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 Gustave Flauber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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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귀스타브 플로베르 Gustave Flaubert | |||
출생 | 1821년 12월 12일 | |||
프랑스 왕국 루앙 | ||||
사망 | 1880년 5월 8일 (향년 58세) | |||
프랑스 공화국 크루아세 | ||||
직업 | 소설가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묘역 | <colbgcolor=#fff,#1f2023>루앙 묘지 | ||
사조 | 리얼리즘, 낭만주의 | |||
종교 | 가톨릭 | |||
학력 | 리세 코르네유 파리 대학교 (법학 / 중퇴) | }}}}}}}}} |
1. 개요
프랑스의 소설가.프랑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며 모더니즘, 프랑스 리얼리즘의 선구적인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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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였던 1837년 지역 문예지에 처음으로 글을 발표하며 습작을 시작했다. 파리 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가 23세 되던 해 갑작스러운 간질 발작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원하던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1849년 『성 앙투안의 유혹』의 초고를 완성하지만 친구들로부터 혹평을 받았으며,[1] 1857년에는 『보바리 부인』을 출간하자마자 풍기문란과 종교 모독죄[2]로 기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곧 무죄판결을 받은 플로베르는 큰 명성을 얻었고, 1866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이후 『감정 교육』의 상업적 실패를 경험하고 이십여 년 전부터 생각해온 작품 『부바르와 페퀴셰』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의 어려움에 부딪힌 플로베르는 친구 투르게네프의 조언에 따라 짧은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에 마지막 도전으로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순박한 마음」 「헤로디아」를 차례로 완성한다. 1877년 『세 가지 이야기』로 한데 묶여 출간된 이 단편들은 평단 및 대중의 커다란 호응과 함께 그에게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되찾아주었다.
플로베르는 『부바르와 페퀴셰』의 집필을 이어가다가 결국 미완으로 남긴 채 1880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3. 작품 목록
-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 - 1857년
- 《살람보》(Salammbô) - 1862년
- 《감정 교육》(L'Éducation sentimentale) - 1869년
- 《성 앙투안의 유혹》(La Tentation de saint Antoine) - 1874년 (완성작)
- 《세 가지 이야기》(Trois contes) - 1877년
- 《순박한 마음》(Un cœur simple)
- 《성 율리안 이야기》(La Légende de Saint-Julien l'Hospitalier)
- 《헤로디아》(Hérodias)
- 《부바르와 페퀴셰》(Bouvard et Pécuchet) - 1881년 (사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