 (향년 53세) | |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런던 체스터 스퀘어 | ||
국적 | [[틀:깃발| | ]][[틀:깃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 → [[틀:깃발| ]][[틀:깃발|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
직업 | 소설가 | |
부모 |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1756 ~ 1836)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 ~ 1797) | |
형제자매 | 이부언니 패니 임레이(1794 ~ 1816) | |
배우자 | 퍼시 비시 셸리(1816년 결혼, 1822년 사망) | |
자녀 | 퍼시 셀리(1819 ~ 1889) 준남작[1] 포함 4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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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지식은 우리를 천국에서 끌어내렸고 십만 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과 참담함으로 이어졌다.
<최후의 인간> 中
세계 최초의 SF 소설가.[3] 잉글랜드 출신으로, 아버지는 최초의 무정부주의자로 꼽히는 윌리엄 고드윈, 어머니는 최초의 페미니스트이자 <여성의 권리 옹호> 의 저자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차녀로 태어났다. 남편은 영국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이며 네 명의 자식을 두었다.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과 참담함으로 이어졌다.
<최후의 인간> 中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이자 SF 문학의 효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로 유명하다.
2. 생애
그녀의 출생 후 11일 뒤에 어머니 메리 울스터크래프트가 산고로 사망하여 편부 윌리엄 고드윈 슬하에서 자랐다. 따로 학교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지식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글쓰기가 취미인 문학소녀로 성장했다.15세에 아버지의 제자 중 장래성 있는 시인이었던 20세의 퍼시 비시 셸리[4]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그가 이미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는 것. 야사에 따르면 첫 성관계를 밤중에 어머니의 무덤 위에서 했다고 한다. 1814년 퍼시와 메리는 사회의 시선과 가족의 반대를 피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퍼시의 시집 출판, 학술 활동 때문에 영국에 종종 들르기도 했다고.
1816년에는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서 조지 고든 바이런을 만나게 되어 친해졌는데, 그 해 여름 날씨가 우중충한 탓에[5]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이 때 바이런의 제안으로 퍼시와 메리, 바이런 그리고 바이런의 주치의인 존 윌리엄 폴리도리 이렇게 4인이 심심풀이 삼아 괴담을 창작하게 된다.
메리의 회고에 따르면 "퍼시와 바이런은 일찌감치 나가떨어졌고 폴리도리는 '뭔가 아주 끔찍한 생각'을 내놓았다가 더 얘기하기를 그만두는 결말을 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메리의 차례가 돌아오자, 그녀는 갈바니의 개구리 전기 실험과 독일에 실재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성에 살던 연금술사가 인조인간을 만들었다는 전설에서 착상을 얻어 '시체를 모아 전기의 힘으로 되살린 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경청한 바이런이 '매우 흥미로운 아이디어'라면서 소설로 집필할 것을 권유했고, 남편(정확히 말하면 이때까지는 아직 정부(情夫)였다) 퍼시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의 소설화 작업을 도왔다. 그리고 2년 후인 1818년 메리는 익명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당시 글쓰기는 남성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여성 작가들이 익명으로 작품을 내놓는 일이 흔했다.
도피 여행 중 퍼시의 아내 '해리엇 셸리'[6]가 템즈 강에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둘은 곧 영국으로 돌아가 결혼식을 올렸고 메리는 정부(情婦)에서 정식 아내로 승격(?)했다.
부부 사이의 금슬은 좋았지만,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슬하의 자녀 4명 중 3명이 일찍 죽었고, 남편 퍼시마저 결혼 7년만인 1822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요트를 타다가 폭풍을 만나 익사했다.
퍼시의 죽음 이후에는 그의 유고를 모아 유고 시집을 발간하였고, 1831년 '프랑켄슈타인' 개정판을 내면서 자신이 작품의 작가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후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프랑켄슈타인'만큼의 인지도를 얻지는 못하였고 1851년 뇌종양으로 사망하였다.
