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Gaius Petronius Arbiter(A.D 20~66)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문장가.
활동시기는 대략 서기 1세기 경으로, 네로 황제의 치세와 겹친다. 풀네임은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아르비테르(Gaius Petronius Arbiter) 혹은 티투스 페트로니우스 니게르(Titus Petronius Niger)로, 흔히 페트로니우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다. 서기 62년 보결 집정관인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니게르(Publius Petronius Niger) 와도 동일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2. 생애
페트로니우스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몇 되지 않으며, 이는 대부분 타키투스의 《연대기》에 실려있다. 그에 따르면 페트로니우스는 로마 속주인 비티니아 총독을 지냈으며, 로마로 돌아온 후에는 서기 62년 보결 집정관을 역임하면서 네로 황제의 측근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문화와 예술 방면에 매우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네로는 자신의 취향에 대한 문제를 모두 페트로니우스와 상의한 끝에 결정할 정도였다. 때문에 그는 "품위 판관"[1]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여러모로 쌍욕을 먹은 주군과 달리, 성품 자체도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던 탓인지 엄하게 골로 갈뻔한 사람을 구해준 일화도 있다. 바로 네로 사후 황제 자리까지 오른 베스파시아누스를 살려준 경우인데, 예술가 자뻑기질이 심한 네로의 시 낭송회 당시에 지루함을 못참고 베스파시아누스가 졸면서 생긴 일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단단히 믿고 있던 네로는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해 극대노를 했고, 자기에게 미움을 산 사람을 집요하고 악랄하게 괴롭히는 고질적 기질 때문에 베시파시아누스는 생명이 경각에 달했다. 그러나 페트로니우스는 "오르페우스는 하프 연주로 케르베로스를 잠들게 했는데, 폐하는 시로 베스파시아누스를 잠들게 했으니 이는 오르페우스의 업적과 맞먹는 것입니다" 라는 말로 네로의 분노를 잠재웠다. 보통은 주인을 은근히 엿 멕이는 말로 해석하지만, 리라 연주로 저승세계 모두를 감동시켰다는 오르페우스와 네로를 등치시킴으로서 귀를 엄청나게 띄워주는 말이기도 한지라 베스파시아누스는 생명을 건지게 된다.
네로의 또다른 측근이자 간신이었던 근위대장 티겔리누스는 페트로니우스가 황제로부터 받았던 총애를 시기하였다. 마침 네로가 캄파니아 지방을 순행하고 있던 중, 티겔리누스는 황제에게 페트로니우스를 참소하였다. 페트로니우스가 실은 "피소의 음모" 사건 당시에 네로를 제거하려 했던 원로원 스카이비누스의 하수인이었다고 누명을 씌운 것이다. 네로는 이에 페트로니우스의 가솔들을 잡아 가두도록 명령하였다.
자신이 죽음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을 직감한 페트로니우스는 자신의 정맥을 잘라 출혈을 일으킨 상태에서 연회를 열어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었고, 결국 술에 취해서 잠을 자다가 과다출혈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따르면 죽기 전에 자신이 아끼던 형석제[2] 포도주 국자(fluorspar wine-dippe)[3]를 깨뜨려서 네로가 이것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했다고도 전한다.[4]
한편 페트로니우스는 네로가 총애하던 실리아라는 여인으로부터 네로의 사생활에 대한 기밀사항을 은밀히 입수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네로와의 관계가 틀어지자, 죽기 직전에 네로가 지금껏 관계를 가진 남녀의 이름, 그의 기이한 성벽과 악행 등을 낱낱히 적은 유언장을 작성하여 이를 네로에게 보냄으로써 마지막 빅엿을 선사했다(…). 이에 당황한 네로는 실리아를 추방해버렸다.