그밖에 그녀 작품으로 재평가된 작품으로 1826년에 쓴 '최후의 인간'은 알수 없는 병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마지막 한 사람만 살아남는 이야기로 나는 전설이다보다도 무려 128년이나 먼저 나온 포스트 아포칼립스 교과서이다. 이 소설도 당시 철저하게 묻혀졌으나, 1950년대 나는 전설이다나 트리피드의 날이 나오면서 이 작품도 재평가되었다.
인지도나 인기와는 별개로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당대의 문학적 평가는 매우 좋지 못했다. 책 자체는 매우 잘 팔렸지만 주류 문단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을 단순히 저급한 대중소설 정도로 취급했던것이다. 당대에 바이런과 어깨를 나란히 한 남편 퍼시 비시 셸리와 달리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고전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60년대 인권 운동이 활발해지고 포스트모더니즘·페미니즘 문학비평이 대두하면서부터이다. 단순히 여자가 써서 높이 평가되었다고 보기에는 억울한 셈이다. 더불어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 '최후의 인간'도 재평가된 수작이다.
3. 기타
- 메리는 1818년 프랑켄슈타인 초판 서문에서 "어떤 한 명의 이야기는 대중의 환영을 받을만했다."고 평했는데, 이것이 폴리도리의 작품에 대한 그녀의 초기의 평으로 보인다. 당시 폴리도리가 쓴 괴담이 바로 최초로 흡혈귀가 등장하는 단편 소설 '뱀파이어'다. 그런데 1831년의 프랑켄슈타인 개정판 서문에서는 "폴리도리는 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아주 끔찍하기만 하고 옳지 못한 것을 썼다."고 폴리도리의 괴담을 애둘러 비판하는데, 주인공과 주변인의 인생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배드엔딩이라서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 개정판을 낼 시점의 메리는 남편과 자식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인생관이 다소 변해서 더욱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 1816년 여름 당시, 바이런은 '차일드 헤럴드의 편력' 3권 집필이나 괴담 창작도 잘 되지 않고, 악천후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그러던 바이런의 눈에 포착된 것이 메리의 의붓여동생[7] 클레어 클레어몬트. 결국 바이런이 그녀를 유혹하면서 둘 사이에 딸 알레그라가 태어나고, 이후 스폰서였던 셸리 부부와 관계가 매우 어색해진다.
- 셸리의 어머니는 현대 최초의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자 프랑스 혁명에서 중요한 인물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이다. 울스톤크래프트는 프랑스 혁명에서 공화주의의 정수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서 여성이 인간에도 시민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유명하다.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의 선구자격인 주장이자, 어떤 점에서는 자유주의를 넘어서기도 한다. 셸리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었지만 그녀가 집필한 서적을 읽으며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키웠고, 프랑켄슈타인 소설에도 페미니즘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 딸, 여동생, 하녀로만 존재하는 여성 캐릭터, 여성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가족 제도 등에 대한 성찰.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아나키즘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1756~1836)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결혼을 영국의 권위주의가 집결한 제도이자 가장 모순된 소유라고 여겨왔으나, 울스톤크래프트와 사랑하게 되어 결혼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아이의 장래와 사회적 제도상 겪게 될 불편을 고려하여 이루어진 것이었으며[8] 메리 울스톤크래프트와 윌리엄 고드윈 모두 결혼제도 자체에 회의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따로 살면서 독립적인 삶과 개인 행동의 자유를 유지해갔다.
- 프랑켄슈타인에서 '나태한 동양인'이라는 표현을 쓰며 인종차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대 유럽 사람들이 동양인을 평하며 많이 쓰던 말인데, 문화적 차이에서 온 오해이다.
- 1살 차이나는 의붓여동생 클레어 클레어몬트 외에 3살 차이나는 이부 언니 프랜시스 "패니" 임레이(Frances "Fanny" Imlay), 6살 차이나는 이복남동생 윌리엄 고드윈 Jr가 있었다.
- 메리 셸리를 소재로 그린 만화인 메리 고드윈이 존재한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18년 10월 14일자에서 메리 셸리와 퍼시 셸리의 이야기를 다뤘다. 실종된 이후 퍼시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나 심하게 부패되어 결국 이탈리아에서 화장해야 했는데 어째선지 심장이 타지않고 남아있어 메리가 이를 간직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결말이 인상적.
4. 한국에 번역된 작품
- 프랑켄슈타인 (1818, 1831): 1818년 초판[9]과 1831년 개정판[10] 모두 번역 출간되었다. 초판과 개정판을 구별하는 방법은, "내가 열일곱 살 때~" 부분이 2장 첫머리면 초판, 3장 첫머리면 개정판 번역본이다.
- 최후의 인간 (1826): 2014년 아고라 출판사로 완역 출간되었다. 21세기 말엽 미래를 배경으로 정체모를 전염병으로 전세계 사람들이 다 죽어가고, 영국은 겨우 몇 명 남고 몰살. 영국을 나와 유럽 각지를 떠돌지만 유럽도 사람들이 마구 죽어나가는 건 마찬가지였고 미국과 아프리카.남미 등 전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 라이오넬과 몇명 사람만이 남아 유럽을 나가고자 배를 타지만 폭풍우를 만나 배가 침몰하고 라이오넬 홀로만 살아남는다. 라이오넬은 이 병이 다른 동물이나 식물은 일절 피해가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신이 자신에게 까부는 사람에 주는 벌일까? 아니면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한탄하면서 이제 마지막 최후의 인간인 자신만 남았다고 꿈도 희망도 없는 마무리로 끝난다. 그야말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전 지구적인 재난 종말 소설의 원조 중 하나.[11]
- 죽어야 하는 불멸 (1833): <세계 호러 걸작선 2>에 수록되었다
- 부재 외 여러 편의 시: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 찬란한 숲을 그대와>에 수록되었다
5. 대중매체에서
- 메리 고드윈 (2005-2006): 박설아, 유진수 작 한국 만화. 전 2권.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2017):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의 영화
- 메리셸리 (2019) : 글로컬 라이브 선정(2020),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후보) 선정(2021) 창작뮤지컬(극 김지식, 작곡 권승연/아음컴퍼니)
- 메리셸리 (2021) : 뷰티풀웨이에서 제작한 창작 뮤지컬
[1] Sir Percy Shelley, 3rd Baronet. 할아버지의 작위를 상속했다.[2] 이 문구는 문명 6 걸작으로 그대로 등장한다.[3] 브라이언 W. 올디스는 인류의 실제적인 미래가 담긴 내용을 조건으로서 제한된 용어로‘Science Fiction’을 제안한다.# 즉, 실제적인 미래에 한정지은 것이다.[4] 메리보다 훨씬 유명했고, 지금도 작가로선 한 수 위로 평가받는 낭만주의 시인으로, 현대 대중들에겐 '오지만디아스'로 잘 알려졌다.[5] 1816년은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의 분화가 전세계에 기상이변을 일으킨, '여름이 없는 해'로 유명하다.[6] 퍼시가 바람을 피우자 해리엇도 맞바람을 피웠는데, 이때 임신을 해서 자살한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워낙 보수적인 사회였으니 사생아를 가진 여인에게는 가혹한 취급이 가해졌다.[7] 윌리엄 고드윈의 두 번째 부인의 딸. 그녀 위에 이부오빠가 있었다.[8] 당시에는 혼외 출생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엄청났다.[9] 문예출판사, 문학동네, 을유문화사, 더클래식 번역본 등.[10] 열린책들, 인디북, 황금가지, 비룡소 번역본 등.[11] 최초의 근대적 종말 소설은 1805년에 발간된 장 바티스트 쿠쟁 드 그랭빌(Jean-Baptiste Cousin de Grainvile,1746~1805)의 동명 소설 《최후의 인간》이다. 인류 전체가 불임으로 멸종 직전에 지구 자원의 낭비로 인한 환경 문제까지 촉발된 상황 속에서 마지막 생식 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에서는 도서출판 b에서 2022년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랭빌은 이 소설을 쓰고 곧바로 자살하는 통에 비난은 커녕 소설 자체가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