그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소설 《사티리콘》은 현존하는 고대 로마의 소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물질만능주의와 방탕함에 찌들은 고대 로마인들의 사회상과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으며 현대에도 뛰어난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3. 창작물에서
현대인들에게는 폴란드 작가인 헨리크 시엔키에비치가 남긴 소설 《쿠오 바디스》의 등장인물로 유명하다. 작중에서 페트로니우스는 거의 주인공에 버금가는 비중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쿠오 바디스의 주인공 비니키우스의 삼촌으로 등장. 행적은 현실의 페트로니우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비니키우스는 가상 인물이며, 현실의 페트로니우스에게는 이런 조카가 없었다.페트로니우스가 쿠오 바디스에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기독교주의가 강하게 드러나는 해당 작품 내에서 몇 안되는 입체성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페트로니우스는 후사가 없어서 비니키우스를 자신의 아들처럼 여기고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지만 절대 선인은 아니다. 네로의 기분을 귀신같이 맞출 줄 알며 절묘하게 아부를 늘어놓는 아첨꾼이다.[5] 그러면서 황제를 경멸하고 있으나, 그를 어쩌지 못하고 영합하며 풍요를 누리는 자신마저 조소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조카와 조카의 사랑을 구하려다 황제의 눈 밖에 나고 '이제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군' 하며 담담하게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이고 평온하게 자살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유언장으로 네로를 조롱하며 죽는다.[6]
부당한 현실을 잘 알고 있고, 거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다소 허무주의적이지만 동시에 삶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헬레니즘적 심미주의자로서, 황제에게 아첨은 하지만 동시에 악행에 동조하지는 않고, 품위를 지켜가면서 자기 소신은 제대로 표현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덕분에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백성들에게도 고결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려들면서 더이상 양심과 목숨을 모두 지키는 그런 포지션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자신이 아끼던 조카만은 구하려다 최후를 맞게 되고, 마지막에는 자기 기개와 자존심을 지키면서 사망한다는 이야기. 실제로 페트로니우스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나, 알려진 현실로부터 헨리크 시엔키에비치가 제법 매력적인 상을 창조해 냈다는 점은 분명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소설 자체가 지극히 기독교적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페트로니우스는 비록 그리스도를 나름 긍정하기는 하나 끝까지 그리스도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7] 다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인물상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철학으로 대표되는 품위있는 구시대인으로 묘사된다.
거기에 노예를 인간으로 여기지도 않아, 조카의 상사병을 사랑하는 여인의 신분이 노예에 가까움을 이용해 도와주려 했으나 그 역시 결국은 한 노예 여자가 바치는 진정한 사랑에 감화되어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의 기쁨을 받는다.[8]
한국에서 과거에 큰 인기를 끌었던 코미디쇼 《쇼 비디오 자키》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네로 25시〉에 등장하는 페트로니우스(정명재) 또한 바로 이 실존인물 페트로니우스에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이다.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만화 《내 이름은 네로(我が名はネロ)》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한다. 네로의 모습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면서도 그에게 아첨을 일삼는 다소 위선적인 지식인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네로의 시 낭송시간에 졸아버리는 바람에 죽을 뻔한 베스파시아누스의 목숨을 구명해주는 등 긍정적인 묘사도 있지만, 남색을 밝히며 상대에게 마취약을 먹여 동성 강간을 시도하는 등 부정적인 묘사도 있다.
[1] 일본 쪽 번역에서는 '풍류 판관'이라고도 하며, 판결자라는 뜻의 영단어 Arbiter가 바로 페트로니우스의 별명인 아르비테르에서 나온 단어이다.[2] 여기서 말하는 형석이란 플루오라이트(螢石, Fluorite)라는 광물로 보인다. 다양한 색과 유리질의 결정 구조로 되어있지만 경도가 4여서 약한 편이다. 즉 사람이 그 자리에서 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약한 광물이라는 뜻.[3] 비슷한 시대의 유물인 형석 컵을 보면 대략 이런 색감을 지녔으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4] 이 일화는 소설 《쿠오 바디스》에서도 묘사된다.[5] 작중 네로가 자신이 지은 시를 발표했을 때, 모든 신하들이 환상적이라며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아첨하기 바쁠 때 페트로니우스는 심드렁하게 '그딴 쓰레기는 불구덩이에 던져버리십시오' 라고 한다. 네로의 표정이 경직되며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라이벌들이 네로 눈치를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부를 때, 화를 꾹꾹 참으며 '뭐가 문제냐?' 고 묻는 네로에게 페트로니우스는 '솔직히 호메로스가 썼다고 해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만, 황제 폐하의 재능을 감안하면 그건 쓰레기입니다. 왜 그렇게 안이하게 작품을 지으십니까? 제가 폐하께 기대하는 작품은 이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입니다' 라면서 극한의 아첨을 늘어놓는다.(...) 네로가 이 아첨에 뿅 가 죽으며 울면서 '그래 네 말이 맞다' 라고 방금 지었던 시를 태우려 하지만, 페트로니우스는 "그래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니 후세에 전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그러니 태우지 말고 제게 주십시오" 라면서 아첨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그리고 이 장면은 민규동 감독의 영화 간신에서 연산군과 임숭재의 행동으로 오마주된다.[6] 네로의 작품에 자신이 미사여구를 늘여놓았던 과거에 대해 밝힌 진상은 그런 짓 하기 짜증났다는 것이었다. 즉 네로의 작품들은 예술성이 없다고 까내리는 것.[7] 소설에서 로마에서 전도 중이던 베드로가 그를 찾아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설파하며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하는데 여기에 대한 페트로니우스의 대답이 이렇다. "당신이 말하는 그 가르침은 분명 옳은 가르침일 겁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죽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오면 스스로 독이 든 잔을 마실 줄 알고 있으니까, 나를 그냥 내버려두십시오."[8] 페트로니우스는 네로의 눈밖에 났을 때 자살하면서 재산을 여자 노예에게 주었지만 여자 노예는 사랑하는 주인을 따라 동반자살한다.